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헌공(3대)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춘추시대 진(秦)나라의 3대 군주. 진 문공의 손자이자 추존된 진 정공(秦靜公)의 아들. 진 출자, 진 무공, 진 덕공의 아버지. 아버지인 진 정공이 조부 진 문공보다 일찍 죽었기에 진 문공이 재위 50년 만에 죽자 헌공이 뒤를 이었다. 《사기》에는 진 영공(秦寧公)[2] 으로 기록되어 있다.
2. 재위 기간에 일어난 일[편집]
진 헌공 2년(기원전 714년), 헌공은 신읍(平陽)에서 평양으로 천도했다. 그리고 병사를 보내 탕사(蕩社)를 쳤다.
진 헌공 3년(기원전 713년), 박(亳)의 융족과 싸울 때 박왕(亳王)이 패해 서융으로 달아났다. 드디어 탕사를 멸망시켰다.
진 헌공 7년(기원전 709년), 예나라의 백작의 어머니 예강이 예백의 애첩이 많은 것을 싫어했다. 예백 만은 예나라에서 쫓겨났고, 위성에 거주했다.
진 헌공 8년(기원전 708년), 가을 헌공은 추방된 예백 만을 위해 예나라를 쳤는데, 헌공이 예나라를 얕봤다가 패배했다. 겨울에 동주 환왕이 진(秦)나라와 연합해 위성을 포위하고, 예백 만을 포로로 잡았다.
진 헌공 12년(기원전 704년), 헌공은 탕지(蕩氏)를 토벌해 영토를 넓혔다. 같은 해 헌공이 죽으니 그 나이가 21세였다. 장지는 서산의 큰 산기슭이었다. 그 뒤를 아들 진 출자가 이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8 04:30:08에 나무위키 진헌공(3대)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