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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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李琥) - 1555 ~ ?


1. 개요[편집]


관은 원주(原州)이고 이름은 이호(李琥)이고 자(字)는 계진(季珍)이다.
강릉대도호부사(江陵大都護府使) 이영화(李英華)의 현손(玄孫)이고, 판관(判官) 이승개(李承介)의 아들이다.


2. 일생[편집]


선조(先祖 10년) 정축(丁丑 1577)년에 무과(武科)에 뽑혀 군자감(軍資監) 주부(主簿)가 되었고 임진왜란(壬辰倭亂)때 4촌 부장(部將) 이황(李璜), 직장(直長) 이순(李珣) 및 6촌 부정(副正) 이원해(李元海)와 더불어 용만(龍彎)의 행재(行在)에 임금을모시고 있을 때는 항상 갑옷을 벗지 아니하고 활은 손에서 놓지 아니하였으며 형제들과 더불어 경계하여 이르기를 “당(唐)나라 충신 고경(杲卿) 형제는 상산(常山)에서 절사(節死)하였고 촉한(蜀漢)의 제갈(諸葛)부자는 면죽(綿竹)에서 순충(殉忠)하듯 이것이 오늘날 우리형제가 힘써하여야 할 일이로다”라고 하였다.
이후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을 내리고 선무공신(宣武功臣) 원종훈급(原從勳級)의 녹권(錄券)이 내렸다.


3. 가계[편집]


둘째 이성춘(李成春)도 같이 용만으로 파천(播遷)하는 행차 길을 잘 정리하였음에 특히 감역관(監役官)을 제수(除授)하며 전마(戰馬) 11마리를 상(賞)으로 내렸고 뒤에 선무원종 2등훈의 녹권이 내렸으니 부자(父子) 두 분의 영령(英靈)은 함께 해남 영산사(英山祠)에 배향(配享)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