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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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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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윤하영
제2대
이광
제3대
이명구
제4대
정현모
제5대
정낙훈
제6대
김학응
제7대
정인택
제8대
황종률
제9·10대
조대연
제11대
고광도
제12대
최세인
제13대
신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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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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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식
제16대
태종학
제17대
오용운
제18대
정종택
제19대
김종호
제20대
임성재
제21대
강우혁
제22대
노건일
제23대
민태구
제24대
주병덕
제25대
이동호
제26대
이원종
제27대
김덕영
제28대
허태열
제29대
주병덕

제30·31대
이원종
제32대
정우택

제33-35대
이시종
제36대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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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종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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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대한민국 국회의원 (충북 충주시)
제16대
이원성

제17-18대
이시종
[1]

제18-19대
윤진식



파일:영월군 CI.svg 강원도 영월군수
관선

관선

관선
제34대
이길원

제35대
이시종


제36대
김의환




제33-35대 충청북도지사
이시종
李始鍾 | Lee Si-jong


파일:이시종 충청북도 도지사.jpg

출생
1947년 4월 18일 (76세)
충청북도 충주군 주덕면 덕련리
(현 충청북도 충주시 주덕읍 덕련리)
거주지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기자촌
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 호암리버빌아파트
본관
전의 이씨[1]
재임기간
제35대 강원도 영월군수
1981년 7월 6일 ~ 1982년 1월 22일
제22대 충청북도 충주시장
1989년 1월 1일 ~ 1991년 1월 9일
제28-30대 충청북도 충주시장
1995년 7월 1일 ~ 2003년 12월 17일
제33-35대 충청북도지사
2010년 7월 1일 ~ 2022년 6월 30일
제8대 전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
2014년 7월 25일 ~ 2015년 10월 15일
전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 권한대행
2018년 7월 1일 ~ 2018년 8월 13일
서명
파일:이시종 서명.svg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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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적
충청북도 충주군 가금면[1] 하구암리
배우자
김옥신
자녀
슬하 2남 1녀
학력
충주덕신초등학교 (졸업)
충주사범학교병설중학교 (졸업)
청주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 / 학사)
병역
면제 (질병 : 폐결핵)
종교
무종교
소속 정당

의원 선수
2
의원 대수
17, 18
경력
제10회 행정고시 합격
충청북도청 법무관
충청북도청 세정과장
강원도청 기획담당관
제35대 강원도 영월군수 (관선)
대통령비서실 건설교통행정관 (전두환 정부)
충청남도청 기획관리실장
제22대 충청북도 충주시장 (관선)
충청북도청 기획관리실장
부산광역시청 재무국장
국무총리 행정조정실 심의관 (노태우 정부)
내무부 지방행정국장 (노태우 정부)
내무부 지방자치기획단장 (노태우 정부)
제28-30대 충청북도 충주시장 (민선 1·2·3기 / 민주자유당·무소속·한나라당)
열린우리당 행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제17대 국회의원 (충북 충주시 / 열린우리당)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
열린우리당 지방선거제도정책기획단 단장
열린우리당 여성농업인 특별위원회 위원장
열린우리당 지방자치발전특별위원회 위원장
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제18대 국회의원 (충북 충주시 / 통합민주당)
제18대 국회 전반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
민주당 충북도당 위원장
제33-35대 충청북도지사 (민선 5·6·7기 /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충북도립대학교 이사장
제8대 전국시도지사협의회 회장
한국무술총연합회 회장
한국상하수도협회 수질관리과장

1. 개요
2. 생애
2.1. 어린 시절, 학창시절
2.2. 행정관료시절
3. 정치인 생활
3.1. 제28~30대(민선1~3기) 충주시장
3.1.1. 선거
3.1.2. 직무수행
3.2. 제17대~18대 국회의원
3.3. 제33대(민선5기) 충북지사
3.3.1. 선거
3.3.2. 직무수행
3.4. 제34대(민선6기) 충북지사
3.4.1. 선거
3.4.2. 직무수행
3.5. 제35대(민선 7기) 충북지사
3.5.1. 선거
3.5.2. 직무수행
3.6. 도지사 퇴임 후
4. 논란
5. 소속 정당
6. 선거 이력
7. 여담
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정치인. 제33-35대 충청북도지사를 역임하였다.

관선 강원도 영월군수, 충주시장(3선)과[5] 충주시 국회의원(재선)을 지냈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 충청북도지사로 당선되었다. 이후 2014년 지방선거, 2018년 지방선거에서 충북도지사 연임에 성공하면서 도지사 3선에 성공했다. 현재까지 시장, 도지사, 국회의원 선거 등을 합쳐 8전 8승이라는 선거이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충북 유일 민주당계 정당 소속 도지사[6], 민선 3선 도지사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다. 현재 기준 광역자치단체장김진선 전 강원지사, 김관용 전 경북지사와 함께 광역단체장직을 제일 오랫동안 역임한 인물이며,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되어 3선 연임한[7] 유일한 인물이다.


2. 생애[편집]



2.1. 어린 시절, 학창시절[편집]


1947년 충주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지역 명문이었던 청주고등학교[8][9]로 진학했지만 얼마 안 돼 부친이 사망하면서 휴학하였고 논과 금광을 오가며 쉬는 날에도 지게꾼과 참외장수를 하며 틈틈이 학비를 모아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농사일을 하다가 7~8개월의 독학 끝에 1967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에 합격했다.


2.2. 행정관료시절[편집]


1971년 대학교 졸업 후 제10회 행정고시에 수석합격하였다.[10] 그해 10월 충청북도청 세정과장을 시작으로 강원도 기획담당관, 35대 영월군수(관선), 충청남도 기획관리실장, 22대 충주시장(관선), 부산직할시(부산광역시) 재무국장, 충청북도 기획관리실장 등 지방 행정관료의 경력을 쌓았다.

중앙정부에서도 내무부(행정안전부) 행정관리 담당관, 대통령 비서실 건설교통 행정관, 국무총리 행정조정실 심의관, 내무부 지방기획국장, 내무부 지방자치기획단장을 거쳤다.


3. 정치인 생활[편집]



3.1. 제28~30대(민선1~3기) 충주시장[편집]



3.1.1. 선거[편집]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자유당 충주시장 후보로 출마, 42.05%(42,514표)를 획득하여 당선되었다. 당시 중원군과 충주시가 통합하면서 중원군청 앞에 10층짜리 신 청사를 지었다. 당시에도 시 규모에 비하면 너무 크게 짓는 것이 아니냐는 여론이 있었으나, 당시만 해도 나라경제가 잘 나가서 묻혔다.[11]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소속[12] 충주시장 후보로 출마, 62.15%(55,599표)를 획득하여 당선되었다.(재선) 이후 한나라당으로 복귀했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충주시장 후보로 출마, 56.67%(46,811표)를 획득하여 당선되었다.(3선)


3.1.2. 직무수행[편집]


시장직 수행은 무난했다는 평이 많다. 재임 중 충주공용버스터미널 신축 및 연수동 택지개발사업이 이루어졌으며 충주세계무술축제가 첫 선을 보였다. 또한 시외버스터미널 신축과 관련되어 대형할인마트(SSM)를 유치했는데, 다만 이마트가 문화동 구 시청사 부지에 5층짜리로 건물을 짓고 입점하는 걸 허가한 상태에서 경쟁업체 롯데마트가 터미널 건물을 지어주는 대신 2층에 롯데마트가 입점하는 것까지도 허가했다. 인구 20만 명밖에 안 되는 중소도시로서는 이례적으로 2개의 대형할인마트가 경쟁하게 된 셈인데, 이로 인해 인근 중소할인마트들은 설립한 지 몇 달에서 몇 해를 못 가서 도산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외에도 목행대교와 목계대교, 중부내륙고속도로 (충주나들목, 북충주나들목) 등 충주의 대형 토목 건축물이 새롭게 지어졌고, 충주기업도시의 밑바탕이 되는 충주첨단산업단지를 계획하고 추진했다.


3.2. 제17대~18대 국회의원[편집]


2003년 12월 충주시장직을 사퇴하고 2004년 1월 15일 열린우리당에 입당,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충주시 지역구에 출마해 51.6%(46,155표)를 획득하여 당선되었다.

과거 한나라당 계열 정당에서 활동한 전력 때문에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한 뒤 당적을 옮길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본인은 이를 일축하며[13]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 그대로 출마해 48.0%(39,147표)를 획득하여 당선되었다.[14]

열린우리당 입당 당시 기자회견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이 당에는 더 이상 답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열린우리당으로 넘어왔다고 한다.[15]


3.3. 제33대(민선5기) 충북지사[편집]



3.3.1. 선거[편집]


장고 끝에 국회의원 직을 사퇴하고 도전한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소속으로 충청북도 도지사 후보로 출마, 국민참여당 후보로 나온 이재정[16] 후보와 단일화하였다. 선거 결과는 당시 현직 도지사였던 충북 정치 거물 중 한 사람인 정우택(한나라당)을 약 3만 6천여 표차(약 5.3%)로 꺾고 당선[17]되었다. 자신의 고향 충주에서는 61% 가량의 몰표를 받았다.


3.3.2. 직무수행[편집]




3.4. 제34대(민선6기) 충북지사[편집]



3.4.1. 선거[편집]


도지사 재선 의사를 밝히고, 새누리당의 윤진식 후보와 6년 만에 다시 맞붙었다. 선거기간 내내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 내의 접전을 벌였고, 개표 때에도 초박빙의 접전을 벌인 끝에 47.68%(346,152표)를 얻은 윤 후보를 2.12%(14,963표)차이로 제치고 49.8%(361,115표)로 당선. 신기한 점은, 지난 선거에서 61%의 몰표를 준 자신의 고향 충주에서는 패배하였다.[18]

3.4.2. 직무수행[편집]


2016년 9월 3일부터 9월 8일까지 무예마스터십을 개최했고, 2017년에도 세계청소년무예마스터십을 개최한다고 한다. 무예 마스터십은 원래 자신의 고향 충주를 세계 무예의 메카로 만들겠다는포부에서 계획된 것인데, 2014년 지방선거 때 충주에서의 패배 이후 청주서 1회 대회를 개최하고 흥행실패하자 충주로 떠넘겨버렸다. 2017년 10월에는 역시 연례행사격인 제천 한방 엑스포를 개최하였다.


3.5. 제35대(민선 7기) 충북지사[편집]



3.5.1. 선거[편집]


2018년 3월, 더불어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으로는 처음으로 출마 선언을 하였으며 4월엔 청주 4선 출신 오제세 의원과의 경선에서 대승을 거두고 무난히 더불어민주당 충북도지사 후보로 확정되었다. 본선에선 자유한국당 박경국, 바른미래당 신용한 후보를 큰 차이로 누르고 최초로 민선 충북도지사 3선에 성공하였다.


3.5.2. 직무수행[편집]


매 여론조사 마다 긍정평가가 50% 이상이 넘어가는 것을 보아하니, 직무수행을 무난히 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첫 번째 여론조사에선 4위(58%)를 기록하였다.[19]*

두 번째 여론조사에선 8위(53.6%)를 기록하였다.*

세 번째 여론조사에선 9위(52.7%)를 기록하였다.*

네 번째 여론조사에선 4위(56.2%)를 기록하였다.*

다섯 번째 여론조사에서도 4위(54.0%)를 기록하였다. 전월 대비 2.2%가 하락하였다.*

신년맞이 여론조사에서는 3위(59%)를 기록하였다. 대략 7% 정도가 상승하였다. #

2020년 5월 8일, 정부에서 다목적 방사광가속기 부지를 청주시에 짓기로 결정하자, 이시종 지사는 문재인 대통령과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다른 충청권 지자체장 등에게 감사를 표했다. #

3.6. 도지사 퇴임 후[편집]


70대 중반에 접어든 많은 나이를 감안하면 도지사 임기가 끝나는 대로 정계를 은퇴할 거라는 전망이 많았었다.

그러던 와중 지역 정가에서는 2022년 3월 재보궐선거에서 재선거가 치러질 청주시 상당구에의 출마설도 돌고 있다. # 본디 이시종은 충주를 지역기반으로 삼아 정치활동을 해 왔으나, 3선 도지사 역임으로 상당한 인지도를 쌓았고 마침 도청도 상당구에 있는 만큼 출마 명분 자체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한편 충주시 현역 이종배 의원의 도지사 출마설도 돌고 있어 현실화된다면 충주 출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2021년 10월 출입기자 인터뷰에서 내년 6월 30일 임기를 마치면 청주를 떠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도지사 임기가 끝나면 은퇴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이 지사는 26일 출입기자들과 오찬을 하면서 퇴임후 어떻게 하실거냐는 질문에 “청주를 떠나는 것이 서로에게 편하지 않겠느냐”며 “공직생활을 너무 오래해서 후배들에게 양보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답했다.[20]

이시종 지사가 2022년 6월 30일을 마지막으로 충청북도지사로서의 임무를 마치고 만기 퇴임하면서 민주당 민선 광역단체장 최초로 12년을 꽉 채우고 물러나는 진기록을 달성하게 되었다.[21][22]

2022년 6월 14일, 퇴임을 앞두고 '8전 8승 이시종의 비결'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출간했다. #

2023년 7월 29일, 도지사 퇴임 후 1년만에 청주에 찾아가 수해복구 자원봉사를 진행했다. #


4. 논란[편집]


  • 2020년, 문재인 정부 공직자들이 다주택자라는 이유로 논란이 일자, 이시종 지사는 청주 집을 팔고 서울 송파구 집을 남겨놓았다. 이로 인해 청주시민들로부터 "배은망덕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 # 무엇보다 이시종 지사는 현직 충북도지사라서 더욱 논란이 됐다. 이시종 지사가 보유한 집은 송파구 재건축 대장주인 올림픽선수촌 52평[23]인 것으로 알려졌다.

  • 2021년 3월 4일 이시종 지사는 더불어민주당 균형발전특별위원회 충청권역 간담회에서 정부가 발표한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초안에 반영된 충청권 광역철도청주 도심 노선이 빠진 것을 두고 "청주 패싱된 무늬만 충청권광역철도"라며 비판했다. # 이 과정에서 "경기도 요구로 안성~진천~청주공항을 잇는 수도권 내륙선 건설이 검토되고 있다"며 "수도권 내륙선은 경기도에서 주장하는 것으로 충북과 관계없는 철도"라고 발언한 것이 문제가 됐다. 해당 발언에 대해 충북혁신도시 측과 진천군 측은 반발했고, 결국 진천 수도권내륙선 철도 유치 민간위원회 임원 8명은 3월 5일 도청을 항의방문해 도지사 집무실에서 이 지사를 만나 해명과 더불어 수도권내륙선 유치를 위해 적극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이 지사는 이 자리에서 충청권 광역철도의 청주도심 통과 필요성을 앞세워 강조하다보니 시간이 없어 수도권내륙선과 관련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며 사과하고, 수도권내륙선이 꼭 유치되도록 적극 협조할 것을 약속했다. #


5.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민주자유당|
파일:민주자유당 글자.svg
]]

1995
정계 입문

[[신한국당|
파일: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1995 - 1997
당명 변경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1997~2004).svg

1997 - 1998
합당[24]

[[무소속|
무소속
]]

1998
탈당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1997~2004).svg

1998 - 2004
복당

[[무소속|
무소속
]]

2004
탈당[25]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2004 - 2007
입당

[[무소속|
무소속
]]

2007
탈당[26]

[[대통합민주신당|
파일:대통합민주신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7 - 2008
창당

[[통합민주당(2008년)|
파일:통합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08
합당[27]

[[민주당(2008년)|
파일: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08 - 2011
당명 변경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2011 - 2013
합당[28]

[[민주당(2013년)|
파일:민주당(2013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13 - 2014
당명 변경

[[새정치민주연합|
파일:새정치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2014 - 2015
합당[29]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2015 - 현재
당명 변경
정계 은퇴


6.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5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북 충주시장

[[민주자유당|
파일:민주자유당 글자.svg
]]

42,514 (42.05%)
당선 (1위)
초선
1998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무소속|
무소속
]]

55,599 (62.15%)
재선[30]
2002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1997~2004).svg

46,811 (56.67%)
3선[31]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충북 충주

46,155 (51.59%)
초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39,147 (48.04%)
재선[32]
2010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청북도지사

349,913 (51.22%)
초선
201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361,115 (49.75%)
재선
2018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468,750 (61.15%)
3선[33]


보다시피 총선이고 지선이고 단 한 번도 낙선한 적이 없다. 출마한 것까지 다 포함하면, 현역 중에서 8전 전승이고, 심지어 하나는 자유민주연합[34]이 초강세이던 시기에도 무소속 출마를 강행해 당선되었다. 이것이 본인의 최다 득표율 당선이다. 물론 그 당시 2회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참패를 당했기 때문에[35] 무소속[36]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옮기고 나서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에 출마해서 재선을 지냈다. 통합민주당 시절에는 옆동네 前 지사보다도 훨씬 높은 득표율을 보여주었다.


7. 여담[편집]


  • 시장직 3선, 의원직 2선, 도지사직 3선으로 선거 8전 전승을 기록하였다.[37] 선거 승리 횟수로만 따지면 자유한국당유재중 의원과 타이기록이다. 유재중 의원은 1995년부터 2016년까지 3번의 시의원과 2번의 구청장, 3번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모두 당선되었다. 다만 유재중 의원은 한 번 단독출마로 당선된 적이 있어서, 8번 모두 상대방과 대결해서 전승을 거둔 건 이시종 지사가 유일하다. 7연속 당선된 정몽준[38], 이해찬을 뛰어넘었다. 2022년 제8회 지방선거에서는 3선 연임 제한으로 인해 출마가 불가능한데다, 이때 나이가 만 75세의 고령이기에 충북지사 퇴임 후에는 사실상 정계 은퇴의 길로 갈 듯하다. 22대 총선이 열리는 2024년에는 거의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 기름진 음식을 싫어하며 실제로 충북도지사 비서실의 한 비서관의 말로는 다들 이시종 지사와 식사하는 것을 상당히 부담스럽게 생각한다고 하며, 심지어 평소 먹는 것도 그야말로 서민적인지라 끽해봐야 칼국수[39], 된장찌개, 청국장 등 백반 종류를 먹고, 비싼 음식해봐야 쭈꾸미가 한계라고 한다. 심지어 청주에서 비싸기로 소문난 모 중국집 코스요리(1인 30,000원대)로 회식을 갔을 때 버럭 짜증을 내면서 다시는 이런데 오지 말라는 불호령을 내렸다고 한다.

  • 심지어 술, 담배까지 일절 안 한다. 그래서 이시종 지사가 회식에 참석할 때마다 매우 건전한 분위기라서 일부 참모들이 부담스러워 하며, 그래서 술 좀 마신다 하는 주당 참모들끼리 회식하다가 갑자기 호출되면 술냄새 때문에 곤욕을 치른다고 한다.

  • 위와 같이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채소 위주의 소박한 식사를 해왔던데다 술 & 담배를 일절 하지 않는 등 자기 관리에 철저한 덕인지 2023년 만 76세의 고령임에도 상당한 동안이다. 거기에 피부도 70대 남성답지 않게 깨끗하다.

  • 충북지사에 첫 당선되었을 때가 벌써 만 63세였고 현재는 칠순을 넘겼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명절 등이 아닌 이상 1주일 내내 매일 출근해서 아침 8시 ~ 저녁 10시까지 어떤 일이든 하는게 기본이라고 한다. 즉 워커홀릭인 것이다. 심지어 하루라도 출근을 안 하면 죄책감이 든다는 농담도 했다고 한다. 실제로 2018년 지방선거 사무소 개소식 때 참가한 민주당 의원들이 덕담한 바에 따르면, 이시종이 시도때도 없이 정부와 국회를 찾아와서 예산 등을 협의하느라 아주 괴로웠다고 한다. 관련 기사


  • SBS 선거방송 2018 국민의 선택을 찾아보면 다른 17개 광역단체장 후보자들은 그래픽 화면에 쓸 포즈를 다 협조했지만 유일하게 응하지 않아 프로필 사진으로 대체되었다. 영상(1분 45초경)

  • 충북도립대학교 이사장도 겸하고 있기에 해당 학교 학생들은 호칭을 '이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으며, 학사 행사에 방문하는 경우가 많아 학생들에게도 어느 정도 우호적인 입지를 가지고 있다.

  • 윤진식하고는 청주고 1년 후배고 상당히 절친한 사이이다. 윤진식하고 대결했을 때 당선확실이 뜨자 윤진식은 패배 인정 연설을 하고, 곧바로 이시종의 캠프에 방문해 축하하기도 하는 등, 훈훈한 감정을 연출해냈다.

8. 둘러보기[편집]





















[1] 전서공파 관찰사공파 30세손 '鐘'자 항렬.[2] 2012년 4월 23일까지 운영하는 계정.[3]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청북도지사 후보 시절에 운영했던 유튜브 채널. 현재는 업로드가 없다.[4] 2018년 5월 18일까지 운영하는 계정.[5] 관선시절까지 포함하면 4선.[6] 다만 도지사로 재임하기 전에는 한나라당 소속이었기 때문에 역대 모든 민선 충북지사는 보수정당을 한번 이상 거쳤다. 또한 이원종 전 지사를 제외하고는 역대 민선 충북지사 전원 모두 민주당계 정당을 1번 이상 거친적이 있다.[7] 오세훈 서울시장도 5회 지선에서 당선되었으나 중도 사퇴했다.[8] 산업자원부 장관, 국회의원을 역임한 윤진식과 동문으로 절친했다.[9] 윤진식(1946년생) 전 장관이 이시종(1947년생)보다 한 살이 더 많음에도 이 의원이 청주고 38회로, 윤 전 장관이 39회로 입학했다. 두 사람 모두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녔다면 선·후배로 남았겠지만 이 의원이 입학과 동시에 휴학을 해서 1,2학년을 같이 다니는 사실상 동기생이 됐고. 윤 전 장관이 3학년 때 휴학을 하게 되면서 결국 이 의원은 39회, 윤 전 장관은 40회로 졸업장을 받게 된다. 하지만 입학순과 나이에서 ‘장군·멍군’을 주고받은 두 사람은 각별한 친구 사이가 됐고 모두 39회에서 동창회 활동을 하고 있다.[10] 행정고시 10회 동기로는 강길부 전 국회의원과 김관용경상북도지사가 있다.[11] 청사가 완공되고 곧 외환위기가 찾아온 것을 감안하면 타이밍이 잘 맞았다.[12] 당시 한나라당의 이미지가 좋지 않았던 것과 충청권에서 민주당과 자민련의 연합 공천으로 한나라당 당적으로 당선이 어려워 탈당.[13] 한나라당 계열 정당에서 활동한 인사들 중에는 성향이 진보에 가깝거나 민주당 계열과 가까운 중도/보수 성향인 경우도 많았다. 이들의 공통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단점을 문제 삼거나 아예 3김 시대 청산을 내세웠다는 것이며, 김대중의 퇴임 이후 민주당계 정당으로 이동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이시종은 후술하겠지만, 한나라당의 불공정한 공천에 항의하면서 탈당한 것. 현재의 진영이 특히 그러한 편이다.[14] 같은 한나라당 탈당파이자 행정고시 10회 동기인 강길부 의원은 2007년 대선 전에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하여 한나라당으로 복당했으나 이듬해 18대 총선에서 공천을 받지 못하자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 후 당선되어 한나라당에 복당하였다.[15] 결과적으로 신의한수가 되었다. 열린우리당은 신생정당이었고 당시만 해도 민주당계 정당에게 충청은 16대 총선을 거치며 이제 막 개척을 시작한 곳이었는데 3선 충주시장이 넘어오는건 당입장에서도 땡큐이고 이시종도 경쟁자인 이원성이 와병생활을 하여 4년 내내 한 것이 없어 공천탈락이 유력했기에 무혈입성할 수 있으니 땡큐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시종 입당이후 민주당계 충청 공략은 18대 총선에서도 살아남는 결과를 보여줬고 5회 지방선거에서 놀랄만한 성과를 얻었다.[16] 통일부장관을 역임하였으며, 4년 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기도 교육감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17] 정우택이 당시 호화관사 및 취임식 논란 등으로 평이 좋지 못했다. 득표율과 득표수는 각각 51.22%, 349,913표.[18] 상대 후보였던 윤진식이 당시 현직 충주시 국회의원이었다는 점이 작용했다.[19] 이 사이트에선 이시종 충남지사라고 오타가 나왔다.[20] 실제로 퇴임하자마자 이사를 갔다고 한다.[21] 이전에 3선을 모두 채운 인물로는 이의근, 김관용 전 경북지사, 김진선 전 강원지사가 있다. 자유민주연합 당적으로 3선을 역임한 심 전 지사를 제외하면 모두 주류 보수정당(국민의힘과 전신 정당) 소속 인물이다.[22] 게다가 이전의 충주시장과 충주시 국회의원은 각각 총선 출마와 도지사선거 출마를 위해 중도 사퇴했는데, 이시종 본인의 입장에서도 충북지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임기를 다 채우고 퇴임한 선출직이 되었다.[23] 2021.6.4 기준 실거래가 31억[24] 통합민주당과 신설 합당.[25] 열린우리당 합류를 위한 탈당.[26]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27] 민주당과 신설 합당.[28]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29]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30] 당선 후 한나라당 복당.[31] 2003.12.17 사퇴 (총선 출마), 한나라당 탈당. 2004.01 열린우리당 입당.[32] 2010.4.12 사퇴. (충북지사 출마.)[33] 현재 기준, 최다 연승[34] 당시 충청도에서는 연립여당이었던 자민련이 초강세였다.[35] 특히 충청남도에서는 심대평 후보가 84%를 넘기는 어마어마한 득표율을 보여주었다.[36]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 민선 1기 당선자들이 대부분 자유민주연합으로 당적을 옮겨서 당선 되었다.[37] 참고로 기초단체장, 광역단체장 모두 3선을 기록한 것은 김관용경상북도지사(민선 1~3기 경북 구미시장, 민선 4~6기 경상북도지사)가 최초이며, 1998년 제2회 지방선거는 단독출마였다.[38]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출마하였으나 현직 시장이었던 박원순에게 낙선하였다.[39] 실제로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당시 MBC 선택 2014 개표방송에서 먹방을 소재로 한 개표 그래픽이 만들어졌을 당시 후보들이 실제로 먹방을 찍었는데 이시종 당시 후보가 선택한 메뉴가 칼국수였다. 특히 고추장 풀어서 먹으면 더 맛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