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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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河龜
1918년 ~ 2017년 11월 23일 (향년 99세)

1. 개요
2. 생애
3. 가족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교수, 출판인, 기업인. 본관은 안동(安東).

종로서적 회장을 역임하였고, 가수 장기하의 할아버지다.


2. 생애[편집]


1918년 평안북도 의주군 광성면 마전동(現 신의주시 마전동)에서 아버지 장승언(張承彦)과 어머니 송신언 사이의 3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신의주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국 간도성(間島省) 연길현(延吉縣)[1]으로 건너가 용정실천여학교(龍井實踐女學校) 교유(敎諭), 은진중학(恩眞中學) 교무주임 등을 역임했다. 이후 일본으로 유학해 도쿄제국대학 예과수료하고 조치대학 본과에 입학했으나, 재학 중 태평양 전쟁의 발발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귀국하였다. 귀국 후에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철학과에 선과생(選科生)으로 입학한 뒤 본과로 편입하여 다니다가 1944년 학도병 기피를 이유로 체포되어 1년간 옥고를 치렀고, 곧 8.15 광복을 맞았다.

광복 후 동생이 소련군의 핍박으로 옥고를 치른 뒤 온 가족이 함께 월남했고, 1946년 경성제국대학에서 이름이 바뀐 경성대학을 1회로 졸업했다.[2]

이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독어독문학과 전임강사, 예과 교수를 거쳐 1949년 경신중학교 교무주임을 역임했고,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에 부임해 교무과장을 겸임하였다. 당시 독일어 교과서를 출판하였는데 이 수입으로 부인의 병원을 개원하였다. 부인 원금순은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3] 출신으로 산부인과 의사로 활동했다.

1955년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로 유학을 떠났으나 어머니의 사망과 교과서 출판업자의 과열경쟁으로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학업을 중단하고 이후 동생 장하린과 함께 종로2가의 종로서적을 인수해 경영했다.

1980년대 초 동생에게 사장 자리를 넘기고 회장직에 올랐고 한신대학교 이사장을 역임했다.

2017년 11월 23일 향년 9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3. 가족[편집]


장남 장덕원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와 세존상사[4]를 설립해 대표로 재직했고, 차남 장덕주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 국민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장덕원의 아들이 장기하와 얼굴들의 리더 장기하다. 손자인 장기하도 서울대 사회학과를 나와 할아버지 아버지 대에 이어 본인까지 3대가 서울대 출신이 되었다.

  • 장재원(張載元)
    • 장승언(張承彦) / 妻 송신언
      • 장남 장하일(張河一) 전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 妻 허흥순
      • 차남 장하구(張河龜) / 妻 원금순
        • 장남 장덕원(張德苑) 전 세존상사 대표 / 妻 유경희
        • 차남 장덕주(張德柱) 전 국민대학교 교수 / 妻 김순영
        • 장녀 장은경 / 夫 이상훈 가톨릭대학교 교수
      • 3남 장하린(張河麟) / 妻 김오배
      • 장녀 장신덕
      • 차녀 장신화
      • 3녀 장신영
      • 4녀 장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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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용정시.[2] 경성대학은 1회 졸업생 배출 후 곧 폐교되고 서울대학교로 통합된다.[3] 고려대 의대의 전신으로, 수도의과대학과 우석대 의대를 거쳐 현재는 고려대학교 재단에 인수되었다.[4] 밸브 제조 및 의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