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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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북한의 정치인.

2. 생애[편집]


북한 선전에 따르면 1959년에 24세였다고 하니 1925년 출생 정도로 추정된다.

룡성기계공장 기능공 출신으로, 북한 사회주의 건설 시기에 똥꼬쇼를 하여서 천리마 시대의 영웅으로 김정은 시대에도 룡성을 대표하는 영웅으로 치켜세워지고 있다. 원래도 뛰어난 기술자로 강력절삭바이트를 창안해 4배의 작업능률을 기록했다고 하며, 1959년 3월 25일, 김일성의 룡성기계공장 현지지도 때 자력갱생 기술개발을 해내라는 교시를 받고 지배인들도 안된다고 난색을 표하는데 자신이 할 수 있다고 나서서 1959년 광복절에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8M 타닝반' 제작에 성공했으며 연이어 3천톤 프레스 제작을 성공해냈다. 이에 김일성이 주성일이야 말로 천리마를 탄 진짜 공산주의자라고 칭찬해주었다 카더라. 1962년 10월, 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1967년 12월, 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선출되었다. 이중천리마작업반장 칭호에 로력영웅 칭호도 받았으며, 1972년 4월 8일, 룡성기계공장 직장장 재직 시절 김일성훈장의 1차 수훈자로 선정되었다. 1972년 12월, 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1982년 2월, 7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1986년 11월, 8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1990년 9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때는 소식이 없었다. 하지만 1993년, 직총 중앙위원장 한기창이 사망하면서 1993년 4월, 신임 직총 중앙위원장으로 등장, 12월 8일, 6기 21중전회에서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보선되었으며 12월 9일부터 12월 11일 사이에 열린 최고인민회의 9기 6차 회의에서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의원으로 보선되었다. 1994년 7월, 김일성 장의위원, 1995년 2월, 오진우 장의위원, 1996년 2월, 리승기 장의위원, 1996년 9월, 려연구 장의위원을 지냈다.

1998년 6월 29일, 직총 37차 전원회의에서 건강 상의 이유로 해임되어 염순길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은퇴했다. 1998년 7월, 1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도 탈락했다. 이후 동정보도는 없으나 숙청되거나 한 것은 아닌지 천리마 시대의 영웅으로 북한 매체에서 계속 언급되고 있다. 2022년 4월 4일자 로동신문 기사 <우리 세대의 삶의 거울, 귀중한 본보기: 대담하게 생각하고 실천할 때 길이 열린다 - 룡성기계련합기업소 작업반장이였던 로력영웅 주성일동지에 대한 이야기>란 기사로 주성일에 대한 일대기를 소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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