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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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형태적 특징
3. 체제 및 내용
4. 특성 및 가치



1. 개요[편집]


『천공개물(天工開物)』은 명나라의 문인인 송응성(宋應星, 1587~?)이 방적(紡績), 제지(製紙), 조선(造船), 제염(製鹽), 광업(鑛業) 등 당시의 농공업(農工業)과 관련한 제반 사항들을 도판(圖版)과 함께 정리하여 편찬한 책이다. 종로도서관 소장본은 필사본(筆寫本)으로 본문에 필사기(筆寫記) 등이 없기 때문에 필사자(筆寫者) 및 필사연도를 알기 어렵다. 송응성은 명나라의 문인으로 봉신현(奉新縣) 출신이며, 자는 장경(長庚)이다. 1615년 향시에 합격하여 여러 지방 관직을 역임하였다. 과학, 기술에 많은 관심을 보여서 과학, 기술과 관련한 저서를 다수 남겼다. 저서로는 정치, 경제 등 시사문제를 다룬 『야의(野議)』, 자연철학의 내용을 다룬 『논기(論氣)』, 시집으로 『사련시(思憐詩)』 등이 있다.

2. 형태적 특징[편집]


이 책의 표지서명은 『천공개물(天工開物)』이다. 본문은 필사(筆寫)되었으며 다수의 삽도가 있다. 별도의 변란(邊欄)이나 판심(版心)이 없다. 계선이 없고 반엽(半葉)마다 12행(行) 25자(字)로 되어있다. 본문의 주석은 쌍행(雙行)으로 부기하였다. 판심(版心) 부분에는 어미(魚尾)가 없다. 표지서명 하단에는 건곤(乾坤)으로 책의 순서를 매겨두었다. 각 책의 본문 제1면(面)에는 ‘京城府立圖書館藏書’가 찍혀 있다.

3. 체제 및 내용[편집]


『천공개물(天工開物)』의 내용은 본래 3부로 18권 구성되어 있는데, 종로도서관 소장본은 3권 2책으로 나누고 다시 18개 항목으로 구분한 형식을 갖추었다. 제1책이 상권(上卷)과 중권(中卷)의 잡주(雜舟)까지, 제2책이 중권(中卷) 차(車)부터 하권(下卷)까지 나뉘어 있고, 책차(冊次)는 건(乾), 곤(坤)으로 구분된다. 권수(卷首)에는 「천공개물목록(天工開物目錄)」, 「음자(音字)」가 있다. 음자의 경우 특정 한자를 상단에 제시하였으며, 일부는 한글로 훈음(訓音)을 표기하였다. 내용을 보면 유통되었던 판본(板本)과는 차이가 있는데, 종로도서관 소장본은 판본을 바탕으로 축약하여 만든 것으로 보인다. 상권은 제1~9까지 9개 항목, 중권은 제10~13까지 4개 항목 하권은 제14~18까지 5개 항목으로 구분되어 있다. 제1~2는 복식, 제3은 염색, 제4는 곡물의 손질, 제5는 제염(製鹽), 제6은 설탕, 제7은 기와, 벽돌, 옹기, 백자, 청자 등 도자기, 제8은 거울, 화포, 동전, 솥, 종 등을 다룬 주조(鑄造), 제9는 배와 수레, 제10은 칼과 도끼 등을 다룬 추단(錘鍛), 제11은 석탄 등을 다룬 소석(燔石), 제12는 기름을 다룬 고액(膏液), 제13은 종이, 제14는 금석, 제15는 무기, 제16은 먹과 안료, 제17은 술, 마지막은 보석을 다루고 있다. 종로도서관 필사본에는 제 18의 권차가 빠진 상태로 보석 내용의 본문이 수록되었다.

종로도서관 고문헌 검색시스템에서 원문 확인이 가능하다.

4. 특성 및 가치[편집]


『천공개물(天工開物)』은 중국의 전통 기술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책이다. 농업, 광물업을 비롯하여 금속제련, 주조, 단조, 도자기, 기름, 종이, 먹, 천연염료, 누룩, 화약 등의 제조법과 특징이 삽화와 함께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이 책이 조선후기 여러 학자들의 저술에서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처음 책이 간행된 이후 조선으로 유입되고 널리 읽혀진 것을 알 수 있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 중국의 여러 교통수단을 소개하면서 이 책을 언급한 것을 비롯하여,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 , 『오주서종박물고변』 등에 인용되거나 참고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중국의 농업과 공업 생산 분야에서 오랫동안 누적된 지식을 종합적으로 편집한 것으로 동양 과학기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현재 국내에 전해지는 책은 일본에서 1771년에 간행한 책이거나 중국에서 1929년과 1930년에 각각 신연활자본과 석인본으로 간행한 것이 대부분이다. 종로도서관 소장본은 본문에 필사기(筆寫記) 등이 없기 때문에 필사자(筆寫者) 및 필사연도를 알기 어렵지만 지질과 필사의 방식 등을 고려해 보면 19세기 후반에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동일한 서명의 필사본을 성균관대 존경각에서 1부를 확인할 수 있을 뿐 전존본이 거의 없는 필사본이다.

※이 문서는 종로도서관 인문사회과학실에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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