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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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 2020



가와사키 프론탈레 No. 1
정성룡
鄭成龍 | Jung Sung-Ryong | チョン ソンリョン

출생
1985년 1월 4일 (39세)
경기도 성남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91cm, 91kg[1]
포지션
골키퍼
소속 구단
포항 스틸러스 (2003~2007)
성남 일화 천마 (2008~201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1~2015)
가와사키 프론탈레 (2016~ )
국가대표
67경기 67실점
(대한민국 / 2008~2016)
25경기 1골 13실점
(대한민국 U-23 / 2008~2012)
후원사
프리커버리 (장갑), 미즈노
기타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 이사[2]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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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한솔초등학교 (1991~1995)
성남중앙초등학교 (1996)
광주초등학교 (1996~1997)
광주중학교 (1997~1999)
서귀포중학교 (1999~2000)
서귀포고등학교 (2000~2003)
대구사이버대학교
호남대학교
성균관대 대학원
응원가
투개월 - Number 1[1][2]
코요태 - 아자! 아자![3][4]
종교
개신교
병역
병역 특례[5]
가족
어머니 이화자[6], 1남 1녀 중 둘째
배우자 임미정[7], 슬하 2남 2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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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4. 플레이 스타일
5. 기록
5.1. 대회 기록
6. 평가
7. 여담
8.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포지션은 골키퍼로 현재 일본 J1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 소속이다.


2. 클럽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정성룡/클럽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국가대표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정성룡/국가대표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월드컵 주전 수문장

이운재
(2002 한국-일본, 2006 독일)

정성룡
(2010 남아공, 2014 브라질)


조현우
(2018 러시아)

국가대표팀 기록 (2007~2016): 67경기 67실점
  • FIFA 월드컵 2회 참가: 2010 남아공 (15위(16강)), 2014 브라질 (27위(조별 리그))
  • AFC 아시안컵 3회 참가: 2007 동남아 4개국 (3위), 2011 카타르 (3위), 2015 호주 (준우승)
  • 올림픽 2회 참가: 2008 베이징 (10위(조별 리그))[3], 2012 런던 (3위, 동메달)[4]
  • 아시안 게임 1회 참가: 2006 도하 (4위)
  • EAFF 동아시안컵 4회 참가: 2008 (우승), 2010 (준우승), 2013 (3위), 2015 (우승)


4. 플레이 스타일[편집]




흔히 생각되는 골키퍼들의 이미지는 날렵한 다이빙으로 상대 공격수의 슈팅을 막아내는 모습이지만, 정성룡은 그러한 모습과 거리가 멀다.

정성룡은 골키퍼에게 필요한 동물적 감각이 타 골키퍼에 비해 확연히 떨어졌다. 결정적인 위기 상황이 되면 신체가 경직된 모습이 자주 보인 것. 운동 능력이 특출나지 못했기 때문에 다이빙의 범위가 좁았으며, 그 다이빙조차 하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5] 즉, 골키퍼의 미덕으로 꼽히는 슈퍼 세이브가 몹시 드문 편이다. 이렇게 일반적인 골키퍼와는 상반된 움직임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정성룡의 평가는 별로 썩 좋지는 못했다. 그러나 정성룡이 골키퍼로서 국가대표 주전 자리까지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후술할 다른 장점들이 좋았기 때문이다.

첫째로, 정성룡은 부족한 운동 능력을 날카로운 판단력으로 메웠다. 침착하게 끝까지 상황을 지켜보면서 수비를 조율하는 동시에 뛰어난 위치 선정 능력을 이용해 위기를 해결했다. 이러한 장점 덕분에 의외로 근거리 1:1 상황에서는 매우 강했다. 근거리 1:1은 패널티킥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반사신경으로는 막을 수 없는 상황이므로 아예 차기 전부터 좋은 위치를 잡고 상대의 슈팅 각을 좁혀야만 막을 수 있다. 빈틈이 적은 굵직한 체형을 이용해서 침착하게 타이밍을 맞춰서 슈팅 각을 좁혔으며, 이 부분은 마누엘 노이어의 자세를 연상시킬 정도로 훌륭했다.

둘째는 선방 후의 볼 처리가 확실하다는 점이다. 순발력이 떨어지는 대신에 안정적으로 공을 잡아냈으며, 캐칭 능력 역시 다른 골키퍼들보다 좋은 편이라 근거리에서 때린 슛도 침착하게 잡아냈다. 잘 알려져 있는 실수인 덩크 슛처럼 공을 잡다가 흘리는 등의 실수는 사실 잘 나오지 않았다. 잡기 어려운 볼이라면 아예 최대한 멀리 쳐내거나, 코너 아웃 방향으로 쳐내는 등 펀칭 실력도 좋은 편이었다. 상대 공격수가 세컨볼을 가져가기 어려웠기 때문에 다른 골키퍼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2~3단 연속 선방을 할 필요가 없었다. 첫 번째 장점과 마찬가지로 선방을 할 기회를 최대한 줄여서 부족한 선방 능력을 커버했던 것이다.

셋째는 골과 어시스트를 기록할 정도의 빠르고 정확한 킥력이다. 정성룡이 기용될 수 있었던 최고의 장점으로, 킥만큼은 대한민국 축구사의 내로라하는 골키퍼 중에서도 손꼽을만큼 뛰어나다. 정성룡이 길게 골킥을 한 후 불과 몇 터치 만에 득점이 나오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는데, 특히 전성기의 박주영 같은 뛰어난 타겟맨이 있을 때 그 위력이 극대화된다.[6] 무엇보다 심지어는 롱 킥을 그대로 골로 연결시킨 적도 있다. 아래 여담 항목 참조.

정성룡의 장점들은 수비진에 훌륭한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물론 가끔씩 나오는 실수의 임팩트로 인해 많은 팬들이 이에 공감 못하겠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슈퍼 세이브를 많이 만드는 능력만큼 슈퍼 세이브가 필요한 위기 상황을 적게 만드는 능력 또한 중요하며, 여러 감독들이 정성룡을 기용한 이유다.[7]

그렇지만 운동 신경이 아니라 지능적인 플레이에 의존했기에 한계 또한 명확했다. 수비에 맞고 굴절되는 슛, 변칙적인 세트피스 등 예측 외의 돌발 상황이 일어났을 때 대처에 어려움을 겪였으며,[8] 상대의 페인팅 동작, 창의적이면서 낮고 빠른 크로스에도 취약했다. 그리고 근거리가 아니라 뒷공간이 넓은 상황에서의 1:1에는 빠른 민첩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각을 좁히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속수무책으로 실점했다.

페널티 킥 선방 능력은 크게 뛰어나지도, 저열하지도 않은 딱 보통 수준이다. 원래는 기본적인 순발력 부족 탓에 PK 선방 능력이 전무한 수준이었으나, 경험이 쌓이면서 점차 준수한 모습을 보여줬다.[9][10] 반사 신경이 부족한 만큼 끝까지 공을 보고 다이빙해서 동물적인 선방을 하는 타입은 아니고, 키커의 움직임을 계산하거나 사전 분석을 기반으로 미리 예측해서 막아내는 타입이다.

결론적으로, 골키퍼로서 갖출 건 하나 빼고는 다 갖췄는데 그 하나가 하필 가장 중요한 운동 능력이었던 선수. 그에 따른 둔한 모습과 실수들, 그리고 특유의 멍해보이는 표정이 큰 임팩트를 남겨 많은 팬들에게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줬다.

흥미로운 점도 있는데, 보통의 골키퍼들이 약체팀에서 더 빛나는 반면 그는 강팀과 상성이 잘 맞았다. 약팀일수록 상대팀에게 공격 기회가 많이 주어지고, 소속팀의 수비 실수가 잦을 가능성이 높기에 필연적으로 슛을 많이 내줄 수 밖에 없는 약팀의 특성상 선방 능력이 다소 아쉬운 정성룡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반면, 강팀일수록 수비진이 최소한의 기본 역량은 갖추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정성룡의 좋은 수비 리딩을 이행해줄 수 있는 수비수들이 조직력의 상승이나 좋은 판단력에 의한 움직임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정성룡의 훌륭한 킥을 받아 찬스로 이어갈 공격수들도 많을 것이다. 문제는 정성룡이 국적은 불행하게도 축구 강국과 거리가 먼 대한민국이었다. 또 정성룡이 본격적으로 전성기에 접어들 나이대의 소속팀이었던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정성룡 들어가기 전까지는 잘나가는 팀이었으나 들어오고 나서는 당시 감독의 삽질로 막대한 돈을 쓰고도 그가 있을 당시 최고 성적이 리그 준우승에 그쳤고, 약점이 부각되며 그의 안 좋은 장면들이 이 기간에 한꺼번에 나왔다. 반면, 리그와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노리던 성남 일화 천마 시절엔 오히려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K리그의 정상급 골키퍼다운 모습을 보여줬고,[11] 말년에 J1리그의 강팀인 가와사키 프론탈레로 이적했을 땐 바로 부활한 모습을 보이더니 J1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올라섰다. 가와사키는 정성룡 이전에도 AFC 챔피언스 리그에 자주 출전하는 강팀이었지만, 평균 이하의 수비로 리그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즉 강팀의 기본은 다 맞춰져 있었으나 수비 하나 때문에 2%가 모자랐던 것. 그러나 이 자리를 경험이 많은 베테랑 골키퍼 정성룡이 채워줬다. 결과적으로는 모두가 놀랄 정도로 수비가 빠르게 안정화되어 정성룡이 가세한 후 리그 4회 우승을 차지하는 일본 최강팀으로 굳혀지고, 정성룡 역시 J1리그 최고의 골키퍼로 자리하게 되었다. 이를 단순히 팀빨이라고 폄하할 수 없는 이유는 반사 신경과 다이빙 능력이 좋은 골키퍼가 우승권 팀에 간다고 해서 무조건 적은 실점 수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12]


5. 기록[편집]



5.1. 대회 기록[편집]








6. 평가[편집]


"나의 골키퍼 베스트 1은 정성룡이다. 전성기 때 성룡이 형의 안정감은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한다."

구자철, 이광용의 옐로우카드3에 출연해 한국 국가대표 베스트 11을 선정하며

2008 베이징 올림픽, 2010 남아공 월드컵, 2011 카타르 아시안컵, 2012 런던 올림픽, 2014 브라질 월드컵 등 많은 주요 대회에서 국가대표팀 주전으로 출전했다. 당대 민첩한 골키퍼들인 김영광, 신화용, 권순태 등을 밀어내고 부동의 주전을 차지한 점은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바로 앞 세대 선배들이자 역대급 골키퍼라 평가 받는 김병지, 이운재에 비하면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올림픽과 아시안컵에서는 호평을 받았으나, 가장 중요한 무대인 월드컵에서의 부진이 그의 평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13]

두 차례 월드컵에서의 부진이 뼈아팠는데, 월드컵의 레벨이 높아서 긴장한 것인지 그의 무기인 안정감과 판단력마저 반감된 모습을 보여줬다. 이후 후배들인 김승규조현우가 뛰어난 운동 신경을 앞세워 월드컵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자 그의 능력들이 더욱 저평가를 받았다.[14] 결과적으로 전성기에는 국가대표 주전 골키퍼로 활약할 수 있는 좋은 선수였지만, 중요한 대회에서의 부진과 기타 논란[15] 등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국가대표 커리어에 아쉬움을 남겼다.

J리그 내에서는 가와사키가 정성룡있을 때 리그 최강으로 자리잡고 정성룡의 활약이 길어지면서 J리그 골키퍼 GOAT 논쟁이 나올 정도까지 되었다.


7. 여담[편집]


  • 출생지는 경기도 광주이지만 학창 시절을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보냈기 때문에 제주도에서는 사실상 그를 강민호와 함께 제주도 출신의 스포츠 스타로 여긴다.[16]

  • 2008년 7월 28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올림픽 대표팀과 코트디부아르 올림픽 대표팀의 친선 경기에서 무려 85m짜리 롱 킥으로 골을 넣었다. 상대 골키퍼도 어이없게 만들어 버린 이 장면은 한국 축구가 국제 경기에서 처음으로[17] 골키퍼가 골을 넣은 사례가 되면서 인기 검색어 순위 1위에도 올랐다. 사실상 정성룡이라는 선수가 알려지게 된 시발점. 자막에 골키퍼 약자인 GK가 아닌 수비수 약자인 DF로 나왔는데 방송 관계자가 골키퍼가 골을 넣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해 미처 GK 자막을 준비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DF 자막을 가져다 썼다고 한다. 아래는 당시 영상이다.


  • 2008년 12월 13일 2살 연하의 2006 미스코리아 경남 진 출신 모델 임미정과 결혼해 2010 남아공 월드컵 도중 득남했다. 나이지리아 전에서 동료 선수들이 동점골 이후 요람 세레머니를 해 주기도 했다.
    파일:20060803203414.968.0.jpg

  • 2011년에는 당시 소속팀 수원의 마케팅 일환으로 연예인 축구단 FC MEN의 감독이 되었다.

  • 2011 시즌부터 수원에서 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12년 10월까지도 정성룡이 나온 성남 일화 천마 홍보 광고가 분당선 열차에 여전히 붙어있었다.[18]

  • 2013년 7월 17일, 동아시안컵을 위한 국가대표팀 소집일 당시 입고 온 정장이 화제가 되었다. 홍명보 감독의 요청에 따라 모든 국가대표 선수들은 정장을 입고 왔는데 유독 정성룡의 복장이 불량해 보였기 때문이다. 이 복장으로 인해 정성룡은 국내 축구 팬들에게 대차게 까였으며 "홍명보 감독의 지시를 무시했다.", "팀 정신을 어디다 팔아먹었냐."는 반응. 하지만 이것은 오해다. 정성룡 역시 겨울 정장 말고도 여름 정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입소를 위해 정장을 세탁소에 맡겼으나 약속 시간에 늦어 버렸다. 아침부터 부랴부랴 옷을 챙긴 정성룡은 어쩔 수 없이 겨울 정장을 입고 와야만 했다. 가방 역시 무거운 짐을 들다가 힘들어서 어깨에 맨 거라고. 복장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이쪽 참조. 정성룡은 예전부터 국가대표 훈련소에 가장 빨리 입소했고, 성실하기로 소문난 선수이기에 일부러 그랬을 가능성은 없다. 정성룡으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어쨌든 이 논란은 빨리 잠식되었다.
    파일:external/image3.inews24.com/1374027493705_1_011325.jpg

  • 리그 경기 도중 포항 스틸러스의 조찬호와 충돌하는 과정에서 무릎으로 영 좋지 않은 곳을 맞았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부상으로 아웃된 것은 조찬호(...). 조찬호는 이 부상으로 십자인대가 파열되면서 2014 시즌 내내 침대에서 보내게 되었다.

  • 2014 브라질 월드컵 당시 한국 커뮤니티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선수이다. 경기마다 골키퍼가 슈퍼 세이브를 하면 "저거 정성룡이었으면 막았을까요?" 또는 "정성룡: 그걸 막네."라거나, 골키퍼가 실수를 저지르거나 아쉬운 모습을 보이면 'X성룡'이라는 명칭을 붙이거나 'OOO vs 정성룡'이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막상 러시아전에서는 선전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명예 회복은 했다. 게다가 카성룡이라고 불렸던 이케르 카시야스가 완전히 폭망하는 바람에 적어도 카시야스보다는 낫다는 비교 우위론까지 나왔다. 그러나 바로 뒤이은 알제리전에서 무려 4골을 실점하면서 도긴개긴이 되어 버려 비난 여론을 상쇄시키는 데 실패했다. 그로 인해 자동문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도 얻었다.


  • 2015년 10월에 4주 기초군사훈련을 위해 훈련소에 입소했는데 퇴소 후에도 생활관 동기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기들이 단체로 수원 경기를 관전 후 정성룡과 함께 뒤풀이를 했다고 한다.# 평소 따뜻한 성격과 친화력은 상당한 편인 듯.

  • 팬 서비스 관련해서는 한 팬이 사인을 요구하자 잠깐 식사를 멈추고 싸인을 해 주거나 길에서 무개념 팬이 퐈이야를 시전하며 조롱하자 "그거 경기장에 와서 해주세요."라며 웃으며 넘어갔다는 증언 등 파도 파도 미담밖에 없을 정도로 최상급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팬이 준 종이 트로피를 아직도 보관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팬들의 사진, 사인 요청을 다 들어준다고 한다.

  • 아들과 길을 걷던 도중 고등학생 4명에게 '퐈이야'와 함께 욕설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

  • 그에게는 아이들이 태어날때 기쁜 소식이 겹친다는 매우 기분 좋은 징크스가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첫째 아들이 태어난 2010년에는 본인이 국가대표 주전 골키퍼로 낙점이 되어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을 경험했고 둘째 딸이 태어났을때에는 성남 소속으로 소속팀이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을 했고 셋째 아들이 태어난 2012년에는 런던 올림픽 와일드카드 겸 주전 골키퍼로 출전해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며 병역특례을 받았는데 본인도 신기했는지 아내와 넷째를 가져야하는지 상의를 해봐야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고 실제로 넷째를 낳았는데 2020 시즌에 J리그와 천황배 더블 우승을 했으며, J리그 올해의 골키퍼와 베스트11에 선정됐다. 애국자에게 온 행운 이러다가는 다섯째도?


8. 둘러보기[편집]


파일:가와사키 프론탈레 로고.svg
가와사키 프론탈레 2023 시즌 스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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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사키 프론탈레 2023 시즌 스쿼드
등번호
국적
포지션
한글 성명
일문/로마자 성명
생년월일
체격
1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GK
정성룡
Jung Sung Ryong
1985.01.04
191cm/91kg
2
파일:일본 국기.svg
DF
노보리자토 코우헤이
登里 享平
1990.11.13
168cm/68kg
3
파일:일본 국기.svg
DF
오미나미 타쿠마
大南 拓磨
1997.12.13
183cm/76kg
4
파일:브라질 국기.svg
DF
제지제우
Jesiel
1994.03.05
186cm/84kg
5
파일:일본 국기.svg
DF
사사키 아사히
佐々木 旭
2000.01.26
180cm/74kg
6
파일:브라질 국기.svg
MF
주앙 시미치
João Schmidt
1995.05.10
183cm/80kg
7
파일:일본 국기.svg
DF
쿠루마야 신타로
車屋 紳太郎
1992.04.05
178cm/73kg
8
파일:일본 국기.svg
MF
타치바나다 켄토
橘田 健人
1998.05.29
169cm/68kg
9
파일:브라질 국기.svg
FW
레안드루 다미앙
Leandro Damião
1989.07.22
188cm/90kg
10
파일:일본 국기.svg
MF
오오시마 료타
大島 僚太
1993.01.23
168cm/64kg
11
파일:일본 국기.svg
FW
고바야시 유
小林 悠
1987.09.23
177cm/73kg
13
파일:일본 국기.svg
DF
야마네 미키
山根 視来
1993.12.22
178cm/72kg
14
파일:일본 국기.svg
MF
와키자카 야스토
脇坂 泰斗
1995.06.11
173cm/69kg
15
파일:일본 국기.svg
DF
타나베 슈토
田邉 秀斗
2002.02.05
181cm/69kg
16
파일:일본 국기.svg
MF
세코 타츠키
瀬古 樹
1997.12.22
175cm/71kg
17
파일:일본 국기.svg
FW
토노 다이야
遠野 大弥
1999.03.14
166cm/66kg
18
파일:프랑스 국기.svg
FW
바페팀비 고미스
Bafetimbi Gomis
1985.08.06
184cm/77kg
20
파일:일본 국기.svg
FW
야마다 신
山田 新
2000.05.30
175cm/75kg
21
파일:일본 국기.svg
GK
안도 슌스케
安藤 駿介
1990.08.10
185cm/81kg
22
파일:일본 국기.svg
GK
하야사카 유키
早坂 勇希
1999.05.22
184cm/80kg
23
파일:브라질 국기.svg
FW
마르시뉴
Marcinho
1992.01.31
173cm/64kg
24
파일:일본 국기.svg
MF
묘간 토야
名願 斗哉
2004.06.29
178cm/65kg
27
파일:일본 국기.svg
DF
마츠나가네 유토
松長根 悠仁
2004.09.14
179cm/75kg
28
파일:일본 국기.svg
MF
오제키 유토
大関 友翔
2005.02.06
178cm/60kg
29
파일:일본 국기.svg
DF
타카이 코타
高井 幸大
2004.09.04
164cm/60kg
30
파일:일본 국기.svg
MF
세가와 유스케
瀬川 祐輔
1994.02.07
170cm/67kg
31
파일:일본 국기.svg
MF
야마무라 카즈야
山村 和也
1989.12.02
186cm/80kg
32
파일:일본 국기.svg
MF
야마우치 히나타
三笘 薫
2001.05.30
170cm/66kg
33
파일:일본 국기.svg
FW
미야시로 타이세이
旗手 怜央
2000.05.26
178cm/73kg
34
파일:일본 국기.svg
MF
유이 코타
由井 航太
2005.06.10
180cm/68kg
41
파일:일본 국기.svg
MF
이에나가 아키히로
家長 昭博
1986.06.13
173cm/70kg
99
파일:일본 국기.svg
GK
카미후쿠모토 나오토
上福元 直人
1989.11.17
182cm/76kg
구단 정보
감독: 오니키 토루 / 구장: 도도로키 육상 경기장
출처: 가와사키 프론탈레 공식 홈페이지, 트랜스퍼마켓 / 마지막 수정 일자: 2023년 4월 1일



파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월드컵 주전 수문장

이운재
(2002 한국-일본, 2006 독일)

정성룡
(2010 남아공, 2014 브라질)


조현우
(2018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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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와사키 프론탈레 공식 프로필[2] 해외파 이사.[3] 16개국 본선 16강 조별리그[4] 와일드카드 발탁[5] 2008 올림픽, 2012년 올림픽과 2010 월드컵, 2014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실점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실점할 때 다이빙을 하지 못하고 주저 앉아버렸다.[6] 2010 남아공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정성룡의 킥을 박주영이 따내고 떨어진 볼을 마르틴 데미첼리스가 잡았으나 빠르게 쇄도한 이청용이 볼을 탈취해 골로 연결했다. 2012 런던 올림픽 한일전에서도 정성룡의 킥을 박주영이 백헤딩으로 구자철에게 연결했고 구자철이 그대로 마무리 지었다.[7] 수비 조율이 우수한 이운재가 최고의 민첩성을 가진 김병지를 이길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정성룡은 순발력이 떨어져 슈퍼 세이브가 없었지만, 신체 조건과 캐칭 능력, 수비 조율에 높은 평가를 받아 여러 감독들이 선호했다.[8] 세트피스에서 약점을 보였는데, 아무래도 반사 신경 문제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세트피스 상황은 정지된 모션 속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나오는데, 높은 크로스나 일반적인 패스는 제공권이 우위인 수비가 그나마 유리할 수 있지만, 반대로 상대가 공을 빠르고 낮게 차거나 변칙적인 작전을 쓰면 골키퍼와 수비들의 빠른 순발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리그에서 그의 실점 장면을 보면 세트피스 상황에서 세컨볼 실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세트피스 상황에서 방어를 성공했을 경우, 최대 강점인 롱킥을 통해 역습 기회를 얻는 등 세트피스에서도 정성룡만의 강점이 있다.[9] 2011 아시안컵 한일전에서는 혼다 케이스케의 페널티 킥을 막았다. 리바운드 슈팅에서 호소가이 하지메에게 실점했지만, 이는 혼다가 페널티 킥을 차기 전에 호소가이가 박스 안으로 먼저 침투했기 때문에 사실 오심이다. 반면, 이 경기의 승부차기에서는 일본의 키커들의 방향을 모두 읽긴 하였으나, 이들이 강력하고 빠르게 슈팅을 날린 탓에 하나도 막지 못했고, 1~3번 키커가 모두 실축하며 허무하게 대회를 마감했다. 사실 정성룡에게 주어진 기회는 3번뿐이었기에 하나도 못 막았다고 뭐라 할 건 아니다.[10] 2011년 6월 7일 가나와의 평가전에서도 아사모아 기안의 페널티 킥을 선방했고, 2012 런던 올림픽 8강전에서 아론 램지의 페널티 킥을 선방하며 대한민국의 4강 진출에 큰 공헌을 했다. 이전에 램지의 페널티 킥을 한 차례 막지 못해 동점골을 허용한 상황에서 만약 이것마저 막지 못했다면 역전을 당하는 상황이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선방을 해냈다.[11] 신태용 감독 1~2년차에 리그 준우승,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12] 이를 보여준 사례는 정성룡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와 비슷한 플레이 스타일을 갖춘 송범근이 당시 최고로 민첩하다고 평가 받은 조현우를 누르고 리그 우승과 최소 실점 타이틀을 가져갔다. 마찬가지의 우승 후보라 평가 받던 울산이 전북보다 약한 수비진을 가졌다고 보기도 어렵다.[13] 브라질 월드컵 당시 같이 삼대장으로 묶여서 비난 받던 홍명보, 박주영은 각각 울산 감독으로써 우승을 이끌었고, 비록 국가대표 경력은 브라질 월드컵 직후 바로 끝장이 나버렸지만, K리그에서 돌아와서 회복한 폼 등으로 현 시점에는 여론이 많이 희석 된 상황이지만 정성룡은 J리그의 탑 골키퍼임에도 불구하고 여론 등을 보면 도저히 회복할 기미가 안 보이는 상황이다. 특히, 대중들에게는 '못하는 골키퍼' 하면 대놓고 떠올리는게 정성룡일 정도로 이미지가 안 좋은 상황.[14] 브라질 월드컵 벨기에 전에서 자신 대신 투입된 김승규와 러시아 월드컵에서 주전으로 뛴 조현우가 맹활약을 할때마다 그의 이름이 네티즌들에거 거론되며 "정성룡이였으면 벌써 먹혔다." 이런 조롱까지 들을 정도였다.[15] SNS 퐈이야♡, 브라질에서 귀국때 면세점 사건[16]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소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정성룡 이외에도 중고등학교 시절 스카우트를 받아서 제주도에서 학교를 졸업한 선수들이 꽤 있는데 막상 대다수의 제주도민들은 제주도에서의 출생이 아니면 제주도민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제주도민들 사이에서는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뛴 구자철과 제주 출생이기도 한 홍정호가 더 인기가 많다.[17] U-23 대표팀에서의 골이므로 차후 성인 대표팀에서 기록이 나오더라도 최초의 기록을 쓸 수는 있다.[18] 구단이 마케팅 의지라곤 하나도 없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