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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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수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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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BS 로고.svg 연기대상 대상
최명길
(1994년)

최민수
(1995년)


박근형
(1996년)


역대 파일:daejongfilmawards_logo.png
파일:daejongawards.png
남우주연상
제33회
(1995년)


제34회
(1996년)


제35회
(1997년)

김갑수
(태백산맥)

최민수
(테러리스트)


한석규
(초록물고기)

제36회
(1999년)


제37회
(2000년)


제38회
(2001년)

최민식
(쉬리)

최민수
(유령)


송강호
(공동경비구역 JSA)


파일:백상예술대상로고(1).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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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제36회
(2000년)


제37회
(2001년)


제38회
(2002년)

박중훈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최민수
(리베라 메)


조재현
(나쁜남자)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제28회
(1992년)


제29회
(1993년)


제30회
(1994년)

이낙훈
(옛날의 금잔디)
최재성
(여명의 눈동자)

최민수
(걸어서 하늘까지)


신구
(들국화)

제30회
(1994년)


제31회
(1995년)


제32회
(1996년)

신구
(들국화)

최민수
(모래시계)


이병헌
(바람의 아들)


파일:한국방송대상 심볼.svg 한국방송대상
탤런트상
김진태
최명길
(1994년)

최민수
김윤경
(1995년)

장민호
나문희
(1996년)



최민수
崔民秀


파일:최민수.jpg

출생
1962년 3월 27일 (62세)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80cm[1], 75kg, AB형
가족
외할아버지 강홍식(1902~1971), 외할머니 전옥(1911~1969)
아버지 최무룡(1928~1999), 어머니 강효실(1932~1996)
배우자 강주은(1970~53) (1994년 결혼 ~ 현재)
장남 최유성[2]
차남 최유진
학력
파일:동북고등학교 로고.jpg 동북고등학교 (1981 졸업)
파일:서울예술전문대학 로고.jpg 서울예술전문대학 (방송연예과 1981 / 전문학사 졸업)
종교
개신교
소속사
매니지먼트 율
데뷔
1985년 연극 〈방황하는 별들〉
취미
전자 오락, 스킨스쿠버, 등산, 오토바이 타기, 디오라마 제작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
2. 개인사
3. 배우의 이미지
3.1. 연기 특징
4. 기행
5. 여담
6. 근황
6.1. 런닝맨에서
7. 출연작
7.1. 영화
7.2. 드라마
7.3. 연극
7.4. 예능
7.5. 광고
8. 수상



1. 개요[편집]


대한민국배우 출신 집안의 3대째 배우다. 1960년대의 은막 스타 최무룡과 영화 배우 강효실의 아들이며, 그의 외조부 강홍식[3]과 외조모 전옥도 배우였다.


2. 개인사[편집]


연극을 하던 중 80년대에 영화와 드라마로 데뷔 후, 잘생긴 외모와 성격 그리고 뛰어난 연기력과 카리스마로 부친의 경력에 도전할 충무로의 유망주로서 주목받았다. 20대에 다양한 종류의 영화와 드라마에 주로 거친 역할로 출연하며 연기력을 인정 받다가, 전설의 드라마인 사랑이 뭐길래[4]에서 이순재, 김혜자, 하희라 등과 함께 코믹 반전 연기로 대히트를 치며 국민배우로 떠올랐다. 1990년대의 화제작인 모래시계에 출연하여 "이렇게 하면 널 가질 수 있을거라 생각했어!"라는 대사로 모래시계 신드롬을 발생시켰다.[5] 사실 하정우 이전 시대, 유명 배우 아들 라인 중 전영록이덕화에 이어 가장 대표적으로 성공한 아들스타[6]였다.

아버지인 배우 최무룡어머니강효실[7] 사이에 1남 3녀 중 넷째서울에서 출생했다.

웬만한 막장 드라마에 버금가는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최민수가 백일 된 갓난아기였을 무렵 최무룡은 김지미와 불륜을 저질렀고, 1962년 10월 31일 김지미, 최무룡 두 사람은 간통죄로 구속되기에 이른다. 결국 1963년 최무룡은 강효실과 이혼하고 우여곡절 끝에 김지미와 결혼한다. 당시 강효실의 친모이자 눈물의 여왕으로 불리던 배우 전옥이 무척 진노했다고 한다. 강효실은 최무룡의 외도에 크게 상처받아 이혼 후 약을 먹거나 동맥을 끊는등 자살 위기를 수차례 넘기며 굉장한 마음 고생을 했다.

부모님의 이혼후 최민수는 계모가 된 김지미가 잠시 키웠다고 하는데, 그 인연으로 김지미를 어머니라 부르며 지금도 가끔 세배하러 간다고 한다. 김지미와 아버지 때문에 갓난아기 때 버림받아 친척집을 전전하며 자랐는데도 대외적으로 김지미에 대해 험담을 하거나 적대감정을 드러낸 일이 없는 점은 최민수가 굉장한 대인배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신 아버지 최무룡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말년에는 화해한 듯하며, 1999년에는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직접 영정을 들었다. 그런데 검은 선글라스 차림에 "이제 편안하시죠?"라는 홍콩 영화 장면 같은 말을 취재진 카메라 앞에서 하는 통에, 최민수의 언행이 익숙치 않은 세대의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아버지 장례식에서도 허세처럼 보인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지만, 어릴 때부터 유명인의 아들이자 유명인으로서 독특한 삶을 살아온 최민수로서는 이렇다할 특별점이 없는 행동이었다.

최무룡과 강효실의 만남과 결혼과 관련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 최무룡은 데뷔 초창기 백조가극단에서 연극과 악극을 했었는데, 백조가극단을 운영하던 여배우 전옥이 바로 강효실의 어머니이다. 강효실은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을 겪었고, 부모가 이혼한 후 아버지 강홍식을 따라 평양으로 가게 되어 일본인 계모의 슬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후 아버지, 친어머니의 대를 이어 배우가 된 강효실은 6.25 전쟁 도중 월남하여[8] 어린 시절 헤어졌던 친어머니 전옥과 재회하게 되고, 같이 살게 된다. 그러나 모녀가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 다시 만나 서로가 어색할 수밖에 없었고 자연히 갈등이 있었는데, 그러다가 어머니의 극단에서 같이 연기를 하던 최무룡과 가까워지게 된 것이다. 전옥은 후배 최무룡을 각별히 예뻐하며 아꼈지만 사위로는 탐탁치 않았는지 최무룡과 강효실의 사이를 반대했음에도 이들은 결국 결혼했으며 그렇게 최민수가 태어나게 되었다.

두 사람의 결혼식에도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최무룡과 강효실이 만나 결혼하게 된 건 부산 피난 시절의 일인데, 미군의 함정을 빌려서 선상 결혼식을 하였다. 당시 결혼식에는 신랑의 가까운 친구들 가운데 입담이 좋은 사람이 재담을 섞어 하객들을 웃기면서 신랑, 신부의 앞날을 축복해 주는 축사라는 순서가 항상 꼈었는데 최무룡과 강효실의 결혼식에서는 최무룡의 고향 친구라는 이가 그 축사라는 것을 했다. 그런데 축사가 한 시간이 다 되도록 끝날줄 몰랐고, 마침 그 때 몸이 불편했던 강효실은 함정이 좌우로 요동을 치는 바람에 뱃멀미를 해 견디다 못해 결국 졸도했으며 다행히 신랑이 신부를 재빨리 부축해서 무사할 수 있었다.

1957년작 영화 <항구의 일야> 는 백조가극단에서 자주 공연하였던 악극을 영화화한 것이다. 최무룡은 마도로스로 전옥은 항구의 캬바레의 여급으로 등장하는데, 사위와 장모가 연인으로 설정된 것이다.

미스코리아 캐나다 진 출신의 아내 강주은과 결혼해 슬하에 아들 최유성, 최유진이 있다. 큰아들 최유성은 토론토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있었으나, 현재 연기에 뜻을 두고 필름스쿨을 다니며 배우 준비중이라고 한다. 만약 정식 배우 데뷔를 하게 되면 아버지에 이어 4대째 배우를 하게 되는 셈이다. 아들은 한국말이 아직 유창하지 못하므로 아마 영미권에서 영어로 배우 활동을 할 것으로 예측하나, 최근에는 한국어 실력이 어느정도 향상된 듯하다.

같이 촬영하는 감독이나 배우들이 무서워하며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때의 경우, 감독이 최민수와 그나마 친한 이지원에게 최민수에게 전할 말을 전달했다고 한다.

장남 최유성이 2020년 12월 21일에 현역으로 입대했다. 한국말을 잘 못하고 한국에서는 외국인학교에 재학했기 때문에 한국 문화를 많이 접해보지 못해서 적응이 어려울거라는 우려가 있었는데, 결국 4일만에 지병인 공황장애가 다시 생겨 훈련소 퇴소를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며 다시 재입소 도전 중이라고 한다.

2021년 11월 4일 이태원에서 오토바이를 몰고 가다 승용차에 치어 몸 여기저기 골절상을 입었다. 둘 다 교통법규를 위반한 상태에서 난 사고이며 승용차 운전자는 뺑소니를 쳤다. 11월 6일 최민수는 골절상 치료를 위한 수술을 받았다. 사고 직후에는 멀쩡한 줄 알고 다시 일어나서 병원에 들렀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귀가했는데 그 이후 뭔가 이상해서 다시 병원에 갔더니 골절상이었다고 한다.


3. 배우의 이미지[편집]



파일:external/abae20b37e841acb446f57a2d86253604f8f0519e283ca7ab9abbd5cb4e13921.jpg

짤방으로 쓰이는 홀리데이의 그 장면.

흔히 카리스마, 터프가이등의 이미지로 통하는 배우. 데뷔작은 박봉성 만화를 원작으로 한 신의 아들로 데뷔작부터 주연을 맡았다 이후 KBS 드라마 꼬치미에서도 주연을 맡으며 지상파 데뷔. 그 뒤로 계속 영화 쪽에서 주연을 맡았으나 히트작은 없다가, 영화 남부군에서 빨치산 출신 시인 김영으로 좋은 인상을 남기고 주역급으로 참여한 MBC 드라마 고개숙인 남자와 무동이네 집이 인기를 얻으면서 인기 연기자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 다음 출연한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와 영화 결혼 이야기가 초대박을 치면서 특급 스타가 되었다. 이 무렵 최민수를 보면 데뷔작인 신의 아들에서부터 이어지는 터프가이 이미지도 있었지만 정작 최민수를 특급 스타로 만들어준 작품들은 무동이네 집부터 결혼 이야기까지 코미디 성향의 작품들이었고 93년 무렵까지만 해도 가슴달린 남자 등 코미디 성향의 작품에 출연했다.

그러다 거친 깡패 역할로 나온 93년 드라마 걸어서 하늘까지가 인기를 얻고 그 뒤로는 이미지가 터프 가이로 굳어져 버렸다. 지수원과 함께 한 사랑하기 좋은 날이나 심은하와 함께 한 아찌,아빠 같은 로맨스 섞인 영화에 주연을 맡기도 했으나 이 영화들은 큰 반응을 얻지 못했고 사이코 살인마로 분한 피아노맨 도 별 반응을 얻지 못했으며, 애정을 가지고 빵을 만드는 주인공 역을 맡은 주노명 베이커리는 영화 자체의 평가는 좋았으나 흥행에 참패하게 되면서 터프가이 이미지로 굳어버린다. 이후 2003년 출연한 드라마 태양의 남쪽에선 터프가이 이미지와는 다른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주특기는 검도로 공인 4단이며 상당한 실력자로 알려져 있다.[9] 덕분에 TV에서 검도에 관련된 행사나 프로그램을 촬영하게 되면 꼭 초청하는 배우라고 한다. 김은숙 작가가 서울예대 극작과 초청강연에서 밝힌 일화로 입봉한 지 얼마 안된 병아리 작가 시절 최민수와 작품관련해서 미팅을 가진 적 있었는데 최민수가 "은숙아... 내가... 검도를 참 잘해..." 라고 해서 이게 무슨 얘긴가 싶었던 김은숙 작가는 '아... 그러시군요 선배님...' 정도의 리액션만 보였고 이에 최민수가 '에이... 됐다 그래...' 이러고 넘어갔는데, 나중에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게 검도하는 씬을 넣어달라는 애교섞인 부탁이었단 걸 깨달았다고 한다.

게다가 오토바이 광이라서 종종 예전 이경규의 몰래 카메라에서 이런 취미를 이용해 속여넘긴 적이 있다. 심지어 영화 홀리데이에 같이 출연한 이성재도 최민수의 영향으로 바이크 광이 되었다고 한다. 언젠가 헬멧을 안 쓰고 바이크를 타는 장면이 나오는 바람에 두고두고 까인 적도 있다. 오토바이를 타기 전에는 자동차에도 조예가 깊어, 총합 180대밖에 팔리지 않은 르망 이름셔의 차주로 잘 알려져 있었다. 물론 오토바이에 꽂힌 이후에는 가차없이 팔아버렸다.

거기에 등산을 광적으로 좋아해서 그의 자가용에는 항상 등산 장비가 실려 있다. 그런데 이 때문에 어떤 노인과 시비가 붙었을 때 이 등산 장비들이 흉기로 오인받아 공갈협박 및 폭행 혐의로 입건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오히려 상대방이 먼저 시비를 건 사건으로 최민수는 무혐의 처분되었다.

노인 폭행 누명을 쓰고 산에서 지내던 시절 MBC에서 다큐 촬영을 와서 그의 일상 생활을 방송을 탄 적이 있는데 산골 이웃들과 호형호제하며 애교까지 떨며 잘 지내는 모습이 방영됐다. 이때 인터뷰에 응한 이웃 사람은 민순이 언니라고 부른다고 답했다. 또한 장염 걸려 죽어갈 때 울면서 껴안고 잤다고 하는 것 등 같이 사는 개 두 마리를 끔찍히 아끼고 오랜만에 찾아온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바베큐 파티를 준비하는 등 알려진 이미지와는 다른 부드럽고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한편 예능에선 본인이 다른 것에 얽매이지 않는 순수하고 자유로운 영혼임을 강조할 목적으로 "나는 사슴의 심장을 가진 호랑이다.", "가장 정상적인 것은 가장 비정상적인 것이다", "내가 없으면 우주가 없는 것이다." "나는 안드로메다 성좌에서 12억 광년 떨어진 별인 타우다 엘리다우스에서 태어났다." 등.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과하게 오버스러운 이야기를 많이 했다. 물론 진솔한 자기 신념 뿐만 아니라 나름의 유쾌함도 보여주려고 한 목적이 있었겠으나, 오버스러운 정도에 비하면 별로 웃기지도 않았다. 오히려 SNL이나 엄마가 뭐길래에서 보여준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 대중의 호응을 얻고 있다.

파일:attachment/최민수하지원등산복광고.jpg

등산광이라는 점 덕택에 2013년에는 하지원과 같이 등산복 CF도 찍기도 하였다. #


3.1. 연기 특징[편집]


연기자 최민수는 지나치게 빠르고 부정확하게 웅얼거리는 듯한 발음 때문에 대사 전달력이 떨어지고 너무 오버하는 연기로 캐릭터의 진정성과 작품의 리얼리티를 떨어뜨린다는 대중의 지적을 받고 있으며 또한 유명 감독들에게도 호불호가 갈린다. 나쁘게 말하면, 오버 빼면 남는 게 없다는 평도 자주 듣는다. 덧붙여서 자기 생각이 너무 강하다.[10] 참조.

다만 이런 연기에 대한 테크닉적인 평과는 별개로 최민수의 연기 스타일은 캐릭터에 완전한 몰입을 하는 메소드 연기법에 근간을 두고 있다. 배역에 얼마나 강렬하게 몰입하는 스타일이냐면, 최근 맡은 배역에 따라 인간 최민수의 실제 성향까지 변하는 수준이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과묵하고 묵직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시기라면 실생활의 최민수 역시 과묵한 큰형님 같은 성격이 되고 코믹하고 쾌할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시기라면 실생활의 최민수 역시 거기에 맞춰서 밝고 유쾌한 성격이 된다.[11]

메소드 연기를 하는 다른 배우들이 캐릭터에 몰입되어 실생활에 영향을 받고 인간으로서의 자신과 배우로서의 자신이 분리되지 못 하는 걸 꽤나 괴롭게 여기는 상황과는 다르게 최민수는 그냥 시기에 따라 몰입된 배역에 맞춰 변화하는 인간 최민수 자신의 삶을 즐기는 듯 하고, 아내 강주은 역시 오픈마인드로 이런 최민수의 성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잘 헤아리는 성격이라 어떻게든 흘라가는 대로 화목하게 잘 지내는 단란한 가정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이 힘이 잔뜩 실린 독특한 연기 톤 때문에 최민수는 연예인들이 TV에서 가장 많이 장난 삼아 흉내내는 배우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성대모사를 하는 사람들이 재미를 위해 과장을 하는 바람에 최민수의 연기 방식이 왜곡되어 인식되는 면도 있다. 사실 최민수 연기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과장된 성대모사 탓이 적지 않다. 개그맨 김준호 같은 연예인들은 최민수 성대모사를 할 때 목소리를 잔뜩 깔고, 말을 뭉개다 못해 자음을 몇 개 빠뜨릴 정도로 불분명한 발음으로, "이러.. 이러 쾀 널 가질 수 있(묵음)꺼라 생가캐쒀 너.. 넌 내 여자니카" 이런 식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이는 매우 과장된 것으로 최민수는 실제로 그런 식으로 연기를 한 적이 없다.


문제의 "이렇게 하면 널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넌 내 여자니까."(24분 47초부터)

예를 들어, 가장 성대모사본이 있는 모래시계의 원본 장면에서 최민수 연기는 눈빛만 강할 뿐 별다른 과장이 없는 깔끔한 연기다. 발음이 다소 약하긴 했어도 알아듣는 데 큰 지장이 있는 정도는 아니다.[12] 많은 사람들이 최민수 하면 '터프가이' 나쁘게 말하면 '허세' 이미지를 떠오르기에 겉멋 든 캐릭터만을 선호하는 배우라고 오해하기 쉽지만, 실제 필모그래피를 훑어보면 여느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망가지는 것'도 꺼리지 않은 연기자임을 알 수 있다.[13]

그렇다고는 해도, 감정 고조를 언제나 '말을 빨리 함'으로써 표현하는 등의 한계는 배우로서 분명 약점이었고 노년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도 완전히 극복한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2011년 작인 무사 백동수에서 전광렬과의 대결신을 살펴보면, 대사를 천천히 대신 또렷하고 분명하게 말하는 전광렬과 대조적으로 최민수는 앞서 지적한대로 빠른데다 발음이 약하고 흐릿하다. 마치 혼잣말하는 모양새같이 말이다. 2016년 대박에서도 동일하다. 2018년 작인 무법 변호사에서도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서 갈등이나 분위기가 고조되면 낮은 톤의 목소리에 약한 발음으로 빠르게 대사를 처리하는 동일한 문제점을 더러 확인할 수 있다.


무법 변호사의 한 장면.(1분 42초부터) 최민수의 대사를 알아듣기 힘들다.

그런데 그의 이런 특징이 배역을 소화하는 그의 개성과 어울리며 극의 분위기를 살리는 면도 있다. 가령 감정에 몰입하고 스트레스나 갈등이 고조될수록 목소리 톤이 살짝 낮아지고 발음이 부정확해지면서 말은 빨라지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게 오히려 갈등이 고조된 상황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올 수 있는 인간의 현실적인 모습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극의 분위기를 헤치지 않으면서 몰입감을 높인다. 예컨데 위 동영상에서 보이는 최민수는 술에 취한 상태로 스트레스에 노출된 상황이다 보니, 갈등이 고조되는 동시에 목소리가 커지면서 발음이 부정확해져도 이게 극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최민수는 발음이나 말의 빠르기에 대한 이 같은 지적에 대해서, 과거 모래시계 때에는 고의적인 연기였다고 말하기도 하고중앙일보 인터뷰, 나중의 인터뷰에서는 연기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세게 했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자기가 출연한 모래시계(드라마)는 20년이 지나서야 그나마 다운받아 봤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그의 캐릭터 연구와 접근법에 대해서는 대박에서의 숙종을 연기하면서 한 인터뷰를 통해서 알 수 있다. # #

물론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영화인이나 대중들의 연기평은 꽤 좋은 편이다. 실제로 최민수는 꽤 많은 수상 경력을 가진 배우로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대종상, 각 방송국 연기 시상식 등에서 모두 연기 관련 상을 받은 베테랑 연기파 배우의 조건을 가진 사람이다.[14] 발음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터프하고 남성적인 배역뿐만 아니라 서민이나 코믹한 역할도 문제 없이 소화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고 작품 속에서 확실한 무게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1995년에 개봉한 영화 테러리스트와 드라마 모래시계로 남성적 카리스마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하지만, 이듬해 개봉한 은행나무 침대에서 황 장군 캐릭터를 연기한 신현준이 섬세하고 슬픈 여성적인 카리스마를 지닌 배우라는 평을 받으면서 급부상한 것과 흥행 보증 수표 한석규의 등장과 코믹 영화의 대명사 박중훈의 승승장구 등등 후배 배우들의 선전으로 조금씩 하락세 테크를 타기도 했다. 1995년이 최민수의 정점이자 하락세를 타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언급된 신현준 외에도 최민수의 뒤를 이을 터프가이로 이정재가 거론되었으나, 군입대로 정우성이 물려받게 된다. '카리스마적인 배우'라는 닉네임을 이 두 배우가 물려받게 되었다. 2000년 초까지 저 세 배우는 '카리스마 3 대장'으로 통했다.

4. 기행[편집]


평소의 언동이 좀 특이하다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그의 지인들에 의해 이러한 언동이 조금씩 방송을 통해 일반에도 알려지기 시작했고, 일명 '최민수 시리즈'로 퍼지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토크 쇼를 보면 종종 들을 수 있었다.

라디오와 인터넷 등을 통해 알려진 유명한 기행으론 편의점 기행이 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다 최민수를 보았다.

펜을 하나 집어든 최민수가 갑자기 카운터 앞으로 걸어 와 아무 말도 안 하고 입으로 펜 뚜껑을 거칠게 따곤 명함으로 보이는 종이에 몇 글자 적은 뒤 펜 값을 내곤 거스름돈도 안 받고 휑하니 걸어 나갔다.


처음에는 단순한 도시전설로 치부되었으나 2006년에는 KBS의 전 예능 프로 품행제로에 출연하여 특이한 언동을 직접 선보여 화제가 되었으며 인터넷에 합성 열풍이 불기도 했다. 당시에 화제에 오른 말론 "허세부리지마!", "이 물은 엄마의 양수다." 등이 있다. 또한 이 때에 방독면도 쓰지 않고 썬글라스 하나만 걸친 채로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가스체험을 견디는 패기를 보여주었는데, 당시에는 별 이야기거리가 되지 않다가 2010년도에 이르러 뒤늦게 화제가 되었다. 덕분에 품행제로 방영 당시에 보여준 허세가 단순한 허세가 아니라는 재평가가 나오기도 했다.[15]


당시의 모습을 담은 움짤.

아내 강주은은 캐나다 교포이자 미스 캐나다 출신으로, 외국에서 자란 탓에 보편적인 한국 여성과도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캐릭터이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할 계획이었던 중에 독특한 스펙(?)을 쌓으려고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갔다가, 남편 최민수를 만나면서 인생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고 말한다. 최민수는 당시 미스코리아대회에서 노래를 부르며 참가자들을 무대 뒤에서 앞으로 에스코트해주는 역할을 했는데 강주은의 차례가 되자 평범하게 손만 살짝 잡았던 것과 달리 손을 잡으며 손등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였다. 이후 방송에서 첫눈에 반했다고 말하였는데 그 순간이었던 듯. 한국에 정착해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교육위원회 공동의장, 주한 캐나다상공회의소 이사회 이사, 서울외국인학교 대외협력 부총감을 맡았으며 현재는 관계소통 전문가로 강연을 하고 MC로써 홈쇼핑을 진행하며 다양한 활동을 하는 중. 둘은 1993년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에서 처음 만났고, 강주은의 방송국 견학 때에 최민수를 다시 한 번 만나게 되어 캐나다에 돌아갈 때 가지고 갈 기념으로 최민수의 사인을 받으려 했다고. 캐나다 교포인 강주은은 처음에 한국의 배우 최민수에 대해 잘 몰랐지만 유명한 사람이라니까 사인 한 장 받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인을 하다 말고 최민수가 갑자기 커피숍에 가자고 제안해 만난지 3시간 만에 강주은에게 결혼 프로포즈를 했다고 한다.

당연히 거절당했지만, 최민수는 포기하지 않고 이후에도 구애를 위해 자신이 어떻게 자랐고 살아왔는지에 관한 사진들을 밤새도록 정리해 바로 다음 날 강주은이 캐나다로 다시 떠날 때 김포국제공항에 직접 나가 정리한 사진들을 선물로 주고 이후 촬영이 쉬는 매주 주말마다 왕복 17시간, 총 34시간 씩 비행기를 타고 강주은이 있는 캐나다로 가서 시간을 보내고 오는 등 결혼 전 부터 아내에 대한 큰 사랑을 보여주면서 끝내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 후에도 최민수의 캐릭터가 꾸준히 유지되는 데에는 아내의 독특함도 한 몫한 듯 하니 최민수 본인은 부인과 장인 장모에게 매우 큰 애정과 감사함을 가지고 살고 있다고. 장인 어른과 장모님을 처음 만난 날, 그들이 최민수를 보자마자 갑자기 "아들아~ 어서 와라~” 라고 말하며 자연스럽게 안아주었고, 그 따뜻함에 크게 놀라 감동한 최민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울 뻔 해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고 하며 그 이후 장인 장모를 "대디~ 마미~"라고[16] 부르며 새로운 부모님처럼 생각한다고 한다.

5. 여담[편집]


  • 이미 서울예전 시절부터 인기가 대단했다. 학창 시절에 남산 캠퍼스에서 그리스를 공연하면 서울의 여대생들이 최민수를 보기 위해 그 작은 남산 캠퍼스에 몰려왔을 정도라고 하며 이 때에도 겉보기와는 다르게 심성이 여리고 굉장히 감수성이 섬세했다는 평이 많다. 단순히 이미지만으로 뜬 게 아니니만큼 배우로서의 기본기나 감성을 갖춘 것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미지에 가린 부분이 많다. 또 야간작업이 많은 서울예전의 특성상 여학우들의 어둡고 위험한 귀갓길을 돕기 위해 같이 바이크를 타던 남학우들과 결성한 동아리가 BROS 인데, 처음의 좋은 취지와는 달리 현재에는 거의 음지의 일진 동아리처럼 되어 취급이 매우 좋지 않다.

  • 가족 관계로는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영화 배우, 외할머니인 전옥 역시 악극 눈물의 여왕의 배경이 되는 유명 연기인이다. 외조부인 강홍식도 영화인이었다. 월북하였고 북한에서 유명한 영화들을 만들었으나[17] 1971년 요덕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그는 북한 영화계의 걸출한 인물이었지만 워낙 성격이 자유분방해서 김일성 우상화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해 제거한 것으로 보인다.

  • 당대의 여배우 김지미가 최민수의 계모이다. 김지미는 최민수의 아버지인 최무룡과 간통을 했으며 슬하에 1녀를 두었다. 최무룡과 김지미 사이에서 태어난 최영숙(1968년 ~ )은 최민수의 이복 여동생이다. 희한하게도 최민수는 이런 김지미를 친어머니와 동일한 대우를 하면서 아주 극진하게 모시고 있다.

  • 2003년, 야인시대에서 극중 임화수 일당에게 최무룡을 포함한 배우들이 구타당하는 장면이 나오자, 격분해서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하지 않으면 이 나라를 떠나겠다는 발언을 해서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그런데, 단순한 사실 관계만 논하자면 임화수 일당에게 최무룡이 구타당한 건 역사적인 사실이다. NTR당한 여배우들이나 담배빵당한 남자 배우들과 달리 임화수 공판기록에도 실려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오히려 해당 장면은 드라마다 보니 폭행의 강도가 실제 상황보다 훨씬 약하게 묘사됐으며, 실제로 최무룡은 당시 김희갑과 더불어 임화수에게 반항한 몇 안되는 연예인 중 한 명이었다 보니 드라마 상으로도 나름대로 당당한 모습을 보여줬다. 따라서 없는 사실을 지어낸 것도 아닌데다가 오히려 고인을 존중해서 폭력 강도를 순화하고 당사자도 멋있게 그려주는 등 나름대로 배려를 해준 입장에서 야인시대 측은 최민수에게 사과 기자회견을 열 이유가 전혀 없었고, 이후 이 사건 자체는 흐지부지 되었지만 그로부터 최민수 관련 기사에는 한동안 "아직 이 나라 안 떠났냐?", "외국으로나 꺼져라"는 식의 조롱성 댓글들이 달렸다. 오히려 진짜로 김을동에게 고소를 당해야 마땅한 왕초는 되려 김을동이 고소하지 않은 게 아이러니 하다. 왕초에서는 지나친 김춘삼 미화를 위해서 김을동의 아버지인 김두한을 마치 김춘삼의 빵셔틀처럼 묘사했는데 이게 되려 역사왜곡이며 실제 나이는 김두한(1918년 ~ 1972년)이 김춘삼(1928년 ~ 2006년)보다 10살이나 연상이기 때문에 왕초에서 묘사된 둘의 관계는 앞뒤가 안맞는다.

  • 최민수를 자주 기용한 대표 페르소나모래시계, 백야 3.98, 태왕사신기, 신의(특별출연), 등에 연출한 김종학 PD와[18] 로드 넘버 원, 오만과 편견,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 무법 변호사까지 연달아 본인의 연출작 네 작품에 기용한 김진민 PD가 있다.[19] 하지만 많이 출연한 것에 비해서 김진민 PD와 함께한 작품들은 흥행 면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해서인지 언론에서 딱히 주목하지 않는 사실이다. 이후 2020년에 김진민 PD와 다시 호흡을 맞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인간수업이 국내외적으로 좋은 평가를 얻었다.

  • 송지나 작가와 재미있는 인연인데, 송지나 작가는 최민수를 정점으로 올린 모래시계의 작가이면서, 2020년에 최민수를 다시 한번 씬스틸러로 급부상시킨 인간수업의 진한새 작가의 어머니다.

  •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다는 소문이 도는데, 전혀 아니다. 현역 만기 전역이 아닌 건 맞지만 병역필이다. 사실은 2대 독자라서 방위병으로 6개월만 복무[20]했다. 복무지는 부천시 역곡 1동대. 1~2자녀가 흔한 요즘은 턱도 없는 일이지만, 당시 입영 판정 기준이 그랬다. 몸이 아무리 건강해도 2대 독자 6개월 방위병, 3대 독자 이상 면제, 고교 중퇴이하 14개월 방위병, 중졸 미만 면제, 부선망 독자도 방위병, 편부모 자녀는 면제받던 시절이었다.[21] 따라서 그건 어쩔 수 없었고, 비난받을 건 전혀 없다. 후술할 병력과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당시에 병역 비리도 횡행하고 있긴 했다.

  • 널리 알려졌다시피 부인에 대한 사랑이 깊은데, 사실 상술된 몰래카메라에 당했던 것도 부인의 영향이 매우 크다. 최민수가 오기 전 부인이 이미 이경규와 작전을 다 맞추고 최민수를 계속 몰래카메라 상황으로 유도하는 역할을 맡기로 했다. 몰래카메라가 시작되고 바이크 전시회 진행자가 최민수에게 바이크 옆에서 이상한 자세로 사진을 찍으라는 등 계속 무리한 요구를 했는데, 최민수가 하기 싫어하거나 주저할 때마다 부인이 다가가서 하라고 시키는 바람에 계속 하다가, 마지막에 정말 상식적이지 않은 요구가 나오자 최민수가 못 견디며 강하게 거부하려 하여 몰래카메라가 망할 수도 있게 되자, 갑자기 부인이 화를 내며 "여보~ 하라면 그냥 좀 해. 당신은 왜 꼭 항상 뭘 할 때 분위기를 안 맞추고 딴지를 걸고 그래."라면서 그걸 하도록 강하게 유도했고 최민수는 (이런 요구를 받아들이라니) 당황했지만 부인의 말이니 결국 시키는 대로 하면서 작전에 다 당해버렸다. 심지어 마지막에 몰래카메라임이 공개되었을 때도 부인이 있어서 생각보다 크게 화도 못 냈다.

  • 어린 시절 부정맥을 앓았고, 그 때문에 멀쩡히 있다가 갑작스럽게 눈이 풀리면서 픽픽 쓰러지기 일쑤였다고 한다. 2013년 힐링캠프 출연 중 나온 이야기로, 당시 최민수의 표현은 "좌심방부정맥결막증"이었지만 사실 그런 병명은 없다. 다만 본인의 상황 묘사나 신체 기능 저하 설명을 볼 때 부정맥이 맞으며, 좌심방과 심장 판막이 부정맥의 원인이던 것을 병명으로 잘못 기억해서 그렇게 말한 것으로 보인다. MC인 이경규가 이때의 경험들이 삶을 한발짝 물러서서 보는 최민수 특유의 묘한 태도를 만들게 된 원인이 아닌가 하는 의도의 이야기를 꺼냈고, 최민수 본인도 그럴지도 모르겠다며 수긍했다.

  • 김정식, 최수종, 박해일 등에게 얻어맞았다는 소문[22]이 있는데, 본인이 라디오 스타에 출연하여 그런 비슷한 일도 일어난 적이 없다고 딱 잘라서 말했다. 왜 그런 소문이 돌았는지 전혀 모르겠다고 얘기했으며 최민수의 이미지 탓에 싸움 관련한 소문이 끊이지 않는데, 그걸 떠나더라도 선후배 관계가 확실한 연예계에서, 일단 대접받는 원로 배우의 2세(정확히는 3세지만, 외조모 전옥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인 최민수가 저 셋에게 폭행을 당한다는 상황은 벌어지기 힘들다. 그러나 김정식의 경우 실제 방송에서 언급한 사례가 있다. 물론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 실제 맞았을 수도 있지만, 김정식이 선배라 그냥 맞았을 확률이 높았을 거라 본다. 실제 둘의 체격 차이는 상당하고, 김정식도 군기반장주먹으로 유명하지만 최민수도 검도, 복싱 등을 연마했고, 감독들이 액션 연기 잘 하는 배우로 손꼽는 수준급의 파이터이다. 영화 블랙잭에서 벗은 몸매를 보여주는데, 엄청나게 단련한 몸이다. 그런 몸에 무술 실력도 있는데 싸울 맘이 있었다면 맞을 리가 없다. 최수종은 나이는 동갑이나 최민수 쪽이 연예계 데뷔가 빠르다. 최수종도 주먹 세기로 유명한 배우라 혹시 다툼이 있었을 수가 있는데, 만약 정말로 맞았다면 검도를 연마한 최민수가 최수종에게 일방적으로 죽도록 맞았을 가능성이 있다. 싸우다 쌍방 폭행으로 재판받을 때엔 무술을 익힌 사람이 불리하기 때문. 그런데 오히려 김정식의 경우는 콕 집어 최민수가 방송에서 언급한 사례가 더 있기 때문에 사실일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 편이다. 라디오 스타보다 훨씬 더 과거 시절 야심만만에 출연해서 강호동에게 이에 관한 질문을 받았는데 당시 강호동은 특정인을 언급하지 않고 “다른 연예인에게 맞았다는 소문에 대해 아느냐, 맞은 적이 있느냐?”라고 질문했음에도 최민수가 "나는 그것 때문에 미치겠다. 특히 내가 무슨 김정식 씨 그 양반한테 맞았다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문이 났다는데 내가 진짜 황당하다가… 무슨 소문에 내가 그 양반한테 맞고 무릎을 꿇고 빌고 어쨌다느니… 내가 답답해 화가 나가지고…"라면서 진행자는 말하지도 않은 김정식을 대놓고 언급하며 강한 분노를 표출한 적이 있다. 흔히 김보성과 더불어 실제로는 싸움을 잘 못 하는 연예인이라는 소문이 있다.

  • 수도권에선 모래시계 방영 당시, 그 신드롬 덕에 청소년층의 희망 직업 1순위가 조직폭력배가 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저 여러 아동 단체에서 항의를 받기도 했다. 당시 10대의 최우수 선호도 직업이 조폭, 그 다음이 검찰청의 검사였다.

  • 지저분한 이야기가 돌던 배병수[23] 사단 출신이기도 하다. 남부군에 출연한 것도 배병수의 추천 때문이었다. 연기 가능성과 성실함 때문에 정지영 감독의 다음 작품인 하얀전쟁에도 출연할 뻔했는데 TV 드라마 출연 때문에 고사했고 그 역은 이경영에게 돌아갔다.[24] 그러다 정지영 감독의 그 다음 작품들인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블랙잭에 다시 참여한다.

  • 사랑이 뭐길래에서 대발이 역을 맡았고, 이 극중 캐릭터 대발이가 등장하는 유머 시리즈가 최불암 시리즈와 비슷한 혹은 이른 시기에 유행한 적 있다.

  • 기억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기억력의 편차가 심하고, 소위 명언이라고 불리는 말들을 하고, 기억이나 말이 보통 아름답게 미화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김태원과 닮아있다. 다만 김태원은 어린 시절엔 튼튼하다가 크면서 병약해졌다면, 최민수는 어린 시절엔 병약하다가 크면서 튼튼해진 케이스였다. 둘 다 아내에게 꼼짝 못 한다는 점도 닮았다.

  • 개그야에서 개그맨 조원석이 최국의 별을 쏘다라는 코너에서 "죄민수"로 패러디한 적이 있다. 방송시기를 보면 영화 홀리데이에 등장한 최민수를 패러디한 캐릭터이다. 사실 개그야 프로그램 자체는 초기에 사모님, 주연아 같은 인기 코너들과 함께 이 코너 또한 콘셉트를 잘 잡았는지 프로그램 자체가 초기엔 인기가 좋았는데, 정작 후속 코너들이 별로 인기를 못 끌어서 그 후로는 조용히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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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에 '최민수 록산밴드'라는 이름으로 가수로 활동한 적이 있다.[25] 음반 명은 '남자 이야기'. 인기가 별로 없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꽤 드물다. 사실 훨씬 이전에도 가수활동을 하였는데 1988년 출연 영화 '그녀와 마지막 춤을' OST에 참여하여 강애리자와 같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1995년에는 대전 엑스포과학공원 자동차극장[26]에서 KBS 빅쇼를 열었다.[27]

  • 2009년, 할리우드에서 <서펜트 라이징>이라는 액션 영화에서 주연으로 출연했다고 한다.

  • 결혼 초기, 아내 강주은이 첫 월급을 타오자 최민수는 봉투를 덥썩 집어들곤 싱글벙글하며 밖으로 나갔다고 한다. 그 돈으로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간 줄 알고 실망한 강주은은 "이 남자는 조건 없이 사랑해야겠구나, 무언가를 기대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몇 년 후에 강주은이 사촌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두고 도움을 주고싶은 마음에 고민하고 있자 검도 관련 서적에 숨겨뒀던 그 월급 봉투를 꺼내와 "네가 처음으로 받은 월급인데 의미 있게 쓰고 싶었다.”며 그대로 돌려주자, 강주은은 "그 돈으로 술마시러 간거 아니었어?"라고 놀라며 물었다. 그러자 최민수는 어리둥절해하며 "어떻게 당신의 첫 월급으로 술을 마시러 갈 수가 있느냐"고 대답했다고 하며 강주은은 이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 룰라의 이상민이 이혼당시 기자회견장에 오토바이 라이더 복장으로 함께 있었는데 훗날 해피투게더에서 밝인 바로는 사실 최민수는 참석할 생각도 없었고 알고 간 것도 아니었다. 당시 최민수와 이상민은 실제로 가까운 사이긴 했지만 기자회견 자체는 정말 몰랐다고 한다. 그저 바이크를 타고 가던 중 사람들이 득실득실하고 카메라도 보이기에 슬쩍 가봤는데 기자들이 그를 보고는 모세의 지팡이에 홍해가 갈라지듯이 길을 터주고 진행 요원들조차도 막지 않고 안내를 해줘서 그야말로 얼떨결에 그 옆에 앉은 것이었다고. 그나마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최민수 본인에게 기자들의 질문이 들어오자 '이분들(이상민을 비롯한 이혼 당사자들)은 시간과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라는 원론적인 발언을 하며 어찌어찌 수습하였다고 한다. 해피투게더4의 해당 장면

  • 처가집 방문 등을 위해 캐나다를 갈 땐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최민수와 동명이인의 범죄자가 여럿 있어서 입국 심사 때 따로 조사받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캐나다 정부로부터 발급받은 별도의 신원 증명 서류도 따로 챙긴다고 한다.

6. 근황[편집]


  • 2009년 8월, 세바퀴에서 룰라 이상민이 '다짜고짜 스피드 퀴즈'의 상대로 최민수를 지목해 전화를 걸었다. 그때 최민수가 '너 누구냐? 너 세바꾸(세바퀴)냐?'고 물어본 것을 볼 때 TV도 꾸준하게 보는 모양. 사실 그 이전에 <한밤의 TV연예>에서 인터뷰하러 그의 자택을 촬영한 영상을 보면 배경에 스카이라이프 접시가 있다.

  • 2012년, 무신천하라는 온라인 게임의 홍보대사로 발탁되어 뿌잉뿌잉함을 자랑하고 있다. 선전용 배너를 보면 알 수 있다.

  • 2013년, 힐링캠프에 출연해 어릴 적 앓았던 병이나 이런 저런 자잘한 부분들에 대해 토크를 했다. 이 날 이경규에게 세뱃돈으로 20,000원을 받아갔다. 아내에게 용돈을 타 쓰다가, 지갑에 돈이 있으면 남을 줘버리는 통에 이젠 그나마도 아내가 잘 안 준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지갑을 확인했는데 돈이 하나도 없자 이경규가 20,000원을 넣어준 것이었다. 그 전까지 나이가 먹어서 세뱃돈을 받을 수 없는 나이가 됐을 때 정말 아쉬웠었다는 이야기도 했기 때문에, 20,000원에 대한 보답으로 세배를 하였다. 심지어 그 전까지 사적인 친분이 적었기에 이경규에게 "이경규 선배님"이라는 호칭을 썼는데, 이걸 받자마자 "형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해서 계속 형님이라고 불렀다.#

  • 2013년,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 코리아 시즌 4에 호스트로 출연하였다. 여기서 평소에 쌓아왔던 폭주족 이미지와 모래시계, 홀리데이 등 자신이 여러 작품에서 보여줬던 연기 등을 패러디하며 제대로 망가져 큰 웃음을 선사했다. 특히 홀리데이 패러디는 가히 압권이라 할 만하다.

  • 2014년, MBC 연기 대상에서 "아직도 차가운 바다 깊숙히 갇혀 있는 양심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는 말을 전하며 수상을 거부하여 화제가 되었다. MBC는 세월호 관련 은폐 의혹이 있다. 수상 거부의 뜻은 같은 작품에 출연했던 백진희가 대신 전했다. 다만 '상 받는 거랑 세월호랑 무슨 상관이냐', '수상 거부는 본인이 하지 왜 후배 백진희한테 시키냐'라는 등 비판의 소리도 많았다.

  • 2015년 TV조선의 예능 프로그램인 엄마가 뭐길래에서 나오는데, 나름 사업도 꾸려보고 인테리어도 하는 등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아내 강주은한테 대놓고 무시당한다. 평소 아내에게 돈을 못 번다고 무시당하는 것은 물론, 설거지와 운전 등을 도맡아 하며 '저리 꺼져!'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남편이 꾸려가는 사업체에 와서 흉까지 보고 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때 상남자 캐릭터로 유명했던 최민수가 부인한테 공처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걸 보면 뭔가 기분이 묘하다. 하지만 최민수의 다양한 사건과 사고 속에서도 최민수를 잘 잡아주고 믿어주며, 캐나다에서 나고 자란 그녀가 최민수 하나만 믿고 낯선 한국 땅에 발을 붙이면서도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 아들 둘을 훌륭하게 키워내는 것으로 네티즌들 사이에서 '강사임당'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최민수 부인 강주은의 자녀 교육법 이후 한 팬이 직접 만나 올리브 한 박스를 선물했다. 또한 자녀인 두 아들과는 아주 친밀하고 격의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들들과 킬킬거리며 장난을 치는 모습을 보면 이 사람이 작품 속의 그 터프가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 2016년에는 SBS 사극인 대박에서 숙종 역을 맡았다. 무서운 카리스마와 툭하면 폭발하는 성격, 그러면서도 진짜 속내는 잘 드러내지 않는 등 실제 기록에 등장하는 숙종과 가장 가까운 모습을 묘사했다. #


  • 2017년 7월 19일부터 동년 8월 24일까지 방영한 죽어야 사는 남자에서 드라마를 훌륭하게 이끌었으며,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최민수 때문에 본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듬해 출연한 무법 변호사에서도 호연을 보여주었다. 이제는 포지션으로 조연급으로 출연하지만 주연을 능가하는 아우라를 보여주고 있으며, 과거 그의 영광을 기억하는 많은 대중들은 열광하고 있다.

  • 2021년 11월 4일에는 서울 이태원동의 한 도로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승용차와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사고 직후 병원으로 이송된 뒤 본인 의지로 귀가했다가 증상 악화로 다시 병원을 방문해 11월 6일 갈비뼈 4개와 쇄골 골절 및 부분 절단 긴급수술을 받았다. #1 #2


6.1. 런닝맨에서[편집]


2011년, SBS의 예능 프로그램인 런닝맨에 게스트로 출연해서 런닝맨 헌터 기믹으로 대활약. 1 VS 7의 조건에다가 멤버들을 반드시 순서대로 잡아야 하는 제약까지 걸어놨는데도 능력자 김종국이 고분고분하게 이름표를 조공할 정도의 패기를 선보였다. 그야말로 진 최종 보스 수준. 하지만 마지막 순서 에이스 송지효를 놓쳐서 졌다. 이 때 그의 모습은 승부 따윈 안중에도 없이 사냥만을 하는 사냥꾼 그 자체였다. 그 다음 회에도 연속 출연했는데 다음 회에 한 것은 팀 대항 추격전. 이때는 런닝맨 헌터가 아닌 일반 게스트로 나왔다. 유재석 팀과 동맹을 맺었으나 유재석의 갑작스런 배신에 맥없이 아웃당했다. 유재석에게 배신당한 후 웃더니 제작진에게 "있잖아! 나 두 달 내로 런닝맨 한번만 더 잡아줘! 메뚜기 사냥!"이라는 말을 남겼는데, 일정 문제인지 두 달 넘게 재출연하지 않았다. 그리고 잊히나 했지만 오히려 이 특집에서 인상깊었던 건 지석진이 최민수에게 민수 형이라고 하면서 반말을 한다는 것. 지석진이 꽤나 동안인데다 약골 이미지가 있어 잘 느껴지지 않지만 둘은 4살 차이밖에 안 나고 지석진이 빠른 생일이라 대충 한국식으론 3살 차이라 퉁쳐도 된다. 반말을 해도 이상하지는 않은 정도의 나이차인 셈이었다.

2011년 11월 20일에 방영한 런닝맨에서 런닝맨 헌터 시즌 2 메뚜기 사냥에 들어갔다. 다른 멤버들은 영문도 모른채 감금당한 상태라서 분량이 많지 않았고 최민수와 유재석의 1 VS. 1 추격전. 나머지 멤버들은 단순한 겉절이가 아닌 최민수의 라이프 포인트로서 취급되었다. 즉, 최민수의 라이프 포인트는 4개고[28] 함정이 아닌 멤버들의 이름표가 뜯길 때마다 최민수의 라이프 포인트가 깎이는 방식. 하지만 함정인 멤버[29]의 이름표를 뜯을 경우, 유재석이 메뚜기 탈이나 향수를 뒤집어 쓰는 페널티를 받는다. 결과는 최민수의 의도적인 신승. 처참하게 응징당하는 유재석의 모습을 볼 수 있다.[30] 최민수가 클로징도 참여하지 않고 그냥 떠나버리자 유재석이 겁도 없이 '민수 형 1승 1패에요'라고 도발하자 재출연을 암시했다.

2012년 11월 4일 방영한 런닝맨에 '헌터의 역습 최후의 사냥'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등장했다. 1년 전처럼 모든 일을 계획한 뒤 박보영과 짝이라는 설정으로 멤버들을 속인 뒤 분위기의 반전을 이끌어냈지만 런닝맨 쪽에 지나친 페널티가 있었다는 점 때문에 재미가 반감되었다. 우선 출연진들은 박보영과 짝이라는 설정으로 인해 최민수의 존재를 아예 모르고 있는 상황, 최민수가 나올 때마다 멤버들이 스스로 소심해진다는 점. 새벽부터 와서 필요한 장비들을 설치하고 답사를 통해 현장의 동선까지 파악하고 있어서 최민수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가장 큰 문제점은 규칙을 미리 알았다고 한들 멤버 6명이 제거될 때까지 최민수는 무적이라는 것이다.[31] 이를 악용하면 최민수의 최후의 상대가 송지효 혹은 지석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 방송과 비슷한 허세 쩌는 콘셉트가 3번째 반복되었기 때문에 상당수의 시청자들이 재미 없다/지겹다/강압적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그를 비난했다.

그러나 납량 특집만큼 스릴 있고 재미 있다면서 그를 옹호하는 시청자들도 많았다. 굳이 콘셉트로 따지자면 던전 속의 보스다. 다만 유재석과 1:1 상황이 되었을 때 2번이나 유재석의 기습을 막아낸 것은 압권이었다. 옷 정리하다 이름표 자리가 드러났는데, 유재석이 몰래 이름표를 붙이려는 순간 한 팔로 탁 잡아버리며 과거의 실수를 뒤집었다. 그 뒤 거리가 좀 떨어진 상태에서 유재석이 도박하는 심정으로 이름표를 집어던져 붙이려 했는데 재빨리 몸을 돌리며 무력화시켰다. 여담으로, 마지막 승리 이후의 장면이 뭔가 수상한데, 멤버 전원을 아웃시켜 승리한 후 최민수는 갑자기 등을 돌리며 어디론가 걸음을 옮기고, "그럼... 이제..."라는 자막이 나오며 뭔가를 더 암시하려는 듯 하다가 끝난다. 최민수의 추후 출연에 대한 떡밥 연출로 보이나, 9년이 지나고, 제작진도 바뀐 현재는 기약이 없다.

7. 출연작[편집]



7.1. 영화[편집]


연도
제목
배역
비고
1985년
[32]


1986년
신의 아들
최강타
주연
1988년
그녀와의 마지막 춤을
오혜석
그 마지막 겨울
인태
1990년
남부군
김영
남자시장
영훈
겨울 꿈은 날지 않는다
신길우
1991년
아그네스를 위하여
황미호
1992년
미스터 맘마
형준
결혼 이야기
김태규
1993년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조현재
가슴 달린 남자
최형준
망각속의 정사


밀월여행

주연
1994년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임병석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특별출연
블루 시걸
하일(목소리)
주연
1995년
테러리스트
수현
사랑하기 좋은 날
공인회계사 형준
아찌,아빠
영수
리허설
민수
1996년
나에게 오라
정석
피아노 맨
피아노맨
1997년
인샬라
한승엽
블랙잭
오세근

죽이는 이야기
개눈
특별출연
1998년
남자 이야기
봉만
주연
1999년
유령
202
2000년
주노명 베이커리
주노명
리베라 메
조상우 역
2001년
조폭 마누라
엔딩 칼잡이 대결남
특별출연
2002년
예스터데이
골리앗
주연
서울
김윤철
2003년
청풍명월
지환
2005년
신화 - 진시황릉의 비밀
고조선 장군 역
특별출연
2006년
홀리데이
김안석
주연
조폭 마누라 3
사시미
특별출연
2011년
최민수의 어쌔씬 코드
칼 킴
주연
2014년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대포
2023년
웅남이
이정식



7.2. 드라마[편집]


연도
방송사
제목
배역
비고
1987년
파일:KBS 1TV 로고(1984-2018).svg
TV 문학관 - 밀월여행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꼬치미


1991년
파일:MBC 로고(1986-2005).svg
베스트극장 - 달
[33]

고개숙인 남자
인수

무동이네 집
이수현

사랑이 뭐길래
이대발
주연
1992년
4일 간의 사랑
박승찬

1993년
엄마의 바다
이동재

걸어서 하늘까지
물새 정호

1995년
파일:SBS 로고(1994-2000).svg
모래시계
박태수
주연
1998년
백야 3.98
권택형 소좌
2000년
사랑의 전설
민석

2003년
태양의 남쪽
강성재

2004년
파일:MBC 로고(1986-2005).svg
한강수타령
신률

2007년
파일:MBC 로고(2005-2011).svg
태왕사신기
대장로
조연
2009년
파일:SBS 로고.svg
아버지의 집
강만호
주연
2010년
파일:MBC 로고(2005-2011).svg
로드 넘버 원
윤삼수 대위
2011년
파일:SBS 로고.svg
무사 백동수

2012년
파일:JTBC 로고.svg
해피엔딩
김두수
파일:SBS 로고.svg
신의
문치후
특별출연
파일:KBS 2TV 로고(1984-2018).svg
KBS 드라마 스페셜 - 태권, 도를 아십니까
도현 부

2013년
칼과 꽃
연개소문
주연
2014년
파일:MBC 로고.svg
오만과 편견
문희만
2016년
파일:SBS 로고.svg
영주
만식
대박
숙종
2017년
파일:tvN 로고(2012-2021).svg
그녀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해
강인우

파일:MBC 로고.svg
죽어야 사는 남자
사이드 파드 알리 백작
주연
2018년
파일:tvN 로고(2012-2021).svg
무법 변호사
안오주
2020년
파일:넷플릭스 로고.svg
인간수업
이왕철



7.3. 연극[편집]


연도
제목
배역
비고
1985년
방황하는 별들




7.4. 예능[편집]


  • 2006년 KBS 2TV 해피 선데이 - 최민수 김제동의 품행제로
  • 2006년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 - 형님뉴스의 최만수 174회 - 특별출연
  • 2007년 MBC 황금어장 - 무릎팍도사[34]
  • 2011년 SBS 런닝맨 - 52회~53회, 69회[35]
  • 2012년 SBS 런닝맨 - 118회[36]
  • 2012년 MBC 라디오 스타 - 228~229회 - 단독출연
  • 2013년 tvN SNL 코리아 - 본인 역
  • 2015년 KBS 나를 돌아봐
  • 2015년 TV조선 엄마가 뭐길래
  • 2016년 M.net 너의 목소리가 보여
  • 2017년 1월 22일 ~ 1월 29일 MBC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 애교쟁이 꼬꼬마인디언이라는 가명으로 출연
  • 2017년 MBC 일밤 - 은밀하게 위대하게
  • 2018년 SBS 가로채널
  • 2018년 SBS 집사부일체 - 25대 사부로 출연
  • 2022년 KBS 갓파더


7.5. 광고[편집]




8. 수상[편집]


수상 연도
시상식
부문
작품
1987년
제11회 황금촬영상
신인남우상
신의 아들
1989년
제2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신인연기상
그녀와의 마지막 춤을
1990년
제11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
남부군
1991년
제12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아그네스를 위하여
1992년
제28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인기상
사랑이 뭐길래
MBC 연기대상
남자 우수상
제13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미스터맘마, 결혼 이야기
1993년
제29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걸어서 하늘까지
제31회 대종상 영화제
남자 인기상
결혼 이야기
제14회 청룡영화상
인기스타상
가슴 달린 남자
1995년
제16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테러리스트
인기스타상
제22회 한국방송대상
최우수 탤런트상
모래시계
제31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SBS 연기대상
대상
TV저널 올해의 시상식
탤런트부문 대상
1996년
제34회 대종상 영화제
남우주연상
테러리스트
제19회 황금촬영상
최우수 인기남우상
2000년
제37회 대종상 영화제
남우주연상
유령
SBS 연기대상
창사 10주년 기념 빅스타상
모래시계
2001년
제3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리베라 메
2003년
대한검도회
공로표창

2004년
MBC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연기상
한강수타령
2007년
MBC 연기대상
사극부문 황금연기상[37]
태왕사신기
2014년
MBC 연기대상
남자 황금연기상[38]
오만과 편견

9. 논란 및 사건사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최민수/논란 및 사건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 엄마가 뭐길래 29화에서 밝힘. [2] 아버지가 한국인이고 어머니는 캐나다인이기 때문에 한국, 캐나다복수국적이다. 2020년 12월 21일 대한민국 군에 현역으로 입대했으나 공황장애가 심해지면서 24일 퇴소 후 재입대를 하기로 결정했다. #1 #2[3]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기사[4] 원조 한류드라마로도 꼽히며, 아직도 한국 방송 역사상 시청률 1위를 맡고 있으며, 당시 뉴스 시청률보다도 높았다. 노태우의 신 북방정책으로 중국과의 문화교류가 조금 시작되자마자, 한국 최고의 드라마로 꼽혀 중국에 수출되었고 중국에서도 "한국 드라마가 재미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며 문화차를 큭복하고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야말로 걸작이었다.[5] 드라마 마지막회에서 사형장에서 친구이자 검사였던 박상원에게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나지막하게 한 "나 떨고있냐?" 역시 명대사 중 하나다.[6] 물론 김용건과 최무룡은 연예인으로 경력 차이가 너무 많이 나기에, 부친의 배우 경력을 완전히 압도했다고 공인받는 하정우처럼 큰 갭으로 평가는 안 된다. 최무룡은 후배 신성일이랑 비교할 레벨이라, 김용건과 비교도 안 되게 너무 대스타였기 때문. 신성일은 외모가 뛰어난 것에 비해 발성 연기가 안 좋아 대역성우를 썼지만, 최무룡은 성우 출신으로 목소리 연기도 뛰어났었다. 60년대에 간통죄로 잡힌 사건이 아니었으면, 신성일이 최무룡만큼 성장하기 힘들었을 수도 있다. 오히려 최무룡과 비교될만큼 성장한 최민수가 놀라운 업적을 이룬 것이다.[7] 강효실은 젊었을 때는 대단한 미인이었지만 최무룡과의 이혼 후 TV에 등장했을 때는 뚱뚱한 못된 시어머니역을 자주 맡았다. 전 남편보다 4살 어렸지만 보다 이른 나이에 사망했다. 1996년 사망했다.[8] 강효실은 월남했지만, 최민수에게는 외삼촌, 이모가 되는 강효실의 동생들은 모두 북한에 그대로 남았다.[9] 다만, 해동검도총재를 의식한 대한검도회의 적극적인 푸쉬도 있었다.[10] 월간 로드쇼 1996년 2월호 최민수를 평가하는 감독들의 코멘트에 나와 있다.[11] 홀리데이의 악역 김안석으로 출연한 다음 해인 2007년에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을 때는 굉장히 사색적이고 염세적인 성격, 서민가장으로 분한 해피엔딩에 출연한 2012년에 라디오 스타에 출연했을 때는 분위기 자체가 눈에 띄게 밝고 드립도 유쾌하게 받아주는 성격이 되었고 칼과 꽃 연개소문으로 출연한 해인 2013년에 라디오 스타에 출연 했을 때는 과묵하고 묵직한 성격으로 비춰지던 최민수가 죽어야 사는 남자에 출연한 이후 2017년에 다시 한 번 라디오 스타에 출연했을 때는 같은 사람이 맞는 지 의심 될 정도로 쾌남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12] 사실 실제 방송분을 보면 많은 연예인들이 예능에 나와 성대모사를 하는 것처럼 그렇게 과장된 발음은 아니다. 오히려 성대모사에 비하면 원본은 또박또박하기 까지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1995년 당시 기준으로도 그다지 선명한 발음은 아니였다. 이에 대해 최민수는 2012년 라디오스타에 나와 주인공 박태수는 좌익 빨치산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나 광주를 무대로 조직 폭력배 생활을 시작한 호남 청년이기 때문에 호남 방언을 사용했어야 했지만 당시는 미디어에서 주연들이 사투리를 사용하는 건 금기시됐었기 때문에 호남 출신의 정서를 잡아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발음을 흐렸다고 밝혔다.최민수 "'모래시계' 때 발음 일부러 흐렸다"[13] 대표적인 경우가 영화 홀리데이. 비록 작품성 흥행 모두 실패했고 최민수의 연기도 크게 혹평받았으나, 최민수는 여기서 권력이 있을 땐 한없이 오만하게 굴다가 막상 죽음의 위협이 닥쳐오자 정말 추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연기를 펼쳤다. 이 장면에선 정말 최민수 특유의 간지나 카리스마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14]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대종상의 남우주연상을 모두 보유하고 있으며, SBS의 드라마 모래시계론 1995년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솔직히 말해서 수상경력으론 최민수를 넘을 만한 동년배 배우가 드물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인물이기 때문이다.[15] 이 화생방 퍼포먼스가 연출이다, 주작이다, 편집이다 란 말도 돌았지만 이후 한 토크쇼에서 사실임을 인증했다. 하지만 본인도 끔찍한 기억이었는지 차마 여기서 굳이 허세를 부리진 않고 "사실은 참는데 죽는줄 알았다.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한다."는 말도 남기기도 했다.(...)[16] 영어에서 장인, 장모, 그리고 시부모에 대한 호칭은 공통적으로 father/mother-in-law다. 이들이 사위/며느리보고 "Call me dad/mom"이라고 하는건 너를 자식으로 생각할 정도로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물론 실생활에선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17] 그중 하나가 북한 사람을 괴롭히는 미국 목사.[18] 물론 김종학 PD의 또 다른 페르소나라 할 수 있는 송지나 작가의 작품도 많이 출연했지만 이는 김종학 PD 연출작 한정이지 송지나 작가가 김종학 PD와 합작하지 않았을 때엔 최민수를 기용한 적이 없다. 송지나 사단은 박상원, 김미경(1963) 등이 오히려 더 가깝다.[19] 대표 연출작으로 신돈, 개와 늑대의 시간, 달콤한 인생 등이 있으며, 배우 김여진의 남편으로도 유명하다.[20] 같은 케이스가 배우 김수로이다. 역시 남자다운 이미지가 있지만 의외로 방위. 부사망 독자라는 사유로 6개월 방위를 했다. 방위 퇴근하고 연기학원을 다녔다고 한다.[21] 판정이 후했던 이유는 최민수 출생 당시가 전후 베이비 붐 세대이며, 가족계획은 시행되기 전이라 인구가 가장 많이 늘던 때이기 때문이다. 징집 연령대 남자가 필요한 군 인력을 한참 뛰어넘었으며 국군 규모를 늘린 예산도 없고 병력 규모 자체도 미국의 영향을 받다 보니 나머지는 다 보충역 아니면 면제로 빼던 시절이다. 또한 2대 독자, 3대 독자를 방위나 면제로 빼주었던 건 당시에는 대를 잇는다는 개념이 지금과는 비교가 불가능하게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이기도 하고, 특히 부선망 독자의 경우 혹여 군대에서 크게 다치거나 죽기라도 하면 가장을 잃은 셈이라 남은 가족들의 살길이 막막해지기 때문이기도 했다.[22] 사실 90년대에 돌던 소문 중에는 이들뿐만 아니라 엄청난 수의 인물들이 있었는데, 최민수보다 후배인 최재성 같은 터프가이 이미지 배우들에게 맞았다는 루머도 있었다.[23] 엄청난 로비력으로 90년대 초반 방송계를 주름잡던 인물이었다. 최민수, 최진실, 엄정화가 모두 배병수의 작품이다. 이외에 독고영재, 허준호, 최진영도 데뷔시켰고 당시 신인이었던 이병헌, 이영애를 관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1995년 최진실의 로드매니저(일명 가방모찌) 전용철과 공범인 김영민에게 살해당해서 시체로 발견됐다. 아직도 이와 관련한 음모론이 떠돌기도 하고, 이 사건으로 각종 연예계 비리가 대거 폭로되었다.[24] 그때 출연한 드라마가 사랑이 뭐길래.[25] 사실 이 시기가 가수들이 한창 인기를 끌던 시기였고 이 때문에 배우들 역시 너도나도 음반을 내고 가수로 활동하는 게 유행하던 시기였다. 최민수 외에도 홍경인 등의 배우들도 음반을 냈다.[26] 지금은 폐쇄되었고 2018년 별빛자동차극장으로 서구 오동으로 이전.[27] KBS대전방송총국 개국 52주년을 맞이하여 열었다.[28] 이때 유재석은 뗄 수록 크기가 작아지는 마트료시카식의 이름표를 3개 부착하고 있었으며 제작진은 유재석의 이름표 중 3개는 상기대로 유재석에게 붙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담당 VJ에게 붙였다. 이때 최민수에게는 절대 알려주지 않았는데 유재석에게서 마지막 크기의 이름표를 보고 간단하게 간파하여 VJ는 저항도 못 하고 금방 뜯겼다.[29] 이광수, 김종국. 유난히 의심이 많았던 2명을 선정했다고 한다.[30] 최종 단계에서 차를 타기 전에 유재석을 겁먹였다가 이름표는 떼지 않고 그냥 갔으나 이를 눈치챈 유재석 일당이 재빠르게 차를 타고 도망가려던 찰나에 운전석 차문을 열고 다시 돌아와 잊은 게 있다면서 마지막 1개를 떼고 유유히 사라졌다.[31] 최민수를 무찌르려면 6장으로 나눠진 최민수의 이름표 조각을 모아 하나로 합쳐 최민수의 등에 붙여야 하는데 맴버 1명이 제거된 자리에서 이름표 1조각이 생기기 때문에 6명이 제거될 때까지는 절대로 이름표를 완성할 수 없기에 최민수를 아예 쓰러뜨릴 수 없다.[32] 단편영화[33] 성경 외경의 유디트 이야기를 재해석해서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여기서 유디트를 모티브로 한 조선 여인으로 오연수가, 적장 역으로 최민수가 연기했다. 작품 자체는 수작이었지만 당시엔 상당히 논란이 많았다. 먼저 최민수가 연기한 왜장은 공정하고 무사도를 중시하는 유능한 무장으로 나와서 미화 논란이 있었다. 또한 오연수가 연기한 조선 여인은 그 왜장을 유혹해서 잠자리를 함께하고 이를 이용해서 암살하였는데, 이후 조선 특유의 엄숙주의 때문에 '왜장과 몸을 섞었다는 비방을 당하고 괴로워하다가 왜장을 그리워하며 죽는 모습으로 나왔다. 그래서 더더욱 논란이 커진 것.[34] 시청자들과 MBC가 인정한 최초의 게스트다.[35] 69회는 유재석과 대결1.[36] 118회도 유재석과 대결2.[37] 부인 강주은이 대리수상했다.[38] 시상식엔 불참했으며, 함께 출연한 배우 백진희를 통해 대리 수상소감을 전하였는데 이것이 화제와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자세한 건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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