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헌

덤프버전 :

파일:대한민국 대통령실 흰색 심볼.svg

[ 펼치기 · 접기 ]
정무수석비서관 (1968~1973)

초대
조시형
제2대
김학렬
제3대
김상복
제4대
홍성철

정무제1수석비서관 (1973~1979)

초대
류혁인

정무제2수석비서관 (1973~1979)

초대
정상천
제2대
고건

정무수석비서관 (1979~1980)

초대
고건
제2대
김창식

정무제1수석비서관 (1980~1988)

초대
우병규
제2대
허화평
제3대
정순덕
제4대
허문도
제5대
김윤환
제6대
이진우

정무제2수석비서관 (1980~1988)

초대
김창식
제2대
김태호
제3대
안응모
제4대
유흥수
제5대
김용래
제6대
강우혁





전병헌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파일:국정홍보처 CI(2004-2007).svg 대한민국 국정홍보처 차장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초대
이규석

2대
전병헌


3대
정순균





파일:민주당(2008년) 로고.svg 정책위원회 의장
제2대
박지원

제3대
전병헌


제4대
박영선

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대한민국 국회 방송공정성특별위원장
신설

제19대 전반기
전병헌


제19대 전반기
이상민
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대한민국 국회 국민안전혁신특별위원장
신설

제19대 후반기
전병헌


활동 종료

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동작구 갑)
제13-16대
서청원

제17-19대
전병헌


제20-21대
김병기



문재인 정부 초대 정무수석비서관
전병헌
田炳憲 | Jun Byung-hun


파일:전병헌정치인.jpg

출생
1958년 3월 17일[1] (66세)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내현리[2][3]
본관
담양 전씨[4]
현직
사단법인 김대중재단 기획위원장
사단법인 김대중재단 김대중 대통령 탄신 100주년 기념준비위원회 기획위원장
거주지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e편한세상
재임기간
제2대 국정홍보처 차장
2002년 10월 16일 ~ 2003년 3월 5일
문재인 정부 초대 정무수석비서관
2017년 5월 14일 ~ 2017년 11월 16일
링크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펼치기 · 접기 ]
가족
부인 조영아, 슬하 1남 1녀
학력
휘문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 / 학사)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경제정책학 / 석사[1])
병역
육군 학사장교 중위 만기전역
종교
개신교(예장고신)[2]
소속 정당

의원 선수
3
의원 대수
17, 18, 19
약력
평화민주당·신민주연합당·민주당 편집국장
새정치국민회의 홍보수석위원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비서관 (국민의 정부)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 (국민의 정부)
제2대 국정홍보처 차장 (국민의 정부)
제17대 국회의원 (서울 동작구 갑 / 열린우리당)
열린우리당 대변인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
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대통합민주신당 창당기획단장
제5대 한국e스포츠협회장
제18대 국회의원 (서울 동작구 갑 / 통합민주당)
제18대 국회 전반기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간사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
민주당 당대표 특보단장
제18대 국회 후반기 기후변화대응ㆍ녹색성장특별위원회 간사
노무현재단 자문위원
제19대 국회의원 (서울 동작구 갑 / 민주통합당)
제19대 국회 전반기 방송공정성특별위원회 위원장
민주당 원내대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
제19대 국회 후반기 국민안전혁신특별위원회 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문재인 정부)


1. 개요
2. 생애
3. 정치인 전병헌
4. KeSPA 회장으로서의 전병헌
5. 사면
6. 논란
7. 여담
8. 선거 이력
9. 소속 정당
10.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정치인. 제17, 18, 19대 국회의원. 문재인 정부 초대 정무수석비서관.

한국e스포츠협회 회장, 국제 e스포츠 연맹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이었으나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으면서 사임했다. 결국 대법원에서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나머지는 유죄 판결을 받아 정치생명이 끝날 뻔 했으나 2022년 윤석열 정부 특별사면 조치로 사면되어 다시 정계 복귀가 가능해졌고 현재 김대중재단 기획위원장으로 다음 총선 복귀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2. 생애[편집]


1958년 3월 17일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내현리에서 아버지 전필수(田弼秀)와 어머니 전주 이씨 이은례(李殷禮)[5] 사이의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육군 학사장교에 지원해 장교로 군 복무를 하며 중위로 만기전역하였다. 전역 후 평화민주당 당료로 정치 경력을 시작하였다.


3. 정치인 전병헌[편집]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전국구 후보 30번으로 공천되었으나 낙선하였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 정책기획비서관을 거쳐 2001년에는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2002년 국정홍보처 차장을 지냈다.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동작구 갑 선거구[6][7]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하여 한나라당 서장은 후보를 이기고 당선되었다. 이후 18대 총선과 19대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서 당선되면서 3선 의원이 되었다.

초선 의원이었던 2004년 일본군의 기록을 추적하여 장준하 선생이 실제로 일본군에서 탈영하여 독립군에 합류했다는 증거를 찾아내고 이것이 장준하 선생의 자서전 '돌베개'에 기재한 내용과 일치함을 밝혀낸 적이 있다.

100분 토론 400회 특집에서는 유시민 전 장관, 신해철, 진중권 동양대 교수, 김제동과 같은 진영이 돼서 나경원 의원, 제성호 중앙대 법대교수, 이승환 변호사, 전원책 변호사로 구성된 보수 진영과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하지만, 같은 팀 내 멤버들이 워낙에 한 성격하는 양반들이라 존재감을 두드러지게 표출하진 못했다.

19대 총선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로서 투쟁에 미온적이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15년에는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를 통해 최고위원이 되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측근비리 잡음으로 더불어민주당 공천에서 컷오프되었다. # 이어 2016년 3월 22일 공천배제에 승복하고, 백의종군을 선언하였다. 무소속 출마, 국민의당 입당 등을 놓고 고심하던 중 양산을 방문, 문재인 당시 전 당대표를 만나 대선까지 함께 가자는 설득으로 당에 남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제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더문캠에서 전략기획본부장이라는 중책을 맡았으며, 문재인 대통령의 초대 청와대 정무수석 자리에 임명됐다. 보통 정무수석비서관은 재선의원 출신의 원외 인사가 담당하는 자리이다. 수도권 3선의원에 원내대표까지 역임했던 전병헌이 맡기에는 다소 급이 낮은 직위 아니냐는 시각도 있지만, 현재 국회가 여소야대의 5당 체제임을 고려해서 관례를 깨고 정무수석에 중량감 있는 전병헌을 기용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2018년 초 대대적인 검찰 수사와 기소가 이뤄지면서 스스로 사퇴하였고, 이후 재판에서 일부 유죄 확정판결을 받아 사실상 정계 복귀가 어려워졌으나 2022년 윤석열 정부 특별사면 조치로 사면되어 다시 정계 복귀가 가능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면을 결정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 윤석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 한동훈 서울중앙지방검찰청 3차장을 맡아 당사자인 전병헌 전 정무수석을 기소하고 재판에 세운 사람들이다.

2023년 11월 8일 사단법인 김대중재단 김대중 대통령 탄신 100주년 기념준비위원회의 기획위원장으로 위촉되어 출범식에 참석했다.


4. KeSPA 회장으로서의 전병헌[편집]


2013년 1월 24일에 제5기 KeSPA 지도부의 협회장으로 취임하였다. 현직 국회의원이면서 당의 원내대표를 역임하고 있는 힘 있는 인물을 협회장으로 활용해 협회의 위상을 올리려는 의도가 있는것으로 보인다.

협회 입장에서는 현직 국회의원, 심지어 제1야당의 원내대표라는 거물을 데려와서 정치적 연줄 등을 활용해 힘을 써보자 한 것이고, 전병헌 입장에서는 젊은층의 시선이 많이 몰려있는 이스포츠계에서 본인 이미지를 좋게 포장하는 서로 상부상조하는 결과물이었는데 전병헌이 퇴임 할 때까지만 해도 이는 매우 효과적이었고, 심지어 전병헌은 이때의 성과[8]도 어느정도 포함되어 문재인 정부의 초대 정무수석[9]으로 영전하는 초대박을 쳤다. 이와 별개로 개판이나 다름없던 케스파에 대한 억제력[10]이 생길뿐만 아니라 게임을 좋아하고 게이머에 친화적인 국회의원 협회장이 부임하여 여러 업무를 추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치계에도 게이머들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긴것 만으로도 게이머들은 기뻐한 것이다.

그가 한 일 중 가장 유명한 것이라면 이 사례. 2013년 롤드컵에서 한국팀이 우승을 하면 코스프레를 하겠다고 이전에 공약을 했는데 우승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자신의 의원실에서 보좌관들의 도움을 받아 분장을 하여 인증샷을 올렸다. 멩스크 코스프레도 그렇고 젊은 층에선 게임 코스프레하는 국회의원으로 유명했다.

사실 전병헌은 케스파 회장 본연의 직무보다는, 국회의원의 위치에서 이스포츠업계에 도움을 줬다고 보는게 맞는게, 셧다운제 완화 법률을 제출, 게임물 심의 업무의 완전 민간 이양 미래를 생각해보면 신의 한수가 될뻔 했다. 법안의 제정이나, 입안등에 좀 더 공을 들였는데, 이는 케스파 회장으로서가 아니라 명백히 국회의원 업무의 범주에 해당되기 때문. 이 때문에 사실 전병헌의 이스포츠 관련 업적이라는 것들은 잘 살펴보면 케스파 회장으로서의 공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많다. 실제로 막상 전병헌의 케스파 회장으로서의 업적을 말하라고 하면 쉽게 말하기 힘든게 바로 이것 때문이다. 보통 일반 게이머 입장에서는 이런 법안에 관해서는 보통 관심을 가지지도 않고, 관심있게 보더라도 세세하게 파보지 않으면, 알기 힘든 사항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후술할 과는 제껴두더라도 전병헌 본인에 대한 이스포츠 업계에 관한 공을 절하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당장, 최소한 같은 당 원내 대표의 심기[11]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라도(...)[12] 실제 전병헌이 케스파 협회장으로 있는 동안, 게임업계 탄압 관련 법안 발의는 전부 여당의 몫이었는데, 적어도 국회에서 게임업계를 대표할 사람 자체가 없어서 국회 양쪽에서 두들겨 맞고 다니던 시절보다는 훨씬 낫다는건 부정하기 힘들다.

2014년 롤드컵 분산개최를 라이엇이 미리 통지했음에도, 그 당시 전병헌이 회장으로 있던 케스파는 대회의 흥행을 위해 분산개최라는 내용을 알리지 않아 팬들의 많은 비난을 받았다.

또한 군 생활관 게임채널 차단사건에 매우 강력히 항의하여 게임을 좋아하는 죄 없는 장병들을 위한 모습을 보였다. 결국 국방부는 국군 장병들에게 죄송하다고 사죄한 뒤 다시 게임채널 차단을 해제하였다.

국회 윤리자문위원회에서 국회의원 겸직 금지 원칙이 논란이 됐고 결국 겸직 금지 통보에 따르기로 결정하였고 2014년 12월 16일에 협회장에서 사임하게 되었다. 윤리위에서 실권이 없는 명예직은 허용한다는 입장에 따라, 현재는 명예회장직으로 있다.

2016년 5월 29일 19대 국회 임기가 끝나고 난 뒤, 더이상 국회의원 신분이 아니게 되었고 곧바로 KeSPA 지도부의 협회장으로 다시 복귀했다. 2017년 5월 11일자로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물러난 직후 2017년 5월 16일 롤인벤, Pgr21 게임 관련 사이트에 글을 남겼다. # #

실질적으로 한국 e스포츠의 발전은 블리자드,라이엇 게임즈같은 게임사와 온게임넷같은 방송사의 노력이 큰 비중을 담당했던게 사실이다. 따라서, 전병헌 체제의 KeSPA가 주도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단지 적어도 케스파가 이전과는 달리 자체적으로 밥상을 뒤엎으려는 짓을 하진 않았고, 그로 이미지 메이킹이 잘 된 케이스인것도 사실이다. 롤로 치면 '버스도 탈줄 아는 사람이 타야한다'는 격언을 몸소 실천한 셈.

엄밀히 따지자면 한국e스포츠협회 문서를 참고하면 알겠지만 전병헌 체제의 KeSPA가 한 업무는 스포츠 협회라면 지극히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하지만, 전병현 이전, 전병헌 이후의 케스파가 그 당연히 해야되는 일을 제대로 한 사례가 없다시피한걸 생각해보면, 단순히 '당연히 해야되었던 일'이라고 평가 절하당할만한 사실은 아니다. 괜히 중간만 가는게 가장 어렵다는 말이 있는게 아니다. 당시에도 한국의 나이 좀 있는 정치인들이 게임 관련 방침을 정한다고 하면 십중팔구 시대착오적인 꼰대질로 망가지는 일이 빈번했는데, 전병헌은 전술된 코스프레부터 게이머 친화적인 언행들을 지속적으로 표출하여 이미지 메이킹을 잘 했고, 또한, 중견급의 힘있는 정치인이라는 특수한 위치가 상술한 것처럼 게임업계에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도움이 된건 분명한 사실이고, 그게 선이든 위선이든 결과적으로 이스포츠계에 기여를 한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이러한 공은 후술할 과와 함께 쓰레기통으로 쳐박혔다.

2017년 11월 8일 검찰은 2015년 전병헌의 보좌진들이 롯데홈쇼핑에서 수억 원대 로비 자금을 받은 정황을 포착해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 수석은 오전 내내 취재진의 전화를 받지 않으며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오후 돌연 ‘입장문’이라며 청와대 출입기자단 간사에게만 두 줄로 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입장문’에서 "언론에 보도된 롯데홈쇼핑 건과 관련, 어떠한 불법에도 관여한 바 없습니다"면서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심정입니다"라고 밝혔다.

검찰은 2015년 당시 롯데홈쇼핑이 전 수석이 회장을 맡은 한국 e스포츠협회에 3억 원대 후원금을 냈고, 전 수석의 보좌진과 가족 등 측근들에게 상품권 등이 흘러들어간 정황을 포착,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수석의 비서관이었던 윤모 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2017년 11월 23일 SBS 취재 결과, 롯데홈쇼핑 재승인이 확정되기 6일 전에 전병헌 전 수석이 롯데홈쇼핑 대표를 만나 e스포츠협회에 대한 후원을 요구했다는 뇌물 혐의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진술을 검찰이 확보한 걸로 SBS 취재 결과 드러났다. 검찰은 롯데홈쇼핑 강 전 대표는 6월에 전병헌 수석을 다시만나 500만 원어치 기프트카드를 건넸고, 7월에는 후원금 3억 3천만 원을 보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기프트카드를 전병헌 수석의 가족이 사용한 시기와 장소 등을 파악한 결과 강 전 대표 진술의 신빙성이 크다고 판단하였다. # 전 수석은 당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위원으로 롯데홈쇼핑 재승인 심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 수석은 2014년 12월에 케스파 협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는데 공금횡령 사건은 2015년에 일어났다며 시기가 맞지 않다는 의견이 있지만 이 비리 사건은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 위원의 권력을 악용한 것이므로 케스파 협회장 임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리고 위와 같은 논란들이 조사가 진행됨에 따라 사실임이 밝혀지면서 전병헌이 케스파 회장으로서 쌓아 온 좋은 이미지는 박살이 났으며[13], 그의 정치 생명도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자세한 논란 내용은 하단 참조.

최근 주변 측근들을 통해 2024년에 있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신이 3선을 역임했던 옛 지역구인 동작구 갑 출마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지만 이미 뇌물수수,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과 벌금 2000만원, 업무상 횡령죄에 대해 징역 8월에 집행유에 2년을 선고받은 만큼 사실상 정치적 생명이 끝난 것으로 여겨졌다.


5. 사면[편집]


2022년 윤석열 정부 특별사면으로 사면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면을 결정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장관문재인 정부 시절 윤석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 한동훈 서울중앙지방검찰청 3차장을 맡아 전병헌 전 정무수석을 재판에 세운 사람들이다.

이듬해인 2023년 4월 28일 신계륜 전 의원과 같이 더불어민주당 복당이 완료되었다.


6. 논란[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전병헌/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여담[편집]


  • 2022년 기준 재산은 20억 원이다.


8.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새정치국민회의|
파일:새정치국민회의 흰색 로고타입.svg
]]

4,971,961 (25.3%)
낙선 (30번)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동작 갑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46,291 (43.24%)
당선 (1위)
초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통합민주당(2008년)|
파일:통합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38,014 (44.86%)
재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56,794 (55.56%)
3선



9.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평화민주당|
파일:평화민주당 글자.svg
]]

1988 - 1991
정계 입문

[[신민주연합당|
파일:신민주연합당 글자.svg
]]

1991
합당[14]

파일:민주당(1991) 글자.svg

1991 - 1995
합당[15]

[[무소속|
무소속
]]

1995
탈당[16]

[[새정치국민회의|
파일:새정치국민회의 흰색 로고타입.svg
]]

1995 - 2000
창당

[[새천년민주당|
파일: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0 - 2003
합당[17]

[[무소속|
무소속
]]

2003
탈당[18]

[[열린우리당|
파일:열린우리당 로고타입.svg
]]

2003 - 2007
창당

[[대통합민주신당|
파일:대통합민주신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07 - 2008
합당[19]

[[통합민주당(2008년)|
파일:통합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08
합당[20]

[[민주당(2008년)|
파일:민주당(2008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08 - 2011
당명 변경

[[민주통합당|
파일:민주통합당 연두 로고타입.svg
]]

2011 - 2013
합당[21]

[[민주당(2013년)|
파일:민주당(2013년) 흰색 로고타입.svg
]]

2013 - 2014
당명 변경

2014 - 2015
합당[22]

2015 - 2017
당명 변경

2017 - 2023
탈당[23]

2023 - 현재
복당

10. 둘러보기[편집]









[1] 담양 전씨 인터넷 족보에는 1957년 6월 20일 생으로 기재되어 있다.[2] 담양 전씨 집성촌이다.[3] #[4] 경은파 28세 炳(병)◯ 弼(필)◯ 항렬[5] 이택하(李澤夏)의 딸이다.[6] 노량진동이 포함된 선거구이다.[7] 원래 동작갑 선거구는 서청원이 5선을 할 정도로 보수 성향이 강한 지역이었는데, 전병헌이 당선된 이래 민주당 강세 선거구로 바뀌었다.[8] 물론 애초에 원내대표까지 맡았던 의원이었기에, 이전 정무수석들의 케이스를 보면 영전하는건 늦냐 빠르냐의 시간문제였다는 평가였다. 저 성과는 그 시간을 당긴 셈.[9] 대통령을 보좌하여 행정부와 입법부 간 업무 및 대(對)국회 관계를 총괄적으로 조율한다. 주로 대통령 대리로 여야의 원내대표와 교섭하고 정치권과 관련된 행사에 참석한다. 국무총리 바로 다음의 위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셈.[10] 당연한 얘기지만, 젊은 층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얻는다라는 지극히 정치적인 목표가 있어 취임한것이기에, 적어도 자신이 협회장으로 속해있는 케스파에서 문제라도 발생하는 날에는 본인 입장에서는 무조건 마이너스 요인이 되기에, 본인부터 아랫사람들을 갈구면서(...) 관리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적어도 케스파가 지금보다 더한 병크는 안터트릴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11] 당장, 당내에서 당대표말고 원내 대표보다 높은 사람은 없다고 봐도 되며, 상황따라서는 당론의 대표가 되는 입장이다. 그리고 이걸 달았다는 점에서 직위를 빼더라도 애초에 당에서 최소한 중진급 이상의 입지라는 얘기다. [12] 전병헌이 진심으로 게임업계를 위했든, 그렇지 않았든 간에 게임업계를 저격하는 법안을 낸다는 것은 케스파라는 기관장을 겸임하고 있는 전병헌의 커리어에 무조건 흠집이 난다는 의미고, 정치계에서 구를대로 구른 사람이 이걸 놔둘리가 없기 때문.[13] 한편 케스파는, 이후 그리핀 사건 등 여러 논란과 악재 등으로, 귀신같이 부정적 이미지로 돌아갔다.[14] 민주당과 신설 합당[15] 민주당과 신설 합당[16] 새정치국민회의 합류를 위한 탈당[17] 새천년민주당에 흡수 합당[18] 열린우리당 합류를 위한 탈당[19]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 합당[20] 민주당과 신설 합당[21]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22]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23]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임명으로 인한 자동 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