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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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증희
全曾熙
파일:전증희 회장.jpg
출생
1929년 7월 8일
사망
2023년 9월 1일 (향년 94세)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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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지천(芝泉)
학력
춘천간호학교 (학사)
약력
강릉 59육군병원 간호부장
을지재단 명예회장
을지재단 부회장
을지병원 상임이사
범석학술장학재단 이사장
가족
남편 박영하, 슬하 1남 박준영, 1녀 박준숙

1. 개요
2. 생애
3. 사망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교육인


2. 생애[편집]


그는 1929년 7월 8일 출생으로 1945년 춘천간호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간호장교로 자진 입대했고, 초임지는 대전 제2육군병원 수술실이었다. 부상병이 속출하는 수술실에서 전증희 회장은 군 간호학의 근간을 마련하고 간호 분야 발전의 초석을 다졌다. 그러던 1952년 군의관으로 근무하던 을지재단 설립자 박영하와 전쟁터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다. 전증희 회장은 1953년 대위로 예편하고, 남편인 박영하와 함께 1956년 서울 을지로에서 박 산부인과 병원을 개원했다. 을지재단의 시초인 병원에서 그는 개원 초 야간 간호와 병원 전반 업무를 처리하며 을지재단 성장에 큰 힘을 보탰다. 이후 1968년부터 1994년까지 재단법언 을지병원 상임이사로 재임하는 동안에도 산하 의료원의 환자 간호와 간호행정 발전에 힘을 쏟았다. 당시 그가 만든 을지의 간호행정 매뉴얼은 전국 병원에 퍼져나가 기본 교과서로 회자될 만큼 주목받았고, 이런 노력은 오늘날 을지대학교의료원 간호체계의 기틀이 됐다. 1994년부터 2010년까지는 을지재단 부회장으로 재임하며 의료사업을 통한 국민 보건 향상에 주력했다. 또 후학양성과 인재육성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997년에는 개인재산 10억원을 출연해 재단법인 범석학술장학재단을 설립한 뒤 초대 이사장으로서 27년간 2000여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600여 명의 우수한 연구자들을 발굴해 연구비 지원 사업 등을 펼쳤다. 이에 그치지 않고 2010년 사재 37억원을 사회에 환원했고, 2013년 남편 박영하가 사망하며 남긴 전 재산 172억원을 학교와 재단에 기부했다. 이렇듯 의학 발전과 후학 양성에 힘써온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에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했다.


3. 사망[편집]


2023년 9월 1일 향년 94세 나이로 사망해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묘역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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