이승기/가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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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가수 활동
3. 이승기 희망 콘서트
4. 기타 사항


1. 개요[편집]


이승기의 가수 활동을 정리한 문서

2. 가수 활동[편집]



창법은 진성을 기반으로 두성을 섞었다는 의견이 많다(믹스보이스). 하지만 그냥 이선희 창법이다라고 말하는 게 더 이해가 가기 쉬울 듯.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아직 나아갈 길이 멀긴 하지만 스승과 쏙 빼닮은 창법을 쓴다.[1][2] 보컬 전문가들의 평가로는 교과서 같은 보컬이라고. 대신 1집과 2집 이후의 창법은 극과 극으로, 본인도 1집 시절 노래를 듣고 놀랄 정도. 진성과 두성을 기반으로 부르므로 당연히 '내지르는' 락 발라드에서 빛을 발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미지 때문인지 뭔지 몰라도 자꾸 부드러운 발라드만 고수하는 바람에 실력이 저평가되기도 한다.[3] 실제로 평소의 발라드가 아닌, 시원한 락을 부르는 영상을 보면 누구든 깜짝 놀라며 이승기가 이렇게 노래를 잘했냐며 놀라는 웃지 못할 사태가 있었다.

또한 젊은 시기에도 나이에 맞지 않게 매번 우울하고 무거운 이별 노래가 메인이라 1집이나 디지털 싱글 '결혼해 줄래'를 제외하곤 그렇게 큰 임팩트를 준 곡이 거의 없다. 하지만 감정 처리는 우수한 편으로, 그 당시 승기의 이별 노래가 나왔을 당시만 해도 MC몽은 '분명 사랑 같은 건 해 본 적도 없는 아이인데 노래만 들으면 몇십 번의 사랑과 이별을 해 본 사람 같다.'라고 평가할 정도다.

하지만 이승기의 가수 활동은 타 활동에 비해 비판을 많이 받는 것은 사실이다. 최고의 사랑에서 카메오로 나올 때 흐르던 음악이 1집 '내 여자라니까'였다는 것은 아직도 이승기하면 떠오르는 시그니처송이 1집에 머물러있다는 대중들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예능과 연기 활동을 통해 연령대를 불문하고 국민적인 인지도를 쌓았음에도 빠르게 떨어지는 신규 음반의 음원 성적은 '가수 이승기'에 대한 평가를 단적으로 깎아먹게 하는 마이너스 요인이다. 사실 '가수활동이 미진하다'란 비판보다는 '다른 커리어나 재능에 비해 가수 커리어가 돋보이지 않는다'는 아쉬움에 가깝다. 단적으로 말해 '예능인' 이승기는 대상까지 수상한 국내톱급이고, '배우' 이승기도 (영화는 미진해도) TV에서만큼은 대박 작품을 몇번 낸 굵직한 배우지만, '가수' 이승기로 한정해본다면 한번도 정상급이 된 적이 없다. 임창정, 장나라, 엄정화나[4] 김종국은 가수로서 정상을 찍고 다른 분야에 진출했고, 신정환이나 김종민 등은 애초에 가수로서 역량이 크지 않고 예능인으로서 이미지가 더 큰 반면 이승기는 뛰어난 가창력을 갖춘데다 화려하게 데뷔했음에도 신인 때에 비해 가수로서 입지가 크게 성장하진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승기가 처음 데뷔 했던 때의 가수 동기는 SG워너비, 동방신기(공식 데뷔일은 SBS <보아&브리트니 스페셜> 출연일인 2003년 12월 26일이지만 첫 번째 앨범인 싱글 1집 Hug는 2004년 01월 14일 출시하였기 때문에 사실상 2004년의 신인으로 평가받는다.)인데 이 두 팀은 2000년대 중반 가요계를 제대로 정복하면서 각종 가요 프로그램 1위와 가요 시상식 대상들을 석권할 정도였고, 이들에 비하면 가요 시상식 대상을 수상하지 못한 이승기의 가수 커리어가 상대적으로 더욱 저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이런 인식에도 불구하고 가수활동은 소홀히 두지 않고 있는데, 2011년 10월, 2년 공백을 깨고 모처럼 본업인 가수로 돌아왔다. 무려 정규 5집 앨범은 10월 27일 정식 발매하였고 14일에 수록곡 중 하나인 '연애시대'를 선공개했다. 멜론 1위 진입을 비롯해 전 음원사이트 올킬. 실력파로 알려진 싱어송라이터 Ra.D와의 공동 작업과 이승기의 첫 자작곡[5]으로 화제몰이 중이다. 다만 창법은 약간 바뀌었는데, 본인의 목소리가 더 편하게 나왔다는 평가다.

2011년 말 '친구잖아'라는 타이틀곡으로 방송 활동을 시작, 일단 첫 주엔 SBS, KBS에서 불렀으나 객관적으로 라이브는 상당히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승기의 5분 음악 방송'이라는 특별 기획프로그램에서 부른 원음 라이브에 비하면 너무도 음을 낮춰 밋밋한 상태인데다, 컨디션 난조인지 음이 뚝뚝 끊기는 둥 여러모로 평가를 나쁘게 내릴 수 밖에 없다. 노래방에서 불러보면 알겠지만 노래 자체가 워낙 파워풀한 고음으로 가득 차 있고 고저차가 심한 노래라 상당한 난이도를 자랑하는 건 맞지만, 원곡 가수조차 어려워하는 느낌인 건 아쉬울따름. 지상파 음악방송 무대에 나오기 시작한만큼 악조건 속에서도 멋진 라이브로 가수 이미지를 쌓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6] 2011년 11월 20일, SBS 인기가요 뮤티즌송 수상을 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활동을 마치게 되면 마치게 된다고 알리기라도 하고 떠나야 알 수가 있는데, 이 앨범에서는 굿바이 무대라고 알리지도 않고, 금방 소리소문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 완벽한 원음 라이브를 선보여 '방송 3사 아이돌 무대에선 일부러 낮춰서 부른 거에요~'라는 식의 완벽한 라이브를 선보였다. 여기서 만나고 싶고 좋아하는 가수로는 김동률 선배님이라고 언급했다.

2012년 11월 21일 이승기의 첫번째 미니앨범(5.5집)을 낸다고 한다. 파스텔뮤직 소속의 뮤지션 에피톤 프로젝트[7]가 프로듀싱한 곡으로, 감성적/포근적인 힐링 치유곡으로 불린다고 하는데 발표 이후 타이틀곡 '되돌리다'(Return)가 음원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방송 활동은 하지 않고 콘서트에서 신곡을 보일 예정이라고 했는데 12월 13일 엠넷 엠카운트다운에 출연. CD의 MR 씹어먹은 라이브를 선보였다. 그리고 2012년 11월 29일, 엠 카운트다운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심지어 팬들도 몰랐었다. 1위 영상. 참고로 이 날은 엠카운트다운이 결방하였었고 방송 활동도 안 하겠다고 했는데, 1위를 하였다. 총 엠카운트다운 1위 3회(트리플 크라운),[8] 뮤직뱅크 1위 1회[9]를 하였다. 콘서트 홍보용으로 2012년 11월 30일 날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다시 출연하여 기타리스트 함춘호와 정성하와 같이 출연하였다. 이 때 토크에서 유희열을 우주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며 예능감은 죽어있지 않다는 것을 입증했다.

2015년 6월 10일, 거의 3년 만에 6집 정규앨범 '그리고...'을 발표했다. 한여름에 발라드 앨범을 발표하는 게 위험 부담이 큰 일(다른 아이돌들이 음반을 발표 시기가 한여름에 몰려있기 때문에 음반 성적이 저조할 수가 있어 위험)이였지만 원래 계획했던 일정이 틀어지면서 여름에 발라드 앨범을 내놓게 된다. 6집 타이틀곡 '그리고 안녕'이란 곡으로 컴백을 하게 되는데 잔잔한 발라드가 아이돌 일색의 가요계에 이승기표 발라드답다는 의견과 가을 이후에 나왔으면 잘 어울렸을 거란 의견이 공존했다. 더군다나 뮤직비디오를 다 찍어놓고 뮤비 필름이 손실되는 사고를 겪게 된다. 재촬영은 하지 않았고 뮤직비디오는 1분 1초 짜리 미완성분으로 공개가 된다(그러나 디스패치가 찍은 뮤비 메이킹은 유튜브에 찾아보면 있으니 참고). 방송 활동은 거의 하지 않았으니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하여 이선희와 함께 버즈가시를 부르게 되는데 1집 때의 허스키한 창법으로 불러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게 된다. 사실 이승기 6집 노래들보다 스케치북에 나와서 부른 가시가 오히려 더 반응을 얻게 되는 상황을 겪게 된다.

2020년 10월 31일, 느닷없이 공식 인스타그램에 초성 여러 개(ㄴ, ㅇㄱㅎㅎㅈ, ㅇㅍㅌ ㅍㄹㅈㅌ, ㅇㅈㅅ)와[10] 날짜가 적힌 사진, 그리고 공식 홈페이지 'From Seunggi'(프승) 게시 예고가 올라왔다. 그동안 수많은 프승이 올라왔지만, 게시 전에 미리 시간을 예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 그리고 약속된 시간에 올린 프승에서 5년 만의 가수 컴백을 예고했으며, 그 다음날에 방영된 집사부일체(144회)에서 드디어 정식 컴백 소식을 밝혔다. 2년 전부터 앨범을 준비했으나 뜻대로 잘 되지 않았고 고민도 많았는데, 금지된 사랑 영상의 인기 덕분에 컴백에 탄력을 받았다고. 11월 15일 저녁 6시에 윤종신과 호흡을 맞춘 수록곡 '뻔한남자'를 선공개했으며, 12월 10일에 정규 7집 앨범 'THE PROJECT'를 발매했다.[11] 타이틀곡은 용감한 형제와 함께한 '잘할게'. 컴백 후 코미디빅리그 사이코러스(388회)[12], 문명특급 컴백맛집[13], 아이유의 팔레트[14] 등 여러 예능과 유튜브 컨텐츠에 출연하며 앨범을 홍보하고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

3. 이승기 희망 콘서트[편집]


2009년 이후로 연말마다 콘서트를 하고 있다. 제목은 항상 이승기의 희망콘서트.[15] 2007년에는 첫 단독 '이승기 Love 콘서트'를, 2009년 12월 12~13일에 두 번째 단독 콘서트를 열었다. 이 콘서트를 위해 그 노출 싫어하는 이승기가 초콜릿 복근을 만들어 옷을 찢고 보여주었다![16] 2010년에는 11월 21일 하루만 콘서트를 개최, 양일이 아닌 만큼 작년보다 퀄리티가 상승했다는 평이다. 일단 게스트부터 부활, 이선희,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주연 배우 등등 장난이 아니다. 게다가 통째로 증발해버린 2009년 콘서트와 달리 이번엔 DVD도 발매된다고. 2011년에는 5집 수록곡 위주로 콘서트를 하였으며, 어쿠스틱풍의 콘서트였다고. 또한 팬들을 멘붕시킨 오렌지캬라멜의 마법소녀를 불렀으며, 팬들 사이에서는 '마법소년 승기'라고 귀엽게 부른다. 2012년에는 싸이강남스타일을 이승기가 직접 개사한 누난 딱 내 스타일불렀다. 2012년 콘서트를 본 후 팬들이 하는 말 이승기 이제 춤도 꽤 추네? 2013년에는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대구에서도 희망콘서트를 개최했다.

4. 기타 사항[편집]


  • 보통 이승기의 부드러운 목소리와 잔잔한 창법이 제일 먼저 떠오르긴 하지만 가끔 보여주는 서비스 무대에서 그런 이미지를 완전히 없애주기도 한다. FT아일랜드와 함께 부른 '천둥(+착한 거짓말)'은 그 날로 하루동안 검색어 1위를 차지할 만큼 레전드. 비록 이승기가 가사를 한 소절 틀리기는 했지만 가창력에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게 되어버렸다.

  • 야외 무대에서 다른 가수와 호흡을 맞출 때마다 유난히 이승기의 마이크만 볼륨이 작거나 갑갑한 느낌이 있다. 이는 상대 가수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기 위해서 직접 조율한 걸로 추정된다.

  • 풋풋한 1집 시절에는 그도 삑사리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삑사리든 뭐든 시종일관 지나치게 열심히 하는 바람에 오히려 격려의 박수를 더 많이 받았다. 목 상태가 안 좋아도 안 좋은 컨디션 그대로 라이브를 했었다.

  • 엠카운트다운에서 이승기의 '결혼해 줄래'를 소속사의 허락 없이 FT아일랜드가 불러 잡음이 일었었다. 이승기마저 무대에 선 적이 없는 곡을 타 가수가 불렀다는 것, 게다가 이홍기가 부른 것도 아니다! 아이렌들의 속이 뒤집어지는 건 당연하고, 거기에 FT아일랜드 팬클럽 '프리마돈나'의 태도도 홧병의 일부가 되었다.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너무 어린 팬층(초딩팬)이었다 보니 갖가지 무개념 발언들을 한 걸로 보인다.

  • 2008년 리메이크 2집 앨범으로 활동 당시 KBS를 제외한 MBC, SBS에서 가요무대 출입 금지령의 피해를 입었다. 팬들이 아주 치를 떤다. 어른의 사정으로 자세한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아무리 봐도 1박 2일 경계 및 디스. 이것은 마치 '너네 구역 가서 놀아, 우리 편 아니니까 넘어오지 마 뿌우.' 참 치사하다. 하지만 같은 활동 시기를 가진 은지원MC몽은 비교적 다양한 활동이 가능했던 거와 달리 이승기만 견제한 걸 보면 참 미묘한 부분이다. 아무래도 짬밥 차이다. 2009년 들어서는 SBS는 완전히 이승기에게 호감으로 돌아선 듯 바로 인기가요 컴백 스케줄이 잡혔다. 결국 음악중심도 9월 19일에 컴백했다.

  • 가사가 유명해서 정작 노래 제목을 헷갈려 하는 사람이 많다. "나랑 결혼해줄래"의 진짜 제목은 그냥 "결혼해줄래"이고, "누난 내 여자니까"의 진짜 제목은 "내 여자라니까". "~니까"가 아니라 "~라니까"이므로 이상하게 검색이 안 되면 잘 살펴보자. 간혹 이승기 관련 개그 코드로도 활용되기도 한다. 이승기의 누님(+아줌마)팬 층이 두텁다는 점과 누님(+아줌마)들이 종종 말실수를 한다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 시너지가 나서 자연스럽기도 하다.


  • 2020년 7월에 방송된 집사부일체에서 선보인 금지된 사랑 무대가 유튜브에서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오랜만에 보여준 락발라더로서의 모습이 특히 남자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는 듯하다. 다른 방송사에서도 이승기의 옛날 무대 영상을 업로드하는 등, 가수로서의 이승기가 재조명받고 있다. 더불어 사랑했지만 #, I Believe # 등 집사부일체에서 불러서 이미 화제가 된 노래도 유튜브 조회수가 빠른 속도로 올라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성원에 힘입어, 2020년 말에 본업으로 복귀한 이승기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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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만 음색은 스승과 많이 다른 편. 이선희는 본인 스스로는 컴플렉스라고 할 정도로 맑은 음색을 가졌지만, 이승기는 고음으로 갈수록 허스키한 고유의 음색(락-발라드)이 나타난다.[2]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와서 이선희와 버즈의 가시를 같이 부른 적이 있었는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바이브레이션이 똑같은 모습을 볼 수 있다.[3] 이미지보다는 성대 보호 차원에 가까울 것이다. 이승기가 시원하게 내지르는 락스타일의 곡을 부를 때 보면 성대에 굉장히 무리가 가는 창법을 쓰는데, '금지된 사랑'을 부를 때도 -1키로 완벽하게 완창했음에도 성대를 지나치게 긁어 마지막의 가성 부분은 소화하지 못했다. 김경호는 엄청나게 성대가 튼튼하고 음역대 자체도 무지막지하게 넓었음에도 저런 창법과 무리한 공연 일정까지 더해 불과 서른 살에 성대결절 판정을 받았을 정도인데, 이승기는 군생활 이후 목이 상해 3년간 활동을 쉬었을 정도로 튼튼한 성대를 타고난 편은 아니다. 그러나 창법 변화 이후 3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성대결절도 오지 않았으며, (목소리 변화는 있었지만) 가창력이 크게 하락하는 일은 피할 수 있었다. 수십 년간 철저한 관리로 60이 가까울 때까지 목소리가 변하지 않은 이선희가 성대를 갈아버리는 창법을 쓰는 제자의 스타일을 바꾸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4] 대상 수상자는 아니지만 당시 여성 솔로 가수 중 단연 톱이었고, 대상만 못 탔을 뿐이지 국내에서 손꼽히는 아티스트였다. 또한 전국적으로 인기를 끈 메가히트곡을 여럿 내기도 했다.[5] 일본어 버전의 연애시대는 노래를 생각한 그 자리에서 20분 만에 작사 작곡했다는 전설이.. 있다[6] 물론 인기가요, 뮤직뱅크는 발라드 가수가 노래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환경인 건 맞다. 나가수에선 그리도 잘 나가던 김조한도 그냥 썰렁한 느낌이였다. 허나 이걸 고려하여도 컨디션이 안 좋은 게 느껴졌다.[7] 곡을 많이 쓰는 뮤지션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쯤에 이승기 팬 분들께서 선물로 유실물 보관소라는 제목이라는데 그 CD를 2년 뒤에 또 선물받아 이승기가 직접 "이렇게 보낸 거 보면 좋은 노래가 아닐까?"하고 해서 에피톤 프로젝트 3집 앨범 초판(한정판)을 직접 수소문해서 인연이 닿았다는데 그 연결고리로 5.5집 앨범을 작사 작곡에 도움주셨다고 한다.[8] 11월 29일, 12월 6일, 12월 13일.[9] 12월 7일.[10] 팬들은 또는 '나', 용감한 형제, 에피톤 프로젝트, 윤종신으로 추측했고, 모두 맞아떨어졌다. 타이틀곡 '잘할게'는 용감한 형제, 선공개곡 '뻔한남자'는 윤종신, 수록곡 '소년, 길을 걷다'와 '너의 눈, 너의 손, 너의 입술'은 각각 넬, 에피톤 프로젝트와 작업하였다.[11] 한동안 앨범 공개 후에도 뻔한남자의 선공개 버전과 앨범 수록 버전이 모두 음원 사이트에서 이용 가능했었다. 하지만 음원 순위가 분산된다는 아이렌들의 건의에 따라 현재는 앨범 수록 버전의 다운로드와 스트리밍이 막혀 있으며, 선공개된 디지털 싱글만 다운 및 스밍이 가능하다.[12] 신곡 '잘할게'를 최초 공개했으며, 1집 수록곡 삭제도 라이브했다.[13] 수동적으로 인터뷰에 응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MC 재재와의 좋은 합을 보여 주었다. 재재 왈, 곡을 소개하면서 음악이 흘러나올 때 라이브로 따라 불러 준 게스트는 이승기가 최초였다고. 이 때 SBS 연예대상 후보로도 노미네이트되었기에 여기서 대상 후보 인터뷰까지 같이 했는데, 이 부분은 문명특급 업로드 영상에서는 삐 처리되었다. 편집된 부분은 연예대상 시상식 본방송에서 최초 공개되었다.[14] '잘할게'와 '소년, 길을 걷다' 라이브를 선보였으며, 본인의 곡 '사랑'과 아이유의 곡 '마음을 드려요'는 아이유와 듀엣했다.[15] 2007년도 콘서트 제외.[16] 그래서 1박 2일 시즌1 혹한기 실전 캠프(김종민 소집해제 후 복귀편)에서 강호동이 말하길 "누나들이 복근 보고 펑펑 울었다"는 자뻑 같은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다부진 복근을 잘 보여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