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이다 보로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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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지나이다 보리소브나 드루지니나
Зинаида Борисовна Дружинина Воронина
Zinaida Borisovna Druzhinina
국적
파일:소련 국기.svg 소련(1947~1990)
파일:러시아 국기.svg 러시아(1991~2001)
출생
1947년 10월 10일
소련 러시아 SSR 요시카르올라[1]
사망
2001년 3월 17일, 발라시하(향년 53세)
종목
기계체조
주종목
마루, 이단평행봉
신체
164cm, 53kg[2]
은퇴
1972년
1. 개요
2. 생애
2.1. 어린 시절
2.2. 국가대표
2.3.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
2.4. 1970 세계선수권 출전
2.5. 알코올 중독 문제
3. 은퇴와 몰락
4. 수상 기록



1. 개요[편집]


소련의 前 기계체조 선수이다.

2. 생애[편집]



2.1. 어린 시절[편집]


아버지는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어머니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보로니나는 어릴 때부터 뛰어난 운동 신경과 투쟁심을 가졌으며, 기계체조를 시작한 직후 지역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14살에는 국내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과 동시에 스타병에 걸려 "나에게는 더 이상 경쟁자가 없다"며 체조를 그만둘 뻔했지만, 코치가 운동을 계속하도록 설득했다. 이후 많은 주목을 받았고 모스크바의 디나모 스포츠 클럽에 합류했다.

2.2. 국가대표[편집]


18살 때 소련선수권 마루 종목에서 올림픽 5관왕인 폴리나 아스타코바의 뒤를 이어 2위에 오르며 국가대표 팀에 승선했다. 그러나 이때 대표팀에 문제가 생겼다. 대표팀에서 밀려난 라리사 라티니나 등 이전 세대의 선수들이 은퇴하자마자 대표팀 감독, 코치, 안무가 등의 자리를 얻어 자기들을 밀어낸 지나이다의 세대를 감독하게 되었다. 지나이다와 같은 세대인 라리사 페트리크는 코치진과 선수들간에 불편한 관계가 있었고, 라티니나가 보복으로 자기 세대를 대표팀에서 빨리 밀어 냈다고 보고 있다.

2.3.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편집]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 단체전에 참가하여, 팀원 중 가장 높은 총점을 받아 소련 팀이 우승하는데 일조했다. 개인종합에서는 은메달을 땄는데, 이는 당시 정치 상황으로 인해 손해를 본 것으로 정상적이라면 개인종합에서 금메달을 땄을 것이다.[3] 당시 스포츠가 특별한 국가사업이던 소련에서, 존경징표훈장을 받고 드루지니나는 곧 인기 미녀 스포츠스타가 되었다.

2.4. 1970 세계선수권 출전[편집]


드루지니나는 미하일 보로닌과 결혼하여 지나이다 보로니나가 되었다. 소련에서는 이런 국가적 영웅 간의 결혼이 흔했는데, 이러한 결혼을 정치적 선전 목적으로 활용하던 상부의 지시 때문이었다. 1969년 아들을 낳고 재활하여, 1970 세계선수권에 참가하여 4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2.5. 알코올 중독 문제[편집]


미하일 보로닌은 음주 습관이 있었는데, 보로니나도 같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7살 어린 타마라 라자코비치와 자주 술을 마셨고, 다른 팀 동료들도 이들로 부터 술을 얻어 마셨다. 국가대표팀 코치들은 더 이상 보로니나를 대표팀에 놔두어 팀을 망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4]

1970년 무렵부터 소련 여자 기계체조 팀은 1972 뮌헨 올림픽을 목표로 세대교체에 들어갔으며, 지나이다의 세대는 완전히 정리되었다. 지나이다는 자기 세대에서는 올가 카라세바와 함께 마지막까지 남았었으나 올림픽을 바로 앞두고 대표팀에서 탈락했다. 마지막 올림픽 선발전에서의 의기소침한 지나이다 보로니나의 모습은 미국 기자가 잔인할 정도로 주의깊게 관찰해서 기사에 썼다.

지나이다 보로니나는 마치 마지막 하나 남은 친구를 잃은 사람 처럼 보였다. 언제나 처럼 여리고 아름답지만, 고개를 약간 내리깐체 걷는 모습이 더 이상 경기에 대한 열정은 없고, 상황이 가는데로 움직이는 사람 처럼 보였다. 심지어 몸푸는 시간에도 머뭇거린다. 다른 선수들 모습을 보면서 마지막 남은 희망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듯하다. 개인종합 최종전에서 큰 실수 몇개를 하면서 정말 나쁜 시간을 보냈다. 개별종목에서는 그보다 훨씬 나은 모습을 보였다. 지나이다가 비록 깔끔한 실시를 하긴 했지만, 다른 선수들은 더 높게 그래고 더 잘 해냈다.


3. 은퇴와 몰락[편집]


보로니나의 알코올 문제는 갈수록 심해졌다. 미하일 보로닌과 이혼을 한 이후 아들의 양육권도 빼앗겼다.

1980 모스크바 올림픽을 앞두고 소련은 방문객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 모스크바의 불량 시민들을 권역 밖으로 추방하기 시작했다. 이때 보로니나도 모스크바에서 쫓겨났는데, 이후에도 소소한 절도죄를 저지르고 여성 수용소로 끌려갔다. 이후 보로니나는 공장 노동자가 되었다.

1980년대 초반 도네츠크의 화학공장 숙소에서 자살을 시도했다는 응급구조요원의 증언이 있었다. 보로니나는 자신의 대회 사진들을 꺼내서 식탁에 놓고 보다가 자살을 시도했다. 이 사진들을 본 응급구조 팀은 이 여자가 유명한 체조 선수인 보로니나란 사실을 금방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일반적인 경우와는 다르게 이들은 보로니나를 정규 의료진의 치료를 받도록 했다.

보로니나는 1992년(혹은 2001년)까지 주물 공장 노동자로 일했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로니나가 과거의 스포츠 영웅이란 사실을 몰랐다. 애초에 다른 사람과 교류를 하지 않았지만 술은 계속 마셨다. 한때 같이 술을 마셨던 라자코비치가 1992년에 사망했고, 보로니나도 2001년에 알코올 중독 합병증으로 인해 사망했다.

보로니나가 생존할 무렵 고향 요시카르올라에서는 여전히 보로니나를 지역이 낳은 영웅으로 생각하고 죽기 몇달 전 그녀를 초청해 기념 행사를 가졌다. 지나이다가 사망한 직후, 주민들은 직접 모금운동을 열어 유해를 고향으로 옮기고 기념 행사를 열었다. 또, 지역체육학교를 건립하고 지나이다의 이름을 붙였다.

4. 수상 기록[편집]


올림픽
금메달
1968 멕시코시티
단체전
은메달
1968 멕시코시티
개인종합
동메달
1968 멕시코시티
도마
동메달
1968 멕시코시티
이단평행봉
세계선수권
금메달
1970 류블랴나
단체전
은메달
1966 도르트문트
단체전
동메달
1966 도르트문트
마루
동메달
1970 류블랴나
개인종합
동메달
1970 류블랴나
마루
동메달
1970 류블랴나
이단평행봉
유럽선수권
은메달
1967 암스테르담
개인종합
동메달
1967 암스테르담
마루
동메달
1967 암스테르담
평균대
[1]마리 엘 공화국의 수도이다.[2] 현역 시절[3] 당시 프라하의 봄을 저지하기 위해 소련군이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했었다. 우호적인 판정에 힘 입어 개인종합 & 도마 & 이단평행봉 금메달은 체코슬로바키아의 베라 차슬라프스카가 차지했다. 소련이 금메달을 딴 경기에서 소련 국가가 연주될 때 베라 차슬라프스카는 고개를 돌려 항의를 표시했다.[4] 코치진은 원래 지나이다의 세대와 사이가 나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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