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농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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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배경
3. 시행과 결과
3.1. 김정은 집권 이후



1. 개요[편집]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지도로 진행되었던 농법 중 하나로, 주체사상에 근거해서 북한식량 자급을 목표로 했으나 그 표면적 목표로는 철저하게 실패한 농법이다. 그러나 지도부가 강압적으로도 주체농법을 지키려고 하던 모습을 보면, 그 이면에 담긴 자원 통제 같은 정치적 목표로 보면 그 기준으로는 나쁘지 않게 보았던 구석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배경[편집]


한반도 전역은 1960년대 말까지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식량난에 시달리던 곳이었다. 알려진 것보다는 함경도[1]를 제외하고는 사정은 조금 나아 평안도조선시대에도 해안가[2]충청도 수준으로 기름지다고 평가 받고, 황해도 출신의 송해는 생전 자신의 고향인 재령평야에서는 조선 총독조차도 자신의 고장의 쌀만 찾아서 먹을 정도의 옥토로 묘사하기도 할 정도였다. 심지어 식구가 평안도 쪽에 있던 소설가 황석영의 증언에 따르면 선배 뻘인 지인들은 위도나 기후 상으로도 그렇고 논보다는 밭이 많던 북선(북부 조선, 현재 북한 일대) 지방의 작물이 맛이 월등하다고 한다든지, 어머니가 고향을 그리던 말이 이남 것은 과일도 밭 작물도 별로 맛이 없다고 할 정도였다. # 감자, 들쭉 같은 건 오히려 함경도 같이 적절히 혹독한 곳이 유리한 구석이 있다고도 평가 받기도 한다.

다만 유통망이 부족하고 농업 기술이 자연 재해에 취약한 환경이라서 조선 팔도 어디에서나 추수한 쌀이 다 바닥나는 5, 6월 즈음에는 해안 지방에서 나는 생선 등도 내륙에서는 구하기 힘들어서 내륙은 꼼짝없이 보릿고개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북한에 해당하는 지역은 조선 후기 즈음되자 농업으로 발전한 지역도 서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있기는 했으나 다른 지역은 중국 등지와의 교역, 광업 등을 통해서 발전이 이루어진 고장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산미증식계획에서 추진되던 표면적 목표와 달리 농민이 근대적인 착취에 시달려서 더 가난해졌다.

그러던 와중 해방과 분단을 겪으면서 남북한이 갈라서게 되고 식량을 자급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식량 자급은 북한의 중요 과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모자란 살림에 한국전쟁까지 겪으면서 남북한 국토 전부가 사실상 초기화되었고 그나마 일제가 도망치면서 남기고 간 흥남비료연합기업소를 비롯하여 각종 농업 및 운송 인프라까지 날아가면서 북한의 농업 환경은 사실상 조선시대로 후퇴하고 만다. 여기에 해방 직후부터 북한 주민 사이에서는 김일성은 '죽장군'이라고 하여 무자비하게 뺏고는 풀죽만 먹인다고 하여 원성이 높았다.


3. 시행과 결과[편집]


과거에 했던 구호라든지 과거에 했던 농정 시책이 지금 30~40년 후에도 그대로 반복이 되고 있거든요.

이것은 그만큼 농업 생산성이라든지 농업 생산력이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죠.

김영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_MBC 통일전망대 인터뷰


결국 북한도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선 인민들을 먹여 살려야 했고 나아가 잉여 농산물을 비축해야 했기 때문에 농업 개혁을 실시하게 된다. 우선 한반도 최대 비료 공장이었지만 전쟁 중 파괴되었던 흥남비료공장을 재건하는 한편, 소련의 지원을 등에 업고 트랙터 등 농기구를 증산하였으며 남흥에는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를 건설하고 화학 비료 및 농약의 생산량을 늘리기 시작한다. 또한 철도를 대대적으로 건설하고 정비하면서 이러한 비료와 농기구들이 현장에 쉽게 보급되도록 하였다.

사실 아이디어 자체는 특별한 것은 아니었고 당시 남북한을 비롯한 많은 개도국에서 비료와 농약을 대규모로 쏟아붓고 농기계도 대량으로 보급해서 농업 생산량을 늘렸는데[3] 북한의 주체농법도 이러한 방안에서 추진된 것이었다.

어쨌든 북한이 실시한 대규모 화학 비료와 농약 투입, 농기계 보급을 통한 농업 기계화 자체는 매우 큰 효과를 보았고, 주체농업 자체도 나쁘지 않은 성과를 냈기 때문에 195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는 북한이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었고 1990년대 초반까지 2.5배로 불어난 인구를 어떻게든 부양할 수 있었다. 즉, 단기적인 목표 달성에는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때 농업 생산량을 늘리려고 옥수수의 재배 면적을 크게 늘렸는데 문제는 옥수수지력을 많이 잡아먹는 작물이기 때문에 연작을 하려면 대규모의 화학 비료 투입이 필수적이었다는 것이었다. 한국은 주식이었던 벼를 포기하지 않고 통일미를 만들어 당시 남한 논밭을 그대로 활용하면서 생산량을 크게 높인 것과 대조적이다.[4]

그래도 1980년대까지는 어째 잘 돌아갔지만 공산권의 큰 형님으로서 전세계 공산 국가들을 지원해주던 소련무너지면서 북한은 거의 공짜로 얻고 있었던 휘발유의 수급이 어려워졌고, 발전소 노후화 등으로 전력 생산량마저 크게 감소하며 비료 생산마저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북한은 생산량이 많던 옥수수 재배를 포기할 수 없었다. 다른 작물로 전환하는 동안은 식량 자급이 불가능하고, 중국이나 한국에게 식량 지원을 받으려니 정치적인 빚이 되었고, 80년대의 뻘짓으로 인해 그나마 있던 외화도 없어 사올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료를 쓰지 않고 옥수수를 예전처럼 계속 심으니 지력이 빠른 속도로 소진되었고 농기계도 기름이 부족해 제대로 돌릴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불어난 인구의 식량 소비량이 농업 생산량을 넘어서기 시작하면서 대규모 기아와 아사의 가능성이 진지하게 대두되었다. 쉽게 말해서 맬서스 트랩이 벌어진 셈이다.

그래서 북한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더 많은 산들을 다락밭으로 개간하게 되었다. 하지만 무리한 개간으로 삼림이 파괴되어 가뭄과 홍수, 산사태가 일어나 논밭이 쉽게 휩쓸려 나갔기 때문에 오히려 농업의 황폐화만 가속화되어 결국 고난의 행군을 초래하는 데 한몫 했다고 평가된다.

아래의 내용은 주체농법의 일부인데, 너무나 당연한 소리 혹은 농업을 조금이라도 해보았다면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이 적혀있다.출처

  • 적기적작, 적지적작: 알맞은 장소와 시간에 농사를 짓자는 내용으로 물론 이것은 맞는 말이지만, 이런 지극히 단순하고 당연한 것도 수령이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당연하지만 당과 수령 따위보다는 짧으면 수년, 길면 수십 년 동안 농사일을 해 온 농민들이 더 잘 안다. 모르면 농사 지어 봤자 망한다. 망해도 진작 망했으니까 아는 사람만 농사짓고 있는 것이다. 당에서 메시에게 '축구는 공을 뻥 차서 골대에 넣는 운동이야'라고 가르치는 수준이다. 그러나 절대 권력이 중요했던 김일성은 이런 지시를 통해 자원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는 효과는 있었다. 아무래도 농민이 자원을 통제하는 것보다는 자원을 좌지우지하기가 더 쉬웠을 것이다.

  • 강냉이 영양단지 만들기: 한마디로 처럼 모판을 마련해서 옥수수이앙법으로 심겠다는 것인데, 사실 옥수수 모종을 만들어서 심는 방법 자체는 전세계 옥수수 농가에서 자주 쓰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이는 소규모로 재배할 때나 효율이 나지, 기계가 부족한 북한의 특성상 옥수수 농사에 필요한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지므로 효율이 떨어진다. 또한 부작용 중 하나로 밭에 뿌리면(직파법) 좀 시들시들해지고 말 것을, 이 모종에 충분한 물을 주지 못했을 경우 시들시들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싹 죽어버린다. 이앙법 자체의 단점이 직파법에 비해 손이 많이 가고 물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인데[5], 옥수수에 적용한다고 예외일 수는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북한의 농지 사정상 모판에 좋은 흙을 쓰더라도 땅 자체의 질이 별로 좋지 않아 옥수수가 잘 자라지 못하며, 지력을 회복할 비료도 부족하기 때문에 지력 소모가 큰 편인 옥수수를 심을수록 농지는 황폐화될 뿐이다.

  • 다락밭 만들기: 을 깎아 계단식 경작지를 만들겠다는 발상이다. 산악 지대의 비율이 남한보다 높은 북한의 환경을 감안하면 의외로 괜찮아 보일 수 있지만, 문제는 환경 파괴와 함께 노력 대비 효율성이 떨어질 뿐더러 여름에 강수가 집중되는 북한의 기후 조건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북한의 기후와 맞물려 이런 식의 농법을 함부로 시도할 경우 산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2016년 두만강 유역 대홍수, 2020년 한반도 폭우 사태 등으로 큰 대가를 치렀다.

결국 이렇게 농업이 망했다면, 혹은 망하기 직전이라면 당장이라도 해당 농법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주체사상을 기반으로 한 독재 국가였고 선대의 업적 혹은 정책을 폄훼하는 건 북한 입장에선 반동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비효율적이고 구시대적인 발상이 그대로 이어졌으며, 이것에 대해 지키지 못했을 경우 처벌하는 조항도 만들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법 제150조 (주체농법대로 지도하지 않은 죄) 농업지도기관 일군이 주체농법의 요구대로 지도하지 않아 농업 생산에 엄중한 결과를 일으킨 경우에는 2년 이하의 로동단련형에 처한다. 정상이 무거운 경우에는 2년 이하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6]

당연하게도 이렇게 처벌한다고 한들 생산성이 좋아지는 게 아님으로 결국 북한의 농업은 처절하게 망해버리고 말았다. 이밥에 고기국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말했지만 실상은 2020년이 지나서도 인민들이 먹을 걸 구하지 못해 해외 원조를 받고 있는 게 북한의 현 상황이다.


3.1. 김정은 집권 이후[편집]


그나마 스위스에서 유학한 전력이 있어 녹음이 우거진 스위스의 자연 환경을 잘 알기에 북한의 민둥산을 불편하게 여기는 김정은이 집권하면서 산림의 녹화를 추구하고 이러한 농법을 서서히 금지하려고 노력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별다른 효과는 아직 보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에너지 사정이 좋지 않아 지금도 여기저기서 도끼로 나무를 베어서 땔감을 사용하기에 필연적으로 나무 소비가 많을 수밖에 없는 데다가, 정작 주민들한테 석탄을 팔자니 중국 등 제3국에 파는 것보다 헐값으로 팔아야 되니 필수 광물 등에 내수로 전환하기가 매우 힘든 구조다.

또한, 녹화사업을 보면 알겠지만 남한에서도 화목의 비중을 줄이고 석탄의 비중을 높였는데도 성공하기까지 30년이나 걸렸다. 김정은이 집권한 지 10년도 안 된 데다가 북한 사정이 과거의 대한민국보다 나쁘니 그야말로 아직도 효과가 안 나타나는 건 그다지 이상한 건 아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남북평화와 탄소중립을 동시에 실현하기 위해 남북한 산림 협력을 언급했는데, 북한 측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환경단체의 반발[7]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따라 이러한 북한의 녹화 사업이 가속화될 수도 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7 13:02:53에 나무위키 주체농법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그래서 북어같은 특산품이 개발될 때까지 한민족의 정착이 좀 늦었다.[2] 안주의 삼천리벌, 용천이 대표적이다.[3] 이른바 녹색 혁명으로 남한의 새마을운동도 이 범주에 속한다.[4] 물론 북한이 남한보다 좀 더 추운 환경이라 인디카 기반의 다수확품종이 자라기 힘든 지역인 것도 감안해야 한다. 실제로 북한도 간첩을 통해 통일미의 종자를 훔쳐서 재배해본 전력이 있었으나 인디카 기반인 통일미는 남한보다 더 추운 기후로 인해 잘 자라지 못했다.[5] 조선 초기에 이앙법이 금지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직파법에 비해 물이 많이 필요한데 그 당시 상황상 물 공급이 불안정해서 농업 용수의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6] 이 조항은 주체농법을 지도하지 않아 농업 생산에 커다란 문제가 생기면 처벌한다는 조항인데, 2010년대 초중반 무렵에 폐지됐다.[7] 남북한 산림 협력에 대한 언급이 문재인 정부가 국내 감축 노력엔 집중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