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절(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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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勝節(中國)

1. 개요
2. 2015년 전승절 기념행사
2.1. 행사 참석 국가
2.2. 퍼레이드에 참가한 외국군
2.3. 등장무기
2.4. 지상부대
2.5. 방공부대
2.6. 해상부대
2.7. 전략부대
2.8. 정보부대
2.9. 지원부대
2.10. 공군부대
2.11. 기타


1. 개요[편집]


중국의 기념일. Victory over Japan Day(대일전승일)인 1945년 9월 3일을 기념하는 날로, 이 날 중화민국 국민혁명군 참모총장 허잉친이 일본군 지나파견군[2] 사령관 오카무라 야스지로부터 항복문서를 받았다.

서구권 국가나 소련나치 독일과 싸웠기 때문에 Victory in Europe Day(대독전승일, 승리의 날) 5월 9일을 기념하는 것처럼 중국은 일본 제국과 싸워서 승리 선언을 받은 이날을 전승절로 기린다.

중화민국은 1946년부터 매년 이 날을 국경일로 정했으나 중국은 건국 이후 중국국민당의 기념일이라고 하여 9월 3일 대신 8월 15일로 기념하다가 다시 2014년부터 9월 3일로 기념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중화민국을 군벌들이 할 거하고 일제에 타협적이었던 정권이라고 폄하하던 것을 벗어나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일본의 침략에 맞서 하나의 중국이라는 이념을 확립했다는 것을 인정함과 동시에 타이완, 정확히는 중국국민당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이다. 한편 대만의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에 대한 규제도 약간이나마 풀리기 시작했다.

2. 2015년 전승절 기념행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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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절 70주년 공식 로고

2015년 9월 3일에 벌어진 기념식[3] 및 같이 치러진 열병식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70주년을 맞는 2015년 전승절엔 천안문 광장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거행했고[4] 박근혜 대통령도 초대를 받아 이에 응하여 기념행사에 참여하였다.

시진핑 주석은 기념연설에서 인민해방군 병력을 30만 감축하겠다고 천명하였다. 이는 군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예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되며[5], 이는 이렇게 병력이 줄어드는데도 국방비 증가율은 주요국 중에서 가장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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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병식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 오른쪽 부터 시진핑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 이슬롬 카리모프 대통령, 반기문 UN 사무총장 등

2.1. 행사 참석 국가[편집]


해당외신기사를 참고했으며, 국가정상급은 30개국에서 참여했다고 한다.

2.1.1. 대한민국[편집]


참석 여부로 논란이 많았으나 결국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의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과 함께 시진핑의 양 옆에 선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실제 행사에서는 시진핑 기준 왼쪽이 중국의 정치 인사들로 체워졌기 때문에 오른쪽으로 러시아 다음 위치에 서게 되었다.

한국은 북한의 도발 이전에 이미 청와대에서 전승절 참석을 공식 발표한 상태였다. 국내에서는 중국의 전승절 참석 여부를 둘러싸고 격한 논쟁이 펼쳐졌는데 이에 대한 내용은 박근혜 대통령 중국 전승절 참석 논란에서 확인할 수 있다.


2.1.2. 북한[편집]


김정은은 참석하지 않고 대신 최룡해가 대표로 참석한다. 한국이 미국 내 일각의 부정적인 시선까지 감수하면서 중국 전승절 참석을 결정했던 것도 이러한 중국의 대북 영향력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건 없었다

중국 누리꾼들 사이에서 김정은이 직접 방중하려고 했는데, 중국측에서 거절했다는 카더라도 있다.


2.1.3. 일본[편집]


중국은 일본에도 초대장을 보냈다. 이것은 독일이 종전일을 '파시즘으로부터 해방된 날'로 기리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6]

물론 일본은 응하지 않았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는 개인자격으로 참석하려고 했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열병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한국의 전승절 참석에 강한 반발을 보이고 있다. 또 산케이 신문은 전승절에 참석하기로 한 박근혜 대통령을 지목하여 자신들이 살해한 황후인 명성황후에 빗대어 비난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동아일보 청와대는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기로 하였고, 대신 외교부를 통해 기사 내림 요구를 비롯한 각종 항의를 전달하였으나 산케이 신문 측은 표현의 자유이기 때문에 기사를 내릴 수 없다고 반발했다. 산케이 신문은 반기문 UN사무총장의 참석도 트집을 잡았으나, 반기문 총장은 "UN은 중립적 기구 아니라 공정한 기구"라며 일본측의 항의를 일축했다. UN은 2차 대전 승전국들의 주도로 설립된 것이기 때문에 UN 대표가 중일전쟁 승전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다. 유럽의 V-Day 또한 마찬가지.

일본 정부 측에서는 "근본적으로 평화를 위하여 존재하는 기구인 UN이 명백한 군사력 과시 퍼레이드에 참석하는 것이 과연 옳은 행위인가"라며 비난했는데, 이 관점은 일본 뿐만 아니라 유럽 쪽에서도 지속적으로 제기한 비판이였다.


2.1.4. 미국[편집]


일본 언론들은 미국이 한국에 전승절에 참가하지 말라는 경고를 했다는 보도를 했다. 기사 이런 보도가 나가자 미국측은 이를 부인하며, 대한민국의 전승절 행사 참석에 "한국이 결정할 일"이라고 반응하였으며,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을 결정할때 결정을 '존중'한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미국의 존중 발언은 외교적 수사이다. 미국에서도 실제로 이해한다는 측과 한국을 마지막으로 침공한 국가 열병식에 참여하는것 자체를 이해할수 없다는 측으로 나누어진다.[7]

한편 미국도 미국이 전후 70주년을 '화해'에 방점을 둔 입장을 발표하였다

국방부 대변인을 통해서 중국의 열병식 행사에 대해 언급하며 "미군은 최강이므로 열병식을 할 필요가 없다"라는 패기돋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미국 스스로의 군사력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열병식을 통해 중국이 급속도로 성장한 군사력을 과시하는 것에 대해 경계하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8]

한편 미국의 전승기념행사에서는 주미 대만 대사격인 타이베이 경제문화 대표사무소 대표가 중화민국 이름 하에 초청되었는데 아마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에 대한 반감에서 나온 듯 하다는 분석. 중국 대사관 측의 항의에도 내리지 않고 결국 중국 대사는 퇴장했다. 계획대로 다만 대만이 아닌 중화민국의 이름으로 참가하였으니 타이완 독립운동 지지자에게는 어떻게 보였을까.


2.1.5. 러시아[편집]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참석이 확정되었다. 시진핑의 바로 왼쪽에 선다고 한다.


2.1.6. 유럽[편집]


서방국가로 분류되는 대부분의 국가들은 정상급 인사가 참석하지 않았지만 상당수 국가들이 장관급 인사 또는 중국 주재 자국 대사를 정부 대표로 행사에 참가하도록 했다.

유라시아 연합 회원국 중 아르메니아를 제외한 전 회원국 정상(이라고 해봐야 러시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타지키스탄)이 모두 참석했다.
비EU 국가들 중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드라간 쵸비치 대통령평의회 의장)와 세르비아(토미슬라브 니콜리치 현 대통령)의 국가정상이 참석했다.

유럽 연합의 경우 체코의 이의제기 우려로 인해 이사회 공식안건 상정을 통한 공동지침을 마련하지 못했고, 결국 EU회원국들 중 체코에서만 국가정상급 인사(밀로시 제만 현 대통령)가 참석했다.[9] 그 외에는 폴란드의 마우고르자타 키다바-브원스카 하원의장이 가장 고위직 EU회원국 참석자이다.

그 외 호주, 프랑스, 포르투갈, 이탈리아, 네덜란드, 뉴질랜드, 영국 등 13개국은 장관급 인사를 파견했다. 캐나다, 독일, 룩셈부르크, 미국, 유럽연합(EU) 등은 주중국 대사를 정부 대표로 행사에 참가토록 했다. #


2.1.7. 아프리카[편집]


남아공(제이컵 주마 당시 대통령), 수단 공화국(오마르 알 바시르 현 대통령[10]), 에티오피아(하일레 마리암 데살렌 총리), 이집트(압델 파타 엘 시시 현 대통령), 콩고민주공화국(조제프 카빌라 현 대통령) 등 5개국 정상이 참석하였다.


2.1.8. 남미[편집]


베네수엘라니콜라스 마두로 현 대통령이, 아르헨티나(아마도 보우도우 부통령)와 쿠바(미겔 디아스카넬 국가평의회 부의장)는 각각 부통령급의 인사가 참석하였다.


2.1.9. UN[편집]


반기문총장이 대표로서 참석하기로 밝혔다.동아일보. 이에 일본 정부는 반기문 총장이 중립성을 잃고 UN의 이름을 마음대로 사용한다고 비난하였다. UN이 이랑 싸우면서 생긴 단체인데 반면 미국 정부는 UN이 희생을 기리는 것은 적절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KBS


2.1.10. 대만[편집]


이번 전승절의 진 주인공 현실은 시궁창

대만도 7월 4일 신주현에서 전승절 행사를 열고 퍼레이드를 실시했다. 이 퍼레이드에서 마잉주 총통은 성명을 내고 "일본과 싸운 건 중국 공산당이 아니라 중화민국중국 국민당이다."라고 하여 롄 전 주석의 전승절 참석을 강하게 비판했다.[11]

대만에서는 롄잔중국 국민당 주석이 개인 자격으로 이전 국민혁명군중화민국 국군 출신 노병을 이끌고 참석하였다. 당연히 대만 내에서는 난리가 났다. 어느 정도나면 중국 국민당민주진보당, 보수파와 진보파는 물론이거니와, 대만독립운동 진영까지 어그로를 끌었다[12]. 졸지에 단합을 이루었다. 대만단결연맹 당원들은 롄잔의 귀국 일정에 맞추어 공항을 방문하여 '매국노'라고 비난 세례를 가했다. 신발까지 던진 듯. 부시? 또한 대만 내부에서는 '롄잔의 묘자리는 베이징에나 알아봐라!'라는 비난까지 일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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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 승전 70주년 행사에 참가한 마잉주 총통


2.1.11. 홍콩[편집]


8월 15일에 일본제국으로부터 해방날로 기념해오고 있다가 홍콩 국가보안법 이후 2020년에 중국의 전승절을 따라서 더 중요시하고 있다.#


2.2. 퍼레이드에 참가한 외국군[편집]


중국은 열병식 퍼레이드에 연합국 참여국군과 한국군도 참여하기를 요청했으나, 미국, 프랑스, 영국은 이를 거절했고, 한국도 열병식에 참가할 부대는 보내지 않았다.

이는 중국과 서방과의 냉각관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2005년 러시아 승리의 날 60주년 열병식에는 미군, 영국군도 참여했다. 특히 프랑스군이 입장할 때는 동부전선에서 소련산 야크기로 루프트바페에 맞서고 레지옹 도뇌르와 적기훈장을 모두 수훈한 뒤 심지어 귀향할 때 야크기를 몰고 돌아가도록 허락받았던 노르망디-니에멘 비행대의 활약을 소개했다.

등장 순서는 ABC순이었으나 러시아는, 전신국 소련이 연합국의 탱커 역할을 한 대주주인데다가, 태평양 전쟁에 참전해서인지 끝판왕 마지막으로 나왔다.

  •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13]
  • 벨라루스
  • 캄보디아
  • 쿠바
  • 이집트
  • 피지[14]
  • 카자흐스탄
  • 키르기즈스탄
  • 라오스
  • 멕시코[15]
  • 몽골
  • 파키스탄
  • 세르비아
  • 타지키스탄
  • 바누아투[16]
  • 베네수엘라
  • 러시아[17]


2.3. 등장무기[편집]


주로 중국군이 2000년대 들어 배치한 신형무기들이 나왔다. 열병식에 나온 무기들 중 84%가 처음 공개되는 무기라고 한다.

그럼에도 미국을 겨냥한 최신형 ICBM인 DF-41[18]이나 스텔스 전투기 J-20과 같은 민감한 무기는 나오지 않았다. 겉모양만으로도 스펙이 공개될 수 있다는 우려인 듯 하다.
차례로 다음과 같다.


2.4. 지상부대[편집]




2.5. 방공부대[편집]





2.6. 해상부대[편집]


  • HQ-10 대공미사일 -북해함대
  • YJ-12 대함미사일 - 동해함대
  • YJ-62 대함미사일 - 북해함대


2.7. 전략부대[편집]


모든 부대는 제2포병 소속이며, 각종 탄도탄이 나왔다.



2.8. 정보부대[편집]


  • 레이더부대
  • 무인기부대
  • 지휘정보체계부대


2.9. 지원부대[편집]


  • 모델 [19] 위생병부대와 장비관리부대가 나왔다.


2.10. 공군부대[편집]


  • KJ-2000 공중조기경보통제
  • KJ-500 공중조기경보통제
  • Y-8 전자전기
  • Y-8 초계기
  • KJ-200 공중조기경보통제기
  • JH-7A (FBC-1) 전투폭격기
  • H-6K폭격기
  • H-6U 공중급유기
  • J-11B 전투기
  • J-10A 전투기 (8.1 공군시범비행단)
  • J-15 함상전투기
  • Z-8A , Z-9, WZ-10 &Z-19 헬리콥터


2.11. 기타[편집]


  • 퍼레이드의 맨 처음에 등장한 이들은 중일전쟁에 참여한 노병들이다. 모두 80살이 넘는 고령이라 도보 행진은 하지 못하고 무개차에 타고 광장을 행진했다.
  • 1930년대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도 다수 참여했던 동북항일연군의 군기도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김일성이 이 부대소속이었던 것은 묘한 흑역사 하지만 6.25에 참전했던 중국 인민지원군(중공군)의 군기는 일체 등장하지 않았다.
  • 여군 대신 모델을 섭외해서 퍼레이드에 내세웠다는 이야기가 파룬궁계열인 대기원시보를 같은 곳에서 유포되었으나 모델출신 여군 이야기가 와전된듯. 기사 중국에서는 군인이 선망의 직업이기 때문에[20], 한국과는 달리 모델을 하다가 여군을 하는 게 이상한건 아니다. 다만 워낙 여성 지원자수가 많아서, 선발 기준의 커트라인만 넘으면 바로 외모보고 뽑는다는 카더라가 중국에 있기는 하다.
  • 베이징 지하철 1호선전승절 70주년 열병식으로 인해 시단역부터 다왕루역까지 모든 역을[* 이 구간이 1호선의 70%이다.] 전부 통과하였다.[* 이때문에 1호선과 2, 4, 5, 6, 10, 14호선간의 환승이 완전히 끊겼다.] 열병식 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참고로 열병식때문에 폐쇄된 동/서장안대로를 지나는 모든 버스 노선들이 타절하거나 아예 운행을 못 했다.

  • 2015년 전승절 기념 열병식을 지휘한 인물들 중에 왕슈빈은 2021년 6월 남부전구사령원으로 승진하여 7월 상장으로 진급하였고 우야난은 2022년 1월 중부전구사령원으로 승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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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0분부터 나오는 행군장면에서 군악대가 연주하는 노래는 1939년 광주광역시 출신 음악가 정율성이 작곡한 팔로군 행진곡을 열병식용으로 따로 제작한 곡이다[2] 지나는 당시 일본이 중국을 부르던 명칭이다.[3] 中国人民抗日战争暨世界反法西斯战争胜利70周年(중국 인민의 항일 전쟁 및 세계 반파시즘 전쟁 승리 70주년)[4] 이를 위해 천안문 광장과 자금성 주변은 출입통제가 이루어졌다. 이는 위구르족이나티베트족 또는 파룬궁 신도와 같이 중국정부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테러나 항의시위를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5] 중국군에는 게릴라 시절부터 내려오던 불필요한 조직(군 경영 회사나 연예부대 등등)이 상당히 많은데, 덩샤오핑 이래 계속적으로 이런 조직을 쳐내면서 조직의 정예화-효율화를 추구하고 있다.[6] 비슷한 예로 전통적으로 러시아의 전승절에는 꼭 독일의 대표를 초대했다. 이것은 히틀러 일당은 러시아(소련)뿐만 아니라 독일 국민의 적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를 무찌른 날은 함께 축하할 날이라는 의미.[7] 실제로 중국은 6.25 전쟁에서 대군을 파견해 멸망을 코앞에둔 북한을 적극적으로 도왔으며 이를 항미원조전쟁이라 하며 자신들이 옳다고 여기고 있다. 북진통일 좌절 이유 0순위이기도하다.[8] 러시아나 중국마냥 에이브럼스 꺼내오고 미니트맨 꺼내오고 랩터 떼거리가 성조기 그려주고 물개들이 보트 꺼내오고 하는 크고 아름다운 열병식을 미군이 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미군도 독립기념일 등의 국경일 때 소규모 병력이 축하 행사에 행진하는 사례는 있지만 보통은 의장대군악대 등에 한정되며, 러시아나 중국처럼 대규모로 야전 전투 부대 및 장비들이 퍼레이드하는 사례는 없다. 다만 스포츠에서는 조금 과다하다 싶을정도로 활용되는데, NBA에선 간혹 미 해병대 의장대가 하프타임 쇼에 나오기도 하며, 야외 스포츠의 경우 랩터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주 다니며, 특히 NFL, 대학풋볼, MLB 식전 행사에선 B-2를 날리기도 한다.[9] 체코헝가리와 함께 최근 EU의 외교정책과는 대조적으로 러시아, 중국 등과도 보조를 맞추는 성향을 보이는 정권이 들어선 대표적인 EU회원국이다.[10] 인종청소 및 전범 혐의로 국제형사법원의 체포영장을 받은 그 독재자 맞으시다(...)[11] 마잉주 총통은 2008년 취임 이래 중국과의 교류, 협력을 확대해 왔지만 '하나의 중국은 오로지 중화민국'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12] 이해가 안가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북한의 조국해방기념일 행사에 한국의 메이저급 정당 전 대표가 방북하여 참석한 상황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13] 꼴랑 3명 왔다(...) 국가의 막장스러운 사정을 보여주는 듯 외국군 중 가장 규모가 적다.[14] 3번째로 인원이 적다. 정복이 참으로 독특한데, 마치 찢어진 듯한 스커트에 샌들을 신고 나왔다.[15] 당시 제도혁명당의 좌파정권.[16] 군사력이 미약한 멜라네시아의 군대답게 꼴랑 5명이 참가했는데, 이를 두고 외국 유튜버들은 '바누아투의 군대 전체가 참가했다'며 드립을 치고 있다.[17] 가장 많은 수의 군인이 참석했다.[18] 중국판 토폴 M라고 불리는 미사일로서 실제 토폴M과는 무관하지만 거의 비슷한 컨셉이라고 알려져 있다.[19] 아래 기타 참조바람[20] 사병으로 입대하면 월급은 적지만 제대 후 당원가입, 공무원 임용에 커다란 혜택을 받을 뿐만 아니라, 위생병들은 성실한 근무성적을 인정받으면 별다른 학력 없이도 군의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 장교가 되면 대우가 좋아지는데다가 중국에서도 의사의 대우가 점점 개선되는 추세이기 때문에 선망의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