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택수

덤프버전 :


필동감리교회 원로목사
전택수


성명
전택수
출생
1931년
평안북도 자강도
사망
2023년 5월 25일 (향년 92세)
학력
신한대학교 (신학과 / 학사)
목원대학교 (신학과 / 학사)
가족
배우자 윤정임, 자녀 전혜은, 전혜성, 전혜건, 전혜준
경력
감리교 전국부흥단 6대 단장
감리교부흥단연수원이사장

1. 개요
2. 생애
3. 사망
4. 저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목사


2. 생애[편집]


1931년 평안북도 자강도에서 태어났다. 1950년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정치보위부에 끌려가 심문 당하고 인민군에 징집 되어 6.25 전쟁에 참전했다가, 인천상륙작전이 벌어진 월미도에서 유엔군의 포로가 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포로교환 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대한민국 땅에 홀연 단신으로 남고 말았다. 이후 이승만의 반공 포로 석방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국군에 입대하여 만기제대 한 후에 한신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전도사로 사역하던 중 서병주의 권고로 목원대학교에서 수학하여 감리교 목회자가 되었다. 이후 1960~1990년대 부흥강사로 전국을 누비며 복음을 전하고 성령운동을 하며 감리교 전국부흥단 6대 단장을 역임하였다. 동시에 1987년 6월 민주항쟁에 부정적 의견을 보였고 비슷한 시기 감리교부흥단연수원 이사장을 역임 하면서 부흥사를 배출하는 일에 힘썼다. 첫 목회지였던 철원지방(現 포천지방)수입교회를 개척 및 건축하고 일동교회가 설립되기까지 일했으며 운천교회에서 부목사로 일했다. 철원향원교회와 청주에덴교회 서울필동교회에서 교회를 건축하며 담임목사로 일하고 서울연회에서 은퇴했다. 한편 호렙선교회 원년멤버로서 감리교 부흥과 교회성장을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3. 사망[편집]


노환으로 병원에 있던 도중 2023년 5월 25일 사망했다.


4. 저서[편집]


  • 목사가 되고 싶은 인민군, 그는 사선을 넘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31 03:13:35에 나무위키 전택수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