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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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정책의 내용
2.1. 경제에 설탕물 풀기
2.2. 금융규제의 완화
3. 정책의 결과
4. 비판


1. 개요[편집]


박근혜 정부 당시 부총리기획재정부장관이었던 최경환이 주도했던 경기부양책. 비슷한 시기 일본아베 신조가 내세운 경기부양책을 언론에서는 아베노믹스라고 불렀는데, 이를 본따 언론에서 최경환의 성 영문자(choi)를 따내어 초이노믹스(choinomics)라고 명명짓게 되었고, 이는 박근혜의 주요 정책 중 하나가 되었다.

사실 정부 경제정책의 이름을 대처리즘, 레이거노믹스, 오바마노믹스, 아베노믹스, DJ노믹스, MB노믹스 등과 같이 대통령이나 총리 등 정권 1인자의 이름에서 따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권 2인자의 이름을 딴 경우조차 중국의 리커노믹스 등 소수 사례일 뿐이다. 근데 초이노믹스의 경우 1인자인 대통령도 2인자인 총리도 아닌 경제부총리의 이름을 따서 경제 정책을 명명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특이한 사례이다. 물론 당시 최경환 의원이 친박계 좌장으로 나름 실세였긴 하지만 어쨌든 여타 노믹스들과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 2016년 10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박근혜 정권의 대표 경제정책 중 하나인 초이노믹스도 사실 최경환이 아닌 최순실 작품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언론에서 보도되기도 했다. YTN '가계부채 1300조...초이노믹스는 최순실 노믹스?' 2016년 10월 29일 최순실이 강남에 상당한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최순실 파일에서 가계부채 A, B라는 두 개의 폴더가 발견되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초이노믹스가 알고 보니 최순실노믹스였냐는 농담이 진담처럼 되고 있다. 최순실이 비선실세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후속보도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


2. 정책의 내용[편집]


이 정책의 추구방향은 내수 활성화, 민생 안정, 경제 혁신이었다. 재정확대 및 통화팽창정책과 더불어 LTV, DTI 완화 등 부동산 규제 완화, 기업투자촉진을 위한 사내유보금 과세 등 내수활성화 대책을 포함하고 있었다.


2.1. 경제에 설탕물 풀기[편집]


경제부총리로 취임한 직후인 2014년 7월 41조 원 규모의 재정보강책을 단행했다. 그래도 내수가 회복되지 않자, 2014년 10월 5조 원을 더 풀었다.

2015년에는 정부예산을 전년도보다 20조 2000억 원이나 더 늘렸다. 즉, 5.7%나 예산을 늘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수는 회복되지 않았으며, 메르스 사태로 경기가 하강하는 조짐까지 보이자, 22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서 집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계속 침체하자, 2015년 10월 9조 원 가량의 추가 재정보강책을 내놓았다.

재임기간 동안 100조 원 가까운 돈을 푼 셈이지만 이 정도로는 아베노믹스에 대항한다는 것이 수치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아베노믹스는 4년간 단순한 추가예산도 아닌 화폐발행만 무려 2400조 원 이상이므로 상대가 될 수가 없다. 즉, 최경환이 돈을 많이 쓴 게 문제가 아니라 소심한 정도를 넘어 현실성 없을 정도로 돈을 풀지 않은 것이다. '어차피 욕먹는 거 그래 욕해라 나는 풀련다 식으로 넘사벽으로 풀든가 아니면 아예 풀지를 말든가' 하는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결과는 현재의 수출 침체로 이어진다.

게다가 한국은 이러한 사정 이전에 이미 이명박 정부 당시 타국과의 합의가 없는 환율조작을 시행했다가 미국이 환율조작국 지정에 나서겠다는 엄포를 받고 쫄아있는 상태인 점, 그리고 경기가 침체된 것은 아베노믹스와 같은 요인보다는 박근혜 정부의 근본적인 경제정책의 실패에 있다는 점 때문에 애시당초 이러한 이야기는 탁상공론에 불과하기도 하다.

저축을 줄이고 투자를 늘리기 위해 통화당국을 압박하여 기준금리를 계속 인하하게 했다. 그렇지 않아도 2013년 5월 이후 기준금리를 1년 이상 동결해 온 상태였는데, 2014년 8월부터 2015년 6월까지 무려 4차례나 금리를 인하했다. 그 결과 기준금리는 2.25%에서 1.50%까지 낮아졌다.


2.2. 금융규제의 완화[편집]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금융 규제도 풀었다.

LTV는 집값에서 대출금이 차지하는 비율을, DTI는 매달 갚는 대출 원리금 상환액이 월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예를 들어 DTI=60% 이라면 월급 100만원에서 60만원이 집값+이자로 빠진다는 이야기이다.)을 말하는데, 이 기준이 완화되면 대출자가 가지고 있는 담보 가치나 월 소득에 비해 금융기관에서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빚을 내서 집을 사기가 쉬워지므로 부동산시장이 활성화되고, 그 동안 떨어지던 집값이 다시 오르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에 더해 '척하면 척'이라며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를 압박하여 금리까지 역대 최저수준으로 끌어내렸다. 금융완화에 금리인하까지 가계 부실화는 정해진 수순임에도 이러한 황당한 행동을 밀어붙인 것이다. 이에 비판 없이 동조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역시 공범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을 펼 당시 부동산 거래는 이미 충분히 활성화되어 있었다.[1] 따라서 이 정책은 처음부터 본인들을 포함한 몇몇 부동산보유자들의 사욕을 위하여 의도적으로 가계부채문제를 심화시키고 다수의 하우스푸어를 양산하려는 것이 진짜 목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3. 정책의 결과[편집]


이 정책을 시행한 지 1년 5개월 만에 가계부채는 1035조 원에서 무려 170조 원 이상이 늘어 결국 1200조 원을 넘어섰다. 사실 가계 부채가 증가하더라도 가계에 상환 능력이 존재한다면 상관없다. 그러나 1년 5개월 만에 가처분 소득(소득에서 세금을 제한 것)이 그만큼 늘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물론 가계 대출이 주로 주택 구매를 위해 이루어졌다고 본다면 주택을 구매할만한 중하위소득 이상의 가구가 대부분이므로 그렇게 절망할 수만은 없다고 볼 수 있지만 박근혜 정부의 2015년 추경만 봐도 소득 측면에서는 저소득층에 집중되어 있다. 즉, 가계 대출하는 집단 따로 정부의 재정 정책을 받는 집단 따로 놀고 있다. 서민들은 정부 지원을 일정 부분 받았을지 모르지만 많은 가계는 대출과 차입을 부추기는 정부에 힘입어 소득의 변화 없이 빚만 진 셈이다.

나랏빚도 급격하게 늘어 490조 원 규모의 국가채무가 595조 원 규모로 늘어났다. 2014년까지만 해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35% 수준이었는데, 그 비율이 어느새 '심리적 마지노선'인 40%를 돌파했다.

이렇게까지 무리를 해가며 돈을 끌어당겨 퍼부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률은 오히려 하락했다. 2015년의 경제성장률은 2%대로 주저앉았으며, 재임기간 내내 수출 부진이 11개월 연속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등 실물 경기도 바닥을 기었다. 엄청난 돈을 찍어낸 일본이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나라경제를 살리기보다는 부자들의 돈을 지키기 위해 화폐는 생산하지 않고 부동산 가격을 올리기 위한 정책만 늘어놓았다는 평가이다.

부동산 금융규제 완화가 실제 주택 가격 견인에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어차피 국내 부동산 가격은 2000년대에 너무 심하게 올라 거품이 많이 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LTV·DTI 규제 완화에도 불구하고 정책 시행 후 한동안은 부동산 자산 가격 상승이 미미한 선에서 그쳤다. 그러는 와중에 전세난은 계속 심화되었고, 공연히 가계빚만 늘어난 셈이었다. 더군다나 임기 4년차에서부터는 미미했던 주택 가격의 상승세가 점차 가팔라지면서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이상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간단히 말하면 돈 풀고 한국은행 압박해서 당장 수술과 치료가 급한 환자에게 진통제만 엄청나게 투여했고, 그 결과 합병증이 오고 원래 병은 악화되고 간 수치가 너무 높아져 달리 치료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4. 비판[편집]


이러한 초이노믹스에 대해서는 여러 경제학자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관련링크

예를 들어 전성인 홍익대 교수의 경우 “최 부총리의 1년은 ‘부채 확산에 의한 부동산 가격지지’가 핵심이었다”며 “초이노믹스 효과는 채 한 달을 가지 못했고, 결국 미래세대까지 부담을 지울 가계부채 급증과 재정적자 확대만 남은 셈이 됐다”고 지적했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 역시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약했다”며 “결국 기억에 남는 건 부동산 경기 부양 뿐”이라고 말했다. 초이노믹스 초기에는 정책을 응원하는 기사를 실어주던# 조선일보도 2016년 말 시점에서는 빚내서 집 사라 부추긴 정부, 3년 만에 실패 자인이라고 비판하며 부동산 가격만 올리고 가계부채를 급증시켜 내수 소비를 위축시키기만 한 실패한 정책이라 비판했었다.

부동산 담보대출의 확대를 통한 부동산 경기부양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는 높았다. 예를 들어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미국 등지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벌어졌던 원인이 무분별한 부동산 담보대출이었다”면서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이라고 잘라 말했다. 관련링크 오죽했으면 새누리당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었는데, 경제통으로 불렸던 이한구 의원이 "생산성이 떨어지고 성장 잠재력이 떨어져서 어려우면 그걸 돌파하는 개혁을 할 생각을 해야지 그걸 감추기 위한 인위적인 부양 정책 갖고는 이건 오래 못 간다"고 직격탄을 날렸을 정도다. 관련링크[2]

단기 경기부양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꼬집는 목소리도 많았다. 이필상 서울대 경제학과 겸임교수는 “정치인으로서 경기를 부양시켜 빠른 시일 내 경기를 살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충동이 앞섰던 것 같다”며 “구조개혁이나 경제 체질 개선은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김상조 교수 역시 “단기 부양만 있고 장기적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한 구조개혁 노력이 없었다는 점은 몹시 아쉽다”고 했다. 구조개혁을 재임 1년의 가장 큰 성과로 꼽는 최 부총리 스스로의 평가와는 대조적이다.

심지어 당시 같은 당 원내대표였던 유승민이 명연설로 평가받은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이제 단기부양책은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렸는데, 이것 말고도 여러 가지 일들로 청와대와 갈등을 빚고 있었던 유승민은 청와대와 친박에게 완전히 찍힌 상태가 되었고, 이러한 쓴소리를 서슴없이 날렸던 모습이 야당에게도 감화가 되었는지 당시 야당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이 유승민을 싸고도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3:49부터

다소 원론적인 이야기일 수는 있지만 기획재정부의 수장이 한국은행의 통화정책기조를 시종일관 간섭하려 했던 점에도 비판거리가 남는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했다는 것이다. # 물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소신없이 초이노믹스에 휘둘리기만 하긴 했다. 하지만 역시 더 큰 책임은 역시 갑질을 한 최경환 총리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실세 정치인 출신 부총리로 정치권과 행정부 간의 원활한 협조 체제를 이끌어 낼 것이라는 기대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적 협상력 기대가 컸는데 최선을 다해 정치권을 설득하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국회 탓만 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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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3년도의 부동산 거래건수가 85만 건이었음. 참고로 부동산시장 최고 과열기였던 2007년의 부동산 거래건수가 87만 건이었음.[2] 참고로 이한구와 최경환은 같은 친박, 그중에서도 진박으로 꼽히는 인물들임에도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한구의 꼬장꼬장한 성격을 최경환이 탐탁치 않아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