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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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언(拱彦)
본관
아산 장씨[1]
출생
1852년 11월 9일
경상도 청송도호부 부서면 상덕천동
(현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신흥리 상덕천마을)[2]
사망
1926년 5월 6일[3]
경상북도 청송군
묘소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신흥리 오랑실마을
상훈
건국포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독립유공자. 1997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장한탁은 1살 연상의 9촌 삼종손(三從孫)이다.

2. 생애[편집]


1852년 11월 9일 경상도 청송도호부 부서면 상덕천동(현 경상북도 청송군 파천면 신흥리 상덕천마을)에서 아버지 장재명(蔣在明, 1821 ~ 1901. 2. 9)과 어머니 경주 김씨(1822 ~ 1885. 2. 13) 김치운(金致運)의 딸 사이의 5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896년 1월 안동부 청송군에서 의병을 일으킨 심성지 의진에 입대하여 후방장(後防將)에 선임되었다. 그해 4월 심성지 의진이 김하락 의진, 김상종(金象鍾) 의진과 연계 하에 의병 활동을 할 때 참전했다가, 현내면 감은동(현 안덕면 감은리) 뒷산 기슭에서 일본군과 마주쳐 교전 끝에 병사 7~8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리는 데 일조했다.

그 뒤 부동면 상평동(현 주왕산면 상평리) 마평(馬坪)과 경주군 등지에서 교전하였지만 중과부적으로 패전하였고, 그해 4월 10일에 좌익장 권성하, 참모 조광규(趙光奎) 등과 함께 포군(砲軍) 3초(哨)를 이끌고 영덕의진을 지원하려고 했으나 영덕의진이 이미 패하여 후퇴하자 철수하였다.

의진이 해산된 뒤에는 청송군에서 은거하다가 1926년 5월 6일 별세했다.

199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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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송와공파(松窩公派) 25세 호(鎬) 항렬.[2] 아산 장씨 집성촌이다.[3] 음력 3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