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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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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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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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sia_probaseball_champion_ship_2017.png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은메달
2017

파일: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로고.svg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2018

파일:WBSC 프리미어 12 엠블럼.svg
2019 프리미어 12
은메달

2019



파일:KBO 로고(세로형, 2013~2021).svg KBO 포스트시즌
2019년 플레이오프 MVP


파일:KBO 로고(세로형/화이트).svg KBO 포스트시즌
2022년 플레이오프 MVP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2021,22 KBO 리그 타율 1위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2022 KBO 리그 최다안타 1위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2022 KBO 리그 타점 1위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2022 KBO 리그 출루율 1위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2022 KBO 리그 장타율 1위





파일:PLAYERS_CHOICE_AWARDS_LOGO_1.png 2017 플레이어스 초이스 어워드 올해의 신인상(넥센)


파일:일구상 로고.jpg 2017 일구상 신인상

파일:일구상 로고.jpg 2019, 2021, 2022 일구상 최고 타자상


파일: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jpg 2021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최고타자상


파일:리얼글러브 어워드 로고.png 2022 마구마구 리얼글러브 어워드 올해의 선수상

파일:리얼글러브 어워드 로고.png 2022 마구마구 리얼글러브 어워드 넷마블 리얼스타



보유 기록
데뷔 시즌 최다 안타
179개[1]
데뷔 시즌 최다 득점
111득점[2]
단일 시즌 최다 2루타
49개[3][4]
최연소-최소 경기 통산 1,000안타
23세 11개월 8일 / 747경기[5]
통산 최고 타율
0.340


이정후의 주요 설문 조사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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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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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41번
정회찬
(2014~2016)

이정후
(2017)


안우진
(2018~)
넥센 / 키움 히어로즈 등번호 51번
양훈
(2017)

이정후
(2018~2023)


임시결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번호 51번
루이스 곤잘레스
(2022)

이정후
(2024~)


현역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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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No.51
이정후
李政厚[1] | Jung-Hoo Lee

출생
1998년 8월 20일 (25세)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2][3]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광주서석초[4] - 휘문중[5] - 휘문고
신체
185㎝ | 86㎏ | A형 | 오른손잡이[6]
포지션
외야수(중견수)[7]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2017년 1차 지명 (넥센)
소속팀
넥센-키움 히어로즈 (2017~2023)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2024~)
병역
예술체육요원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야구 부문)
계약
2024 - 2029 / $113,000,000[opt-out]
연봉
2024 / $18,333,333[8]
국가대표
[ 펼치기 / 접기 ]

등장곡
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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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Velvet - 《빨간 맛》 (2017)
메간 트레이너 - 《Me too》 (2018)
빌리지 피플 - 《Macho Man》 (2022)
YG FAMILY - 《멋쟁이 신사》 (2022~2023)[1]

응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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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키움 히어로즈 시절
크라잉 넛 - 《취생몽사[가사]

소속사
리코스포츠에이전시[9] | 보라스 코퍼레이션[10]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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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부모
아버지 이종범(1970년생)
어머니 정연희(1971년생)[1]
형제자매
여동생 이가현(1999년 12월 21일생)[2]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매제
고우석[3]
친척
고종사촌형 윤형준(1994년생)[4]
조카
(2023년 11월 22일생)[5]
조부모
할아버지 이계화(1928년생)[6]
할머니 김귀남(1929년생)
반려동물
반려견 까오[7], 루아[8]
본관
함평 이씨 (咸平 李氏) 기성군파(箕城君派) 29세손[9]
종교
가톨릭 (세례명: 아우구스티노)[10]
후원사
아디다스[11]레드불[12]
MBTI
ISTJ[13]

파일:MLB 로고.svg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반려견 까오

1. 개요
4. 평가
5. 기록
7. 별명
8. 논란
9.1. 아버지 이종범과 관련된 이야기
10. 응원가
11. 이정후에 대한 언사
12. 관련 문서
13.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 국적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소속 우투좌타 외야수.

프로 입단 전부터 이종범의 아들로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고교 시절 주포지션은 유격수였으나 타격에서의 잠재력을 인정 받아 프로 입단 후 출전 기회 보장을 위해 당시 공석이었던 중견수로 전향하였고, 2017년에 10년 만의 순수 신인왕이자 순수 고졸 신인왕이 되었다. 정교한 타격과 선구안, 배트 컨트롤로 안타를 생산해 내는 컨택 능력이 특징으로 5년 연속 골든글러브와 2년 연속 타격왕, 2022년 MVP 수상을 비롯한 다수의 수상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고척 시대 히어로즈 구단을 대표하는 선수이자 앞으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을 이끌 선수로 평가받고 있으며,[11] 2023 시즌 키움 히어로즈 주장으로 선임돼 팀을 대표했다.

2023 시즌이 끝난 뒤 KBO 리그에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진출한 11명의 선수들 중[12] 6년 1억 1,300만 달러의 역대 최고 계약을 맺으며 2024년부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뛰게 되었다.


2. 선수 경력[편집]







3. 플레이 스타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정후/플레이 스타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평가[편집]


현 시점 대한민국 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로, 미국에 마이크 트라웃이, 일본에 오타니 쇼헤이가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이정후가 있다는 말을 할 정도로 사실상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며 KBO 리그의 스즈키 이치로라는 고평가를 받는다.[13] 데뷔 이후 매년 급격한 기량 발전을 통하여[14] 2020년대 최고의 야구선수로 거듭나게 되었다. 리그 역사적으로는 '장효조-양준혁-장성호-김현수 등의 뒤를 잇는 KBO 교타자 라인의 일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7년 드래프트 1차 지명으로 넥센에 지명되어 데뷔 시즌부터 두각을 나타낸 이후 슬럼프나 부침을 겪은 시즌이 단 한번도 없었을 뿐더러 매년 급격히 성장하는 모습을 5년간 꾸준히 보여주었고, 최근에는 타고난 실력에 노력을 더해 그동안 부족했던 장타력까지 기어이 만개하면서 KBO 리그 역사에 유례 없는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15] 스포츠계에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같은 종목에서 활약하는 2세 선수들이 많긴 하나, 선후대가 모두 슈퍼스타가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이로 인해 은퇴할 때까지도 'xx의 아들'에 그치는 2세들이 굉장히 많은데, 이정후는 2022시즌 타격 5관왕과 MVP 등으로 일찌감치 '이종범의 아들' 꼬리표를 떼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또한 이승엽-양준혁-이대호-김태균-류현진 등이 붙박이로 고정되어 있던 수많은 아마추어 선수들의 롤모델로 삼고 싶은 선배 선수로 가장 손꼽히고 있을 정도로 향후 10년 이상 한국 야구계를 이끌 차세대 리더감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정도. 실제로 2022시즌에 비록 팀은 최종 2위로 아쉬움 속에 마무리했지만 많지 않은 나이임에도 동료들의 실수를 다독이고 투지를 복돋으며 전체적으로 젊은 선수단 속에서 키움 히어로즈의 구심점으로 통하며 시즌 내내 선수단의 단합된 모습을 이끄는 모습을 보여주며 여러 야구인, 팬들로부터 박수 갈채를 받았다.[16]

특히나 이정후가 고평가받는 점은 놀라운 성장세인데, 데뷔 이후로 본인이 가지고 있던 약점을 정확히 보완하여 매년 더 뛰어난 시즌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5년 가까이 빠짐없이 보여줘왔다. 그래서 빅리그 도전을 한 해 앞둔 2022년 기준으로 그동안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진출한 역대 한국 타자들 가장 정교한 타격을 할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정후의 롤모델인 스즈키 이치로나 2000년대 최고의 타자로 불린 알버트 푸홀스 조차 오랜 기간 꾸준한 성적을 유지했지[17] 이 정도로 급격한 성적 상승을 이루어내지 않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정후의 성장세는 괴물같은 수준. 특히나 야구계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요소 중 하나가 '성장세'이므로, 현 시점 '성장세' 면에서 리그 역대급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이정후는 아직 전성기 나이가 도래하지 않았으므로 전성기에 역대급 퍼포먼스를 보여줄 것으로 전문가들에게 기대받고 있다.

그리고 이 '성장세'가 이정후의 미래에도 큰 영향력을 끼칠 전망이다. 최근 NPB에서 빼어난 타격 실력으로 주목 받아 MLB에 진출한 일본 선수들의 실패 사례가 이어지면서, NPB보다 레벨이 떨어지는 KBO 리그에서 뛰는 이정후가 MLB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마냥 긍정할 수가 없게 됐다. 하위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MLB에 도전하는 외야수라는 포지션은 아키야마 쇼고스즈키 세이야와 공유하고 있는데 두 선수 모두 KBO보다 수준이 높은 NPB에서 이정후보다 좋은 타격성적을 기록하고 미국으로 건너갔으나 아키야마는 처참하게 실패하고 일본으로 돌아갔으며 스즈키는 시즌 중반 슬럼프를 맞아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이러한 실패 탓에 요시다 마사타카가 5년 9000만 달러를 받고 보스턴 레드삭스와 계약했는데 오버페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18] 즉, 냉정히 말하자면 이정후는 KBO리그 원탑 타자가 맞으나 KBO리그보다 확실히 높은 수준의 리그인 NPB에서 이정후 이상의 타격을 보여주고 MLB로 건너간 일본인 외야수들의 선례로 봤을 때는 2022 시즌 보여준 이정후의 기량만으로는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세이버매트릭스적 분석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실제 KBO에서 MLB로 진출한 선수들을 가지고 통계를 내 보면 김하성, 에릭 테임즈, 강정호 모두 MLB 진출 직전 시즌과 비교해봤을 때 OPS가 0.3 이상 폭락했고, 김현수 역시 바빕신의 가호를 받았던 2016 시즌이 지나자마자 끔찍한 모습을 보여줬으며 빠른 공 대처가 아예 되지 않았던 박병호는 거의 0.5에 가깝게 OPS가 떨어졌다.[19] 빠른 공에 적응해서 MLB에서 1~2년 정도라도 반짝 성과를 거뒀던 테임즈나 강정호가 MLB 진출 전 KBO에서 보여줬던 퍼포먼스는 2022 시즌 이정후의 성적보다도 월등했기에,[20] 이정후가 MLB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2023 시즌에 더욱 성장하여 2022 시즌 이상의 성적을 기록해서 MLB 팀들의 관심을 끌어야 할 것이며, MLB에 진출하고 나서도 KBO에서 그랬던 것처럼 엄청난 성장세를 지속해서 보여줘야 할 것이다. 물론 전 팀 동료 김하성이 놀라운 성장을 통해 상위급 선수로 MLB에서 활약하고 있기도 하고 강정호나 테임즈 역시 메이저에서 성공했으며[21] 역시 이정후 또한 충분히 가능성이 넘친다고 볼 수 있다.


5. 기록[편집]



5.1. 개인 수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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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통산 기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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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대외 활동[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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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별명[편집]





  • 바람의 손자
아버지 이종범의 별명이 '바람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이정후의 별명은 바람의 손자로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세상의 무수한 야구 선수들 중 야구공 잡기 전부터 별명이 결정되어 있던 유일한 선수일 것이다. 물론 사촌형 바람의 외손자 윤형준과, 이름이 비슷할 뿐 인연도 없는데 별명이 생긴 바람의 손잔 이정훈을 제외하고 말이다.[22]
메이저 리그 진출을 전후해 현지에서는 Grandson of the Wind로 번역해 불리기도 한다.

  • 반투명갑
국내 야구 갤러리 등지에서는 반투명갑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이종범을 투명드립과 엮어 '투명갑'이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투명한 아버지와 투명하지 않은 어머니 사이의 자식이므로 반투명이라는 논리이다. 심지어 디시위키의 이정후 항목은 깨알같이 반투명 처리되어 있다.

  • 고척 아이돌
야구만화 주인공 같은 야구 실력으로 야구도 잘하는데 얼굴까지 잘생겨서 '고척 아이돌'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기자들도 이를 잘 알고 있어 이정후가 활약한 경기때마다 고척 아이돌이란 기사 타이틀을 자주 사용한다.

  • 킹짱후
본인은 이 별명에 대해 오글거려서 '킹짱후'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매우 부끄럽다고 한다.

  • 불꽃 남자
2019 시즌에 ''불꽃 남자'라는 별명이 추가되었는데 본인은 바람의 손자가 더 좋다고 한다.

리그 최강타자인 이정후를 상대하고 난 이후 투수들이 비교적 편안한 상태로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이유로 생긴 별명이다.

  • 레게후
2022 KBO 올스타전을 앞두고 전반기 내내 머리를 길러 레게머리를 선보였는데, 큰 화제를 불러 모으면서 붙여진 별명이다.[23]

파일:0000882190_001_20220715224501471.jpg

파일:0000882193_001_20220715225301477.jpg

  • Jongbeom Jr.
2022 KBO 올스타전에서 Jongbeom Jr.로 마킹을 하고 나와서 나온 별명이다. 유래는 당연히 부자 야구선수 + 레게머리로 유명한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2022 시즌에는 빨랫줄처럼 날아간 택배 홈송구 장면과 생애 첫 만루홈런을 기록한 KIA 타이거즈전에서 홈런볼을 KIA 홈팬들 틈에 홀로 있던 키움 팬에게 보내 화제를 모았는데, 2022년 6월 16일에 그 장면을 뛰어넘는 KBO 역사상 다시 보기 힘들 엄청난 홈런 장면이 연출됐다. 두산 베어스전에서 “이정후, 여기로 공 날려줘”라고 팻말을 흔드는 팬이 중계에 잡힌 뒤 곧바로 투런 홈런을 때려내며 홈런볼을 팬에게 '로켓 배송'하는 만화 같은 명장면인데, 이 홈런으로 홈런 택배맨(후팡맨)이라는 새 별명을 얻게 됐다. 이 후팡맨 효과로 고척 스카이돔 뿐만 아니라 각 야구장 외야 관중석에는 스케치북 응원이 엄청 늘어났다. 본인 또한 구단 유튜브를 통해 이 별명이 마음에 든다고 밝혔다.




8. 논란[편집]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c6dd1aede4f377d22b5165d3d1c4241a.jpg}}} ||
  • 아버지 이종범은퇴했을 때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아빠 은퇴시킨 기아 X같네 투의 글을 쓴 적이 있다. 물론 당시에는 중학교 2학년의 평범한 학생이었던 데다가 KIA 타이거즈 팬들조차 의구심을 가졌던 찜찜한 은퇴였다보니 KIA 팬들의 여론은 그렇게 나쁘진 않은 편이다. 논란이 일어나자 아빠 몫까지 열심히 하자는 내용으로 글을 수정하였다. 지금은 어린 마음에 감정적인 글을 쓴 걸 후회한다고. 프로 진출 이후에는 "평생 기아 싫어할 것", 일명 평기싫이라는 단어가 재발굴되었고, 이정후가 기나쌩 클럽이 되자 아버지를 은퇴시킨 기아에 대한 복수라며 유머 소재로 사용하고 있다. 2022 시즌에는 이정후가 기아 상대로 안타를 치지 못할 확률을 용서율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 2022년 8월 25일 경기가 끝난 후 무슨 이유에선지 인스타 스토리에 르브론 제임스의 역대급 망언인 리얼월드 발언의 캡쳐를 '릅신'이란 코멘트와 함께 게시해 에펨코리아와 엠엘비파크 등에서 논란이 되었다. 다만 본인도 실수임을 알았는지 바로 내리고 본인에게 패드립을 날린 토쟁이 DM을 박제하였다. # 리얼 월드 발언을 했던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르브론 제임스도 이 발언 이후 엄청난 비판에 시달리며 사과까지 하게 만든 사건으로 볼 때 이정후가 분명 몇몇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리얼월드에 비추어서 이야기하고 싶어했던 것은 분명하나 르브론 제임스가 이야기했던 리얼 월드의 내용을 해석해 보면 절대로 리얼 월드를 언급하며 이야기했으면 안된다는 게 각종 SNS 여론이다.


9.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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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아버지 이종범과 관련된 이야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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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은 프로로서, 사회인으로서 기본적인 예의나 자기 관리에 대해서만 조언할 뿐 야구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안 한다고 한다. # 프로와서는 물론 아마추어 시절 때도 단 한번도 안했다고 한다. 사실 가만히 있어도 주변에서 한 마디씩 던지는 위치인지라 엇나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저렇게 해주는 게 맞긴 한데, 이종범같은 레전드급 대선수가 그러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서 이 기사를 읽은 팬들은 모두 현명하다며 감탄했다.

유일하게 야구에 대해서 조언한 것이라고는 타석 만큼은 왼쪽에 서라는 것이었는데, 아버지 이종범이 왼손잡이었음에도 우투좌타[24]의 개념이 없었기에 우투우타가 된 아쉬움을 담아 우투좌타[25]로 정착시키게 했다고 한다.

프로 선수로서 목표는 아버지 이종범의 통산 기록을 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정후의 팬들은 "그거 진짜 힘들텐데...?" 로 대동단결하는 반응이다. 이종범은 당대 KBO 최강의 1번 타자였던 만큼, 이종범을 넘으려면 15년은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줘야 한다. 이정후가 아버지 이종범을 넘으려면 KBO 기록만으로도 통산 1797안타 194홈런 510도루 1100득점 730타점 716사사구[26]를 넘어서는 성적을 거두어야 한다. 매년 120안타 15홈런 80득점 50타점 50사사구 35도루를 15년 연속으로 기록하면 아버지 이종범을 넘을 수 있다. 그마저도 일본 리그에 갔다 온 공백기를 제외한 견적이다. 이종범의 위대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 기록 중에서 한두 종류만 골라서 집중적으로 성적을 쌓는다고 가정해도 쉽지 않은 기록이지만, 가장 가능성이 점쳐지는 항목이라면 역시 안타와 득점이다. 교타자라는 스타일과 현 페이스를 유지해 전성기를 무탈히 마친다면 2,000 안타 및 1,500 득점을 넘길 것으로 예상한다. 타점과 사사구는 비슷하거나 약간 넘을 것으로 보이며, 홈런과 도루는 아직 멀어보인다.[27]

단일 시즌 야수 WAR 1, 2위를 다투는 이종범 최전성기 MVP 시즌인 94년 기록은 4할에 육박하는 타율(0.393, 시즌 1위)에 196안타(1위)[28] 출루율(0.452, 시즌 1위), 19홈런(시즌 4위), 113득점(시즌 1위), 84도루(시즌 1위, KBO 리그 단일 시즌 최다 기록)이며, 그에 버금 가는 97년에는 157안타(시즌 2위) 30홈런(2위) -30도루(64도루, 시즌 1위), 112득점(시즌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유격수로 출전하며 1번 타자로 기록한 것이라 더욱 돋보이는 기록이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생긴 깊은 그늘에 빠지지 않도록 키움 히어로즈에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가 가장 잘했던 시즌인 94년의 절반만 한다고 쳐도 10홈런에 42도루를 해야 한다. 참고로 2016년 손아섭이 16홈런 42도루다. 반만 했는데 KBO 골든글러브를 다툴 수준이다.


파일:엠스플_이종범&이정후.jpg


2012년에 아버지 은퇴식 때 아버지가 시구, 본인은 시타를 했는데 아버지가 공을 제대로 안 던져서 스윙을 제대로 못 했었다며 아버지를 원망하는 말을 하기도 했다.

2017년 6월 2일자 야덕일지에 의하면, 데뷔 후 지금까지의 페이스가 계속 유지된다는 전제 하에 아버지의 기록을 넘기까지 안타는 10.5년, 홈런은 32.3년, 도루는 67.3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미 KBO 신인상 확정 급의 페이스인데도 이렇다. 야덕일지 KBO 역사를 바꿀 기록의 사나이들

하지만 데뷔 7경기만에 아버지와 나란히 선 기록도 있다. 바로 잠실 야구장에서 한 경기 2홈런 치기인데, 이종범은 일본에 갔다 온 이후 2004년 8월 28일 LG 트윈스를 상대로 잠실구장에서 2홈런을 친 것이 유일한 기록이다. 이정후는 이걸 두산 베어스 상대로 해냈다. 첫 홈런은 유희관에게, 두 번째는 김성배한테서 뽑아냈는데, 이 경기에서 무려 5타점을 쓸어담았다.[29]

아버지, 저는 지금 고척 스카이돔 라커룸에서 선수단 미팅 준비를 하고 있어요. 아버지도 선수셨을 때 늘 이런 준비를 하셨겠죠. 행동 하나 하나에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 제가 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서는 야구 하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라고 반대하셨죠. 3학년 때까지는 기다려 보라고 시간을 주셨잖아요.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하면 할수록 어렵고 힘든 게 야구라고, 잘 생각해 보라고도 하셨고요.

그래도 전 야구가 너무 좋았어요. 아버지가 야구 하시는 모습을 보면 정말 멋있었거든요. 사촌형(윤형준) 야구하는 데 따라가서 같이 하면 진짜 재미 있었어요. 골프도 해 보고 축구도 해 봤지만 야구만큼 신나지는 않았어요. 지금도 야구가 왜 좋은지, 왜 재미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보고 자란 게 야구니까 그렇지 않을까도 싶네요. 야구장에 처음 갔던 생각은 잘 나지 않지만요.

아버지께 “정말 잘할 자신이 있다”고 다짐하고 야구를 시작했지만 정작 아버지는 “왼손타자를 하라”(이정후는 원래 오른손잡이다)고만 조언해 주셨잖아요. 다른 말씀은 전혀 안 해주셨고, 기술 같은 것도 가르쳐 주시지 않으셨죠. 감독님, 코치님 지도대로 하라고. 그리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고만 하셨죠. 그래도 전 하나도 안 섭섭했어요. 아버지는 그냥 우리 아버지니까…. 나름 많이 참으셨던 것도 알아요. 하긴 제가 귀담아 듣지 않았던 것도 있는 것 같네요.

아버지는 제가 경기에서 못 하거나 잘 하거나 집에 돌아오면 항상 “잘했다”고 칭찬과 격려만 해주셨잖아요. 생각해보니 야구 시작하고 지금껏 아버지께 야구로 혼난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알고 계셨던 거죠. 경험 상 경기를 망치면 가장 속상한 게 선수 본인 자신이라는 것을. 승부 근성은 아버지보다 더 강하다고 늘 주변에 말씀하셨으니까 제 마음을 헤아리셨던 거겠죠.

“잠 많이 자고 밥 많이 먹어라.” 프로에 입단한 뒤 아버지가 유일하게 강조하신 말씀이죠. 144경기를 치르려면 가장 중요한 게 체력 관리, 컨디션 관리라고. 그래서 경기에 져서 분하고 화나고 그래도 잠은 꼭 많이 자려고 해요. 몸무게도 4년 내 90㎏(지금 78~79㎏)까지 늘리려고요. 그래야 타구에 힘이 실릴 테니까요. 지난 겨울에 그랬던 것처럼 비시즌에 하루 6끼 먹어야죠. 그러니까 아버지도 고기 많이 사주셔야 해요.

어릴 적에 아버지가 가끔씩 하셨던 말씀이 기억 나요. 아버지는 집이 가난해서 '헝그리 정신'으로 야구를 했다고. 사실 그때는 어려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몰랐어요. 지금은 그게 가족을 위해 선택한 아버지의 길이었다는 것을 잘 알지만요.

한 달간 1군 경기를 뛰어보니 프로라는 세계가 얼마나 힘든 곳인지 알게 됐어요. 처음 야구 선수가 된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걱정했던 것이 무엇인지도 잘 알 것 같고요. 그런데 아세요? 이제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알 것 같다는 것. 아버지가 프로 유니폼을 입으면서, 그리고 그라운드로 뛰어 나가면서 어떤 마음이었을지 감이 와요.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것은 모두 부모님 덕분입니다. “아버지처럼만 하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지만 사실 아버지의 야구 명성은 생각하지 않으려고요. '바람의 손자'가 아닌 '야구 선수 이정후'로 한 번 당당히 나아가 보려고 합니다. 일희일비도 하지 않으려고요. 그게 아버지를 닮아 같은 길을 가려는 제 나름의 방식입니다. 어머니께는 문자로 가끔 말씀드린 것 같은데 아버지께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것 같네요. 아버지…사랑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아들 정후 드림

2017 시즌 중반 '야구 선수 이정후'가 '아버지 이종범'에게 띄우는 편지. 한겨레 (인터뷰)[30]


2017년 11월 도쿄에서 열린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에서 사상 최초로 부자 동반 태극 유니폼을 입었다. 이정후는 “아버지와 함께 태극마크를 달고 싶다는 어릴 적 꿈이 일찍 실현됐다. 정작 야구장 안에서만 아버지를 봤다. 도쿄 숙소 내 방에 단 한 번도 안 오셨고 카톡으로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며 기뻐했고, “이번에 한 번 이뤘다. 앞으로 자주 했으면 좋겠다. 이번에도 하면서 1루에서 아버지가 내 장비를 받아주실 때 신기했다. 사인을 잘 보라고 하셨다. 우리가 뒤에 있다고 하셨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1 #2






이종범이 수상하지 못한 KBO 신인상을 고졸 프로 1년차 신분으로 달성했다.[31][32] 특히 2017 카스포인트 어워드 신인상을 수상하면 아빠인 이종범이 춤을 추고 이정후 본인이 남진둥지를 부른다는 공약을 했는데, 실제로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바로 위의 영상처럼 공약을 이행했다. 현장에 있는 모든 해설위원들, 심지어는 양준혁까지 포함해서 빵 터졌다. 덤으로 이 동영상이 당시 인기동영상 중 하나였다.

2017년 12월에 열린 희망더하기 자선야구대회에 '양신팀' 소속으로 출전해서 아버지의 팀인 '종범신팀'과 맞붙었다. 이종범이 직접 타석으로, 이정후가 투수로 나오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그러다 이정후의 투구가 이종범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빈볼이 나와 버렸다. 이때 이종범의 표정이 볼만하다.

살짝 찡그릴때의 표정이 아버지와 많이 닮았다.

아버지의 친정 팀이었던 KIA 타이거즈전에서 꽤 높은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33] 본인은 기아에 악감정이 없다는데 워낙 잘 치다 보니 사실 아직 악감정 있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농담조로 나온다. 특히 이정후가 아버지의 은퇴식 당시 싸이월드에 올렸던 글이 있다 보니 이와 엮여서 나오는 편.

2018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는 7회초 무사 1루에서 최형우의 타구를 기가 막히게 잡아내 팀의 준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시켰다. 경기 후 아버지는 베이스볼 투나잇에 출연해서 분석했다.

아버지 이종범과 연관 있는 팀을 상대로는 유독 강한 모습을 보여 의문의 효자 소리를 듣고 있는데, 이종범의 친정팀 KIA 타이거즈를 상대로는 2시즌 통산 타율 0.396 OPS 0.940을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2018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는 5회 만루 상황에서 희생플라이로 1타점, 7회 무사 1루 동점 상황에서 최형우의 타구를 슈퍼캐치로 잡아낸 후 곧장 2루로 송구해 나지완까지 잡아내며 동점을 허용해 묘해진 경기 분위기를 다시 뒤집는 등 4타수 1안타 1타점 2득점의 맹활약을 펼쳐 KIA 타이거즈 침몰의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냈다. 과거 싸이월드에 했던 말이 다시 한번 재평가를 받으며 KIA 타이거즈 갤러리 등지에서는 제발 용서 좀 해달라며 비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아버지가 코치로 있다가 옷을 벗었던 한화 이글스 상대로는 더욱 강한 모습을 보이는데, 2시즌 통산 타율 0.452 OPS 1.099로 KIA 타이거즈전보다 상대 전적이 더 좋을 뿐만 아니라 18년 한화 상대 최고 타율+최고 안타를 기록했다. 아버지랑 별로 연관이 없어보이는 두산 베어스 상대로도 18시즌 타율 0.393 OPS 1.032을 기록했는데 알고 보니 이종범이 빵 사건의 주범이라고 누명 썼던 그 경기 날 상대 팀이 두산.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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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 종목에서 대를 이은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이다. 아버지인 이종범이 2002 부산 AG 야구 대표팀 소속으로 금메달을 땄고, 16년 후 그 아들인 이정후가 선동열호에 속해서 자카르타 팔렘방 AG 야구에서 금메달을 땄기 때문. 여기에 이번 대회에서는 아버지인 이종범이 코치로 참가해서 더욱 뜻깊은 대회가 되었다. # 참고로 모자 금메달리스트인 황재균은 어머니가 테니스 선수여서 동일종목까지는 아니었다. 이종범-이정후 부자와 같은 경우가 있다면 여홍철-여서정 부녀의 케이스다.[34]

2019년 이종범이 LG 트윈스 2군 코치로 가게 됐을 때 해설자로 버는 돈보다 적을 돈을 주게 되는 것이 마음에 걸린 차명석 단장은 이종범의 아내이자 이정후의 모친에게 연락했는데,[35] 그 대답이 “돈은 우리 정후가 벌어다주니까 그 양반 좀 빨리 제 눈 앞에서 치워주세요.”라고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36] 사실 고우석을 사위로 맞은 지금까지 볼 것도 없이, 당시까지만 해도 돈이 아쉬운 집안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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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제 덕에 또 매스컴을 타게 됐다. 세계 최초로 부자 타격왕이 됐다. 이제는 아버지의 이름표를 떼고 제 이름으로 야구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세계 최초 부자 타격왕'에 등극한 소감 中 에서[37]


덧붙여서 “항상 순리대로 하라는 아버지의 조언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결과를 얻은 것 같다”며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2022년에는 1994년에서의 아버지와 24세라는 같은 나이에 '타격 5관왕'을 달성하는 대기록을 완성한 이정후는 한미일 리그 역대 사상 최초의 부자 MVP 수상하면서 KBO 리그 최정상 반열에 올라섰다.

2023년 이정후가 6년 만에 개최되는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출전하게 되면서 WBC 역사상 최초로 부자가 이 대회에 나서게 되는 부자가 되었다. 이정후는 “솔직히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다. 때문에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일인 것 같다. 우리 가족의 이름을 알리고, 그 기록을 처음으로 달성하게 돼 영광이다”라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

이제 프로 연차가 조금씩 쌓이다 보니 익숙해서인지 아버지가 상대 팀 코치로 나오면 놀리기도 한다. #[38]

2023년 올스타전에서 이정후가 팬 투표 최다득표 선수로 선정되면서 사상 최초의 부자 올스타전 최다득표라는 기록도 세웠다. 아버지 이종범은 1994년 올스타전 팬 투표 최다득표를 기록한 바 있다.

9.2. 병역[편집]


위 문단에 서술한 바와 같이 선동열호에 승선해 자카르타 팔렘방 AG 야구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병역 특례를 받게 되면서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되었다.

훈련소 안에서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4주 생활했지만 제가 4주만 훈련하고 마쳐도 되는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현역 군인들에게 대한 고마운 마음, 그리고 존경심이 생겼다. 시간을 잘 보내고 온 것 같다.

2018년 12월 13일 퇴소 인터뷰[39]

그리고 2018년 11월 15일 육군훈련소에 입소한 이정후는 훈련병으로 교육을 받았으며, 12월 13일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수료한 뒤 퇴소하였다. 이날 아버지 이종범이 마중 나오기도 했다. 참고로 대를 이어서 현역이 아닌 방식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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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례 혜택을 받고 예술체육요원으로 편입된 선수들은 입대하지 않는 대신 4주간의 기초 군사 훈련을 받고 34개월 동안 본업을 이어나가는 동시에 544시간의 체육 분야 봉사활동을 해야 한다. 비시즌 때마다 시간을 내 봉사활동과 개인훈련을 병행해 온 이정후는 2021년까지 봉사활동 시간을 모두 채운 다음, 그해 10월에 복무만료처분을 받으면서 대체복무를 끝냈다.

국가대표 활약으로 해외 진출의 길까지 자유로워진 이정후는 먼저 포스팅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으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진출한 바 있는 김하성[41]의 뒤를 이어 프로 7년차를 맞이하는 2023 시즌을 마치면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해외 무대를 두드릴 수 있게 되었다.


10. 응원가[편집]




이정후 응원가

원곡은 크라잉 넛 7집 수록곡인 취생몽사.

안타! 안타! 날려버려라! 키움 히어로 이정후! 안타 안타 안타 안타 날려버려라! 키움 히어로 이정후!


데뷔 초 가사는 "안타! 안타! 날려버려라! 힘차게 달려라 이정후! 안타 안타 안타 안타 날려버려라! 더 높이 비상하라 이정후!" 였지만, 반응이 너무 별로라 2017 시즌 중반에 "넥센 히어로"로 고쳤다. 이후 넥센타이어와 계약이 만료되며 비시즌 잠깐 데뷔 초 가사를 쓸 가능성도 있었으나, 키움증권과 계약을 맺고 넥센만 키움으로 바뀌었다.


11. 이정후에 대한 언사[편집]


태어나 보니 아빠가 이종범이다. 정후도 힘들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인터뷰를 잘 안 한다. 내 입장도 있지만, 정후 입장도 있지 않나. 나도 저 위치에 있어 봤다. 어려움이 많을 것. 그래도 뿌듯하다. 나도 깜짝깜짝 놀란다.

아버지 이종범


아시아에서 '포스트 이치로' 아닌가.. 그렇게 저는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이정후가 지금 스물두 살 인가 그렇습니다. 달리기, 타격, 요새는 파워까지 좋아졌어요. 수비 능력도 좋아졌고, 이치로가 한참 그 나이 때에 막 활약을 시작한 거예요. 이치로가 조금 늦게 활약이 됐어요. 나중에 미국가서 크게 활약을 했지만. 이정후 역시 벌써부터 지금 완전히.. 어떻게 보면 대표팀 외야 한자리를 이정후가 갖고 있는 것 아닌가..

지금까지 해온 것 지금의 이정후와 이종범.. 이종범이 조금 나아. 근데 앞으로는 이정후가 이종범 보다 위가 되는 게 아닐까.. 실력이.. 틀림없이 그렇게 기대를 합니다.

김인식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적인 타격을 한다.

이승엽


인터뷰를 봤는데 (이)정후가 한 타석에 스윙을 한 번만 한다고 말했더라. 그 이야기를 듣고 이정후의 타격을 봤는데 정말 한 번만 스윙을 했다. 노린 공은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의미다. 아직 어린 선수인데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

추신수


이정후는 내가 본 21세 선수 중 가장 뛰어난 타격 실력을 가지고 있다. 믿을 수 없는(unbelievable) 타자다.

조쉬 린드블럼


아무리 전력을 다해 던져도 어떻게든 살아나가는 선수였다. 무조건 잡으려고 기를 쓸수록 이정후는 치고 나갔다. 타격감은 정말 빼어난 선수다.

김광현


타격 포인트, 컨택, 중심이동이 다 좋다. 포크볼에도 몸이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공도 잘 보고 컨택 능력도 상당히 뛰어나다.

양준혁


누가 가르쳐준다고 배울 수 없는, 타고난 능력.

박용택


어떤 투수를 내보내더라도 다 잘 친다. 이정후를 막을 계책은 사실상 없다.

류지현


팬들은 보통 이정후의 기록을 보면서 뛰어난 선수라고 생각을 하지만 내가 볼 때 신체적인 능력은 물론 굉장히 똑똑한 타자. 타석에서 순간적으로 조정을 해서 투수와 체스 게임을 매우 잘한다.

래리 서튼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걱정이 이정후 걱정이다.

홍원기[42]


이정후는 지난 해 타격왕을 차지한 선수다. 하지만 이정후는 만족이라는 것을 모른다. 최고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또 한 번 변화를 시도하고 더 잘하기 위해 뭔가 바꾸려는 노력을 한다. 그래서 이정후 걱정은 하지 않는다. 스스로 필요한 것을 찾아 노력하는 선수에게 무슨 주문을 하겠는가. 타격왕이 된 뒤에도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와중에도 자신이 모자란 것이 무엇인지 찾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자연스럽게 이정후를 믿고 맡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됐다. 단순히 숫자가 말해주는 가치가 아니라 야구 선수로서 또 한 명의 사회인으로서 갖추고 있는 재능이 뛰어난 선수다.

홍원기


이정후는 시프트 위치까지 고려하는 타자입니다.

정우영 SBS 캐스터[43]


처음에는 장타력은 부족한 선수였는데 지금은 신체 조건이 뒷받침되니까 장타력까지 나온다. 이정후는 투수가 공을 던질 때 이미 존을 형성하고 있다. 쳐야 할 공, 안 쳐야 할 공을 이미 투수가 던질 때 판단하는 것 같다.

이진영


타격 면에서는 이정후가 이미 아버지를 넘어선 것 같다. 약점이 없는 거의 완성형 타자에 가까워졌다.

이호준


좋은 기술도 천재적 재능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기본기다. 이정후의 가장 좋은 점은 기본기. 타격에 대한 기본과 야구에 대한 기본, 그리고 생각에 대한 기본이 잘돼 있다. 이정후가 특별해서 잘하는 게 아니다. 아무리 천재여도 기본이 갖춰지지 않으면 오랜 기간 잘할 수 없다. 이정후는 해야 할 일에 대한 기본을 잘 아는 선수.

염경엽


이정후는 실투를 인플레이 타구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매우 뛰어난 타자. 헛스윙 비율이 현저히 낮고 삼진율 또한 낮다. 말 그대로 컨택 능력이 탁월하다.

모든 구종을 다 컨택할 수 있는 타자다. 배트에 맞는 면적이 넓다보니 좋은 타격을 한다.

볼과 유인구에 방망이가 안 나간다.

타석에 서면 던질 곳이 없다. 어떤 구속, 구질의 공이라도 모두 자기 폼으로 쳐낸다.

타격은 물론 수비, 주루 등 모든 분야에서 수준급 실력과 센스를 갖췄다.

상대 투수 공에 대한 적응력이나 변화에 따른 컨택트 능력 모두 뛰어나다. 스마트한 타자.

익명의 10개 구단 감독의 평가


이정후는 삼진을 정말 잡기 힘든 타자다. 타석마다 같은 볼 배합으로 아웃 카운트를 잡을 수 없는 타자. 올해는 장타 능력까지 갖춰서 안타나 2루타가 아니라 더 큰 장타까지 걱정해야 한다. 선구안까지 있어서 정말 어려운 상대.

익명의 ㄱ 투수


이정후는 국내 커리어가 나보다 좋았다. 내가 미국에 와서 스프링캠프부터 뭔가를 보여주려고 오버페이스를 해서 고생했는데 정후는 그러지 않고 여유를 가진다면 미국에서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김하성


DNA도 좋고 컨택 능력도 굉장히 좋기 때문에 나는 그가 미국에서 통할지 어떨지 걱정하지 않는다.

배지환





12. 관련 문서[편집]




13. 둘러보기[편집]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21년 5월 KBO 리그 월간 MVP
원태인
(삼성 라이온즈)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소형준
(kt wiz)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2022년 6월 KBO 리그 월간 MVP
소크라테스
(KIA 타이거즈)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이창진
(KIA 타이거즈)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2022년 9월 KBO 리그 월간 MVP
양의지
(NC 다이노스)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나균안
(롯데 자이언츠)

[1] 족보에는 이름이 한글로만 작성되어 있으나, 국제대회 공식 등록명을 통해 한문 표기를 확인할 수 있다.[2] 아버지인 이종범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활동할 때 태어났다. 동아일보 1998년 8월 21일 <"날 꼭 빼닮았네"...득남 기쁨> 기사 참조.[3] 이 때문에 이정후가 해외진출을 계획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가장 기대했던 곳이 주니치 드래곤즈였다. 실제로 지연을 강조해 영입 시도를 한 정황이 있었다.[4] 살레시오초등학교에서 전학. 아버지 이종범이 스프링 캠프를 떠났을 때 어머니와 야구부가 있는 학교(광주 서석초)에 가서 테스트를 봤고 3학년 때부터 야구부에 들어갔다고 한다. #[5] 무등중에서 전학.[6] 이종범왼손잡이인 반면에 이정후는 오른손잡이로 아버지의 권유로 왼손 타자가 됐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다만 양치질과 가위질은 왼손으로 한다.[7] 원래 프로 입단은 내야수로 했으나 고교 시절 타격에 비해 내야수 수비에서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고, 프로 입단 후 타격에서의 잠재력을 인정 받아 기회 제공을 위해 공석이 있던 외야수로 전향하였다. 데뷔 첫 해인 2017 시즌중견수, 2018 시즌우익수, 2019 시즌에는 좌익수, 2020 시즌에는 중견수와 우익수를 번갈아 봤다. 2021 시즌부터는 고정적으로 중견수를 맡고 있다. 외야 전 포지션에서 뛸 수 있는 선수 중 하나다.[opt-out] can opt-out after 2027, 2028[8] 팀내 연봉 1위[9] 메이저 리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스캇 보라스와 미국 에이전시를 계약한 것과 별개로 국내는 최근 공식 SNS에도 업로드 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리코스포츠에이전시에서 계속해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10] 해외진출을 앞둔 2023 시즌에 에이전시 계약을 체결했다. #[11] 20대 중반의 나이에 6번의 대표팀을 경험했고,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서 병역혜택을 받았다. #[12] 류현진, 윤석민, 김현수, 황재균, 박병호, 김광현, 양현종, 김하성, 이정후[13] 일본에서도 이치로와 이정후를 자주 비교한다.[14] 이정후의 wRC+는 111.3→127.4→135.1→143.6→165.8→182.5로, 특히 2020년대부터는 아예 wRC+가 매년 20씩 상승하는 충격적인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말 그대로 주인공 버프를 잔뜩 받은 소년만화의 주인공이 연상될 정도로 KBO 리그 역사상 가장 급격한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 2022 시즌까지는 슬럼프를 겪은 시즌이 전무하다는 점도 굉장히 고무적이다. 당장 KBO 리그에서 역대급 재능으로 평가받던 그의 라이벌 강백호나 앞 세대 구자욱의 경우 2022년 각각 성장세가 다소 둔화되고, 커리어로우를 찍는 등 커리어적으로 다소 부침을 겪고 있는데 이정후는 데뷔 이후 2022시즌까지는 그런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나 2023 시즌 초, 부상 여파로 커리어 최초로 심각한 슬럼프를 겪었다. 최근 10년간 이정후만큼이나 압도적으로 부침 없는 성장세를 보여주는 선수로는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역대급 수비 퍼포먼스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유격수 수비를 보여주는 한국인으로 평가받는 김하성 정도가 있으나 김하성도 오히려 페타주급 성적을 낸 KBO 시절과 달리 타격에서는 부진하며 메이저의 수준차를 보여주고 있는지라, 현 시점 성장세의 임팩트를 가장 높게 평가받는 선수는 이정후이다.[15] 특별히 장타를 의식하지 않고 타격폼 수정이 없었음에도 2022시즌 동안 23개의 홈런을 치면서 단순한 콘택트형 타자가 아님을 증명했다.[16] 2022년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김광현, 김강민, 추신수 등도 이정후의 행동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을 정도다.[17] 스즈키 이치로는 데뷔 직후부터 매리너스에 입단할 때까지 일본 시절 7년 내내 2021-2022년 이정후 정도의 성적을 기록했으며, 푸홀스는 아예 전성기 시절 별명이 '발전이 없는 타자'였다. 사실 이치로나 푸홀스는 2021-2022 이정후보다 좋은 성적을, KBO보다 수준 높은 리그에서 발전 없이 꾸준히 기록한 것이니 비교 대상이라고 보기에는 좀 힘들긴 하다.[18] 2023년 시즌이 끝나고는 세이야는 현재 메이저에서 적응을 하고 있으며 주전급의 선수가 되었으나 요시다는 후반기에 약점이 노출되며 몸값대비 매우 실망스러운 성적을 냈다.[19] 예외적으로 다린 러프는 MLB에 진출해서도 2020~2021년 2년간 KBO리그 시절과 별다르지 않은 OPS를 기록했다. 다만 러프도 MLB에서 최고 전성기였던 2021 시즌에도 WAR은 레퍼런스, 팬그래프 불문하고 3을 넘기지 못했고 타석 수도 한국 시절에 비해 반토막이 난 수준이었다. 더구나 당시 러프의 BABIP은 .344로 통산 BABIP(.295)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를 기록했기에 러프의 2021 시즌은 플루크라고 보는 게 맞고, 2020 시즌은 코로나 때문에 60경기로 진행된 시즌이었으니 한 선수의 성적을 논하기엔 다소 부적절한 시즌이다.[20] 테임즈의 2015 시즌이나 강정호의 2014 시즌은 이종범이 1994 시즌 기록한 전설적인 시즌에 비견될 정도로 뛰어났다.[21] 강정호는 음주운전 때문에 커리어가 꼬인 거지 실력적으로서는 메이저에서 통한다는 것을 증명해냈다.[22] 그런데 이정훈, 윤형준과 이정후 모두 리그에서 빠르다고 하는 선수는 아니다.[23] 단골 미용실 원장님이 추천해줬다고 한다.[24] 어쩔 수 없는 게, 좌투인 야수는 포지션 선택의 폭이 확 좁아지기 때문이다. 당장 본인의 포지션이었던 유격수를 좌투가 하려면 모든 수비모션에서 1루 송구시 우투랑 달리 한바퀴 돌아서 던져야하기 때문에 스텝 한번, 험블 한번에 아웃과 세잎이 결정되는 야구에서는 엄청난 핸디캡이다. 그걸 커버하려면, 압도적인 강견이어야 하는데, 그 정도 강견이면 좌완 투수를 시키는 게 팀을 위해서나 본인을 위해서라도 더 낫다. 좌완 파이어볼러의 가치는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이는 2루수, 3루수 또한 마찬가지. 그래서 좌투인 야수는 외야수 or 1루수 말고는 극도로 보기 힘들다.[25] 좌타자는 일단 왼쪽 타석이 오른쪽 타석보다 1루까지의 거리가 한 발짝 가량 가깝고, 스윙 후에도 우타자는 몸이 3루 쪽으로 쏠리는 반면, 좌타자는 자연스럽게 1루를 향하게 된다는 점에서 주루상의 이점을 깔고 들어가며, 또, 일반적으로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당연히 야구선수 중에서도 오른손잡이, 즉 우투수가 더 많을 수밖에 없는데, 우타석에 들어설 때 보다 좌타석에 들어설 때 우투수가 던지는 공을 특히, 반응을 빠르게 해야 되는 몸쪽 공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볼 수 있기 때문에 타격 시 유리하다. 다만 장타력 측면에서는 오른손잡이는 우타가 더 유리하기 때문에 우투좌타가 우투우타보다 꼭 유리하지는 않다.[26] 고의사구 포함[27] 2019년에 두 자릿수 도루를 달성하긴 했지만, 이정후의 주루능력은 리그 평균 정도로 그리 특출난 편은 아니다. 반면 아버지 이종범은 전성기 때 도루 4~50개는 기본에 한 시즌 최다도루 기록까지 갖고 있을 정도로 최고의 주루능력을 자랑했던 선수다.[28] 2014년 서건창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는 단일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이었다.[29] 이정후가 2017 시즌에 친 홈런은 저게 끝이다.[30] #[31] 이종범이 실력이 안 되어서 KBO 신인상을 못한 게 아니다. 하필이면 그 해 양준혁도 같이 데뷔해서 그렇다. 대신 1993년 한국시리즈 MVP는 이종범이 차지했다. 1993년은 꽤 좋은 선수들이 많이 배출된 해다.[32] 실제 이 해에 데뷔한 선수가 구대성, 이대진, 박충식, 이상훈, 마해영 등 지금 생각해도 기라성같은 라인업을 자랑한다.[33] 2017 시즌 .397, 2018 시즌 .395, 2019 시즌 .354[34] 기계체조 도마 부문에서 여홍철1994년, 1998년에 금메달을 따고 20년 만에 그 딸이 메달을 땄다. 여담으로 여홍철은 이종범의 초등학교 1년 후배로, 서로 절친한 사이다.[35] 차명석과 이종범은 건국대 1년 선후배 사이로, 굉장히 친분이 깊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종범의 부인, 즉 이정후의 어머니와도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가 된다.[36] 이정후의 계약금은 2억으로 적은 금액이 아니며, 게다가 2년차 부터 이미 억대 연봉에 진입했다. 그걸 다 떠나서 이종범도 나가고 싶었을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37] #[38] 사실 이종범 입장에서는 아들이 자랑스러울 단계야 진작 지났으니 이젠 적으로밖에 안 보이겠지만, 그래도 피는 못 속인다.[39] #[40] 아버지 이종범은 1995년 제31보병사단 소속 방위병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이 당시만 해도 방위병은 월~토요일 퇴근 후와 휴일인 일요일에 열리는 광주 홈경기에 한해서만 출전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부자가 모두 군대 때문에 시즌을 통으로 쉬어본 적은 없는 셈이 됐다.[41] 김하성의 경우에도 자카르타 팔렘방 AG 야구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해 병역 특례를 받고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진출했다.[42] 2021년 3월 27일 시범경기 전 발언이다. 이정후는 2021년 시범경기 및 시즌 극초반에 2할대 초중반의 타율로 어려운 시작을 겪었지만 그 다음달 5월에 거의 5할에 가까운 타율을 기록하며 자신의 클래스를 증명했으며 그 해 타격왕과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거머쥐었다. 또한 2023년 역시 4월 월간 타율 0.218이라는 다소 이정후 답지 않은 출발이었으나 5, 6월 완전히 제 페이스를 되찾으면서 7월 현재 3할 1푼대의 타율과 4할 5푼대의 장타율을 선보이며 팀 타선의 중심을 여전히 잘 잡아주고 있다.[43] 이후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정후는 중견수의 키를 넘기는 2타점 2루타를 쳤다. 결승타도 데일리 MVP도 그의 몫. 정우영 캐스터는 이게 인상깊었던지 이듬해 8월 KIA전에서도 이 말을 했는데, 이정후는 마치 지난 가을을 재현하듯 정해영을 상대로 안타를 쳤으며, 전병우의 역전 끝내기 2타점 2루타로 득점하며 팀의 연패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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