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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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북한 국장.svg
정일봉
正日峰

Jong-il Pe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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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news.kbs.co.kr/namo_110885867780869400.jpg

▲ 정일봉의 모습
다른 이름
장수봉
將帥峯

설치
1988년 8월
주소


정일봉}}} (량강도 삼지연시 백두산밀영동)
1. 개요
2. 특징
3. 통일 이후 보존 가능성
3.1. 철거의 관점
3.2. 보존의 관점



1. 개요[편집]


북한 량강도 삼지연시에 위치한 백두산의 일부 봉우리이다. 원래 명칭은 장수봉(將帥峯).

김정일로의 권력 승계 과정에서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를 만들면서 동시에 조성한 것이다.

2. 특징[편집]


1988년 장수봉에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어원은 김정일의 출생지라 하여 붙여졌다. 황장엽의 증언에 따르면 김일성이 어느 날 빨치산 출신들을 불러 백두산 밀영 자리를 찾아보라는 지시를 내리자 어느 누구도 찾지 못했다. 그러자 김일성이 직접 나서 경치가 좋은 곳을 찾아내 '여기가 밀영지였다'라고 지적하고 그 뒷산을 '정일봉' 이라고 이름 지어주었다. 그 뒤에 거대한 화강석 바위를 구해다가 거기에 엄청나게 큰 글자로 '정일봉' 이라고 새기고 그것을 산봉우리에 올려다 붙이는 대공사를 진행했다. 바위에 새겨진 붉은 글자는 지름이 5m나 된다. 이렇게 해서 백두산 인근 삼지연시의 평범했던 어느 산봉우리가 김정일의 공식적인 출생지가 되었다. 물론 김정일의 출생지가 백두산이라는 것은 완벽한 날조이며, 산봉우리에다 글자를 새겨넣은 건 명백한 자연 훼손이다.

사실 김정일의 출생지는 소련우수리스크였다. 북한 당국은 김정일의 생일이 1942년 2월 16일인데 정일봉이 봉우리만 따졌을 때 높이가 216.42m인 것을 감안하여 '하늘에서 산 높이까지 생일에 딱 맞게 점지해 주었다'며 김정일이 하늘에서 내린 인물이라는 증거라고 열심히 주민들에게 선전했다. 왕재산경음악단보천보전자악단 등에 의해 '정일봉의 우뢰소리'나 '정일봉의 눈보라', '정일봉의 봄맞이', '정일봉에 안개 흐르네', '정일봉에 봄이 왔네' 와 같은 정일봉을 배경으로 한 김정일을 우상화하는 음악이 제작되었다. 이 밖에도 여러 시와 문학작품들이 제작되었다.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 등 체제 선전 영상물에서도 곧잘 등장한다.


3. 통일 이후 보존 가능성[편집]



3.1. 철거의 관점[편집]


조선로동당은 그동안 북한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해왔고 상징조작을 일상적으로 행해 왔다. 어느 날 갑자기 통일이 현실로 다가온다고 해도, 2600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대한민국의 질서를 군소리 없이 받아들일 거란 장담은 누구도 할 수 없으며, 통일 직후 사회가 빠른 시일 내에 안정화되지 않을 경우에 자칫 북한 정권의 부활을 노리는 잔존 세력들이 만경대고향집과 이곳 정일봉을 '정신적 구심점'으로 삼아 난립할 가능성이 있다.

백 보 양보해서 정일봉에 새겨진 김정일의 글씨가 특별한 예술적 가치를 가진다고 해도,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물을 그대로 방치해둔다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그다지 실익이 없으며, 보존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정치적 판단이 강하게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역사의 편린'이라는 관점은, 대한민국 그리고 통일 한국이 직면할 엄혹한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나이브한 관점'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그나마 이미지가 좋았던 김일성과는 달리, 정일봉은 이미지가 썩 좋지 않은 김정일이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에 철거하더라도 향후 민심이반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철거를 하는 경우, 북한 정권이 바위를 훼손하면서 새긴 것이기 때문에 완전한 복구는 불가능하다. 대신 원래의 명칭인 '장수봉(將帥峯)'으로 환원하는 과정에서 '정일(正日)'이라는 글자를 파내고 '장수(將帥)'라는 글자를 덧새기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사실상 북한의 체제 선전물인 정일봉의 흔적을 남기는 짓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추진과정에서 신중히 검토를 해야 한다. 또한 '또 다른 환경 훼손'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의 행동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문제도 있다.


3.2. 보존의 관점[편집]


일제 시대 건축물이 더 이상 철거 일변도로 흐르지 않는 것처럼 (부정적이라도) 역사의 편린으로서 보존의 정당성을 가질 수도 있다. 철거를 하고 별도로 전시하는 방법도 있다.

정일봉에 관련된 노래들과 저작물들도 어떻게 해야할지 고려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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