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 다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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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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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왕국 발루아 왕조군인
가톨릭 성인
프랑스의 수호성인

잔 다르크
Jeanne d'Arc | Jehanne d'Arc[1]


파일:알베르 랭슈_잔 다르크.jpg
《잔 다르크》, 알베르 랭슈, 1903년. 판화.[2]
출생
1412년 1월 6일
(추정[3])
프랑스 왕국 바르 공국 동레미
(現 프랑스 그랑테스트 레지옹 보주동레미라퓌셀 코뮌)
사망
1431년 5월 30일
(향년 19세, 추정)
노르망디 공국 루앙
(現 프랑스 노르망디 레지옹 센마리팀루앙시)
사형 (화형)
학력
무학 (가톨릭 신앙 홈스쿨링)[4]
직업
양치기(가업), 군인
종교
가톨릭
약력
발루아 왕조 원정군 지휘관
1429년 4월 29일 ~ 1430년 5월 23일
발루아 왕조 포로
1430년 5월 23일 ~ 1431년 5월 30일
서명
파일:잔 다르크 서명.svg[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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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다르크 가문
국적

성인명
아르크의 성녀 요안나
(Saint Joanna Arcensis)
본명
잔 다르크
(아르크의 잔; Jeanne d’Arc)
아명
자네트
(Jeannette)[1]
별칭
오를레앙의 처녀
(La Pucelle d'Orléans)
신장
158cm[2]
시복
1909년 4월 18일, 교황 비오 10세
시성
1920년 5월 16일, 교황 베네딕토 15세
축일
5월 30일(가톨릭, 성공회 성녀 요안나 아르크 축일)
작품
《리옹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서명
《랭스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답장》 서명
《랭스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서명[3]
그 외 잔 다르크가 받아 쓰게 한 편지들 #
부모
아버지 자크 다르크
(Jacques d'Arc, 1380~1431)
어머니 이자벨 로메
(Isabelle Romee, 1384-1458)[4]
형제
자매

첫째 오빠 자크 다르크
(Jacques D’Arc, 1402~1450)
둘째 오빠 장 다르크
(Jehan D’Arc, 1404~1477)
언니 카트린 다르크
(Catherine D’Arc, 1405~1429)[5]
셋째 오빠: 피에르 다르크
(Pierre d’Arc, 1408~1467)
배우자
없음 (독신)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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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왕국 발루아 왕조 원정군 지휘관}}}}}} ||}}}}}}}}} ||

1. 개요
2. 생몰년
3. 표기
10. 여담
10.1. 잔 다르크 성가
10.2. 잔 다르크 신드롬
12. 외부 링크



1. 개요[편집]


아르크의 잔(Jeanne d'Arc), 아르크의 성녀 요안나[6] 또는 잔 다르크프랑스 왕국 발루아 왕조 시대의 군인, 기사이다.[7]

프랑스구국영웅이자 가톨릭 성인,[8] 그리고 프랑스의 수호성인[9] 중 한 명. 걸스카우트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10] 교회 일치 운동의 일환으로 성공회에서도 성인으로 여긴다.

평민 출신으로 잉글랜드 왕국과의 백년전쟁(1337-1453) 말기에 오를레앙 공방전에서 승전하여 전세를 유리하게 역전시켰다. 그녀의 기적적인 활약으로 인해 결국 프랑스가 백년전쟁에서 이기고, 잉글랜드를 대륙에서 축출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잔 다르크 자신은 잉글랜드군에 사로잡혔고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조국 프랑스로부터 구명도 받지 못했으며, 편파적인 종교재판을 받고 화형되었다. 그녀는 사후 프랑스 애국주의의 상징이 되었으며, 종교적으로도 시복·시성되어 그 명예가 회복되었다. 마녀이자 역적(逆賊)으로 몰려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지만 죽어서는 성인이자 성웅(聖雄)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녀의 인생은 너무나 극적이고 놀라운 것이어서 오늘날에도 종종 회자되는 살아있는 성녀의 모델이자 여성 영웅의 대표로 손꼽힌다. 17세평범한 무학문맹 시골 소녀가 갑자기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며 프랑스 왕실에 나타나 프랑스 왕국의 총사령관이 되었고, 반년 넘게 지속되던 오를레앙 전역을 열흘 만에 승리로 이끌고, 영국 최고의 명장 존 탈보트[11]를 포로로 잡더니(파테 전투) 역사에 길이 남을 우회 대기동을 성공시켜 랭스를 함락시키고, 샤를 7세의 대관식을 올려 백년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었다. 긴 인류 역사에서 불가사의해 보이는 일들이 많았지만, 신화 시대를 제외한 기록이 검증 가능한 시대에 이와 비견될 만한 일은 거의 없었다.

물론 비천한 출신이나 개인이 저항하기 어려운 시대적 흐름을 극복하고 뛰어난 업적을 남긴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사에서도 손꼽히는 무력의 명장을 격퇴시킨 한량 출신의 하급 장교, 10배가 넘는 인구격차를 극복하고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무적의 황제, 인간적 고난과 국내외적인 시련을 극복하고 나라의 100여년 전성기를 마련한 대왕, 사상 최대 제국을 전복시킨 극빈층 출신 황제처럼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기적적 성과를 이뤄낸 인물들은 분명히 존재하긴 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고귀하지도 않던, 그저 평범한 미성년 여성이 갑자기 혜성같이 나타나 저런 전공을 세운 경우는 그녀의 경우를 제하고 역사상 아무도 없다.

잔 다르크의 존재가 기적처럼 느껴지는 건 그녀가 잉글랜드, 프랑스라는 유럽의 양대 강대국 간의 기록에서 교차검증이 가능한 시대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활동하던 1400년대면, 중세를 넓게 잡는 관점에서도 중세 말에 포함시키는 시기이다. 그리고 중세의 편견과 달리 당대 지식인들은 어리석은 인물들이 아니었다.[12] 그런 상황에서 적군과 아군에게 비슷하고 교차 검증 가능한 기록이 남았으며, 서로의 상황을 고려하면 거의 동일하게 취급받던 인물이다.

기동전 운영으로 잉글랜드군의 허를 찌르고, 사기가 떨어져 영국군만 보면 도주하던 프랑스군의 사기를 고양시키고 전투를 선두에서 이끌어서 전세를 바꾸어 조국을 구하고, 심지어 일자무식이었음에도 종교 재판에서 당시 평생 신학만 다뤘을 재판관들을 논리로 이겨서, 화형도 억지로 시키게 만들었다. 이 모든 걸 20세도 채 되지 않은 시골 소녀가 이뤄냈다. 오죽했으면 잉글랜드 병사들도 그녀를 성녀라고 믿고, "우리가 성녀를 불태웠다"고 하느님께 용서를 빌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성녀 운운이 현실성을 낮춘다고 볼 수 있으나, 당시로서는 존재 자체가 놀라웠고 여러 가지 설이 오갔어도 일반적인 이해를 넘어섰으니 당사자가 내세운 대로 '하느님의 기적'이라며 퉁치고 넘어가는 것에 가깝다.

잔 다르크의 최대 공적은 대포를 효율적으로 운용한 것도, 샤를 7세의 왕위 계승을 도운 것도 아니라, 전쟁이 너무 길어진 탓에 몸값을 지불하거나 받아내는 짓을 반복하면서 귀족들의 '게임'이 되어버린 백년전쟁을 프랑스의 존망이 걸린 '성전'으로 뒤바꿔 버린 점에 있다. 그녀가 실제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어땠는지는 아무래도 좋았고 중요한 건 "하느님은 '프랑스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다"라는 그녀의 말을 믿은 사람들에게 프랑스라는 국가의식과 프랑스인이라는 국민 의식을 심어주게 된 것이라고 하겠다. 프랑스 혁명이나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그녀가 재평가 되었던 이유도 이것이다.


2. 생몰년[편집]


생몰년은 1412년 1월 6일(추정) ~ 1431년 5월 30일. 생일로 알려진 1월 6일은 주님 공현 대축일인데, 잔 다르크가 샤를 7세를 왕위에 올린 것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또는 잔 다르크에게 신성함을 부여하기 위해 사람들이 날짜와 이야기를 지어냈을 수도 있고, 대충 그 무렵에 태어났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근대에 이르기까지도 가톨릭유럽에서는 부모들이 자식들의 생일을 실제 날짜보다는 가까운 가톨릭 축일 날짜로 기억하는 예가 흔하였다. 생일이나 나이를 사소하게 생각해서, 공문서의 나이조차 라틴어로 대략(vel circlter, ver circa)이란 말을 덧붙여 썼다.[13] 잔이 태어날 무렵 밤에 들이 몇 시간 동안 날개를 퍼덕이며 울었다는 전설이 있다. 1412년이라는 생년도 종종 의심을 받는데, 1407년이라는 설도 있지만 잔이 스스로 재판정에서 19살쯤 되었다고 말하였으므로 1411년에서 1412년쯤에 태어난 것은 확실해 보인다. 1407년설은 의문점 문서에서 후술된 공주 설과 얽히기도 한다. 프랑스는 1412년 1월 6일을 공식 탄생일로 보고 2012년에 600주년 기념식을 하는 등 후하게 대접한다.


3. 표기[편집]


흔히 알려진 'Jeanne d'Arc'는 현대 프랑스어식 표기이며, 중세 프랑스어로는 '주안 다르크(Jehanne Darc)'라 썼다.[14] 영어로는 존 오브 아크(Joan of Arc)라고 쓴다. 잔(Jeanne)은 라틴어 이름인 요안나프랑스어식 표기.

이외에 패색이 짙던 프랑스군에게 전환점이 된 오를레앙에서의 첫 승리를 기려 '라 퓌셀 도를레앙(la Pucelle d'Orléans, 오를레앙의 처녀)'이라고도 불린다. 어린 시절에는 잔이 아니라 애칭으로 자네트(Jeannette)라고 불렸다고 한다. 다르크 외에도 타르트(Tart),[15] 다르트(Dart), 데이(Day) 등 다른 철자를 썼다는 말도 있다. 사서에 따르면 동레미 남쪽의 아르캉바루아(arc-en-barrois)에서 태어나 성을 다르크(d'arc, 드 아르크)로 썼다는 소리도 있다. 현재 통용되는 이름으로 확정된 것은 사후 25년이 지나서의 일로, 재심 재판 공문서에 Johanna Darc로 기록됐다. #

한국어권에서는 구한말에 한자 음차를 따른 약안 아이격(若安亞爾格)으로 불렸다가 일제강점기와 1950년대에는 '잔 닥크', '짠 닥크', '짠 다크'로 불리었고,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는 '잔 다크'라는 표기가 많이 쓰여졌다.

1980년대 이후로도 '쟌 다르크', '잔느 다르크' 등 다양한 표기가 있지만 현대 대한민국 표준어 표기로는 '잔 다르크'로 통일한다. 가톨릭에서는 '성녀 요안나 아르크' 혹은 '성녀 요안나 아르첸시스'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가톨릭 세례명으로 쓰일 땐 '요안나', ‘잔 다크’ 혹은 ‘잔 다르크‘ 등으로 쓰인다. 일례로 기업인 조안 리는 중학교 3학년 때 세례를 받으면서 스스로 세례명을 정했는데, 잔 다르크의 삶에 반하여 '요안나'로 정했다고 한다.


4. 유명 어록 및 편지[편집]



잔 다르크의 유명 어록과 편지를 정리한 문서.


5. 특징[편집]



잔 다르크의 특징을 정리한 문서.


6. 무기 및 장비[편집]



잔 다르크의 무기 및 장비를 정리한 문서.


7. 생애[편집]



잔 다르크의 생애를 정리한 문서.


8. 의문점[편집]



잔 다르크와 관련된 여러 설들과 각종 의문점들을 모아놓은 문서.


9. 평가[편집]



후대의 평가와 각국의 평가를 모아놓은 문서. 잔 다르크와 여성, 군인으로서의 잔 다르크 등 관련 기록이 있다.


10. 여담[편집]


  • 흔히 중세 시대 인물이란 인식이 강한 편이고 실제로도 활동하던 시대가 그렇긴 했지만, 워낙 어린 나이에 활약하고 세상을 떠나서 그렇지 자기 어머니처럼 오래 살았으면[16] 백년전쟁의 종식도 보고 르네상스 때 인물이 되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년생)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년생)와 같은 시대 사람이 되어 그들의 활약을 어느 정도 보았을 것이다.

  • 잔 다르크가 프랑스 왕국 원정군에서 활동한 기간(1429년 ~ 1430년)은 동로마 제국마지막 황제의 전 황제인 요안니스 8세가 재위한 기간인데 이때 서서히 쇠퇴한 동로마 제국은 결국 다음 황제가 즉위한 이후 멸망했다. 대체 역사 소설인 용병대장과 성녀는 주인공과 잔 다르크가 이 동로마 제국을 구원하는 이야기이다.

  • 잔 다르크가 프랑스 왕국 원정군에서 활동한 기간(1429년 ~ 1430년)은 조선세종의 재위기간(1418년 ~ 1450년)과 겹친다.

  • 각종 망언으로 자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평가가 좋지 못한 프랑스 극우 정치인 장마리 르펜이 허구한 날 잔 다르크 동상에 가서 잔 다르크를 팔아먹어서 원래 좌우 막론하고 존경받던 잔 다르크가 괜히 극우와 인종 차별주의의 상징으로 전락해서 이미지가 나빠졌다. 아닌 게 아니라 종종 잔 다르크 동상에 훼손 행위들이 일어나고 있다. 잔 다르크는 무슨 죄인가 싶다.

  • 오를레앙에서는 매년 4월 말에서 5월 초까지 잔 다르크 축제가 열리고 있다. 몇백 년 전부터 이어온 축제이며, 중세적 분위기를 가득 품은 축제로, 오를레앙을 대표하는 축제이기도 하다. 오를레앙의 랜드마크인 생 크루아 대성당(Sainte Croix Cathedral)의 스테인드 글라스에는, 성녀가 된 잔다르크의 모습이 새겨져 있기도 하다. 잔다르크 축제 기간 동안 오를레앙 대성당에서는 성인이 된 잔다르크를 위한 기념미사 행사도 진행된다.


10.1. 잔 다르크 성가[편집]



Chant à Sainte Jeanne d’Arc #
Jeanne, Seigneur, est ton oeuvre splendide
Un cœur de feu, une âme de guerrier
Tu les donnas à la Vierge timide
Que tu voulais couronner de laurier.
Refrain
Sainte Jeanne de France
Notre espérance repose en vous
Sainte Jeanne de France
Priez, priez pour nous.
Jeanne entendit dans son humble prairie
Des voix du Ciel l'appeler au combat
Elle partit pour sauver la patrie
La douce Enfant à l'armée commanda.
Refrain
Des fiers guerriers elle gagna les âmes:
L'éclat divin de l'Envoyée des Cieux
Son pur regard, ses paroles de flammes,
Surent courber les fronts audacieux….
Refrain
Jeanne, c'est toi notre douce espérance
Du haut des Cieux, daigne entendre nos voix
Descends vers nous! Viens convertir la France,
Viens la sauver une seconde fois!
Refrain
영어 번역:
Joan, Lord, is your splendid work
A heart of fire, a warrior’s soul
You gave them to the timid virgin
Whom You wished to crown with laurels.
Chorus
Saint Joan of France
Our hope lies in you
Saint Joan of France
Pray, pray for us.
Joan heard in her humble meadow
Voices from Heaven calling her into combat.
She went to save the country
The sweet Child commanded the army.
Chorus
She won over the souls of proud warriors:
The Divine luster of Heaven’s messenger
Her pure gaze, her fiery words
Were able to make bold brows give way…
Chorus
Joan, you are our sweet hope.
From high in the Heavens, deign to hear our voices.
Come down to us! Come convert France,
Come save it a second time!
Chorus
한국어 번역:
잔, 주여, 당신의 훌륭한 업적이십니다.
불타는 마음, 용사의 영혼
용기가 없는 처녀에게 줬습니다.
월계관을 씌우려 하였습니다.
합창
프랑스의 성 잔
우리의 희망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프랑스의 성 잔
기도,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잔은 변변치 않은 초원에서 들었습니다.
천국의 목소리들이 그녀를 전투에 불렀습니다.
그녀는 나라를 구하러 갔습니다.
그 귀여운 아이는 군대를 지휘했습니다.
합창
그녀는 자랑스러운 용사들의 영혼을 사로잡았습니다:
하늘의 사자의 신성한 광채
그녀의 순수한 시선, 그녀의 불타는 말
눈썹이 굵어지며 양보할 수 있었습니다...
합창
잔, 당신은 우리의 달콤한 희망입니다.
하늘 높은 곳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세요.
이리 오세요! 와서 프랑스를 개종해주세요,
두 번째 구하러 오세요!
합창

위의 성가는 잔 다르크가 1920년 시성되기 전 리지외의 테레사(소화 데레사) 성녀가 1894년 5월 8일 쓴 시를 프랑스인 작곡가 Vincent Lecornier가 성가로 작곡한 것이다. 이 시는 잔 다르크의 일생을 요약했으며, 이후 프랑스인들을 도와주고 기도해달라는 마음으로 성가가 만들어졌다. #


10.2. 잔 다르크 신드롬[편집]


신기술이 등장했을 때 젊은 세대가 두각을 나타내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백년전쟁이 시작되는 시기의 전투는 석궁과 기사로 대표되지만, 한 세기가 지나면서 대포의 화력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귀족계급의 고위층은 여태까지 그랬듯이 여전히 중무장한 기사들의 돌격전술에 의존하고 있었다. 반면 백년전쟁 말미에 등장한 잔 다르크는 대포 위주의 공격적인 전투를 통해 프랑스군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기마충격술에 대한 인상도 옅은 데다 귀족 계급도 아닌 잔 다르크가 "기사는 장식입니다"를 외치며 위와 같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이에 신기술에 대해 신세대가 강세를 보이는 것을 '잔 다르크 신드롬'이라 말하게 되었다. 이전 기술에 대한 경험이 고정관념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새로운 기술에 노출되고 이전 산업에 이해관계를 가지지 않은 초보자가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현실의 대표적 예시인 빌 게이츠는 소프트웨어를 독자적인 상품으로 인식하여 운영체제 개발사로서의 강점을 이용, 로터스나 넷스케이프 등의 유망회사를 밀어내 MS의 급성 성장을 이루어진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11. 대중매체에서[편집]





12. 외부 링크[편집]






[1] 전자는 현대, 후자는 중세 프랑스어 표기다.[2] 가톨릭 매체에서 자주 사용되는 그림 중 하나이다. 현재 상상화가 아닌, 그녀의 모습을 직접 묘사한 초상화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잔 다르크의 생전인 1429년 5월 10일 작성된 파리 의회 협약 초본 문서에 그녀를 그린 낙서가 있기는 하지만, 묘사가 워낙 단순하여 초상화라 보기는 어렵다. # 한편 15세기 후반에 그려진 초상화도 있으나 위작 논란이 존재한다. 1903년에 그려진 이 상상화는 과거에 그려진 어떤 상상화보다도 실제 외모 기록과 비슷하게 그려진 편이다.[3] 정확한 것은 아니다. 잔 다르크가 정확히 언제 태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1412년이라는 것도, 훗날 재판을 받을 때 '나이는 몇인가'라는 질문에 '아마 19살쯤?'이라고 대답한 것을 근거로 잡은 것. 프랑스어판 위키백과에도 '1412년 무렵 출생(née vers 1412)'이라 되어있다. 동시대 역사가들이 기록해두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개 농민의 딸 따위가 태어난 것에 관심을 갖는 연대기 작가는 없었다.[4] 1412년 ~ 1428년. 잔 다르크의 말에 의하면 학교에 가는 대신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이자벨 로메에게 가톨릭 신앙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글을 배우지 않았으므로 프랑스 왕국 군인으로 활동하면서 편지를 주민들한테 보낼 때 휘하 기사 루이 드 콩트(Louis de Contes)와 신부 장 파스크렐(Jean Pasquerel)의 도움을 받았다. #[5] 1430년 3월 28일 잔 다르크가 체포되기 2개월 전에 프랑스의 랭스(Rheims) 주민들에게 쓴 편지에서 나온 서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