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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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순
趙斗淳 | Cho Do-Soon


파일:조두순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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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최근 공개된 조두순(컬러복원).jpg
▲ 2019년 10월 26일자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에서 공개된 조두순의 모습.[1][2]
파일:MBC실화탐사대(컬러복원).jpg
▲ 2019년 4월 24일에 방영된 MBC 교양 프로그램 실화탐사대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얼굴.[3]
파일:조두순.jpg
▲ 2010년 경북북부 제2교도소에 수감 중인 조두순의 모습.

출생
1952년 10월 18일 (71세)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등록기준지
경기도 시흥시[1]
거주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2]
신체
163cm, 70kg[3], O형
학력
국민학교 (중퇴)
병역
면제 (학력 미달)
직업
무직[4]
가족
배우자(1967년생) 4남 1녀 중 막내아들
전과
18범
범죄 유형
절도, 폭력, 성폭행, 상해치사, 아동 학대아동 성범죄

전자장치부착법위반[5]
범행 기간
1970년 ~ 2008년 12월 11일
최종 수감일
2008년 12월 13일
최종 출소일
2020년 12월 12일
1. 개요
2. 생애
3. 성향
3.1. 전문가의 분석
3.2. 주변 사람들의 증언
5. 수형 생활
6. 출소 이후
6.1. 출소 당시의 혼란
6.2. 조두순의 거주지
6.3. 경찰의 사후 대응
6.4. 기초생활수급자 신청 및 선정
7. 조두순의 배우자
8. 팩트 체크
8.1. 종교
8.2. 범행
8.3. 발언과 태도
8.4. 자녀
8.5. 출생지
8.6. 출소일
8.7. 관련 정책
9. 기타
10.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범죄자.

상해치사, 아동 성범죄, 성폭행 등의 중범죄를 수차례 저질러 전과 18범[6]이며 아동 성범죄 사건 중 하나인 조두순 사건의 가해자다.

초등학생에게 한 끔찍한 성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2. 생애[편집]


1952년 10월 18일에 빈민 가정에서 4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대처승이었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가정폭력을 일삼는 막장 부모였으며 그가 10살이었던 1962년 술에 취해 용변을 보던 중 재래식 화장실에 빠져 사망했다. 어머니는 중풍 환자였다.

국민학교 시절 그는 학교폭력 가해자였으며 이것 때문에 급우들과 충돌이 잦았다고 한다. 결국 가난한 형편과 학교폭력 가해 사실로 인해 국민학교 6학년 때 학교를 중퇴하였다.

이후 조두순은 비행을 일삼다가 18세였던 1970년에 대전시에서 자전거를 훔치는 것으로 공식적인 첫 범죄를 저질렀다. 검거 당시 초범이었고 청소년이었기 때문에 보호자 감호 처분을 받았다.

2년 후 대전에서 좌판 장사를 하던 또래 아이들을 협박해 돈을 갈취한 죄목으로 소년원 처분 1년 6개월을 받고 소년원에 들어가서 1년 6개월 간 수용 생활을 했고 소년원에서 나온 뒤 상습 절도 행각을 하여 1977년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아 수용생활을 했다. #

그가 성인이 된 후인 1974년에 중풍을 앓던 어머니가 사망했다. #

20~30대에는 구두닦이, 음악다방 DJ, 노점 운영 등을 했으며 알코올 의존증에 가까울 만큼 음주도 즐겼다. 음악다방 DJ 시절엔 여러 여성들과 동거를 하는 등 성생활이 문란하였다고 하며 이 시기에 동거녀 폭행으로 징역살이를 한 적도 있다.

1983년에 31세였던 그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미아동[7]에서 길 가던 19세 봉제공장 여성 직원을 마구 폭행한 뒤 여관으로 끌고 가 성폭행(강간치상)한 혐의로 기소되어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강릉교도소에서 복역하였으며 삼청교육대까지 드나드는 등 범죄를 저지르는 데 거리낌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30대 후반에 15살 연하의 아내와 결혼했고 아들도 태어났으나 아들은 생후 3개월에 사망했다.

43세였던 1995년 12월 21일 술자리에서 만난 60세 남성 황지현이 전두환노태우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그를 주먹과 발로 마구 폭행해 숨지게 했다.[8]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조두순은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심신미약이 인정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조두순은 5공 시절에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고생한 생각을 하면 분이 안 풀린다고 진술한 바가 있다.[9]

이후에도 이런저런 중범죄를 저지르면서 약 10여년 동안 교도소를 여러 번 들락날락하던 당시 전과 17범 조두순은 2008년 말 18번째 범죄로 8세 여아를 성폭행하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면서 세상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3. 성향[편집]



3.1. 전문가의 분석[편집]


전문가들은 조두순이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분노로 연관짓고 불편한 감정을 상대에게 위협적인 방법으로 표출하는 간헐적 폭발 장애라고 분석했다. 공격적인 성향이 강해 스스로의 행동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성폭행, 상해치사 등 강력 범죄가 포함되었다는 것인데 살인이나 강도 등을 제외한 범죄는 2000년대 이전이나 이후나 큰 차이가 없었고 조두순은 매번 징역 2~3년만 살고 나왔다.

이런 단기형이 반복되어 교도소를 들락날락하느라 사회 적응도 못 하고 20세기 한국 교도소의 특성상 교화 프로그램도 없어 인생이 꼬일 때마다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수정 교수는 "조두순이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여전히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건 천만다행이며, 전자감독을 실시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3.2. 주변 사람들의 증언[편집]


주취 감경에 대해 다룬 그것이 알고싶다 739회 <우리는 왜 술을 용서하는가?> 편[10]에서 조두순의 평소 행실에 대해 나오는데 항상 술에 취한 상태로 돌아다니며 길거리에 드러눕거나 오줌을 지리고 술자리가 보이면 염치 없게 끼어들어 얻어먹곤 했다고 하지만 자신의 실수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한다.

조두순과 10년 가까이 지낸 지인에 따르면 힘이 좋았고 소주를 대접에 마시고 반주로 소주를 3병이나 비울 정도로 주량이 좋은 술고래였다고 한다.


4. 조두순 사건[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조두순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조두순 사건"은 조두순이 저지른 18건의 범죄 사건들을 모두 포함하는 명칭이지만, 그 중에서도 아동 성폭행 및 중상해를 저지른 사건이 가장 심각하고 인지도가 높아서 수식어 없이 조두순 사건이라고만 하면 보통은 그 성폭행 사건을 뜻한다. 따라서 본 문서에도 해당 사건에 대해서 서술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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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관련 사건 사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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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수형 생활[편집]


아동성범죄로 징역 12년 판결 후 경북북부제2교도소 독방에 수감되었다가 경북북부제1교도소로 이감되었고 서울남부교도소로 다시 이감되었다.[11]

"12년 뒤 두고 보자, 열심히 운동해서 힘을 키우겠다."며 이를 갈고 있다는 소문이 돈 적이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자신을 검거한 안산단원경찰서 강력팀장에게 "교도소에서 열심히 운동하고 나올 테니 그 때 봅시다."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 24시간 감시를 받고 있었으며 따로 특이행동을 보이거나 하지 않고 조용히 수형 생활을 하는 중이었으며 자신에 대한 뉴스와 여론도 직·간접적으로 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

감옥에 있으면서 출소한 사람에게 편지를 보낸 게 공개되었는데 자신은 술에 취해서 전혀 기억이 없으며 자신이 그런 짓을 했다면 천벌을 받는 게 마땅하다고까지 했다고 한다.[12] 다만 처벌과는 별도로 주변 사람들의 평가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나는 범죄자가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경우는 꽤 많다.

범죄분석관의 분석 결과 사이코패스로 밝혀졌다. 다른 관련 기사를 보면 강호순 이상의 사이코패스라고 한다.[13]

2018년 11월 22일에는 출소를 2년 앞두고 성범죄 방지 심리치료를 하기 위해서 포항교도소이감되었다.

교도소에서는 별 사고를 치지 않고 잘 지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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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이전에 저지른 주요 전과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체포
형량
1970년
보호감호처분(절도)
1972년
징역 1년 6개월(협박 및 갈취)
1977년
징역 8개월(상습절도)
1983년
징역 3년(강간치상)
1995년
징역 2년(상해치사)

6. 출소 이후[편집]


"강간범을 보호하는 나라가 나라냐?"

"조두순 거세! 조두순 사형!"

- 서울남부교도소 앞에서 조두순의 출소에 항의하던 시위대가 외친 구호들.


조두순은 2008년 12월 13일에 수감되어 징역 12년이 선고된 바 이에 따라 2020년 12월 12일 새벽 6시 46분경 관용차량을 타고 만기 출소해 주소지인 경기도 안산시로 돌아갔다. # 이미 인터넷 등지에 "교도소를 찾아가 출소하는 조두순을 응징하겠다"는 등 각종 협박이 난무하고 대중의 관심도 집중된 만큼 법무부 측에선 출소 장소를 공개하지 않았다. 가장 마지막으로 알려진 조두순의 수감 장소는 서울남부교도소였다.

조두순을 조용히 출소시키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감한 후 출소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일부의 시각이었으나 결국 서울남부교도소에서 관용차량을 통해 출소했다. 경찰의 호위 아래 안산보호관찰소로 이동해 신원 확인과 간단한 교육을 받은 뒤 나와 뒷짐을 진 채 고개를 숙이고 다시 관용 차량으로 자택으로 이동했다.

"왜 출소자를 정부가 관용차로 모셔가느냐", "특혜 아니냐"며 비판이 일었지만 법무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이동 과정에서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고 이 경우 전자발찌 훼손이 될 수 있어 관용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신체 조건상 이동 곤란 등의 이유로 보호관찰관이 차량으로 동행하는 경우는 종종 있는 경우다."라고 항변했다.


6.1. 출소 당시의 혼란[편집]


서울남부교도소와 안산보호관찰소, 조두순의 거주지 부근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심지어 조두순을 호송하는 길에도 사람들이 관용차를 발로 차거나 유리를 깨고 올라타는 등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이로 인해 조두순의 거주지 주변에 경찰이 배치되어 사람들을 통제했다.

단순히 조두순에게 분노하여 모인 사람들이나 유명한 범죄자라서 관심 때문에 모인 사람들, 여성단체, 보수단체, 조회수와 돈을 벌기 위해 모인 사이버 렉카[14] 온갖 사람들이 조두순의 거주지로 모여들면서 순식간에 일대는 혼란에 빠졌다.

경찰의 통제가 있어서 진입은 못 하지만 근처 주민들이 시끄러워하며 불평을 하면 오히려 그런 사람들에게 큰소리를 치는 몰지각한 사람들도 있었던 등 조두순 1명 때문에 일대가 난장판이 돼서 주민들에게 큰 민폐를 끼쳤으며 애꿎은 인근 주민들은 통행 및 주차 방해나 소음 문제 등의 피해를 겪었다.[15] 일부 유튜버들은 조두순이 사는 빌라의 가스를 잠그기도 했다.[16]

조두순의 출소 당일은 코로나 19 일일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설 정도로 확산세가 가파르게 증가하던 시기였는데 이 상황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무질서하게 행동하는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반하는 행위이며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터지면 또 다른 피해로 번질 수 있었다.

또 경찰이 떠날 때 보복을 가하는 게 더 효과적일 텐데도 굳이 수십 명의 경찰들이 집중 보호를 하고 있을 때만 격하게 항의를 하면서 "그저 유명세를 위한 보여주기식 항의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실제로 조두순 출소 3일 뒤 눈이 쏟아지자 조두순 집 앞에는 아무도 없이 경찰들만 남아 있었다.

여러분들의 행위는 집시법에서 금지된 행위로, 사법처리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조두순 출소를 반대하는 시위대를 제지하는 경찰


당시 국민 정서가 굉장히 험악했기 때문에 경찰들도 "왜 범죄자를 보호하냐"고 욕을 먹었는데 이들은 그저 상부의 명령과 법에 따라 행동하는 공무원이기 때문에 본심과 별개로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조두순을 보호하지 않으면 경찰들이 직무유기죄로 처벌될 수도 있다. 경찰들이 호송차량 위에서 난동을 부리는 유튜버를 제지할 때 "우리도 같은 마음이고 다 이해하니까 그만하라."고 정중하게 말했다고 한다.

6.2. 조두순의 거주지[편집]


조두순은 거주지를 변경할 때마다 이웃들에게 신상정보를 담은 경고문이 발송된다. 필요에 따라 위치추적장치는 기간 연장이 가능하며 조두순은 부착 기간 동안 전담 보호관찰관이 배정되어 24시간 보호관찰할 예정으로 전해졌다. 조두순이 살게 될 동네 주민들의 불안한 심리 상태와 집값 문제 등으로 인한 님비현상을 충분히 우려할 수 있게 되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조두순의 출소를 반대하는 청원, 주취감경 폐지 청원 등도 올라왔지만 청와대 답변에서도 나와있지만 대한민국 현행법상 재심은 불가능하며[17] 출소를 막는 것도 불가능하다.

같은 범죄를 두 번 처벌한다든가, 법이 개정됐으니 기존 범죄에 가중처벌한다든가 하는 것은 현행 헌법에 어긋나며 조두순의 새로운 범죄가 발각되거나 출소 후 또 다시 범죄를 짓지 않는 이상 다시 교도소에 수감시키는 건 보호감호를 부활시키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박근혜 정부가 아동 성폭력범을 출소 후에도 일정 기간 보호수용하는 입법 조치를 추진했으나 국가인권위원회가 극렬 반발했고 국회도 단 한 번의 논의조차 하지 않은 채 해당 법안을 폐기시킨 전례를 생각해 보면 보호감호 같은 제도가 부활할 일은 없을 것이다.[18]

그랬는데 조두순 출소로 여론이 들끓자 더불어민주당 정치인들이 보호수용 제도 도입을 주장하고 나섰다. #1#2 이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시민단체들은 '피해자가 처해 있는 불안감이나 공포 등을 잘 알고 있지만, 그 문제를 이런 제도로 해결하려고 하면 결국 모든 범죄자들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인권침해'라고 주장하고 참여정부 당시 김태년 등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동의로 사라진 제도를 문재인 정부가 부활시키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

2020년 출소하면 수감 전에 본인이 살았으며 수감 후에도 아내가 거주하는 안산시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아마 아내와 재결합하려는 듯했으며 안산보호관찰소가 7월 사전면담을 시작으로 조두순의 재범 방지를 위한 전문프로그램 교육을 실시할 방침이었다. 출소한 뒤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

안산 시민들도 즉각 반발했다. #1 #2 특히 이 문제를 이후 직접적으로 담당하게 될 윤화섭 안산시장도 돌아오는 것 자체가 공포라며 법무부, 경찰 등과 협력해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법무부 측에서 보호수용법을 제정하기 어렵다는 답이 돌아오고 하술하듯 피해자 가족이 이사 가는 방법 외에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기 어려워지면서[19] 경기도지사 이재명격리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하는 등 여러 지자체장들의 고심이 깊어지는 문제였다.

"가해자가 이사를 가야지, 피해자가 이사를 가야 하냐"고 주장하던 피해자 가족이 결국 9월 23일 이사를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두순이 안산으로 돌아올 것을 막을 대안이 나오지 않자 피해자 가족이 직접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로 한 것이다. #1, #2[20]

조두순이 거주하는 집주인이 조두순 아내에게 "집을 비워달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아내는 "갈 곳이 없다"면서 거절했다고 하며 집주인은 "당시 계약한 사람이 조두순 아내인 사실을 몰랐다"고 했는데 조두순이 들어오면서 다른 세입자들도 불안하다며 이사 가겠다고 해서 말한 것이라고 한다. #

2022년 11월 23일 국민일보에서 11월 17일 조두순의 아내 오모씨가 조두순의 직업을 회사원으로 속여 선부2동 3층짜리 다가구주택에 보증금 1000만원 월세 30만원의 월셋집 계약을 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11월 28일 기존 와동에 맺었던 월세계약 기간이 끝나면서 집주인이 퇴거를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신상이 탄로나 임대인이 계약을 취소하려고 하자 아내 오모씨가 월세 취소 위약금인 2천만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한편 해당 지역 공인중개사들은 조두순 부부의 신상을 공유했으며 11월 초 원곡동고잔동에서도 월세 계약을 하려고 했으나 조두순의 신상이 드러나면서 계약이 파기된 바 있다. ##

6.3. 경찰의 사후 대응[편집]


법무부는 조두순의 전담 보호관찰관을 지정해 1:1로 감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나마 국민들의 주목을 크게 받아서 이런 수준의 조치가 출소 전에 고려되는 중인 것이지 사실은 이런 조치조차도 제대로 고려되지 않은 채 출소한 아동 청소년 성범죄자가 재범한 사례가 조두순 출소를 몇 달 앞둔 2020년 2월에 이미 있었다. #

전과 18범이자 최악의 성범죄자로 평가받는 조두순의 추가 범행을 막을 자는 약 1,400명의 보호관찰관 중에서 뽑혔다. 법무부는 "고심 끝에 보호관찰관 중에서도 책임감이 가장 강한 공무원이 선정됐다"고 밝혔다. 업무 특성상 누군지 자세히 밝힐 순 없다고 했지만 "정신적으로 단련된 최고의 엘리트"라고 설명했다.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무술 유단자와 같은 기준으로 선정된 건 아니라고 했다. 조두순 출소 후 최소 6개월은 A씨라는 익명의 보호관찰관이 그를 전담한다고 했다. #

법무부의 보호관찰자 선정과는 별개로 안산시에서 무도실무관 6명을 별개로 모집해 우범지역에 투입할 예정으로 전해졌으며 추가로 청원경찰 6명을 더 뽑아 우범지대에 투입할 예정이다.

2020년 11월 17일 조두순의 출소가 가까워오자 김창룡 경찰청장은 조두순의 거주지 관할인 안산단원경찰서 소속 경찰관 5명으로 구성된 조두순 대응팀으로 24시간 밀착 감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법무부 정한 준수사항을 조두순이 위반하는 문제가 발생하면 조두순 대응팀이 신속하게 출동해 대응할 계획이며 불시에 조두순을 찾아가 각종 위반사항이 있는지 확인한다고 한다. 경찰청장 “조두순, 출소 후 음주금지 검토…24시간 밀착 감시”

또 조두순의 아내가 마련한 새집의 출입구 근처에는 방범 카메라와 특별방범초소[21]가 설치되어 경찰관들이 24시간 순찰을 돌 예정이라고 한다. # 순찰 병력도 기동순찰대, 경찰기동대 등 가용 경찰병력을 동원해서 늘린다고 한다. "재범 막겠다"…경찰, 조두순 24시간 밀착감시 돌입

일각에서는 공권력과 사법부의 대응에 대해 "조두순은 역대 최악의 범죄자이긴 하지만, 대형 범죄조직도 아닌 일개 개인인 조두순 단 1명을 대상으로 하는 이러한 조치는 너무 과도하다"거나, "인간의 감정이 아닌 법에 의해 통치되는 법치주의에 어긋난다"거나, "여론의 눈치를 보며 조치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나 피해자 지원은 어디가고 가해자 보호 겸 감시에만 이렇게 많은 비용을 쏟느냐는 의견도 있다.


6.4. 기초생활수급자 신청 및 선정[편집]


조두순은 2020년 12월 첫 외출 때 배우자와 함께 행정기관을 찾아 생계곤란을 이유로 기초연금과 기초생활보장급여 신청을 했는데 결국 2021년 1월 말에 심사 통과되어서 국민들의 어마어마한 반감을 샀다. #

조두순 부부는 이에 따라 기초연금 30만원, 2인 기준의 생계급여 62만여원과 주거급여 26만여원 등 매월 총 120만원 가량의 복지급여를 받게 됐는데 조두순이 만 65세를 넘었고 배우자는 조두순보다 15세 연하로 만 65세 이하이나 만성질환과 신분 노출로 인한 취업 어려움 등을 호소하는 데다 본인들 소유 주택도 없어 복지급여 지급 대상에서 배제할 사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기초생활수급자 선정 과정에서 범죄 여부를 배제하는 것은 법치국가 특성상 어쩔 수 없긴 하다. 조두순이 흉악범죄자이긴 하지만 그도 대한민국 국민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에서 주는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권리는 있으며 현실적으로 전과자 신분이기 때문에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데[22] 복지급여를 지급하지 않으면 다시 범죄에 빠지고 추가적인 피해자가 생기는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므로 행정법상의 관점에서 볼 때 법의 적용은 주관적인 판단을 배제해야 하며 객관적이고 일관되게 집행되어야 한다.


7. 조두순의 배우자[편집]


2019년 5월 29일 실화탐사대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출소를 1년 가량 앞둔 조두순은 부인과 이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출소 후에는 안산에 있는 아내의 집으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됐고 결국 예상대로 됐다.

조두순의 아내는 "남편과 이혼할 생각이 없다."고 밝히면서 "술을 안 먹으면 집에서 잘한다"고 조두순을 두둔하는가 하면 이에 그치지 않고 기자들이 피해자가 근처에 살았다는 사실을 알리자 "그런 건 나는 몰라요, 신경 안 쓰니까. (피해자들이) 어디에 사는지, 어디 살고 그런 건 나는 모르니까 그런 거 관심도 없어요."라며 문을 닫아버렸다.

아내는 조두순의 검거 당시 수 차례 탄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 탄원서 속에 "신랑이 술을 마시고 방황하는 것 외에는 저의 마음도 집안도 참으로 평화로운 가정이었다", "신랑은 예의를 아는 사람이다", "피해자가 어디 살든 우리는 관심 없다"와 같은 망언들이 포함되었던 것으로 밝혀져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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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팩트 체크[편집]


워낙 화제가 된 사건이기도 해서 관련 가짜 뉴스가 정말 많이 돌았는데 사건을 처음 취재한 KBS PD는 2009년 "눈 뜨고 보기 힘든 소설들이 올라와있다. 이런 내용을 아이가 봤을 때 어떤 기분이 들겠나. 정말 자제를 부탁드린다."고 하기도 했다. #


8.1. 종교[편집]


  • 조두순의 직업은 목사혹은 신부였다? - 거짓
    • 조두순의 직업은 목사, 신부가 아닌 일용직 노동자였으며 당시 개신교, 천주교에 대한 인식이 바닥으로 치닫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에 끼워맞춘 루머다. 재판 당시 언론에서 직업에 대해 명확히 보도했지만 판결 이후 2년 동안 목사, 신부인 줄 알았던 사람들도 많았다.
    •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국민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여러 범죄를 저질러 온 국민학교 중퇴 전과자가 신학대학에 진학해 목사 또는 신부가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며 목사, 신부의 전적과 도덕성, 전과, 평판 등이 해당 목사, 신부가 사역하는 교회와 교단, 성당, 천주교 교구는 물론이고 개신교, 천주교 전체적인 인식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어쩌저찌 공부해서 신학대학에 입학할 자격이 되었더라도 이런 부류의 인간은 교회, 성당, 신학대학, 천주교 교구에서 입학 및 목사안수, 신부안수, 세례, 교리를 거절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은 물론, 장로 같은 교회, 성당 직분도 절대 주지 않을 것이며 평신도로 등록하거나 예배미사 등등 각종 교회, 성당 행사에 참석하는 것조차 거부당할 확률이 매우 높다. 당장 조두순이 다니는 교회, 성당이라고 알려지면 교인들이 그 교회, 성당을 다닐지 생각해 보자. 따라서 그가 평생 참석할 수 있는 예배, 미사는 온라인 예배, 온라인 미사가 유일할 것이다.
  • 조두순의 실제 종교는 기독교(개신교) 혹은 천주교다? - 알 수 없음
    • 교도소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성경을 읽으며 필사하고 있다는 기사와 사진으로 미루어 보아 기독교, 천주교 신자로 볼 여지가 있었다. 관련 기사 그러나 성경 필사를 근거로 조두순을 기독교인, 천주교인이라고 확정하기는 다소 어렵다. 우선 성경을 필사하는 일이 여론전을 위한 이미지 관리의 수단일 수 있다. 관련 기사 또 조두순이 성경을 필사한다는 기사는 다수 검색되지만 주일예배, 주일미사 정기 참석, 세례, 본인의 발언 등 추가적인 증거가 전무하다. 따라서 이 부분은 단정짓기 어렵다.[23]
    • 결국 출소한 범죄자의 사회적응을 돕는 개신교, 천주교 단체에서도 "조두순이 출소 후 단체에 가입할까봐 우려된다"는 입장을 남겼다. 단체 대표와 인터뷰한 내용을 읽어보면 비교적 완곡된 표현을 사용했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조두순이 오면 우리 단체까지 논란에 오르고, 이로 인해 다른 회원들까지 피해받을까봐 걱정된다\'이다. 즉, 오지 말라는 뜻을 최대한 완곡해서 표현한 것이다. 그래도 오면 받아 줄 것이라고 밝히긴 했다. # 쉽게 말해서 그냥 시간 때우려는 목적일 수도 있기에 속단할 수는 없다.
  • 이 경우 범행 장소가 교회 건물 화장실이라는 점에서 이야기가 와전되어 조두순이 개신교 신자라거나 목사라는 식으로 이야기되기도 했고 일부 극단적인 반기독교주의자들이 이것을 빌미로 조두순은 기독교라는 주장과 함께 기독교를 비난하는 근거로 사용하기도 했다.


8.2. 범행[편집]


  • 조두순이 뚫어뻥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 거짓
    • 이러한 글처럼 조두순이 범행에 뚫어뻥을 사용하여 피해자의 대장을 손상시켰다는 글이 돌고 있다. 조두순 사건이 알려진 2009년에서 2010년 경부터 돌기 시작한 유서 깊은 가짜 뉴스다. 판결문과 경찰조서 어디에서도 뚫어뻥에 대한 내용은 없다. 이 가짜 뉴스는 8세 여아의 대장이 얼마나 약한지를 간과한 것이다. 만약 조두순이 정말 뚫어뻥을 사용했다면 피해자는 과다 출혈로 사망했을 것이다. 피해자가 당하지 않은 허위 피해 사실을 유포하는 것은 피해자에 대한 또 다른 2차 가해다. 당시 판결문(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2009고합6)은 조금만 검색해 보면 읽을 수 있는데 범죄사실, 증거 리스트 그 어디에도 뚫어뻥에 대한 언급은 없다.

  • 조두순은 살인을 저질렀다? - 사실
    • 앞서 말한 대로 1995년에 술자리에서 전두환노태우를 지지하던 한 60대 남성을 폭행해 죽였으며 징역 2년이 선고되었다. 다만 법적으로는 살인죄가 아닌 상해치사죄가 적용되었다.


8.3. 발언과 태도[편집]


  • 조두순이 "어차피 여학생이 나중에 다 경험할 건데"라고 망언을 하였다? - 거짓
    • 조두순이 한 TV 프로에서 인터뷰한 내용이라고 와전되어 퍼졌지만 역시 사실이 아니다. 해당 사진의 원본은 2008년 7월 방송된 EBS '다큐프라임' 중 한 장면이며 해당 발언의 주인공은 성범죄자 교사 이상길(가명)이었다. 자막 위 이름에서 '이상길'을 지우고 '조두순'이라고 합성한 캡처본이 떠돌아다니면서 생긴 루머다. #(), #()

  • 출소 후 복수하기 위해 몸을 만들고 있다? - 거짓
    • 당시 오늘의유머 회원이 《사건사고 탑5》라는 프로그램을 언급하며 쓴 게시글이며 지금은 삭제되었다. 교도소 관계자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그동안 이상동향이 없었다."며 "건강이 좋지 않다."고 했다.

  • 2020년 11월 18일 국민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출소 후 보복이 두려워서 하루에 팔굽혀펴기를 1,000개씩 하고 했다 한다. # 2020년 12월 5일 방영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 출연한 교도소 재소자의 증언에 따르면 조두순은 전혀 반성을 안 하고 있으며 교도소 재소자들에게도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었다고 했는데 경찰이 옆에 있는데도 재소자들이 조두순을 두들겨 패고 쓰레기 취급을 했다고 하며 재소자들끼리 통성명을 할 때도 자신의 죄목을 다 밝힐 정도로 떳떳했다고 한다. 그리고 조두순이 CCTV나 TV 전파로 성욕을 느낀다고 주장하며 자위행위를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 - 거짓
    • 법무부는 이와 관련해 조두순은 형 확정 이후 독거실에 수용되어 생활하였기 때문에 다른 수용자가 조두순의 일상생활을 목격했다는 것은 제보자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하다며 "조두순은 수용 중 음란행위로 적발되거나 처벌받은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입소 이후 주로 팔굽혀펴기와 앉았다 일어나기 운동을 했고, 최근에는 걷기 위주의 운동으로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 "나이와 건강상태를 고려할 때 일반 성인 남성도 하기 어려운 '시간당 1,000개 팔굽혀펴기를 하며 체력 단련에 힘쓰고 있다'는 출소자의 진술은 과장된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

  • 출소 후 피해자에게 복수하거나, 초등학생, 중학생 소녀를 타겟으로 잡았으니 조심해라? - 알 수 없음. 이후 그의 행적이나 위의 사례를 보면 이 역시 사실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 조두순은 공식적으로 "아내와 산에서 커피숍을 차리겠다"는 것을 제외하면 출소 이후의 행동 계획을 밝힌 적이 없다.


8.4. 자녀[편집]


  • 조두순의 아들이 조두순 선처 카페 매니저며, 현재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 거짓
    • 조두순은 배우자와 결혼 후 아들을 얻었으나 3개월 만에 사망했으므로 자녀가 없다.
  • 조두순의 아들이 조두순 아들입니다... 우리 아빠 건들지 마라라고 주장했다? - 거짓
    • 2020년 11월, 유튜브에 조두순 아들입니다... 우리 아빠 건들지 마라라는 영상이 뜬 적이 있었으나 단지 조두순과 아무 관계 없는 미성년 유튜버가 조두순의 출소에 대한 시민들의 두려움을 악의적으로 이용해 허위주장을 한 것이었다.

8.5. 출생지[편집]


  • 조두순의 출생지는 ○○이다? - 알 수 없음
    • 조두순 본인조차 자신의 출생지를 모를 가능성이 높다. 상당히 가난한 집안 출신인 데다 그가 태어난 1952년은 6.25 전쟁이 한창이던 때라 성장지가 여러 번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다. 일단 경상남도 동남부 지역과 일부 도서지역 출신은 아니란 점은 확실하다. 정신 나간 지역감정 때문에 근거도 없이 경상도 출신이다, 전라도 출신이다 같은 헛소문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많이 퍼지긴 했다지만 출생지는 알 수 없어도 1995년 폭행치사 당시에도 안산에 살았던 것을 보면 안산에는 꽤나 오랫동안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본인도 본인의 진짜 고향을 모르는 이상 사실상의 고향을 안산으로 봐도 무방하다. 출소 후에도 안산에 거주하고 있다.

8.6. 출소일[편집]


  • 조두순의 출소일은 12월 13일이다? - 거짓
    • 2020년 12월 12일 오전 6시 45분경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출소했다.[24]


8.7. 관련 정책[편집]


  • 조두순이 출소할 시 피의자가 거주하는 지역 근처에서 거주해도 아무도 모른다? - 거짓
    • 사실이 아니다. 조두순은 징역 12년을 선고받을 때 법원에서 얼굴, 실명, 나이, 거주지 등의 신상정보 5년 동안 공개•고지 명령을 선고받았으며 2010년과 2013년 검찰이 청구한 신상정보 명령이 받아들여져 약 15년 동안 신상정보가 공개된다.
  • 7년 간 전자발찌 부착, 5년 간 성범죄자 알림e에 신상 공개
  • 거주지 내에 설치된 재택 감독 장치와 전자발찌 등을 통해 전담 보호관찰관으로부터 24시간 1대1 밀착감시를 받게 된다.
  • 법원은 조만간 조두순에게 일정량 이상의 음주 금지, 심야 시간대 외출 제한 등 특별준수 사항을 부과할 전망이다.


9. 기타[편집]


  • 초기에는 조두순의 얼굴 사진이 공개되지 않아 다른 인물들의 사진 등이 조두순 신상이라고 인터넷상에서 여러 번 잘못 알려진 경우가 있었다.[25] 한때 강력범죄자 중 법에 의해 신상이 첫 번째로 공개된 아동 성범죄자 김수철의 사진이 조두순 사진이라고 퍼진 적도 있었고 아예 일반인이 피해를 입은 조두순 헛지목 사건도 있었지만 이후 문서 상단에 있는 사진으로 얼굴이 공개되었으며 성범죄자 알림e를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다만 성범죄자 알림e 어플에 적혀 있는 신상정보를 이 문서는 물론이고 다른 위키, SNS를 포함한 그 어떠한 사이트에 절대로 작성해서 게시하면 안 된다. 관련 법률에 의거하여 처벌받게 된다.[26] 그리고 타인에게 성범죄자 알림e에서 확인한 조두순의 정보를 보내주는 것도 위법이다. 대신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성범죄자알림e의 존재와 사용 방법을 알려주는 것은 합법이다. 가급적이면 이런 방법을 쓰자.

  • 삼청교육대를 갔다 온 적이 있다. 1995년 12월 21일 희망자립원에서 술을 마시다 같이 마시던 황지현(당시 60세)[27]이라는 사람이 전두환노태우를 지지한다고 밝히자[28] 상해치사를 저지르고 동기를 밝히길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나온 적이 있어서 5공 정권을 증오했다고 한다.[29] 이 점에서 삼청교육대가 범죄자 교화에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명백한 증거로 참고되기도 한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삼청교육대 조교 출신이라서 보복 범죄를 저지른 경우도 은근 많다.

  • 조두순은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주는 사례인데 경제적으로 가난한 집안에서 부모로부터 범죄와 폭력 성향을 지속적으로 주입받아 끔찍한 흉악범이 되었다. 환경이 전부는 아닐 수도 있지만 상당히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다른 흉악범도 마찬가지다.

  • 북한에서도 조두순 사건이 잘 알려져 있다. 아동 성범죄자는 짐승도 낯을 붉히게 하는 인간쓰레기라는 말을 할 정도로 이쪽도 조두순을 인간말종 취급을 한다.[30]
  • PCL-R[31]에서 무려 29점을 받았다. 이는 10명을 살해한 강호순보다도 더 심각하다.[32]


  • 그가 출소하고 나면 SNS 활동(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 페북스타, 유튜버, 틱톡커 등등)을 시작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나왔지만 이는 딱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출소 후 보호 감찰 기간이기도 하고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의 강력범죄자 이용 불가 규정이 있기 때문에 어차피 가입해 봤자 바로 비활성화로 사용하지 못하게 될 게 뻔하니 안 봐도 비디오다. 게다가 이미 늙을 대로 늙어서[33] SNS를 사용하는 방법도 잘 모를 것이다. 게다가 사칭계정도 많기 때문에 누가 실제 조두순인지 판별하기도 힘들지만[34] 상술한 이유로 실제 조두순의 계정은 없을 가능성이 거의 100%다.

  • 의외로 모르는 사실인데 흡연자다. 초등학교를 자퇴하고 방황하던 시절 길빵도 자주 날렸으며 금연구역에 가서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조두순 사건 당시에도 피해자에게 담배빵을 날렸으며 그 사건 이전에도 자기가 마시던 술에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여 술집에 있던 여자들에게 화상을 입히기도 했다. 자주 피우는 담배는 보헴 시가말보로로 추정된다. 출소 이후에도 담배를 피는 모습이 포착된 바 있다.

  • 국내에서 크게 보도된 인물인데다,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소원>을 통해 중국이나 일본에도 꽤 알려져 있는 범죄자다.[35] 실제로 2020년 조두순이 형기를 마치고 출소해 안산에 위치한 거주지로 들어설 때, 일부 중국인들이 중국 포털 사이트를 통해 현장을 중계할 정도였다.


10. 관련 문서[편집]



[1] #[2] 성범죄자 알림e에 조회하거나 인터넷에 검색하면 주소가 상세하게 나와 있으나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라 동까지만 서술한다.[3] 교도소 수감 전에는 85kg였으나, 교도소에 있는 동안 살이 빠진 것으로 추정된다.[4] 前 건설 노동자, 경비원[5] 현재 재판중[6] 전과의 수는 저지른 죄목의 수효가 아닌 유죄 판결을 받은 수효로 결정된다. 예를 들면 특수강도를 10회 저지르고 그에 대해 유죄 판결이 1번 내려지면 전과가 1건 추가된다.[7]서울특별시 강북구 미아동.[8] 이 사건은 당시 신문에서도 보도되었다.[9] 전문가들은 5공 시절의 삼청교육대가 그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언급했다.[10] SBS 그것이 알고싶다 홈페이지에서 무료 다시보기가 제공되고 있다.[11] 심리치료를 위해 포항교도소로 잠시 이감된 적이 있다.[12] 이는 영화 <소원>에서 범인이 면회 온 설경구에게 하는 대사로 나온다.[13] 단, 강호순은 개정 이전 버전을 테스트하였다.[14] 사이버 렉카들은 조두순이 탄 차량의 길을 막고 고속도로에서 칼치기를 동반한 추격전을 벌여 교통혼잡을 일으키거나 자기들끼리 고성을 지르다 못해 현피를 벌이는 등 주변에 온갖 민폐를 끼쳤다.[15] 조두순이 사는 곳의 일부 주민이 조두순에게 계란을 던지는 등 조두순을 맹렬하게 질타했다.[16] 이는 형법 제173조에 따라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유기징역을 받을 수 있는 불법행위다.[17] 대한민국을 포함한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 특히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이미 판결까지 다 끝난 상황에서 재심은 불가능하다. 현행법의 재심은 '피고인의 유죄판결이 확정된 후 피고인의 무죄를 입증할 만한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는', 즉 피고인이 실제로는 무죄일 가능성을 찾았을 때만 행하는 것이다.[18] 범죄자를 옹호한다고 인권위를 욕할 수도 있겠지만 보호감호는 과거 국가폭력의 수단으로 악용된 과거가 있는 제도였다. 특히 법의 집행은 조금의 융통성도 허용할 수 없는 영역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19] 거주 이전의 자유는 헌법에도 명시된 기본권이다. 형을 다 산 이상 국가가 조두순을 강제로 이사시키는 것은 위헌이다.[20] 다행히 이사는 국민 모금으로 진행되었고 피해자의 근황 문단에서 자세히 볼 수 있다.[21] 안산단원경찰서가 조두순이 살고 있는 건물 출입구가 바로 보이는 곳에 특별치안센터라고 가건물을 설치했다. 조두순 거주지와의 거리가 고작 10여 m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22] 특히 조두순은 흉악범으로도 잘 알려져 있으므로 업체 입장에서 조두순을 고용하기가 쉽지 않다. 반면 이른바 '잡범'으로 불리는 평범한 범죄자는 취업의 폭은 좁아도 취업 자체는 충분히 가능하다. 게다가 조두순은 출소 당시 65세로, 나이 제한으로 점철되어 있는 취업 시장에서는 일자리를 구할래야 구할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23] 여담으로 혹시 조두순은 개신교, 천주교이며 피해자는 천주교기독교 아니냐는 얘기가 있는데 이것도 당연히 알 수 없다.[24] 12월 13일 출소설은 언론을 통해 퍼졌는데, 한국 언론들은 '법조 기자'를 고용하고 있음에도 이런 기본적인 사실도 확인조차 하지 않고 법무부가 12일 출소를 밝힌 12월 7일이 되어서야 출소일을 12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25] 대표적인 인물로는 김수철이 있다. 김수철은 조두순과 닮은 점이 매우 많았는데 초등학생을 성폭행했다는 것부터 범행 수법, 범행 동기 등 닮은 점이 많았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김수철을 조두순으로 착각했던 적이 있었다. 다만 김수철은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26] 그래서 성범죄자 알림e 어플에서는 캡쳐기능이 전혀 작동되지 않는다.[27] 1935년[28] 당시는 문민정부에 의해 전두환과 노태우가 구속된 시점이었다.[29] 이를 서울신문에서 보도했다.[30] 참고로 북한에서 살인이나 아동성범죄를 저지를 경우 종신형에서 사형을 선고한다. 물론 여기는 뭐만하면 다 사형이긴 하지만...[31] 사이코패스적 성향 테스트[32] 단, 강호순은 개정 이전판을 사용하여 그런 점수가 나왔으며 조두순이 받은 29점은 개정 후 점수다. 살인범들 중에는 김일곤, 서진환, 이은해, 강윤성 같이 조두순보다 더 높은 점수가 나온 경우도 많다.[33] 물론 조두순 또래의 노년층들 중에도 SNS 사용자가 많지만 조두순은 SNS 태동기 이전인 2008년부터 쭉 수감생활을 해와서 주변과 교류가 단절된 채 살아 왔기 때문에 SNS 자체를 모를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조두순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80대 이상의 노년층은 여전히 피처폰을 많이 사용하는 데다 SNS 자체를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34] 심지어 조두순의 범죄 행각까지 프로필에 게시한 계정도 있다.[35] 중국과 일본의 영화 평점 사이트를 보면 평점이 꽤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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