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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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953년 7월 27일[5] 전라북도 순창군 출생. MBC 기자 및 앵커 출신으로서 정계에 입문하여, 15-16·18·20대 국회의원, 통일부 장관, 열린우리당 의장, 대통합민주신당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나섰으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게 패배했다.[6]
2. 생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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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비판 및 논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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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별명[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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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진행 경력[편집]
- MBC 뉴스데스크 간추린 뉴스
- MBC 0시 뉴스 (1988년 5월 9일~1989년 4월 14일)
- 통일전망대 (1993년)
- MBC 집중조명, 오늘 (1993년)
- MBC 뉴스데스크 (1988년 2월 20일, 21일/1994년 3월 12일~20일, 1995년 7월 31일~8월 4일)[7] (1994년 9월 11일~1996년 1월 7일)[8]
- MBC TV 대토론 서울시장 후보 (1995년 6월 11일)
- MBC 선택 95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개표방송 (1995년 6월 27일)
6. 여담[편집]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청래 의원과의 친분이 깊다. 2007년 대선 당시 이재명은 정동영 팬클럽 시절부터 활동해 정동영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 인연으로 이재명의 성남시장 유세에 정동영이 지원을 나서기도 했고, 이재명이 2016년에 단식농성을 했을 때에도 직접 방문하여 응원하기도 했다. # 정청래는 노사모 단체 중 하나였던 국민의 힘[9] 단체대표였던 시절인 2004년부터 정동영의 지지단체인 정사모가 주관이 되었던 개나리 봉사단에 1500가량의 단체원을 이끌고 합류하면서 # 정동영과 친분을 만들었다.
- 정치에 입문한 1996년 이후 28년 동안 한번도 개인비리 의혹에 연루된 적이 없을 정도로 청렴함에 정평이 나있다. 이에 21대 총선 슬로건도 '깨끗한 전북의 힘, 정동영'으로 선정했다. 선거 막판 상대후보인 김성주 후보측에서 정 의원을 항해 네거티브를 제기하였으나 역시 잘못된 주장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명났다고 한다. #
- 현 아내인 민혜경의 아버지 민병호(閔丙浩)가 "기자 사위는 싫다"고 하자 MBC에 사표를 내고, 설악산으로 민혜경을 납치하는 소동을 벌인 끝에 결혼 허락을 받아냈다. 정동영이 MBC에 사표를 낼 당시 직속 상관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그 얘기를 전해들은 사장은 "결혼에 성공해 돌아오면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실패해서 돌아오면 즉각 수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정동영은 마침내, 결혼에 성공했고, MBC 기자로도 복귀할 수 있었다.
- 주말 뉴스데스크를 진행하던 시절 방송사고를 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1995년 8월 5일 자 뉴스데스크의 전체 영상을 보면 오프닝이 나가고 제공자막이 뜰 때에 들어왔으며 광고 중에 머리에 무스를 바르는 등[10] 의 준비를 하는 게 그대로 나오는데, 당시 영상 당시 TV에서는 정상적으로 광고가 나갔다.[11] 다른 날짜의 뉴스들과는 달리 유독 이날 영상만 광고가 아닌 스튜디오 측 화면이 녹화된 버전으로 업로드된 것. 즉, 카메라 테스트+생방송 준비 장면이 MBC 내부 자료용으로 녹화된 것이다. 위 영상이 2010년 10월 5일 뉴스데스크 40주년 기념 특집 때 소개되었는데, 막상 본인은 저게 남아있다는 걸 전혀 예상치 못한 탓에 보자마자 엄청나게 폭소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하지만 소감을 묻는 질문에 "저 때는 젊고 잘생겼네요."라는 자뻑 멘트를 날렸다. 아무래도 앵커, 기자 출신이다 보니 외모가 괜찮은 편이다.[12]
- 1991년 걸프 전쟁, 1992년 LA 폭동, 1994년 김일성 사망,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등 언론인으로써 활동하는 내내 역사에 남을만한 중요한 사건들을 직접 취재한 행운을 누렸다. 또 당산철교 붕괴 직전에 부실 시공을 최일구와 함께 취재해 고발한 적도 있다. 그의 말로는 자신이 현장에 가면 늘 사건이 따라다녔다고 했는데 그래서 늘 그는 사건 한복판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 권노갑 회고록에 따르면 1995년 3월경 권노갑이 정동영을 만나서 의중을 물어보는등[13] MBC 뉴스데스크[주말] 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정치인이 되고자 함이 있었다고 한다 다만 권노갑은 서울 강동구 갑을 추천했으나 정동영은 전주에 공천되기를 요구했다고#
- 토론에서 이기고 투표에서 진다는 말의 대표적인 예시이다. 아나운서 출신인 정동영은 이명박과의 TV토론에서 나름 유려한 말솜씨와 나름 논리정연한 토론 실력으로 이명박을 압도했다. 말주변에 약했던 이명박은 혼잣말로 '이거 말빨로는 안되겠네' 하고 푸념하듯 내뱉었다. 이 말은 방송을 탔지만 이걸 본 유권자들의 반응은 안그래도 범여권에 거부감이 심했던 국민들인데 이명박을 그리 몰아가면서 위협하는 정동영측과 범여권을 보고 더더욱 거부감을 느껴 오히려 이명박 한나라당을 동정해주었고 열세인 지지율을 토론으로 뒤집겠다는 정동영과 범여권의 구상은 물거품이 되고 말었다.[14]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앨 고어와 비슷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동영의 대선득표율은 이명박의 절반에 그쳤다.
- 2009년 누명을 쓰고 온두라스에 수감된 한지수의 무죄판결을 이끌어낸 숨은 주역중 하나이다. 제7차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한지수의 신원보증 문제에 대해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유명환 외교부 장관을 몰아부쳐 외교부의 신원보장 약속을 받아내고, 주한 온두라스 친칠라 대사를 직접 만나 인도적인 도움을 요청했다. 이후 언론 보도와 정치권에서까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자 뒤늦게 정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결국 정부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과장을 파견보내 부검 결과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면서 한지수의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 #
- 재야에서 다시 정계로 복귀할 때 한 가지 일이 있는데, 바로 강연회다. 4.29 재보궐 선거 4달 전에는 자신의 모교인 전주고등학교에서 졸업생을 대상으로 정치에 대해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또한 2016년 전주에서 여성들을 위한 특강을 한 것으로 보아, 정계 복귀가 임박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고 실제로도 정계에 복귀하였다. #
- 2016년 12월 현역 국회의원 전화번호 공개 사태 이후 많은 문자를 받고 있는데, 대답을 잘해주는 편이라고 한다. 누군가가 12월 3일 새벽 1시에 탄핵에 찬성해달라는 문자를 보냈는데 지금 본회의 중이고 새벽 4시 10분에 탄핵안이 발의될 예정이라는 답장을 받았다고 하며, # 사실로 밝혀지면서 인증글은 성지가 되었다.
- 같은 MBC 기자이자 MBC 뉴스데스크 앵커 출신인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는 동갑이며 전주고등학교 동기동창이다.[15] 또한 과거 열린우리당에서 한솥밥은 먹었지만 결국 정동영과 정반대의 길을 갔던 문재인 대통령과도 동갑이다. 다만, 문재인의 경우에는 빠른 생일인지라 같은 학년은 아니다.
- 당대표로서의 왕성한 중앙정치 활동과 더불어 지역구인 전주시의 각종 민원해결을 위해 힘을 쓰고 있다. 라돈 검출로 논란이 된 전주 송천동 아파트 문제에 대해 포스코건설 대표에게 즉각적인 전면교체 약속을 받아냈으며, # 전주시 팔복동 폐기물 소각장 문제 해결을 위한 집회에 참여하면서 고형폐기물(SRF) 신재생에너지 제외법을 대표 발의하는등 국회차원의 적극적 대응에 돌입했다. # # 비슷한 문제로 홍역을 겪고 있는 창원과 완주에서 해당 지역 현역의원의 미흡한 대처로 지역카페에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는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 # 그리고 2018년 12월 29일, 대표 발의한 고형폐기물(SRF) 신재생에너지 제외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 이후 이마트가 경기부진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축소하는 상황에서 중재를 통해 이마트 전주에코시티점 입점까지 이루어냈다. # 이러한 왕성한 활동으로 '전주의 해결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 2018년 12월 27일 눈썹이 각막을 찔러 눈 건강이 악화되는 안검내반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눈 수술을 받았다. 나이가 들면서 눈꺼풀이 탄력을 잃고 많이 처진게 원인으로 보인다. #
- 이전부터 전주 곳곳의 민원해결을 통해 정동영의 직통 휴대전화 번호는 널리 알려져 있고, 추가적으로 유세 현장에서 직통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하며 시민들과 소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 역대 선거 벽보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호남의 비노, 반문 정서가 심하던 20대 총선 벽보에는 경력란에 구체적인 설명 없이 '(전) 집권당 의장', '(전) 통일부장관' 등만 적었지만,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높았던 21대 총선 벽보에는 '(전) 열린우리당 의장', '(전) 노무현 정부 통일부장관' 등 상대적으로 구체적인 직함을 적었다. 그럼에도 전자는 당선되고 후자는 낙선했다는 것이 재미있다.[16]
- 노무현 정부 때 통일부장관을 맡았던만큼 정치인으로서의 전문분야는 남북관계, 통일 분야이다. 관련 책도 많이 썼으며 특히 자신이 개성공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휘했다는 점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에서 단신라인으로 꼽힌다.
- 17대 대선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이 유세 중 정동영 후보가 이명박을 오차범위 내에서 따라잡았다고 발표할 정도로 호남 상경민이 많은 서울과 경기도 일부 지역의 지지세를 전년도 지방선거에 비해 상당히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서울 25개 구와 모든 동에서 패배하기는 했지만[18] , 이명박이 서울시장 출신이었다는 점과 당시 정부여당이 워낙 인기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범여권 자체에 대한 국민들의 거부감이 심했던 사실도 고려해야한다. 전통적인 민주당계 정당의 강세 지역 중 호남 상경민이 많은 지역에서는 정동영 후보도 만만치 않은 득표를 올리면서 동 단위로 보면 이명박과 정동영 후보가 오차범위내에서 격전을 벌이던 지역이 있었다.
이러한 결과는 민주당계 정당이 18대 총선 이후 수도권의 민심을 회복하는 데 있어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7. 선거 이력[편집]
- 초등학교 시절부터 자라났던 고향인 전라북도 전주시에서만 국회의원에 4번 당선됐다. 전주가 배출한 유력 방송사 앵커 출신 정치인이었기에 대중적 인지도와 전주 지역 유권자들의 지지도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15대, 16대 총선에서는 무려 90%에 달하는 압도적 지지를 받아 당선됐을 정도. 하지만 이후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와 타 지역에서 출마했던 국회의원 선거는 모두 패했다. 결국 다시 고향 전주로 와서 3선과 4선에 성공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물론 여당 대표이자 대통령 후보까지 겪은 네임밸류가 있는 정치인이라 민주당계 정당에 있었던 시절에도 전략 공천이나 민주당 약세 지역에 주로 나서게 된 원인도 있지만[30] 결과론만 보자면 전북 외의 지역에서의 인기나 표의 확장성이 조금 아쉬웠던 상황들[31] 이었다. 게다가 전북 지역에서도 잦은 당적 변경 등으로 정치적 피로감이 증대되어 점차 지지세를 잃어갔고, 결국 제21대 총선에 본인의 정치적 고향인 전주에서 처음으로 낙선했다.
8. 소속 정당[편집]
- 당적 변경이 15번이나 되는데, 이는 2000년대 초중반 민주당계 정당의 혼란 때문에 그렇다. 물론 자의적 변경도 10번이나 될 정도로 많은 편이다. 그러나 손학규나 이인제처럼 보수정당과 민주당계 정당 간의 이동을 한 적은 없다.
9. 어록[편집]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참으로 격동이 심했던 한 해였습니다. 이제 그 한 해가 갑니다. 하지만 진정 다행인 것은 오늘 우리가 오름세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100년 전 19세기 말에 고단했던 민족사와 비교하면 21세기를 코앞에 둔 오늘의 우리 역사는 분명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자, 이제 1995년을 과거 속으로 묻어야 할 시간입니다.
'"이회창 총재가 국가를 위해 어떤 기여를 했는지는 몰라도 대한민국을 이런놈의 나라[52]
라고 비난할 자격은 없다. 정치지도자로써 해서는 안될 망언이다"'.[53][54][55][56]
1998년 9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망언 논평
민주주의를 짓밟은 이 치욕의 역사를 결코 용서하지않으리라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국민여러분이 심판해 주셔야 합니다. 퇴장시켜주십시오.
머리가 부족했고 힘이 부족했습니다. 용기가 부족한건 아니었습니다.
여론조사가 신(神)이다.
대선후보 당시 아무리 안간 힘을 써도 선거 초반 격차가 좁혀지지 않는 판세에 낙담해 기자들에게 푸념한 말이다.#
솔직히 이 자리에서 각종 거짓말 의혹이 휩싸여있는 후보와 나란히 앉아서 텔레비전 토론을 한다는 것이 창피스럽습니다.
2007년 12월, KBS 17대 대선후보 토론회#
기자분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한 달 넘게 전국 각지 새벽부터 밤까지 고생하셨는데 후보가 당선돼야 출입기자실도 좀 밝고 그럴 텐데 여러분께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오늘 저는 국민 여러분의 선택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이명박 당선자가 나라를 위해서 잘 해주실 것을 바랍니다. 제가 부족해서 국민 여러분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진실의 편에 서서 끝까지 믿고 지지해 주신 한분 한분 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뜨거운 감사를 표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저는 오늘 비록 국민 여러분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마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항상 국민 여러분과 함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57]
2007년 12월 19일, 대통합민주신당 기자실 기자회견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요! 해고는 살인입니다. 증인은 재벌의 아들로 태어나서 해고가 무엇인지 모르고 해고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해고는 살인입니다.
이길 때까지 이길 때까지 투쟁해야 합니다! 여러분.
이동한 걸 철새라고 하면 얼마든지 말하셔도 됩니다. 그러나 정치인 노선에서 철새였는지 말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정확한 노선으로 날아가고 있는 정치인입니다.
2015년 3월, CBS 라디오 전화연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모시는 자세로 시민들 모셔라.
사법 리스크라는 말에는 유죄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데요. 검찰이 근 2년 동안 조사했어도 확정적인 혐의를 밝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예단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사법 리스크가 아니라 검찰 리스크다 이렇게 봐야 됩니다.
2022년 12월,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10. 저술 활동[편집]
11. 둘러보기[편집]
2020.02.24 민생당 합당[29] 전주시 병에서만 첫 낙선[30] 그가 출마했던 선거 중 18대 총선의 동작구 을에서는 또 다른 거물 정치인 정몽준과 맞붙어야 했고 19대 총선 때 출마한 강남구 을은 부촌인 탓에 전통적인 보수정당 강세 지역이다.[31] 더욱이 2004년 17대 총선에서의 노인 관련 발언은 그의 확장성을 더욱 악화시켰다.[32] 새천년민주당에 흡수 합당.[33] 열린우리당 창당을 위한 탈당.[34]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35] 민주당(2007년)과 신설 합당.[36] 재보선 공천 탈락 불복으로 인한 탈당.[37]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38]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39]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40] 당내 노선차이로 인한 탈당.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 반대)[41] 바른미래당, 대안신당과 신설 합당.[42] 더불어민주당 복당을 위한 탈당.[43] 58년간 달리던 협궤열차, 수원역에서 마지막 기적 울려 19951231 mbc뉴스데스크[44] 사정 강경기류에 여야 긴장, 상호 비난 1998 mbc뉴스데스크[45] 경향신문 1998.9.7[46] 이 총재, 이런놈의 나라 대변인끼리 설전 한겨레신문 1998[47] 경향신문 1998.9.7[48] 이회창 죽을 각오로 싸운다 한나라당 대응 1998.9 경향신문[49] 한나라 의총 반격 1998.9 동아일보[50] 이회창후보 말-말-말 2002.6. 세계일보[51] 엄숙한건 나도 싫어' / 이후보 `원고없는 연설'.거리시민에 친근감 유도[52] 1998년 이회창은 김대중 정권을 비판하면서 "이런 상황에서도 야당 빼가고 정치 사정해서 국회의원 잡아갈 생각이나 하고, "이런 놈의 나라"가 이런 놈의 정권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이라 발언하며 김대중 정권과 국가를 맹비난했다.[44][45] 그러자 당시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 정동영대변인은 "이회창 총재가 국가를 위해 어떤 기여를 했는지는 몰라도 대한민국을 이런놈의 나라라고 비난할 자격은 없다. 정치지도자로써 해서는 안될 망언"이라며 강력 비판했다.[46][47][48][49]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은 또다시 김대중 정권을 비난하며 "이런놈의 나라"라는 표현을 써 논란을 빚었다.[50][51][53] 이 총재, 이런놈의 나라 대변인끼리 설전 한겨레신문 1998[54] 경향신문 1998.9.7[55] 이회창 죽을 각오로 싸운다 한나라당 대응 1998.9 경향신문[56] 한나라 의총 반격 1998.9 동아일보[57] 2위 대통합민주신당 표정 2007.12.19 mbc뉴스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