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튼 칼리지

덤프버전 :



Eton College
이튼 칼리지


파일:이튼 칼리지 로고.svg


학교 정보
교훈
라틴어
Floreat Etona
영어
May Eton Flourish
한국어
이튼이 번창하기를
개교
1441년(개교 583주년)
국가
[[영국|

영국
display: none; display: 영국"
행정구
]]

유형
퍼블릭 스쿨
성별
남학교
교장
사이먼 헨더슨 (Simon Henderson)
학생 수
1,311명(2020)
주소
이튼, 버크셔, SL4 6DW 잉글랜드
교색
Eton Blue (#A0D1CA)
홈페이지
파일:이튼 칼리지 원형 아이콘.png 공식 홈페이지
소셜 미디어
파일:LinkedIn 아이콘.svg |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
2. 역사
3. 명성
4. 유명 동문
5. 기타



1. 개요[편집]


파일:Eton College_Aerial View.jpg
1441년에 개교한 영국학교. 영국 최고의 명문 학교 중 하나로 이름 높은 퍼블릭 스쿨(사립 중·고등학교)로, 이튼 스쿨(Eton School)이라고도 부른다. 영국 잉글랜드 사우스이스트 잉글랜드 버크셔 주의 이튼에 위치해있으며, 학생 전원이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남학교이다. 예로부터 영국을 포함한 전세계의 내로라하는 수재들과 상류층 자제들이 입학하는 명문 학교로 명성이 높으며,[1] 때문에 이튼 칼리지 졸업자를 가리키는 말인 '올드 이튼니언'(Old Etonian)이라는 말이 따로 있을 정도다.

2. 역사[편집]


이튼 칼리지는 1441년에 잉글랜드국왕헨리 6세가 70명에 달하는 전국의 가난한 소년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설립하였다. 그 이후에 1670년의 증축 등을 거쳐서 계속 확장을 하였으며, 현재의 건물은 1846년에 완공되었다.

오로지 입학 성적만으로 결정되어 선정된 70명의 소년들은 왕립 장학생(King's scholars)라고 부르며 현재까지도 이튼 장학생 기숙사인 칼리지(College)로 5개 학년 70명이 유지되고 있다. 또한 왕립 장학생은 자신의 이름을 사인할 때 왕립장학생임을 의미하는 KS를 붙일 수 있는 관습적인 권리를 얻게 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외의 학생들도 함께 교육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들은 오피던스(Oppidans)라고 하여 인근 주택에서 숙박비를 내고 하숙하며 등교하였다. 이것이 체계화되면서 각각의 기숙사를 담당하는 이들이 생기고 현재는 24개의 오피던스 하우스가 학교의 관리 하에 존재한다.

학생수도 17세기에 200여명, 18세기에 300여명이다가 20세기에는 130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3. 명성[편집]


전술했듯이, 이튼 칼리지는 영국 상류층 자제들이 입학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현대 들어선 아예 입학 전부터 집안을 본다는 카더라도 있다.[2]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설립된 초기 시절과 달리 목적도 의미도 상당히 변질된 셈. 어쨌든 영국의 왕족, 귀족 출신들이 이곳으로 많이 진학한 뒤 옥스브리지로 가는 루트를 탔다. 때문에 대학이 아닌 중등교육기관이지만, 이곳의 졸업자는 따로 '이토니언'(Etonian) 식으로 불린다고 한다.

4. 유명 동문[편집]


나무위키에 문서가 있는 사람 서술.

5. 기타[편집]


  • 파스퇴르 유업 창립자인 최명재1977년 이곳을 방문한 뒤 감명받아 1996년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소사리에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세웠다.[6]




  • 잠언에 나와있다는 명분으로 개교 이래부터 1980년까지 체벌제를 유지했다. 지금도 체벌에 쓰이던 테이블은 남아있다.


  • 만화 <스파이 패밀리> 에 등장하는 주요 배경인 명문학교 <이든 칼리지> 의 모티브이다.

  • 과거에는 부모, 가문 등을 대놓고 보고 뽑았지만 현재는 공식적으론 극도로 경쟁적인 입학 시험만을 통해 선발한다. 때문에 학생들 중에 등록금을 내느라 허덕이는 중산층 출신도 많아졌다. 물론 왕족들은 성적에 상관없이 입학 특례를 받는다.

  • 1999년도부터 영국의 전 학교에서 체벌이 금지되어있기 때문에 장노년층이나 추억할법한 한참 옛날 애기가 되었기는 했지만, 20세기 중반까지는 체벌로도 악명이 높았다. 특히 임원과 교사들뿐만 아니라 기숙자장이나 사감들, 학생 자치회 단위로도 자체적으로 체벌권한을 주어서 두들겨 맞기로 유명했다. 윈스턴 처칠도 모교인 세인트 조지 스쿨에 다니던 시절을 "이튼 스쿨처럼 자작나무 매로 학생을 때리는 것은 우리 학교의 가장 두드러진 수업 방침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튼 스쿨이나 해로 스쿨의 학생도 이처럼 잔인한 매질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하다."라면서 고통스러운 시절이라 회상한바 있었는데 이 당시에는 공장에 가서 힘들게 일하거나 구빈소에서 학대에 시달렸던 빈민층 자녀들뿐만 아니라 사회고위층 자녀들조차도 시궁창스러운 환경에서 공부했을 정도로 아동과 청소년 인권이 시궁창이었다는것을 알수있는 대목이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4 17:48:04에 나무위키 이튼 칼리지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윌리엄 왕세자해리 왕자, 배우 에디 레드메인, 톰 히들스턴이 이 학교를 나온 것으로 유명하다.[2] 물론 딱 욕 먹기 좋은 주제라 정설은 아니고 개인의 주장이기는 하지만, 피터 빈트도 비슷한 주장을 한 적이 있다.[3] 19세기 글래드스턴 총리 이후부턴 전부 보수당 출신인게 재미있다.[4] 조지 5세의 3남.[5] 조지 5세의 손자.[6] 그리고 몇십년 뒤에 하나금융그룹에서 이 두 학교를 모델로 한 하나고등학교를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