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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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역사
3. 특징
4. 대중매체에서의 모습


1. 개요[편집]








한복의 한 종류. 철릭이란 몽골어 테를릭(ᠲᠡᠷᠯᠢᠭ terlig / 현대음: 테를렉(тэрлэг terleg), '솜을 댄 포')[1]에서 유래한 말이며 과거에는 한자로 천익(天翼), 첩리(帖裡) 등으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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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홍철릭과 청철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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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에서 묘사된 무관들의 홍철릭과 청철릭.
하지만 색으로 구분해서 입은 건 조선 후기로, 작중의 배경이 되는 조선 초기 때에는 문무관 차이 없이 홍철릭이 정식이었다. 모자 역시 전립을 쓰는 것도 오류로, 흑립을 썼었다.

조선초기의 철릭은 소매는 좁되 길이가 길었기 때문에 근무나 전시 때에는 긴 옷소매를 말아서 묶었던 것으로 보인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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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선 철릭. 허리에 선을 댄 철릭으로 고려 말-조선 초기에 나타난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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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이 무복으로 입었던 여성 철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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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편집]


원피스 형태로 사방이 막힌포이다.(트임이 있는 철릭도 있다.) 고려시대 때 몽골 제국에서 들어와 이나 문무관들의 복장으로 사용되었는데 조선시대 들어서는 사대부들이 일상적인 외출복으로도 입을 만큼 대중화 되었다. 곤룡포, 단령관복속옷으로 입기도 하였으나[3] 임진왜란 이후 융복 내지는 무관들의 평상복으로 완전히 정착하였다. 조선시대 전체에 걸쳐 유행하였으나 시기에 따라 양식이 조금씩 달라진다. 형태에서도 변화가 있엇는데, 초기 철릭은 몽골의 영향으로 소매가 좁았으나, 조선 후기로 갈수록 소매가 점점 넓어졌다.

철릭의 색깔로 계급을 구분하는 것은 조선시대 후기부터이다. 당상관이 남색, 당하관이 청현색·홍색이다.[4] 원행을묘정리의궤 반차도(1795) 참고. 또한 사극처럼 당상관이 홍색을 입고 (당하관의 상급인) 참상관이 청색, (당하관 하급인) 참하관이 녹색을 입는 건 사실과 다르다. 사극에서 관복의 색으로 표현하는 것과 달리 후기이전까지는 그렇게 색상으로 정해진 바는 없다. 영조 이전까지 홍색 숭상 풍조 때문에 홍색을 많이 입었을 뿐.


3. 특징[편집]


저고리에 치마가 합쳐진 원피스 형태의 외출복으로 치마 부분에는 주름이 잡혔다.

소매는 활동성을 위해 반소매로 만들어서 매듭단추를 달아 긴 소매를 탈부착 할 수 있도록 만들기도 하였다. 허리에는 광다회(실띠)나 전대(넓은 천 띠)를 둘렀다. 경우에 따라 위에 쾌자를 걸쳐 입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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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소맷단을 정리하기 위해 '토수'라는 일종의 토시를 끼워서 묶기도 했다.

특이한 점은 상하의를 따로 만든 후에 허리 부분을 기워 붙여서 완성시킨다는 점이다. 그 덕분에 허리 라인이 상당히 잘 드러난다. 무관들이 입는 융복 이외에도 의외로 일상적인 외투로서 사용되기도 한 모양.

더불어서 원피스 형태인지라 어떻게 보면 참 매력적이다. 형태가 아름다워서 디자이너들이 철릭을 개량한 여성용 원피스를 만들기도 한다. 실제로 개화기1905년 쯤 철릭 형태의 여성용 민소매 한복 원피스가 등장했었다.(참조 : 생활한복에 대한 의식구조와 선호도에 따른 디자인 연구.1998.숙명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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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2014년도에는 몇몇 디자인/패션잡지에서 소개된 모 한복 디자인 브랜드의 철릭원피스가 뭇 여성들을 설레게 하며 인기를 끌었다.참조기사

구군복과 마찬가지로 무반의 관복으로 사용되어서 둘을 헷갈리는 사람이 많다. 철릭은 고려시대부터 입기 시작한 의복으로, 조선시대 들어서도 여전히 융복이라는 이름으로 벼슬아치가 입는 융복이었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들어서 무관들이 입는 군복(구군복)이 생기면서 철릭은 보다 일상적인 복장으로 바뀌었다. 두 옷에는 명확한 차이가 있으므로 유의하자.

이후에 만들어진 구군복과 비교하면 간단한 모양 때문인지 조선 후기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구군복을 입은 무관이 철릭을 입은 부하들을 지휘하는 모습을이 나오지만 고증오류이다. 구군복을 입으면서부터 무관들의 관복을 제외한 복식은 철릭과 혼용해서 착용하지 않았다. 이 외에도 철릭은 갑옷 속에 받쳐 입는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구군복을 받쳐 입음.)


4. 대중매체에서의 모습[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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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에는 사대부들의 일상적인 옷차림으로 사용되기도 한 만큼, 대중매체에서 관군이나 관에 고용된 무사들의 복장으로도 등장한다. 추노에서 송태하황철웅이 애용하던 긴 옷이 바로 철릭. 불멸의 이순신에서 장군들이나 호위무사로 등장한 날발 등도 철릭을 입었다. 쾌자를 입은 검객들이 대부분 야인 취급인 반면, 철릭을 입은 검객들은 좀 더 중후한 이미지이다. 격한 액션에서 동반되는 철릭의 움직임 또한 휘날리는 코트 같은 매력이 있다.

특히 사극에선 사또들의 부관들이 입는 복장으로 자주 나온다. 조선군 군관이나 그 이상 계급 인물들도 자주 입는다고 묘사하곤 하는데, 착용자가 전립을 썼다면 거의 대부분 파란색, 쓰지 않았다면 빨간색 철릭을 걸친 경우가 많다. 그 외 색상들도 있긴 하지만 잘 나오지 않는다.

영상매체에는 등장이 많지만, 만화 같은 다른 매체에서는 상대적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 일단 한복답게 그리기가 굉장히 힘들다. 치마 부분 주름을 표현하는 것이 가장 큰 난점인데, 그림으로 보면 살짝 펑퍼짐한 원피스(...)가 되어버리기 쉽기 때문인 듯. 그래도 제대로 표현한다면 굉장히 간지폭풍 멋지기 때문에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남자 한복을 그릴 경우 두루마기, 쾌자와 함께 자주 등장한다.

백일의 낭군님 1화에 왕세자(도경수 분)가 전장으로 향하겠다며 "철릭을 가져오라."라고 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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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세 한국어에서는 '텰릭'으로 음차되었다.[2] 두석린갑, 두정갑, 찰갑과 같은 갑옷들 역시 철릭을 벗고 입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덧입었던 것이다.[3] 다만 완전히 속옷으로 입은 것은 아니다. 관복의 속에 철릭을 입고, 철릭 속에 또 속옷을 입었던 듯하다. 대왕 세종, 인수대비, 7일의 왕비에서 이 장면이 나온다.[4] 당하관은 궁궐 안에선 청현색 철릭을 입었고(영화당친림사선도 참고) 궁궐 밖에선 홍색 철릭을 입었다.(봉수당진찬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