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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陳步樂
(? ~~ BC 99년)
중국 전한(前漢) 한무제(武帝) 시기의 인물.
사서에서는 그야말로 짦게 언급만 될 뿐인 인물이므로, 자세한 사항은 알 수가 없다.
BC 99년, 여름이던 5월에 한무제는 이광리에게 3만의 기병을 주어, 주천(酒泉)을 출발하여 흉노의 우현왕을 치게 하였다.
이때, 한무제는 이릉에게 이광리를 위해 보급을 담당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이릉은 머리를 조아리면서 청을 올렸다.
즉, 자신이 흉노의 주위를 끌어 전력을 분산시켜, 이광리에 대한 압박을 덜어주겠다는 의사표시였다. 하지만 무제는 기병 전력이 부족하다고 난색을 표시했다.
그러자 이릉은 기병을 쓸 일은 없고, 적은 숫자로서 많은 숫자를 격파하고자 하며, 보병 5천여명이면 충분하다고 호언장담했다. 이에 무제는 참 장하다고 여기면서 이를 허락하였다.
그리고 복파장군(伏波將軍) 노박덕(路博德)으로 하여금 이릉의 부대를 영접하여 도와주게 조치하였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이 당시 노박덕은 남월(南越) 정벌 등에서 활약하고, 곽거병의 시대부터 싸웠던 이름난 장수였던 반면에, 이릉은 이제 막 두각을 나타내려는 신인이었다. 애송이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노박덕은 이를 쪽팔리는 일로 여겼고, 한무제에게 따로 상주하였다.
자신이 후방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기다렸다 같이 나아가자는 이야기였는데, 문제는 한무제가 노박덕의 이 서한을 보고 터무니없는 오해를 해버렸다는 사실에 있었다. 한무제는 이릉이 앞에서는 "적은 숫자로 대군을 박살내겠음!" 하고는, 막상 전쟁터에 나가자 겁을 먹어, 노박덕에게 부탁해서 서한을 올려, 싸우지 않으려고 하는 것으로 오해해버린 것이다.
이에 열을 받은 한무제는 노박덕을 감숙성 쪽의 전선으로 옮기고, 이릉은 홀로 준계산(浚稽山)[2] 남쪽을 배회하면서 흉노를 감시하고 보이는것이 없으면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제 이릉은 북으로 진군하면서도, 후방에는 지원군이 없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된 이릉이었지만, 처음에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릉은 보병 5천여 명을 이끌고 30일 동안 북쪽으로 나아가, 준계산에 머물러 군영을 만들고 근처의 지도를 그렸고, 휘하의 기병인 진보락을 한무제에게 파견하여 그 전과를 보고했고, 무제는 이에 기뻐하면서 진보락에게 벼슬을 내렸다.
하지만 문제는, 이후 이릉이 흉노 군대에게 포위되어서 패전한것.
처음 이릉의 패배 소식을 들은 한무제는 차라리 투항하기보다는 이릉이 장렬히 전사했기를 바랬었다.
하지만 막상 이릉이 죽었는지 확인해보려고 점을 쳐보고 해도 이릉이 죽었다는 점괘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나중에 듣자하니 이릉이 흉노에 항복해버렸다는 것이다. 이에 한무제는 엄청나게 화를 냈고, 이릉의 부하로 소식을 전했던 진보락에게 이를 추궁했다. 진보락은 견디지 못하고 자살해버렸다.
이릉의 비운에 재수없게 엮여들어, 생을 마감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 BC 99년)
1. 개요[편집]
중국 전한(前漢) 한무제(武帝) 시기의 인물.
사서에서는 그야말로 짦게 언급만 될 뿐인 인물이므로, 자세한 사항은 알 수가 없다.
2. 상세[편집]
BC 99년, 여름이던 5월에 한무제는 이광리에게 3만의 기병을 주어, 주천(酒泉)을 출발하여 흉노의 우현왕을 치게 하였다.
이때, 한무제는 이릉에게 이광리를 위해 보급을 담당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이릉은 머리를 조아리면서 청을 올렸다.
즉, 자신이 흉노의 주위를 끌어 전력을 분산시켜, 이광리에 대한 압박을 덜어주겠다는 의사표시였다. 하지만 무제는 기병 전력이 부족하다고 난색을 표시했다.
그러자 이릉은 기병을 쓸 일은 없고, 적은 숫자로서 많은 숫자를 격파하고자 하며, 보병 5천여명이면 충분하다고 호언장담했다. 이에 무제는 참 장하다고 여기면서 이를 허락하였다.
그리고 복파장군(伏波將軍) 노박덕(路博德)으로 하여금 이릉의 부대를 영접하여 도와주게 조치하였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이 당시 노박덕은 남월(南越) 정벌 등에서 활약하고, 곽거병의 시대부터 싸웠던 이름난 장수였던 반면에, 이릉은 이제 막 두각을 나타내려는 신인이었다. 애송이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노박덕은 이를 쪽팔리는 일로 여겼고, 한무제에게 따로 상주하였다.
자신이 후방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기다렸다 같이 나아가자는 이야기였는데, 문제는 한무제가 노박덕의 이 서한을 보고 터무니없는 오해를 해버렸다는 사실에 있었다. 한무제는 이릉이 앞에서는 "적은 숫자로 대군을 박살내겠음!" 하고는, 막상 전쟁터에 나가자 겁을 먹어, 노박덕에게 부탁해서 서한을 올려, 싸우지 않으려고 하는 것으로 오해해버린 것이다.
이에 열을 받은 한무제는 노박덕을 감숙성 쪽의 전선으로 옮기고, 이릉은 홀로 준계산(浚稽山)[2] 남쪽을 배회하면서 흉노를 감시하고 보이는것이 없으면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제 이릉은 북으로 진군하면서도, 후방에는 지원군이 없어지게 되었다. 그렇게 된 이릉이었지만, 처음에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릉은 보병 5천여 명을 이끌고 30일 동안 북쪽으로 나아가, 준계산에 머물러 군영을 만들고 근처의 지도를 그렸고, 휘하의 기병인 진보락을 한무제에게 파견하여 그 전과를 보고했고, 무제는 이에 기뻐하면서 진보락에게 벼슬을 내렸다.
하지만 문제는, 이후 이릉이 흉노 군대에게 포위되어서 패전한것.
처음 이릉의 패배 소식을 들은 한무제는 차라리 투항하기보다는 이릉이 장렬히 전사했기를 바랬었다.
하지만 막상 이릉이 죽었는지 확인해보려고 점을 쳐보고 해도 이릉이 죽었다는 점괘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나중에 듣자하니 이릉이 흉노에 항복해버렸다는 것이다. 이에 한무제는 엄청나게 화를 냈고, 이릉의 부하로 소식을 전했던 진보락에게 이를 추궁했다. 진보락은 견디지 못하고 자살해버렸다.
3. 평가[편집]
이릉의 비운에 재수없게 엮여들어, 생을 마감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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