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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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갑용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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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갑용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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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2.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3.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4.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5.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6.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7.svg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8.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02
2005
2006
2011
2012
2013
2014

파일:1998 방콕 아시안 게임 로고.svg
1998 방콕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1998

파일:2008 베이징 올림픽 로고.svg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종목
금메달

2008

파일: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로고.svg
2018 자카르타 • 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코치)

2018

파일:WBSC 프리미어 12 엠블럼.svg
2019 프리미어 12
은메달(코치)

2019





파일:KBO 로고(세로형, 2013~2021).svg KBO 포스트시즌
2008 준플레이오프 MVP



진갑용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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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 베어스 등번호 22번
송명철
(1993~1995)

진갑용
(1997)


최기문
(1998)
OB
/
두산 베어스 등번호 12번

한상원
(1995~1997)

진갑용
(1998~1999.7.31.)


표성대
(2000~2001)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번
박현영
(1997)

진갑용
(1999.8.1.~1999)


김동수
(2000~2001)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20번
강동우
(1998~1999)

진갑용
(2000~2015)


정인욱
(2016)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등번호 020번


진갑용
(2017)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96번
최주엽
(2016)

진갑용
(2018~2019)


류호인
(2020~)
KIA 타이거즈 등번호 70번
홍세완
(2012~2019)

진갑용
(2020~)


현역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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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No.70
진갑용
陳甲龍 | Jin Kabyong
[1]
출생
1974년 5월 8일 (49세)
부산광역시 사하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하단초 - 초량중 - 부산고 - 고려대[2]
신체
182cm, 90kg[3]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7년 2차 1라운드 (전체 1번, OB)
소속팀
OB-두산 베어스 (1997~1999)
삼성 라이온즈 (1999~2015)
지도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군 배터리코치 (2017)
삼성 라이온즈 1군 배터리코치 (2018~2019)
KIA 타이거즈 1군 배터리코치 (2020~2021)
KIA 타이거즈 1군 수석코치 (2022~)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배터리코치 (2017~2023)
프런트
삼성 라이온즈 전력분석원 (2015~2016)
병역
예술체육요원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야구 부문 금메달)
응원가
등장시: 해바라기《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응원가1: The Crystals - 《Da Doo Ron Ron》[4][5][6]
응원가2: 박상철《황진이》[7][8]
응원가3: 실로암[9][10]
가족
배우자 손미영, 딸, 아들 진승현(2003년생)[11]
본관
여양 진씨
1. 개요
3. 플레이 스타일
5. 논란 및 사건 사고
5.2. 꼰대 논란
6. 여담
6.1. 야구 관련
6.2. 그 외
6.3. 부업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現 KIA 타이거즈의 수석코치.

현역 시절 포지션은 포수로 아마시절부터 일찌감치 김동수, 박경완을 이을 국가대표급 포수로 주목받았다. 이만수 이후 삼성 라이온즈를 대표하는 포수였으며, 타 팀 출신으로 삼성의 프랜차이즈 선수가 된 선수 중 한 명이다.[12] 이만수의 노쇠화 이후 마땅한 스타 포수가 없었던 삼성 입장에선 천금과도 같았던 존재이다.[13]

20대, 30대, 40대에 모두 우승을 차지[14]한 삼성 구단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지만, 도핑 논란과 다혈질적인 면모로의 구설 등, 명과 암이 교차하는 선수였다.


2. 선수 경력[편집]




3. 플레이 스타일[편집]


포수로서 갖춰야 할 기본기를 두루 갖추었다. 투수 리드, 블로킹, 송구 능력, 미트질 등등 모두 뛰어난 수준. 투수 리드하면 박경완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진갑용 역시 리드 스타일이 다를 뿐 노련한 투수 리드를 자랑했다.

발은 엄청 느린 편[15]이라 한 번 하기도 힘든 삼중살을 두 번이나 쳐내는[16] 진기록을 보유하고 있다.[17] 웬만한 타자는 2루로 서서 들어갈 장타도 2루로 들어가다가 태그아웃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18] 반대로 본인의 발이 느리다는 점을 역이용하여, 가끔식 허를 찌르는 도루를 성공시키기도 한다. 그 느린 발로 양의지 앞에서 도루를 기록한 적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마추어 시절에는 발이 빠른 포수의 대명사였으며 고교 시절에는 전국대회에서 도루왕을 차지 했었다.#

대학 때에도 도루가 가능한 포수로 평가받기도 했다.#[19]

수비 부담이 높은 포수 포지션임을 감안하면 타격도 좋은 편이다. 중요한 상황에서 적시타를 쳐줄 수 있으며, 가끔씩 큰 한 방도 때려준다. 그러나 도핑 전과가 있는 관계로, 사실상 약물의 힘을 빌려 기록한 성적으로 취급을 받고 있다.

진갑용의 타격 전성기라 볼 수 있는 기간은 2002~2004년인데[20], 도핑에 걸린 해가 2002년. 2004년 이후로 장타력이 급격히 감소하고 타격에 하락이 있었기에 약물의 도움은 빼도박도 못하는 기정사실로 여겨진다. 다만 말년에 대타로서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며 절륜한 타격 능력의 대타 요원으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포수리드에 있어서 박경완은 타자가 치기 어려워하는 코스의 공을 결정구로 삼아서 투구리드를 하는 전통적인 스타일이라면 진갑용은 상대 타자가 투수의 공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고 속구를 대비하는지 변화구를 대비하는지 파악해 구속 플레이를 하는 타입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전통적인 리드와 공격적인 리드를 상대를 봐가며 섞어서 쓰는 선수로 알려져있다. 빠른 공에 대비를 못하면 빠른 승부로 상대가 투구에 잘 대응하면 변화구로 스트라이크 존을 넓히며 길게 가는 승부를 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다 잘 하고 그때그때 상대의 반응을 보고 변칙적으로 대응한다. 머리가 좋아서 상대감독의 작전을 읽어내 견제사 시키거나 피치아웃하여 여유있게 도루를 잡아내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불필요한 견제동작을 안 하는 선수라 견제동작이 들어가면 거의 상대팀 작전을 읽어낸 경우다.

박경완, 김동수, 진갑용, 강민호, 양의지 정도를 국내에서 포수리드에 경지에 오른 선수로 보고 있다. 과거도 그렇지만 현재에도 팀 분석이나 밴치의 볼배합 싸인을 포수가 참고하여 싸인을 내기 때문에 현재에는 포수의 볼배합 능력에 큰 점수를 주지 않지만 위의 다섯 선수는 그걸 감안 하고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4. 지도자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진갑용/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삼성의 주전 포수로서 1985년 우승을 제외한 삼성 라이온즈의 모든 우승을 견인하고 경험한 덕분에 삼성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지만, 이에 대비되는 안 좋은 모습도 있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그가 포수 레전드로 꼽히는 성적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야구팬들에게 외면받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5.1. 금지약물 복용[편집]


파일:약드래곰ㄴ.png[21]

한국 문화에서 중요한 베테랑의 존재와 리더십 때문에 발탁됐다. 과거에 스테로이드 양성 반응을 보였다는 점은 아이러니.

라이언 사도스키 리포트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야구에서 도핑테스트에 적발된 전적이 있다. 게다가 고려대 후배인 김상훈을 자기 대신 뽑히게 하려고 일부러 도핑용 소변샘플에 약을 탔다는 허무맹랑한 거짓말로 넘어가려 하다가, 이게 신문기사에 실리자마자 진갑용의 금지약물 복용 행위를 알게 된 야구팬들로부터 욕만 왕창 먹고 나중에 금지약물 복용을 인정하고 말았다. 덤으로 김상훈은 진갑용의 행동에 대해 "잘 모르는 선배가 왜 나에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 모르게 잘 챙겨주고 있다고 생각하겠다." 라고 말해 대인배 인증을 하기도 했다. 결국 진갑용은 부산 아시안 게임 야구 엔트리에서 제외되었고, 팬들에게 '약갑용', '약물용'이라고 까였다. 거기다가 해명 당시에 약이 아닌 한약을 먹었다고 변명을 해서 두 배로 까이기도 했다.

그 당시 상황을 요약하자면,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도핑테스트가 치러졌는데,
1. 도핑테스트에서 테스토스테론이 적발되었다. 도핑컨트롤센터는 "진갑용이 호르몬과다로 위험수치"라고 발표하며 약물복용 사실을 알렸다.
2. 이에 진갑용 측 반응은 "다른 선수에게 병역면제 혜택을 주기 위해 고의로 소변샘플에 약물을 탔다.", "금지약물 3방울 정도를 소변에 풀었다." 였다.
3. 이에 도핑컨트롤센터 측이 반박하는데, "해당 성분의 약물은 물에 녹지 않는다. 게다가 한방울이라도 넣으면 수치가 높게 나온다. 한방울 정도면 30정도의 수치가 나오는데 6이 나온 것을 볼 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 이라며 진갑용 측의 변명은 허구라는 점을 밝힌다.당시 기사
4. 결국 진갑용 측의 추가 반응은 "체력적인 부담을 느껴 지난 시즌부터 단백질(프로틴), 근육강화제, 비타민, 종합영양제 등을 복용해왔다." "1차 검사 양성반응 이후 모기자의 질문에 당황해서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했다. 약물을 먹고 있다는 것을 숨기고 싶었고 약물 복용 사실이 알려지면 국가대표에서 탈락할 것 같아 겁이 났다. 아시안게임에는 꼭 출전하고 싶다." "지난 시즌부터 경기 출장이 많아지면서 체력적 부담을 느껴 복용하기 시작했다. 주위에서 별 문제가 없다고 해서 지속적으로 사용했고 1차테스트 양성반응은 감기약과 함께 복용해서 그런 것 같다." 이러하였다.
5. 이에 대한 징계로 벌금 200만원이 주어졌다.다만 이는 KBO의 징계는 아니며, 소속구단인 삼성 측의 징계였다. 당시 KBO 규정상 약물에 대한 처벌조항이 전무하였기 때문이다.[22]

이는 그동안 공공연히 선수들 사이에서 진행되어 왔던 도핑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주 원인이 되었는데, 진갑용이 도핑에 적발되었던 당시에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도 마찬가지로 도핑을 하던 배리 본즈의 홈런쇼에 관심이 많았었지, 아직까지 도핑이 메이저리그의 기반 자체를 흔들 정도로 이슈화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2007년 메이저리그에서 금지약물 복용자 명단을 다루는 미첼 리포트가 발표되었고, 이 명단에 메이저리그를 대표했던 스타 선수들이 들어갔다는 사실이 나오면서, 어떠한 이유로든 금지약물 복용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한국 야구팬들 사이에 뿌리박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산 베어스에서 뛰었던 외국인 투수인 다니엘 리오스가 2008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뛰었을 당시 도핑 테스트에 적발되어 일본프로야구에서 1년간 자격정지를 받았다는 사실은 도핑은 나쁘다라는 사고방식에 쐐기를 박기 충분했다.[23] 거기에 이후로도 김재환, 최진행등의 도핑 적발 사례가 일어나자 금지약물 복용은 거의 범죄를 저지른 것과 맞먹는 수준의 행동으로 팬들에게 인식되었다. 진갑용의 약물 복용 논란은 2000년대 중반에는 야구 갤러리 같은 야구 커뮤니티 내에서 범죄X 개그요소로만 가끔 언급되었다가 리그베다 위키 시절부터 야구 관련 문서가 급증한 2009년 이후로 엔하위키에 야갤러, 엠엘비파크 등 다양한 야구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금지약물 복용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이로 인해 그 동안 어느 정도 호의적인 시선이 남아 있던 진갑용의 평가 역시 추락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리그베다 위키 시절에는 이 단락에 금지약물을 엄단해야 한다는 측과 삼성 라이온즈의 레전드를 죽이지 말라는 진갑용 팬들과의 수정전쟁으로 인해 한 야구팬이 아몰랑으로 일관하는 한 진갑용 팬의 논리를 일방적으로 비난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도 했다.

지금 진갑용의 금지약물 복용 행위에 대한 비판은 2002 시즌에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복용의 효과로 의심되는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진갑용의 홈런 개수와 그의 당시 잘못을 변명하는 발언,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금지약물 복용을 악(惡)으로 바라보게 된 야구팬들의 안 좋은 시선이다. 이 세가지가 겹쳐서 생겨난 일이다. 그리고 진갑용은 이러한 일로 인해 삼성 라이온즈에서 오랫동안 뛴 베테랑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팬들로부터 레전드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되는 주 원인이 되고 만다. 약물 복용이 옳건 나쁘건 자의적인 가치판단을 하기 전에 이건 본인이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만큼 자신이 금지약물 복용으로 인한 불이익은 그가 야구계에 발을 담그고 있는 한은 계속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확률이 높다.


5.2. 꼰대 논란[편집]


경기 중에 다혈질적이고 흥분을 쉽게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진갑용은 나이가 많다는 점과 선배라는 점을 앞세워서 후배들에게 지적질을 하는 모습 때문에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2009년 두산 베어스 최준석의 홈 대시 이후 상황에서 바디체킹으로 인한 충돌[24] 이후 곧바로 일어나서 최준석을 미트로 때리려는 시늉을 하며 불같이 화를 냈고, 당황한 최준석이 바로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째려보고, 선수 및 코치, 심판이 말리는 와중에도 두고 보라는 듯 삿대질을 하고 들어갔다. 이닝 종료 후에 덕아웃에 들어가던 최준석이 다시 한번 고개 숙여 사과했으나, 9회 말 자신의 타석이 끝난 후 야구 방망이를 든 채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날 기세로 두산 덕아웃을 찾아가는 짓을 저지르기까지 했다.[25]

2012년에는 KIA 타이거즈의 당시 1년차 투수였던 박지훈이 머리쪽으로 날아오는 공을 던지자, 발끈한 나머지 마운드로 달려가려다 심판의 제지로 겨우 멈추기도 했다. 심판이 잡고 있는 동안에도 마운드를 향해 뭔가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당일 경기에서 김선빈이 진갑용의 블로킹에 그대로 슬라이딩했다가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보복성 빈볼로 생각할 여지는 있었으나[26], 갓 데뷔한 신인 투수에게 고참 중 고참인 진갑용이 과도하게 흥분했다는 비판을 면하긴 어려웠다.

또 2013년엔 넥센 히어로즈이택근심창민한테 몸에 맞는 공을 맞았는데, 이택근이 항의하는 차원에서 심창민을 향해 마운드로 올라가려 하자 오히려 이택근에게 화를 내며 밀쳐낸 적도 있다. 이때 이택근의 목을 움켜잡는 것으로 의심되는 행동을 해 팬들의 눈살을 찌뿌리게 만들기도 했다. 같은 해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유희관자신에게 슬로우커브를 던진다는 이유만으로 화를 내기도 했다. 유희관은 원래부터 느린 공으로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는 투수인 만큼 도발이나 기만의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던 상황이라, 팬들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될 행동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특히 불과 며칠 전 같은 상황에서 이병규의 행동과 대비되어[27] 더 까인 면이 있다.

그렇다고 자기가 선배들에게 똑바로 선배대접을 했느냐? 그건 또 아니다. 벤치 클리어링박경완[28]에게 헤드락을 걸었던 적이 있었고,[29] 2006년 한국시리즈에서 구대성에게 몸에 맞는 공을 맞자 배트를 들고 있는 상태로[30] 마운드에 올라가려고 하는 등[31] 자기는 선배들한테 대놓고 대들었던 전력이 있다.

거기에 레다메스 리즈 배영섭 사구사건때는 배영섭이 맞았는데 자기랑 무관 한 일이라고 배째라는 식으로 덕아웃에서 여유롭다는 듯 웃으며 노닥거리는 모습까지 포착되면서 이제 은퇴할 때 다 돼서 몸 관리 하려고 저러는거냐, 자기만 아니면 다냐며 그나마 진갑용을 호의적으로 바라보았던 몇몇 삼성팬들에게까지 버림받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사람을 봐 가면서 성질을 내는 듯 하다. 투수 최영필이 과거 한화 시절이었던 2005년 5월 21일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고의로 빈볼을 던진 후, 심판이 퇴장을 선언하자 글러브를 냅다 집어던지고 쿨하게 걸어 나가는 장면을 연출해 필사마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참고로 빈볼을 맞은 상대가 바로 진갑용이다. 진갑용은 상술한 것처럼 선배들에게도 대드는 경우가 있는데, 정작 동갑내기인 최영필한테는 아무 소리도 못 했고 심판만 애절하게 쳐다 보았다.

아울러 고려대학교 야구부 2년 선배인 심재학에게는 얼굴도 못 마주칠 정도로 무서워했다고 한다. 고려대학교 야구부는 안그래도 타 대학 야구부에 비해 구타와 군기로 악명높았는데 심재학은 대학 재학 시절 악마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군기반장이었고 진갑용은 물론 나름 한성깔 하기로 유명한 김동주도 고려대 시절 심재학을 상당히 무서워했을 정도였다고. 그리고 그 심재학은 2023년 5월 KIA의 단장으로 부임했다.


6. 여담[편집]



6.1. 야구 관련[편집]


  • 별명은 삼성팬 한정으로 '진주장, '진마미', '갑돌이', '갑용신', '갑드래곤', 엄청난 활약을 할 때는 '갑드래곤신' 등으로 유명하다. 타팀팬에겐 약갑용, 약드래곤, 후배위전드 등으로 불리며 까인다.

  • 롯데 자이언츠의 손민한과는 고교 때부터 대학시절까지 배터리를 이뤘으며 손민한이 등판하고 진갑용이 타석에 서면 더 이상 말이 필요없을 만큼 서로를 잘 알고 있다는 말이 등장한다. 실제로 손민한 상대로 6할이 넘는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대표적인 게 2008년 4월 25일 사직경기. 완봉 페이스이던 손민한에게 9회초 동점타를 때려냈다.[32]

  • 1997년 박철순의 은퇴식 때 시포를 담당하기도 했다.

  • 타자들이 뽑은 타자에게 가장 말을 많이 거는 선수다. 참 시끄럽단다. 어느 정도냐면 "인사 안하냐? 죽을래?"부터 시작해 "1루 나가가 뛰면 직이뿐다(1루로 나가서 뛰면 죽여버린다)", "빨리 치라, 뭐하노?", "이런거 안치면 뭐칠래? 쯧쯧..." 등으로 상대팀 타자들을 약올리는 걸로 악명이 높았다. 오죽하면 조성환이 했던 인터뷰의 제목이 "갑용이 형 타격방해 좀 그만해요" 일 정도니 말 다했다.[33]# 좀 더 자세한 내용은 트래쉬 토크 문서 참조.

  • 약물 논란과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비판받는 것과 별개로 팬 서비스는 매우 괜찮은 편이었다. 홈경기 출근 때에도 웬만하면 싸인과 사진 요청은 다 들어주고 갔으며, 원정경기 때도 싸인 요청에 친절하게 응대한 편이었다.

  • 위에도 있는 2011 한국시리즈 우승 후 사진이 걸그룹과 합성되었는데, 누군가 이걸 사인회에 갖고 왔다.

  • 아버지도 야구선수로 뛴 적이 있다고 한다. 또한 아들 진승현도 야구선수다. 3대가 야구인 진승현은 2013년 4월 30일 경기에서 아버지가 파울타구를 맞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눈물을 흘려 주목받기도 했다. 아빠 아프지 마세요 진승현은 경북고로 진학했고 명포수였던 아버지와는 달리 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그리고 진갑용 본인이 가지 못했던 고향팀 롯데에 지명되며 프로선수의 꿈을 이루었다.

  • 오승환이 세이브를 했을 때 가슴에 손을 올렸다 공중을 가리키는 세리머니는 오승환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은 마음에 들지 않으나 진갑용이 하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지영과 배터리를 이룰 땐 그 세리머니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34]

  • 동갑내기이자 한때 삼성에서 같이 뛰었던 오상민박명환야구TV에 출연해 진갑용에 대한 썰을 풀었는데, 동남 방언을 써서 재밌고 서로 투수-포수로 출전했을 때 호흡도 잘 맞아 친하게 지냈으며 경기장 밖에서는 정말 착하고 재밌는 친구였다고 평했다.

  • 박명환야구TV에서 의외로 자주 언급되는 이름이다. 특히 두산 베어스 시절 함께 뛰었던 후배 정수근은 아예 그를 '갑돌이'라고 편하게 부르며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진갑용이 두산을 떠나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해 가끔씩 경기장에서 만나면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로 "수근이 왔나~!"며 반겨주었고 경기 중 진갑용이 정수근의 타석에서 트래쉬 토킹을 심하게 하면 직접 심판에게 "심판 아저씨 얘 경고 주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위에 오상민과의 일화도 그렇고 선수단 내에서 친화력은 나름 좋았던 듯 하다.

6.2. 그 외[편집]


  • 이름 "갑용"의 원래 발음은 '가뵹'으로 읽는 게 맞고 본인도 그 사실을 알지만, '감뇽'으로 불리길 원한다고. '가뵹'은 샌님 같고, '감뇽' 쪽이 경상도 액센트가 들어가서 좀 더 '싸나이'처럼 들린다나. 그래서인지 허구연만은 '감뇽'으로 부르고 있다. 감뇽이라고 읽으려면 진갑용이라는 이름이 합성어여야 한다.


  • 가수 김원준과는 중학교 때부터 서로 형과 동생으로 부르며 친하게 지내던 사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김원준이 진갑용보다 1살 형이다.[35] 진갑용이 형으로 보인다고...[36]



6.3. 부업[편집]


부업으로 대구에서 족발집과 커피전문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족발집은 2008년 연탄불고기&김치찌개 집으로 오픈하였다가 2013년 족발집으로 업종을 바꾼 것이다. 처음 문을 열었던 연탄불고기집은 본인 프랜차이즈는 아니고, 대구에서 제법 유명한 '간바지[37] 연탄불고기&김치찌개' 집 주인에게 비법을 전수받아 분점 형태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뒷편 대로변에 개업하여 당시 삼팬들 사이에서는 진갑용을 '간바지'로 부르기도 했으며, 앞서 FA 계약 후 대구에 본인 가게를 낸 선배들인 박종호, 김한수, 마해영과는 다르게 장사도 잘 된 편이어서 많은 삼성 팬들이 즐겨 찾던 곳이었다. 2013년 하반기에는 업종을 변경하여 같은 자리에서 온족발이라는 이름의 족발집으로 바꾸었는데 간바지집를 정리한 건 묵은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데다가 여태껏 식당일을 봐 주신 장모님에게 손이 많이 가는 김치찌개 가게로 더 이상 힘들 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족발집은 점장을 두고 관리할 수 있고 크게 손이 많이 가지 않아서 괜찮다고 한다. 아내의 부담도 덜고. 이 온족발은 2015년부터 '진갑용의 진(陳)족발'이란 이름으로 상호를 바꾸었다. 가게는 대구도시공사 시내버스 정류장이 있는 이마트 칠성점 건너편 고성천주교회 옆에 있다. 가게 문에 본인 사인이 들어간 유니폼이나 기타 야구 전시품이 걸려 있다. 야구 경기 때 족발을 파는 건 어떻겠느냐고 묻자 주변 영세 상인들을 생각해서 그러지는 않겠다고 했다. 그러다가 2016년 2월 말 쯤 해당 족발집을 정리했다.

커피전문점은 과거에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네거리 근처에서 한 차례 개업을 했었지만 간바지에 비해서 장사가 잘 안 되었는지 문을 닫았다가, 2013년 수성구 지산동 두산오거리 수성아트피아 근처에 엔제리너스 커피로 다시 오픈하였다. 커피전문점 이름이 엔젤리너스 커피 대구수성진갑용점이다. 커피전문점은 아내 손미영 씨가 거의 전담해서 관리하고 있다. *[38] 사자후에 어떤 팬이 직접 방문한 사진을 게재했다. 2층인데가 주차장도 있고 규모가 꽤 크다. 진갑용을 만나러 일부러 찾아와 한때 엔제리너스가 잘 나갈때는 손님이 많았다. 2017년 엔제리너스 홈페이지에서 폐점 됐다고 나온다.


7. 관련 문서[편집]



[1]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 공식 등록명.[2] 체육교육과 93학번[3] KBO 공식 프로필[4] 10시즌까지 사용하고 11시즌부터는 드물게 사용되다가 사라졌다.[5] 날~려라 진갑용 날~려라 진갑용 날~려라 진갑용 날려라 날려라 진갑용[6] 롯데 자이언츠 팀 응원가 중에서도 이 곡을 사용한다.[7] 11시즌부터 쓰기 시작했으며 채태인, 가코 응원가와 더불어 특유의 백괴스러움으로 인해 팬들에게 심하게 까이는 응원가 중의 하나로 악명높다. 가사는 대략 다음과 같다. "진~갑용 진~갑용 삼성의 진~갑용 나가신다 얼씨구 절씨구 진갑용". 그런데 대구 아재들에게는 호응이 좋아서 지금까지 계속 쓰고 있다. 타팀 팬들에게도 컬트적인 인기를 끌기도했다. 나중에 "얼씨구 절씨구 진갑용" 부분이 "최강삼성 진갑용"으로 바뀌었다.[8] 게다가 김용일 前 응원단장은 삼성에서도 이게 좋아보였는지 삼성화재 배구단김정훈 선수에게도 같은 응원가를 썼다.[9] 날려라~ 진갑용~ 날려라~ 진갑용~ 날려라~ 날려라~ 진갑용~×2[10] 김한수보다는 템포가 빠르다.[11] 투수. 원래는 포수였지만 투수로 전향. 대구광역시에서 선수 생활을 할 때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 그리고 2022년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아버지의 고향팀 롯데 자이언츠에 지명받았다.[12] 그 외의 선수로 김종훈, 임창용 등이 이 사례에 해당한다.[13] 진갑용 이후로는 왕조 시절 자리를 물려 받은 이지영이나 이적해온 강민호가 삼성의 포수 계보를 이었다.[14] 임창용김강민 역시 이 사례에 해당한다.[15] 다만 아마시절엔 도루도 가능한 5툴의 포수 기대주였다.[16] 병살을 잘 치는 양의지, 이도형, 심지어 병살타 1위 홍성흔도 삼중살은 안 쳤다.[17] 사실 웬만한 상황에서 삼중살이란 직선타로 인해 주자가 귀루를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타자주자의 발이랑은 크게 상관이 없다. 예외로 주자 발이 정말 더럽게 느릴 경우 주자 1, 2루나 만루일 시 3루 땅볼로 3루수가 3루 베이스를 찍고 5-4-3 삼중살이 가능하긴 하지만 이 경우 보통 3루수는 만루, 1-2루에서는 보통 정상수비를 하기 때문에 역시 실제로 볼 일은 많지 않다. 주자가 더블스틸을 할 경우 3루수가 베이스커버를 들어가니 딱 맞춰서 타구가 간다면 가능은 한데 이럴 경우는 또 베이스를 찍고 2루에 던지면 스타트를 일찍 끊은 1루 주자가 살 가능성이 매우 높아 역시 가능성이 매우 낮은 편. 허나 진갑용은 2번 중 한 번을 그 무사 만루에서 3루 땅볼로 5-4-3 삼중살을 만들어냈다. (2007년 LG전.)[18] 2011년 8월 3일 대구 넥센 전에서도 1루 주자로 있다가 투수의 폭투로 공이 뒤로 빠진 사이 3루까지 전력 질주하다가 횡사당했다. 스타트가 대단히 좋았으나 역시 느린 발 땜시로….[19] 마해영이 본인 자서전과 기자 신분으로 직접 인터뷰한 기사에 따르면 400m를 53~4초를 주파했다고 한다. 그리고 박재홍은 진갑용이 대학시절 가장 빨랐다고 했다.[20] 리그에서 준수한 활약을 했다고 여겨지는 wRC+ 120 언저리를 기록하였으며, 진갑용이 커리어를 통틀어 WAR 4.5 이상을 기록한 기간은 이 3년 뿐이다.[21] 경향신문의 1996년 10월 28일자 기사에서 '막고 치고 달리는' 부분을 '약 먹고'로 편집한 것이다.[22] 이시기에는 KBO뿐 아니라 야구계, 그리고 기자들, 팬들도 약물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고 있었다. 선수협에서도 '징계를 내릴 사안은 아니지만 말 실수에 대해서는 유감'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게다가 진갑용은 2002년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2003년과 2004년 올스타전 포수로 뽑히기까지 했다. 사실 MLB 또한 이 시기 양성반응 5회 누적되어야 출전정지를 내리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하는 낮은 수준의 규정이 있었고, 첫 양성 반응시 10경기 정지 규정이 만들어진 후 50경기를 거쳐 80경기 정지까지 수위를 높이는데 거의 10년이 걸렸다.[23] 특히 2007시즌에는 22승을 거두었는데, 이는 한국프로야구 투수 역대 한 시즌 최다승 기록 BEST 10 중에 선발 투수-중간계투-마무리 투수로 투수 분업화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진 21세기 이후에 기록한 유이한 기록이다. (2015년까지는 유일한 기록이었으나 2016년 두산 베어스더스틴 니퍼트가 리오스와 같은 22승을 기록하면서 더는 유일한 기록이 아니게 됐다.) 당연히 팬들은 다니엘 리오스가 한국에서도 금지약물을 복용한 게 아닐까 하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24] 상황 자체는 다각적으로 해석 될 여지는 있다. 야구의 암묵적인 룰 참조, 9회 말, 그것도 17-5로 승부가 기운 상황에서 2루 주자였던 최준석이 다소 짧은 안타에 무리한 주루 플레이를 펼친 면도 있다. # 기사를 참조하면 3루 주루코치였던 김광수 코치는 점수 차도 많이 나니 홈에서 아웃당하라는 생각으로 돌린 듯 싶다.[25] 김동주가 고려대 선배인 진갑용한테 웃으면서 참으라고 하는데, 고려대 출신 후배 김선우가 뒤에서 주먹을 꽉 쥐고 있는 모습이 캡처됐다. 김선우는 깔끔한 외모와 달리 한성질 한주먹 하는 선수로 벤클에서 상당히 활약하는 선수였다.(보스턴 시절에도 싸움솜씨를 과시한 에피소드가 있고, 본인 스스로도 젊었을 때는 누구에게도 주먹은 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벤치 클리어링 상황일지라도 흉기가 될 수 있는 배트를 드는 건 절대적으로 금지이다. 저 체구들로 단단한 1kg 방망이를 휘두른다고 생각해보자. 그 순간부터는 스포츠가 아닌 특수폭행이 될 수 있다.[26] 하지만 박지훈이 등판 후 던진 3개의 공이 박석민 사구, 최형우 피홈런, 진갑용 사구로 3투구수 1피홈런 2사구로 보복투를 연타석으로 던졌다고 보았을 수도 있다.[27] 시속 70km/h대로 들어온 높은 공을 그대로 안타로 만들었다. 훗날 이병규는 인터뷰에서 당시 투수 송신영이 칠테면 쳐보라는 식으로 던진 것을 진짜로 쳤다고 밝힌 바가 있다.[28] 1972년생으로 진갑용보다 2살 많고, 고졸신인이라서 프로 짬밥으로 치면 6년이 앞선다. 참고로 박경완은 1991년 입단, 진갑용은 1997년 입단. 같은 팀 선배인 양준혁도 1993년 입단으로 박경완보다 2년 늦다. 여담지만 한국 스포츠계에선 보통 프로 입단 기수가 아닌 고등학교 졸업연도로 선후배를 따지기 때문에 프로 입단 순서가 역전된 경우에도 보통 졸업연도가 빠른 사람이 선배가 된다. 물론 박경완/진갑용의 경우엔 어떻게 봐도 박경완이 확실한 선배.[29] 여담으로 이 때 김응용이 당시 만으로 60이 넘은 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30대 초반의 카브레라를 헤드락으로 제압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30] 벤치 클리어링을 포함한 야구장 내에서의 싸움은 당연히 배트를 들면 안된다. 배트를 달고 사는 타자들에게 배트를 쥐어주고 싸움을 하면 흉기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31] 다만 당시 한화 포수였던 심광호가 1차로 말렸고 그 뒤에 구대성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왜 임마!"라고 외치며 타석 쪽으로 걸어오자 조용히 1루로 걸어갔다. 1루로 걸어간 뒤 구대성으로부터 대차게 꾸지람을 듣고 데꿀멍한 표정을 보여주는 것은 덤.[32] 이후 10회초 삼성타선이 추가점을 뽑아줘 역전했지만 10회말 오승환을 생전 처음 상대해본 조성환이 끝내기 안타를 때려내면서 롯데가 승리했다.그러니까 잘 쳐놓고 져서 의미가 없었다고[33] 인터뷰 형식이 다른 선수나 지인들이 인터뷰이에게 질문을 하면 인터뷰이가 그 질문에 답변을 해주는 식이다.[34] 오승환이 250SV를 기록 후 MVP에 선정되었던 경기 방송 인터뷰가 모두 끝난 후, 삼성이 구단 이벤트 차원에서 실시하는 홈 경기 MVP 선수에 대한 팬들과의 인터뷰에서 "이지영과 배터리를 이룰때는 왜 세리머니를 하지 않느냐"는 팬의 질문에 이와 같이 대답했다. 참고로 이 인터뷰를 할 때 MVP 선수는 응원단상에 올라서서 팬들에게 직접 질문도 받고 홈페이지로 사전 예약한 팬들과 포토타임도 갖는다.[35] 거기에 김원준은 빠른 73년생이라 72년생들과 학교를 같이 다녔기 때문에 74년생 진갑용과는 사실상 2살 차이다.[36] 물론 이건 진갑용이 노안인 게 아니라 김원준이 심한 동안인 탓이 크다.[37] 돼지고기의 한 부위로 간을 받히고 있는 살로, 토시살을 뜻한다.[38] 재밌는 점은 진갑용은 롯데(지역)에서 태어나 OB(두산)(팀)에서 시작해서 삼성(팀)에서 은퇴해 기아에서 코치 생활 중이다. 부산 → 서울 → 대구 →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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