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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珍島 金氏
진도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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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전라남도 진도군
시조
김국빈(金國檳)
집성촌
전라남도 진도
인구
1,539명(2015년)

1. 개요
2. 역사
3. 인구



1. 개요[편집]


전라남도 진도군을 본관으로 두고 있는 중국계 성씨이다.[1]


2. 역사[편집]


시조 김국빈은 후한 출신으로 위·촉·오의 세 나라의 삼국시대를 피해 배를 타고 현재의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죽포(竹浦)에 도착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이때 미추 이사금의 부름을 받고 군국정사(軍國政事)라는 벼슬을 지냈다.[2]

그러나 실제로 진도를 본관으로 삼은 사람은 왕건이 진도를 공략할 때 협력한 23세손 김경호(金敬浩)이다. 940년, 왕건의 후삼국 통일 후 나주 공방전에 협조한 공을 인정받아 옥주후(沃州候)가 되었다.[3]. 작위를 부여받은 후 김경호의 가문은 개경으로 옮겨갔고, 김경호의 큰아들 김구석(金九碩)은 4대 정종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냈다. 한편 여말에 김경조(金慶祚)는 이방원정몽주를 죽인 뒤 숙청할 때, 같이 죽였다.[4]

『신라김씨분종보(新羅金氏分宗譜)』에 따르면, 고려에서 호부상서[5]였던 김혁흥(金奕興)의 후손인 김자경(金自敬)이 조선시대에 선무랑(宣務郞)에 올랐다. 이후 후손들이 진도에 계속 살면서 본관을 진도로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외에도,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와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의하면 사용이란 관직에 오른 김천손(金千孫)을 일세손으로 기록하고 있다.


3. 인구[편집]


경기도에 2파, 황해도에 3파, 경상도에 4파가 있었으나, 최종적으론 경기도의 개성파가 남았다. 원래 개성, 칠원, 개풍 등지에서 살다가 한국전쟁 때 그 일부가 남하하여 서울과 부산에 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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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중국계 성씨라 그러긴 뭐한게, 1800년이 지나서..,[2] 여기서 의문점이 있다. 고려 때 삼정 중 하나였던 군정에서 근무했다는 문헌도 있다.[3] 옥주는 진도의 옛이름이다.[4] 지금도 선죽교에 있는 비엔 진도사람 김경조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고 한다.[5] 조선으로 따지면 호조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