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마리 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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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화학상 수상자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
1987년
장 마리 렌
찰스 피더슨
도널드 크램

장 마리 렌
Jean-Marie Lehn


파일:장 마리 렌.jpg

출생
1939년 9월 30일 (84세)
프랑스 제3공화국 알사스 로사임
(現 그랑테스트 바랭 로사임)
국적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1939~1940
[[나치 독일|

나치 독일
display: none; display: 나치 독일"
행정구
]]
(프랑스 군정청)1940~1944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 공화국 임시정부1944~1946
[[프랑스|

프랑스
display: none; display: 프랑스"
행정구
]]
1946~
직업
화학자
분야
초분자화학
학력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이학 / 학사)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화학 / 박사)
소속
하버드 대학교
ENSCS
주요 업적
초분자물질 폴다머르의 고안

1. 개요
2. 약력



1. 개요[편집]


장 마리 렌(Jean Marie Lehn)은 프랑스의 화학자로 초분자 물질을 고안했다.

2. 약력[편집]


1939년 9월 30일 현 그랑테스트 레지옹 로샤임에서 제빵사의 넷째 아들로 출생했다. 오베르나에 있는 프레펠 콜레주에 들어가기 전 프랑스가 최전선이었던 2차대전 시절에도 줄곳 로샤임에서 거주했다.

콜레주에 입학한 후 1년동안 건반 악기에 흥미가 있는 학생이었다. 1950년부터 1957년까지 7년간 콜레주에 다니면서 과목은 라틴어, 희랍어, 영어, 독어, 프랑스 문학을 수강했으나, 곧 과학에 흥미가 생겼고, 결국 바칼로레아로 철학을 이수하면서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에서 철학 공부를 지망했지만, 1학년부터 자연과학을 수학했다. 이때, 유기화학적 구조가 일관되고 엄밀함에 감명이 생기면서 아예 본가에서 실험 기구를 놓고 화학 실험을 할정도로 화학에 흥미가 생겼고, Guy Ouirisson의 화학강의를 수강하면서 유기화학 연구를 희망했다.

이학 학사를 취득하고 난뒤, 학부 시절 화학 강의를 진행했던 Ouirisson 랩에 CNRS의 주니어 회원으로 들어갔다. 첫 연구는 삼중테르펜의 배좌의 물리화학적 특성에 관련된 주제였다. 이때, NMR 분광기를 이용한 전극으로 아르칸에 더욱 깊게 관통하는 기법을 사용했다. 이를 정리해서 1961년 “스테로이드 분해에서의 NMR 신호의 양성자의 치환 유도되는 전환을 위한 첨가 규칙”이라는 첫 논문을 기재했다.

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난뒤, 하버드 대학교의 호버트 번즈 우드워드의 랩으로 포닥을 했고, 비타민 B12의 총체적인 합성에 관한 연구를 했다. 이때, 양자역학을 접하면서 호프만과 함께 양자역학을 이용한 첫 화학 계산을 수행했다. 이때, 우드워드-호프만 법칙[1]이 성립되는 연구 과정을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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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입체화학이나 페리 고리모양 반응에서 나오는 활성 에너지에 적용되는 유기화학 법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