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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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영국과 영연방 왕국의 현 국왕. 엘리자베스 2세와 에든버러 공작 필립의 장남이다.
엘리자베스 2세가 22살에 낳은 장남으로, 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후계자가 되어 70년 간[2] 왕세자로 있었다. 2017년 9월 9일 부로 에드워드 7세[3] 를 제치고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웨일스 공으로 재위했던 사람이 되었다. 다만 에드워드 7세는 당시 최고령으로 즉위한 국왕은 아니다.[4]
2022년 9월 8일,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서거하면서 70년 만에 영국과 영연방 왕국의 국왕으로 새롭게 즉위했다. 역대 영국 국왕 중 가장 고령(73세)으로 즉위한 국왕이다. 윌리엄 4세(64세 즉위)가 가진 기록을 경신했다.[5]
1685년 찰스 2세 국왕이 세상을 떠난 지 337년 만에 탄생한 찰스라는 이름을 쓰는 국왕이다.
2. 작위[편집]
- 에든버러의 찰스 공자 전하 His Royal Highness Prince Charles of Edinburgh (1948년 11월 14일 ~ 1952년 2월 6일)
- 콘월 공작 전하 His Royal Highness The Duke of Cornwall (1952년 2월 6일 ~ 2022년 9월 8일)[8]
- 스코틀랜드에서는 로스시 공작 전하 His Royal Highness The Duke of Rothesay (1952년 2월 6일 ~ 2022년 9월 8일)
- 캐릭 백작 Earl of Carrick (1952년 2월 6일 ~ 2022년 9월 8일)
- 렌프루 남작 Baron of Renfrew (1952년 2월 6일 ~ 2022년 9월 8일)
- 아일즈의 영주 Lord of the Isles (1952년 2월 6일 ~ 2022년 9월 8일)
- 스코틀랜드 공 겸 섭정 Prince and Great Steward of Scotland (1952년 2월 6일 ~ 2022년 9월 8일)
- 스코틀랜드에서는 로스시 공작 전하 His Royal Highness The Duke of Rothesay (1952년 2월 6일 ~ 2022년 9월 8일)
- 웨일스 공 전하 His Royal Highness The Prince of Wales (1958년 7월 26일 ~ 2022년 9월 8일)[9]
- 체스터 백작 Earl of Chester (1958년 7월 26일 ~ 2022년 9월 8일)
- 국왕 폐하 His Majesty The King (2022년 9월 8일 ~ 현재)
즉위 전까지의 칭호는 웨일스 공[11] , 체스터 백작, 콘월 공작, 로스시 공작[12] , 에든버러 공작[2021년] , 캐릭 백작, 메리오네스 백작[2021년] , 렌프루 남작, 그리니치 남작[2021년] , 아일즈의 영주, 스코틀랜드 공 겸 섭정, 가터 훈장의 기사, 씨슬 훈장의 기사, 바스 훈장의 대십자기사, 오더 오브 메리트의 회원, 오스트레일리아 훈장의 기사, 여왕 공로 훈장의 컴패니언, 여왕 폐하의 영광스런 추밀원의 의원이신 찰스 필립 아서 조지 왕자 전하(His Royal Highness Prince Charles Philip Arthur George, Prince of Wales and Earl of Chester, Duke of Cornwall, Duke of Rothesay, Duke of Edinburgh, Earl of Carrick, Earl of Merioneth, Baron of Renfrew, Baron Greenwich, Lord of the Isles, Prince and Great Steward of Scotland, Royal Knight Companion of the Most Noble Order of the Garter, Royal Knight Companion of the Most Ancient and Most Noble Order of the Thistle, Knight Grand Cross of the Most Honourable Order of Bath, Member of the Order of Merit, Knight of the Order of Australia, Companion of the Queen's Service Order, Member of Her Majesty's Most Honourable Privy Council, Aide-de-Camp to Her Majesty)'이다.하느님의 은총으로 대브리튼과 북아일랜드의 연합 왕국과 다른 왕국과 영토의 국왕, 영연방의 수장, 신앙의 수호자이신 찰스 3세 폐하(His Majesty Charles the Third, by the Grace of God, of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and of His other Realms and Territories King, Head of the Commonwealth, Defender of the Faith)
영국에서의 칭호[10]
여기에 2021년 4월 9일, 부친 필립 공의 사망으로 인해 그의 생전 작위인 에든버러 공작, 메리오너스 백작, 그리니치 남작을 장자로서 물려받았다. 이 중 에든버러 공작위는 1999년에 어머니와 논의한 결과에 따라 즉위 후에 왕위와 합쳐 폐지했다가 에드워드 왕자에게 주는 식으로 부활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즉위 전까지 흔히 한국 언론에서는 찰스 왕세자라고 불렸다. 현재 주한영국대사관은 왕태자나 황태자가 아닌 왕세자로 호칭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번역보다는 한국인에게 익숙한 조선조의 작위에 대응시킨 번안에 가까우며 엄밀히 말하면 틀린 호칭으로 원래 동양에서 왕세자는 왕국 중에서도 제후국의 왕위 후계자가 받는 칭호이고, 왕국 중 자주국의 후계자가 받는 칭호는 왕태자다. 영국이 제후국이 아닌 이상 crown prince를 왕세자로 번역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다만 동아시아와 유럽의 왕실 작위 체계는 개념과 인식부터 권한의 크기까지 완전히 달라 이를 1:1 대응시키는 것은 어려운 관계로, 주한영국대사관의 공식 번역을 따라 '왕세자'로 호칭한다.
다이애나 스펜서와 결혼했을 때에는 주로 찰스 황태자라고 불렸다. 다만 황태자 역시 황제의 후계자를 이르는 것이고, '대영제국'은 통칭이었을 뿐 정식 국명은 아니었으며, 대영 제국의 군주를 '황제(여제)'로 부르게끔 해 준 인도 제국 역시 폐지되었기에 영국의 군주는 어디까지나 '(여)왕'이다. 따라서 그 후계자에 대한 호칭은 '왕태자'가 가장 적합하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검색해보면 대략 1991년도까지는 국내 신문기사 대부분이 황태자로 호칭했으나 1992년부터 갑자기 왕세자로 호칭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22년 4월 27일, 엘리자베스 2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지 30분 후에 찰스 3세가 새 군주의 호칭으로 결정됨이 공포되었다. # 왕세자 시절 훗날 왕으로서의 호칭으로 찰스를 선택할 것인지가 호사가들 사이의 유구한 이야깃거리였는데, 대부분 유럽 군주들은 자기 이름을 그대로 호칭으로 쓰는 경우가 일반적이지만 영국 역사에서 찰스 1세와 찰스 2세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는 국왕이 아니라는 점이 변수였다. 자코바이트들이 제임스 2세의 손자 찰스 에드워드를 찰스 3세로 참칭한 바 있어서 이를 피하고자 찰스를 왕명으로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예측에도 불구하고 찰스 3세로 정해졌다.
3. 재위 국가[편집]
일반적으로 영국 국왕이라고 부르지만 2022년 9월 8일 즉위한 이래 영국 이외에도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 왕국들의 국왕을 겸하고 있다. 찰스 3세가 현재 재위 중인 국가는 다음과 같다.
4. 생애[편집]
4.1. 탄생[편집]
당시 사회풍조상 남편은 아내가 출산할 때는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 필립 공 역시 찰스가 태어나던 순간에 현장에 없었고 대신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개인비서와 함께 스쿼시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왕자가 탄생했다는 시종의 보고를 듣자마자 산실로 달려가 아기를 안아본 후 ‘자두 푸딩같다.(He looks like a plum pudding)’[15] 며 갓 태어난 아들과 처음 대면한 소감을 말했다고. 그 후 마취에서 깨어난 아내 엘리자베스 공주에게 장미 꽃다발과 카네이션을 선물하고선 아들에게 밤새 자장가를 불러줬다고 한다.
아버지 필립 공도 그의 사촌누나이자 엘리자베스 2세의 막내숙모인 켄트 공작부인 마리나가 모친인 옐레나 여대공에게 보내는 편지에 “필립이 너무 좋아한다. 간호사가 우스울 정도로 아기에 대해 꽤나 전문적이다.”라고 썼을 정도로 첫아들에 대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아기는 너무 귀엽고, 우리는 아기가 무척 자랑스러워. 아기 치고는 특이한 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손가락이 다소 크지만 길어. 나나 필립의 손과는 전혀 달라. 그 손이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흥미로울 것 같아. 나는 내가 엄마가 됐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아
1948년, 엘리자베스 공주
4.2. 왕세자 시절[편집]
Given the robust good health of his mother Queen Elizabeth, chances are that it will be some years before Bonnie Prince Charlie becomes King.
어머니 엘리자베스 여왕의 왕성한 건강을 감안할 때, 찰스 왕세자가 왕위에 오르기엔 몇 년[* 이 기사가 나온 후로도 무려 44년이나 걸렸다.]은 걸릴 것 같습니다.
1978년 5월 15일, 찰스를 인터뷰했던 타임지 기사 중 출처
4.2.1. 어머니의 즉위[편집]
계승서열 1위의 왕세자가 된 찰스는 콘월 공작, 로스시 공작, 캐릭 백작, 렌프루 남작, 아일즈 영주 그리고 스코틀랜드 왕자이자 섭정 작위를 받았으며, 그당시 상류층 후계자들이 그랬듯 5세부터 8세 때까지 가정교사의 지도 아래 철저한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4.2.2. 사랑받지 못한 유년기[편집]
유일한 딸이라 필립 공이 금지옥엽으로 여겼던 앤 공주,[27] 엘리자베스 2세가 늦은 나이에 얻어 사랑을 받던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와는 달리 찰스는 항상 왕세자로서의 '의무'가 먼저였다.필립 공 : 네가 오늘 체력장을 다 못 끝내서 속상하다면… 아빠 걱정은 할 거 없어. 이런 경험이 네게는 아주 낯설 텐데 그래도 꽤 용감했고 투지도 보여줬어.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자 찰스가 겁을 먹는다)
필립 공 : 무서워하지 마. 네가 어떤 수치심을 느끼고 있을지 몰라도 내가 네 나이에 느낀 수치심이 더 커. 그때 내가 뭘 잘못했거든. 제일 좋아하던 누나에게. 체칠리에 누나인데, 누나도 비행을 무서워했어. 비행기에 탈 때는 자기가 죽을지도 모른다고 항상 검은 옷만 입었지.[24]
(중략)
필립 공 : 어쨌든 교장선생님과 학교가 날 다시 붙잡아줬고 강하게 해줬지. 고통과 고난은 좋은 경험이야, 찰스. 이때 깊이 파고들어. 극복할 줄 알아야 미래에 힘들지 않아.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대비해야 한다고.
(여전히 심하게 흔들리는 비행기에 겁을 먹는 찰스)
필립 공 : 괜찮아, 그냥 공기야![25]
네겐 무한한 잠재력이 있어. 더 강해져서 그걸 찾아내야 해.(겁을 먹을대로 먹은 찰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필립 공 : 그냥 공기라고!
(흔들림은 멈추지 않고 격양된 분위기에 결국 눈물을 보이는 찰스)
수행원 : (다급한 목소리로) 뒷자리로 모시겠습니다.
필립 공 : 나약하게 굴지마, (찰스의 헤드셋을 거칠게 벗기며) 그렇게 질질 짜지 말라고!
수행원 : 세자 저하, 괜찮습니다.
필립 공 : (격양된 목소리로) 가! 뒤로 가!
수행원 : 저하? 괜찮습니다.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뒷자리로 간 찰스와 그런 찰스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수행원,[26]
그리고 창밖만 노려보는 필립 공의 묘습이 교차된다)
더 크라운 시즌 2 9회 <왕자의 아버지> 中
아주 어렸을때에는 나름 귀여움 받으며 자랐지만 엘리자베스 2세가 왕위에 오른 뒤엔 원칙적이고 차가운 어머니, 무뚝뚝하고 직설적인 아버지에게 거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즉위 초, 장기 해외 순방을 자주 나가던 여왕 부부 때문에 몇개월동안 여동생 앤 공주와 단둘이 남겨지던건 예사였다. 하루 30분 정도 어머니와 만나는 것을 제외하면[28] 대부분의 시간을 유모와 함께 보냈고, 포옹이나 키스 역시 받아본 적 없다고 한다. 특히 터프하고 마초적인 성격의 군인출신 아버지 필립 공은 예민하고 섬세하던 찰스의 성격을 받아주기보다 못마땅해하며 항상 강하게 키우려 했기 때문에[29] 부자간의 사이는 좋지 못했다.
1955년, 영국 왕실은 찰스 왕세자가 학교에 다닐 것이라고 발표했다. 왕실이 현대에 뒤처지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일반 국민들을 이해해야한다는 필립공의 뜻이였던 것. 찰스는 학력을 보유한 최초의 왕위 계승자가 되었으며, 이듬해 11월부터 런던 켄징턴첼시 왕립구의 힐 하우스 스쿨에 재학하다 1958년에 아버지 필립 공의 모교이기도 하며, 300년 넘은 역사[30] 를 자랑하던 침 스쿨로 전학간다.
그러나 찰스는 전학을 가서도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향수병을 앓아 애착인형으로 테디베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침 스쿨을 졸업한 찰스는 왕실 거주지 중 하나였던 윈저 성과도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으며, 왕족과 귀족 출신 자제들만 다니던 이튼 스쿨을 뒤로하고 필립 공의 또다른 모교인 고든스턴에 입학하게 되는데, 이 또한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찰스를 장남으로서, 그리고 왕세자로서 강하게 키우고 싶어하던 필립 공의 뜻이였다. 전형적인 군인출신 남성으로 스파르타식을 고집하던 필립 공은 귀족학교였던 이튼 스쿨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지고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던 필립 공과는 다르게,[31] 영왕실 후계자라는 탄생 배경을 지녔던 찰스는 부족함 없이 자란 내성적인 소년이었다. 고든스턴에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던 필립 공은 아들 역시 모교에 입학시켜 동문으로서 같은 추억을 가지기를 원했으나,[32] 찰스는 계절 상관없이 아침마다 실시되는 구보와 냉수 목욕, 벽난로 없는 냉골 기숙사, 등정과 체력장, 학교 시설 짓기 등의 철저한 스파르타식 교육에 진저리를 쳤으며, 심한 따돌림과 괴롭힘까지 당해 지옥같은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동창들의 증언에 따르면 "찰스는 항상 또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해 외롭게 지냈고, 그곳을 우수한 성적으로 무사히 졸업한 게 대단할 정도"라고 했다.[33]
이러한 상황에서 찰스가 의지할 사람은 할머니 엘리자베스 왕대비와 아버지의 외삼촌 루이 마운트배튼 정도였다. 엘리자베스 왕대비는 첫 손주이자 큰딸이 낳은 장남인 찰스를 어릴 때부터 매우 귀여워했다.[34] 왕대비는 찰스의 섬세함을 높게 평가했고 음악과 예술 등의 문화에 관심을 갖도록 해주었다고 한다. 루이 마운트배튼은 어릴 때부터 가족들과 떨어져 살았던 필립 공에게는 거의 아버지나 다름 없던 덕분에 조카손자인 찰스와도 사이가 좋았다.[35] 그래서 찰스는 루이 마운트배튼 경이 IRA의 폭탄 테러로 갑작스럽게 사망하였을 때 몹시 비통해했다고 한다.
4.2.3. 청년시절[편집]
4.2.4. 결혼생활과 개인적 인품[편집]
자세한 내용은 찰스 3세/결혼생활과 개인적 인품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다이애나의 친정인 스펜서 가문은 가문의 역사만 놓고 보면 윈저 왕가보다 유서가 더 깊으며,[41] 스펜서 백작 가문의 선대가 무역업 등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덕분에 가문의 재산이 어마어마했다.[42]
영국 왕실은 1981년 2월 24일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의 약혼을 공식 발표했고, 5개월 후인 1981년 7월 29일, 전세계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세기의 결혼식'이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결혼 1년 만인 1982년에 장남이자 후계자인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 왕세손을 얻었고, 2년후인 1984년에 차남 헨리 찰스 앨버트 데이비드 왕자를 얻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마찬가지로 두 아들들을 금지옥엽으로 여겼다고 한다. "왕자들을 고든스타운 스쿨에 보내라"는 엘리자베스 2세와 필립 공의 뜻을 만류하고 상류층 자제들만 다니는 이튼 칼리지에 보냈을 정도로[43] , 본인과는 다른 어린시절을 보내게 했다.
윌리엄 왕세손이 아직 갓난아기였을 때 "아들을 해외순방에 데려가겠다"고 강경하게 주장하는 다이애나 비의 의견을 왕실 어른들과 시종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들어줬을 정도로, 아들들에 관해선 전부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하게 했다고 한다. 때문에 영국인들 사이에서도 유튜브의 윌리엄, 해리 형제의 어린시절 영상 댓글에 "자식들에겐 좋은 아버지였지만 정작 아내한테는 못살게 군 남편"이라는 평가가 많이 나온다.
4.2.5. 이혼 후[편집]
다이애나 스펜서 사후 불륜상대인 카밀라 파커 보울스와 재혼했는데, 당시 이에 대한 영국의 여론은 정말 좋지 않았다. 심지어 이 이혼 때문에 영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찰스 왕세자를 보는 시선이 좋지 않다. 본인들도 그 점을 인지하고 재혼 후에는 조용히 지내려고 노력했다. 당시 영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다이애나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기 때문에, 그 반대급부로 카밀라의 인기는 매우 낮다. 재혼 후 한 설문조사에서는 엘리자베스 2세 사후 왕위를 찰스 왕세자의 장남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 왕세손이 잇기를 바란다는 여론이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이러한 결과가 나오는 데에는 찰스 자신의 매력 없음과 함께 카밀라와의 재혼이 이유로 꼽힐 정도다. 윌리엄이 다이애나 스펜서의 아들이라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래도 2010년대 기준으로는 이미지를 상당 부분 회복했다. 주목할 부분은 국서 에든버러 공작인 아버지가 2017년 그의 96세 생일부로 왕실 공식 업무에서 은퇴하면서, 여왕의 의회 연설을 비롯한 제 행사에 여왕의 곁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왕정에서 상징성 있는 어머니의 후광 효과를 옆에서 받으며 평탄한 왕위 계승을 노리는 것으로 보인다.
찰스는 많은 자선사업을 관장했는데, 그 중 하나가 지구 온난화였다. 문제는 브렉시트 후 영국의 희망으로 떠오르는 미국이 지구 온난화를 부정하는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것이다. 찰스 왕세자는 평상시에도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생태계 보전에 큰 관심을 가져서, 트럼프 대통령이 정식으로 영국을 방문하면 "훈계"하지 않을까 트럼프 측에서 걱정했다고 한다. 때문에 외교적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찰스 왕세자 대신 윌리엄 왕세손이나 해리 왕자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출처1출처2 Business Insider에 의하면 찰스 왕세자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정식으로 맞이할 것이며, 무슬림 입국 거부와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한 뜻깊은 토론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찰스에 대한 여론이 좋아졌었다. 그러나 실제 트럼프의 2018년 영국 방문에서는 찰스 왕세자와 윌리엄 왕세손 모두가 만남을 거부해 트럼프는 여왕만 만나고 돌아왔다.
4.2.6. 즉위를 기다리며[편집]
21세기 들어 의학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올라가게 되자, 전세계적으로 군주제 국가들의 군주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너무 늦은 나이에 즉위하는 것을 막고자 적당한 시기에 은퇴, 양위하는 풍습이 생겨났다. 영국을 제외한 유럽 입헌군주국의 국왕들은 이를 통해 왕실의 이미지를 젊게 유지하고 국민들의 지지를 재확인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부탄 왕국은 아예 65세의 정년을 두고 퇴위해야 한다는 헌법을 넣었다.[45] 하지만 찰스 3세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만큼은 고령의 나이에도 전혀 은퇴의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고, 찰스는 칠순이 넘은 나이까지도 오랫동안 왕세자에 머물러야 했다. 하도 왕세자로 지낸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인터넷상에서 놀림거리가 되거나, 아예 어머니보다 먼저 죽어 왕위를 물려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예상까지도 나왔을 정도.
2012년에 즉위 60주년을 맞은 엘리자베스 2세가 찰스 왕세자에게 양위할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여왕이 "그런 일은 없다"라고 부인했다. 여왕이 공주시절부터 "짐은 퇴위하지 않고 끝까지 국왕으로서 의무를 다하겠다."고 선언했고,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가 불명예와 함께 퇴위한 영향으로 엘리자베스 2세는 생전 퇴위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여왕은 퇴위한 국왕이 온갖 비난과 욕을 다 듣는 것은 물론이고, 국왕이라는 임무와 무게를 짊어지게 된 사람들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며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낀 사람이다.
2013년 4월, 물 건너 옆 동네 네덜란드에서 베아트릭스 여왕이 재위 33년만에 자기 아들인 빌럼 알렉산더르에게 쿨하게 양위한다고 밝히자, 영국의 일부 언론들이 엘리자베스 2세의 양위 가능성을 점치는 기사를 내보냈다. 데일리 미러 지는 "여왕,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다"라는 제목을 단 기사 밑에 작은 글씨로 "왕세자 전하, 송구하오나 네덜란드 베아트릭스 여왕 폐하 이야기입니다."라고 염장을 질렀다.[원문]
4월 30일에 거행된 베아트릭스 여왕의 양위식에 참석했는데, 찰스 왕세자는 33년 전 율리아나 여왕의 양위로 새로운 여왕이 된 베아트릭스 공주의 즉위식에도 참석한 적이 있었다. 33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왕세자 신분으로. 그렇게 빌럼 알렉산더르는 네덜란드의 국왕이 되었다. 핵심은 베아트릭스 여왕은 1938년 1월 31일 생으로, 1926년 4월 21일생인 엘리자베스 2세보다 자그마치 12살씩이나 젊다는 점이다. 게다가 지지도가 낮은 찰스와 달리, 빌럼 알렉산더르는 뛰어난 능력과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에, 조강지처가 독재정권의 고위관료였던 친정아버지/장인어른 때문에 온갖 욕을 들어먹어도 이를 법을 동원해서까지 감싸 안아주는 천하의 애처가다[46] . 게다가 빌럼은 당시 46살이었다.
몇달 후인 2013년 7월에는 벨기에의 알베르 2세 벨기에 국왕이 아들 필리프에게 왕위를 물려줬다.
2013년 11월에 열리는 영연방 정상회의에 엘리자베스 2세가 불참하고 찰스와 카밀라 부부를 대신 보내기로 해 "왕위 승계를 위한 수순 밟기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7월 22일, 장남 윌리엄 왕세손의 아내 캐서린 미들턴 세손빈이 왕위 계승 서열 3위인 조지 왕자를 순산하면서 손자까지 봤다. 게다가 권한이 없느냐면 그것도 아니고 왕실 내 실권의 상당 부분은 그가 갖고 있어, 간판은 왕세자라도 실질적으로는 공동 왕으로 봐도 크게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2010년대부터는 엘리자베스 2세의 고령으로 인해 기존 국왕의 공무중 일부를 찰스 왕세자와 앤 공주 등 자녀들이 나누어서 수행했다. 거기에다 2017년 필립 공이 왕실 공무에서 은퇴하면서 기존 필립 공의 공무도 떠맡았다.
2014년 6월 스페인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아들 펠리페 6세에게 양위하면서 "내 아들이 찰스 왕세자처럼 왕위를 기다리다가 늙는 걸 원치 않았다"고 그 배경을 밝혔다. 후안 카를로스 1세는 네덜란드의 베아트릭스 전 여왕과 동갑으로 역시 엘리자베스 2세 여왕보다 12세 젊다. 영국 왕실보다 더 위태로운 상황인 스페인 왕실이 양위를 한 것은, 전 국왕인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인기가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015년에는 왕세자의 전기 <찰스, 왕의 심장>을 인용해, "왕세자가 즉위하면 여왕과는 다른 적극적인 왕권 행사를 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이 일어났다. # 왕이 된다면 국민의 삶에 '진정어린 개입'을 하는 군주로서 역할을 개조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나, GMO를 반대하는 등의 행보 때문. 2015년 5월 13일, 왕세자의 국정 개입 정황이 담긴 '흑거미 메모'가 10년 간의 소송 끝에 공개되어 왕실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물론 영국의 근왕파들은 "왕세자가 국정에 개입하는 게 어디가 나쁘냐"고 옹호했다. 이와 관련해 2018년 70세 생일 특집 다큐멘터리에서 BBC와 인터뷰를 한 왕세자가 '국왕이 된 후에는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국정 개입 논란을 의식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생전퇴위가 금지되어 있던 일본 황실에서조차도 만 82세인 아키히토 덴노가 고령을 이유로 2016년 8월 8일 만 56세의 장남 나루히토 황태자에게 양위할 뜻을 밝혔고, 그 후 아키히토 덴노에게 생전퇴위를 허용하는 특별법을 만드는 방식으로 마침내 2019년 5월 1일자로 차기 덴노로서 당시 만 59세였던 나루히토 황태자가 즉위하였다.[47] 이처럼 세계의 입헌군주제 국가들이 그동안 미뤄온 후계자 즉위를 강행하며, 비슷한 입장이던 찰스 왕세자만 홀로 기약 없는 왕위 계승을 기다리는 입장이 되었다.
2018년 4월 19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자신이 맡은 영연방 수장 자리를 찰스에게 물려 주고 싶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여왕이 공개추천 형식을 빌려 찰스 왕세자를 후임자로 못 박은 데는 그의 왕위 계승에 대한 안팎의 반대여론을 잠재우고, 차기 왕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보인다는 분석이다.#
어쩔 수 없는 게 엘리자베스 2세는 추축국에 맞선 제2차 세계 대전 참전자이자 대영제국의 마지막 국왕으로서 왕실의 비효율성에 대한 지적 등 부정적인 여론이[48] 증가하는 2020년대에도 왕실의 위신과 명분을 세울 수 있지만 찰스는 뒷세대이기에 처음부터 명분을 가질 수가 없었다. 여왕도 누구보다 이를 잘 인지하고 있어 연합왕국과 영연방 수장이라는 책임감으로 노구에도 왕위를 계속 지켜 왔던 것이다. 따라서 영국의 왕위 계승 문제는 북유럽이나 스페인, 베네룩스와 비교 될 수 없다.#
또한 옆 나라 국왕들도 인지도가 영국 국왕보다 한참 떨어져서 전세계에 잘 안 알려져서 그렇지 국왕 본인들이 재임 중에 자국에서 벌어진 사건 사고들이 워낙 많았다.[49] 다이애나 스펜서 사건이 워낙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서 말이 많았던 것일 뿐이다.
2019년 10월 일본 덴노 나루히토의 즉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이틀 일정으로 여왕을 대신해 일본을 방문했다. 찰스 왕세자는 29년 전인 1990년 11월에 열린 아키히토의 즉위식에도 왕세자 신분으로 참석한 바 있다.#
즉위하지 못하고 나이만 먹어가는 상황에 대해, 찰스 본인도 농담조로 조바심을 냈다. 2004년에는 "할아버지는 지금 내 나이에 돌아가셨다"고 지인들에게 말했다. 조지 6세는 폐암으로 인해 56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50] 게다가 18년이 지난 2022년 8월까지만 해도 여전히 왕세자였다. 이미 70을 넘긴 2019년 3월 5일에는 프린스 오브 웨일스 서임 50주년 기념식이 버킹엄 궁전에서 있었다.[51]# 사실 타임지가 낸 특집기사에 따르면 왕이 되는 것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는 게 왕세자의 심경이라고 한다. 그동안 주관해온 자선활동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한편 "찰스 왕세자가 남동생 앤드루 왕자와 갈등을 빚고 있다"는 기사가 나와, 호사가들은 왕자의 난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찰스는 일하지 않는 왕족에 대한 과도한 지원을 금지하는 왕실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방계 왕족은 물론 자신의 친동생들인 앤 엘리자베스 앨리스 루이즈 공주, 앤드루 앨버트 크리스티안 에드워드 왕자, 에드워드 안토니 리처드 루이 왕자와 그 일가에 대한 지원까지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여 당사자들이 반발한다는 것. 공교롭게도 2012년에 거행된 다이아몬드 주빌리 행사 마지막 순서인 버킹엄 궁전 발코니에서의 인사 때 앤 공주,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소문을 부채질했다.[52]
2018년 4월 17일,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가 "찰스 왕세자의 영연방 수장 계승을 지지한다."라고 밝혔으며 19일에는 엘리자베스 2세가 버킹엄 궁전에서 열린 영연방 정상회의에서 찰스 왕세자를 후임 영연방 수장으로 공식 추천했다. 일단 이를 기점으로 엘리자베스 2세가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하건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것 자체는 반대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나이 때문에 어머니보다 먼저 가지 않는 한 왕위에 언젠가는 오를 듯 하다. 하지만 본인도 워낙 고령인지라 왕위를 물려 받는다고 해도 재위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듯 하다. 일단 부모인 엘리자베스 여왕과 필립 공 모두 장수한 걸 보아 찰스 본인도 장수 유전자를 타고났고, 앞으로 자신의 건강 관리만 잘 한다면 부모님만큼 오래 살 가능성도 크기에 왕위에는 오를 확률이 충분해 보인다.[53]
찰스 왕세자의 개인적인 평판과는 별개로 군주로서 요구되는 능력은 비교적 갖춘 편으로 평가된다. 내정뿐만 아니라 외교, 군사 분야에 대하여 지식이 풍부하고, 국내외의 정세 판단에 관한 식견, 통찰력도 상당한 수준. 한 보기로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찰스 왕세자는 "홍콩을 중국에게 반환해서는 안된다. 중국에 홍콩을 반환했다간 홍콩은 훗날 큰 불안정에 휩싸일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2019년 홍콩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만 통찰력과 별개로 무책임한 발언인 게, 중국정부의 대응은 차치하더라도 홍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역인 신계는 조차기간이 끝났고 대영제국이 무력으로 점령한 식민지이기 때문에 청의 국체를 승계한 중국이나 대만에 반환해야만 하는데, 반환을 거부하거나 대만에 반환했다가 중국이 홍콩을 봉쇄하면 자립이 불가능한 홍콩은 싱가포르가 따위로 보일 정도로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2020년 3월 25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 다만 가벼운 증상 외에는 좋은 건강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스코틀랜드의 밸모럴 성[54] 에서 아내 카밀라와 자가격리 되어 있다고 한다. 카밀라는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 후 자가격리에서 해제되었다.# 하지만 코로나 19 후유증으로 인해 오감 중 후각과 미각이 상실되었다는 보도가 있다. # 11개월 후에는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다고 한다.# 그러나 2년 뒤 22년 2월에 재감염되었다.#
그 후 콘월의 새 영지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세세한 규정으로 주변 주민들의 불만이 있다고 한다.#
2021년 4월에 아버지 필립 공의 사망 후 엘리자베스 2세의 퇴위설이 또다시 돌았지만[55] 왕실측은 곧바로 부인했다. 다만 2022년에 열릴 예정인 엘리자베스 2세의 재위 70주년 플래티넘 주빌리를 전후로, 공식적으로 섭정을 맡기거나 국왕의 일부 업무를 양도할 가능성은 있다.[56] 지금도 총리 접견이나 의회 개회선언 등 국왕의 가장 중요한 공무를 제외하고는 해외순방[57] 등 외교업무, 행사참석 등 대부분의 대외적인 공무는 찰스와 여동생 앤 공주가 각각 나누어서 담당하고 있다. 특히 2017년 필립 공이 왕실 공무에서 은퇴한 후에는 필립 공이 수행하던 공무들을 찰스를 비롯한 자녀들이 도맡아 수행하고 있는중이다. 예를 들어 2021년 필립 공 사망 후에 열린 의회 개회식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찰스 왕세자 부부가 함께 참석했으며, 2021년 영국 콘월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도 찰스 왕세자가 여왕과 함께 참여했다. 현재 사실상 공동 왕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영국에서도 찰스 왕세자가 팔순 전에는 그래도 즉위를 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필립 공의 사망 후 여왕의 심신이 쇠약해졌지만, 그래도 2027년 75주년까지 왕좌를 지키려 노력하지 않겠냐는 예측과 맞물리는 것이고 이를 넘기면 여왕의 101세의 고령이 되는데 100세~110세 경에도 대외활동을 이어가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58][59]
2022년 들어서는 엘리자베스 2세의 대외 활동이 대폭 줄어들면서 찰스 왕세자가 여왕의 역할을 대행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5월 10일에는 의회 개회식에 불참하게된 여왕을 대리해 여왕 연설(Queen's Speech)을 낭독했다. 이는 찰스가 왕세자가 된 후 처음 있는 일이다. 데일리 메일은 찰스 왕세자가 감정이 솟구치는 듯 여왕 연설을 읽기 전에 옆에 놓인 왕관[60] 을 쳐다봤다고 전했다. 왕위가 점진적으로 찰스 왕세자에게 넘어간 역사적인 순간이라는 평가가 뒤따랐으며, 향후 여왕이 왕세자를 섭정으로 임명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왔다. #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해 여왕이 사망하면서 섭정은 거치지 않았다.
아버지 필립 마운트배튼 공의 장례식에서 아버지의 관을 따라 동생들과 함께 장례 행렬 선두에 서서 행진했는데, 이때 얼굴이 상기되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포착됐다. 비록 찰스 왕세자는 생전에 아버지와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필립 공이 임종하기 며칠 전부터 병상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하며 모든 감정들을 훌훌 털어버렸다고 한다. 이 점은 선조인 켄트 공작부인 빅토리아와 빅토리아 여왕 모녀와 비슷하다.
4.3. 국왕[편집]
4.3.1. 재위 기간[편집]
자세한 내용은 찰스 3세/재위 기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3.1.1. 즉위[편집]
자세한 내용은 찰스 3세/즉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어서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를 애도하는 찰스 본인의 성명이 발표되었고, 곧바로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앞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를 애도하고, 찰스 3세 폐하에게 왕위가 계승되었다고 발표했다. 오후 7시 30분경 버킹엄궁도 새 국왕의 왕호가 찰스 3세로 확정되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역대 영국 국왕 중, 최고령의 나이에 즉위한 국왕이 되었다.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의 사망에 대한 찰스 3세의 성명문은 다음과 같다. #
4.3.1.2. 대관식[편집]
4.3.2. 영연방 공화주의 운동[편집]
자세한 내용은 군주국의 공화주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찰스 3세는 왕위를 계승하기 전에 다이애나 비로 인한 논란으로 인하여 왕위 계승에 적절한 인물인지 논란이 있어 왔다. 이로 인해 영국 국왕 지위와는 별개로 영연방 왕국들의 군주(Monarch of Commonwealth Realms) 자리와 영연방의 수장 자리(Head of Commonwealth)를 무사히 지탱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많이 제기되어 왔었다.[61]
영연방 왕국 각국 군주 자리의 상황을 살펴보면, 다이애나 비 스캔들과 그 후 찰스 왕세자의 행보가 영국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닌 호주와 뉴질랜드, 캐나다 등에서도 큰 반발을 불렀었기 때문에[62] 영국 뿐만 아니라 이들 국가에서도 왕정 폐지여론이 일었을 정도다. 특히 호주에서는 고프 휘틀럼 총리를 총독이 해임하는 헌정 위기가 겹치면서 공화제 전환의 불길이 일었는데, 다이애나 비 스캔들은 이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다. 이로 인해 현재까지도 호주에서는 특히 중년 층에서 왕정에 대한 선호도가 낮다.
각 영연방 왕국들의 공화주의자들은 지지도가 높은 엘리자베스 2세가 사망하고 지지도 낮은 찰스 3세가 즉위한 틈을 타 공화국 전환에 본격적으로 박차를 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점 또한 왕실의 불안 요소 중 하나이다. 엘리자베스 2세 재위 당시에는 찰스 왕세자보다 캐나다에서는 윌리엄 왕세손이,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해리 왕자가 더 인기가 많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찰스에 대한 인기는 한 때 크게 떨어졌었다. 영국 본국에서는 시간이 흐르며 찰스 3세에 대한 감정이 많이 누그러져 최소 왕위 승계에 반대하지 않는 게 주류가 됐지만, 다른 국가들에서는 반대 여론이 줄어들었어도 여전히 찬성 여론보다는 높다는게 문제다.[63]
찰스 3세는 즉위와 동시에 영연방의 수장 자리도 승계했지만 이 직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브렉시트 후 영연방을 좀 더 현대적 기구로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불안 요소 중 하나다. 영연방 왕국들이 찰스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거나, 혹은 줄줄이 왕정을 폐지하면 찰스 3세의 지위도 흔들릴 수 있다. 영연방 수장직은 국왕과 달리 세습직이라고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영연방 국가들끼리 합의만 하면 다른 사람에게 수장직을 주는 것도 가능하다. 이 때문에 엘리자베스 2세는 자신의 사후 찰스가 영연방의 수장 자리를 승계할 수 있도록 호주가 지지해 달라는 로비를 2013년 영연방 정상회담 당시 호주 총리에게 했다고 한다. 당시 호주 총리였던 줄리아 길라드가 2016년 언급한 내용이다. 특히 카리브 국가들을 중심으로 영연방 수장 직 승계에 대한 회의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왕실폐지론이 거론되는 국가들도 엘리자베스 2세가 꽤나 급작스럽게 사망하였기 때문에 여왕 사후의 로드맵이나 영연방 왕국 체제의 지속 여부에 대한 여론 규합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여왕 사후 추모 분위기[64] 가 일고 찰스 3세의 왕위가 안정화되면서 신임 국왕에 대한 반감이 줄며 왕실 폐지의 시기와 방법을 두고 눈치 싸움에 실패해 어쩔 수 없이 군주제 지속을 받아들이게 될지, 아니면 영연방 왕국 체제에 대한 반발 여론이 장례 절차 후 본격적으로 쏟아져 불가역적인 변화로 이어질지 아직까지는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외교적으로도 절차가 복잡한데다 국가 간 대민 감정을 제대로 자극하는 극히 민감한 이슈로 번질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일단은 각국이 신중하게 입장을 표명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은 영연방 왕국 국가들 중에서도 카리브 공동체에 속하는 국가들이 공화국 전환에 대한 열망이 민관 공통으로 제일 강하다. 2021년에는 이미 바베이도스가 입법 절차를 거쳐(국민투표는 거치지 않았다) 공화국으로 국체를 변경한 바 있다. 이외에는 호주가 정부나 민간 여론 모두 공화제 전환에 대체로 우호적이지만, 호주는 군주제 지지 여론도 분명히 여론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데다가 1999년 공화정에 대한 지지가 여론조사에서 10% 이상 꾸준히 앞선다는 점만 믿고 국민투표 카드를 던졌다가 역으로 부결된 적이 있기 때문에[65] 카리브 국가들보다는 느린 행보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 우선 2025년까지로 예정된 현 임기 중에는 국체 변경을 시도하지 않겠다고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가 밝혔다.
- 가까운 시일 내 공화국 헌법 개정 및 국민투표가 확실시 되는 국가: [[자메이카|{{{#!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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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간의 군주제 지지 여론이 상당하지만, 정부에서는 공화국 헌법 개정이 논의된 국가: [[뉴질랜드|{{{#!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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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 군주제에 대한 지지가 변동없이 유지되고 있는 국가: [[투발루|{{{#!wiki style="display: none; display: in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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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주제에 대한 지지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 국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최근 영국과 급격히 보조를 맞추고 있는 캐나다와 공화국 정서가 상당한[71] 호주 그리고 호주와는 다른 배경과 인식을 지니고 있는 뉴질랜드[72] 의 행보가 엇갈릴 가능성도 낮지 않다. 즉, 찰스의 왕위계승 문제는 영연방 내부의 외교적 사안이라고 볼 수 있다.
일단 여론 상으로 뉴질랜드 국민은 군주제에 대한 높은 선호도를 보여주지만, 이와 대조적으로 호주 국민들은 군주제에 비해 공화제에 대한 지지가 꾸준히 높게 나타나고 있다. 다만 엘리자베스 2세 사망 직후의 호주 여론조사에서는 군주제 지지 6 : 공화제 지지 4로 조사되었다.# 공화주의자인 현직 앤서니 알바니스 총리는 이미 헌법 개정을 추진하기 위한 장관을 임명한 바 있다. 2025년 총선에 승리한다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국체 변경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캐나다에서는 2010년대부터의 여론조사들에서 공화국 지지 여론이 군주제 유지론과 비등한 수준으로 나오지만, 공화국 전환 주장의 열기는 상당히 떨어진다. 무관심층의 비중도 높은 편. 일단 저스틴 트뤼도 총리는 왕당파에 가까우며, 본인의 임기 중에는 공화정 논의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공화제 전환에 대한 분위기가 가장 고조되어 있는 카리브 공동체 지역의 앤티가 바부다가 3년 내 공화국 전환에 대한 국민 투표를 하겠다고 가장 먼저 밝혔다. 다만 이 나라 헌법상 국민투표를 통해 국체를 변경하려면 유권자의 단순다수가 아닌 2/3의 찬성이 필요하여 현실성은 그리 높지 않아보인다. 일단 앤티가 바부다의 개스턴 브라운 총리는 9월 11일 찰스 3세를 차기 국왕으로 인정하는 문서에 공식 서명했다.#
한편, 찰스 3세는 다른 영연방 왕국들의 공화정 전환 움직임에 직접 반대 의견을 밝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찰스 3세의 한 친구는 "찰스 3세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을 국가원수로 모신다는 것이 조금은 우스꽝스럽다는 견해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일부 영연방국가의 공화국화 움직임이 가시화하더라도 그가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논란에 뛰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찰스 3세 본인도 왕이 되기 전 연설을 통해 "왕국이든, 공화국이든 정치체제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우리가 현재 공유하고 있는 가치가 중요할 뿐이다."라며 영연방 왕국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내비친 적이 있다. 따라서, 영연방 왕국 유지에 적극적이던 전임 엘리자베스 2세와는 얼마든지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다.
5. 가족 관계[편집]
5.1. 조상[편집]
5.2. 자녀[편집]
6. 대중매체에서[편집]
다이애나 스펜서가 등장하는 영화, TV 드라마 등에서는 당연히 나온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의 대다수는 다이애나에 동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그렇다 보니 찰스 왕세자는 대부분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온다.
엘리자베스 2세의 전기를 그린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 시즌 3에서 본격적으로 청년기의 찰스가 등장하면서 재조명받고 있다. 특히 불행했던 어린 시절과 순탄치 않았던 부모님과의 관계[79] 가 묘사되면서 동정과 연민을 받고 있다. 시즌 1부터 시즌 3까지는 암울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과 여자 문제 등으로 큰할아버지인 에드워드 8세의 처지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신이 사랑한 카밀라와 강제로 헤어져야만 하는 현실에 대해 슬퍼한다.[80] 하지만 시즌 4에서 본격적으로 다이애나 왕세자비 스토리라인이 등장하면서 악역으로 변모했다. 정확히는 왕실의 일원 중 유일하게 자신을 아껴준 작은할아버지 루이 마운트배튼 백작이 IRA의 테러로 사망하기 직전에 보낸 편지에 쓰인 권고에 따라 과거사가 깨끗하고 정숙한 여성을 왕세자비로 몰색하고, 여기에 다이애나가 낙점된 것이다. 그 후 다이애나를 꼭두각시로 이용하며 카밀라와의 불륜을 저지르고, 심지어는 자신보다 다이애나의 인기가 높아지자 이를 시기하는 모습으로 나온다.[81] 영국 배우 조시 오코너가 연기했다.
시즌 5에서는 장년기가 된 모습으로 등장하며 도미닉 웨스트가 연기한다. 다이애나와의 불화가 여전하여 별거-이혼의 단계를 밟는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여전히 카밀라와의 불륜을 저지르는 부정적인 모습과 늙은 여왕에 대한 염증을 느끼는 여러 여론과 당대 분위기를 반영하여 왕실의 변화를 추구하는 보다 입체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를테면 다이애나의 폭로 전까진 새로운 시대(냉전이 끝난 90년대)에 걸맞는 젊은 새 국왕이 즉위해야 한다는 여론 때문에 존 메이저 총리에게 은근히 자신이 여왕에게 양위 받는 것을 희망하는 의욕있는 모습[82] 을 보이고, 보다 대중에 친화적이고 현대적인 체제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는 동시에, 다이애나에 대해선 여전히 냉대하고 카밀라와의 밀회를 지속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더불어 카밀라를 불륜녀로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찰스에게 끊임없이 조언과 격려를 해주는 지성과 사려깊음을 갖추어 둘이 매우 잘맞는 단짝으로 묘사된다. 카밀라가 다이애나보다 외모상의 매력(미모, 나이 등)이 덜했음에도 줄곧 찰스의 사랑을 받았던 것도 그녀의 교양, 학식, 사근사근함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일반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들이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려고 하자 세습 군주가 나서서 이를 저지하려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85] 게다가 이름이 같은 찰스 1세가 권리청원을 통과한 의회를 해산했던 것과 정반대의 상황이다. 당연히 이런 짓을 하면 정치비개입을 통해 유지되어 왔던 영국의 입헌군주제가 흔들릴 것이므로 작품 속 찰스 3세는 작게 보면 본인의 왕위, 크게 보면 왕실을 걸고 해산을 강행한 것이다.[86]
찰스 왕세자(극중에서는 찰스 3세 국왕)[87] 를 포함해 영국 왕실의 실존 인물들도 주요 배역으로 등장한다. 극중에서 왕세자가 된 윌리엄 왕자는 부왕의 의회 해산 선언 직후에 의회, 부왕을 중재하려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동생인 해리 왕자는 서민 출신의 흑인 여성, 그것도 공화주의자와 교제한다는 설정이다. 그로부터 1년 후 혼혈인 메건 마클과 결혼했으니 반은 들어맞은 셈이다. 게다가 극중에는 이미 고인이 된 다이애나의 유령이 찰스와 대화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나온 특징을 반영한 것이다.
미국 대체역사 드라마 포 올 맨카인드에서는 1983년에 카밀라와 결혼하여 영국 왕실에 분란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2021년 영화 스펜서에서는 배우 잭 파딩이 찰스를 연기했다.
7. 기타[편집]
- 영국에서는 군주의 이름을 따서 시대명을 칭하는 관습이 있는데 예를 들어 엘리자베스 1세의 재위기간은 엘리자베스 시대(Elizabethan era), 빅토리아 여왕의 재위기간은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 찰스 1세의 재위기간은 찰스 시대(Caroline era), 찰스 2세의 재위기간은 철자를 약간 달리해서 Carolean era라고 하는 식이다. 이에 맞추어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는 찰스 3세 즉위 직후 의회 연설과 유엔 총회 연설에서 "영국이 새로운 찰스 시대(New Carolean age)를 맞이했다"라고 발언했다.(의회 연설[원문1] 유엔 총회 연설[원문2] ) 그 외에도 여러 영미권 언론들도 기사에서 찰스 3세의 즉위에 대해 '찰스 시대(Carolean age/Carolean era)가 열렸다' 혹은 '찰스 시대가 돌아왔다'고 표현했다.[참조]
- 스포츠를 매우 좋아해서 어린 시절부터 1992년까지 폴로를 했다. 2005년까지 공무 포함 비공식적으로 폴로를 계속했고, 영국에서 동물사냥이 금지될 때까지 여우 사냥도 많이 했다.
- 식물도 매우 좋아한다. 자신이 직접 정원을 설계하고 만들어서 상을 수상한 적도 있다. 그러다가 1986년 한 인터뷰에서 "나는 내가 만나는 식물과 대화를 나눈다."라고 했다가 미친 것 아니냐며 언론에서 엄청난 조롱을 받았다.[88]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에는 큐 왕립 식물원의 새로운 후원자가 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도 나무를 직접 심고 있는데 다 심고 나면 마치 악수를 하는 것처럼 줄기나 가지를 잡고 흔들어 준다고 한다.
- 엘리자베스 2세에게 21살 생일 선물로 받은 애스턴 마틴 차량을 50년 넘게 타고 다니고 있다. 정확한 차종은 애스턴 마틴 DB6 컨버터블 모델. 2008년에 바이오에탄올 연료로 움직일 수 있도록 차량을 개조했는데[89] , 영국산 화이트 와인과 치즈 제조공정에서 나온 유청을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운전을 할 때마다 차에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한다. #
- 이러한 환경 친화적인 행동은 국왕이 된 후에도 이어지고 있는데, 왕이 된 후 모든 왕실 거주지의 요리에서 푸아그라를 금지시켰으며,# 왕이 된 후 비건 요리사를 채용하는 공고가 올라온 바 있다.#
- 웰시 코기를 좋아했던 엘리자베스 2세처럼 잭 러셀 테리어를 매우 좋아한다. 2017년 초에 입양한 블루벨과 베스라는 이름의 암컷을 키우고 있으며, 두 마리 모두 유기견 출신이다. 특히 블루벨은 숲에서 피부병으로 인해 다 죽어가는 상태로 발견되었다가 구조된 후 극적으로 회복했다고 한다. 유기견이 로열 펫이 된 것은 역사상 최초이다. 블루벨과 베스 전에는 푸(pooh)라는 이름의 잭 러셀을 키운 적이 있는데, 스코틀랜드의 밸모럴 성 근처에서 줄도 안 매고 산책시키던 중에 숲속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쏜살같이 달려가는 바람에 실종되었다. 이때 왕세자가 직접 개를 찾는 광고를 신문에 올려 화제가 되었는데, 결국 찾지 못했다고 한다.
- 1980년에 '로크나가르의 노인(The Old Man of Lochnagar)'라는 제목의 아동 도서를 출간해 작가로 데뷔한 적이 있다. 찰스 3세가 남동생 앤드루 왕자와 에드워드 왕자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출판한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평소 관심사인 자연과 환경에 대한 책을 저술했다.
- 키는 178cm로 전 아내 다이애나와 키가 같으며, 191cm인 장남 윌리엄, 186cm인 차남 해리, 183cm인 아버지 필립 공, 막내동생인 에드워드 왕자보다는 작다. 아들들인 윌리엄과 해리 모두 어머니 다이애나를 닮아 장신이다. 사실 찰스도 딱 현재 영국인 남성의 평균 키로[91] 키가 작은 건 아니다.
- 2012년 5월 11일에는 BBC 뉴스의 일기예보에 출연해서 눈길을 끌었다.
- 대체의학을 지지한 흑역사가 있다. 2004년 항암치료의 일환으로 커피를 이용한 관장 비법을 제안해 영국 의학계가 항의한 일이 있다.[92] 당연히 따라해서는 안되는 짓인데, 신체에서 가장 민감한 부위인 항문에 커피를 부었다가 대장에 화상을 입거나 천공(구멍)이 생기면 노폐물이 빠져나가는 대장의 특성상 세균에 감염되어 패혈증으로 죽을 수도 있다.
- 후안 카를로스 1세 전 스페인 국왕의 왕비 소피아, 그리스 왕국의 마지막 국왕 콘스탄티노스 2세와 6촌간이다.(아버지들끼리 친사촌간) 또한 소피아와 콘스탄티노스의 고종사촌인 루마니아 왕국의 마지막 국왕 미하이 1세와도 6촌이다.
- 영국 해외 성서공회가 발행했던 킹 제임스 성경 400주년 기념판 성경책 서문을 썼다.
- 잘 안 알려진 사실인데 1994년에 호주에서 맥쿼리 대학교의 한국계 학부생 ‘데이비드 강’에 의해 암살을 당할 뻔 했다. 당시 영상 암살 미수범은 공포탄 내지 신호탄을 사용하였는데 아무리 실탄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상당히 위험했던 순간이었다. 이 한국계 학생은 현장에서 즉시 체포되었고 곧 재판까지 갔지만 살상 무기를 쓴게 아니라는 점과 반성하고 있다는 점, 정신병력 등으로 감형받고 사회 봉사만 하는 걸로 판결이 됐다고 한다. 그렇게 잊혀지다가 시드니 공과대학교와 시드니 대학교 졸업 후 2006년, 그는 변호사가 되었다. #
- 2023년 2월 23일, 잉글랜드 워릭셔주에 있는 한 주택의 다락방에서 찰스 3세가 어린시절 외할머니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에게 쓴 편지가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다. 편지는 찰스 3세가 여섯 살이던 1955년 3월 15일에 작성된 것으로, 편지지에 버킹엄 궁전의 로고가 새겨져 있어 궁전에서 쓴 편지임을 알 수 있다. 편지에는 "할머니께.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아파요. 빨리 나으시기를 바래요. 사랑을 담아, 찰스(Dear Granny, I am sorry that you are ill. I hope you will be better soon. and on the other. Lots of love from Charles'.)"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편지는 여왕의 호위부대에서 근무했던 롤랜드 스톡데일이 수집한 것이었는데, 오랫동안 다락방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처박혀 있다가 손자가 우연히 발견했다고 한다. 스톡데일은 1980년대에 이미 사망해 어떠한 경위로 편지를 갖고 있게 되었는지는 알수가 없다고 한다. 이외에도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의 시종이 스톡데일 부부에게 보낸 편지와 왕실 만찬의 메뉴판, 밸모럴 성 댄스파티 초대장,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의 서명이 담긴 쪽지, 1955년 조지 6세 추도식 초대장, 1956년 엘리자베스 2세의 성탄절 연설 사본이 함께 발견되었다고 한다. # 이중에서 찰스 3세가 어린시절에 쓴 편지의 가치는 2,000~3,000 파운드로 책정되었다고 한다.
7.1. 에드워드 7세와의 공통점[편집]
재밌게도 외고조할아버지인 에드워드 7세와의 공통점이 꽤 많다.
- 둘 다 어머니가 여왕이다.
- 둘 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독일인 혈통이 섞여있다.
- 둘 다 어머니가 워낙 오랜 기간 영국 국왕으로 재위했기에 오랜 기간 웨일스 공으로 재위했다.
- 둘 다 왕세자 시절에 손주들을 보았다.
- 둘 다 아버지보다 키가 작다. 에드워드 7세의 키는 173cm, 찰스 3세의 키는 178cm이고, 에드워드 7세의 아버지인 앨버트 공의 키는 180cm, 찰스 3세의 아버지인 필립 공의 키는 183cm로 둘 다 아들들보다 키가 크다.
- 둘 다 고령의 나이에 즉위했다.
이외에도 사생활과 관련한 부분은 비판받지만, 국왕으로서의 능력은 뛰어나다고 평가 받고있는 점 역시 에드워드 7세와 비슷하다.
8. 둘러보기[편집]
(sorry, Prince Charles, it's Queen Beatrix of Netherlands.)"[46] 사실 막시마 소레기에타 왕비의 아버지인 호르헤 소레기에타는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차마 입에도 담기 꺼릴 정도로 끔찍한 아르헨티나 독재정권의 행각에 심각하게 연루된 인물이라 결혼 당시부터 네덜란드 의회의 강경한 반대에 부딪혔고, 장인과 군사정권의 연관성을 무리하게 부정하거나 법적 조치 및 입헌군주제의 권력을 동원해서까지 비판적인 의견의 제기를 틀어막으려 드는 빌럼 알렉산데르의 행태 역시 상당한 비판을 받아 그의 정치적 입장에도 손상을 입혔을 정도였으니 전적으로 긍정적으로 볼 면모라 할 수는 없다. 다만 비교 대상이 찰스 3세(및 그가 다이애나 비를 대한 태도)가 되면 "빌럼 알렉산데르는 최소한 남편으로써 자기 책임은 다했다. 그런데 찰스는 그러고도 인간이냐?"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것.[47] 이는 찰스가 왕세자가 된 후 2번째로 목격한 일본 황태자의 즉위다. 첫 번째는 1990년 아키히토의 즉위다.[48]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으로 연합왕국이 흔들리고, 독립한 지 한참이고 우리나라에 머물지도 않는 왕을 왜 원수로 받드냐며 영연방 구성국에서 부정적인 여론이 증가했다.[49] 벨기에의 알베르 2세는 사생아 문제로 도망간 것에 가깝고, 네덜란드의 베아트릭스 여왕은 즉위하자마자 대관식에 쓰일 왕궁을 개축하겠다고 세금을 퍼먹는 바람에 난리가 났었다. 영국의 버킹엄 궁전은 누수가 심한데도 120년째 제대로 수리를 못하고 있는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게다가 베아트릭스 여왕은 재위 말년에 참석한 행사에서 자동차 테러가 일어나 그로 인해 사망자까지 발생하면서 한동안 쇼크 상태로 지냈던 적도 있었다.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 1세는 말년에 코끼리 사냥을 한 게 딱 걸려서 도망가듯이 양위했고, 그 후 탈세 혐의까지 드러나 사실상 해외로 도피했다가 미신고 세금을 납부하고 2년만에 겨우 스페인에 돌아갔다.[50] 폐암의 원인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흡연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스트레스의 이유는 조지 6세 문서 참고.[51] 프린스 오브 웨일스 칭호를 받은 것은 1958년이었지만, 1969년에 공식적으로 서임되었다.[52] 다만 이는 훗날 찰스 3세가 자신이 실행할 왕실 개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으로 알려졌다.[53] 수명은 유전의 영향을 받는다. 이론적으로 후천적인 요소(질병, 스트레스, 영양 섭취 등)가 동일하면 부모가 장수한 쪽이 오래 산다. 찰스의 부모인 필립 공과 엘리자베스 여왕이 각각 99세와 96세로 장수를 했기 때문에 찰스도 큰 문제가 없다면 오래 살 것으로 보인다.[54] 영국 왕실의 여름 별장.[55] 애초에 이 퇴위설의 근거가 엘리자베스 2세의 정신적 버팀목이던 필립 공이 사망하면서, 여왕이 정신적으로 힘들어할 것이라는 신빙성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 엘리자베스 2세가 지금껏 남편만 바라보며 재위한 것도 아니기에 왕실 측에서 곧바로 부인한 데다가, 필립 공의 장례식이 끝난지 며칠 후 건강하게 공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퇴위설은 누그러든 상태이다. 하지만 엘리자베스 2세의 나이가 나이인지라 힘겨워보이는 건 사실이다.[56] 국왕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인 문화사업을 찰스 왕세자에게 넘길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57] 엘리자베스 2세가 아무리 건강해도 나이가 나이이기 때문에 엄청난 스케줄을 장기간에 걸쳐서 소화해야 하는 해외순방은 아무래도 무리일 수밖에 없다.[58] 엘리자베스 2세가 사망하면 자메이카, 바하마등지의 영연방 왕국 탈퇴는 거의 확실시되고 있고, 이는 연쇄적인 타 왕국의 공화국 전환을 부추길 개연성이 높다. 오세아니아와 카리브의 소앤틸리스의 동카리브 연안의 소국을 제외하고 확실히 영연방 왕국에 잔존하리라 보장할 수 있는 국가가 거의 남질 않게 된다. 그나마 캐나다가 주요국 가운데서는 공화국 논의에 소극적이다. 이러한 전반의 문제는 영국 외교와도 직결된 문제이기에 단순히 왕가의 즉위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이다.[59] 파푸아뉴기니는 그 중 유일하게 군주제 지지 여론이 더욱 강해지는 국가다. 영국도 여왕과 이미지가 겹치는 앤 공주를 파푸아뉴기니에 파견하는 등 각별히 신경쓰고 있다.[60] 원래는 왕관을 쓰고 여왕 연설을 낭독하는 것이지만, 찰스 왕세자는 즉위한 상태가 아니니 당연히 왕관을 착용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옆에 왕관을 놓은 상태에서 연설을 낭독한 것이다.[61] 역설적으로 이는 엘리자베스 2세가 70년이라는 세월을 굳건히 재위했던 이유이다. 본인이 에드워드 8세로 인한 왕정 위기를 경험한 것이 가장 큰 장기 재위의 이유겠지만, 그 외 본인의 사건사고가 타 국가 국왕들에 비해 훨씬 적었을 뿐만 아니라, 후계자가 믿음직스럽지 못했다는 점도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62] 이 세 나라에서도 찰스와 다이애나가 신혼여행을 왔을 때 몇만명이 몰렸을 정도로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인기가 상당했기 때문에 찰스에 대한 반감은 다이애나 비 사망 당시 영국 못지 않게 컸다.[63] 물론 전부 엘리자베스 2세 사망 전의 여론으로, 정확한 여론은 찰스 3세의 재위가 안정된 후에야 파악이 가능할 것이다.[64] 강도와 어떤 내용으로 복기될 것인지도 큰 변수다.[65] 여론조사와 달리 실제 국민 투표에서는 공화제 전환 찬성 45%, 반대 55%를 기록한 바 있다.[66] 애초에 찰스 3세를 국가 원수로 신임하기 위해서는 헌법 상 국민 투표가 필요하다. 이때, 공화국 전환에 대한 투표와 동시에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엘리자베스 2세 사망 전이지만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에서는 56%가 공화정 전환을 추진하는 데 동의한 바 있다.[67] 현직 총리가 국가 원수로 찰스 3세를 세움과 동시에 3년 이내에 공화국 전환을 공식 추진하겠다고 발표하였다.[68] 일단 최소 2025년까지는 현행 체제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69] 現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군주정 지지자에 가깝다.[70] 여론조사에서 50%가 군주제 지지를 가졌다.# [71] 다만, 호주는 1980년대부터 항상 공화제 지지가 군주제에 비해 높았으며 1990년대가 전성기였고, 오히려 2022년의 여론은 1999년 국민 투표 후 군주제에 대한 지지도가 제일 높은 상태라는 분석도 있다.[72] 호주와는 다르게 공화정 논의에 대한 필요성을 국민들이 크게 느끼지는 못하고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근시일 내의 공화국 전환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가 강하지만, 정작 추진력이나 열기는 호주에 비해 매우 떨어진다.[73] 당시 해리 왕자의 자녀들은 태어나기 전이라 아치와 릴리벳은 없다.[74] 니콜라이 1세의 손녀이다.[75]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이다.[76] 찰스 3세는 평생동안 스키를 즐겼으며, 아들들이 결혼하기 전에는 매년 스키 여행을 함께 갔다. 그러나 2023년에는 대관식을 앞두고 스키를 타다가 부상을 당할 것을 우려해 스키 여행을 가지 못했다.[77] 웨일스의 조지 공자, 웨일스의 샬럿 공녀, 웨일스의 루이 공자[78] 서식스의 아치 공자, 서식스의 릴리벳 공녀[79] 개인 소유의 하이그로브 저택을 방문한 어머니에게 자신의 샹그릴라이자 제나두라며 일장 연설을 하지만 엘리자베스 2세는 ‘자연을 직선을 거부한다면서 저 연못은 왜 직선으로 만들었냐.’라는 둥 쿠사리를 놓다가 집중이 안되었는지 밥이나 먹자고 한다.[80] 왕족은 커녕 남작의 외손녀 쯤 되는 카밀라가 미래의 왕인 왕세자와 결혼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여겼고, 찰스 왕세자와 사귀면서도 앤드루 파커 보울스(훗날 카밀라의 첫 남편)와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는 게 드러나 바로 왕실 일가의 공작으로 헤어진다. 결국 카밀라는 앤드루와 결혼한다.[81] 심지어 영연방 탈퇴 여론을 조성하던 호주 총리가 다이애나로 인해 계획이 틀어지자 찰스와 함께 다이애나를 증오하기까지 한다.[82] 물론 존 메이저 총리는 제 앞가림도 못하고 시대적 변화나 당면한 국정 과제에 유리되어 있고 구태의연한 왕실 인사들 모두를 냉소적으로 바라본다.[83] 원래 육군 관련 업무엔 육군 예복을 입고, 해군 관련 업무엔 해군 예복을 입지만, 지형적인 특성상 전통적으로 해군을 우대하던 경향이 있어 왔던 영국에서는 육군 예복보다는 해군 예복이 좀 더 격식 있다.[84] 영국 국왕에게는 지금도 의회 해산권이 명목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입헌군주제가 확립되면서, 국왕은 명목상의 사후 승인만 해주고 실질적으로는 총리가 의회 해산을 주도하는 형식으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그 전통을 깨고 국왕이 직접 의회 해산을 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본래 영국 국왕은 영국 서민원에는 들어올 수 없으며, 귀족원에만 들어올 수 있다. 국왕이 참석해서 행하는 국회 개원식도 상원인 귀족원에서 행한다. 그런데 이 의회 해산할 때만은 국왕이 하원인 서민원에 직접 들어올 수 있다.[85] 이 때문에 이 영화가 찰스 왕세자를 미화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찰스는 물론 영국 왕실 전체를 현실보다 더한 콩가루 집안으로 그려냈다. 찰스는 극 초반부터 어머니를 잃은 것보다 자신이 왕이 된 사실이 더 크게 다가오고, 캐서린 미들턴은 권력욕에 사로잡혀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라고 남편을 적극적으로 부추기고, 얌전하고 왕실의 규율을 중시하던 윌리엄도 결국 아내에게 설득당해 대놓고 아버지에게 왕위를 내놓으라고 대든다. 특히 작중 캐서린은 실존 인물과 이름만 같은 전혀 다른 인물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아주 저돌적이고 약삭빠르며 실리 계산에 밝은 사람으로 나와 논란이 되었다. 그나마 좀 덜 부정적으로 나온 해리도 친구들과 나이트클럽에서 술을 진탕 마시며 놀고, 왕자의 신분임에도 공화주의자 여성과 사귀며 한시라도 빨리 왕실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등, 왕실에 하등 도움이 안되는 행동만 골라서 한다.[86] 이 장면 후 극의 전개는 런던을 비롯한 영국 전역에서 찰스에 대한 반발 시위가 일어나는 것으로 흘러간다.[87] 배우는 팀 피것스미스(Tim Pigott-Smith)로 브이 포 벤데타에서 피터 크리디를 연기했다. BBC 방영 한 달 전인 4월 7일 만 70세로 사망했다.[원문1] The British people, the Commonwealth, and all of us in this House will support him as he takes our country forward to a new era of hope and progress, our New Carolean age.[원문2] And as we say farewell to our Late Queen, the UK opens a new chapter – a new Carolean age – under His Majesty King Charles III.[참조] 더 타임스 - What could the Carolean era mean for the UK?, 더 가디언 - Carolean age dawns as Britain begins long goodbye to the Queen, CTV#캐나다 - 'Carolean era:' Understanding the label for King Charles III's reign, 데일리 메일 - The Carolean age returns: How the Elizabethan era ends as Britain comes under the reign of the THIRD King Charles[88] 물론 이 당시에는 조롱을 받았지만, 현재는 오랫동안 환경 친화적인 행동을 보여온 점이 오히려 높게 평가 받고있는 중이다.[89] 찰스 3세는 환경보호에 매우 관심이 많다.[90] 다이애나의 폭로 인터뷰에 의하면 둘째를 임신했을 당시 찰스가 딸이라고 생각하면서 결혼한 이래 금슬이 가장 좋아졌으나, 낳고 보니 이번에도 아들인 해리 왕자가 태어나자 급실망한 찰스로 인해 부부관계가 더 냉각되었을 정도였다고 한다.[91] 그의 연령대를 고려하면 오히려 평균보다 큰 키다.[92] 의외로 역사가 오래 되었다. 1917년 독일 의사 막스 거슨이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이다.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20년부터.[93]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와 아버지 필립 공 모두 빅토리아 여왕의 현손들이다.[94] 유럽의 군주들 중에서 부계와 모계가 모두 빅토리아 후손인 상태로 왕위에 오른 첫 번째 인물은 루마니아 왕국의 마지막 국왕 미하이 1세로, 1927년에 찰스 3세보다 95년 먼저 즉위했다.(1차 재위 기준) 부왕 카롤 2세가 빅토리아 여왕의 차남 알프레드 왕자의 외손자였고, 모후 엘레니가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 빅토리아 황후의 외손녀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인물은 그리스 왕국의 마지막 국왕 콘스탄티노스 2세로, 1964년에 찰스 3세보다 58년 전에 먼저 즉위했다. 부왕 파블로스가 빅토리아 여왕의 장녀 빅토리아 황후의 3녀 조피의 아들이었고, 모후 프레데리키는 빅토리아 황후의 장남 빌헬름 2세의 외손녀였다. 세 번째 인물은 스웨덴의 현 국왕 칼 16세 구스타프로, 1973년에 찰스 3세보다 49년 전에 먼저 즉위했다. 아버지 구스타프 아돌프 왕자가 빅토리아 여왕의 3남 아서 왕자의 외손자였고, 어머니 지빌라 왕자비는 빅토리아 여왕의 4남 레오폴드 왕자의 손녀였다. 네 번째 인물은 스페인의 현 국왕 펠리페 6세로 부왕 후안 카를로스 1세가 빅토리아 여왕의 5녀 베아트리스 공주의 장녀 바텐베르크의 빅토리아 유제니의 손자이고, 모후 소피아가 앞서 언급된 콘스탄티노스 2세의 누나이다.[95] 증조할머니 그리스의 올가 왕비가 니콜라이 1세의 친손녀다.[96] 외할아버지 조지 6세도 1911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1년 동안 역사와 경제학 등을 공부했으나 졸업을 하지 않아 학위는 없었다.[97] 73세의 나이에 즉위했기 때문에 재위 25주년 실버 주빌리 행사를 치룬다고 해도 98세가 된다. 만약 실버 주빌리 행사를 치루게 된다면, 엘리자베스 2세가 가졌던 영국 역사상 최장수 군주 타이틀도 찰스 3세가 보유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