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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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형사 주요 판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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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세월호 선원 관련
2.2. 항소심 (광주고등법원)
2.3. 상고심 (대법원)
3. 해경 관련
3.1. 경위 김경일(유죄)
3.2. 김석균 청장 등 (무죄)


1. 개요[편집]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형사 재판을 다루는 문서.


2. 세월호 선원 관련[편집]




2.1. 1심 (광주지방법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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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11일 광주지방법원에서는 이준석 선장 등 세월호의 선원 15명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을 진행하였다. 이 선고공판에서 이준석 선장은 업무상과실 선박매몰죄와 선원법 위반, 해양관리법 위반, 유기치사상 혐의가 인정되어 징역 36년을 선고받았다. 당초 논란이 되었던 살인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고 검찰의 사형 구형도 인정하지 않았다. 한편, 피소된 주요 선원인 박 모 기관사[1]의 경우 세월호에서 빠져 나오는 과정에서 부상당한 조리원들을 방치한 혐의로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가 일부 인정되었다.

일단 가장 논란이 되었던 이준석 선장에 대한 판결에는 세 가지 쟁점이 있다. 먼저, 이준석 선장의 퇴선 명령이 있었는가 하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이준석 선장이 퇴선명령을 내리지 아니 하였다고 입증할만한 충분한 증거가 없다고 보았다. 즉, 퇴선 명령을 했다고 주장하는 이준석 선장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이에 앞서 이준석 선장은 검찰 조사에서는 퇴선 명령을 하지 아니 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했는데, 정작 공판에서는 이러한 진술을 번복하며 퇴선 명령을 했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왜 검찰 조사에서의 진술을 번복하는가를 이준석 선장에게 질문했고, 이에 대해 이준석 선장은 "나 혼자 살아야겠다. 승객을 다 죽여야겠다'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살아야겠다는 진술은 죄책감에서 자포자기상태로 한 것이다"라고 답변했고, 다른 선원들도 비슷한 취지로 법정에서 진술했다. 이에 대해서 검찰은 '선원들이 입을 맞추었다', '검찰에서의 진술이 다르다'라는 식으로만 대응할 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쉽게 이야기해서 검찰은 이준석 선장의 퇴선 명령 쟁점에 대해서 이준석 선장이 스스로 한 진술에 의존해서 재판을 진행한 것이고, 이에 대한 직접적 증거나 방증 자료를 준비하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특별히 논란이 되는 쟁점에 대해서 충분한 물질적 증거가 없는 경우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해당 공소 요건은 인정되지 않는다[2].

다음으로 살인죄를 적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일단 재판부는 이준석 선장의 살인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같은 날 선고된 박 모 기관사의 판결과 대조되는 것으로, 이준석 선장이 세월호를 빠져 나오는 과정에서 누군가를 방치하지 않았는가가 문제가 된다. 그런데 여기도 첫번째 쟁점과 마찬가지로 이준석 선장이 세월호를 빠져나오면서 승객을 방치하고 나왔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증명할 증거가 없으므로[3], 살인죄가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쟁점, 검찰이 제기한 주요 공소 요건의 입증 실패가 있다. 일단 검찰이 제기한 것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세 가지가 있는데, '퇴선 지시가 있었는가', '수난구호법을 적용할 수 있는가', '세월호가 침몰한 항행지점에 사고 위험성이 존재하는가'하는 것이다.

퇴선 지시와 관련된 부분은 위에서 기술한 바와 같으므로 생략한다. 수난구호법 적용은 재판부에서 아예 인정을 하지 않았다. 재판부에서는 수난구호법을 '두 선박이 해양에서 충돌했을 때, 책임이 있는 선박의 선원에게 적용하는 법'이라고 설명하면서, 검찰의 법 적용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어서 수난구호법을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역시 적용할 수 없다고 하였다. 한편, 세월호가 침몰한 항행지점에 사고 위험성에 대해서 재판부는 '사고 위험성이 없었으므로 선장이 반드시 조타할 책임이 없다'는 취지로 설명하였다. 즉, 세월호가 항해할 당시 기상이 불순하지 않았고, 다른 선박이 통과하지도 않았다며 그동안 제기되었던 위험수역 문제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재판부는 검찰이 애초에 제기했던 주요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준석 선장에게 적용된 유기치사상죄가 원래는 검찰이 제기한 공소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검찰은 위에서 기술한 사항으로도 이준석 선장에게 사형을 구형하고 살인죄를 이끌어 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하다고 자신하면서 재판을 진행해 왔는데, 이러한 가운데 재판부가 검찰에게 유기치사상죄도 추가할 것을 권고한 것이다. 만일 검찰이 이러한 재판부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이준석 선장에게는 무죄가 선고되거나 아주 경미한 처벌만이 이어졌을 수도 있다.

이러한 판결과 관련하여 유가족들과 많은 국민들은 형량이 부족하다, 재판부의 판결이 잘못 되었다고 많은 비판을 가하고 있지만, 법률적으로는 기본적 원칙에 입각한 매우 정련된 판결이라 할 수 있다. 형사 재판은 단순히 피고인이 유죄인가 무죄인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검찰이 공소 제기한 사실에 대해서 판단하는 것이고, 그러한 공소 사실에 대해서 입증할 책임은 전적으로 검찰에게 있다. 하지만 검찰은 국민의 법감정, 공분에만 기대어 무리하게 법 적용을 하려했고, 결정적으로 그러한 법 적용을 뒷받침할 만한 사실적 증거도 확보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서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형사 재판은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수사를 바탕으로 한 정교한 법리로 하는 것'이라는 기본적 원칙을 망각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검찰에서는 일단 항소하겠다고 밝혔으나[4], 법조계에서는 형사 사건에서 1심 판결의 결과가 상급심에서 크게 뒤바뀌지 않는 점[5]을 들어 향후 재판이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내다보고 있다.


2.2. 항소심 (광주고등법원)[편집]


판결문 전문

2015년 4월 28일 광주지방법원 항소심 결과 이준석 선장의 살인죄가 인정되어 징역 36년형을 파기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 이준석 살인죄 인정... 무기징역 선고. 재판장인 서경환 부장판사도 판결문을 읽어 내려가며 양형사유를 설명하는 중간중간 울먹이고 몇 차례 헛기침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2.3. 상고심 (대법원)[편집]


판결문 전문
선고 영상

2015년 11월 12일, 전원 상고 기각으로 대법원 판결이 나와 2심의 형이 그대로 확정되었다. 이 날은 이준석 선장의 무책임한 행동이 없었더라면 살았었을지도 모르는 많은 단원고 학생들이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렀을 날이었다.

각 피고인들의 확정된 형은 아래와 같다.

  • 청해진해운 대표이사 김한식: 징역 7년[6]

  • 이준석: 무기징역[7]

  • 1등 항해사 강원식: 징역 12년

  • 2등 항해사 김영호: 징역 7년

  • 3등 항해사 박한결: 징역 5년[8]

  • 조타수 조준기: 징역 5년[9]

  • 기관장 박기호: 징역 10년

이 판례는 형사법상 부작위범과 부진정부작위범의 성립요건을 재확인했다는 점, 해사안전법과 구 선원법, 그리고 수난구호법 등 해상 관련 특별법에 따라 승객의 안전을 지켜야 할 법률상 내지 계약상 보호의무를 부담한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선장 이준석에 대해서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을 인정한 반면, 그 외 승무원들에 대해서는 "선장의 지휘를 받는 처지인 점 등을 감안할 때 살인의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작위에 의한 살인의 고의를 부정하고 '부작위에 의한 유기치사상'만을 인정한 것에 대해서는 살인죄의 공동정범 인정여부를 논할 필요가 있었다는 비판도 있다.


3. 해경 관련[편집]



3.1. 경위 김경일(유죄)[편집]


대법원 재판부는 전 '해경 123정장이었던 경위 김경일이 낸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최종적으로 유죄(업무상과실치사죄 인정, 징역 3년)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사고 당일 '해경 123정, 정장 김경일이, 현장에 도착했던 오전 9시 30분에 세월호가 약 45~50도 정도 기울어 있었으며, 선체 상태를 감안하여 승객들이 빨리 퇴선하지 않으면 선박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익사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는 점을 예상할 수 있었다며, 당연히 퇴선 지시를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구조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당시에 선체 내부에 있던 승객들과 구조자 사이에 대화가 가능했고, 일부 출입문이 열려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구조를 기다리던 승객들에게 '123정이 세월호에 접근해 대공 마이크 등으로 퇴선 방송을 실시하거나 승조원이 갑판에 승선해 퇴선을 유도했다면 승객들이 밖으로 나오거나 바다로 뛰어들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대법원은 밝혔다. 대법원은 해경 123정이 현장에 도착했던 오전 9시 30분부터 9시 45분까지 약 15분이, 인명을 구조할 수 있었던 '골든타임'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세월호가 61도 이상 기울어 내부 진입이 어려워진 9시 46분 이후에 대해서는 해경의 업무상 과실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해경 123정(승무원 13명)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데, 세월호 사고 현장에 도착하기 전은 물론, 도착해서도 세월호와 교신하지 않았다. 도착하기 전에 9시 3분과 4분에 총3회 교신을 시도한 것이 전부다. 가는 도중과 도착해서도 교신을 시도해야 할 텐데 그러지 않았다. 또한 세월호 안에 있는 승객들의 상황을 살펴야 할 텐데, 123정 승조원 13명 중 단 한 명도 세월호 선내에 진입시켜 상황 파악을 하도록 하거나 하는 행위도 하지 않았다. 이미 구조한 승무원과 승객들에게 다른 승객들의 상황을 질문도 하지 않았다.

해경 123정은 보유하고 있던 고무 보트 하나를 하강시켜, 세월호에 근접시켜서, 기관실 선원과 조타실 선원들을 차례대로 전원 구조한다. 일반 승객들은 안중에도 없었다. 퇴선 지시만 내려서, 사람들이 구명조끼를 입은 상태에서 바다에 뛰어들기만 했어도 주변에 2700t급 유조선 두라에이스호(Doola Ace)가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 구조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해경123정 정장 김경일은, 세월호 내 승객들에게 탈출 방송을 하지 않았는데도 한 것처럼 상황을 조작했으며, 세월호 선내에 대원들이 진입하지 않았는데도 진입한 것으로, 항적일지 등의 문서를 조작했다. 생존 학생들도 "해경은 선내로 들어오지 않았고 모두 배 밖에서 쳐다보고 있기만 했으며, 배 안 상황에 대해 묻지도 않았다"고 재판에서 증언했다. '해경이 배에서 탈출하라고 방송했더라면 과반이 배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이 생존자들의 일관된 발언이다.

그러나 해경이 구조를 '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거짓이다. 사건 당시 해경 123정[74]은 탑재고무보트를 이용해 79명을 구조했다. 해경 항공대 소속 헬기가 35명을 항공구조했고 어선 두 척과 관공선(어업지도선 등)이 58명을 구조했다. 이는 법원의 공판 기록에도 나오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사망자가 0명 내지 1~2명이 될 수도 있었던 사건이라는 점이다. 해경 123정 승무원들이 세월호 핵심 승무원(선장, 항해사, 기관장)이 퇴선해서 세월호의 선박 지휘권이 사실상 무주공산이 된 직후 또는 300명에 이르는 단체여행객의 존재를 알게 된 후에, 직권으로 마이크, SNS, 전화, 문자메시지 등 모든 수단을 활용해 퇴선 명령을 내렸으면 단체여행객 전원 생존이 가능했다. 사고 해역으로 출동하면서 서둘러서 조치를 했으면 단원고 교무실, 경기도교육청 등을 경유해서 단원고등학교 교감과 인솔 교사, 반장, 부반장 등의 연락처를 확보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또한 좁은 구역에 모여 있는 단체여행객의 특성상 1~3명에게만 퇴선 지시가 분명하게 전달되었다면, 단체여행객 전부 다 바다에 뛰어들어 생존했을 것이다.

즉, 해경이 긴급 상황에서 지나치게 무능하게 대처했고, 부실하게 구조 작업을 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시간도 아예 없지도 않았다. 해경이 신고 접수를 받고, 사고해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 09시이고, 사고 해역에 도착한 시간이 대략 9시 30분 정도이고, 세월호에서 탈출한 마지막 생존자가 구조된 시간이 10시 24분이다. 구명조끼를 입고 물 위에 뜰 수 있는, 그리고 물 위에 뜬 사람들, 선원실에서 나오는 선원과 선장을 우선 구조하고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다 재차 접근해서 자력으로 탈출한 사람을 배 위에 올린 정도가 해경의 구조 작업이었다. 이런 임무는 사고 즉시 근처에서 달려온 화물선과 어선들도 할 수 있었던 구조 작업이다. 선내 상황 확인과 탈출 유도라는 가장 기본적인 임무조차 무슨 이유인지 방기했다. 당시 해경은 사고 대처에 대한 전문성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다.[10]


3.2. 김석균 청장 등 (무죄)[편집]




3.2.1. 1심 서울중앙지방법원[편집]


  • 사건번호: 서울중앙지방법원 2020고합128
  • 재판부: 제22형사부 판사 양철한(재판장), 구현정, 김재호

2020년 세월호 특별수사단이 재가동됨에 따라 공판을 준비 중임 김석균 측에서 과실에 대해 과실혐의는 없고 과실치사는 과하다며 자신들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해경청장이자 중앙구조본부장으로 최종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서 책임이 막중한데도 책임을 회피했고, 그 결과 해경의 구조를 기다리며 배에 있던 학생을 비롯한 승객 304명이 사망하는 중대한 결과가 발생했다"며 김 전 청장에게 금고 5년을 구형했었다.

2021년 2월 1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양철한 부장판사)는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청장 등 해경 관계자 9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별건 혐의로 추가 기소된 김문홍 전 목포해양경찰서장에게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이재두 전 목포해양경찰서 3009함 함장에게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세월호 구조 실패 혐의' 김석균 前 해양경찰청장, 1심서 "무죄", 서울중앙지방법원 2020고합128 판결문 전문


3.2.2. 항소심 서울고등법원[편집]


  • 사건번호: 서울고등법원 2021노453
  • 재판부: 서울고법 형사2부(재판장 이원범 부장판사, 한기수·남우현 고법판사)

2023년 2월 7일,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는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별건 혐의로 추가 기소된 김문홍 전 목포해양경찰서장과 이재두 전 목포해양경찰서 3009함 함장은 1심과 마찬가지로 각 징역 1년 6개월과 집행유예 3년,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유지되었다. 법률신문


3.2.3. 상고심[편집]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이동원)는, 세월호 사고 관련 해양경찰청 및 구조본부 간부급 직원들이 업무상과실치사죄 등으로 기소된 사안에서, 검사와 피고인들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여, 업무상과실치사 및 업무상과실치상 부분을 무죄로 판단하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등에 관해 유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확정하였습니다(대법원 2023. 11. 2. 선고 2023도2364 판결). 대법원 보도자료
정장과 달리 해경 수뇌부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이 확정되었다. 법률신문
[1] 실명을 표기해도 되는 경우 실명으로 표기 바람[2] 이는 법정증거주의를 중시하는 한국 사법부의 기조상, 대부분의 형사 및 민사 사건에서도 해당한다. 즉, 어떤 자연인의 증언보다는 물질 증거의 가치를 훨씬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100명의 증인이 어떤 증언을 한다고 해도 그러한 증언들과 배치되는 단 하나의 물적 증거가 나온다면 100명의 증언은 어떠한 효력도 갖지 못한다. 다만, 물적 증거가 전무한 사건이나 일명 뺑소니, 강간 사건 등과 같이 특정인이나 목격자의 증언이 특별히 중요한 경우에는 극히 이례적으로 증언이 중요하게 취급되는 경우가 있다.[3] 이준석 선장이 탈출하는 장면이 담긴 해경 측 동영상에는 이러한 쟁점을 오히려 정면으로 반박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는 이준석 선장이 조타실로 보이는 공간에서 선실이나 선내를 거치지 않고 바로 탈출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살인죄를 구성할 만한 요건을 완전하게 탄핵한다. 실제 재판에서도 해당 증거는 이준석 선장에게 유리하게 적용되었다.[4] 일단은 검찰에서 항소하겠다고 밝혀서 큰 문제는 없겠으나 만일 검찰이 항소하지 않고 이준석 선장만 항소하는 경우 불익변경금지원칙에 따라 상급심에서는 1심의 형량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할 수 없게 된다.[5] 대법원이 파기한 민간법원 형사사건 비율은 2008∼2012 년 5년 평균 2.8%에 그친다. 2008년 3.9%에 달했으나 추세적으로 낮아져 2011년 2.1%, 2012년 2.3% 등 2% 초반대를 유지하고 있다.[6] 1심에서는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7] 1심과 2심에서는 징역 36년을 선고받았지만 파기되었고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모두 기각되고 완전히 무기징역에 처해졌다.[8] 사고 당시 운행을 맡고 있었다.[9] 사고 당시 운행을 맡고 있었다.[10] 근처에서 달려온 어선들은 당연하다는듯이 램프가 있는 배의 꼬리로 달려갔지만 123정은 조타석이 있는 뱃머리로 달려간것부터 전문성과는 한참 떨어진 대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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