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씨(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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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氏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2. 정사
3. 연의
4. 미디어 믹스


1. 개요[편집]


손오의 여성. 주유의 고명딸,[1] 손등의 아내. 주순, 주윤의 누이.


2. 정사[편집]


정사 삼국지에서는 주유의 딸의 이름이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강서길안주씨족보(江西吉安周氏族譜)》에 따르면 주유의 딸의 이름은 주철(周徹)이다.

옛일에 주윤 공의 여동생 주철이 황태자 손등과 결혼했다.

初,胤公妹周徹,配皇太子孫登。

강서길안주씨족보

하지만 족보는 신빙성이 낮은 사료이기 때문에 확신하기 어렵다.

210년, 아버지 주유가 죽고 오군에서 살았다. 225년, 손권이 주유의 딸을 태자 손등의 비로 맞이하려고 정병을 보내 오군으로 가서 주유의 딸을 무창으로 맞이해왔고, 정병은 그녀와 혼인하는 손등에게 조언을 해주었다.[2] 그리고 그녀의 오빠 주순도 손권의 딸 손노반과 결혼하면서 주유의 집안과 손권의 집안은 이중 인척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다. 아버지 주유가 30대 중반에 요절했고, 아버지 사후 15년이나 지난 뒤에야 결혼한 걸 보면 주유가 죽을 당시에는 한참 어린아이였던 모양이다.[3] 그런데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손등이 요절하면서 그녀는 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큰오빠를 일찍 떠나보내는 비극을 맞이하였다. 오나라의 요절징크스의 또 다른 피해자(?)

한편 반준전 인용 오서에서는 손등이 예현의 딸을 비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에 주유의 딸과 예현의 딸 둘 중 1명이 손등의 전처로 손등보다 일찍 죽어 손등이 다른 1명을 후처로 맞이한 듯하다.[4]

청나라 시대의 야사 《호주부지(湖州府志)》 8권에 주유의 딸의 무덤에 대한 기록이 있다.

주녀분은 구용현 동남쪽 28리에 있는데, 어떤 이가 말하는 바 주유의 딸의 무덤이다.

周女坟,在句容县东南二十八里,或曰周瑜女之墓也。

호주부지 8권

하지만 주녀분은 현대에 이르러서 존재하지 않는다.


3. 연의[편집]


삼국지연의에서는 주유가 죽고 손권이 주유의 영구를 맞이하며 울면서 제사를 지내고 후한 장례를 치러 고향에 묻게 했는데, 주유에게 아들 둘, 딸 하나가 있다는 것과 함께 손권이 후하게 대우했다고 언급한다.

가정본에서는 주유의 딸이 나중에 태자와 결혼했다고 언급하지만 모종강본부터는 생략되었다.


4. 미디어 믹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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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인의 삼국지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100만인의 삼국지에서 주유의 딸이 주씨(周氏)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삼국지대전에서 주유의 딸이 주희(周姫)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파일:주씨(삼국지톡).jpg
삼국지톡에서는 시즌 7에 아기 시절의 모습이 등장. 이름은 '강서길안주씨족보'에 나온 것처럼 주철이며, 손에는 호랑이 인형을 들고 있고 큰오빠 주순에게 안겨 있다.

시즌 11에서 어느 정도 성장한 상태로 재등장했으며 훗날 남편인 손등과는 진작에 결혼 동맹을 맺은 상태였다. 큰오빠 주순이 손등의 여동생 손노반과 결혼했기 때문에 사실상 겹사돈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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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국지 오서 주유전에 주유의 딸은 하나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유의 딸에 대한 기록은 무조건 본 인물에 대한 것이다.[2] 출처: 오서 정병전.[3] 사실 손등도 이 즈음에 태어났으니 이러면 부부간의 나이가 얼추 비슷해진다.[4] 예현의 딸은 아버지 예현이 죽는 226년 이전에 손등과 결혼했고, 주유의 딸은 225년에 손등과 결혼했기 때문에 주유의 딸이 후처일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