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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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전적 의미
3. 장점
4. 존재하지 않을 경우
5. 어려운 점
6.1. 어록
7. 관련 문서


1. 사전적 의미[편집]


「명사」

「1」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간적인 입장에 섬. 또는 그런 입장.

「2」 국가 사이의 분쟁이나 전쟁에 관여하지 아니하고 중간 입장을 지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간적 입장을 지킴.

고려대한국어대사전

- 중간에 서다.
중도주의 - 중립을 계속 지킴.[1]
중립국 - 국가가 중립을 취함.


2. 비형식적 오류: 중도에 따른 오류[편집]


중립의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여러 의견들 중 양 극단에 있는 두 의견들만의 중간을 중립이라 하거나, 모든 의견들을 포함해서 평균을 내기, 또는 의견을 낸 사람들의 수를 고려할 수 있다. 각자의 편을 번갈아가며 들어주는 것이 곧 중립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일상적 용어와 달리 중도 자체는 논리학에서는 비형식적 오류가 된다.

甲: "난 중립이잖아. 그러니까 내가 봤을 땐 얘 말이 옳아."
위는 화자가 만일 평소에 중립적인 의견을 낸다 해도 명백한 오류가 되지만 아래처럼 부분적으로 지적하되 합당함을 이끌어야 한다.

甲: "난 중립이야. 철수는 이러이러한 부분에서 잘못된 거 같고, 영희는 잘못되지 않았어. 그런데 영희도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잘못이 있네."
양측에 양비론이나 양시론을 취했다고 해서 그 사람은 전체적으로 봤을 땐 중도일 수도 있지만 부분적으로 반대나 찬성 입장을 낸 경우에 한해서는 중도라고 할 수 없다. A도 아니고 B도 아닌 C라는 다른 입장이 있는 것이다. 위 같은 甲의 행동이 일상적으로 중립적이라 하지만, 전자에서는 영희 옹호, 후자에서는 철수 옹호라는 명확한 스텐스를 취했으므로 부분적으로는 중도가 아니며, 전체적으로는 중도이다.

정치계에서도 풍부한 의견을 내는 사람들이 많아야 하지만, 논리적으로 "난 중립이잖아."와 같은 부분은 명백히 '중도에 의거한 오류'에 속한다. 이 부분만 빼면 오류에 속하지 않는다.[2]

진정한 중도는 침묵을 지키지 않는 양쪽이라는 말을 표방하여 내재되고 당사자들이 드러내지도 않는 진영논리를 은연 중에 드러내지 않는다.


3. 장점[편집]


특정한 쪽과 크게 엮이지 않으면서 어떤 의견도 못 내거나 화자의 주관적인 의견을 고집하고 남의 의견을 듣지 않는 사람보다 현명한 느낌이 있다. 하지만 그만큼 가끔 특정한 한쪽에 붙을 수도 있다. 소위 '줄타기'를 신중하게 해야 하기 때문에 중립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의 길잡이가 되기도 한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철학가, 사상가, 논객, 평론가들은 자신들의 의견을 타인들에게 중립으로 인정받기를 원했다. 하지만 지키기 쉽지 않고 기준이 분명하지 않으며 주관적인 의견들도 매우 많아서 중립적이지 않은 의견들도 꽤 많다.

만약 자신들이 중립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중립의 위상을 노리고 중립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도 많다. 확실한 의견이 없는 사람들은 어느 쪽에도 기울어지지 않은 형평성을 갖추었다고 주장하는 것에 쉽게 현혹되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그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추종하고 위상을 드높인다.


4. 존재하지 않을 경우[편집]


여러 의견들이 절충되지 않을 수 있고 소수의견은 세력이 약해서 다수파에게 피해를 본다. 역사적으로 이런 식으로 쿠데타, 전쟁, 또는 내전이 존재했다. 만약 특정한 의견에 어느 수준이라도 반대한다고 주장하면 반역으로 몰려서 살해당할 정도로 험악한 체제들이 많다. 현실주의파와 낭만주의파의 대립을 포함한 학계나 문화계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편향적인 사회의 대표로 정치적 극단주의가 강한 인터넷 커뮤니티가 있다.


5. 어려운 점[편집]



중립적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어렵다. 의견들의 대치되는 요소를 정확히 분석하는 강한 통찰력과 풍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자기 나름대로 중립적 의견을 도출했지만 일부에서 보기에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새로운 의견을 표명하는 것이므로 기존의 다른 의견들과 대립할 명분과 용기가 있어야 한다.

중립을 내세운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는다. 만일 특정 세력이 중립을 표방해도 제3세력이 볼 때에만 그렇게 보이고 직간접적으로 얽힌 세력에겐 그렇게 좋게 보이지 않는다. 완벽한 중립은 자신과 별 관련 없는 일에만 가능한 이상에 지나지 않고 분쟁을 벌이는 사람들에게 유의미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 따라서 양비론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표면적인 분쟁 속에서 보이지 않는 다른 이해관계들[3]을 끄집어내어 이용해야 하는데 그리 쉽지 않다.

정치계에서는 소극적 지지자가 자주 나타나서 적극적 지지자를 확보하기 어렵다. 중립이라는 개념은 긍정적이지만 당사자들이 원하는대로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손해를 봐야 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정치인에게 공격이 쏟아지고 자신을 처신하거나 방어하기 불가능해서 어지간한 의혹이나 논란을 감수해도 자신을 투표할 적극적 지지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상당히 치명적이다.

선거에서 중립적 의견을 지닌 사람들이라도 투표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지만 투표를 하지 않는 게 중립적이라고 판단된 경우 투표 자체를 아예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투표 자체를 아예 하지 않는 것과 어느 후보에게도 표를 주지 않는 것은 서로 다르므로 후자를 중립이라고 판단해서 무효표를 행사할 수도 있다.

특히 교육계에서는 정치적 중립을 교사들에게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편이지만 그 범위가 그다지 분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중립이 단순히 올바른 것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립을 지키는 것과 원래 분명히 옳거나 세간에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 중에서 고민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옳은 것의 기준 역시 교사 본인이 선택했기 때문이다.

국가 단위의 중립은 더더욱 어렵다. 전쟁이 나거나 국가 단위로 올라가면 생존을 건 OX게임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소수의 아군이라도 더 확보하려고 하기에 누구 편에 설지를 선택해야 하는데, 여기서 중립을 지켜야 할 경우에는 자신들의 국가를 지킬 국력이 있어야 한다. 러일전쟁 시기의 대한제국이 내세운 중립도 파괴되었다. 그래서 많은 국가들끼리 벌이는 외교에서도 힘도 없이 어설프게 추구하는 중립은 자살행위인 것이다. 때문에 어느 한쪽이라도 기대야 한다. 차후에 그쪽에게 확실하게 지원받거나 최소한 부흥할 여지라도 있다.

6. 비판[편집]


중립은 비겁한 방관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보통 자기우월주의적인 양비론이나, 이들의 안전만 챙기는 기회주의적인 자세를 비판하거나, 기계적 중립이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처럼, 중립으로 포장된 정치적 무관심이 주로 비난받는다. 그런 사람들 또한 대부분 정치적 무관심을 비판한다. 만약 양쪽의 세력이 균등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중립을 지켜도 세력이 큰 쪽에게 유리할 수 있다.

중립성향의 주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매도하거나 배척하면 극단주의흑백논리라는 또 다른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4] 과격파에서는 자신들의 극단성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온건파나 중립파를 기계적 중립으로 단정하는 사례들도 많다.


6.1. 어록[편집]


아무때나 중립을 외치는 사람들은 사실 중립주의자들이 아니라 현상 유지를 바랄 뿐이다.

People who demand neutrality in any situation are usually not neutral but in favor of the status quo.

맥스 이스트먼


신은 중립을 가장 좋아하지 않는다. 중립을 지키며 행동에 나서지 않는 사람이 신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우리 양심들은 중립에 서지 못한다. 신이 우리들을 그리 만들었기 때문이다.

Neutrality is no favorite with Providence, for we are so formed that it is scarcely possible for us to stand neuter in our hearts, although we may deem it prudent to appear so in our actions.

찰스 케일럽 콜턴


중립을 지키는 사람들은 악마의 편을 드는 사람들이다.

Neutral men are the devil’s allies.

에드윈 허블 체이핀


부당한 일로 인해 통합이 깨지게 되었을 때 중립을 지키는 사람은 사실 어느 쪽 입장도 지지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In an unjust cause of separation, he that favoreth both parts may perhaps have least love of either side, but hath most charity in himself.

조지프 홀


독립해야 하고 중립적이지도 않아야 한다.

It is well to be independent also well not to be neutral.

코슈트 러요시


중립은 오래된 신념이지만 무기력함의 증거이다.

Neutrality, as a lasting principle, is an evidence of weakness.

코슈트 러요시


중립은 위험하다. 정복자의 먹잇감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5]

Neutrality is dangerous, whereby thou becomest a necessary prey to the conqueror.

프랜시스 퀄스


양심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The heart is never neutral.

섀프츠버리 백작 앤서니 애슐리 쿠퍼


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 산다는 것은 어느 한 쪽을 편든다는 것이다.

안토니오 그람시


우리는 항상 한 편을 들어야 한다. 중립은 억압하는 사람만 도울 뿐, 억압받는 사람에게는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침묵은 고통을 주는 사람에게 동조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결코 힘이 되지 못한다.

엘리 위젤. 1986년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중립이란 없다. 침묵하는 것은 동조해주는 것과 같다.

나에게 고맙다.<다사카 히로시>


(정치적) 중립(무관심)은 악을 돕고 선을 좌절시킨다. 한때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조차 결국 가능한 것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K. 오브라이언


만약 정당하지 못한 상황에서 중립을 지키면, 박해자의 편을 택한 것이다. 만약 코끼리가 생쥐의 꼬리 위에 자기 발을 올리고 있는데 '중립을 지킨다'고 하면, 그 생쥐는 절대 중립에게 고마워하지 않을 것이다.

데즈먼드 투투


자막은 가운데를 잡은 사상가로, 가운데를 잡은 것이 도에 가깝지만, 가운데를 잡은 후 저울질하지 않으면 한 군데를 잡은 것과 같다.[6]

子莫執中,[7]

執中爲近之, 執中無權, 猶執一也.

맹자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균형감각은 피해자의 편을 들지 못한다. (중략) 허위와 진실 사이에서 균형감각은 진실의 편을 들지 못한다. 진위(眞僞)가 대립하는 것들 사이에서 균형감각은 방관자를 낳을 뿐이다. 거기에서 필요한 것은 균형감각이 아니라 당파성이다. 한 발 물러선 균형감각보다는 노골적인 편들기가 낫다.

박남일, <어용사전> 中 '균형감각'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아직 어떤 식으로 분노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사람들은 가끔씩 중립기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립기어는 차가 경사진 곳에 있으면 무조건 내려가거든요?

중립기어를 넣어도 움직이지 않는 평지는 우리의 삶속에 거의 없습니다.

그냥 모두가 다 꼬라박는 거죠.

부기영화


7. 관련 문서[편집]



[1] 하지만 우유부단해서 어떤 의견도 못 내는 건 의견이 없는 것이지 중립이라 하지 않는다.[2] 자신을 중립이라고 표방하고, 그것을 빌미로 중립적인 논거로 포장하는 듯한 행세를 하면 오류가 된다.[3] ex) 타협을 해야만 하는 약점, 특정 세력의 주장이 자승자박으로 작용할 수 있음, 특정 세력의 주장을 조금 변형하면 상대 세력에게도 이득이 될 수 있음[4] 평소에는 극단주의나 흑백논리가 잘못된 것으로 취급받지만 법이나 정의가 무너진 상황에서는 흑백논리에서 회색을 택한다고 양쪽 모두에게 공격받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중립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중립을 선택해도 잘못된 선택이 되기도 한다.[5] 대한제국은 약해진 국력을 대한제국 스스로 보강하지도 않고 중립을 굽히지 않아서 일본이나 러시아에게 치이다 1910년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겼다. 유럽의 몇몇 군소국가들은 중립을 표방했다가 2차 대전 당시에 나치에게 털렸다.[6] 저울질을 하지 않으면 무거운 쪽으로 기운다.[7] 여기서 유래한 말이 '융통성 없는 사람'을 뜻하는 '자막집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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