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역대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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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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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국왕 · 역대 왕비 · 중종 ~ 고종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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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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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국왕 · 역대 왕비 · 환조 ~ 연산군 후궁
※ 정식 후궁 첩지가 있는 사람만 기재
※ 고종의 후궁 보현당 귀인 정씨, 광화당 귀인 이씨, 복녕당 귀인 양씨, 삼축당 김씨, 정화당 김씨는 대한제국 멸망 이후에 후궁이 되었으므로 조선의 후궁이었던 적이 없다.





대한제국의 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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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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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조선후궁을 설명하는 문서. 현종, 경종과 순종의 경우 후궁이 없다.


2. 태조[편집]


품계
시호·이름

성비 원씨
(誠妃 元氏)
궁주
정경궁주 유씨
(貞慶宮主 柳氏)
옹주
화의옹주 김씨[1]
(和義翁主 金氏)
찬덕[2]
찬덕 주씨[3]
(贊德 周氏)
궁인
궁인 김씨
(宮人 金氏)
미상
무협아[4]
(巫俠兒)


3. 정종[편집]


품계
시호·이름

성빈 지씨
(誠嬪 池氏)
숙의
숙의 지씨
(淑儀 池氏)
숙의 기씨[5]
(淑儀 奇氏)
숙의 문씨[6]
(淑儀 文氏)
숙의 윤씨[7]
(淑儀 尹氏)
숙의 이씨[8]
(淑儀 李氏)
궁주
가의궁주 유씨
(嘉懿宮主 柳氏)
미상
초궁장[9]
(楚宮粧)
기매[10]
(其每)


4. 태종[편집]


품계
시호·이름

효빈 김씨
(孝嬪 金氏)
신빈 신씨
(信嬪 辛氏)
선빈 안씨
(善嬪 安氏)
명빈 김씨
(明嬪 金氏)
의빈 권씨
(懿嬪 權氏)
소빈 노씨
(昭嬪 盧氏)
정빈 고씨
(貞嬪 高氏)
숙의
숙의 최씨
(淑儀 崔氏)
숙의 이씨
(淑儀 李氏)
궁주
숙공궁주 김씨
(淑恭宮主 金氏)
의정궁주 조씨
(義貞宮主 趙氏)
혜순궁주 이씨
(惠順宮主 李氏)
신순궁주 이씨
(愼順宮主 李氏)
옹주
덕숙옹주 이씨
(德淑翁主 李氏)
혜선옹주 홍씨
(惠善翁主 洪氏)
서경옹주 금영
(西京翁主 金英)[11]
순혜옹주 장씨
(順惠翁主 張氏)[12]
승은 상궁
후궁 김씨
(尙宮 金氏)
궁인 이씨
(宮人 李氏)


5. 세종[편집]


품계
시호·이름

영빈 강씨 [13]
(令嬪 姜氏)
신빈 김씨
(愼嬪 金氏)
혜빈 양씨
(惠嬪 楊氏)
귀인
귀인 박씨 [14]
(貴人 朴氏)
귀인 최씨 [15]
(貴人 崔氏)
소용
소용 홍씨 [16]
(昭容 洪氏)
숙의
숙의 조씨
(淑儀 曹氏)
숙원
숙원 이씨
(淑媛 李氏)
상침[17]
상침 송씨 [18]
(尙寢 宋氏)
사기[19]
사기 차씨 [20]
(司記 車氏)


6. 문종[편집]


품계
시호·이름

숙빈 홍씨[21]
(肅嬪 洪氏)
숙의
숙의 문씨
(淑儀 文氏)
소용
소용 권씨[22]
(昭容 權氏)
소용 윤씨[23]
(昭容 尹氏)
소용 정씨
(昭容 鄭氏)
소용 류씨
(昭容 柳氏)
양원[24]
양원 양씨[25]
(司則 楊氏)
승은 상궁
상궁 장씨
(尙宮 張氏)
궁인 정씨
(宮人 鄭氏)

7. 단종[편집]


품계
시호·이름
숙의
숙의 권씨[26]
(淑儀 權氏)
숙의 김씨[27]
(淑儀 金氏)


8. 세조[편집]


품계
시호·이름

근빈 박씨
(謹嬪 朴氏)
소용
소용 박씨폐출[28]
(昭容 朴氏)
숙원
숙원 신씨[29]
(淑媛 申氏)


9. 예종[편집]


품계
시호·이름

공빈 최씨
(恭嬪 崔氏)
후궁
후궁 이씨[30][31]
(淑媛 李氏)
승은 상궁
상궁 기씨[32]
(尙宮 奇氏)


10. 성종[편집]


품계
시호·이름

명빈 김씨
(明嬪 金氏)
귀인
귀인 정씨
(貴人 鄭氏)
귀인 엄씨
(貴人 嚴氏)
귀인 권씨
(貴人 權氏)
귀인 남씨
(貴人 南氏)
소의
소의 이씨
(昭儀 李氏)
숙의
숙의 하씨
(淑儀 河氏)
숙의 홍씨
(淑儀 洪氏)
숙의 정씨
(淑儀 鄭氏)
숙용
숙용 심씨
(淑容 沈氏)
숙용 권씨
(淑容 權氏)
숙원
숙원 윤씨
(淑媛 尹氏)

11. 연산군[편집]


품계
시호·이름
숙의
숙의 이씨
(淑儀 李氏)
숙의 윤씨
(淑儀 尹氏)
숙의 곽씨
(淑儀 郭氏)
숙의 권씨
(淑儀 權氏)
숙의 민씨
(淑儀 閔氏)
숙용
숙용 장씨
(淑容 張氏)
숙용 전씨
(淑容 田氏)
숙용 조씨
(淑容 趙氏)
숙원
숙원 최씨
(淑媛 崔氏)
숙원 장씨
(淑媛 張氏)
숙원 이씨
(淑媛 李氏)
숙원 김씨
(淑媛 金氏)
숙원 정씨
(淑媛 鄭氏)
승은 궁녀
궁인 최전향씨
(宮人 崔田香)
궁인 수근비
(宮人 水斤非)
궁인 정금
(宮人 鄭今)
궁인 김숙화
(宮人 金淑華)
궁인 장씨
(宮人 張氏)
여완
여완 월하매
(麗婉 月下梅)
여완 안씨
(麗婉 安氏)
의녀
의녀 강금
(醫女 姜今)


12. 중종[편집]


품계
시호·이름

경빈 박씨
(敬嬪 朴氏)
희빈 홍씨
(熙嬪 洪氏)
창빈 안씨
(昌嬪 安氏)
귀인
귀인 한씨[33]
(貴人 韓氏)
숙의
숙의 나씨[34]
(淑儀 羅氏)
숙의 이씨[35]
(淑儀 李氏)
숙의 홍씨[36]
(淑儀 洪氏)
숙의 김씨
(淑儀 金氏)
숙원
숙원 이씨[37]
(淑媛 李氏)


13. 인종[편집]


품계
시호·이름

숙빈 윤씨[38]
(淑嬪 尹氏)
혜빈 정씨
(惠嬪 鄭氏)
귀인
귀인 정씨
(貴人 鄭氏)
양제
양제 윤씨
(良娣 尹氏)


14. 명종[편집]


품계
시호·이름

경빈 이씨[39]
(慶嬪 李氏)
순빈 정씨
(順嬪 鄭氏)
귀인
귀인 신씨
(貴人 愼氏)
숙의
숙의 한씨
(淑儀 韓氏)
숙의 정씨
(淑儀 鄭氏)
숙의 신씨
(淑儀 申氏)


15. 선조[편집]


품계
시호·이름

공빈 김씨[40]
(恭嬪 金氏)
경혜인빈 김씨[41]
(敬惠仁嬪 金氏)
순빈 김씨
(順嬪 金氏)
정빈 민씨
(靜嬪 閔氏)
정빈 홍씨
(貞嬪 洪氏)
온빈 한씨
(溫嬪 韓氏)
귀인
귀인 정씨
(貴人 鄭氏)
숙의
숙의 정씨
(淑儀 鄭氏)
숙의 김씨
(淑儀 金氏)
숙의 한씨
(淑儀 韓氏)
소원
소원 윤씨폐출
(昭媛 尹氏)
상궁
상궁 김씨
(尙宮 金氏)
상궁 박씨
(尙宮 朴氏)


16. 광해군[편집]


품계
시호·이름

수빈 허씨
(粹嬪 許氏)
귀인
귀인 홍씨
(貴人 洪氏)
귀인 윤씨[42]
(貴人 尹氏)
소의
소의 권씨
(昭儀 權氏)
숙의
숙의 원씨
(淑儀 元氏)
소용
소용 임씨[43]
(昭容 任氏)
소용 정씨[44]
(昭容 鄭氏)
소원
소원 신씨[45]
(昭媛 辛氏)
숙원
숙원 한씨
(淑媛 韓氏)
승은 상궁
상궁 김씨
(尙宮 金氏)
상궁 이씨
(尙宮 李氏)
상궁 최씨
(尙宮 崔氏)
승은 궁녀
궁인 조씨
(宮人 趙氏)
궁인 변씨
(宮人 邊氏)


17. 인조[편집]


품계
시호·이름
귀인
귀인 조씨폐출[46]
(貴人 趙氏)
귀인 장씨
(貴人 張氏)
숙의
숙의 나씨
(淑儀 羅氏)
숙의 박씨
(淑儀 朴氏)
승은 상궁
상궁 이씨[47]
(尙宮 李氏)
승은 궁녀
궁인 이씨[48]
(宮人 李氏)


18. 효종[편집]


품계
시호·이름

안빈 이씨
(安嬪 李氏)
숙의
숙의 김씨
(淑儀 金氏)
숙원
숙원 정씨
(淑媛 鄭氏)


19. 현종[편집]


없음.


20. 숙종[편집]


품계
시호·이름

대빈궁 희빈 장씨[49]
(禧嬪 張氏)
육상궁 화경숙빈 최씨[50]
(和敬淑嬪 崔氏)
명빈 박씨
(䄙嬪 朴氏)
영빈 김씨[51]
(寧嬪 金氏)
귀인
귀인 김씨
(貴人 金氏)
소의
소의 유씨
(昭儀 劉氏)


21. 경종[편집]


없음.


22. 영조[편집]


품계
시호·이름

연호궁 온희정빈 이씨
(溫僖靖嬪 李氏)
선희궁 소유영빈 이씨[52]
(昭裕暎嬪 李氏)
귀인
귀인 조씨[53]
(貴人 趙氏)
숙의
숙의 문씨폐출[54]
(淑儀 文氏)
상궁
상궁 이씨
(尙宮 李氏)


23. 장조[편집]


품계
시호·이름

숙빈 임씨
(肅嬪 林氏)
경빈 박씨
(景嬪 朴氏)
수칙
수칙 이씨
(守則 李氏)


24. 정조[편집]


품계
시호·이름

가순궁 현목수비 박씨[55]
(顯穆綏妃 朴氏)

의빈 성씨[56]
(宜嬪 成氏)
숙창궁 원빈 홍씨
(元嬪 洪氏)
경수궁 화빈 윤씨
(和嬪 尹氏)


25. 순조[편집]


품계
시호·이름
숙의
숙의 박씨[57]
(淑儀 朴氏)


26. 헌종[편집]


품계
시호·이름

순화궁 경빈 김씨
(慶嬪 金氏)
정빈 윤씨[58]
(貞嬪 尹氏)
숙의
화락당 숙의 김씨[59]
(淑儀 金氏)


27. 철종[편집]


품계
시호·이름
귀인
귀인 박씨[60]
(貴人 朴氏)
귀인 조씨[61]
(貴人 趙氏)
귀인 이씨[62]
(貴人 李氏)
숙의
숙의 방씨[63]
(淑儀 方氏)
숙의 범씨
(淑儀 范氏)
숙의 김씨[64]
(淑儀 金氏)
승은궁녀
궁인 이씨[65]
궁인 남씨
궁인 박씨[66]


28. 고종[편집]


품계
시호·이름
황귀비
경선궁 순헌황귀비 엄씨[67]
(純獻皇貴妃 嚴氏)
귀인
영보당 귀인 이씨[68]
(永寶堂貴人 李氏)
귀인 장씨[69]
(貴人 張氏)
광화당 귀인 이씨 [70]
(光華堂貴人 李氏)
보현당 귀인 정씨 [71]
(寶賢堂貴人 鄭氏)
내안당 귀인 이씨 [72]
(內安堂貴人 李氏)
복녕당 귀인 양씨[73]
(福寧堂貴人 梁氏)
상궁
삼축당 상궁 김씨
(三祝堂尚宮 金氏)[74]
정화당 상궁 김씨
(貞和堂尚宮 金氏)
승은궁녀[75]
궁인 서씨
(宮人 徐氏)
궁인 김씨
(宮人 金氏)
궁인 장씨
(宮人 張氏)


29. 순종[편집]


없음.


30. 여담[편집]


  • 보통 비빈들은 본명이 알려지지 않으나 《조선왕조실록》[101]이나 야사에 이름이 알려진 경우도 있다.
    • 태조의 후궁 화의옹주 김씨(김칠점선)
    • 정종의 후궁 숙의 기씨(기자재)
    • 태종의 후궁 서경옹주(금영)[76], 혜선옹주 홍씨(가희아)[77], 신순궁주 이씨(이정민)[78]
    • 단종의 후궁 숙의 권씨(권중비)
    • 세조의 후궁 폐소용 박씨(박덕중)[79]
    • 성종의 후궁 귀인 엄씨(엄은조이)[80], 귀인 정씨(정금이)[81]
    • 연산군의 후궁 폐숙의 이씨(이정이)[82], 폐숙용 장씨(장녹수)[83], 폐숙용 전씨(전전비)[84], 폐숙원 김씨(김귀비)[85], 폐숙원 최씨(최보비)[86]
    • 선조의 후궁 폐소원 윤씨(윤희 or 윤귀희)[87], 상궁 김씨(김개시)[88]
    • 광해군의 후궁 폐수빈 허씨(허정순)[89], 폐귀인 윤씨(윤영신)[90], 폐소용 임씨(임애영)[91], 폐숙원 한씨(한보향)[92]
    • 인조의 후궁 상궁 이씨(이정민)
    • 현종의 후궁 상궁 김씨(김상업)[93][94]
    • 숙종의 후궁 희빈 장씨(장옥정)[95]
    • 장조의 후궁 숙빈 임씨(임유혜)[96], 경빈 박씨(박빙애)[97]
    • 정조의 후궁 의빈 성씨(성덕임)[98]
    • 고종의 후궁 영보당 귀인 이씨(이순아), 광화당 귀인 이씨(이완덕)[99], 복녕당 귀인 양씨(양춘기), 삼축당 김씨(김옥기)[100]

  • 가장 장수한 후궁은 중종의 후궁 희빈 홍씨와 연산군의 후궁 폐숙의 윤씨로 88살 까지 살다 생을 마감했다.[103][104] 반대로 가장 단명한 후궁은 정조의 후궁 원빈 홍씨로 14살에 생을 마감하였다.

  • 자녀를 많이 낳은 후궁은 성종의 후궁 숙의 홍씨로 10명(7남3녀)을 낳았고 태종의 후궁 신빈 신씨도 10명(3남7녀)[105]낳았다. 그 다음은 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로 9명(4남5녀)를 낳았다.

  • 후궁들 중 왕비가 되어본 적이 있던 후궁은 숙종의 후궁 희빈 장씨가 유일하며 6년간 왕비 자리에 있었다.[106][107]

  • 간택후궁은 종2품 숙의부터, 승은후궁은 종4품 숙원부터 시작하는게 관례였지만 조선후기로 갈수록 이 관례가 다 지켜지지 않았다.(ex. 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108], 정조의 후궁 의빈 성씨[109], 순조의 후궁 숙의 박씨[110], 철종의 후궁들[111], 무품 후궁들[112] 등)


31.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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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해의 관기출신으로 이름은 칠점선이다. 태조의 막내딸 숙신옹주의 어미이다[2] 조선초기 내명부 품계로 3품이었다.[3] 의령옹주의 친모. [4] 기생 출신이다.[5] 이름은 기자재. 4남5녀를 낳음[6] 아들 하나를 낳음[7] 4남1녀를 낳음[8] 아들 하나를 낳음[9] 기생 출신이다. 양녕대군이 큰아버지의 애첩인 것을 모르고 가까이했으며 알고도 가까이했던 여인이다.[10] 정종을 모시던 시녀로 환관 정사징과 내통하였다고 한다.[11] 궁에들어오기 전부터 첩이였다[12] 화산군 장사길(張思吉)과 관기 출신인 복덕(福德)의 딸. 아버지가 공이 많아 기녀 복덕이 낳은 자녀를 모두 면천시켜주었다[13] 그녀가 심온의 외손녀라는 설이있다.즉 세종의 정비 소헌왕후의 조카라는 소리다. 심온의 둘째사위인 강석덕의 딸이라는것인데 강석덕의 아들인 강희안이 1419년 생이고 딸은 그보다 어리다는 기록도 있어, 생년의 기록이 잘 맞지 않아 그녀가 심온의 외손녀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14] 간택후궁으로 입궁하며 장의궁주에 봉해진다.[15] 간택후궁으로 입궁하며 명의궁주에 봉해진다.[16] 천민에다 궁녀출신이다. 어린나이에 세종의 아낌을 받아 오빠인 홍유근도 세도를 부리려했다. [17] 조선초기 내명부 정5품이었으나 후에 정6품으로 바뀌었다.[18] 세종의 서장녀 정현옹주의 생모이다. [19] 조선초기 내명부 정6품이었으나 후에 종6품 상기로 개칭되었다.[20] 1430년 옹주를 하나 낳았으나 봉작도 받기 이전에 사망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444년 음력 7월 10일에 벼락에 맞아 사망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21] 원래 귀인이었으나, 단종이 즉위하면서 빈으로 승격되었다.[22] 성종의 후궁인 귀인 권씨의 고모다.[23] 숙빈 홍씨의 외사촌 자매[24] 세자의 후궁에게 내리는 품계로 종3품.[25] 원래는 사칙의 품계를 받았었다. 사칙은 세자궁 내명부 종6품으로 후에 수칙(守則)으로 개칭되었다.[26] 이름은 권중비(權仲非).왕비간택시 참여하여 최종 간택에서 후궁에 낙점되었다. 다른 후궁인 숙의 김씨도 마찬가지이다. 단종의 폐위 이후 아버지 권완이 정순왕후의 아버지인 송현수와 단종 복위를 꾀하다 실패한 후 공신의 노비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 이후 세조 10년에 방면되었다.[27] 이쪽은 정순왕후나 숙의 권씨와는 다르게 아버지가 단종 복위에 가담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다른 정쟁에 휘말리지 않고 평온히 살았다고 한다. 게다가 병이 났을 때 무려 수양대군의 집에 피접을 나갔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아 수양대군과도 원만한 사이였던듯 하다.[28] 이름은 덕중으로, 임영대군의 아들인 구성군 이준에게 계속해 연서를 보냈고 구성군 이준은 그것을 세조에게 알렸다. 이로 인해 폐서인 되어 교형에 처해졌다.[29] 신숙주의 서녀이다.[30] 사헌 감찰(司憲監察) 이의생(李義生)의 첩(妾)의 딸을 뽑아서 동궁(東宮)에 들이었다. -《세조실록》세조 9년 12월 21일 을사 3번째기사[31] 《성종실록》성종 16년 5월 5일 갑인 1번째기사[32] 예종(睿宗)의 상궁(尙宮) 기씨(奇氏)가 졸(卒)하였다. 승정원에게 전교하기를, "선왕(先王)의 후궁(後宮)이 졸하였는데, 악(樂)을 듣는 것은 불가함이 없겠는가? 오는 17일 거둥 때에 고취(鼓吹)를 정지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후략) -《성종실록》성종 20년 3월 16일 3번째기사[33] 예종의 왕비 안순왕후의 서조카[34] 경빈 박씨가 막내딸 혜정옹주 출산시기와 비슷하게 출산을 했다. 중종의 총애를 받는 경빈의 눈치를 보던 궁안 사람들은 몸 상태가 좋지않은 나씨를 궁밖으로 빼냈고, 이에 나씨와 그녀가 임신중이던 왕자가 모두 사망한다[35] 덕양군의 어머니. 덕양군이 어릴 때 사망[36] 해안군의 어머니[37] 정순옹주, 효정옹주의 어머니. 드라마 대장금이연생의 모델이다.[38] 문정왕후의 둘째 오빠인 윤원량의 딸, 즉 문정왕후의 조카이다.[39] 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의 사촌언니이다.[40] 임해군광해군의 어머니[41] 인조의 할머니로, 인조 이후의 모든 왕들은 인빈 김씨의 후손이라 할 수 있다.[42] 1619년에 옹주를 하나 낳았다. 하지만 이 옹주는 5살때 아버지 광해군이 폐위되는 바람에 정식으로 옹주에 봉작되지 못했다. 폐출된 뒤 외삼촌의 집에서 살다가 광해군이 죽고 3년상을 치른 후인 25살 때 혼인을 하였다. 박징원에게 시집을 가서 2남3녀를 낳았고 1664년 4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43] 귀양간 광해군을 끝까지 귀양지에서 모셨다.[44] 교태를 잘 부리고 문서관리를 잘해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얼자출신으로 추정됨.[45] 인빈 김씨의 조카이다.[46] 인조 사후, 김자점의 옥사에 휘말려 폐서인 되어 죽었다.[47] 이름은 이정민. 귀인 조씨 무고사건으로 사사되었다.[48] 인열왕후의 미움을 받아 출궁해서 재혼까지 했다.[49] 조선 역사상 마지막 후궁 출신 왕비였으며, 희빈 장씨 사후 숙종은 후궁이 왕비가 될 수 없도록 법제화시켰다. 아들인 경종이 즉위한 후 옥산부대빈(玉山府大嬪)으로 추존되었다.[50] 영조의 생모로 드라마 동이가 그녀의 일생을 다룬 드라마이다.[51] 숙종의 후궁들 중 유일한 간택 후궁.[52] 사도세자의 생모이자 정조의 할머니.[53] 2명의 딸을 낳았다[54] 사도세자와 관련하여 정조 즉위 이후 유배되어 사사되었다.[55] 1901년(고종 38년) 10월 11일 비(妃)로 추존되었다.[56] 본명은 성덕임, 정조의 첫사랑으로 알려져있으며 후궁들 중 유일한 승은 후궁으로 정조를 15년이나 기다리게 만들었다.[57] 순조의 유일한 서녀인 영온옹주의 생모이다. 옹주는 건강치 못했고 그 때문에 말을 잘 하지 못해 이복오빠인 효명세자가 안타깝게 여겼다 한다.[58] 헌종이 사망했을 당시 그녀는 17살의 어린나이[59] 궁녀 출신. 1848년 딸을 하나 낳았지만 출산 당일 사망함. 1814년생으로 헌종보다 13살이나 연상.[60] 1854년 철종의 서장자를 낳음. [61] 1859년 서2남 출산, 1861년 서3남 출산 [62] 1862년 서4남 출산[63] 1851년 서장녀 출산, 1853년 서차녀 출산[64] 1856년 서3녀 출산[65] 서6, 7녀 출산[66] 서5녀 출산[67] 보통 '엄귀비'라 불리는데, 그녀는 '귀비'가 아니라 '황귀비'였기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잘못된 호칭이다.[68] 완화군 이선의 생모이나, 아들인 완화군은 어린 나이에 요절했다.[69] 의친왕 이강의 생모이다. 생몰년도가 정확하지 않으나 궁인으로 있다가 아들 의친왕이 10살 때 사망했다고 전해지며, 1906년(광무 10년)에 귀인으로 봉작되었다. 아들도 낳았으나 당호를 받지 못했다. [70] 고종의 서4남인 이육을 낳았다. 왕자는 3살의 어린나이로 사망한다 [71] 고종의 막내아들 이우를 낳았다. 이우 왕자는 어린시절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한다[72] 명성황후가 살아있던 시절 고종의 딸을 하나 낳는데 역시 어려서 사망한다. 딸은 낳은 그녀도 당호를 받았는데 의친왕의 생모인 귀인 장씨가 당호를 못받은 것은 견제라고 볼수 있다[73] 덕혜옹주의 생모이다.[74] 1890년 ~ 1970년. 마지막 승은 상궁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자식을 낳지는 못했지만 고종 사후 순종(당시 창덕궁 이왕)에 의해 삼축당이라는 당호를 하사 받았다.[75] 인터넷을 찾아보면 고종의 후궁 중에 상궁 염씨가 기재되어 있는 정보가 많은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참고로 고종의 딸을 자처한 '문용옹주' 이문용이 생모라고 주장한 사람이 바로 염씨.[76] 이름이 금영인지 성이 김씨인지 금씨인지는 모름[77] 기생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이름은 본명이 아니라 기명(예명)일 가능성도 있다.[78]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79] 《조선왕조실록》[80] 《조선왕조실록》[81] 《조선왕조실록》[82] 《조선왕조실록》[83] 《조선왕조실록》[84] 《조선왕조실록》[85] 《조선왕조실록》[86] 《조선왕조실록》[87] 《조선왕조실록》[88] 《조선왕조실록》, 《계축일기》, 《공사견문록》, 《연려실기술》[89] 《선원록》[90] 《계해정사록》[91]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92] 《한숙원전》[93] 《조선왕조실록》[94] 삼복과 간통했다는 혐의로 받아 유배를 갔다.(홍수의 변)[95] 《단암만록》[96] 《한중록》[97] 《한중록》[98] 《이재난고》[99] 《경향신문》[100] 《조선일보》[101] 실록에 후궁의 이름이 등장하는 경우는 보통 후궁이 죄를 지어 언급 될 때가 많다.[102] 태조의 딸 의령옹주은 생년미상이지만 1379년 생인 남편과 동갑내기 혹은 나이차이가 많이나지않는다면 의령옹주가 가장 장수한 왕녀가 된다.[103] 왕비 중 가장 장수한 신정왕후(83살)와 왕녀 중 가장 장수한 정명공주(83살)[102]와 비교해도 5년이나 더 오래 살았다.[104] 다만, 후궁은 생몰년이 기록되어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 희빈 홍씨와 폐숙의 윤씨보다 더 오래산 후궁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이 두명과 비슷하거나 더 오래 살았던 것으로 추측되는 후궁 중 한명이 선조의 후궁인 순빈 김씨이다.[105] 정빈 고씨의 아들인 근녕군이 신빈 신씨의 아들이 아닌것이 밝혀져 신씨가 총 2남7녀를 낳은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태종신도비문》에서 신빈 신씨가 3남7녀를 낳았고 정빈 고씨가 1남을 낳았다고 기록되어있다. 함녕군과 온녕군 외에 봉작을 받은 신씨의 아들이 없는것으로 보아 일찍 사망한것으로 보인다.[106] 정현왕후, 장경왕후 등 후궁 출신 왕비들은 최종 지위가 왕비였음으로 제외[107] 공빈 김씨의 경우 생전에 왕비가 되지 못하고 사후 왕후로 추존되었다가 다시 강등 당한 경우이므로 해당되지 않는다.[108] 승은궁녀에서 종2품 숙의로 시작[109] 승은궁녀에서 정3품 소용으로 시작[110] 승은궁녀에서 종2품 숙의로 시작[111] 승은궁녀에서 종1품 귀인 혹은 종2품 숙의로 시작[112] 입궁할 때부터 빈으로 책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