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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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좋아하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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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한국갤럽이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알아보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조사 시리즈를 기획해 2004년부터 5년 주기로 발표하고 있다.

2004년
※ 2004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소설가'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이문열
박완서
박경리
김홍신
이외수

2014년
※ 2014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소설가'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이외수
공지영
박경리
이문열
신경숙
6위
7위
8위
9위
10위
박완서
김홍신
조정래
최인호
박범신

2019년
※ 2019년 한국갤럽한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소설가'를 선정.
1위
2위
3위
4위
5위
이외수
박경리
공지영
이문열
조정래
6위
7위
8위
9위
10위
박완서
김홍신
김영하
박범신
황석영
11위
12위
13위
신경숙
한강
김유정

같이 보기: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 좋아하는 소설가, 좋아하는 탤런트, 좋아하는 영화배우, 좋아하는 가수, 좋아하는 예능인




조정래
趙廷來|Jo Jung-r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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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출생
1943년 8월 17일 (80세)
전라남도 순천군 쌍암면 죽학리 선암사
(현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선암사)
직업
소설가
수훈
은관문화훈장 (2017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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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벌교초등학교 (졸업)
광주서중학교 (졸업)
보성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 / 학사)
부모님
아버지 조종현, 어머니 박성순
배우자
김초혜 (1967년 결혼)
자녀
아들 조도현
종교
불교 (법명: 인천)
본관
함안 조씨
데뷔작
누명 (1970)


제27회 현대문학상 수상
김용운
(1981)

조정래
유형의 땅
(1982)


윤흥길
(1983)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수상
1. 개요
2. 생애
3. 문학적 업적
4. 논란과 비판
4.1. 정치적 논란
4.1.1. 일본 유학생 친일파 및 단죄 발언
4.2. 문학에 대한 비판
5. 박태준 포항제철 명예회장과의 관계
6. 여담
7. 대표작



1. 개요[편집]



"저는 성장해갈수록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증오를 느꼈고, 가엾고 억울하게 당하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일이 제 가슴에 정면으로 부딪쳐와 통증을 일으키고는 했습니다. 그건 누가 시켜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었고, 누가 말린다고 그렇게 안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것. 그것이 작가의식일 것입니다.(조정래, '황홀한 글감옥'에서)"


"이 세상의 모든 노동은 치열한 것을 요구할 뿐 감상적 기분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노동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느냐, 못 느끼느냐로 행. 불행이 갈립니다. 저는 그 숨 막히는 노동의 세월을 ‘글감옥’이라 표현했고, 그 노동을 하고 있을 때 가장 행복을 느끼는 것이었습니다..(조정래, '황홀한 글감옥'에서)"


대한민국소설가. 1943년 8월 17일 전라남도 승주군 쌍암면 죽학리(현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에서 출생. 종교불교이며, 법명은 인천이다. 등단작은 '누명'. 대표작은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정글만리, 천년의 질문, 풀꽃도 꽃이다 등이 있다.


2. 생애[편집]


1943년 8월 17일 선암사에서 아버지 조종현과 어머니 박성순의 4남 4녀 중 넷째로 출생했다. 당시 일제는 불교황국화 정책에 따라 승려들의 결혼을 정책적으로 장려했다. 덧붙여 선암사는 현대에도 대처승 제도를 인정하는 태고종의 종찰이다. 아버지 조종현은 선암사 부주지 출신의 승려로 본명은 조용제로, 종현은 법명이다.호는 철운이다. 해방 후 절 사유지를 소작인들에게 무상분배하자고 주장했다가 사형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부친에 대한 이미지와 일화는 소설 태백산맥의 법일스님으로 구현된다. 이 일로 인해 결국 조종현은 환속해서 고등학교 국어교사 및 시조시인으로 활동하다가 1989년 별세했다. 만해 한용운과 함께 불교청년회에 가담해 활동했고 불교 학생 사상기관지인 ‘회광(回光)’의 주간을 맡기도 하였다. 그는 1929년에 '조선일보'에 동요를. 1930년 '동아일보'에 시조를 발표하며 시조 창작에도 힘을 쏟았다.

어렸을 때 조정래 작가는 아버지인 조종현을 따라다니며 아버지가 흥얼거리던 시조를 읊게 되었다고 하며 그 과정에서 조금씩 시에 대한 매력을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시조에 대해 배울 때에는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다 아는 내용이었다고. 청년 시절엔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스님이 될 뻔했다고 한다.

1948년 순천에서 여순반란사건을 겪고, 1950년 충남 논산에서 6.25를 맞는데, 이는 작가의 유년시절의 기억을 지배하고, 그의 작가정신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53년 작은 아버지들이 살고 있는 벌교로 이사를 하게 되는데, 이때의 생생한 기억들이 훗날 태백산맥을 써내려가는 데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문재가 있어, 이 무렵 최초의 자작문집을 만들었고 글짓기에서 전교 1등상을 받기도 한다.
초등학교 6학년 사회생활 시간에 일제 시대를 배우다가 안중근, 유관순, 청산리대첩밖에 없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 무엇을 했길래 책에 이것밖에 안 나오냐고" 질문했더니, 당시 선생님은 "건방진 놈, 담에 크면 알게 된다"고 말했다고 작가가 회고한다.

이후 광주에서 광주서중학교[1] 3년을 보내게 되었는데,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뒤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다시 한번 광주를 방문한다. 이 때의 광주는 흡사 죽은 도시 같았다고 한다. 심지어 건물에 들어가자 벽 곳곳에 들러붙은 핏자국과 머리카락 등이 보였다고.

중학교 졸업 후 상경하여 아버지가 전근한 서울 보성고등학교(52회)에 입학하였고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2]를 졸업했다. 보성고등학교 시절, 1학년 체력검사에서 2천 미터 달리기에서 1등을 하는 바람에 등산반에 특별 스카우트 되기도. 그런 인연으로 오랫동안 등산을 즐겼다. 놀랍게도 보성고 3학년 때는 역도반에 들어 활동했는데 당시 아버지가 보성고 문예반 교사였기에 일부러 운동반으로 배돌았다고 한다. 당시 턱걸이를 60번쯤 할 정도로 강건한 체력이었는데, 어쩌면 그때의 단단한 체력으로 현재까지 필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고 회고한다. 본래 동국대 국문과를 지망할 당시 조정래 작가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동구여자상업고등학교국어교사로 일하였으며 교사 재직 중 등단하여 여러 편의 소설 작품을 내놓았다.

1973년에 '월간문학' 편집장, 1976년 '소설문예' 발행인이 되었고 1978년 '민예사' 대표를 맡았다.

1983년 9월부터 원고지 1만5천 매 예정으로 '현대문학'에 태백산맥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1989년 태백산맥 제4부를'한국문학' 1월호부터 연재 시작하여 11월호까지 완결하였다. 이에 제4부도 3권의 단행본으로 출간함으로써 전 10권을 완간하기에 이른다. 태백산맥 완결을 고대하며 투병하시던 아버지의 별세를 소설을 쓰다가 전화로 연락을 받게 되는데, 소설의 완결까지 단 1회분 반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다. 이러한 작가의 놀라운 집념과 몰두 속에 탄생한 태백산맥은 '80년대의 '금단'을 깬 대표소설 ('한겨레신문'), 신문 문학 담당기자와 문학평론가 39인이 뽑은 '80년대 최고의 작품' 1위, 현역 작가와 평론가 50인이 뽑은 '한국 최고의 소설('시사저널', 전국 대학생 1650명이 뽑은 '가장 감명 깊은 책' 1위('중앙일보') 등의 놀라운 기록을 세운다.

1984년에 '한국문학' 발행인이 되었고 1997년 동국대 국문과 석좌교수가 되었다.


3. 문학적 업적[편집]


1970년 등단한 이래 약 50여년간 조정래 작가는 오로지 문학에만 헌신해 온 삶 그 자체였다. "문학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인간에게 기여해야 한다"는 그의 문학관처럼 엄혹한 시대적, 역사적, 실존적 상황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 군상과 사회의 부조리를 다수의 작품을 통해 형상화해냈다. 조정래 작가의 대표작이라 할 태백산맥에 대해 소설가 김훈은 "나는 '태백산맥'의 거대함을 사랑하기보다, 그 구체성을 사랑한다. 구체성이라는 것은, 삶과 역사에 대한 직접성이다. 이데올로기는 삶에 대한 직접성을 확보함으로써만 역사 앞에 순결할 수 있다."고 평하기도 하였다.
작가정신의 결집체라 할 수 있는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은, '20세기 한국 현대사 3부작'으로 1천5백만부 돌파라는 한국출판사상 초유의 기록을 수립했다.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1982년 중편「인간의 문」으로 대한민국문학상, 중편「유형의 땅」으로 현대문학상, 1988년 성옥문화상을 수상했다. 1991년 <태백산맥>으로 단재문학상, 1998년 제1회 노신(魯迅)문학상을 수상했다. 2003년 만해대상과 제1회 동리문학상,「미로 더듬기」로 현대불교문학상, 2013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선정 제33회‘올해의 최우수 예술가상’을 수상(문학부문)했다. 2014년 제1회 심훈문학대상, 2015년 제2회 이승휴문화상 문학상 수상했다. 2017년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4. 논란과 비판[편집]



4.1. 정치적 논란[편집]


조정래는 태백산맥을 집필한 이후 보수 관련 단체나 인물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아야 했는데, 대표적으로 이승만의 양자는 태백산맥을 이적표현물이라고 국보법 위반으로 고소하기도 하였다.


4.1.1. 일본 유학생 친일파 및 단죄 발언[편집]


"반민특위는 반드시 민족정기를 위하여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 부활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150만, 60만 헤아리는 친일파들을 전부 단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질서가 서지 않고는 이 나라의 미래는 없습니다.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되어 버립니다. 민족 반역자가 됩니다._ 그들을 일본의 죄악에 대해서 편들고 왜곡하는, 역사를 왜곡하는 그자들을 징벌하는 새로운 법을 만드는 운동이 지금 전개되고 있습니다."

해당 발언 영상이 담긴 기사


2020년 10월 12일, 1990년도 아니고 2000년도 아니고 2020년이다 조정래는 서울 중구 세종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 등단 50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일본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친일파가 된다."는 발언과 함께 "반민특위를 부활시켜야 하며, 이러한 150만 명의 친일파들을 징벌하는 법을 만들어 단죄해야 한다."는 쇼비니즘적 발언을 해서 논란을 빚었다. # 이는 논리적으로도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뿐만 아니라, 열심히 자기계발 중인 유학생들 및 유학파 출신 인재들에 대한 인격 모독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 논리를 거꾸로 뒤집어 생각해 보면, 일본 쪽에서 한국 유학을 갔다 오는 일본인들은 무조건 친한파, 비국민이 되므로 탄압해도 된다는 거나 다름없다.

거기다가 애초에 조정래가 태어나기도 전에 활동한 일본 유학생 출신 독립운동가들 및 독립유공자들도 많다. 윤동주[3], 지청천, 송진우, 안재홍[4],김병로[5], 이인[6] 등이 있고 그 외에도 독립운동가들을 검색해보면 일본 유학 경력이 있는 사람이 적지가 않다. 여기에 일일이 열거하지 못할 뿐. 그리고 3.1 독립운동의 계기 중 하나인 2·8독립선언은 일본 유학생들이 주축이었다. 그리고 본인도 일제 강점기를 한국나이로 치면 0~3살만 살아서 기억도 못할 시절이기에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발언한 부분이 밝혀져 더욱 더 욕을 먹고 있다. 물론, 당연히 일본에 유학했다고 해서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 투철하거나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러한 이분법적 판단 자체가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있을 발상이며, 자유세계에서 그저 유학은 유학이다.

또한, 이영훈 교수가 아리랑에 대해 비판한 점을 들어 "본인의 소설 《아리랑》은 매우 객관적이고 사실적"이라고 답하며, "이영훈이 매국노인 것"이라고 발언하였다.

한편 과거 야당인 자유한국당민경욱 전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의 딸인 문다혜를 두고 "일본에서도 극우 성향으로 유명한 고쿠시칸대학에 유학했다."고 비판한 적이 있는데, 이에 좌파 성향의 언론인 오마이뉴스는 "일본에 유학했다고 다 친일이라는 논리는 잘못이다." 는 논조로 기사를 쓴 적이 있었다. # 문화평론가 진중권은 같은 날 이 사례를 들며 조정래의 발언을 비판했다. 그는 "일본 유학 하면 곧 친일파라니, (문다혜는) 곧 조정래 선생이 설치하라는 반민특위에 회부돼 민족반역자로 처단당하겠네요."라고 반박하면서, 이 정도면 광기라고 해야 한다. 시대착오적 민족주의 안에 잠재된 극우적 경향이 주책없이 발현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 이후 민주당 측에서 박진영 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이 이례적으로 논평을 냈는데 "이론도 없고 소신도 없는 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예의마저 없다", "명색이 학자이자 교수 출신이면서 이론과 학설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느냐"거나 진중권의 말이 계속 기사화되니까 자기 세상같냐며 언제까지 가는지 지켜보겠다며 인신공격성 비난을 늘어놓다 마지막에는 예형의 길을 걷고자 하면 그리 가라며 사실상 협박성의 악담을 퍼부었다.[7] 참고로 민주당과 관련 인사들은 박근혜의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밝혀졌을 때 엄청난 비난을 퍼부었었다.그래서 몰래 블랙리스트 작성 안하고 대놓고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나보다 진중권은 "너희 세상인데 왜 나한테 성을 내냐", "거기다 조정래를 비판했는데 왜 민주당에서 성명을 내냐, 이게 공당이 할 짓거리냐"고 반론했다. 그러자 박진영은 진중권은 지식인이 아니며(?)[8] 조정래는 사회 원로라는 식으로 또다시 논란의 소지가 있는 말을 했다.# 참고로 박진영은 홍영표가 군인 출신 의원들을 상대로 쿠데타 세력이라고 비난하자[9] 흔한 재밌는 발언이라고 무리하게 옹호한 바가 있는 사람이다.# 진중권의 말을 왜 재밌는 발언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는지는 의문이다.

이후 논란이 되자 조정래는 주진우라디오 방송에 나가서 조선일보자신의 발언을 왜곡했으며 '다' 친일파가 된다는 말을 한적도 없다고 주장했으나 거짓말이다. 주진우도 옆에서 '다라는 얘기는 안했죠'라며 열심히 거들었지만 위 녹화영상에서 보듯 '무조건 다 친일파가 된다'라며 아주 명확하게 발언했다. 그는 '사실 확인 없이 발언을 한 진중권이 사과를 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였으나, 위의 기사에서도 나와있듯 일본 유학에 대한 발언은 본인이 실제로 한 것임이 분명하기에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을지는 의문[10]이다. 또한 조정래는 "작가를 향해서 광기라고 말을 한다. 나는 그 사람한테 대선배다. (진중권이) 나에게 아주 경박하게 무례와 불경을 저지르고 있다."고 일종의 권위에 호소하는 논증(Argument from authority)[11]을 시도했다. # 그렇다면 일제강점기에 대한 기억도 별로 없으면서 자기보다 연배도 훨씬 높은 게 분명한 윤동주 등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유학파들과 하물며 진짜 친일파들일지라도 비난할 자격은 되는지 의문이다.

또한 KBS 라디오에서 토착왜구라는 주어로 한정지었다고 변명하면서 자신의 진의를 언론이 왜곡했다고 주장하는데 정말로 자신이 어떤 말을 한 것인지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어보인다. 애초에 주어가 있건 없건 딱 봐도 그런식으로 들리는 말인데 적어도 말실수를 했음을 인정했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조정래와 같은 연배의 세대는 좌우를 떠나서 이러한 국수주의적인 민족주의에 쪄들어있고 자신이 하는 혐오는 애국, 애족이면서 저항적인 민족주의이기 때문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진심으로 믿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파시즘적인 민족주의로 발전할 잠재적인 위험성이 아주 높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은 아주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다.

조국 등 일부 여권 인사는 "무조건 다"라는 단어를 삭제한 거짓 워딩이 진짜라고 SNS에서 주장하며 '조중동이 조정래의 발언을 왜곡했다'고 거짓 주장을 했다.# YTN[12]과 미디어오늘 등 일부 언론은 조정래의 "무조건 다"라는 워딩은 무시하는 기사를 썼다.## 그러나 진보 성향이지만 중립적 보도와 검증을 지향하는 뉴스톱은 일부 친정부 좌파 편향 언론과 친문 인사들의 왜곡 거짓 주장을 반박하고 "무조건 다"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상 "일본 유학하면 무조건 친일파"로 읽힐 수밖에 없다며 조중동이 '토착왜구'라는 단어를 문장에서 제외했어도 왜곡보도를 한 것이 아니라고 팩트체크했다.# 결국 친정부 언론, 친문 인사들이 조정래의 발언을 왜곡하여 쉴드치는 가짜뉴스를 유포한 것이 팩트이고, 이들이 오히려 언론들의 정당한 보도를 비난하며 "조중동이 조정래의 발언을 왜곡한 가짜뉴스를 유포했다"는 "진짜뉴스를 가짜뉴스라고 거짓 주장한" 가짜뉴스를 하나 더 유포한 것. 진중권 평론가는 페이스북에 조정래의 변명을 "쓸 데 없는 말장난"이라고 일축하고 "현장의 워딩을 보자"며 조정래의 발언 원문을 가져와 조목조목 까면서 조정래의 궤변을 비판했다.#

그리고 '무조건 다' 논란에 묻혀서 그렇지, 그들을 법으로 징벌해야 한다는 발언이 사실 더 심각한 발언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해외유학을 이유로 사람을 처벌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죄형법정주의자유권적 기본권 같은 어려운 이야기까지 갈 것도 없이, 학계 원로의 입에서 나올 소리가 아니다. 일본에 유학을 다녀오는 것으로 토착왜구가 된다면 일본대학과 학점교류를 하는 대학들은 친일파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고, 일본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장학금은 국비로 토착왜구를 양성하는 매국행위란 논리나 마찬가지이다. 또한 법을 만들자는 주장의 근거가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하는 법을 지지하는 논리와 똑같아서, 좌파를 지지한다는 사람의 입에서 나올만한 논리가 아니다. "아무나 징벌하자는 게 아니라 토착왜구만을 잡자는 법이 아니냐!"고 외쳐봤자 조정래 작가의 기준대로라면 본인의 부친도 토착왜구고 문재인의 딸도 토착왜구인데 이런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법의 문제가 꼭 저 법과 마찬가지 아닌가?

사람인 이상 일본에서 유학생활, 또는 몇 년간의 거주를 하다 보면 어느 정도 일본에 친밀한 감정이 생길수밖에 없다. 북한에 몇년 살아본 외국인들도 다 북한에 어느정도 긍정적인 감정을 갖는 것과 비슷하다. 따라서 조정래 작가가 의도한 내용이 이런 감정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최대한 우호적인 해석을 한다고 쳐도, 그런 친밀한 감정이 생긴 사람들을 법으로 징벌해야 한다고 하면 이건 그냥 일본하고 단교하자는 수준의 주장은 물론 인민재판을 하자는 주장 밖에 되지 않는다.

토착왜구 한정이라는 말도 궁색하다. (그 기준과 근거가 무엇이든) 민주사회의 시민이 동료시민 60만 명, 150만 명을 '우리 민족정기의 순수성을 회복하기 위해' 비국민, 불순분자, 반역자로 지정하고 조리돌리고 배제하고 가두고 죽여야 하는가 생각해보면 더 섬뜩한 문제다. 150만 명이면 한국 인구의 3%가 조금 안 되는데 광역시 규모의 인구를 숙청하자고 하는 격이니, 파쇼니 광기니 하는 비판이 안 나올 수가 없다.

게다가 이 발언은 일본인을 타겟으로 활동하는 한국인 혐한 유튜버들이 마치 한국의 전체여론인양 포장하며 '대한민국 정부가 나를 체포하려 한다'라는 식으로 날조 선동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일본내 혐한정서를 부추기는 데에 악용되고 있다. 조정래가 가장 비판하고자 하는 세력의 중심측에 있는 인물들에게 오히려 힘을 보태주게 된 그야말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4.2. 문학에 대한 비판[편집]



1인칭 서술을 극도로 혐오하는 것도 비판 지점이다. 친일파 단죄 발언에 묻혀서 제대로 조명되지는 않았지만, 친일파 발언과 함께 "1인칭 소설을 쓰는 작가는 불구"라고 극언을 서슴지 않았다. 이는 1인칭으로는 (자신이 지향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등장과 사회 비판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당장 위에서도 언급한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만 봐도 훌륭한 반례가 될 수 있다.근데 자신이 총괄해 집필한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해당 작품을 실었는데? 물론 작가인만큼 시점이나 문체, 기법에 대한 취향과 비평은 분명 존재할 수 있지만, 극단적으로 사라져야 한다는 식으로 대하는 태도가 문제. 오히려 한강 이후 본인의 작품들이야말로 불필요한 묘사나 설명, 훈계가 많아지면서 문학성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 게다가 이러한 1인칭 소설에 대한 혐오, 역사 체험과 상처가 있어야 긴 소설이 나온다는 기이한 견해[13], 웹소설에 대하여 문학이라 불릴 수 없는 농담 운운하는 비하를 언론사 인터뷰에서 대놓고 말할 정도로 자기 발언에 대한 자체 필터링을 못 한다. 눈여겨보는 젊은 작가가 있느냐는 질문에 립서비스라도 몇 명 있다고 대답해줄 수 있었을 텐데도 굳이 5쪽 이상은 못 읽겠다고 딱 잘라 말하고 있다.


5. 박태준 포항제철 명예회장과의 관계[편집]


박태준 포철 명예회장과 관계가 있다. 그는 1990년대 중반에 쓴 "한강"에서부터 포철에 대한 긍정적인 묘사를 서술했다. 2007년에는 (이 해는 박태준의 팔순 해이기도 했다) 신채호, 김구, 안중근, 한용운과 함께 15권으로 예정된 자신의 아동용 위인전의 위인으로 박태준을 선정했다.

박태준은 "민족주의자, 그것도 투철한 민족주의자"라며 몇차례 조정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1994년 태백산맥 이적성 고소에도 친분이 있는 몇몇 보수들과 달리 반대 의견을 표했다. 또한 2000년대 들어서는 태백산맥 기념관 등의 사업을 지원해 주기도 했다. 조정래 또한 "박태준이라는 인물은 한국 사회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물이에요. 우리 근현대사에서 그처럼 뒷모습이 깨끗한 기업인이 있었나요"라든지, "모르는 사람들은 박태준 회장을 개발독재의 주역이라고 말하기도 하죠. 개발독재의 주역은 독재로 인해 권력을 누리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독재를 행사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거예요. 박 회장은 순수한 기업인일 뿐이었어요."라고 말하는 등의 긍정적 평가를 했다. # 관련기사 1 # 관련기사 2


6. 여담[편집]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은 등장인물의 이름 한 가지 빼고 전혀 겹치지 않는다. 유일하게 하나 겹치는데 이건 작가도 모르고 있다가 독자가 알려주었다("전혀 없다고 생각했는데, ‘한강’에 비중있게 등장하는 허진이라는 이름이 ‘아리랑’에 한 줄 스쳐 지나간 걸 어느 독자가 지적해줬습니다."). #

자신의 사후에 작가의 아들과 며느리가 자신의 저작으로 먹고 살 거라면서 아들과 며느리에게 태백산맥을 원고지에다가 일일이 손으로 베껴쓰게 한 일도 유명하다. 그리고 며느리는 한 달 정도 만의 기간에 1권을 끝냈다! 작가 본인이 날림으로 쓴게 아닌가 검사해봤지만 깨끗하게 완성해놨다고.

21세기 현재에도 컴퓨터를 쓰지 않고 항상 육필(肉筆)을 고집, 일일이 원고지에 펜으로 글을 쓴다. 그러지 아니하면 글에 혼이 담기지 않는 기분이라고 한다. 그리고 오탈자가 생기면 그 장은 찢어버리고 새로 쓴다고 한다. 영혼이 더럽혀진 느낌이라고.

워낙 집필한 분량이 많아서 소설 원고를 쌓아놓으면 사람의 키보다 높고, 소설에 등장한 인물만 수백 명에 달한다. 더군다나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한 명만 빼고 다 다르니, 이름 짓는 것만 해도 고생이었다고 회고한다.

벌교읍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조정래의 대표작인 태백산맥이 순천 옆동네인 벌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지라, 태백산맥의 배경지를 답사하려는 사람들이 벌교를 많이 방문하게 되었다. 사실 원래 벌교 주민들은 태백산맥 타령하는 방문객들을 별로 안 좋아했으며, 태백산맥 때문에 외지인들 눈에 벌교가 빨갱이 동네로 보인다고 불평하기도 했는데, 언제부턴가 태백산맥을 통해 증가한 관광 수요에 호응하여 태백산맥 문학관도 건립하고 현부자집, 보성여관 등을 복원하는 등 태백산맥 문학기행을 주제로 읍내를 단장하게 되었다. 또한 벌교 인근 해역에서 생산되는 꼬막도 같이 유명세를 타면서 그 유명한 '꼬막정식'이 생겨났고 벌교 꼬막이 수산물 지리적 표시제 1호로 등록되었다. 꼬막은 원래 '고막'이 표준어였는데, 태백산맥에 '꼬막'이라고 쓴 것이 널리 퍼져서 표준어가 '꼬막'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공처가로 유명하다. 공처가를 넘어서 '경처가'를 자처한다. 본인이 쓴 원고의 첫 독자도 사모님이고 사모님의 지적 사항을 100% 수용하는 편이라고 한다. 부인도 유명한 시인이라 가능한것 같다.

2016년, 한국의 교육 문제를 다룬 장편소설 《풀꽃도 꽃이다》를 출간한다. 그리고 나향욱의 개돼지 발언에 대해 '국민의 99.9%가 개와 돼지라면 그는 진딧물이나 기생충이다.'라는 말로 일축했다.

2019년,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대한민국 사회의 격변을 다룬 천년의 질문이라는 신작을 탈고했다. 여기에는 최순실 게이트의 발각과 격랑의 정치사 속에 있었던 나는 꼼수다의 멤버 주진우김어준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도 등장한다고 한다. 전 3권의 조정래 작품치고는 짧은 소설이며, 오디오북으로도 발간되었다.

2009개정 교육과정, 2015 개정 교육과정 해냄에듀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대표저자로 참여하였다.

7. 대표작[편집]


  • 태백산맥[14]
  • 아리랑[15]
  • 한강[16]
  • 어떤 솔거의 죽음
  • 사람의 탈[17]
  • 정글만리
  • 허수아비춤
  • 풀꽃도 꽃이다
  • 불놀이
  • 천년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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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6년제 광주서중이었다가 광주서중과 광주일고로 분리됐고 중학교 평준화 정책에 따라 광주서중은 폐교됐다. 광주-전남 지역의 엘리트들이 모인 중-고교였다.[2] 62학번으로, 성우 김종성과 동기.[3] 일본 릿쿄대학도시샤대학에서 수학했었다.[4] 감찰위원장으로 활동했다.[5] 초대 대법원장[6] 초대 법무부장관[7] 예형은 권력자들을 조롱하다가 처형당했다. 일각에서는 단순 지지자 모임도 아니고 공당에서 이런 과격한 논평을 내도 되는지에 대해 비판이 일었고 진중권은 지금 협박하는거냐며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8] 참고로 진중권은 대학 교수 출신이다.[9] 현장에 있던 신원식 의원과 한기호 의원은 5.16 당시 각각 중학생(...)과 사관생도(...)였다. 무슨 재주로 쿠데타를 일으킨다는 건지 의문.[10] 형법 제310조(위법성의 조각): 제307조 제1항의 행위(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11] 'Comments on Black Box Arguments' Lewiński, Argumentation 22, 447–451 (2008). 참조.[12] 이 논란을 편파 보도한 변상욱 앵커는 과거 자유한국당의 청년 정치인 백경훈의 연설에 반듯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면 수꼴 마이크를 잡게되진 않았을 수도......라며 고인드립을 해서 논란이 돼서 하차하라는 시청자들의 요청이 빗발치자 YTN 16기 기자들이 알아서 물러나라고 할 정도였고 결국 물러났지만 한달만에 슬그머니 복귀한 사례가 있다.[13] 제5공화국 종식과 민주화가 채 열 살도 되기 전에 완수되어 조정래가 생각하는 역사 체험과 상처가 없을 남희성 작가의 달빛조각사만 해도 총 58권으로, 작품성은 논외로 두더라도 그 대단하고 우월한 역사 체험을 지닌 조정래의 대표작 태백산맥보다 길다는 점에서 반박할 가치조차 없다.[14] 1989년 단행본 완간되었다.2016년 현재 누적 판매부수가 850만부를 넘었다. 2019년에는 대하시리즈 태백산맥,아리랑,한강 합계 1500만부를 돌파했다.[15] 1995년 단행본 완간되었다.[16] 2002년 단행본 완간되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의 세 작품은 한국 근현대사 삼부작으로 엮인다.[17] 원래 오 하느님으로 출판되었다가 개정판에서 제목이 바뀌었다. 내용은 노르망디의 한국인을 다룬 것으로, 초판 '오 하느님'을 기준으로 영화 마이웨이보다 4년 빨랐으며 개정판 출간을 기준으로 해도 2년 정도 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