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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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구
趙相九 | Cho Sang-gu


본명
최재현(崔在賢)
출생
1954년 12월 30일 (69세)
경상북도 경주군 경주읍[1]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본관
경주 최씨
종교
개신교
신체
176cm[2], 67kg
가족
아버지, 어머니, 배우자, 슬하 2남
학력
월성국민학교[3] (졸업)
월성중학교 (졸업)
경주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문리과대학 (영어영문학[4] / 중퇴)
병역
대한민국 해병대 병 283기 병장 만기전역
데뷔
1978년 연극 '햄릿'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5]

1. 개요
2. 생애
2.1. 번역가 활동
3. 번역 작품
4. 주요 출연 작품
5. 여담



1. 개요[편집]


파일:조상구 번역가.jpg

대한민국배우번역가. 본명은 최재현으로, 특이하게도 영화 '외인구단'에서 자신이 맡았던 배역을 이후 예명으로 삼았다.[6]

2003년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시라소니 역으로 인기를 끌기도 하였다.


2. 생애[편집]


1954년 12월 30일# 경주의 한 국수가게 주인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영화광인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경주 일대의 극장들을 순회하면서 영화에 심취했다. 학창 시절에는 학교에서 싸움을 여러 번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자신보다 한 학년 높은 선배로부터 이유 없는 구타를 당하자 무려 두 달 동안 얻어맞으면서도 선배를 쫓아다니며 결투를 신청해 결국 선배에게 "내가 졌다 잘못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는 일화도 있다고 한다.

동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73학번)에 입학한 후 대학 2학년 때 아버지를 여읜 충격에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병 283기). 나쁜 선배에게도 과감히 덤볐던 고등학교 때와 달리 해병대는 죽어도 선임에게 덤빌 수 없는 상황이어서 당시 특정 선임에게 끔찍할 정도로 폭행과 가혹행위 등의 괴롭힘을 당해야만 했다고 한다. 그 선임은 하필 앞니에 금니[7]를 한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본인을 군화로 짓밟아 팬 뒤 다 때리고 나면 항상 그 금니를 크게 드러내며 매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고 하며, 30년이 지나도 평생 잊을 수 없다고 한다.[8] 그때부터 눈빛이나 인상이 더욱 날카로워졌다는 게 본인의 생각이다. 1978년 군 제대 후 복학했지만, 다시 휴학과 복학을 반복해 결국 졸업장은 받지 못했다.

이후 1986년, 운명적인 작품인 이장호 감독의 이장호의 외인구단(원작 이현세)으로 데뷔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 조상구 역을 맡은 이후 대외적으로 이름이 조상구로 굳어졌다. 본인이 지은 것도 아니고 의도한 것도 아닌지라 초창기엔 싫어했지만 주위에서 "넌 천상 조상구야."라는 의견이 압도적이라 그대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고. 근데 나중에 이현세의 말에 의하면 공포의 외인구단 주인공 오혜성(까치)의 실제 모델은 바로 학창 시절 친구였던 그였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지옥의 링에서 오혜성 역을 맡기도 했다.

조상구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만큼 깡다구가 센 사람도 없다고 평가한다. 학창시절부터 싸움으로 통했던 그는 해병대에 자원했을 정도로 남성다운 기질이 강하다. 이 때문에 시라소니와 외적인 분위기는 물론 '깡다구'까지 닮았다는 당시 야인시대 제작진의 농담도 종종 들었다고 한다.

MC 이상용이 제작하는 인터넷 방송 '뽀빠이이상용TV'에 깜짝 출연하기도 했다. 야인시대 이후 시간이 지났고 살도 쪄서 시라소니의 그 이미지는 많이 사라진 편이다.

2021년 1월, SBS 야인시대에 같이 출연했던 탤런트 김영호유튜브 채널을 통해 오랜만에 근황을 알렸다. 조상구 본인이 직접 말하기를 백수에요. 백수였어요. 섭외 들어온 건 내 맘에 안들고, 그렇게 끝내고 싶진 않아서 계속 안하게 됐다라고 밝혔다.[9] 그나마 행사, CF 같은 섭외가 들어온다고 밝혔다. (ENG)야인시대 시라소니&이정재 브로맨스 경주여행 [김영호의 같이여행 EP.1]-김영호채널


2.1. 번역가 활동[편집]


데뷔 후에 인기를 얻는 듯했으나 한때 막노동으로 끼니를 때우는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다. 때문에 배고픔은 그의 작품 선정에 가장 큰 '적'으로 다가왔고, 이 같은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길은 전공인 영문학을 최대한 살려 볼 수 있는 외국영화 번역가였다. 주로 1990년대 들어서 활발히 활동했다. 특히 '타이타닉'과 '레옹' 등 여러 히트작들을 번역하며 당시 이미도와 함께 영화 번역의 양대 산맥이었다. 기사 번역한 영화만 1,400여 편에 달한다.

하지만 오역을 하다 못해 거의 창작 수준으로 자막을 써버리는 경우가 있었고, 특히나 명작 취급 받는 영화들을 하필 그러는 바람에 평가가 좋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마이클 만 감독의 히트 같은 경우 "내가 그랬지? 감옥에 다시 안 돌아가겠다고..." 정도로 해석될 만한 영화의 마지막 대사를 뜬금없이 "내가 먼저 자네를 쏠 수도 있었어." 라는 전혀 다른 뜻의 터무니 없는 대사로 바꿔 극장 자막에 걸리게 만든 사례는 영화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히트 영화나 번역가로서의 조상구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관련해서 말이 나오던 꽤 유명한 사례.[10] 심지어 화양연화처럼 영어 영화도 아닌데 번역해 논란이 있었던 적도 있다. 이 때문에 번역가로써 그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원조 박지훈이라 까기도 한다.

맥심(잡지)과의 인터뷰에서 밝히길 먹고살기 위해 했을 뿐 번역일을 좋아하지 않아서 번역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이를 해소하기 위해 줄담배를 피워대는 통에 아내도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조상구는 틈만 나면 책을 구입한다고 하며, 그의 한 달 독서량은 많을 때는 20권 이상이라고 한다. 집에 더 이상 책을 쌓아 놓을 공간이 없어진 후에는 주위 사람들에게 책을 주기도 하고 집 앞마당에 책을 쌓아 놓기도 한다고 알려져있었다. 그러나 2021년 12월에 본인이 이에 대해 부인하며, 그해 말에 이사하면서 공간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책을 버린 것 이외에는 단 한 권도 버리거나 남한테 준 적이 없었다고 한다.#


2.2. 시라소니[편집]



파일:external/spnimage.edaily.co.kr/PP08102700006.jpg

유명한 야인시대 시라소니 역 당시 사진

이후에 '야인시대'의 시라소니 역을 맡는 것을 계기로 다시 배우로 복귀하였다.[11] 대표적인 대사는 '썅 두한이' '간나새끼' '똘대가리' '내래? 시라소니야.' 이를 통해 그야말로 진 주인공의 포스를 엄청나게 풍기면서 '공포의 외인구단'의 '까치' 이후로 극중에서 상당히 깊이 각인된 캐릭터로 인기를 끌게 되었다.

야인시대 자체가 방영 당시는 물론이고, 종영한 지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여태까지 회자되고 있는 상황인지라 시라소니 배역을 맡았던 조상구의 인지도도 여전히 높다. 현재 야인시대는 합성물로서 소비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진지하게 파고드는 팬층도 역시나 존재하는데 그런 애청자들 입장에서 조상구가 연기한 시라소니는 야인시대 내 최고의 씬 스틸러로서 자리매김 했다. 역대 최고의 시라소니, 또는 시라소니보다 더 시라소니 같다는 의견까지 나올 정도로 강렬하면서도 매력적인 이미지를 남긴 것.

이렇듯 인생 배역을 맡아서 희대의 명연기를 펼쳤지만, 야인시대 종영 이후에 주글래 살래를 찍게 되면서 엄청난 슬럼프에 빠졌었다.[12]

배우가 작품을 잘못 만나 커리어가 꼬여버리는 경우가 왕왕 있지만, 그래도 2006년 MBC 오버 더 레인보우로 복귀한 이후 연개소문의 책사 죽리, 식객의 정형사 강편수, 타짜짝귀 등으로 작품 참여를 많이 하기는 했다. 하지만 딱히 인상적인 임팩트는 남기지 못했는데, 훗날 근황 올림픽에 출연하여 밝히길 시라소니 배역의 이미지를 벗어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공공의 적 시리즈의 강철중이나 추노의 이대길처럼, 인생 배역을 맡는다는 것은 배우에게 있어 단기적으론 큰 이득을 안겨줄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결국 그 배역마저도 넘어서야 한다는 리스크를 안겨다 준다. 특정 배역으로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는다는 것은 이렇듯 일장일단이 있는데, 시라소니 배역도 조상구 본인에게 있어선 양날의 검이었던 셈.

여담으로 배우로 복귀하던 2006년에 야인시대에서 열연한 문영철 역의 장세진과 함께 세제 광고를 찍기도 하였는데, 이는 조상구의 유일한 CF이다. 영상

시라소니 이후로 연기에 집중하기 위해 번역가 일은 잠정적으로 그만두었었으나. 배우 활동이 잦아든 이후론 다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3. 번역 작품[편집]




4. 주요 출연 작품[편집]


이때 극중 이름을 현재까지 본인예명으로 쓰고 있다.
조상구 본인마저 금지어 취급할 정도로 이 배우의 최대 흑역사다.
  • SBS 야인시대 (2003) - 시라소니
  • 홀리데이 (2006) - 수사본부장 역
  • SBS 연개소문 (2007) - 죽리 역
  • SBS 식객 - (2008) 강편수 역
  • SBS 타짜 - (2008) 개미왕(짝귀) 역
  • SBS 태양을 삼켜라 - (2009) 조치국 역
  • SBS 마이더스 - (2011) 고동춘 역
  • MBC 무신 (2012) - 푸타우
  • KBS 포세이돈 - 박칠성 역
  • MBC 트라이앵글 - 한명재 역
  • KBS 징비록 - 마에다 토시이에
  • KBS 장영실 - 변대치 역
  • 애비 (2016) - 덕수 역[13]
  • 차인표 (2020) - 등산객 역


5. 여담[편집]


  • 장세진과 2인 유튜버 '웃긴형들' 멤버를 맡고 있다.


  • 만화가 이현세와는 국민학교 4학년 때 짝으로 인연을 맺은 뒤, 1973년 경주고 졸업 때 까지 학창 시절을 함께 한 죽마고우다.

  • 2020년 차 문 끼임 사고로 오른쪽 중지가 절단되었다. 박영록이 유튜브로 문병가며 상황을 설명했는데, 절단된 손가락을 들고 직접 병원에 가져가서 봉합수술을 했다고 한다. 해당 영상의 베스트 댓글이석재병문안 오게 하면 안됩니다[14]였다.

  • 2021년 근황올림픽 영상에 근황을 알렸다. 시라소니같은 당대의 싸움꾼은 아니라고 하며 싸움 실력은 평범하다고 한다.

  • 야인시대 출연진 일부는 현재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전성기 때의 인지도를 다시 쌓아가는 중인 반면 이쪽은 시라소니라는 야인시대 2부의 강한 인상을 남긴 주요 인물을 담당 했음에도, 요즘에 별다른 섭외가 들어오지 않는 모양.

  • 2022년 경남 진주에 '아마닭칼국수'를 본점으로 개업했다.# 원래가 국수집 가게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하니, 어찌보면 가업을 이은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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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경상북도 경주시[2] 다음 인물 정보, 다만 구글 인물 정보에는 171cm로 기재되어 있다.[3] 現 월성초등학교[4] 73학번[5] 장세진과 함께 운영하는 채널.[6] 의외로 연예계에서는 자주 있는 예명 작명법이다. 금보라(손미자)는 데뷔 초 자신을 스타덤에 올려준 영화 '물보라'에서 따왔고, 송채환(권소연)은 장군의 아들 2에서 자신이 맡은 배역을 예명으로 쓰고 있다. 정선경(김성희) 같은 경우에는 '너에게 나를 보낸다'의 배역 이름이었다. 최근에는 고준희(김은주), 서준영(김상구), 용쟁호투볼로 양(양사)등이 있다.[7]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의외로 젊은 사람들도 심한 충치나 치아 부상 후 앞니 금니를 한 경우가 적잖게 있었다. 사실 당시에도 치아색과 유사한 도재 보철은 존재했는데도 왜 그랬는지 의문이다.[8] 과거 야심만만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이 이야기를 하며 그 선임의 실명까지 대놓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상구가 아닌 자신의 본명을 말하며 "XXX씨, 나 기억하죠? 최재현이요. 그때 당신은 재미로 그랬는지 몰라도 나에게는 너무나 끔찍했습니다. 너무요, 너무."라고 말했다.[9] 대략 3년~3년 반 동안 이어져 왔다고 한다.[10] '영화사의 요청으로 원래 영어 대사와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상당수이다.'고 변명하지만, 저 정도는 정말 '번역'이 아니라 '재창작'이 되어버리는 수준이기 때문에 저런식으로 정당화 될 수는 없다. 당장 당시 극장에서 접한 사람들 반응은 하나같이 나중에 제대로 뜻을 알고는 '사기 당한 느낌이었다.' 거나 '어이가 없었다.' 같은 부정적 반응들 일색이었다. 정말 영화사의 요구였건 번역자의 변명이건 잘못된 것이라고밖에. 대신 극장버전이 아닌 케이블 채널 등에서 방송하는 건 당연히 제대로 번역이 이루어진 자막으로 나온다.[11] 다만 실제 시라소니는 배우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앞이마 대머리에 덩치가 큰 대두형 인간이었다.[12]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다세포 소녀와 함께 대중들에게 쓰레기 영화 탑 3라고 불리는 작품으로, 작중에서 조상구 본인이 맡은 역할인 '소대가리' 를 언급도 하지 말아달라 할 정도로 굉장히 싫어한다.[13] 국내 최소 유료관객 동원 영화(6명).[14] 시라소니가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이석재가 찾아와 몽둥이로 다리를 박살낸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