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대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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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10월 유신 이후의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는 단일 후보만 출마해서 만장 일치로 통과시키는 말그대로 관제 간접선거였기 때문에 선거의 의미는 사실상 없었다.[2]
2. 내용[편집]
1978년 5월 18일 대의원 선거 결과 2,581명의 제2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선출되었으며, 7월 6일 대통령 선거를 위한 대의원 회의가 소집되었다.
7월 1일부터 5일까지 닷새 동안 후보 등록을 받은 결과 7월 5일 곽상훈 등 507명의 대의원의 추천을 받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단독으로 등록했다.
제1야당 신민당의 김영삼, 이민우 등은 후보를 내야 한다며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 개최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철승 대표 등 당권파는 어차피 입후보 요건인 대의원 200명의 추천을 받기가 불가능할 것이며, 기적적으로 후보 등록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필패인데 괜히 간접 선거를 인정하는 꼴만 된다고 반대했다. 결국 신민당은 두 번 연속으로 대선을 원천 보이콧했다.
결국 장충체육관에서 재적의원 2,581명 중 2,578명이 참석한 가운데 선거를 시행했으며, 박정희 2,577표, 무효 1표가 나와 99.9%의 득표율로 박정희 후보가 당선되었다.
당시 대의원 중 한 명이었던 박승국 전 국회의원은 훗날 그 무효 1표는 자신이 기표한 것이라고 회고하였다. 물론 그 회고가 진실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박정희는 1978년 12월 27일 제9대 대통령이 되었으나,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하고 10.26 사건이 일어나 유신 체제는 종말을 맞고 만다.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한민국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쳐 보궐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 이론상 박정희의 잔임기간인 1984년 12월 26일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었으나 개헌 계획과 12.12 군사반란, 5.17 내란 등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바로 상술한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본문인 1978년 제9대 대통령 선거부터 4년간 연속으로 매년 한 차례씩[3] 대선이 치러지게 되었다. 당시의 정국 불안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적인 대목이라 할 수 있다.
3. 결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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