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덤프버전 :

<bgcolor=#ffffff,#1F2023><:>{{{#!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word-break: keep-all"
[ 펼치기 · 접기 ]
26회
2022년 7월 10일
27회
2025년 7월 28일
[ 역대 선거 펼치기 · 접기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10회 · 11회 · 12회 · 13회 · 14회 · 15회 · 16회 · 17회 · 18회 · 19회 · 20회 · 21회 · 22회 · 23회 · 24회 · 25회 · 26회 · 2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49회
2021년 10월 31일
50회
2025년 이전
[ 역대 선거 펼치기 · 접기 ]
1회 ·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10회 · 11회 · 12회 · 13회 · 14회 · 15회 · 16회 · 17회 · 18회 · 19회 · 20회 · 21회 · 22회 · 23회 · 24회 · 25회 · 26회 · 27회 · 28회 · 29회 · 30회 · 31회 · 32회 · 33회 · 34회 · 35회 · 36회 · 37회 · 38회 · 39회 · 40회 · 41회 · 42회 · 43회 · 44회 · 45회 · 46회 · 47회 · 48회 · 49회 · 50회

국회의원 보궐선거
2023년 하반기
2023년 10월 22일
2024년 상반기
2024년 4월 28일
[ 역대 선거 펼치기 · 접기 ]
··· 2019 · 2020 · 2021 · 2022 · 2023 · 2024

통일지방선거
20회
2023년 4월 9일23일
21회
2027년 4월
[ 역대 선거 펼치기 · 접기 ]
1회· 2회 · 3회 · 4회 · 5회 · 6회 · 7회 · 8회 · 9회 · 10회 · 11회 · 12회 · 13회 · 14회 · 15회 · 16회 · 17회 · 18회 · 19회 · 20회

도쿄도지사 선거
2020년 도쿄도지사 선거
2020년 7월 5일
2024년 도쿄도지사 선거
2024년 7월 7일
<-2><:>{{{-2
[ 역대 선거 펼치기 · 접기 ]




일본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2009년 8월 30일
45회 중원선
(정권 교대 총선)


2012년 12월 16일
46회 중원선
(가미카제 총선)


투표율
69.24%
선거 결과
파일:제45회중원선결과.svg
NHK 개표방송 영상[1]
닛폰 테레비 출구조사 발표 영상[2]
정당
지역구
비례대표
총합
비율
[include(틀:글배경br, 배경색=#da2128, 사이즈=.9em, 글자색=#ffffff, 내용=민주당)]
221석
87석
308석
64.2%

64석
55석
140석
29.2%
0석
21석
[include(틀:글배경br, 배경색=#E61919, 사이즈=.9em, 글자색=#ffffff, 내용=일본 공산당)]
0석
9석
9석
1.9%
[include(틀:글배경br, 배경색=#00a7db, 사이즈=.9em, 글자색=#ffffff, 내용=사회민주당)]
3석
4석
7석
1.5%
[include(틀:글배경br, 배경색=#e80010, 사이즈=.9em, 글자색=#ffffff, 내용=모두의 당)]
2석
3석
5석
1.0%
[include(틀:글배경br, 배경색=#fcd800, 사이즈=.9em, 글자색=#000000, 내용=국민신당)]
3석
0석
3석
0.6%
[include(틀:글배경br, 배경색=#409f29, 사이즈=.9em, 글자색=#ffffff, 내용=신당대지)]
0석
1석
1석
0.2%
[include(틀:글배경br, 배경색=#bc002d, 사이즈=.9em, 글자색=#ffffff, 내용=신당일본)]
1석
0석
1석
0.2%
[include(틀:글배경br, 배경색=#808080, 사이즈=.9em, 글자색=#ffffff, 내용=무소속)]
6석
-
6석
1.3%

1. 개요
2. 선거 이전
2.1. 자민당의 위기
2.2. 민주당의 돌풍
3. 선거 결과
3.2. 주요 정치인 당락
4. 각 당 반응
4.1. 자유민주당
4.2. 민주당
5. 관련 항목



1. 개요[편집]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00px-Newspapers_of_Japan_20090831.jpg
사진은 하토야마 유키오 당시 민주당 대표.

2009년 8월 30일에 치러진 일본의 중의원 의원 총선거. 여러모로 대기록을 남긴 선거였는데 민주당이 무려 308석의 의석을 차지하며 55년 체제 성립 이후 자민당 이외의 타 단일정당으론 처음으로 원내과반과 정권교체[3]를 이루어냈다.[4] 그냥 원내과반과 정권교체도 아니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단일 정당 중의원 최대의석 확보[5]이자 1955년 이후 54년만의 비 자민 정당의 과반 승리[6]였던 여러모로 일본 정치사상 특기할만한 선거였다.

이 때문에 수능 동아시아사에서도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와 함께 중요하게 다뤄지는 선거이며,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16번 문제에서도 출제되었다.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20번 문제에서 출제되었다.

2. 선거 이전[편집]



2.1. 자민당의 위기[편집]


2005년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우정 해산이라는 승부수를 던지며 자민-공명 연립여당이 전체 의석의 68.1%를 확보하며 압승, 정권을 지킨 자민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이었지만 그 기쁨도 잠시 이 시기를 전후하여 90년대를 즈음하여 작은 정부론이 일본의 대세가 되면서 시작된 복지제도 축소가 촉발한 소득불균형 심화로 고이즈미 총리는 점차 인기를 잃어갔다. 결국 2006년 9월, 지난 총선 승리를 거둔 지 1년만에 자민당 총재 임기 만료로 총리직을 떠나야했다.

이후 전후 세대를 자임한 아베 신조 내각이 야심차게 출범하지만 각종 부정부패와 스캔들, 그리고 아베 개인의 심각한 건강 악화로 내각이 총사퇴하면서 1년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그 다음 총리인 후쿠다 야스오민주당이 장악한 참의원에서 전후 헌법 처음으로 문책 결의안을 가결당해 신임 표결까지 해야하는 수모를 당했다. 결국 1년만에 비교적 중도파로 분류되던 후쿠다 총리마저 사퇴를 선택했다.

그 후임 총리가 된 아소 다로는 극우 성향으로 원래 유명했던데다가 그야말로 막장의 극치를 보이는 행정으로 비웃음거리로 전락했고[7], 하필 이 시기에 전세계를 덮친 최악의 경기 대침체로 인해 절치부심하던 민주당에게는 정권교체를 위한 절호의 기회가 오게 되었다.

2.2. 민주당의 돌풍[편집]


한편 민주당은 2009년 5월 11일에 오자와 이치로가 정치자금 스캔들로 대표직을 사퇴하고 하토야마 유키오 체제가 성립하면서 다소 위기에 봉착한듯 보였지만, 자녀수당 신설 같은 사회복지정책의 대폭 확대와 정경유착 철폐 등의 공약을 내걸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전화위복하게 된다.

그 결과 2009년 도쿄 도의회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면서 자민당은 벼랑 끝에 몰렸고, 그동안 총리직 사퇴 및 조기 총선을 거부하며 끈질기게 버텨왔던 아소 다로 총리는 중의원 4년 임기 만료를 2달 남겨놓은 시점에서 결국 중의원 해산을 선언했다.

민주당 총재 하토야마 유키오는 선거 유세 기간 동안 부정부패 척결과 관료주의 정치로부터의 탈피를 외쳤고, 각종 선거 여론조사에서도 줄곧 민주당의 압도적인 리드가 이어졌다. 그래도 설마 그 자민당이 이렇게 무력하게 정권을 내줄까 의구심을 품던 국민들도 있었지만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3. 선거 결과[편집]


선거일
2009년 8월 30일
선거내용
지역구(소선거구제) 300명 + 권역별 비례대표 180명(석패율제 시행)
선출인원
480명
투표율
69.3%

선거결과
정당
지역구(소선거구제)
비례대표
획득
의석
선거이전의석
증감
여당

자유민주당
27,301,982
38.68%
64
18,810,217
26.73%
55
119
300
-181

공명당
782,984
1.11%
0
8,054,007
11.45%
21
21
31
-10

개혁 클럽[8]
36,650
0.05%
0
58,141
0.08%
0
0
1
-1
야당

민주당
33,475,334
47.43%
221
29,844,799
42.41%
87
308
115
+193

일본 공산당
2,978,354
4.22%
0
4,943,886
7.03%
9
9
9
0

사회민주당
1,376,739
1.95%
3
3,006,160
4.27%
4
7
7
0

모두의 당
615,244
0.87%
2
3,005,199
4.27%
3
5
4
+1

국민신당
730,570
1.04%
3
1,219,767
1.73%
0
3
4
-1

신당 일본
220,223
0.31%
1
528,171
0.75%
0
1
0
+1

신당대지
불출마
불출마
0
433,122
0.62%
1
1
1
0

제파
1,077,543
1.53%
0
466,786
0.66%
0
0
0
0

무소속
1,986,055
2.81%
6
불출마
불출마
0
6
6
0


의석 구성
연립여당[9] - 140석 (29.2%)

야당 - 334석 (69.6%)
정수 : 480석


3.1. 지역별 결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지역별 결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2. 주요 정치인 당락[편집]



4. 각 당 반응[편집]



4.1. 자유민주당[편집]


파일:8400040.jpg

자민당은 이 선거로 창당 이후 최악의 굴욕을 당했다. 그냥 참패도 아니고 1955년 창당 이후 최저 의석 + 최초의 원내 제2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사실 자민당이 야당이 된 일은 1993년에도 있었는데, 그나마 1993년 40회 중원선 때는 제1당의 지위는 유지한 채 과반에만 미달하여 야권이 연정을 통해 非자민 연립정부를 출범한 것이었기 때문에 충격이 덜했다. 하지만 45회 중원선에서 非자민 정당이 단독으로 과반을 차지한 사실상 최초의 사례가 되었으며, 게다가 앞서 언급했듯 원내 제1당과 제2당의 의석 수 차이도 가장 큰 선거였기에 선거 결과는 자민당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결국 아소 다로 자민당 총재는 30일 밤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총리직 사퇴 및 자민당 총재 사퇴 의사를 밝혔다. 뿐만 아니라 당내 거물 및 유력 인사들도 줄줄이 낙선하여 막대한 타격을 입었고 선거 이후 모든 계파가 한동안 해산하는 등 당의 생사마저 불투명한 상황이 이어졌다.

4.2. 민주당[편집]


파일:일본 민주당 리즈시절.jpg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단일 정당 중의원 최대 의석 확보에 성공했다. 단독 과반은 물론 상임위 장악에 필요한 의석수인 269석까지 훌쩍 넘기면서 당은 그야말로 잔칫집 분위기가 되었다. [13] 이 압승을 바탕으로 제2의 장기집권이 가능할지도 관심이었다. 이후 9월 16일 하토야마 유키오사민당, 국민신당과 함께 연립내각을 구성해 총리에 취임함으로써 민주당 정권이 출범했다.

이러한 압도적인 의석수를 가지고 시작한 만큼 결과도 좋아야 했지만, 정경유착을 철폐한다던 공약과 반대로 하토야마 총리 취임 직후에 선거자금 스캔들이 터지며 첫걸음부터 삐끗거리기 시작했고, 이후 사민당이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문제 관련하여 정부 방침에 반대하면서 결국 연립내각에서 탈퇴한다. 그리고 점차 지지층의 신망을 잃으면서 하토야마 총리는 정치자금 문제 및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로 사민당이 연립정권에서 이탈했다. 결국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취임 1년이 채 안된 2010년 6월 8일 사임하고 말았다.


5. 관련 항목[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6 16:07:11에 나무위키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출구조사 결과는 4분 40초경부터 나온다.[2] 영상에 달린 사람들의 댓글은 대체적으로 이 선거를 후회하고 민주당 정권을 비판하는 의견이 대다수이다. 아무래도 역사적인 선거였던만큼 중의원 선거중에서도 관심도가 지금까지도 높은편. 영상에서 사회를 보는 인물은 총 3명으로, 각각 코미디언 시마다 신스케, 인기를 끌던 아나운서 코바야시 마오 등이다. 코바야시 마오가 일찍이 당선이 유력시되는 인물을 소개하는 것이 영상에서 인상적인 포인트다.[3] 일본어 상용한자표에 代/替 모두 실려있어 交代/交替를 둘 다 쓸 수 있고, 일본어에서도 약간 의미가 다르다고 하나 신문에서는 交代로 통일해서 쓰는 경향이 있다.# 일본 한자음은 こうたい로 동일하다.[4] 55년 체제 이후 첫 정권교체는 1993년 총선에서 호소카와 내각의 출범으로 이미 이뤄낸 바 있다. 당시 자민당이 과반확보에 실패함에 따라 야권의 연정을 통해 정권교체가 이뤄진 것. 하지만 이땐 원내 1당이 자민당이었고, 연립정권도 10개월만에 깨져버렸다.[5] 역대 단일 정당 중의원 최대의석은 1942년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381석을 획득한 대정익찬회이지만, 당시 상황이 태평양 전쟁 중 천황제 파시즘이 온 나라를 뒤덮었을 때 동방회와 입헌양정회를 제외한 모든 합법정당이 대정익찬회로 흡수된 특수한 정치적 상황이었는지라 의미가 있는 기록이라고 보기 어렵다.[6] 자민당의 전신까지 모두 포함할 경우, 1947년 중의원 선거 이후 처음으로 비자민당 계열 정당이 원내 1당을 차지한 것이였다.[7] 거기다가 기본 자질마저 의심되는 훈독 실수가 너무 잦아서 더 까였다.[8] 각외협력.[9] 자유민주당, 공명당[10] 그의 17번 선거 도전중 첫번째 낙선이다. 만약 가이후 도시키가 이 선거에서 승리했다면, 그는 50년 이상 연속으로 국회의원 직을 지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가이후 전 총리의 총리는 당시 꽤나 충격적으로 다가왔다.[11] 민주당 당수인 하토야마 유키오의 동생.[12] 행복실현당 후보와 1:1구도로 95.3%를 획득해 소선거구제 이후 최다 득표율이 나왔다.[13] NHK 출구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층(31%)의 86%, 자민당 지지층(35%)의 23%, 무당층(21%)에서도 52%를 얻어 자민당의 17%를 3배차로 압도하는 대압승을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