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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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용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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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용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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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삼성 블루윙즈 10주년 베스트 XI
FW
샤샤
FW
나드손
}}}
}}}
GK
이운재





대한민국의 축구인

파일:FC탑걸_최성용.png
이름
최성용
崔誠勇|Choi Sungyong
출생
1975년[1] 12월 25일 (48세)
경상남도 마산시 합포구[2]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신장 173cm|체중 70kg
직업
축구 선수 (수비수[3], 미드필더[4] / 은퇴)
축구 코치
학력
마산합포초등학교 - 마산중앙중학교 - 마산공업고등학교 - 고려대학교
소속
선수
상무 축구단 (1997~1998 / 군 복무)
비셀 고베 (1999~2000)
LASK 린츠 (2001)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2~2006)
요코하마 FC (2006 / 임대)
울산 현대 (2007)
자스파구사츠 군마 (2008~2010)
코치
강원 FC 2군 (2011~2012)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3~2018)
다롄 이팡 (2019)
상하이 선화 (2019~2021)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22~2023 / 수석 코치)
감독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23 / 감독 대행)
국가대표
65경기 1골 (대한민국 / 1995~2003)

1. 개요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4. 지도자 경력
4.1. 수원 삼성 감독 대행
5. 지도 스타일
6. 여담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축구 코치.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마산 출신으로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상무에 입대하여 군 복무를 마쳤다.[5]

제대한 후 1999년 J리그 클럽 비셀 고베에 입단, 비셀 고베에서 김도훈, 하석주와 함께 코리안 삼총사로 활약하며 2시즌 동안 51경기에 출장하였다.

2001년 1월, 강철과 함께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 클럽인 LASK 린츠에 입단해 13경기 1골을 기록했지만 팀은 2부리그로 강등되었고, 다음 시즌에는 6경기 출장에 그쳤다.

결국 2001년 10월, 계약금 3억원과 연봉 1억원의 조건으로 K-리그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하였다. 수원에서 5시즌 동안 컵대회를 포함해 104경기를 뛰면서 1골 5도움을 기록하였고, 팀이 리그, FA컵, 하우젠컵,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아시아 슈퍼컵, A3 챔피언스컵 등 수많은 대회에서 트로피를 획득하는데 일조하였다.

2006년 7월 요코하마 FC로 임대되어 22경기에 출장하며 팀의 1부리그 승격에 공헌하였다.

2007년 울산 현대로 이적하며 K리그에 복귀했으나 8경기 출장에 그쳤고, 구단의 은퇴 권유를 거부하고 2008년 J2리그인 더스파 구사쓰로 이적하였다. 구사쓰에서 3시즌 동안 48경기에 출장하고 2010년 12월 4일, 공식적으로 은퇴 경기를 갖고 쿠사츠에서 축구 선수 생활을 마쳤다.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1 이운재 · 2 현영민 · 3 최성용 · 4 최진철 · 5 김남일 · 6 유상철

VC
· 7 김태영 · 8 최태욱
9 설기현 · 10 이영표 · 11 최용수 · 12 김병지 · 13 이을용 · 14 이천수 · 15 이민성 · 16 차두리
17 윤정환 · 18 황선홍 · 19 안정환 · 20 홍명보

C
· 21 박지성 · 22 송종국 · 23 최은성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1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6677aa; font-size: 0.8em"
감독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거스 히딩크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박항서
스태프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핌 베어벡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정해성 · 파일:대한민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김현태 · 파일:미국 국기 (검은색 테두리).svg 압신 고트비


파일:/image/076/2011/04/13/2011041401001317200091891.jpg

1995년 2월 19일 일본과의 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하였고, 1998년 3월 4일 중국 전에서 데뷔 골을 기록하였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 엔트리에 발탁되어 조별리그 3경기 모두 오른쪽 윙백으로 출장하였다. 1999년 3월 28일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김도훈의 골을 어시스트해서 아시아 최초로 브라질을 이기는 데 공헌하였다. 이후 2000년 AFC 아시안컵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엔트리에 포함되었지만, 한일 월드컵에서는 1경기도 출장하지 못하였다.

한일전에서는 일본 에이스급 선수들의 전담 마크맨으로 알려졌는데, 빠른 발과 강한 체력, 우수한 맨마킹 능력을 고루 갖춰 해당 롤을 수행하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평을 받았기 때문이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에서는 마에조노 마사키요를 전담마크해서 성공을 거뒀고, A대표팀에서도 당시 일본의 신성으로 떠오르던 나카타 히데토시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다만 이 전술은 나카타가 세리에 A에 진출한 이후 피지컬적인 능력을 보완하고 나와 신체적인 우위를 점할 수 없게 된 시점에서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어쨌든 일본에서도 나카타 히데토시의 전담 마크맨으로 제법 유명했으며, 이런 부분이 J리그에 진출하는데 발판이 되기도 했다.

A매치 64경기 출전 기록이 말해주듯 국가대표로서 제법 족적을 남긴 선수였다. 상술했듯이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는 대표팀의 주전이었고 하석주와 더불어 주요 전술 루트 중 하나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는 한국 대표팀에 있어 흑역사로 남게 되었고, 한창 전성기를 구가할 나이인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는 엔트리에 들었음에도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한 데다가 월드컵 이후에는 대표팀에서 멀어지는 바람에 다소 묻혀 버린 비운의 선수가 되었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엄청난 체력으로 폭주 기관차라는 별명을 얻었다. 일본에서는 한때 나카타 히데토시의 마크맨으로 활동했으며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때에도 주전 윙백으로 활약했다. 빠른 발과 우수한 체력 그리고 엄청난 맨마킹 능력이 있는 선수였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때에는 자리에 이영표, 송종국이라는 걸출한 유망주와 선수들이 있어서 출전할 기회가 없었다.


4. 지도자 경력[편집]


2011년 4월, 최순호 감독이 사임하고 김상호 감독이 감독으로 승격하며 내부 변화가 있던 강원 FC에 2군 코치로 부임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일본의 시마다 유스케를 스카우트하는 등 구단에서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김상호 감독이 2012 시즌 도중 사임한 후 김학범 체제로 팀이 변화하며 자연스럽게 팀을 떠나게 됐다.

2013년 구단 선수 출신 지도자를 적극적으로 중용하는 리얼 블루를 표방한 친정 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코치로 부임하며 서정원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로 이병근과 함께 합류했다. 2014 시즌, 2015 시즌, 2017 시즌 리그 준우승, 2016 시즌 FA컵 우승, 2018 시즌 ACL 4강 등 굵직한 성적에 크게 기여했다. 2017년에는 공석인 팀의 피지컬 코치를 한시즌 동안 병행하기도 했다. 서정원 감독 및 리얼블루 코치진이 모두 2018 시즌을 끝으로 팀을 떠날 때 함께 팀을 떠났다.

2019 시즌을 앞두고 최강희 감독을 따라 다롄 이팡의 코치로 부임했고, 시즌 중반 최강희 감독을 따라 상하이 선화의 코치로 부임하였다. 2021 시즌 중반 최강희 감독이 사임하자, 그를 따라 팀을 떠나며 2년 반 동안의 중국 생활을 마무리했다.

2022년 4월 18일 친정 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부임한 이병근 감독을 보좌할 새로운 수석코치로 선임되면서 약 4년 반만에 친정팀으로 다시 돌아왔다. 같은 해에는 P급 자격을 취득했다.


4.1. 수원 삼성 감독 대행[편집]


2023년 4월 17일 이병근 감독이 승리 없이 2무 5패의 성적 부진으로 시즌 초반 경질되자, 감독 대행 후보로 급부상했다. P급 자격을 이미 취득했거니와[6] 수원 프런트가 고집스럽게 밀어붙이는 소위 리얼블루 정책을 감안하면 충분히 예상된 수순이었다. #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4월 18일, 예상대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감독 대행을 맡게 되었다. 구단 관계자의 언급을 보면 만일 대행을 맡아 팀 성적이 상승하거나 반전에 성공한다면 정식 감독 승격 대상으로도 검토 중이었다고 한다. 허나 10년 넘은 리얼블루 정책에 학을 떼버린 수원 팬들은 물론, 이제는 언론사들이나 축구 담당 기자, 축구 해설자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도 이를 대놓고 비판하는 등[7] 여론이 굉장히 부정적이며, 또 설령 감독 대행으로 뛰어난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정식 감독으로 선임된 이후에도 잘 할 가능성은 미지수이기에 반응은 매우 좋지 않았다.

거기다 최성용 본인이 코치 신분으로 구단의 현주소와 온갖 드러운 꼴들을 다 본 입장이니, 설령 정말로 반전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시즌 후 본인이 감독 제의를 거부하고 구단과 결별할 확률이 높다고 여겨졌다.[8]

감독 대행 첫 경기인 8라운드 슈퍼매치 FC 서울전에서는 로테이션을 돌려 기존과 다른 쓰리백 전술을 들고 나왔으나, 결국 1:3으로 패했다. 허나, 당시 흐름이 좋았던 서울(4승 1무 2패)과 달리 수원의 상황(2무 5패)이 너무 좋지 않았고, 여러 모로 디스어드밴티지를 갖고 시작한 경기였기에 슈퍼매치 패배임에도 팬들은 어느 정도 이해하는 분위기다.

두 번째 경기인 9라운드 포항 원정에서도 쓰리백을 들고 나왔지만, 골키퍼 양형모의 치명적인 실수로 인해서 이른 시간에 나온 실점을 만회하지 못하고 0:1로 아쉽게 패했다. 하지만 상대가 K리그 최고의 전술가인 김기동이었고, 당시 포항이 무패가도를 달리고 있었던 걸 감안하면 어쩔 수 없었다는 평가다. 경기 종료 후 마음 고생이 많았는지 눈물을 보였다. # 이러다 보니 이제는 타 팀 팬들마저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9]

다음날인 4월 26일, 동병상련 신세였던 강원 FCFC 서울이라는 대어를 잡고 드디어 시즌 첫 승에 성공하면서 수원은 5월 4일 이전까지 유일한 무승 구단이라는 참 민망한 타이틀을 달게 되는 씁쓸한 상황도 연출되었다.

세 번째 경기에서는 세징야가 없는 대구 FC를 상대했는데, 경기를 내내 우세하게 가져갔음에도 불구하고 골운이 계속 안 따른데다가 심판의 석연찮은 판정까지 겹치며 선제골을 넣지 못하더니 결국 세트피스 상황에서 에드가 실바의 헤더 한방을 막지 못해 0:1로 패하면서 3연패를 기록하고 말았다.[10] 참고로 이때까지 다른 팀들은 전부 두자릿수 승점을 얻었는데, 수원만 유일하게 한자릿수 승점(2점)이었다.

한편 스포츠조선의 보도에 따르면 수원 삼성 프론트가 김병수를 후임 감독으로 내정했고, 김병수 사단이 구성되는 즉시 동반 계약할 예정이라고 밝히며 대놓고 최성용을 토사구팽(?) 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고 한다. #

이어 OSEN의 보도에 따르면 수석코치로 주승진 스카우트를 수석 코치로 승진시켜 하프 리얼블루를 진행하겠다는 기사도 나오면서 최성용과 수원의 결별은 어떤 방식으로든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

5월 4일, 수원의 새로운 감독으로 정식 선임된 김병수가 오는 5월 10일 전북전부터 팀을 지휘하는 것이 확정되면서 어린이날인 5월 5일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가 최성용 대행 체제의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이 날 경기에서는 박희준, 박대원, 한석종, 전진우, 유제호, 이상민, 한호강 등 기존에 기회를 많이 못 받던 선수들을 선발로 기용하는 실험적인 전술을 썼고, 전반 29분, 이기제의 프리킥 결승골을 끝까지 지키며 1:0으로 승리하면서 구단에게 리그 첫 승을 선물하며 대행 체제를 마무리하게 되었다.

이로써 수원 감독 대행 시절의 최종 성적은 4전 1승 3패, 2득점 5실점으로 마무리되었다. 사실 냉정히 평가하면 4경기 모두 경기력이 결코 좋았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당장 유일하게 승리를 거둔 인천전만 해도 경기 내용면에서는 문제가 많았다.[11] 다만 이러한 문제점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 몇 년 전부터 쌓이고 쌓인 문제들이 곪아 터진 것이기에, 대행의 신분으로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며,절망적인 상황에서 과정이야 어떠했든 소중한 1승을 선물하고 떠났다는 점에서 여론은 대체로 동정적이며, 수고했다고 격려해주는 반응이 대다수다.

애초에 감독 대행은 말 그대로 대행일 뿐이며, 대행의 신분으로 호성적을 거두어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은 사례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그리 많지 않다. 국내의 경우 포항의 김기동, FC 서울 1기 시절의 최용수, 광주 시절의 남기일과 성남 시절 신태용 정도가 대행으로써 팀을 잘 이끌었던 경우이며,[12] 국외로 눈을 돌려도 레알 마드리드 CF 시절의 지네딘 지단, FC 바이에른 뮌헨 시절의 한지 플릭 외엔 거의 없다. 심지어 이들이 대행으로 팀을 이끌 때도 성적과 별개로 팀 전력은 그런대로 준수했다. 전력에서나 흐름에서나 강등권 그 자체였던 수원에서 단기간에 반전을 바라는 것은 애초에 어려운 일이었다.

5월 8일, 예상대로 주승진을 수석 코치로 승격시키면서 김대환 GK 코치와 함께 해임 통보를 받고 수원 삼성과 결별했다.


5. 지도 스타일[편집]


수원 감독 대행 시절에는 수비에 중점을 두어 실점을 최소화하는 전술을 사용했다.


6. 여담[편집]


  • 이 짤의 장본인이기도 하다.

  • 2003년, 일본 출신의 여배우 아베 미호코와 결혼하여 슬하 2남을 두었다.[13] 결혼 13년 째이던 2016년 2월에 KBS 2TV 글로벌 남편백서 내편 남편에 출연하여 근황을 알렸다. 영상 1 영상 2

  • SNS를 젊은 선수 못지않게 꾸준히 이용하는 보기 드문 스태프다. 그의 인스타그램에서 최성용의 수원 구단에 대한 애정과 아들바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2022년 7월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FC 탑걸 감독을 맡았다. 시즌 2 리그에서 답답한 골 결정력 때문에 6팀 중 5위에 그친 팀을 당당히 챌린지리그 전승 우승으로 환골탈태시키며 슈퍼리그 승격을 달성했으나, 강등 위기에 처한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사정 때문에 하차하고 최진철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여기서 P급 자격을 취득했다고 밝혔다. 2023년 7월 FC 발라드림 감독으로 복귀하였다. 방출확정팀인 발라드림을 SBS컵 대회에서 우승을 시키며 무패전적을 이어나가고 있다.


7.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9 01:50:10에 나무위키 최성용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프로필에는 1975년생이라고 쓰여 있지만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1975년생인 이을용이 최성용 보고 형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호적상으로만 1975년생인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는 1974년생인 것으로 보인다.[2]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3] 풀백[4] 수비형 미드필더[5] 이는 당시 신생 팀이었던 대전 시티즌의 지명을 피하기 위함이었다.[6] P급이 없으면 60일 동안만 대행할 수 있다. 그나마 최원권 대행의 경우는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일정 때문에 리그를 일찍 마쳐야 해서 AFC에서 특별히 봐준 것이고, 시즌 후 P급 강습회 대상으로 선정되어 정식 감독으로 승격했다.[7] 팬들의 민심이 험악해지고 언론사에도 대놓고 꼬집기 시작하자 구단 관계자 측은 리얼블루 정책은 시행한 적도 없으며 팬들이 만들어 낸 단어라며 반박하고 있지만, 조금만 자세히 알아봐도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명백히 알 수 있다.[8] 거기에 오동석 단장이 언론 앞에서 이런 말을 한 탓에 수원도 최 대행을 감독으로 선임할 의사가 있는 지 의문이 들고 있다.[9] 지난 시즌 부진한 것이야 한 시즌 부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타 팀 팬들이 조롱했지만 올해는 지난해보다 불운도 많이 겹치고 있고 성적도 당연히 엉망이라 슬슬 안쓰럽다는 반응이 나오는 중이다.[10] 슈팅을 아낀 거 아니냐는 말도 있는데, 실제로는 10개가 넘는 슈팅을 때렸음에도 죄다 골대를 살짝 빗나가거나 대구 수비가 몸으로 막아낸 것이다.[11] 한호강, 박대원은 공중에서 아예 눌려버렸고 중원의 유제호 역시 부진했으며, 김태환은 그냥 거칠기만 한 플레이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양형모 역시 몇 차례 결정적인 선방으로 팀을 구해냈지만 수비 리딩은 여전히 불안했고, 공격의 안병준, 박희준도 딱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12] 그리고 이들은 대행 신분으로 거둔 호성적을 인정받으면서 훗날 정식 감독으로도 선임되었다.[13] 아들 중 한 명은 2006년 11월 2일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