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파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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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구성
3. 요구사항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특정 공격 정면에 공격제대를 연속적으로 투입하여 공격하는 전술. 파상공격(波狀攻擊)또는 파상공세라고도 한다.

적에게 부대 재편성 및 증원의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제파간 공격 타이밍은 정교하게 협조된다. 공격제대를 한꺼번에 투입하지 않고 순차적으로 투입하는 이유는 좁은 정면에 과도하게 병력이 밀집될 경우 기동공간이 부족한 탓에 정상적인 전투력 발휘가 어렵기 때문이다. 쉬운 예를 들자면, 현대 보병연대에 19세기 초 전열보병 연대와 비슷한 극히 협소한 공격정면을 부여했을 때 벌어질 일을 떠올려보면 좋다.

축차투입과 착각하기 쉬우나, 제파 공격은 각 제대에 걸맞는 정면에서의 정교하게 의도된 공격이라는 점에서 축차투입과 큰 차이를 보인다. 쉽게 말해, 이미 전진 배치된 병력들을 나눠 계획에 따라 차례대로 공격하면 제파식 전술, 공격 혹은 방어 중 위기에 몰려 병력들이 도착하거나 준비되는대로 꾸역꾸역 밀어넣는 상황이면 축차투입이라고 보면 된다.

2. 구성[편집]


제파식 전술은 소련군종심전투교리에서 돌파 단계의 공격방식에서 유래되었다.

통상적으로 제파 전술에서 제파(諸波; waves)는 3개 파(波; wave)로 구성된다. 1파는 보병 중심의 충격군으로 구성되어 적 방어선을 공격, 돌파구를 형성하고, 2파는 기계화부대로 구성되어 돌파구를 정면 및 종심상으로 확대하여 3제파의 돌진 여건을 보장한다. 3파는 완전한 기계화부대, 특히 기갑사단 혹은 전차사단으로 구성되어 1, 2제대가 확보한 돌파구를 통해 적 종심 깊숙하게 돌진한다.[1] 간단히 말하자면 보병으로 적당히 양념을 쳐두고, 기계화부대로 방어선을 길게 늘어뜨린다음, 약하다고 파악된 부분에 연이어 기갑물량을 들이붓는 전술이다.

제파 전술의 유래에는 재밌는 설이 있다. 독소전쟁 당시 보병이 부족해진 소련이 쓸만한 전술을 찾기 시작한 결과가 바로 제파 전술이라는 것이다. 당시 소련은 독일군과의 전투로 인명 손실이 심각했으며 줄어든 보병 대신 기계화로 편성을 혼합하다보니 기계화 제파 전술이 탄생했다는 내용. 소련이 보병 비율을 줄이고 싶어서 줄인 게 아니라 제2차 세계 대전 후반부에 이르러선 나치의 슬라브인 민간인 학살정책과 전쟁 초중반 소련군 보병 병력이 떼거지로 소모된 후유증으로 젊은 남성의 씨가 말라서 어쩔 수 없이 줄이게 되었다. 처음부터 인구에 맞춰 사단 편성을 했으면 보병과 포병, 기갑 병력 간의 구분이 명확했겠지만 줄어드는 사단을 유지시키기 위해 마구잡이로 넣다보니 일선의 병사들이 모자라다 못해 심지어 포병이 보병보다 많아져버린 엽기적인 부대도 있었다.

보병이란 것이 어느 정도의 훈련은 거쳐야 보충되기 때문에 보충 속도는 늦는데 사단의 개수는 점점 더 늘어나고 피해[2]도 커지면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소련군은 자연스럽게 기계화 비율이 높아졌고 합동 전술을 쓸 일도 많아졌다. 여기서 제파 전술이 정립되게 된다. 다시 말해, 태평양 전쟁에서 항공모함 전투 교리가 정립된 것이 항공모함이 개전 초기부터 각광을 받았다기보다, 쓸 전함이 없어서 쓰다 보니 재평가된 것처럼[3] 소련군의 제파 전술도 처음부터 쓰려고 고안한 게 아니고 부족한 보병 숫자를 효율적으로 굴리려고 하다 보니 정립된 전술이라는 것이다.

소련이 현대적인 제파 전술을 정립한 것은 사실이지만 '제파 전술'이라는 개념 자체는 2차 대전 전부터 있던 개념이다. 전열보병 시절 주로 쓰이던, 보병 간의 머스킷 사격 교전 이후 무너진 전열에 기병을 투입하는 전술도 넓게 보면 제파 전술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3. 요구사항[편집]


적에게 부대 재편성 및 증원의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제파 간 공격 타이밍은 정교하게 협조될 필요가 있다. 제파 전술의 핵심은 늘어진 방어선과 상대적으로 빈약해진 수비 병력의 허점을 제3파가 파고드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이 치밀하게 맞춰지지 않으면 수비 쪽도 전선을 재정비할테고 약한 부분에도 증원이 도착할 테니 핵심 메리트가 사라져 버린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참호전에 초기형 전차가 투입되었음에도 정교한 제파 전술이 시도되지 못했던 이유가 통신설비가 저열하여 온전한 협공을 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러시아군도 우크라이나를 겨울에 침공하려 빠르게 끝내려 했으나 서방측이 계속 침략시점을 폭로하면서 시간을 맞추지 못하다가 결국 2월 24일 아예 대놓고 침략을 강행했는데, 예상대로 우크라이나가 많이 준비를 한 상태라 제1파가 심각하게 고전하였으며,[4] 러시아군이 공세종말점에 이르자, 되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점령지를 제파 전술로 돌파했다.

또한 제파 전술의 최대 약점은 지휘부와 수행 병력의 숙련도가 요구되는 고난이도 전술이라는 것이다. 지휘부가 제대 간의 간격과 시간차를 치밀하게 조정하지 못하면 되려 적에게 이로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제대 간 간격이 너무 멀 경우 단순한 축차투입이 되며 반대로 너무 가까우면 병목 현상으로 제대로 된 공격이 힘들고 수비 측의 화력집중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대규모의 병력이 순서대로 들어가고 나와야 하기 때문에 전투지역도 많이 타는 전술이다. 빠르게 정석 전술로 자리잡은 태평양 전쟁 이후의 항공모함 운용 교리와는 달리 제파 전술이 이후에도 딱히 애용되지 않은 것은 이러한 이유다. 독소전쟁의 배경은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 동유럽이었기 때문에 효과적이었지만 뒤이어 펼쳐진 6.25 전쟁이나 베트남 전쟁에서는 제파 전술을 쓰기 어려웠다. 한반도는 산악, 베트남은 정글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파 전술은 시가전[5], 정글, 산악지대에서는 쓰기가 힘들고 광활한 평야 지역에서 가능한 전술이다.

또한 전투지역의 주민들이 적대적이어도 후방이 안전하지 않아 사용하기 힘들다, 민사작전에 조금만 실수해도 게릴라군이 주민들 사이에 숨거나, 주민들이 게릴라군으로 변해 진격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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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러한 이유로 소련식 제파전술은 스팀 롤링(Steam Rolling)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아스팔트를 깔 때 쓰는 거대한 롤러가 그것이다.[2] 독소전 개전 초부터 전사/실종/부상/포로를 합쳐 적게는 수만에서 많게는 수십만 병력을 잃는 대규모 전투가 빈번했다. 동부전선의 전투규모는 서부전선(북아프리카 포함)과는 차원을 달리했다.[3] 다만 소련군의 제파전술과 달리 이쪽은 체스터 니미츠레이먼드 스프루언스, 겐다 미노루야마모토 이소로쿠 등의 장군들에 의해 1930년대 초부터 구상된 것이 전함 중시 교리에 밀려 빛을 못 보고 있다가 전함이 다 아작나고 나서 기를 편 것에 가깝다. 그리고 2차 대전에서 중심이 항공모함으로 넘어오기는 했지만, 아직 전함의 효용성도 남아있었기 때문에 전함도 여전히 활약했고, 유럽 전선에서는 태평양 전쟁처럼 항공모함 중심으로 넘어가는 게 느려서 비스마르크 추격전처럼 고전적인 함대함 전투가 여전히 일어났다.[4] 심지어 그 1파의 상태가 총체적 난국 수준이었고, 막상 2파도 생각보다 충격력이 약해서 장기전으로 빠져버린다.[5] 체첸은 예외로 제파 전술 활약하기 어려운 시가전이라도 하필 러시아와 인근 지역이고 대다수 민간인들도 체첸군에 합세했기 때문에 2차 체첸 분쟁 때 러시아가 마구잡이로 폭격을 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