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점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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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2.1. 태권도 경력
2.2. 軍 경력
3. 약력
4. 저술활동
5. 가문
6. 일화
7. 주요사건사고
7.1. 논란 및 평가
7.2. 보도자료 내용



1. 개요[편집]


최점현(태권도사범, 군인 / 육군중령, 헬기조종사)

태권도 사범. 대한민국 육군의 군인. 제 1야전군사령부 기동헬기 대대장 등 전후방 각급부대에서 30여 년을 복무하였다. 1995년 부여 무장공비소탕작전과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소탕작전간 헬기조종사로 작전에 참가하였다. 복무 중 우리나라 최연소 태권도 7단(2011년,8단 / 2020년,9단)으로 승단하였다.(2003.7.13/국방일보)


국방부 태권도 지도심사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전투지휘훈련단 교관, 육군교육사령부 합동교리장교, 특수전사령부 항공작전과장, 육군항공학교 선임비행교관으로서 후진 양성을 위해 복무하다가 퇴역하였다.
2020년 태권도 9단으로 승단하였으며, 국기원 기술심의위원회 교육분과위원, 태권도 연구소 연구 윤리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 생애[편집]


대한민국에서 태어났다.경북 구미 오상고등학교졸업(1984), 1984년 경희대학교 태권도학과(2기)입학, ROTC(26기)로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육군특공여단 특공소대장, 군단 경비소대장직을 수행하면서 태권도 교관(심사관)임무를 병행하였다. 1990년 육군항공학교 헬기조종 60기로 입교하여 헬기조종사 과정을 이수하였다. 항공병과로 전과한 후 2005년 중령으로 진급, 1야전군 기동헬기 대대장직을 수행하였으며, 이후 전,후방부대 헬기 조종사 및 지휘관/참모장교, BCTP단 교관, 육군교육사령부 교리장교, 전방군단 보안과장, 특수전사령부 작전지원과장, 육군항공학교 선임 비행교관 등 육군에 34년을 복무하였다.
*저서로는 대한민국 태권도 오천년사(2008,상아기획), 헷갈리기 쉬운 생활속 우리말(2021, 도서출판 상아기획),, BCTP발자취(2010, 육군교육사령부, 공저)등이 있다. 태권도 역사에 몰두하여 군태권도 발전과정 연구(2003), 군 태권도 발전을 위한 국방정책 개선방안(2011), 역사속의 무예태권도(2015), 태권도사 주요논쟁(2015) 등 다수의 연구자료가 있다.

2.1. 태권도 경력[편집]


+ 태권도 9단승단(2020년)
- 1981년 초단승단 이래 최단기 / 최연소 태권도 9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 1976년 태권도수련을 시작하여(태권라인, 2011.12.14일자 보도)
초단승단(1981.07.02)
2단승단(1982.12.05)
3단승단(1984.12.02)
4단승단(1987.10.18)
5단승단(1991.10.20)
6단승단(1997.03.15)
7단승단(2003.06.07)
8단승단(2011.06.11)
9단(2020.09.11/01033353)으로 승단 하였다.(출처 : 국기원 경력 및 무력확인서 )

*어린시절 동료로 부터 얻어 맞고 온 아들의 모습에 화가난 어머니의 권유로 태권도를 시작하였다고 한다<태권도신문.2020.11.27>
*고교시절 태권도 무덕관 구미 쌍용체육관에서 수련하였다(관장 이정수, 사범 김만용)
*경희대학교 태권도학과 2기로 졸업하였다-1기에는 전익기교수, 임신자교수, 장명삼선수 등이 있다. 2기들 중에는 국가대표 선수로 활동한 김준태, 허련, 박기정, 김철기 등이 있으며, 해병대 태권도 교관 임무를 수행한 최영우 사범 등이 있다
*경희대학교 태권도학과 졸업자 중에서 9단승단을 최초로 하였다.
*형제가 태권도 9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국가전문 / 공인자격, 태권도분야 활동으로는
전문스포츠지도사(2급,1990.07.02,문체부장관)
생활스포츠지도사(2급,1992.08.10,문체부장관)자격을 취득하고
태권도사범(1급)과
경기지도자자격(체육부장관), 사회체육지도자자격(체육부장관)
태권도 승단심사위원,
태권도국제심판(2003년 유니버시아드대회),
태권도겨루기/품새 심판(2급, 1급),
태권도 호신술 지도자자격,
태권도한마당 심판자격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방부 태권도지도심사위원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대전태권도협회 상임심판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타 무술 경력으로
검도초단(1985. 7. 1, 대한검도회)
유도초단(1986. 10. 27, 대한유도회)
활기도4단(1990, 6.11, 한국활기도협회)
체육교정사(1990. 6.11, 한국활기도협회)
활기사(1990, 6.11, 한국활기도교정협회)
활법지도사범(2019. 2.24, 대한합기도중앙협회)
경호요원2급(2019.2.24, 대한경호학회)
체형관리사(2019, 한국능력교육개발원)
특공무술7단(2020. 1.30, 특공무술국제연맹)이다.

+2008년에는 '대한민국 태권도 오천년사'를 단행본으로 출간하였다(2008.01.01 / 상아기획)
*2021년에는 '헷갈리기 쉬운 생활속 우리말<저자 최점현>'을 출간하였는데,그 배경은 역시 태권도계의 내부 문제에서 비롯 되었다고 한다.
*2019년 사상 처음으로 국기원장 선거를 실시하였는데, 선거결과 62명의 선거인단중 A씨는 31표, B씨는 30표, 무효가 1표였다. 당시 선거 관련 정관에는 과반수를 당선으로 규정하였지만 선거관리를 위탁받은 중앙 선거관리위원회는 31명을 득표한 A씨의 당선을 확정하였다. 이후 많은 논란이 생겼고, 법원에서 선거 무효를 판정. '과반수'와 '반수'의 뜻을 간과한 결과 였다고 한다< 중략>
저자는 선거 및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이들에게 '같이 공부 좀 해보자'는 취지에서 집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 태권도신문>

+주요 경력으로는
<지도경력>
1야전군 13항공단 태권도선수단 지도 감독(2006, 1야전군사령부 종합우승, 국방일보 2006년 7월 25일자)
205특공여단 태권도교관 등(1988년 이후)
국방부 태권도 지도심사위원(2019년, 국방부)
대전태권도협회 심판(2019~현재)
대전태권도협회 우수심판상 (2019,2023년도)
<선수경력>
경상북도 무덕관 태권도대회 입상(1982.2.28)
전국대학 태권도선수권대회 입상(1985. 11. 17)
<단행본 출간>
대한민국 태권도 오천년사(2008, 상아기획)
헷갈리기 쉬운 생활속 우리말(2021, 생각나눔)
<저작권 등록>
역사속의 무예태권도(2015. 4. 24, 한국저작권 위원회)
태권도사 주요논쟁(2015. 5.22, 한국저작권 위원회)
대한민국 태권도 오천년사(2015. 6.1, 한국저작권 위원회)
<논문>
국군태권도 발전과정 연구(2003, 육군지)
군 태권도 활성화를 위한 국방정책 개선방안(2010, 국방대학원)
<상훈>
경상북도 선무회 태권도대회 라이트급 3위(1980)
전국대학대항 태권도선수권대회 라이트급2위(1985)
국기원 사범지도자교육 60기 우등상(1989)
국기원장 표창(1989, 2011,2016,2017)
세계태권도지도자연수원장 표창(1990, 1992)
강원도지사 표창(2002, 2007)
육군참모총장 표창(1993, 2010, 2011, 2013)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2008)
세계태권무도연맹 감사장(2007)
국방부장관,국무총리 표창(2014, 2015)
문화체육장관상 전국무예대회(2014,2015,2017)
대한 특전태권도사범회 감사장(2015)
국회의장상 45회 전국무예대회(2018)
대한민국 대통령포장(2020)
대전태권도협회 우수심판상(2019,2023)
자랑스러운 경희태권도인상(2023)
<기고/방송출연>
중앙 및 지방매체, 태권도협회지, 태권도신문, TV,라디오에 방송,기고(150 여회)등을 하였다.
태권도협회(대전협회) 심판, 국기원 기술심의회 지도위원, 태권도 연구소 연구윤리위원, 태권도 신문 국방부 주재기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1976
태권도수련(학림초등학교 5학년,사진자료 참조)
+1982
경북 선무회 태권도대회 라이트급 3위(1982.2.28)
+1985
전국대학대항 태권도대회 라이트급 2위(1985. 11.17)
+1987
태권도 4단 승단
경희대학교 태권도학과 졸업
+1989
태권도사범자격 연수 및 사범자격
태권도 심판원자격 취득(3급)
국기원장 표창(사범연수)
국기원장 우등상(사범연수)
+1990
경기지도자 / 전문 스포츠지도자 자격(4475,1990.7.2)
국기원 태권도지도자 연수원장 표창
+1991
태권도 5단 승단
+1992
생활체육지도자 연수과정 수료
사회체육 지도자 / 생활스포츠 지도사 자격 취득(10074,1992.8.10)
국기원 태권도지도자 연수원장 표창
+1993
제2회 세계태권도한마당참가(주먹격파우승)
+1995
제4회 세계태권도한마당참가
+1997
태권도 6단 승단
태권도2급 사범자격연수 및 자격취득
+2003
태권도 국제심판 자격연수(045-0302)
태권도7단 승단
국군태권도발전과정 연구논문발표(육군지)
+2006
1야전군 태권도대회 종합우승 지도/감독(13항공단)
군사령부 항공단장 상장 및 군사령관 표창수상
겨루기부문 우승, 품새부문 우승, 종합우승(국방일보및 뉴스보도)
+2007
세계태권무도연맹 감사장
+2008
태권도신문 국방부 주재기자 임명(08-08,2008.11.19)
'대한민국 태권도 오천년사' 발간(상아기획, 단행본)
+2010
한국중고등학교 태권도연맹 기술전문위원회 지도위원
태권도활성화를 위한 국방정책개선방안 연구(국방대학원)
+2011
태권도8단 승단(2011)
태권도1급사범 취득(1007030, 2011.10.28)
국기원장 표창
+2014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41회전국무예대회표창
국방부장관 개인표창
+2015
태권도신문 국방부 주재기자(2015~)
국군의날 태권도시범 계획/지원(국무총리 표창)
대한특전태권도사범회 감사장
'역사속의 무예 태권도' 저작권 등록(한국저작권 위원회)
'태권도사 주요논쟁' 저작권 등록(한국저작권 위원회)
'대한민국 태권도 오천년사' 저작권(한국저작권 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42회전국무예대회표창
+2016
태권도 2급심사위원 자격취득(2021039,2016.4.22)
국기원 교육분과 위원
대한특전태권도사범회 자문위원
태권도 신문 국방부 주재기자
국군의날 태권도시범 계획 / 행사추진(특수전사령부)
+2017
태권도 2급겨루기심판(2500, 2017.12.7)
태권도 품새심판(1585, 2017.3.29)
태권도 한마당 심판자격취득(2023004, 2017. 8.25)
국기원 기술심의회 교육분과위원
태권도 신문 국방부 주재기자
국기원장 표창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44회전국무예대회 표창
+2018
호신술지도자 자격연수(3002061, 2018.11.25)
국기원 기술심의회 교육분과위원
태권도 신문 국방부 주재기자
국회의장상 전국무예대회표창
+2019
국군태권도 지도심사위원(2019.1.16)
콜롬비아 육군사관학교 태권도교관 선발위원(2011~2019)
대전광역시 태권도협회 심판
대전태권도협회 서구 우수심판상
국기원 기술심의회 교육분과위원
태권도 신문 국방부 주재기자
+2020년 이후
태권도 9단 승단(01033353,2020.9.11)
국기원 기술심의회 교육분과 부위원장
태권도 신문 국방부 주재기자
대한 특전태권도사범회 고문위원
국기원 연구소 연구윤리위원
국기원 기술심의회 지도위원
대전태권도협회 심판('19이후 계속)
대전 태권도 서구대회 우수심판상('23)

---출처 : 출판사 작가인물정보, sns인물정보, 국기원 기술심의회 이력정보
+부정확한 정보나 오류는 국기원 사무처를 통하여 확인 가능합니다.

2.2. 軍 경력[편집]


+초급장교(위관)
- 특공소대장, 경비소대장(1988~1990)
- 항공부대 헬기조종사 / 참모장교(1991~1996)
- 부여 무장간첩섬멸작전 및 강릉 대간첩 작전 참가(1995,1996)
  • 작전유공표창3회 수상
+영관장교(소령/중령)
- 기동헬기 조종사(소령 /1997~2001)
- 선임 헬기조종사휘장(2001,1500H 무사고비행)
- 군단급 부대 작전항공장교(2002~2003)
- 헬기중대장, 항공부대 정보작전 참모(2003~2005)
- 1야전군 기동헬기 대대장(2005~2007)
- 지휘 헬기조종사 휘장(2006,중령)
- 군단급 FTX참가(항공작전통제 2회)
- 13항공단 태권도 선수단 감독(2006)
- 전투지휘훈련단 교관 / 육군 교육사령부 연합합동교리장교(2007~2012)
- 5군단 대정보 및 보안과장(2012~2014)
- 육군 특수전사령부 항공작전과장(2014~2016)
- 육군항공학교 선임 비행교관(2016~2020), 개인비행 무사고 2천시간 달성

- 육군 중령 퇴역(2020)

출처 : 도서출판 생각나눔 최점현 작가 인물소개



3. 약력[편집]


- 오상고등학교 졸업(1983.2)
- 경희대학교 체육대학 태권도학과 졸업(1988.2)
- 태권도지도자 연수원 졸업(1989,국기원)
- Coach 아카데미 수료(1990,체육부장관)
- 육군항공학교졸업(헬기조종교육 #60기,1990)
- 육군항공학교 조종고급과정 수료(교관조종사,1999)
- 육군대학 정규과정 졸업(2001)
- 국방대학교 국방관리 대학원 졸업(2010)

- 육군정보학교 보안감사관과정 이수(2013,2014)
- 국군기무사령부 보안관리자과정 이수(2014)
- 육군포병학교 합동화력실무과정이수(2015)

- 1야전군 기동헬기대대장(2006,중령)
- 전투지휘훈련단 교관(2008)
- 육군 교육사령부 연합합동교리장교(2011)
- 육군 5군단사령부 보안 및 대정보과장(2012)
- 육군 특수전사령부 항공작전과장(2016)
- 육군항공학교 선임 비행교관(2018)
- 전,후방 각급부대 지휘관 및 참모 등(34년복무)

---출처 : 생각나눔 출판사 작가인물정보, sns인물정보

4. 저술활동[편집]


+ 저서
- 대한민국 태권도 오천년사(상아기획,2008)
- 헷갈리기 쉬운 생활속 우리말(생각나눔,2021)
- BCTP발자취(육군교육사령부, 2010,공저)
- 국지도발대비작전(육군본부, 2012,공동연구)

+ 저작권
- 대한민국 태권도 오천년사(2015, C-2015-013217),어문저작)
- 태권도사 주요논쟁(2015, C-2015-011125,어문저작)
- 역사속의 무예 태권도(C-2015-009764,편집저작)

+ 논문
- 군 태권도 발전을 위한 국방정책 개선방안(2011)
- 군 태권도 발전과정 연구(2003)

+ 방송/보도
- 우리부대 멋쟁이 소대장(1989.4.3,전우신문)
- 3형제 태권도고단자 탄생(1997.5.26,태권도신문)
- 3형제 태권도 고수(1997.5.27,국방일보)
- 최연소 태권도 7단 승단 (20037.16.국군TV, 국방/조선일보 등)
- 수련28년! 태권도 7단승단(2003.7.25, 태권도신문)

- 화제의 인물 '발차기' 화보(2003.9,10월호, 육군지)
- 태권도정신, 군인정신(2005.8.29,태권도신문)
- 육군헬기부대 13항공단 태권도 종합우승(2006.7.24,태권도신문)
- 육군13항공단 1야전군 태권도경연대회 종합우승(2006.7.25,국방일보)
- 이웃에 '사랑의 도시락'배달(2007.4.3,강원도민일보)

- 하루세끼 9년간 '사랑의도시락'(2007.4.11,국방일보)
- 군 태권도활성화를 위해 노력(2008.1.31,국방일보)
- 태권도7단의 고수장교, 무술역사에도 고수(2008.2.1,한국일보)
- 대한민국 태권도 오천년사 발간 (2008.2.11,매일신문)
- 최점현사범, 대한민국 태권도오천년사 발간(2008.3,4월호, 국기원 태권도피플)

- 교육사령부 최점현중령 태권도오천년사 발간(2008.6월호,Leaders World)
- 군 태권도발전과정 소개(2011,국방라디오 생방송)
- 같은부대 현역장교 2명, 고단자 영예(2011.6.27, 태권도신문)
- Military Officer becomes Yongest taekwon master(2011.6.22,korea herald)
- 박연수대령, 최점현중령 태권도 고수 인터뷰(2011.7.4, 태권도신문)

+ 기고
- 무도 태권도와 무술의 차이 연구(협회지60)
- 태권도 지도자교육 발전방안(협회지69)
- 태권도 가치 연구(협회지87)
- 태권도 정신 연구(협회지88)
- 국가 체육예산 활용방안(조선일보,1992.8.15)

- 태극기 관련 연구(조선일보, 1996.6.10)
- 태권도에서 도의 상징적 의미(1999.7.26,태권도신문)
- 구랍은 음력개념이다.(2000.1.6,조선일보)
- 최점현의 인성교육(연재,20006.6~201.2.12,태권도신문,24회)
- 고구려 '선배'와 태권도(2001.9.4, 태권도신문)

- 국가 기념일 임의 변경 옳지 않다(2002. 5.16,조선일보)
- 병역! 포상의 대상 옳지 않다(2002.5.29,조선일보)
- 일제치하 '35'년이 옳다(2002.8.17,조선일보)
- 태권도 사범의 위상제고 방안(2003.8.25,태권도신문)
- 군태권도 발전과정 연구(2004.9,10월호, 육군지)

- 군태권도 발전과정 고찰(2005.10.17,태권도신문)
- 태권도인의 태도(2006.10.23, 태권도신문)
- 지휘관의 역할(2006.11.13,국방일보)
- 국군 태권도활성화 관련(2008.1.30,국방일보)
- 오천년 태권도사! 50년으로 착각마시길(2008.2.11,매일신문)

- 우리의 국기 태권도(2009.9.4,국방일보)
- 태권도의날 제정관련(2009.9.7,태권도신문)
- 태권도로 문화적,외교적 역량키우자(2012.2.13,태권도신문)

+ 관심분야 / 공연
- 특전사와 이천시민이 함께하는 한마음 음악회(2015.11.12, 이천아트홀/색소폰)
- 4 DREAM과 함께하는 가정의 달 음악회(2023,5,17, 충남대 정심화홀/하모니카)

5. 가문[편집]


+제14회 병역명문가 스토리 가문(2017.9.7,조선일보)
특히 올해 처음으로 제정한 '스토리 가문상'을 받은 최재선씨 가문은 3대가 병역 의무를 치른 기간이 110년이고 무술은 도합 51단이다. 1대 최재선(작고)씨는 6·25전쟁에 참전했고, 세 아들은 모두 장교의 길을 걸었다<중략>

+ 대한민국 병역명문가로 선정되었다(2017)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내 한목숨 기꺼이 던질 것입니다.”
3대에 걸쳐 집안 모든 남자의 현역 누적 복무기간이 116년에 달하는 충남 논산 육군항공학교 최점현(50) 중령의 집안이 병무청이 주관한 ‘올해의 병역명문가’로 선정됐다. 병무청에 따르면 최 중령 가문은 6·25전쟁과 태평양전쟁에 참전한 고 최재선씨의 대를 이어 3대에 걸쳐 모두 8명이 현역으로 복무했다. 1924년생인 최 중령의 아버지 최재선씨는 일제강점기 강제노역으로 5년, 1950년께 국군으로 재입대해 모두 10년을 복무했다.
최 중령은 “6·25전쟁 기간 중 자식을 잃은 최씨가 고향인 경북 칠곡 다부동에서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 추위와 배고픔을 몸소 겪으며 국방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전했다.<중략>.
3형제가 현역으로 복무한 기간은 모두 92년. 첫째 호현(65)씨는 공군본부 의장대에서 38년간 복무하고 공군 준위로 전역했고 둘째 중현(60)씨는 육군 보병 장교 임관 후 헌병 병과로 전환, 헌병 대장으로 재직하기까지 23년간 육군에 몸담았다.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1OKX8AQ6JQ
+조선일보, 연합뉴스, 충청투데이, 세계일보, 문화일보, 서울경제 등 보도

+ 경주최씨의 최부잣집 신화 <시인 이태수, 2023.5.21, 경북신문>
+경주 최부자 가문에는 후손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여섯 가지 '가훈'을 비롯해 어려워졌을 때의 처신술을 제시한 '육연', 가정에서 지켜야 할 도리를 담은 '가거십훈' 등 유훈이 한결같이 떠받들어져 왔다고 한다.
고운 최치원의 후손인 이 가문은 10대에 걸쳐 300년 동안 부를 지켰으며, 사회 환원으로 마감한 전설적인 부자였다. 9대에 걸쳐 줄곧 진사를 지낸 '지식인 양반 부자' 집안이었으나 지탄의 대상에서는 언제나 자유로웠다. 정당하게만 부를 축적하고, 그 부를 적절히 사회에 되돌리기도 했기 때문에 존경받았다.
마지막 부자였던 최준은 나라를 위해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았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독립투사 안희제와 협력해 백산상회를 만들고, 이를 통해 은밀하게 막대한 돈을 임시정부 독립운동 자금으로 제공했다. 인재 양성을 위해 1947년에는 대구대학('삼성'에 넘겨졌다가 1967년 청구대와 통합돼 영남대학교가 됨)을 설립해 모든 재산과 서책들을 이 재단에 기탁했다.<중략>

속담에 '부자는 3대를 못 간다'는 말이 있지만, 최부잣집 가문의 선조는 부 유지의 '위대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다. 후손들의 '숨은 노하우'도 신비한 비밀의 DNA에 녹아 있었다.
그 비결은 바로 청렴한 선비정신과 투철한 국가관, 충절과 애민 정신에 뿌리를 두는 데 있었다. 빈민 구제를 통한 재산의 사회 환원도 크게 돋보이는 대목이다. 특히 가훈에 나타난 경영철학은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날도 여전히, 어쩌면 더욱 소중한, 일깨움을 안겨준다. 그 첫 번째 덕목은 근검절약 정신이다. 물건을 아껴 쓰고 이웃에 나누어 준다든가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라는 가훈은 그런 정신의 소산이다.
두 번째 덕목은 재산을 모으는 과정에는 정당성과 도덕성을 담보로 했다는 점이다. 처음으로 부를 일으킨 최국선(1631~82)에서 마지막 부를 누렸던 최준(1884~1970)에 이르기까지 흉년 때 굶주리는 사람들을 구제했다는 기록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그 실천 덕목이 가훈 '흉년기에는 절대 땅을 사지 마라'에 잘 나타나 있다.
이익 추구를 위해서는 무차별 인수, 합병을 일삼는 부자들의 약육강식 논리와는 사뭇 달랐다. 또한 가훈 '재산은 만 석 이상 지니지 마라'가 말하듯, 적정 이윤만 도모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박탈감을 주지 않았다.
조선조는 양반 신분 유지가 곧 부의 유지 조건이었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란 가훈은 그래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학문을 해서 양반반열에 오르되 벼슬길에 오르지 않은 데는 부의 지속에는 정치적 중립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지혜의 소산이다.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거나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가 가훈도 휴머니티의 발로이면서도 불만 세력을 잠재우는 전략이었을 것이다. 재산 문제로 세상이 시끄러운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동서고금을 통해 정치는 금력을 이용하고, 재력가는 금력으로 세력을 매수하려 했다. 이권을 얻어 더 많은 부를 얻으려고도 했다. 그러나 정경유착으로 이룬 부는 오래지 않아 정치적 적들에 의해 파멸에 이르게 마련이었다. 성서에 '부자가 천국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기록돼 있다. 부유해질수록 마음은 가난해지는 사회, 부익부 빈익빈을 넘어서는 정당성과 도덕성이 받들어지는 사회는 아직도 멀기만 할까. 부자 예찬하기보다 오늘의 사회가 바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경주 최부잣집 이야기를 새삼 떠올려 보았다.

+ 최 부자 가문의 육연(자산을 지키는 교훈)
01. 자처초연(自處超然) =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고
02. 대인애연(對人靄然) = 남에게 온화하게 대하며
03. 무사징연(無事澄然) = 일이 없을 때 마음을 맑게 가지고
04. 유사감연(有事敢然) = 일을 당해서는 과감하게 대처하며
05. 득의담연(得意淡然) = 성공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하고
06. 실의태연(失意泰然) = 실패했을 때는 태연히 행동한다.

+ 최 부자 가문의 육훈(집안을 다스리는 교훈)
01.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말라.
02.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03.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04.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05. 주변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06. 시집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게 하라..

6. 일화[편집]


*경희대 108학군단 후보생들은 1986년 당시 중동부 전선 백두산부대에서 집체교육을 받았다. 당시 전방부대 집체교육은 육군훈련소 신병교육과 유사하게 기초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는데 군율과 군기가 매우 엄격하였다. 후보생들은 중위급 장교(교관)들의 통제하 훈련을 받았는데, 어느날 직급이 매우 높은 연대장님이 훈련장을 방문하였고, 후보생 한명 한명 일일이 악수를 하면서 격려를 하였다. 후보생들은 악수와 동시 그들의 관등성명(직책과 이름)을 크게 대는 것은 장교후보생으로서는 기본이다. 순서가 되어 최점현 후보생에게 연대장님이 악수를 청하였는데, "000 후보생"이라고 본인의 이름을 크게 외쳐야 되는데, 연대장 성함을 크게 복창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당시 교육대나 후보생들의 입장에서는 연대장님은 교육기간 중 한번 정도 볼 수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높은 분이셨기에 더욱 난감한 사고(?)가 난 것이었다.
훗날 그는 딴 생각을 하며 연대장님 명찰을 보고 있다가 갑작스런 악수에 당황하여 명찰의 이름을 그대로 복창했다고 했다. 매우 엄정한 자리인지라 누구도 웃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함께 수행하는 참모들이 어쩔 줄 몰라했다. 뭔가가 잘못된것를 인지한 최 후보생은 바로 그자리에서 "홍길동 장군님 죄송합니다."라고 크게 외쳤고, 냉기가 돌던 분위기는 이내 웃음바다로 바뀌었다. 연대장도 여유있게 웃으며 느스레를 떨다가 가셨다. 이후, 108학군단 동기생들은 최 후보생을 보면 지금도 "최점현 후보생(쇙)"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YMCA / YGJ>

+21사단가
힘차게 솟아나는(빛나는 동해바다) 태양을 안고, 눈보라 몰아치는 설악 위에서, 멸공의 역군으로 굳굳히 뭉친, 씩씩하다 백두산부대 21사단! * ( )안은 1986년 당시 사단가로 기억합니다(115학군단,Lee)

* 당시 경희대 학군단은 한양대 학군단과 함께 전방 소대장 실습을 함께 했다.

7. 주요사건사고[편집]


+1992년 7월14일 경북선산 UH-1H 헬기추락, 7군단장 이현부 중장등 7명사망,5명부상.(61항공단 204대대)
+1994년 3월3일 경기용인 UH-60 헬기추락, 공참총장 조근해 공군대장등 6명 사망(공군)
+2008년 2월 20일 경기 양평 용문산 UH-1H 헬기 추락,장병7명 사망(204대대)
+2016년 2월15일 강원 춘천 신북읍 UH-1H 헬기 추락, 장병 3명 사망(205대대)
[출처] 작성자 늘보하마
+ 서울 올림픽 경호경비작전 참가(1988)
1988년 9월 서울에서 개최된 제 24회 올림픽대회기간 제 205특공여단은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 외곽 경호 경비 작전을 수행하였다.
주요 임무로는 요트경기장 주변 순찰 및 야간 매복작전으로 불순분자의 테러 행위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중대단위로 투입되어 일일단위 순찰 및 지뢰탐지활동 등 다양한 작전을 수행하였다.
* 특공2대대는 장산, 제송동일대 야간 매복작전이 주 임무였다.
* 특공2대대 6중대 백호중대 중대장님 유창석대위님(육군사관학교 39기)이십니다.
+부여무장공비 소탕작전 참가(1995)
1995년 10월 24일 당시 국가 정보기관으로부터 충남 부여지역에 북파간첩이 활동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군경은 검문검색을 강화하였다. 10월 24일 최초 경찰관과 무장간첩들과 교전을 하여, 경찰관 2명이 순직한다. 당일 간첩 김동식은 경찰의 총격으로 24일 오후 4시경 체포되었으나, 간첩 박광남은 부여 석성산으로 도주하였다.
당시 군은 이 일대에 진돗개 상황을 발령하고 지상부대와 항공부대를 출동시킨다. 61항공단 항공부대는 UH-60헬기 10여대를 편성하여 지상기동 병력을 탑승시켜 작전계획에 의해 차단선, 봉쇄선을 점령토록 공중기동작전을 수행하였다.
당시 군은 세부 작전계획을 수립하여 10월 27일 헬기 13대를 투입, 지상부대의 작전지역에 신속하게 병력을 투입 하였다.
10월 27일 11시경 부여군 응평마을 인근 야산에서 간첩 박광남을 사살하는데 성공한다.
+강릉지역 대침투작전 참가(1996)
1996년 9월 18일 새벽 강릉시 강동면 동해고속도로 상에서 택시기사의 신고로 좌초된 선박이 북한의 소형 잠수함으로 확인되었고 무장공비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작전에 돌입하였다. 북한의 지령에 따라 잠수함 좌초책임을 물어 사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승조원 11명의 시체를 발견하였으며 도주한 잔당들 13명을 교전 끝에 소탕하였으나, 아군 11명, 경찰,예비군 2명, 민간인 4명이 희생되었다.
북한의 인민무력성 산하 정찰국 소속 상어급 잠수함이 강원도 강릉시 동해안 일대에 침투하여 정찰 공작 활동을 벌이고 복귀를 시도하던 중 해상 복귀가 불가능해지자 육로를 통한 복귀를 위해 상륙하면서 일어난 사건이다.
문제의 잠수함은 1996년 9월 14일 오전5시 부대가 있는 함경남도 락원군에서 정찰국장의 환송을 받으며 출발했다. 휴전선 경계 5마일 정도까지는 별 문제 없었고 이 지점부터 수중 공기관과 잠망경을 내린채 해저 60~70m 깊이로 침투했다. 또 강릉에서 5마일 정도 떨어진 거리에선 잠수함을 부상시켜 잠망경으로 위치를 확인하며 접근했다. 15일엔 해안 3~400m 거리에서 잠수함을 바닥에 가라앉혀 정찰조를 상륙시켰고 이후 물속에서 대기하다 17일 정찰조를 태우기 위해 들어가던 중 그만 좌초했다.

이광수는 "대부분 잠수정이 후진하다 암초에 걸린 것으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앞으로 들어 왔으나 파도가 너무 쳐서 옆으로 밀리면서 암초에 걸렸고 프로펠러가 망가지면서 좌초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찰만 하고 임무 마쳐서 모두 복귀하려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후에 침투 목표가 대통령 암살이라는 것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저격조만 상륙하고 승조원과 잠수함은 복귀하려다 실패하자 전원 상륙하였다. 국가안전기획부 조사에서 이광수는 10월 7일 김영삼 대통령이 춘천에서 개막된 전국체전 개막식에 참석할 경우 저격할 목적이었음을 진술했다고 한다. 정부는 무장 공비 침투 목적을 사실대로 공개할 경우 국내 경제가 위축되고 북한과의 대화 창구가 완전 폐쇄될 가능성이 있어 한동안 보류했다고 한다.
원래 계획은 1996년 10월 춘천에서 전국체전이 개최된다는 첩보를 입수한 북한이 강릉시에 저격조만 상륙시키고 승조원은 복귀하려고 했으며 저격조는 민간인으로 변장한 뒤 낚시 가방에 불법복제판 M16 소총을 넣고 낚시 동호회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강릉시에서 춘천시까지 도보로 이동한 후 이 전국체전 개막식에서 연설을 하기로 예정된 김영삼 당시 대통령을 저격하려 했다. 하지만 이들이 탑승한 잠수함이 강릉 앞바다에서 좌초함으로 인해 복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진 승조원들도 덩달아 작전에 투입되었으며 결국 인적이 드문 곳에서 저격조가 승조원 중 저격조 역할이 불가능한 인원을 살해했다. 일례로 만일춘 중좌, 정영구 중좌, 류림 소좌, 원흥천 대위, 박태홍 대위 등 이 5명은 원래는 승조원이지만 저격조 역할도 가능했기 때문에 살해(처형)되지 않고 저격조로 역할이 전환되었다.

1996년 9월18일, 강릉시 강동면 안인진리 해상에서 68사단 초병과 택시기사 이진규가 50m 해상에서 좌초한 북한 잠수함을 발견하면서 무장공비소탕작전이 시작되었고, 11월 5일 인제군 연화동에서 특전사 장선용 상사가 마지막으로 잔존한 정찰조 2명을 사살함으로써 작전을 최종 종결시킬 때까지 총 49일간 이어졌다.
침투 무장공비는 총 26명이라는 설과 25명이라는 설이 분분했으나 북한에서 발표한 선전물에 전사자로 분류된 것이 확인되어 26명이 맞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 중 총 13명이 국군에 의해 사살됐고, 11명이 함께 침투한 공비에 의해 처형됐으며, 1명(이광수)이 생포됐다. 그리고 1명은 위에 서술되어 있듯이 행방은 커녕 존재 자체도 불확실하지만 일단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군 피해는 전사 11명(장교2/부사관2/병7), 아군의 오인 사격으로 전사 1명(68사단 홍동진 대위), 부상 27명에 민간인 4명, 경찰 1명 사망, 예비군 사망 1명이다.
+2002년 태풍 '루사' 재난발생시 복구활동 지원(2002)
2002년 8월 말 한반도 일대를 강타한 태풍으로 공식기록 124명이 사망하고 60여명이 실종, 9만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재난상황이었다. 일일 강수량이 870밀리를 기록하는 등 사상 유례없는 폭풍우로 당시 환산비용으로 총 5조이상의 피해를 준 국가급 재난이었다. 특히, 강원도 양양, 강릉, 삼척일대 피해가 매우 심했는데, 군 피해역시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전기, 전화, 이동통신, 수도 등 모든 사회기반 시설이 마비되었다. 군도 통신두절로 예하부대 피해상황 파악에 제한이 될 정도였다.
육군 8군단에서 항공전력을 투입하여 피해지역에 의료물자, 생필품, 물자공수, 방송요원, 기자단 공수 등 공중작전을 실시하여 피해복구를 앞당길 수 있었다.

7.1. 논란 및 평가[편집]


+61항공단 제602항공대대는 1996년 9월 18일부터 11월 4일 까지 무장공비 소탕작전에 참가하였다. 임무는 특전사 병력들을 공중기동, 투입하는 작전이었다. 특전사 요원이 헬기레펠중 무장공비의 총탄에 의해 순직하는 등 실전상황이었다. 병력진입 불가지역에 대한 공중화력수색 및 감시장비를 이용 탐색작전을 실시하였다.
* 특전 병력과 항공기는 강릉비행장과 하진부리 비주둔비행장에 주둔하였다.
* 감시장비를 활용한 공중감시 정찰, 군견공수작전, 차단선 점령간 병력공중기동, 물자공수, 기타 임무 등을 수행하였다.
* UH-60헬기에 특전대원을 태워 작전지역으로 이동하다가 고추 농사용 노끈이 헬기 프로펠러에 감겼었는데,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헬기를 운항하여 평소 같았으면 처벌을 받았을 사안이나 작전중이라 처벌을 면하였다고 한다.(S,DH)

+대한민국 태권도오천년사<최점현, 상아기획,2008> 평가합니다...
- 책 제목처럼 태권도 역사에 관한 책!
의문이 드는건, 태권도의 역사를 조명하는데 있어, 민족 사학자들의 역사책을 참고했다는 점이다. 태권도의 성격이 민족주의적임이 분명하지만,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자료를 참고해야 한다는 작은 생각이 있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 국사에 관해서 재야 사학자들과 강단 사학자들이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점에 있어서 많은 논지의 여부가 남아 있겠지만, 사실 나는 재야 사학자들의 역사적 관점이 더 마음에 들지만, 이건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고.아무튼 어찌되었던 간에, 이러한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태권도가 가라데의 아류라는 역사적 오류를 해결할 수 있고, 우리나라 전통적 무예이며 무도란 걸 알려 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이 책으로 코이카를 준비했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다만 필기에서 역사에 관한 부분은 지극히 작았다는 것이...아쉽네 <여행가 Yong>...

-최점현 중령은 완전 태권도 전문가로서 이책을 볼 때, 태권도에 대한 열정을 엿 볼수 있었다. 실제 내가
궁금했고 몰랐던 우리나라 국기인 태권도에 관해 많은 의문점을 해소할 수 있었다. 감사드립니다.<주님안에서 숙성중인 지구별 시골쥐 김주영>

-사람들이(특히 태권도하는)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태권도의 왜곡된 역사가 아닌 진짜 태권도 역사를 알 수 있다.현재 태권도엔 왜곡된 역사가 많다. 이 책 또한 여러 문헌들을 참고해 만든 책이므로 100% 올바른 역사책이라고는 장담 못하지만 내가 아는 선만큼은 역사의 진실성이 보이는 책이다. 명확하지 않은것은 자기의 생각이라고 밝힌 뒤 작성하여 혼란을 피했으며 여러 문헌들을 근거로 시대별로 잘 정리해둔것 같다. 도서관에서 빌려본 책이지만 기회가 된다면 태권도하는 사람으로서 돈주고 사서 소장할 가치 있는 책이다.(2012.7.10, 선정남)

7.2. 보도자료 내용[편집]


+이웃에 사랑의 도시락 배달(2007.4.3, 출처 : 강원도민일보(http://www.kado.net))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9년째 홀로 사는 노인이나 장애인 가정에 도시락 봉사를 하는 군부대가 있다. 육군 13항공단 205대대 소속 장병 70명은 지난 1999년부터 2명씩 조를 이뤄 부대 인근 나홀로 노인 및 장애인 가정 5가구에 끼니마다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하고 있다.특히 장병들의 전술 훈련기간에는 노인들의 식사를 위해 잔류 부대원들이 돌아가며 봉사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낮 장병들은 부대 식당에서 점심식사용으로 만든 닭고기 볶음, 깍두기, 된장국 등을 포장하고 쌀밥을 정성스럽게 보온 도시락에 담아 인근 마을로 향했다. 홀로 사는 노인들은 도시락을 배달하는 이들 장병이 더없이 반가운 손님이다. 장춘배(62·춘천)씨는 "다리가 불편한 탓에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어 음식을 해먹기 힘든데 이렇게 군인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도시락을 가져다 줘서 너무 고맙다"며 "친 자식 이상으로 늙은이를 챙겨주는 장병들에게 감사한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김용선(27) 병장은 "입대 전에는 봉사활동에 대해 몰랐는데 직접 해보니까 나홀로 노인이나 몸이 불편한 불우 이웃을 돕는 것이 얼마나 보람된 것인지 느낀다"며 "부모님에게도 효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205대대 최점현 대대장(중령)은 "부대 창설 이후 훈련 기간에는 잔류 병력을 이용해서라도 하루도 빠짐없이 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다"며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봉사활동이 장병들의 정신교육은 물론 주민과의 유대 강화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최 대대장은 또 "현재 5가구에 대해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여건이 되는 대로 점차적으로 확대, 지역 주민에 봉사하는 육군으로 자리매김 하고 싶다"고 말했다.

+국내 최연소 태권도 8단은 40대 군인 최점현 중령(2011.06.20,코리아 헤럴드)
현역 군인 중 최연소 태권도 달인이 탄생했다. 주인공은 육군 교육사령부에 복무 중인 최점현 중령(44).
20일 국기원 등에 따르면 최 중령은 지난 11일 국기원 태권도 고단자 승단심사에 응시, 이날 합격 통보를 받고 태권도 8단 유단자가 됐다. 국내 최연소이자 현역 군인 중 세 번째, 태권도를 시작한지 35년만에 이룬 쾌거다.

최 중령은 초등학교 5학년(1976년) 때부터 태권도와 인연을 맺었으며 경희대 태권도학과를 졸업, 특공부대 태권도 교관과 심사관을 역임하는 등 군 내부에서는 태권도 고수로 통한다. 지난 2003년 7단에 승단한 최 중령은 2008년에는 ‘대한민국 태권도 오천년사’를 집필하는 등 남다른 태권도 사랑을 보여왔다. 최 중령은 이번 8단 승단심사를 위해 일과 후 부대 인근 체육관에서 매일같이 구슬땀을 흘렸다. 그는 “태권도학과 출신 군인이라는 자존심으로 포기하지 않고 몸 관리에 최선을 다해 여기까지 온 것 같다”며 승단 소감을 전했다. 태권도 고단자의 승단심사는 연령과 승단 경과기간 등이 모두 충족돼야 하는 만큼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태권도 고단자의 승단은 6단의 경우 만30세 이상(5단 승단 후 5년경과), 8단은 만44세 이상(7단 승단 후 8년 경과)이 돼야 심사에 응할 수 있다. 특히 태권도 최고 단인 9단에 오르려면 만53세 이상, 8단 승단 후 9년이 지난 유단자 중 심사를 통해 선발하며, 모든 승단 심사에서 한번이라도 탈락이 없었다고 가정했을 때 1단 승단 이후 최소 44년의 수련기간이 필요하다. 국기원 고단자 심사에는 개인별 품새, 격파, 겨루기, 면접, 연구논문평가 등이 포함돼 있으며 최 중령은 ‘軍태권도 활성화를 위한 국방정책 개선방안’이란 연구논문으로 최종심사를 통과했다.
최 중령은 “몸 관리를 잘해 9단에도 도전하겠다”면서 “앞으로 태권도가 군의 전투력 평가 주종목으로 채택돼 장병들의 체력단련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14년도 당시 특수전사령부 항공과장인 최점현사범(당시 8단)의 적극적인 활동과 지원으로 대한 특전태권도 사범회가 공식출범하였다.
이어 제 1회 특수전사령관배 대회까지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최점현중령(당시 항공과장), 민경복사범, 서민학 사범등 여러 특전사 출신 사범들의 노력으로 이듬해 1회 대회를 서울 송파 3공수여단 체육관에서 개최하였다.
대한특전태권도사범회 출범은 2014년 9월 13일 제3공수특전여단을 방문하고, 같은 해 11월 21일 출범식을 했으며, 2015년 1월 10일 이해동 초대 회장이 취임함으로써 공식활동을 시작하였다.
이를 계기로 사단법인 설립과 특수전사령부 사령관배 전국태권도대회 개최 등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한특전태권도사범회 집행부는 명회회장 최응길, 고문 김진열, 강형국, 자문 최점현, 문희성, 민경복, 홍성우, 김명락, 강석재, 마성일, 부회장 이송학, 최돈민, 문호준, 전무 서민학, 사무국장 전인환, 사무차장 박병규, 서울지부장 설종호, 경기지부장 조남도, 충청지부장 조형철, 경상지부장 박용원, 전라지부장 김윤창, 강원지부장 곽희명, 제주지부장 전청운, 감사 이선춘, 이기철, 방원석이며 일반 회원들은 특전사 전역자 중 병, 부사관, 장교출신 사범과 특전사 현역 태권도 사범 200여명으로 구성됐다.

+특수전사령부의 군(軍)태권도 이대로 좋은가? <한국무예신문,2015.1.15>
대한민국(大韓民國)을 대표하는 최정예 특수부대(特殊部隊)인 특수전사령부(특전사)는 “안되면 되게하라”는 특전훈을 바탕으로 세계최강임을 자랑하고 있다. 전인범 특수전사령관은 “특전사 전 장병은 국민으로부터 더욱 사랑 받고 신뢰받으며 기본이 바로선 강한 좋은 부대를 만드는데 모든 지혜와 역량을 다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특전사의 기본은 무엇인가? 전시(戰時)엔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전장(戰場)에서 특수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전사로, 평시엔 국민을 위한 군대, 국군(國軍)의 전통을 이어받아 위국헌신(爲國獻身)의 군인본분을 다 하는 것이 기본이라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특전사하면 과거의 공수부대로 부정적인 기억과 국가적 행사에서의 특전부대 태권도시범을 기억한다. 최근에는 각종 언론을 통해 해외 분쟁지역에서 UN평화유지군 임무를 수행하며, 그 곳 청소년들에게 태권도를 통해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태권도부대로 알려지고 있기도 하다.
군(軍)태권도의 시작이 곧 태권도역사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1957년 월남의 고딘 디엠 대통령이 이승만 대통령의 초대를 받고 첫 방문부대인 보병29사단의 태권도 연무시범을 보고 “한국군이 백병전에서 공산당을 무찌르는 원동력이 태권도”라며 감탄을 연발하고, 그 후 월남 고딘 대통령이 한국의 태권도시범단을 공식 초청하는데 이것이 최초의 태권도 해외시범단으로 육, 해, 공군과 해병대 장병 16명으로 구성, 월남과 대만에서 시범을 함으로써 태권도 세계화의 계기가 되었다.」최점현(2008,대한민국태권도오천년사)
이후 군태권도는 군사원조 목적으로 1962년부터 1973년까지 주월 태권도교관단을 파월 하였다.
86서울아시아게임 개막식에서 ‘약동’이란 주제로, 88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벽을 넘어서’란 주제로 흰 도복에 검은 띠를 매고 등장한 태권전사를 보고 전 세계인들은 주목했고 그 태권전사들을 통해 태권도에 매료 되었다.
매년 10월 국군의 날 기념식에 ‘검은 베레모’를 제창하며 등장하는 태권전사들을 보면서 국민들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태권도로 단련된 부대원들을 보면서 국가 안보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졌다.
태권도는 대한민국 군을 대표하는 무예(武藝)로 발전했다.「최근 특전사 예하 해외 파병부대인 동명부대가 소속되어 있는 레바논 평화유지군(UNIFIL) 서부여단 8개국 중 이탈리아·핀란드·프랑스·가나·슬로베니아·탄자니아 등 6개국 장병들이 태권도를 수련하고 있다.」(연합뉴스, 2014년7월8일)

이와 같이 세계 각 지역에서 평화유지군의 임무를 수행하는 해외파병부대는 다양한 군사임무를 수행하면서 민사작전으로 태권도를 통한 군사외교와 국위선양을 목적으로 태권도를 보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태권도를 하는 특전사는 국위선양을 하는 외교부대인 것이다. 그런데 특전사를 대표하던 전통무예인 국기 태권도가 언제부터인가 특전사 공식행사에서 사라지고 대신 특공무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공무술은 1978년 특전사에서 창설된 제606부대가 대테러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만든 무술이다.「제606부대의 특공무술은 제5공수특전여단에 의해 새롭게 구성된 국방무예로 보급되고, 대통령경호실에서는 기본무예인 합기도가 특공무술로 변경되어 보급되었다.」(김은정, 경호무도로써 특공무술의 형성과정에 대한 고찰, 2005)

현재 대통령경호실에는 태권도, 유도를 수련하고 있고 특공무술은 수련하지 않는다. 특공무술이 마치 특수한 필살기가 있는 특수한 무예로 인식되는 듯 보이지만, 오늘날은 많은 무예협회와 동네 도장에서 유치원생부터 남녀노소 누구나 배우는 생활체육무예이다. 무예를 배우고 익히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백번 연습하고 천번 단련하는 백연천마(白練天磨)의 정신으로 수련하지 않고 단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군인은 총을 들고 싸우기 때문에 사격을 잘해야 한다. 사격을 잘하기 위한 방법으로 PRI를 반복 숙달시키며, 연습하는 것처럼 무예는 실전에 사용하기 위해 신체적...(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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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병역명문가 스토리 가문(2017.9.7,조선일보)
특히 올해 처음으로 제정한 '스토리 가문상'을 받은 최재선씨 가문은 3대가 병역 의무를 치른 기간이 110년이고 무술은 도합 51단이다. 1대 최재선(작고)씨는 6·25전쟁에 참전했고, 세 아들은 모두 장교의 길을 걸었다<중략>

+제14회 병역명문가 시상식 개최(2017.9.6,세계일보)
병무청은 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대방로 공군회관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송영무 국방부 장관,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 6·25참전유공자회를 비롯한 안보단체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제 14회 병역명문가 시상식을 개최했다.
충남 논산 육군항공학교에 복무 중인 최점현(50) 중령 집안도 병역명문가로 선정됐다.
병무청에 따르면 최 중령 가문은 아버지 고 최재선씨의 대를 이어 3대에 걸쳐 모두 8명이 현역으로 복무했다. 8명의 누적 현역 복무기간을 모두 합하면 116년(1,392개월)이다. 아버지 최재선씨는 6·25전쟁 당시 복무했다. 최 중령의 첫째 형인 호현(65)씨는 공군본부 의장대에서 38년간 복무하고 공군 준위로 전역했다. 둘째 형 중현(60)씨는 육군 헌병 등으로 23년간 복무했다. 막내 최 중령은 31년차 헬기 조종사다.
3형제의 자녀 4명도 모두 현역 복무를 마쳤다. 둘째 중현씨의 큰아들이 육군 대위로 7년을 복무한 것을 포함해 현역 복무 기간을 합치면 14년이 된다. 이 집안 남자들의 무술 단수는 모두 51단이기도 하다.
병무청은 2004년부터 해마다 병역명문가를 선정해 포상하고 있다.

+우리는 형제 태권도 9단<태권도신문 2020.11.27>
지난 6일, 국기원 태권도 고단자 승단 심사장에 특이한 이력을 가진 형제가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주인공은 이번에 9단으로 승단한 최점현(53)씨와 이미 9단을 획득한 최중현(62) 씨다. 최중현 9단(왼쪽)과 최점현 9단. 중현씨는 이날 동생 점현씨를 응원하기 위해 심사장을 찾았다. 승단 심사를 앞둔 지난 1년간 주말이면 도장에서 점현씨의 실기 동작 하나하나를 지도하며 함께 운동해 왔기 때문이다.
이들 형제가 태권도를 시작하게 된 동기는 사소하다. 3형제 중 첫째 호현(67, 5단)씨가 중학생 시절 친구들에게 얻어맞은 이후 어머니의 강력한 권유로 3형제는 태권도에 입문하게 되었다. 이번에 9단으로 승단한 점현씨는 초등학교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했다.
국기원 승단 심사 규정상 1단 승단 후 최단 기간인 37년만으로 9단 최연소 나이다. 1981년 1단으로 승단한 그는 1984년 경희대 태권도학과에 진학했다.
최점현 9단은 “1980년대 초에는 4년제 대학에 태권도학과가 경희대 등 두 개 대학만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태권도를 해왔고 대학에서 태권도를 전공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아 경희대에 진학했죠. 지금은 대개 대학 진학은 취업을 고려하여 선택하지만, 당시만 해도 자기가 공부해 보고 싶은 분야에 지원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절대 후회하지 않은 선택입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형제는 군(軍)태권도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최중현 9단은 “태권도는 나의 군 생활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급간부 시절부터 특전사령부에서 태권도 교관 임무를 수행했고, 헌병 장교로 전과하여 육군본부 특별경호 대장으로 복무할 때도 태권도를 통하여 부대 전투력 수준을 향상시켰고, 체포술 등 태권도를 통하여 병과 특성에 맞는 교육 훈련체계를 구축하였다. 태권도는 나의 20여 년의 군 복무 동안 자신감을 더해준 힘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최점현 9단은 ROTC 26기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30여 년간 육군에서 헬기 조종사로 근무한 바 있으며, 현재는 육군교육사령부에서 교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지금은 국기원 기술심의회 교육분과에서 태권도 발전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2006년 항공대대장 직책수행 당시 야전군 태권도 대회에서 항공부대가 최초로 종합우승의 쾌거를 달성했다. 정예요원으로 구성된 특공 및 보병부대를 제치고 항공부대 승무원들로 구성된 팀을 지도하여 종합우승을 차지한 것은 정말 놀랄만한 일이었다”라며 자랑스러워 했다.
대학 시절 전국대회에서 입상할 만큼 선수로서도 기량을 발휘한 그는 2008년에는 <대한민국 태권도 오천년사>를 집필해 태권도 역사 분야에 대한 그의 열정을 불살랐다. 뿐만 아니라 국제심판 자격, 사범 자격, 심사위원 자격, 전문스포츠지도사 자격, 경기지도자 자격 등 태권도 제도권에서 실시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모두 이수하는 등 태권도를 향한 애착은 60여 개의 관련 자격증 등이 증명해 주고 있다.
이들의 꿈과 계획은 무엇일까? 최중현 9단은 10년 넘게 중고등학교 태권도연맹 임원으로 일해왔다. 현재는 태권도 일선이 아닌 공기업에 다니고 있지만 퇴직 후에는 태권도 발전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하기를 소망한다.
최점현 9단은 “태권도 수련생과 사범들의 소양 능력계발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관심이 있다”며, “태권도가 전문 스포츠로서만이 아니라 민간차원에서라도 무술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하고 생활체육으로 발전될 방법을 고민해 볼 때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 '헷갈리는 생활속 우리말' 책자출간<도서출판 생각나눔, 2021.4.20>
2020년에는 '헷갈리기 쉬운 생활속 우리말<저자 최점현>'을 출간하였는데
집필 동기는 2019년 사상 처음으로 실시한 국기원(세계 태권도 본부) 원장 선거 결과에서 비롯 되었다고 한다.
배경으로는
선거결과 62명의 국기원장 선거인단중 A씨는 31표, B씨는 30표, 무효가 1표였다.
당시 선거 관련 정관에는 과반수를 당선으로 규정하였지만, 선거관리를 위탁받은 중앙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31명을 득표한 A씨의 당선을 확정하였다. 이후 많은 논란이 생기기 시작했고, 출신학교, 출신지역 등 태권도인 상호간에 반목, 갈등이 심화되었다.
대화와 타협이 되지 않았고, 법정 소송전까지 벌어졌다. 결국 법원에서 선거 무효를 판정하였다.
'과반수'와 '반수'의 뜻을 간과한 결과였다.<중략..........>
책을 출간한 최점현은 당시 국기원 교육분과 부위원장으로서 태권도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이들과 태권도 수련생들에게 조금이나마 공부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반성하자는 차원에서 집필하였는데, 일부 태권도계 인사들은 태권도의 민낯을 만천하에 기록, 공개하였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선 사범들로부터는 많은 호응을 받았다.


+ '경희대학교 태권도학과 창립 40주년 기념식 거행, 2023.11.11 / 세계태권도무예신문, 연합뉴스, 네이버뉴스,에너지경제 등>
태권도학과 40주년 기념행사는 경희대 태권도학과와 태권도학과 총동문회가 주최하고, 태권도학과 창립 40주년 기념사업회의 주관으로 개최했다. 기념행사에는 이동섭 국기원장을 비롯하여 양진방 대한태권도협회장,최희섭 경희대 부총장, 송종국 체육대학 학장과 태권도 유관 단체장 등이 참석하였다. 행사에는 태권도학과 동문이 마련한 졸업생 태권도 공연과 경희대 태권도학과 40주년을 빛낸 ‘자랑스러운 경희 태권인’ 시상 및 태권도학과 출신 메달리스트 격려가 진행되었다.

태권도학과 40주년을 넘어 새로운 도약을 위한 발전기금 조성 사업도 병행됐다. 태권도학과 40주년 기념 발전기금은 교육환경개선, 인재 양성 장학금, 태권도학과 40주년 기념행사에 사용된다. 경희대 체육대학 학장을 역임했던 故 김경지 교수의 유가족이 발전기금 1억 원을 기부했다. 발전기금 전달식은 11월 7일(화) 국제캠퍼스 중앙도서관 대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한균태 총장과 故 김경지 교수의 유가족이 참석했다. 이 외에도 뜻에 공감한 태권도학과 동문들의 기부가 진행되었다.

경희대 태권도학과 창립 40주년 기념사업 공동위원장이자 태권도학과 학과장인 임신자 교수는 “이번 40주년 행사는 교수와 재학생의 전문성을 살려 기획되고 진행돼 더 큰 의미가 있다. 기념행사를 통해 많은 태권도인을 배출하고, 생태계 확대를 위해 노력한 태권도학과의 역사를 돌아보는 한편 새로운 100년을 다짐하는 계기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1억원을 쾌척한 고 김경지교수의 배우자(박국자 여사)는 특별공로상을 수상하며 큰 축하를 받았다. 또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최영렬 전 국기원장, 방영진 교수, 김경덕 경기도 태권도협회장과 전정우, 지성룡, 송석홍, 성기석, 유병칠, 양일중, 오경환, 김민성 동문에게 공로패를 수여했다.

경희대를 빛낸 각계의 얼굴들을 선정해서 '자랑스러운 경희 태권도인' 상을 수여했다.
수상자 명단으로 유재현(초대 경희대 태권도 동문회장), 전익기(전 태권도학과 교수, 학과장), 최선자(전 국가대표, 전 여성태권도연맹 부회장), 오명화(전 국가대표), 김용범(미국 태권도대표팀 코치), 김영길(미국 태권도대표팀 감독), 최점현(전 육군중령, 9단), 이송학(국기원 교수, 9단), 박남희(체육학박사, 9단), 임장섭(세계무예태권도신문 대표) 동문 등이다.



출처 : 한국강사신문(https://www.lecturernews.com)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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