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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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역할
3. 동아시아권 국가에서
4. 서양권 국가에서
5. 중동에서
6. 기타



1. 개요[편집]


한자: 宰相
영어: Chancellor

한문제: 모든 일을 담당 관리들이 각자 맡아서 한다면, 재상인 경이 하는 일은 무엇이오?

진평: 재상이란 직위는 위로는 천자를 보좌하고 음양을 다스려 사시를 순조롭게 하며, 아래로는 천지 만물의 생육을 제때에 자라게 하고 밖으로는 사방의 오랑캐제후들을 진무하며, 안으로는 백성들을 백성들로 하여금 황실에 의지할 수 있도록 어루만져 주고, 관리들을 감독하여 각기 자기의 맡은 바 임무를 다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기 진승상세가. 군주제에서의 재상의 역할을 명료하게 설명한 발언이다.

임금을 돕고 모든 관원(官員)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일을 맡아보던 이품(二品) 이상의 벼슬 또는 그 벼슬에 있던 벼슬아치이다.

군주국에서 군주의 국정을 통할하는 최고 책임자. 군주제 국가에서는 대개는 재상을 두었으며 이는 왕족이 아닌 관료가 임명될 수 있는 최고의 직위이다. 위대한 업적을 세운 재상은 "대재상"[1] 혹은 "명재상"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한자문화권에서는 상국, 승상, 시중, 문하시중, 동중서문하평장사, 영의정, 태정대신, 한국의 삼국시대에는 상대등(신라), 상좌평(백제), 국상, 막리지(고구려) 등의 직책명으로 존재했다.

재상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문헌은 주례(周禮)이다. 주례에 따르면 재상은 본래 제사 음식을 준비하고 나눠 주는 요리사를 의미했다. 제정일치 사회였던 고대 사회에서 제사는 지도자의 통치행위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본디 ‘재()’는 요리를 하는 자, ‘상()’은 보행을 돕는 자로 둘 다 수행하는 자를 이르던 말이었으나, 중국 진()나라 이후에 최고 행정관을 뜻하게 되었다.

이 표현이 세대를 거듭하면서 지도자의 제사를 돕는 요리사에서 국정을 총괄하는 신하로 뜻이 바뀌었다. #


2. 역할[편집]


재상은 군주제 국가의 2인자로서 군주를 보필하는 관료들의 우두머리이다.

재상은 군주의 명을 받아 자신의 책임으로 국정을 운영하였다. 조직의 대규모 개편, 막대한 재정지출, 외국과의 동맹 및 선전포고, 고위관료의 임명 등 중요사항에 대해서는 군주에게 명을 받아야 했지만 그 외 사소한 사항에 대해서는 재상은 자유롭게 자신이 뜻하는 바를 실현할 수 있었다. 수상이나 총리와 비슷한 뜻이기는 하나 현대에 이 두 단어는 의원내각제입헌군주제 국가에서 행정부수반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그리고 옛 대한제국 시절 때는 내각총리대신이라는 직책이 존재했는데 이는 동일한 직책명을 가진 현대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처럼 선출되는 정부수반의 의미는 없었고 그냥 군주가 임명하는 재상과 같은 위치였다.

그래도 현대를 제외한 옛 전제군주제 국가에서도 재상의 권력과 대우는 시대와 국가에 따라서 천차만별이었다. 오스만 제국에서는 본래 술탄이 주최하던 국무회의를 훗날 재상이 주최하고 이끌었으며 프로이센 왕국에서는 그 유명한 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국가의 실질적인 중심이 되어 독일의 통일을 주도하였다. 이는 물론 통상적으로 국가의 2인자라는 위치의 작용이 크기는 하였으나 위와같이 모든 재상들이 큰소리를 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군사정권 국가에서의 비군인 출신 재상이나 유능하고 비범한 군주가 통치하는 국가라면 재상은 그저 쩌리에 불과한 경우도 많았다. 이 경우 현대의 부통령과도 비슷한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3. 동아시아권 국가에서[편집]



3.1. 한국[편집]


한편으로는 한국 역사에서 재상 중심으로 정치를 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정도전이 이러한 주장을 하였는데, 왕은 어쩔 때는 유능해서 나라를 잘 이끌어가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일정한 자격에 따라 선발되어 나라를 운영하는 재상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태조 이후 태종이 올라서면서 힘을 잃게 되었다. 다만 이는 정도전의 정치사상을 지나치게 극단화시켜서 이해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으며, 과연 정도전이 왕권을 약화시키고 재상권을 강화시키려 한게 맞느냐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꾸준한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태종 이후 세종이 의정부서사제를 하여 왕권과 신하의 권력의 조화를 이루려고 했고 단종 때 김종서, 황보인 등의 재상들이 황표정사를 하여 정도전이 꿈꾼 재상중심정치를 실현하였으나 태종처럼 왕권지상주의를 추구하는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무너지며 정도전의 꿈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었다.






3.2. 중국[편집]


춘추전국시대에는 시대와 나라별로 상방(相邦), 상국, 승상, 영윤 등의 명칭이 혼재했다. 이 중 영윤은 초나라를 비롯한 강남 근방 왕조에서 주로 사용한 명칭이다. 한나라에서는 승상, 어사대부, 태위 등 삼공을 재상이라고 했다. 당나라에서는 초기는 3성의 장관이다가 점차 정사당(중서문하)에 모여 회의하는 인원에 동삼품 관명을 부여하였고, 이 관명을 얻어야 재상이라 하였다. 송나라동중서문하평장사를 재상으로 하고 참지정사를 두어 부재상으로 하였으며 군정에서 재상 역할은 추밀원(중국사)의 추밀사가 담당했다. 송 신종 연간 관제개혁으로 동중서문하평장사와 상서복야를 재상으로 삼았고 남송 연간에 복야를 승상으로 바꾸었다. 원나라는 중서성(中書省)에 승상을 두었다. 명나라는 공식적으로는 재상 제도를 폐지했지만 고위 관료 중 일부를 지명하여 내각대학사로 삼아 실질적인 재상 역할을 맡겼다. 청나라에서는 재상 역할에 군기처의 군기대신(軍機大臣)이 포함되었다.



3.3. 일본[편집]


메이지 유신 이전 일본에서는 정3위 참의(参議)의 당명으로 쓰인 관직명이었다. 참의는 조정의 행정 조직인 태정관의 차관직 중 하나로, 태정관의 순위가 태정대신 - 좌대신, 우대신(여기까지 장관급) - 대납언 - 중납언 - 참의(여기까지 차관급) 순인 점을 감안할 때 중국과 한국의 재상직에 비해 낮은 관직이긴 하였으나, 실제 운용상으로는 공가들 사이에서는 공경(당상가, 고급귀족)과 지하가(하급귀족)을 가르는 경계로 쓰였으며,[2] 에도시대 이후의 다이묘들 중에서는 도쿠가와 가문, 고산케와 영지가 매우 넓었던 에치젠 마쓰다이라, 카가 마에다, 사쓰마 시마즈까지 8개 가문만이 오를 수 있었던 귀한 관직이었다. 이것도 중앙정부가 무력화되었던 전국시대에는 유력 다이묘들이 헌상을 하든 자칭하든 여러 방법을 통해 이 관직명을 칭한 경우가 많았으나, (호소카와 타다오키우키타 히데이에 등) 다시 중앙정부의 최소한의 권위가 복권되면서 특히 무가정권에서는 극히 일부만이 칭할 수 있는 고급 작위로 인식되었다.

무가 정권이 해체된 후에는 총리의 별칭으로 쓰이는 단어이기도 한다. 빌리켄 재상, 달마 재상, 원맨 재상, 괴짜 재상 등.


4. 서양권 국가에서[편집]


동아시아도 마찬가지이지만 서양의 재상직도 국가와 시대에 따라 어떤 직위가 재상이라 볼 수 있는지 다르다. 우선 중세에는 왕권과 국가관료제 자체가 미약했던 관계로 따로 재상이 있다기보다는 원래 각자 고유 업무를 수행하는 여러 궁중직 중에서 중요한 직위가 곧 나머지를 잠정적으로 통솔하는 것에 가까웠고, 따라서 재상들의 역할이나 권력 자체도 애매할 뿐만 아니라 시대와 지역별로 재상으로 기능하는 직위가 달랐다. 봉건제의 특성상 권력 자체가 구조적이기보다는 한 개인이 장악하고 이에 의존하던 시대라 사례가 개별적일 수 밖에 없다.

예컨대 프랑크 왕국에서는 메로베우스 왕조 동안 궁재(maior domus)가 그 역할을 하였으나, 그 궁재가 왕의 자리를 차지하여 열린 카롤루스 왕조에 들어서는 사실상 폐지되어 후대의 다른 왕조에서도 자취를 감추었다. 또한, 잉글랜드 왕국에서도 명확하게 재상으로 정해진 직위 없이 대법관(Chancellor)이나 재무감(Treasurer), 섭정(Regent)/호국경(Lord Protector) 등 그때그때 다른 직위를 지닌 채 가신들의 수장이 되었고, 근대에 접어들어 관례적으로 제1재무경(First Lord of the Treasury)을 재상으로 보기 시작하고도 한동안 관행으로만 취급되어 예외 사례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봉건제의 전형으로 간주되는 프랑스에서는 대체로 재상의 권력이 미약했지만, 그 전신 프랑크 왕국 시절 메로베우스 왕조궁재로서 왕 대신 실권을 장악한 카롤루스 마르텔과 아예 왕위 자체를 빼앗은 그의 아들 피핀의 경우처럼 왕국의 실권을 장악한 사례도 있었다.

그래도 거시적으로 본다면, 영어 기준으로 표기를 하여 크게 챈슬러(Chancellor) 혹은 채임벌린(Chamberlain)이 재상직에 해당되었다. 물론 그나마도 서로 같은 직위로 대응번역되는 직위들도, 국가에 따라 업무가 달랐다. 챈슬러는 본래 고대 로마에서 법정의 서무와 기록 등을 맡던 정리(廷吏)인 'Cancellarius'에서 비롯하였는데, 여기서 파생하여 영국프랑스에서는 인장 관리나 사법 업무를, 독일에서는 외교 업무를 맡는 자리로 분화하였다.[3] 또 채임벌린은 '방(chamber)을 관리하는 사람(ling)'이라는 뜻으로 만들어진 어휘로서 살림을 책임지는 역할로 탄생하였는데, 동로마 제국프랑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카스티야, 포르투갈에서는 궁정 업무를 총괄하는 관직 중 하나였지만 신성 로마 제국세르비아에서는 재정 업무를 관장했다.

노르만 정복 이후로 왕권이 높았던 잉글랜드에서 재상은 상당히 강력한 권력을 가졌다. 이 잉글랜드의 모든 귀족을 장악한 특성 상 왕과 직접 교류하는 핵심인사들이 재상이 되었고, 그럴 경우 왠 남작 나부랭이가 백작보다도 실질 권력이 강한 경우도 흔했다. 더 엄밀하게는, 노르만 왕조 이래 잉글랜드는 왕국 내에 영역제후로서의 공작위 자체가 없었고 백작도 봉신(baron)[4] 사이에서 제한적 권한과 의무를 지닌 명예직의 일종 수준이라서 법관(Juticiar)이나 주행정관(shire reeve; sheriff) 등 어떠한 역직을 맡는지, 그 역직이 실권이 많은지가 중요하였다.[5]

반면, 프랑스는 대부분 성직자기사출신이었다. 란드헝가리도 거의 성직자들이었다. 신성 로마 제국은 좀 특이한데 오토 1세마인츠 대주교에게 재상직을 내린 이후 마인츠 대주교가 대대로 제국 재상(Reichserzkanzler)을 겸임했고, 쾰른 대주교가 이탈리아의 재상을 맡았으며, 트리어 대주교가 갈리아 재상직을[6] 맡았다. 이들은 선제후이자 주교공으로 물론 세습직이 아니었고, 그중엔 비귀족출신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1306년부터 1320년까지 제국재상이자 마인츠 대주교였던 '아스펠트의 페터'의 아버지는 성 막시민 수도원에서 일하던 일꾼이었다. 스페인 왕국의 전신이 되는 카스티야 왕국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재상은 톨레도 대주교가 맡는 경우가 가장 많았고, 산티아고 대주교가 맡은 경우도 있었다.

재상은 왕을 제외하고는 행정의 최고 책임자였으므로 국가 운영을 위해서 당연히 학식있는 사람이 임명되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그런데 중세 유럽에서 학력이 높은 사람은 대부분 성직자였으므로 성직자가 재상이 되는 경우가 제일 흔했다. 프랑스의 유명한 리슐리외나 후계자인 쥘 마자랭도 성직자 출신이다. 그 밖에 평민, 기사, 남작 등의 다소 출신 성분이 낮은 경우도 똑똑하다 싶으면 재상에 임명되고는 했다. 그래도 재상은 관료 중 제일 높은 직책이었기에 어느 정도 격을 갖출 필요가 있었으므로, 왕이 임명할 때 평민 출신에게는 남는 남작령을, 성직자에게는 교회령을 주어 귀족으로 만드는 편법을 많이 썼다.

그러나 왕권이 강화되면서 이러한 양태도 달라졌다. 중세 후기 중앙집권이 강해지면서 재상의 권력도 강해졌고, 근대에 이르러 봉건영주들이 권력을 잃고 지방의 독자세력으로 존재하는 대신에 고급 관료화 되자, 재상에 대한 인식도 왕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직위로 점차 변화하였다. 잉글랜드는 15세기부터 공작이 재상이 되는 사례가 나타났으며, 18세기 무렵에는 공작들이 총리가 되는 경우가 흔하게 있었다. 워털루 전투로 유명한 웰링턴 공작도 총리직을 수행한 적 있다. 반면, 프랑스에서는 18세기까지도 여전히 성직자나 법률가 출신이 흔하고 귀족 출신 재상이 거의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과 지위는 웬만한 귀족보다 훨씬 강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변화는 기존과는 달리 특정 직위를 잠정적 정부수반으로 여기던 수준에서 벗어나 상설직을 별도 설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영국에서는 제1재무경을 총리로 보던 관행을 법으로 명문화하면서 각 장관을 총괄할 영국 총리(Prime Minister of the UK of GB and NI)를 신설하였고, 프랑스에서는 왕정과 공화정 등 국체 변동에 따른 변천 끝에 오늘날의 프랑스 총리(Premier ministre)에 이르렀다. 독일에서도 제국을 거쳐 연방공화국까지도 독일 총리로서 'Kanzler'를 유지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말로 번역할 때 '재상'은 전근대의 직책에 대하여 적용하고, 현대에는 역어로써 그보다 '수상'이나 '총리'를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5. 중동에서[편집]


와지르 참조.


6. 기타[편집]


재상으로 유명한 실존 인물들은 철혈재상이라 불린 오토 폰 비스마르크서필, 서희, 서눌, 제갈량, 류성룡, 리슐리외 등 수없이 존재한다.

창작물에서는 같은 정치관료인 대통령이나 군주인 국왕에 밀려 등장이 많지는 않지만 주로 중세 배경의 창작물이나 판타지물, 영지물에서 자주 볼 수 있으며, 섭정이나 권신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영지물일 경우 작품 특성상 반드시 등장한다. 선역으로 등장할 경우 주인공이나 주인공 동료들의 정치적 조력자 포지션을 맡는다. 성공가도를 달리는 주인공 일행의 행보를 고깝게 보는 자들을 견제하고 막아주는 느낌. 다만 선역보다는 비선실세로서 국정을 자기 마음대로 전횡하는 악역으로 등장하는 빈도가 비교적 높은 편. 특히 일본 작품이면 악역 재상이 실권을 쥐고 휘두르거나 아예 대놓고 드러눕는 짓도 등장하기도.

아랍권 국가의 재상(Vizier)은 대부분 순진하고 무능한 국왕을 앞세워서 국정을 장악하는 사악한 섭정처럼 묘사된다. 대표적인 예로는 알라딘자파, 파이널 판타지 11라즈파드, 파이널 판타지 XV아덴 이즈니아가 있다.

얼음과 불의 노래에서는 소협의회의 수관(King's Hand)이 재상 역할을 맡는다.

진격의 거인에서는 총통이라는 직책을 가진 캐릭터가 나온다. 이는 본래 공화국국가원수를 뜻하는 단어이지만 해당 작품에서는 국왕을 섬기는 신하인 재상처럼 등장해 독자들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

사극에서는 당연히 등장하지만, 정작 왕이나 왕실 인물, 장군, 혹은 예술가들이 사극의 주역을 자주 맡는 것에 반해 재상을 주인공으로 다룬 사극은 의외로 드물다. 특히 한국 사극에서 가장 많이 다뤄진 시기인 조선시대에 재상을 주역으로 다룬 사극은 한명회정도전, 징비록 정도.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게 영의정은 원칙적으로 최고의 관직이기는 하지만, 실권이조의 감독권을 지닌 좌의정[7]이나 병조의 감독권을 지닌 우의정보다 떨어졌고, 대부분 나이 많은 원로 대신이 영의정을 맡았기에 역동적인 생애를 다루는 사극의 주인공으로서는 적합치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과거 정통사극 때는 왕이 주인공으로 나올 때 재상들도 상당히 많이 나오고 비중이 많았으며 악역으로 나오지도 않았지만, 요즘의 퓨전사극으로 들어서서는 재상들이 그리 많이 나오지 않고 나와도 거의 악역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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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스만 제국의 재상 명칭(Vezir-i Azam, 혹은 Sadrazam)이기도 하다.[2] 당상가와 지하가를 합쳐서 공가귀족은 총 600가문 남짓이 있었으나, 이 중 참의 이상에 오를 수 있던 가문은 당상가 140여 가문 중 상위 100여 가문 정도였다.[3] 기원상 업무처는 사법부이지만, 보통 기록물 외에도 각종 공문서나 서신을 주고 받을 때 봉인(Seal)하고자 인장을 쓰기 마련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외교 관련 직책으로도 간주되었다.[4] 보통 남작을 가리키는 말로 알려져있으나, (특히 잉글랜드에서는) 종종 국왕의 직속 봉신을 일컬을 때에도 쓰인다.[5] 다만, 그렇다고 백작 자체가 유명무실했던 것은 아니다. 백작은 분명 봉신 중 유력자였고, 지휘권처럼 다른 역직이 보유하지 못한 고유 권한을 지녔다. 잉글랜드사에서 벌어진 몇몇 반란들은 백작들이 주도한 것이기도 했다.[6] 다만, 트리어 대주교는 재상으로서의 임지가 부르고뉴인데 그곳에는 부르고뉴 공국이 있었기에 그냥 명예직에 가까웠고, 부르군트 제2왕국(아를왕국)이 사라지고 프랑스 땅이 된 뒤에는 아예 이름뿐인 관직이었다.[7] 조선시대는 문관의 권력이 강했기 때문에 문관의 인사권을 맡는 이조를 감독하는 좌의정이 보통 최고의 실권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