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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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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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김찬회
제2대
안찬희
제3대
박배근
제4대
이재창
제5대
심재홍
제6대
박종우
제7대
최기선
제8대
이영래
제9·10대
최기선

제11·12대
안상수
제13대
송영길
제14대
유정복
제15대
박남춘
제16대
유정복

파일:인천광역시 브랜드 슬로건.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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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장
仁川廣域市長
Mayor of Incheon Metropolitan City


파일:유정복2022지선.jpg

현직
유정복 / 제16·18대 (민선 6·8기)
취임일
2022년 7월 1일
정당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1. 개요
1.1. 인천광역시장 선거 100% 적중 지역
2. 목록
2.1. 경기도 인천시장
2.2. 인천직할시장 (관선)
2.3. 인천광역시장 (민선)
3. 생존 중인 전직 민선 인천광역시장
4. 역대 선거 결과
5. 역대 정당별 전적
6. 역대 후보별 순위
7. 시정 구호
8. 이야깃거리
9.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인천광역시장인천광역시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광역자치단체장이다.

1981년 7월 1일 경기도 관할 기초자치단체였던 인천시가 경기도에서 독립해 인천직할시로 승격되면서 인천직할시장이 됐고 1995년 1월 1일 인천직할시가 인천광역시로 개편됨에 따라 시장직의 명칭도 인천광역시장으로 개칭된 후 현재에 이른다.

역사적 의미에서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인천부사'까지 소급될 수 있다.

1995년 민선 시정 출범 이후부터 현재까지 중도 사퇴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광역단체장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후술하듯 인천광역시장 재보궐선거는 지금껏 없었다. 이 점은 대구광역시장이나 광주광역시장과 비슷하다.

인구가 300여만명에 달하고 수도권 지자체장인만큼 광역자치단체장들 중 상위권에 속한다고 볼 수 있지만 같은 수도권 단체장으로 묶이는 서울특별시장이나 경기도지사에 치여 수도권 지역 내에서 특별한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서울특별시장경기도지사 모두 대통령 선거 본선 후보를 배출한 것에 비해 인천광역시장은 아직 대권 주자로 분류되는 인물을 배출해본 적이 없다.[1] 이 점은 부울경 지역 내에서 부산광역시장경상남도지사에 치이는 신세인 울산광역시장과 비슷하다.


1.1. 인천광역시장 선거 100% 적중 지역[편집]


인천광역시장 선거 적중 지역 결과
연도
당선인(득표율)
중구 1위
동구 1위
미추홀구 1위
연수구 1위
서구 1위
1995년
최기선
(40.8%)
최기선
(46.1%)
최기선
(42.2%)
최기선
(40.4%)
최기선
(43.7%)
최기선
(39.7%)
1998년
최기선
(53.5%)
최기선
(53.9%)
최기선
(51.7%)
최기선
(51.6%)
최기선
(52.5%)
최기선
(58.7%)
2002년
안상수
(56.2%)
안상수
(58.6%)
안상수
(57.8%)
안상수
(58.5%)
안상수
(60.3%)
안상수
(54.5%)
2006년
안상수
(61.9%)
안상수
(62.8%)
안상수
(61.6%)
안상수
(64.9%)
안상수
(65.5%)
안상수
(61.9%)
2010년
송영길
(52.7%)
송영길
(48.8%)
송영길
(50.6%)
송영길
(51.3%)
송영길
(48.9%)
송영길
(53.7%)
2014년
유정복
(50.0%)
유정복
(54.9%)
유정복
(54.5%)
유정복
(53.7%)
유정복
(53.1%)
유정복
(49.7%)
2018년
박남춘
(57.7%)
박남춘
(56.5%)
박남춘
(50.8%)
박남춘
(53.9%)
박남춘
(57.4%)
박남춘
(60.6%)
2022년
유정복
(51.8%)
유정복
(53.4%)
유정복
(54.9%)
유정복
(54.5%)
유정복
(55.3%)
유정복
(49.9%)

인천광역시장 선거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재보궐선거 없이 8회의 지방선거로만 실시되었다. 인천광역시는 8구 2군이 있으며, 이 중에서 해당 지역 1위가 인천광역시장이 되는 적중 지역은 아래와 같다.

부산광역시장 선거처럼 인천광역시장 선거도 50%의 지역이 살아남아 100% 적중 지역을 나타내고 있다.


2. 목록[편집]



2.1. 경기도 인천시장[편집]


대수
이름
임기
당적[2]
비고
관선 경기도 인천부윤
초대
임홍재
1945년 9월 2일 ~ 1945년 9월 30일
미군정

관선 경기도 제물포시장
초대
임홍재
1945년 10월 1일 ~ 1945년 10월 17일
미군정

관선 경기도 인천부윤
초대
임홍재
1945년 10월 18일 ~ 1947년 1월 18일
미군정

관선 경기도 인천시장
2대
표양문
1947년 2월 ∼ 1950년 4월
미군정

3대
지중세
1950년 5월 ∼ 1951년 9월
이승만 정부

4대
박학전
1951년 10월 ∼ 1952년 5월
5대
표양문
1952년 5월 ∼ 1954년 2월
[3]
(간접 선출)민선 경기도 인천시장
6대
김정렬
1954년 2월 ~ 1958년 1월
이승만 정부

관선 경기도 인천시장
7대
김정렬
1958년 2월 ~ 1960년 6월
이승만 정부

8대
오원근
1960년 7월 ~ 1960년 11월
허정 내각

민선 경기도 인천시장
9대
김진두
1960년 12월 27일 ~ 1961년 5월


[4]
관선 경기도 인천시장
10대
류승원
1961년 5월 ~ 1963년 2월
국가재건최고회의

11대
장수영
1963년 6월 ~ 1965년 1월
12대
윤갑로
1965년 2월 ~ 1966년 7월
박정희 정부

13대
신충선
1966년 7월 ~ 1966년 9월
14대
김해두
1966년 9월 ~ 1969년 5월
15대
유병택
1969년 5월 ~ 1971년 7월
16대
홍승순
1971년 8월 ~ 1973년 7월
17대
정규남
1973년 7월 ~ 1975년 11월
18대
김재연
1975년 11월 ~ 1976년 7월
19대
김태호
1976년 7월 ~ 1978년 2월
20대
원병의
1978년 2월 ~ 1980년 5월
21대
전영춘
1980년 5월 ~ 1981년 6월
최규하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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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인천직할시장 (관선)[편집]


대수
이름
임기
당적[5]
비고
초대
김찬회 (金瓚會)
1981년 7월 1일 ~ 1985년 2월 27일
전두환 정부

2대
안찬희 (安瓚熙)
1985년 2월 28일 ~ 1986년 1월 8일
3대
박배근 (朴培根)
1986년 1월 9일 ~ 1987년 5월 29일
4대
이재창 (李在昌)
1987년 5월 30일 ~ 1989년 7월 20일
5대
심재홍 (沈載鴻)
1989년 7월 21일 ~ 1992년 4월 20일
노태우 정부

6대
박종우 (朴宗雨)
1992년 4월 21일 ~ 1993년 3월 3일
7대
최기선 (崔箕善)
1993년 3월 4일 ~ 1994년 9월 23일
김영삼 정부

8대
이영래 (李永來)
1994년 9월 24일 ~ 1995년 6월 30일


2.3. 인천광역시장 (민선)[편집]


대수
사진
이름
임기
당적[6]
출신지
비고
9대
파일:최기선 시장.jpg
최기선 (崔箕善)
1995년 7월 1일 ~ 1998년 6월 30일

[[민주자유당|
파일:민주자유당 글자.svg
]]

경기 김포
[7]
10대
1998년 7월 1일 ~ 2002년 6월 30일

[[자유민주연합|
파일:자유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8]
11대
파일:IMG_20221002_190947_784.jpg
안상수 (安相洙)
2002년 7월 1일 ~ 2006년 6월 30일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1997~2004).svg

충남 태안

12대
2006년 7월 1일 ~ 2010년 6월 30일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13대
파일:송영길(2).jpg
송영길 (宋永吉)
2010년 7월 1일 ~ 2014년 6월 30일

[[민주당(2008년)|
파일: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전남 고흥
[9]
14대
파일:2021071817421175178_1626597732_0016067254.jpg
유정복 (劉正福)
2014년 7월 1일 ~ 2018년 6월 30일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인천 동구[10]
[11]
15대
파일:100147116.jpg
박남춘 (朴南春)
2018년 7월 1일 ~ 2022년 6월 30일

인천 중구

16대
파일:유정복2022지선.jpg
유정복 (劉正福)
2022년 7월 1일 ~ 현재

인천 동구


3. 생존 중인 전직 민선 인천광역시장[편집]


- 1946년 5월 28일 출생, 77세
- 재임기간 : 2002년 7월 1일 ~ 2010년 6월 30일
- 시장 퇴임 후 서구·강화군 을 지역과 중구·동구·강화군·옹진군 지역에서 제19·2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러나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동구·미추홀구 을 지역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 1963년 3월 21일 출생, 60세
- 재임기간 : 2010년 7월 1일 ~ 2014년 6월 30일
- 시장 퇴임 후 본인의 원래 지역구인 계양구 을 지역에서 제20·21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그러나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나섰다가 낙선했다.
- 1958년 7월 2일 출생, 65세
- 재임기간 : 2018년 7월 1일 ~ 2022년 6월 30일
- 시장 퇴임 후 야인으로 지내고 있다.


4. 역대 선거 결과[편집]


파일:인천광역시 휘장_White.svg 역대 인천광역시장 선거 결과
1995
1998
2002
2006
2010
민주자유당


한나라당

한나라당

민주당

최기선
안상수
송영길
2014
2018
2022


새누리당


국민의힘



유정복
박남춘
유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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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주요 후보 득표율
1995년
1위: 최기선 40.81%
2위: 신용석 31.73%
3위: 강우혁 27.44%
1998년
1위: 최기선 53.49%
2위: 안상수 34.04%
3위: 김용모 12.45%
2002년
1위: 안상수 56.17%
2위: 박상은 32.11%
2006년
1위: 안상수 61.93%
2위: 최기선 23.58%
2010년
1위: 송영길 52.69%
2위: 안상수 44.38%
2014년
1위: 유정복 49.95%
2위: 송영길 48.20%
2018년
1위: 박남춘 57.66%
2위: 유정복 35.44%
2022년
1위: 유정복 51.76%
2위: 박남춘 44.55%



4.1. 1995년[편집]


{+1 [[파일:인천광역시 휘장(?-1996)_white.svg}}} 인천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최기선(崔箕善)
383,965
1위

40.81%
당선
2
신용석(愼鏞碩)
298,544
2위

31.73%
낙선
3
강우혁(康祐赫)
258,175
3위

27.44%
낙선

선거인 수
1,551,925
투표율
62.02%
투표 수
962,552
무효표 수
21,868


4.2. 1998년[편집]


{+1 [[파일:인천광역시 휘장_White.svg}}} 인천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안상수(安相洙)
238,708
2위

34.04%
낙선
3
최기선(崔箕善)
375,051
1위

53.49%
당선
4
김용모(金容模)
87,327
3위

12.45%
낙선

선거인 수
1,659,977
투표율
43.18%
투표 수
716,923
무효표 수
15,837


4.3. 2002년[편집]


{+1 [[파일:인천광역시 휘장_White.svg}}} 인천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안상수(安相洙)
393,932
1위

56.17%
당선
2
박상은(朴商銀)
225,210
2위

32.11%
낙선
3
신맹순(申孟淳)
29,473
4위

4.20%
낙선
4
김창한(金昌漢)
35,234
3위

5.02%
낙선
5
김영규(金榮圭)
17,404
5위

2.48%
낙선

선거인 수
1,809,907
투표율
39.31%
투표 수
711,602
무효표 수
10,349


4.4. 2006년[편집]


{+1 [[파일:인천광역시 휘장_White.svg}}} 인천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최기선(崔箕善)
200,650
2위

23.58%
낙선
2
안상수(安相洙)
526,932
1위

61.93%
당선
3
신경철(申景澈)
44,339
4위

5.21%
낙선
4
김성진(金聖珍)
78,898
3위

9.27%
낙선

선거인 수
1,940,403
투표율
44.29%
투표 수
859,506
무효표 수
8,687

현역이었던 한나라당 안상수 후보가 재선에 성공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시정 평가가 좋았지만 인천광역시의 재정을 파탄내어 민심이 안 좋았고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낙선했다.

4.5. 2010년[편집]


{+1 [[파일:인천광역시 휘장_White.svg}}} 인천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안상수(安相洙)
469,040
2위

44.38%
낙선
2
송영길(宋永吉)
556,902
1위

52.69%
당선
7
김상하(金相河)
19,580
3위

1.85%
낙선
8
백석두(白石斗)
11,258
4위

1.06%
낙선

선거인 수
2,096,853
투표율
50.90%
투표 수
1,067,431
무효표 수
10,651

민주당은 인천광역시의 재정을 문제삼아 안상수 전 시장을 집요하게 공격했고, 이 전략이 먹히면서 인천광역시를 텃밭처럼 여기던 한나라당은 인천광역시장 자리를 민주당 송영길 전 시장에게 내주게 되었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난이 지역 정치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송영길 전 시장도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개최와 주경기장 건설을 당초 공약과 달리 진행하는 과정에서 재정난을 오히려 악화시켰고 측근 비리, 본인이 주장했던 인천광역시 홀대론이 역으로 돌아오고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유정복 후보에게 석패했다.

4.6. 2014년[편집]


{+1 [[파일:인천광역시 휘장_White.svg}}} 인천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유정복(劉正福)
615,077
1위

49.95%
당선
2
송영길(宋永吉)
593,555
2위

48.21%
낙선
3
신창현(申昌眩)
22,651
3위

1.83%
낙선

선거인 수
2,319,198
투표율
53.36%
투표 수
1,244,502
무효표 수
13,219

출구조사 발표 때 보였던 초접전[12]과는 달리 선거 내내 유정복 후보가 송영길 전 시장과 득표율과 득표수를 초중반에 계속 벌려나가면서 다소 싱겁게 유정복 후보가 승리를 점칠 수 있었고, 결국 송영길 전 시장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인천광역시 부채 증가, 새해 벽두부터 인천광역시권 통합론과 측근 비리, 중구, 동구 등 원도심 지역에서 민심이 떠난 것, 통합진보당 신창현 후보가 22,651표를 갉아먹은 것[13] 등이 송영길 전 시장에게 치명타가 되었다.

4.7. 2018년[편집]


{+1 [[파일:인천광역시 휘장_White.svg}}} 인천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박남춘(朴南春)
766,186
1위

57.66%
당선
2
유정복(劉正福)
470,937
2위

35.44%
낙선
3
문병호(文炳浩)
54,054
3위

4.06%
낙선
5
김응호(金應鎬)
37,472
4위

2.82%
낙선

선거인 수
2,440,779
투표율
55.27%
투표 수
1,349,084
무효표 수
20,435

초반에는 강화군, 옹진군에서 개표가 시작되어서 뒤쳐졌지만, 중구, 동구가 개표되니 박빙이 되다가, 계양구, 부평구, 연수구까지 개표되자[14] 확인 사살되었다.

자유한국당 유정복 후보는 이전에 승리했던 미추홀구, 중구, 동구, 연수구를 더불어민주당 박남춘에게 뺏겼고, 더블스코어 이상으로 이겼던 옹진군, 강화군에서도 박남춘이 38%~42% 가량 득표하는 바람에 신나게 털렸다.

정태옥 전 의원의 희대의 망언 이부망천에 분노한 표심이 작용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사실 선거 이전 여론조사에서는 박남춘 후보가 이 정도로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여주진 않았다. 박남춘이 우세하다는 여론조사는 계속 있었지만, 지지율이 50%를 넘기지는 못했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 직전에 발표된 2018년 6월 6일 조사에서도 40.6%의 지지율을 보였는데, 개표를 해보니, 무려 57.66%가 나와버렸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소리를 했는지 이해가 안된다. 정태옥은 인천광역시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지만 인천광역시에 지역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구광역시 북구 갑의 국회의원이다.

여기다 선거 당일 연수구 을 지역의 국회의원인 민경욱은 페이스북에서 유재석에게 파란 모자를 썼다는 이유로, 북한으로 가라고 비난하는 바람에 욕 폭탄을 먹고 게시물을 지우는 등 어그로를 끌었다. 빡친 지역 구민들은 투표로 자유한국당에게 정의구현을 선사했다.[15]

40.6%까지 떨어졌던 2018년 6월 6일 이후인 일주일 사이에 벌어진 발언 하나 때문에 무려 50%에 가까운 표가 더불어민주당에게 가버린 셈이 되어버렸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와 같은 결과가 나왔는데, 옹진군과 강화군만 패배하고 나머지는 모두 50%~62%의 득표율을 올려 사실상 유정복의 재선 의지를 제대로 꺾은 셈이 되었다.

월미바다열차를 살려보겠다며 예산을 투입하고 뻘짓을 한 것도 치명타가 되었다.


4.8. 2022년[편집]


{+1 [[파일:인천광역시 휘장_White.svg}}} 인천광역시장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박남춘(朴南春)
545,885
2위

44.55%
낙선
2
유정복(劉正福)
634,250
1위

51.76%
당선
3
이정미(李貞味)
38,921
3위

3.17%
낙선
4
김한별(金한별)
6,079
4위

0.49%
낙선

선거인 수
2,534,338
투표율
48.95%
투표 수
1,240,469
무효표 수
15,334

인천광역시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시 근소한 차이로 이재명의 손을 들어준 지역이라,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 중 하나로 손꼽혔다. 하지만 결과는 국민의힘 유정복 후보의 낙승으로 끝났다. 유정복의 승리 요인으로는 국민의힘에 유리한 정치 지형과 더불어 원도심 재개발 공약으로 원도심의 표를 싹쓸이했다는 점이 꼽힌다. 송영길, 박남춘 등 더불어민주당의 인천광역시장들은 경제자유구역을 비롯한 신도시, 특히 청라국제도시의 가치 상승에 치중하고 원도심의 슬럼화를 방치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유정복은 이를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제물포 르네상스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며 원도심 주민들의 박탈감을 공략하였다. 그 결과 유정복은 전통적인 더불어민주당 텃밭인 계양구를 제외한[16] 모든 기초자치단체에서 승리하며 박남춘을 여유롭게 따돌리고 시장직을 탈환하게 되었다.

특히 인천광역시 붉은 수돗물 사태, 송도 소각장 문제, 수돗물에서의 유충 검출이 박남춘의 낙선에 결정타를 줬는데, 보수 우위였지만 민주당세가 성장한 연수구와 검단, 청라의 영향으로 민주당세가 강한 서구가 해당 사건의 피해 지역이였기 때문이다.

한편 여론조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후보와 정의당 이정미 후보와의 단일화 여부에 따라 승패가 갈릴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으나, 최종적으로 단일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개표 결과를 분석 해 볼 때 단일화를 했다고 하더라도 국민의힘 유정복 후보가 과반을 넘겼기에 격차는 줄었을지언정 유정복의 당선에는 영향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17]


5. 역대 정당별 전적[편집]



민주당계 정당
보수 정당
제3후보[18]
1회
신용석
최기선
강우혁[19]



낙선 31.74%
당선 40.81%
낙선 27.44%
2회
최기선[20]
안상수
김용모[21]



당선 53.49%
낙선 34.04%
낙선 12.45%
3회
박상은
안상수
김창한[22]



낙선 32.11%
당선 56.17%
낙선 5.02%
4회
최기선
안상수
김성진[23]



낙선 23.58%
당선 61.93%
낙선 9.27%
5회
송영길
안상수
-


당선 52.69%
낙선 44.38%
6회
송영길
유정복
-


낙선 48.21%
당선 49.95%
7회
박남춘
유정복
문병호[24]



당선 57.66%
낙선 35.44%
낙선 4.06%
8회
박남춘
유정복
이정미[25]



낙선 44.55%
당선 51.76%
낙선 3.17%


6. 역대 후보별 순위[편집]


  • 사퇴, 사망, 등록 무효 후보 제외.

1위
2위
3위
4위
5위
1회
최기선
신용석
강우혁
2회
최기선
안상수
김용모
3회
안상수
박상은
김창한
신맹순
김영규
4회
안상수
최기선
김성진
신경철
5회
송영길
안상수
김상하
백석두
6회
유정복
송영길
신창현
7회
박남춘
유정복
문병호
김응호
8회
유정복
박남춘
이정미
김한별

7. 시정 구호[편집]


시장
시정 구호
김찬회
활기찬 시민 약진 새인천
안찬희
깨끗한 항도 인천건설
박배근
푸른도시 활기찬 새인천
이재창
알찬 건설 밝은 시정
심재홍
화합, 안정, 약진
최기선
봉사는 크게 규제는 작게
깨끗한 인천을 만듭시다
하늘·바다·정보화로 새천년을 가꾸어 갑시다
안상수
동북아의 관문도시 인천
세계 일류 명품도시 인천
송영길
대한민국의 심장, 경제수도 인천!
유정복
인천의 꿈, 대한민국의 미래
박남춘
살고 싶은 도시, 함께 만드는 인천
유정복
인천의 꿈, 대한민국의 미래[26]
시민이 행복한 세계 초일류도시 INCHEON


8. 이야깃거리[편집]


  • 민선 시정 출범 이래,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퇴한 시장이 1명도 없었다.
  • 이상하게도 역대 민선 시장 중 좋은 평가를 받은 인물이 한 명도 없으며, 3연임에 성공한 시장도 없다. 이전까지 평판이 좋았던 정치인도 인천광역시장을 역임하면 신뢰도와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무능의 아이콘이 되어 재기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아서 인천시장 잔혹사라는 말까지 생겼다. 이건 인천이라는 도시의 특징이 한몫하는데, 각 지역별로 이해관계가 복잡하다보니 인천 시민으로서의 단일한 정체성을 확립하기 어려운 면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원도심과 신도시(송도, 청라, 영종), 부평 간에는 서로 접점이 그리 많지도 않은데다 시장이 어느 한쪽 개발에 집중하면 다른 쪽에서 불만이 생기기 쉬운 구조다.[29] 그러다보니 시장들이 조금만 실책이 나와도 바로 여론이 나빠질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 거기에 외지인 출신 인천시민 상당수는 인천을 서울, 경기로 가기 위한 경유지라는 인식이 여전해서 지역 정치에 그닥 관심이 많지 않기도 하다. 이 때문에 2010년대까지만 해도 인천의 선거 투표율은 전국 최하위 수준이었다.
    • 1·2기 최기선 : 재선 임기말에 비리 의혹이 터져 자유민주연합을 탈당하고 차기 지선 불출마 및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단, 최기선같은 경우는 원래 민주당 계열의 인사였고, DJP 연합에 따라 민주당 쪽에서 자민련 쪽에 임대보낸 정치인이어서 DJP 연합 붕괴 이후 민주당으로 돌아왔다.
    • 3·4기 안상수 : 인천광역시 시민들에게 인천광역시를 빚더미에 올려놓은 주범으로 찍혀있다.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3선에 도전했으나 빚더미 심판론을 들고 나온 송영길에게 대패했다.
    • 5기 송영길 : 안상수가 망쳐놓은 재정을 복구시키겠다며 나왔지만 아시안게임 지방채 1조1000억원 발행, 검단신도시, 영종하늘도시, 도화구역 토지보상금 1조1000억원 등 부채를 늘렀고, 인천타워 등 대형 사업의 무산, 인천 도시철도 2호선 적시 개통에도 실패하여 시정 만족도 여론조사가 전국 최하위 수준이었다. #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했으나 송영길 심판론을 들고 나온 유정복에게 21,522표차로 석패했다. 이후 본인 지역구인 계양구 을에서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영향력이 크게 줄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역임하면서 재기하나 했지만,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재창출에 실패하면서 물러나야 했다. 대선 패배 직후 기존 지역구인 계양구 을이재명에게 물려준 후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낙선하였고, 이듬해인 2023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사건에 연루돼 정치 생명이 끝장났다.
    • 6·8기 유정복 : 힘있는 여당 시장, 인천 토박이임을 내세워 야심차게 취임 후 재정난 극복, 서울 지하철 7호선 청라 연장, 인천발 KTX등의 굵직한 사업을 주도했으나,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파행운영, 검단 스마트시티 사기극, 송도국제도시 불법자산이관 문제 등으로 평판이 심각하게 악화되었고 시도지사 직무수행 평가에서 전국 최하위권의 성적을 받았다. 이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입지가 매우 좁아졌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했으나 전국적인 민주당 돌풍과 이부망천 사태로 인해 박남춘에게 완패했다. 여담으로 안상수 이후로 시장을 단임 이상으로 하는 유일한 사례이다.
    • 7기 박남춘 : 제3연륙교 착공, 영종 주민 인천국제공항철도 환승 할인, 인천e음 카드 발급, 서울 지하철 7호선 청라 연장 확정 등 소소한 업적을 쌓았으나, 임기 중 2년 연속 수돗물 관리 부실[27] 사건에 따른 책임론을 맞아 재선에 실패했고, 전임 시장인 유정복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이로써 인천광역시는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부터 4연속 현역 시장이 연임[28]에 실패하는 기록을 세웠다.
  • 1-5대 지선으로 당선된 시장들 전원이 인천 토박이가 아니다. 최기선 전 시장은 인천 위에 있는 경기도 김포시 출신이고, 안상수 전 시장은 충청남도 태안군 출신, 송영길 전 시장은 전라남도 고흥군 출신이다. 하지만 이후에는 6·8대 유정복(동구 송림동 출신), 7대 박남춘(중구 북성동 출신) 등 토박이 출신이 당선되고 있다.
  • 출생지와는 별개로, 현재까지 민선 인천광역시장들은 모두 인천광역시 동부 혹은 인천 인접 지역을 정치 기반으로 두었던 인물들이다.[30]
  • 역대 민선 시장 전원이 기독교 신자다. 이들 중 안상수 전 시장만 개신교, 나머지는 모두 가톨릭이며 불자 당선인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물론 인천광역시는 애초에 개신교와 가톨릭의 세력이 상당히 강력한 반면 불교는 상당히 취약한 동네다.
  • 지금까지 총 7번의 민선 시장 선거 결과 집권 여당 후보가 승리한 것은 5번, 야당 후보가 승리한 것은 3번이다.[31]
  • 역대 민선 시장들이 당선 이전 모두 국회의원 경력이 있는데[32], 전국 광역자치단체장 가운데 유일한 기록이다.

9. 관련 문서[편집]





[1] 송영길 전 시장이 임기 이후 국회의원으로 복귀하여 당시 여당이던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내며 나름 인천광역시장 출신 중에선 가장 거물이었으나 대표로 선거를 지휘한 제20대 대통령 선거 패배 이후 대표직을 사퇴하였고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의원직을 내려놓고 출마한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 큰 격차로 낙선하고 결정적으로 민주당 돈봉투 사건의 타격을 맞아 대권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2] 선거 당시 당적.[3] 2대 시장 역임 후 2년만에 시정 복귀. 1954년 2월 사퇴.[4] 5.16 군사정변으로 면직.[5] 선거 당시 당적.[6] 선거 당시 당적.[7] 1995.12.6.
[[신한국당|
파일: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으로 당명 변경.
1997.11.21.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1997~2004).svg
신설 합당.
1998.4.3.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1997~2004).svg
탈당.
1998.4.27.
[[자유민주연합|
파일:자유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입당.
[8] 2002.2.20.
[[자유민주연합|
파일:자유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탈당.
[9] 2011.12.23.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으로 신설 합당.
2013.5.4.
[[민주당(2013년)|
파일:민주당(2013년) 흰색 로고타입.svg
]]
으로 당명 변경.
2014.3.26.
[[새정치민주연합|
파일:새정치민주연합 흰색 로고타입.svg
]]
으로 당명 변경.
[10] 민선 최초의 인천광역시 출신 인천광역시장. 다만 정치적 기반지는 본인이 시장, 군수와 3선 국회의원직을 역임한 경기도 김포시였다.[11] 2017.2.13.
[[자유한국당|
파일:자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으로 당명 변경.
[12] 유정복 49.4% vs 송영길 49.1%로 0.3% 차이였다.[13] 다만 통합진보당과 단일화를 했으면 모르겠지만, 이 당시 새정치민주연합과 통합진보당은 갈라설 데로 갈라선지라 단일화를 할 일이 없었다.[14] 이중 계양구와 부평구는 30년 넘게 민주당계의 고정 텃밭인지라 이전에 승리한 미추홀구, 중구, 동구, 연수구 중 하나라도 밀리면 게임이 끝나는 상황이었다.[15]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민경욱의 지역구인 연수구 을을 구성하는 송도1, 2, 3동에서는 박남춘에게 56%의 표를 몰아주었다.[16] 그나마 여기도 격차는 고작 4.2%p로 대통령 선거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 즉 국회의원은 이재명을 찍으면서 인천광역시장은 유정복을 찍는 교차 투표 현상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17] 물론 단일화로 인해 접전 양상이 된다면 지지자들을 투표장으로 끌고올 요인이 되지만 말그대로 시나리오 중 하나일 뿐 반대도 가능하다.[18] 3% 이상 득표자만 기재.[19] 보수 정당 후보.[20] 보수 정당 후보, 새정치국민회의단일화.[21] 보수 정당·민주당계 정당 후보.[22] 진보 정당 후보.[23] 진보 정당 후보.[24] 제3지대 정당 후보.[25] 진보 정당 후보.[26] 민선 6기 시절 구호를 다시 가져왔다.[27] 2019년 인천 붉은 수돗물 사태, 2020년 수돗물 유충 사태.[28] 안상수는 3연임[29] 실제로 신도시에 집중했던 박남춘은 청라시장이라는 비아냥을 들었으며, 유정복도 제물포권과 서구에 집중하면서 경제자유구역 주민들 사이에서 비토정서가 있다.[30] 최기선 - 경기도 부천시, 안상수·송영길 - 계양구, 유정복 - 경기도 김포시, 박남춘 - 남동구.[31] 1·2대 최기선 전 시장은 모두 여당 후보로 당선됐다. 특히 민선 2기 당선 시점에서 자유민주연합DJP연합에 의해 연립 여당으로 묶여 있었다. 6·8대 유정복, 7대 박남춘 전 시장은 나란히 여당 후보 자격으로 승리했다. 4대 안상수 전 시장은 2006년 선거때는 야당인 한나라당 소속으로 당선됐지만, 이후 한나라당이 집권하며 여당 소속으로 임기를 마쳤다.[32] 특이하게도 최기선, 유정복은 모두 인천과 이웃한 외부 지역(최기선 - 부천, 유정복 - 김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