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보 게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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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VO GUERRERO

1. 프로필
2. 소개
3. 커리어
3.1. WCW (1996~2001)
3.2. WWF에서 태그팀과 크루저웨이트 디비전의 감초가 되다
3.3. 부진을 딛고 푸쉬를 받다
3.4. 삼촌 에디 게레로 사망 이후(2005~2007)
3.5. 라 패밀리아 및 마지막 스토리라인 (2007~2011)
3.6. WWE에서의 말년과 그 이후
3.7. AEW 이적
4. 여담
5. 둘러보기


1. 프로필[편집]


AEW
링 네임
Chavo Guerrero Jr.[1]
본명
Salvador Guerrero IV
출생
1970년 10월 20일 (53세)
미국 텍사스 주 엘패소
체중
100kg
피니쉬 무브
브레인버스터
고리 밤[2]
프로그 스플래쉬[3]
아비세게리[4]
주요 커리어
IWR / WCR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루차 언더그라운드 기프트 오브 더 갓 챔피언 1회
RKK 태그팀 챔피언 1회
TNA 월드 태그팀 챔피언 2회
벤데타 프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WCW 크루저웨이트 챔피언 2회
WCW 월드 태그팀 챔피언 1회
WWC 캐리비안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ECW 챔피언십 1회
WWE 크루저웨이트 챔피언 4회
WWE 태그팀 챔피언 2회
테마
Chavito Ardiente (2004~2011)
활동시기
1994년 ~ 2014년

2. 소개[편집]


WWE, TNA 프로레슬러.

유명한 프로레슬링 집안인 게레로 가문의 일원으로, 아버지인 차보 게레로 Sr.도 프로레슬러였고, 삼촌은 에디 게레로이다. 아버지의 막내동생인 에디 게레로와는 단 세 살 차이로 형제와도 같은 사이였다. 에디 게레로는 형이 3명 있었으나 에디가 유독 늦둥이로 태어난 탓에 셋째 형인 헥터 게레로와도 무려 13살 삼촌과 조카뻘 차이가 났다.

작은 체구 때문에 WCW, WWE 등의 북미 메이저 단체에선 메인급에서 활동하지 못하고 주로 크루져웨이트급, 미드카더에서 활동하던 선수였다. 그러나 기량만큼은 나무랄 데가 없다.[5]


3. 커리어[편집]



3.1. WCW (1996~2001)[편집]


차보 게레로는 1994년에 데뷔하여 2년동안 멕시코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활동하다가 1996년에 WCW로 이적한다. WCW에서 먼저 활동하고 있던 에디 게레로의 조카라는 사실에 주목받았다. 그러나 차보 게레로는 에디 게레로의 등에 업혀가는 것을 꺼리며 에디와는 다른 스타일의 프로레슬링을 한다. 그 뒤로 2000년에는 군인 스테이블 MIA에 가입하여 활동하면서 WCW 태그팀 챔피언에 등극한다. WCW 말기 무렵에는 WCW 크루저웨이트 챔피언십 디비전에서 활동하였고 2001년 1월 PPV WCW 신(2001)에서 셰인 헴즈에게 타이틀을 방어하였고 2월 PPV 수퍼브롤에서는 레이미스테리오Jr에게 타이틀을 방어하였다
3월부터는 "슈가" 셰인 헴즈WCW 크루저웨이트 챔피언 타이틀을 놓고 대립했다. 결국 마지막 WCW 크루저웨이트 챔피언의 자리는 셰인 헴즈가 차지했다.


3.2. WWF에서 태그팀과 크루저웨이트 디비전의 감초가 되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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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WCW가 WWF에 흡수되자 WWF로 넘어왔다. 디 얼라이언스에 가입하여 활동하지만 별다른 활약은 없었다.
2002년에 WWF가 WWE로 바뀌고 나서는 삼촌 에디 게레로와 태그팀 '로스 게레로스'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차보 게레로도 삼촌처럼 거짓말하고, 속이고, 훔치는 프로레슬러가 되었다. 그렇게 에지 & 레이 미스테리오, 팀 앵글(셸턴 벤자민 & 찰리 하스)을 상대하며 태그팀 디비전의 중심이 되었고, WWE 태그팀 챔피언십까지 차지한다. 로스 게레로스는 날로 인기가 증가해 삼촌 에디 게레로가 WWE 챔피언십 스토리라인에 끼면서 차보 게레로보다는 에디의 상승세가 더 높아지게 되었다.

이것을 계기로 차보 게레로가 에디 게레로를 배신해 로스 게레로스는 끝이 났고, 에디와의 대립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인 차보 게레로 시니어와 함께 활동하며 1:2대립을 시작했다.[6] 이들의 대립은 WWE 로얄럼블(2004)에서 에디 게레로에게 패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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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 크루저웨이트 챔피언십을 차지하고 크루저웨이트급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매김하여 레이 미스테리오, 빌리 키드먼 등과 대립했다. 기세가 등등해진 차보 게레로는 크루저웨이트 챔피언십 오픈 챌린지를 열었다가 디바 재클린을 상대로 방심해 로우 블로우를 맞고 타이틀을 잃었다. 이때 재클린은 은퇴 직전이어서 WWE측에서 감사의 표시로 잠깐이나마 챔피언을 준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12일 만에 다시 재클린으로부터 크루저웨이트 벨트를 회수한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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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크 더들리와 대립하면서 2004년 5월 18일 스맥다운에서 차보 게레로 vs 스파이크 vs 차보 클래식(차보 게레로 시니어)의 삼자간 크루저웨이트 챔피언쉽 경기가 열렸는데 어이없게도 차보의 아버지 차보 클래식이 아들을 커버하고 챔피언에 등극했다.아버지 통수 지리네 이후 8월 스맥다운에서 빌리 키드먼과의 경기 도중 슈팅스타 프레스를 잘못 맞고 뇌진탕에 걸려 몇 달 간 쉬게 된다.[8]

컴백 후 WWE 노 웨이 아웃(2005)에서는 6자간 크루저웨이트 챔피언쉽 경기에서 통산 5회 챔피언이 된다. 그러나 한 달만에 8인 배틀로얄 경기에서 폴 런던에게 타이틀을 뺏기고 만다. 그러다 경기 도중 뼈 골절 부상을 당하며 또 쉬게 된다. 그러다 2005년 드래프트에서 RAW로 전격 드래프트 된다.


3.3. 부진을 딛고 푸쉬를 받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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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네임을 '커윈 화이트'로 바꾸고, 부유한 골퍼 기믹으로 활동하며 캐디로는 '닉 네메스'를 데리고 다닌다. 그리고 자신을 앵글로 아메리카인이라고 지칭하며 인종차별성 기믹을 수행한다. 그리고 캐치프레이즈로 "If it's not White, it's not right"를 미는데, 일종의 언어유희였다. 그러나 커윈 화이트에 대한 반응이 아예 없는 수준(...)이라서 인종차별 문제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커윈 화이트 기믹 당시에 피부가 하얗지 않은 셸턴 벤자민, 타지리 등과 대립한다.[9]

기믹 특성상 악역이었는데, 악역 특성상 경기를 지저분하게 했고, 특히 싱글매치에선 닉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닉과 함께 태그팀 매치를 할때도 경기를 지저분하게 했다.


3.4. 삼촌 에디 게레로 사망 이후(2005~2007)[편집]


2005년 11월 13일에 삼촌인 에디 게레로와 호텔을 같이 쓰고 있었는데, 에디가 급성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이에 '커윈 화이트' 기믹을 버리고 더불어 닉 네메스도 같이 버려지고[10] 다시 '차보 게레로'로 돌아왔다. 이 소식을 들은 빈스 맥마흔은 바로 그 주의 로우와 스맥다운을 에디 게레로의 추모특집으로 마련했고, 에디와 친한 선수들과 차보는 그를 기리기 위해 그의 이니셜인 'EG'가 새겨진 완장을 차고 경기에 임했다. 당일 차보 게레로는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에게 승리했는데 그를 기리기 위해 피니쉬 무브로 프로그 스플래쉬를 사용했다. 또한 차보 게레로는 에디와 자신이 늘상 그러했듯이 거짓말하고 속여서 승리했기 때문에[11] 에디 게레로를 그리워하는 많은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이후에도 2006 로얄럼블에선 에디가 생전에 사용하던 기술들을 그대로 사용해 해설진들의 이목을 끌었다.

2006년 2월엔 스맥다운에서 레이 미스테리오와 대립 중이던 랜디 오턴이 삼촌인 에디 게레로를 모욕하자 이에 분노하여 프로그 스플래쉬를 시전한다. 그리고 그 다음 주 RAW에서 WWE 레슬매니아 22에서 머니 인 더 뱅크 매치 도전자 결정전을 셸턴 벤자민과 치르다가 난입한 랜디 오턴의 RKO를 맞고 패배한다. 이후 에디 게레로 헌정 경기를 셸턴 벤자민과의 WWE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으로 하겠다고 했으나 패배하고 만다. 감정에 북받친 차보 게레로는 WWE를 떠나겠다는 세그먼트를 했다.

그리고 한동안 모습을 안보이다가 5월 스맥다운에서 모습을 나타냈고, 핀레이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 뒤로 몇 주간 레이 미스테리오를 서포트 해준다. 그러나 레이 미스테리오킹 부커와의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경기 도중 레이를 철제의자로 공격해 턴힐하며 킹 부커가 챔피언이 되는데 일조한다. 8월 4일 스맥다운에서 차보가 왜 레이를 공격을 한 이유는 레이가 직접 스스로 힘으로 낸 게 아니라 "에디의 이름(Eddie's name)"으로 사용하게 되어 그 힘으로 차보와 게레로 가족의 명예를 걸고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레이를 배신을 했기 때문이었다.[12] WWE 섬머슬램(2006)에서 레이 미스테리오와의 경기 도중 에디 게레로의 미망인이었던 비키 게레로가 등장하여 두 사람을 말리다 차보 게레로의 승리를 돕는다. 결국 이후의 스맥다운에서 비키 게레로 역시 레이 미스테리오를 배신하고 차보 게레로 쪽으로 붙었다.

이어진 WWE 노 머시(2006)에선 폴스 카운트 애니웨어 매치에서 패배하며 대립이 장기화되던 중 레이 미스테리오가 다리 부상을 당한다. 이에 위클리쇼인 스맥다운에서 아이 큇 매치를 가져 레이 미스테리오를 구조물에 매달고 다리에 체어샷을 연타해 승리한다. 그 뒤 크리스 벤와WWE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챔피언십에 수차례 도전했지만 타이틀 전에서 번번히 패배하면 챔피언 등극에는 실패했다.[13]

2007년에는 WWE 크루저웨이트 챔피언십 8인 경기에 참가해 그레고리 헴즈로부터 타이틀을 가져오며 통산 6회 크루저웨이트 챔피언이 된다. 그 뒤로 WWE 그레이트 아메리칸 배쉬(2007)에서 6인 챔피언쉽 매치가 열리고, 혼스워글이 챔피언이 된다. 그 뒤로 2개월 뒤엔 비키 게레로의 의해 WCW에서부터 역사가 시작된 크루저웨이트 챔피언쉽은 폐지된다.

이후 경기 때마다 승리한 후면 상대에게 레이 미스테리오의 가면을 씌우고 프로그 스플래쉬를 시전했으며, 가면을 쓰고 레이 미스테리오를 사칭하며 유진과의 경기에서 레이의 기술을 쓰다가 619을 삑사리 내고 링 밖으로 나가떨어지지만 승리한다. WWE 섬머슬램(2007)에선 레이 미스테리오의 복귀전 희생양이 되었다. 섬머슬램 이후 첫번째 스맥다운에서 레이 미스테리오와의 아이 큇 매치가 열렸는데 링 안 턴버클 쪽에 매달린 채 다리에 체어샷 연타를 당하며 아이 큇을 외치곤 자취를 감춘다. 이는 웰니스 프로그램에서 적발된 것에 대한 징계성 조치였다.


3.5. 라 패밀리아 및 마지막 스토리라인 (2007~2011)[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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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E U.S 챔피언 MVPECW 챔피언 CM 펑크의 경기에서 이성을 잃고 심판의 제지를 아랑곳 않은 채 무자비한 공격을 퍼부은 MVP 때문에 CM 펑크가 DQ승을 얻었다. 이때 지쳐있는 CM 펑크를 습격하며 2007년 연말에 ECW에서 복귀한다. 하지만 완전히 ECW 소속으로 옮긴 것은 아니고 스맥다운 소속이면서 양 브랜드를 번갈아가며 활동했다.[14] 차보 게레로는 CM 펑크를 쓰리 아미고스와 프로그 스플래시로 공격하고는 ECW 타이틀에 도전할 것을 암시한다.

2008년 1월 1일~15일 ECW 위클리쇼에서 CM 펑크와 세 번 경기를 가졌지만 카운트아웃이나 DQ로 차보 게레로가 계속 패했다. 이에 ECW 타이틀전이 No DQ 매치가 된 1월 22일 ECW에서는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지가 난입해서 CM 펑크에게 스피어를 시전해준 덕에 펑크를 커버하고 승리한다.[15] ECW 챔피언이 된 후 에지, 비키 게레로, 커트 호킨스, 잭 라이더와 함께 '라 패밀리아'를 결성한다. 이 라 패밀리아는 에지가 레이 미스테리오, 바티스타, 언더테이커 등의 강자들을 상대로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을 방어할 때 큰 도움이 된다.

그 뒤 CM 펑크를 상대로 ECW 타이틀을 지키지만 레슬매니아 24에서 ECW 챔피언쉽 도전자 자격을 건 24인 배틀로얄 우승자 케인에게 11초만에 패배(...)하며 벨트를 뺏긴다.[16] 이는 레슬매니아 역사상 최단 시간에 타이틀을 잃은 챔피언이라는 기록으로 남게 된다. 사실 ECW 타이틀의 위상이 2선급으로 떨어져가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한 브랜드의 챔피언이 11초만에 패한 것은 그리 좋은 각본은 아니나 오랫동안 제대로 개인 타이틀을 획득한 적이 없는 케인이 챔피언에 된 지라 환호하는 반응이 더 많았다.

뱀 닐리를 자기 보디가드 겸 라 패밀리아의 일원으로 들이며 WWE 백 래쉬(2008)에서 케인에게 재도전해 나름 선전하나 패했다. 그 뒤로는 드래프트를 통해 ECW로 이적한다. 싱글 혹은 태그팀으로 활동하며 에반 본이나 리키 오티즈 같은 신입을 키우며과 대립하며 활동한다. 또한 ECW 챔피언십에도 여러번 도전했으나 번번이 실패한다.

에지의 바람기에 질린 비키 게레로는 라 패밀리아가 매장시킨 언더테이커와[17] 에지의 헬 인 어 셀 매치를 부킹한다. 이에 백스테이지에서 미치광이가 된 에지의 습격을 받고 뻗은 모습으로 스맥다운에 등장한다.


3.6. WWE에서의 말년과 그 이후[편집]


2009년에 차보 게레로는 드래프트로 인해 RAW로 이적한다. 이적하고나서 비키 게레로산티노 마렐라와의 대립에 끼어들어서 산티노와 대립하며 WWE 익스트림 룰즈(2009)에서 산티노와 Hog Pen Match에서 패배하여[18] 비키가 WWE를 떠나게 된다. 그러나 차보 게레로는 계속해서 산티노 마렐라와 대립하였고 6월 WWE 슈퍼스타즈에서 패배하는 것으로 대립은 끝이 났다.

2010년에 차보 게레로는 드래프트로 인해 다시 스맥다운으로 돌아왔으며, 돌아오자마자 케인에게 초크슬램을 맞았다(...). 그 뒤로 비키 게레로가 매니지먼트를 하던 돌프 지글러를 돕기 위해 가세하였다. 이 당시 돌프 지글러는 크리스챤과 대립했기 때문에 차보 게레로는 돌프와 팀을 맺고 크리스챤은 혼스워글과 팀을 맺어 2:2매치를 가졌다가 패배했다. 그 뒤로 비키 & 돌프 & 차보는 연합을 맺었지만, 비키 게레로가 계속 돌프 지글러를 도우라는 명령만 내리자 차보 게레로는 결국 화가 나서 비키의 명령을 거부하고 연합에서 탈퇴한다.

2011년 3월에는 NXT에서 대런 영의 프로가 되어서 활동했고, 스맥다운에선 타이슨 키드신 카라의 대립 전선에 끼어들었다. 이 대립은 PPV인 WWE 오버 더 리미트(2011)에서 신 카라에게 패배하며 마무리 되었다. 신인들에게 잡을 해주다가 WWE에 방출을 요구하여 6월에 WWE를 나왔다.

2011년에 독립단체로 돌아간 차보 게레로는 2012년에는 TNA에 전격 데뷔한다. TNA에선 헤르난데스와 함께 TNA 태그팀 챔피언이 된다. TNA에서 2년동안 활동하다 2014년에는 루차 언더그라운드에 입단한다. 초기엔 전 WWE 선수들로 구성되었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루차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의 기량은 월등히 좋다고 칭찬한다. 차보 게레로는 루차 언더그라운드에서 수석 에이전트가 되었다.


3.7. AEW 이적[편집]


2021년 7월 21일에 방영된 AEW안드라데 엘 이돌로의 컨설턴트 역할로 등장하여, 세그먼트 때 데스 트라이앵글과 마찰이 벌어진다. 그러나 9월 10일에 방영된 램페이지에서 PAC를 꺾은 안드라데가 차보 게레로를 공격하며 배신한다.


4. 여담[편집]


폰 에릭 가문의 흥망성쇠를 그린 전기 영화 디 아이언 클로에 출연했다. 또한 영화의 컨설턴트 겸 스턴트 레슬링 코디네이터 직책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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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 최악의 대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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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혼스워글 vs 차보 게레로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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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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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인 차보 게레로 시니어와 함께 활동할때 Jr.를 붙이고 활동했다. 차보 게레로 시니어는 일본과 멕시코 등에서 활약한 레전드 프로레슬러다. 2017년 2월 11일 별세. 향년 68세.[2] 그의 할아버지인 고리 게레로가 만든 기술이다. 파워 밤 자세로 들어서, 상대와 등을 맞댄 채로 상대의 양 팔과 양 다리를 잡는 서브미션 기술을 고리 스페셜이라고 부르는데, 이 상태에서 두 팔을 놓으며 상대를 바닥에 부딪히게 하는 페이스버스터 계열의 기술이다.[3] 에디 게레로 사후에 그를 추모하기 위해 사용[4] 앞으로 구르면서 뒷발로 상대의 머리를 내리찍는 기술. 아비세게리는 일본어로 덮치면서 차기라는 뜻으로 북미에서도 이 단어로 부른다. 수신 선더 라이거가 처음 사용한 기술로 무토 케이지, 나이토 테츠야 등이 사용한다.[5] 하지만 재능이 넘쳤던 숙부 에디 게레로의 하위호환이라는 점 때문에 결국 미국에서는 메이저에는 오르지 못했던 비운의 선수기도 하다.[6] 에디 쪽에는 커트 앵글이 파트너가 되기도 했다.[7] 성대결이다보니 차보가 한손을 뒤로 묶는 핸디캡 매치로 진행되었는데, 핸디캡 때문에 밀리기 시작하자 차보 시니어가 심판의 어그로를 끄는 사이 묶인 손을 풀고 재클린을 공격하여 승리했다.[8] 이 실제 상황을 WWE는 각본으로 연결하여 키드먼은 당시 태그 팀 파트너인 폴 런던과 대립하게 된다. 키드먼은 차보한테 부상입힌 것 때문에 죄책감이 생겨버렸고, 제이미 노블과의 대화에서 차보에 관련 얘기를 나누다 제대로 자극받은일로 인해 태그팀 챔피언쉽에서 슈팅스타 프레스를 사용할수 있는 상황에서도 안쓴것도 모자라 아예 파트너인 런던을 링에 놔두고 먼저 퇴장해버려 챔피언 타이틀을 잃게된다. 그 후 죄책감에 시달리는 자신을 이해 못하는 런던을 배신하면서 악역이 되어 폴 런던과 빌리 키드먼의 대립이 이어져나갔다. 당시 크루저웨이트급 선수들의 논타이틀 대립임에도 2004년 노머시에서 경기가 부킹되고, 대립 프로모까지 만들어줄 정도로 꽤 주목을 많이 받던 대립이었다. 이 대립에서 결국 최대 피해자는 폴 런던이엇고, 반면 아무런 손해도 보지 않은건 정작 키드먼의 심기를 자극한 제이미 노블이엇다.[9] 이건 2003~4년당시 로우에 존재했던 안티백인 스테이블이 백인 선수들 및 자신들처럼 같은 유색인종이라해도 자신들과 반대되는 성향인 선수들과 대립했던것과 비슷한데 안티백인 스테이블이 백인들 및 자신들과 성향이 다른 유색인종들을 상대로 대립했다면 커윈 화이트는 백인이면서 유색인종들과 대립했다.[10] 이후 닉은 돌프 지글러로 재데뷔한다.[11] 심판의 시선을 딴 곳으로 분산시킨 뒤 의자로 링 바닥을 내리치곤 의자를 경기 상대에게 던지는 동시에 자신은 맞은 척 뒤로 쓰러지는 방법이다. 에디 게레로가 간혹 쓰던 속임수로 생전 마지막 경기에서도 이 방식으로 승리했다.[12] 사실은 레이의 상대 중 JBL과 마크 헨리 경기에서 심판 시야를 벗어나 모랠 반칙 기술로 써서 레이를 이기게 해주고, 타이틀을 보호해줬다. 차보의 심정은 겉 모습으론 좋았으나, 속 모습으로는 기분이 나빴던 점.[13] 에디 게레로의 절친인 크리스 벤와와도 친하게 지냈는데, 벤와가 자살을 암시한 메일을 차보 게레로에게 처음으로 보냈다고 한다.[14] 당시에는 ECW의 시청률 부진을 막기 위해 스맥다운과 ECW 선수들의 브랜드 출연 제한을 해제했다. 미즈존 모리슨이 스맥다운의 WWE 태그팀 챔피언으로 오랫동안 활동했었고, CM 펑크가 스맥다운에서 경기를 가지곤 했다.[15] 6개월 후 에지는 머니 인 더 뱅크를 차지한 CM 펑크에게 캐싱인을 허용하며 그대로 월드 헤비웨이트 타이틀을 뺏겼다. 제대로 복수당한 셈.[16] 케인은 이때 ECW 챔피언이 된 직후, 스맥다운에서 ECW로 브랜드를 옮긴다. 그로 인해 WWE 레슬매니아 24 이후 첫 ECW의 오프닝을 장식했다.[17] 당시 언더테이커의 헬즈게이트는 각본상 선수들에게 내상을 입혀 입에서 출혈을 일으켰다. 이에 비키 게레로는 선수들에게 위험하다는 이유로 언더테이커의 헬즈게이트를 금지시켰고, 그럼에도 언더테이커는 헬즈게이트를 쓰다가 에지에게서 따낸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벨트를 박탈당했다. 또 공석이 된 타이틀을 차지하지 못하면 WWE를 떠나는 조항이 붙은 채 에지와 가진 TLC 경기에서 라 패밀리아의 방해를 받아 패하고 사라졌었다.[18] 차보 게레로가 패배시에 비키 게레로가 WWE에서 떠난다는 조항이 들어 있었다.[☆] 해고 통지서 획득자 기준[19] 알베르토 엘 파트론 & 레이 미스테리오 & 칼리스토[20] 브라이언 케이지 & 차보 게레로 주니어 & 자니 문도[21] 파가노 & 사이코 크라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