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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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섭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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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체육훈장 수훈자
파일:체육훈장.png
연도
2005년
이름
최희섭
분야
스포츠
사유
체육발전유공
체육훈장기린장(5등급)

최희섭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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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IA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10.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09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9 KBO 리그 득점왕




최희섭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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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컵스 등번호 19번
게리 매튜스 주니어
(2001)

최희섭
(2002~2003)


다미안 잭슨
(2004)
플로리다 말린스 등번호 25번
데릭 리
(1998~2003)

최희섭
(2004)


데이비드 웨더스
(2004)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등번호 5번
제이슨 로마노
(2003)

최희섭
(2004~2005)


노마 가르시아파라
(2006~2008)
KIA 타이거즈 등번호 23번
문현정
(2004~2006)

최희섭
(2007~2015)


홍재호
(2016~2017)
KIA 타이거즈 등번호 78번
이대진
(2014~2019)

최희섭
(2020~)


현역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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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No.78
최희섭
崔熙涉 | Choi Hee-Seop

출생
1979년 3월 16일 (45세)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만수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송정동초등학교 (졸업)
충장중학교 (졸업)
광주제일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98 / 중퇴[1])
신체
192cm, 123kg[2], A형
투타
좌투좌타
포지션
1루수, 지명타자
프로입단
1998년 1차 지명 (해태)
1999년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 (CHC)
2007년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 (우선지명, KIA)
소속팀
시카고 컵스 (2002~2003)
플로리다 말린스 (2004)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4~2005)
KIA 타이거즈 (2007~2015)
지도자
KIA 타이거즈 1군 타격코치[3] (2020~2022)
KIA 타이거즈 잔류군 타격코치 (2023~)
해설위원
MBC SPORTS+ 야구 해설위원 (2016~2019)
병역
예술체육요원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3위)
상훈
체육훈장 기린장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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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아내[1], 아들 최현준[2](2011년생)
등장곡
Jean Roch - Can You Feel It
응원가
Deep Purple - Smoke on the Water[3]
Village People - YMCA[4]Ver.1Ver.2
1. 개요
2.1. 수상
3. 플레이 스타일
4. 은퇴 이후
4.1. 해설가 변신
4.2. 지도자로 현장 복귀
5. 여담
5.1. 형저메의 진실
6. 논란 및 사건 사고
6.1. 양육비 미지급 논란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KIA 타이거즈 잔류군 타격코치.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 리그에서 뛰었던 타자로, 2007년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로 국내로 복귀하여 고향팀 KIA 타이거즈에 입단했다. 부상과 부진으로 제대로 된 활약을 보이지 못하던 중 2009시즌에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4] 팀의 통합우승에 4번타자로 큰 기여를 하였다. 이후에도 좋은 모습과 안좋은 모습을 함께한 팀의 대표적인 애증의 선수였으며,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2. 선수 경력[편집]




2.1. 수상[편집]


수상
한국시리즈 우승 (2009)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2009)
득점 1위 (2009)


3. 플레이 스타일[편집]


파일:최희섭 타격.gif
탈아시아급의 건장한 체격에서 나오는 강한 힘, 안정적인 1루 포구 능력과 좋은 선구안을 두루 갖춘 OPS 히터형 1루수였지만 몸쪽 공에 극도로 취약한 단점, 여러 부상과 유리 멘탈로 팬들의 애증의 대상이었던 선수. 메이저리그에 최초로 진출한 타자이고, 메이저리그에서도 부상 이전까지 OPS 8할을 넘나들며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었다. 그러나 상술한 단점으로 인해 메이저리그 통산 성적은 붙박이 주전으로 보긴 어렵다. 한국에서도 몇몇 시즌은 괜찮은 활약을 했지만 8시즌 전반을 보았을때는 이름값과 기대만큼의 활약은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 중론.

그러나 KBO 통산 성적은 2131타수 598안타 327득점 100홈런 393타점 16도루 365볼넷 타율: 0.281 출루율: 0.388 장타율: 0.479 OPS: 0.867로 준수한 편이다. 결국 잦은 부상으로 인해 결장이 잦았고 은퇴가 빨랐던 것이 저평가의 주된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4. 은퇴 이후[편집]



4.1. 해설가 변신[편집]


2015 시즌 후 더 이상 선수 생활에 미련을 접은 최희섭은 KIA 구단에 은퇴 의사를 알렸다. 은퇴 후에는 프런트로 취업하여 야구 실무를 배우고 싶어한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메이저리그 시절의 동료들이 지금은 코칭스태프로 있는 등, 메이저리그 쪽에 있는 인맥들을 잘 활용하면 상당히 팀에 도움이 될 수 있기도 하다.

2015년 12월 28일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실력이 부족하여 메이저리그에서 실패했다고 발언하면서, 그 당시 라커룸에서 대놓고 금지약물 주사를 맞는 것을 일상처럼 봤다며 메이저리그 이면에 있는 금지약물의 어두운 면을 꼬집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미네소타 트윈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기로 했는데, MLB 시절에 같이 뛰었던 동료들이 현재 각 팀의 감독이나 코치를 하고 있어서 아마 직장을 구하기는 쉬울 것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2016년 MBC SPORTS+의 해설위원이 됐다. 5월 20일(한국 시간 기준, 현지는 19일) 애틀랜타 대 피츠버그 전에서 첫 해설을 했는데 말을 시작할 때와 끝마칠 때 그리고 단어 사이 사이에 이 사이로 흘러나온 침을 빨아당기는 듯한 소리를 계속해서 내기 때문에 거슬린다는 평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최희섭의 새로운 별명으로 최희스읍이 생기기도 했다.

2016년 5월 12일 엠스플의 광고로 등장했다. 덕분에 야구팬들에게 큰웃음을 줘서 순간 검색어 순위 1위에도 등극했다. 광고 이름이 형.저.메 다(..)

실제 방송영상(2:53:24 지점) 광고가 끝난 뒤 중계석에서 터진 빵형은 덤.(...)[5]

해설가로서 평가는 그닥 좋지 않은 편. 첫날이야 긴장하고 해설가 데뷔니 그렇다 치더라도 해설가로서 미숙한 모습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 발전이 없지는 않아 보이지만 2016년 내로 욕 안먹는 수준까지 올라올지는 비관적이다. 한편으로는 한국의 몇몇팬들에게 좋은 소리를 전혀 못 듣는 시카고 컵스를 대놓고 응원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자신이 성장하고 자신에게 첫 타석부터 전 관중이 기립박수를 보내줬던 좋은 추억을 가진 팀이라 어쩔 수 없지만.... 다만 선수 커리어의 시작을 시카고 컵스에서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하고 있는 사람이 많았음과 동시에 본인이 시카고 컵스에게 마음이 쏠릴 수밖에 없다고 조기에 깔끔하게 해명하면서 현재는 그래도 저 당시에 비하면 비난여론은 많이 줄어든 편.

그런데 2017 시즌에서 엠스플 해설을 하자 야구팬들은 일제히 탄식했다.

2017 NLDS 5차전 기준으로 해설 내용은 둘째 치더라도, 제일 심각한 문제는 안그래도 부정확한 발음에 말까지 빨라서 중간중간 선수 이름이나 야구 용어를 말하며 웅얼웅얼 굴리며 넘어가고 말까지 더듬기도 한다는 점. 말이 중간중간이지 말하는 내용의 한 30~40퍼센트는 이런식이다 보니 실제로 들어보면 전달력이 굉장히 떨어진다

해설자로 전향한지 꽤나 시간이 지났는데 이런 부분에서 발전이 없는 모습을 보이니 2018시즌도 해설 역량 발전을 기대하는 건 욕심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엠스플로 이를 모를 리 없을 텐데 2019 시즌까지 해설로 기용한다.[6] 그러나 초반에 잠깐 해설을 한 뒤로 더는 나오지 않았다. 이후 2019 한국 시리즈가 열릴 무렵 고향팀 KIA의 코치로 부임하면서 해설가 경력은 결국은 흑역사로 끝난 격.


4.2. 지도자로 현장 복귀[편집]


2019년 10월 23일, 친정팀 KIA 타이거즈의 코치로 영입되면서 은퇴한 후 4년만에 현장으로 복귀했다. 같이 영입된 송지만 코치와 함께 1군 타격코치를 맡는다.

과거 메이저리그 출신인데다 최근까지도 메이저리그 트렌드를 면밀히 파악한 덕에 맷 윌리엄스 감독의 야구이론을 선수들에게 쉽게 전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KIA 구단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코치진 개편에 따라 좌타자 전담 타격코치로 선임되었다. 코로나19로 시즌 개막이 미뤄지면서 팀 자체 연습경기 중계 해설도 맡고 있다.

하지만 타자들이 대부분 작년만도 못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어서 송지만과 함께 비난 여론이 올라올 조짐이 보였다. 다행히 7월에 타격이 어느 정도 올라오면서 타격을 덜 받는 중.

그러나 8월들어 타자들이 단체로 식물타선화 되면서 또 다시 비판 여론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특히 8월 9일 NC전에서 10개가 넘어가는 잔루로 득점권만 되면 하나같이 연속 아웃당하며 점수로 이어지지 못하자 타격코치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나마 9월에는 최원준을 고쳐냈다. 시즌 후반부 들어 투수진이 문제가 커지면서 포스트시즌 진출권에서 멀어진 탓에 야수진에 대한 비판이 좀 줄어든 면도 있고 최원준의 생애 첫 정규타석 3할 및 본인 커리어하이를 달성하면서 코치로서는 나름 괜찮게 한 시즌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2021 시즌 KIA의 팀 타격이 역대 최악으로 치닫으면서 송지만과 함께 당장 나가라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2022 시즌을 앞두고 감독이 김종국[7]으로 변경되면서 코칭스태프 개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군 좌타자 타격코치로 살아남는데 성공했다.[8]

2022 시즌 후 잔류군 타격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5. 여담[편집]


  • 키가 키인지라 농구로 따지면 포워드도 가능한 키이다. 메이저리그 강타자 중에서도 평균 이상이다.[9] 실제로 야구 선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야구 선수가 안되었다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었을까?'라는 내용의 설문조사에서 본인도 야구를 안 했으면 농구를 했을 거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 이후의 급격한 유리몸화에 학을 뗀 팬들은 한 경기 뛰고 시즌아웃 당할 것 같다고 비꼬았다. 여담으로 이때 최정은 과학자라고 대답했는데, 이를 들은 야갤러들은 '복리도 모르는 빠가가 무슨 과학자?'라는 반응을 보였다.

  • 몸집이 커서 전세기를 타면 아예 이코노미석 3자리를 차지하고는 누워버린다고. 그렇지 않으면 좁아서 견딜 수가 없다고 한다.

  • 2004년 플로리다 말린스로 트레이드 될 때 트레이드 대상자였던 데릭 리와의 인연이 화제가 됐다. 데릭 리의 아버지인 레온 리는 바로 최희섭을 메이저리그로 스카웃 했던 사람. 레온 리는 일본프로야구에서도 족적을 남겨 메이저리그에서도 동아시아통으로 통했다. 참고로 레온 리와 그의 형인 레론 리는 일본프로야구 롯데 오리온스에서 뛰었으며, 레론 리는 일본프로야구 통산타율 2위를 기록하고 있다.

  • 메이저리거 시절 별명은 빅초이이고, 한국 무대에 돌아온 후에도 소개 문구[10]로 간혹 쓰이고 있으나 국내 복귀 후 삽질만 한다고 희 초이라고 불렸으며 특히 모 기자의 기사에서 자신에게 충고해주던 이승엽을 향해 말했다는 '형, 저 메이저리거예요.'의 줄인말인 형저메로 굳어졌다. 메이저리거 대신 병신/병살타자(형저병), 홈런타자(형저홈), 함평리거(형저함 - 기아 2군훈련장이 함평에 있다.) 등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존재. 그 외엔 빅 초이+취미가 등산+시즌 내내 안 보임=빅풋이라는 별명도 있다.

  • 파워도 살벌하다. 언젠가 연습장에서 골프를 친적이 있는데 무심코 쳤더니 드라이버 헤드가 부러져 날아가 버렸다. 공은 어디로 간지 모르는데 헤드만 한 100m 날아간 것 같다고. 그날 3개를 부러뜨리고 난 후 다시는 골프장을 찾지 않는 최희섭에게 주위에서는 스윙하듯이 드라이브를 날려서 그렇다고 알려줬다 한다.

  • KBO 시절 의외로(?) 희생 번트 성공이 단 한번도 없다. 이는 타이론 우즈(2624) 다음으로 최다타석(2541) 무희타 기록이다.

  • 별명중에 동네 모자란 형(줄여서 동모형)[11]이 있다. 초등학생을 위한 야구 캠프에서 급식당번을 맡아 계란말이를 나눠주다 자기가 집어 먹는 장면이 사진에 찍혀 바보 이미지를 강화하기도 했다.

  • 2009 시즌에는 위의 별명들이 무색해질 정도로 맹활약을 펼쳐 저메신, 형저신이 되었다. 또 2009년 들어서 최희섭이 사실은 사슴같이 착하고 상처받기 쉬운 성격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밤비섭이라고도 불린다. 어쨌든 형저메의 거만한 이미지는 2009년 들어서 거의 불식된 상황. 대신 09 시즌 부터 시작된 그의 깊은 산 사랑에 형저뫼라는 별명이 탄생했다. 혹은 형저농이라 불린다. 09시즌 종료 후 프런트와의 연봉협상에서 만족할만한 대답을 얻지 못하자 농사나 짓겠다고 발언한 것에서 나온 이야기. 이것에 착안해 농부라는 별명이 붙었고 그로 인해 항구도시인 군산 출신 김상현은 어부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리고 나지완은 광부.

  • 11시즌에는 위의 아내 트위터 사건때문에 돡저메, 최두산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또한 똑딱질만 한다고 똑저메, 최희블세터라는 별명도 붙었다.

  • 2009년 12월 6일자 개그 콘서트나지완, 양현종과 함께 방청하다가 왕비호에게 까였다. 다음 시즌에 성적 나쁘면 보나마나 악플로 "훈련 안하고 개콘이나 보니까 그렇지!"라고 할거라며…. 추가타로 형저메사건. 심지어는 별명인 빅초이를 두고 크라운해태의 과자 빅파이 베낀 거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다. 웃기게도 최희섭은 1998년 해태 1차지명 선수다.
하지만 이 기간은 비활동 기간[12]이라 단체 훈련은 금지되어 있다…. 개인훈련은 가능하지만.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물론 10년은 김상현의 부상 및 나지완의 삽질로 쉴드를 쳐줄 수 있지만, 11, 12년의 성적은 형저메라는 별명이 다시 혐오로 돌아오는데 의심할 여지가 없다.

  • 등산 덕후로 알려져 있다. 등산을 하면서 지친 심신을 달래고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고. 이승엽의 말에 의하면 "무슨 등산 안내원인줄 알았다." 에베레스트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 배우 현우성과 같은 날에 태어났다.

  • 절친인 이현곤의 혼삿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 일본인인 야스다 아야와의 파혼 이후 가수 홍진영과 사귄다는 기사가 난 적 있지만, 최희섭 본인은 누구 혼삿길 막을 일 있냐며 펄쩍 뛰며 부정. 사실 진짜 여친은 따로 있었다고 한다.

  • 이후 2010년 7월 22일 미스코리아 미 출신 김유미 씨와의 열애사실과 2010년 12월 5일 결혼한다는 사실을 발표하였다. 김유미는 결혼 발표 기자회견에서 속도위반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2011년 1월 임신 7개월 속도위반이 밝혀졌다. 2011년 3월 28일 득남하였다. 그런데 7년 뒤인 2017년 11월 이혼하게 되었다고 알려졌는데, 이후 유일한 자녀인 아들의 양육권을 가진 부인 측에 매월 100만원씩 지급해야 할 양육권을 수차례 지불하지 않아 '양육비를 안주는 아빠' 리스트에 등재되기도 했다.

  • 불암갑에 따르면 최희섭이 홈런을 치면 저메인대포라는 듯.

  • 부활을 기원해 새로운 응원가가 만들어졌다. # 물론 믿으면 골룸.

  • 2012년 비시즌기간 보여준 모습에 많은 기아팬들이 돌아섰지만 수도권팀에 복수드립으로 역시 동모형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저메, 최등학생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그러다 2013년 4월 한정으로 다시 2009년의 모습으로 돌아가자 진격의 저메라는 별명이 생겼다.




  • 해설위원 데뷔 이후 2016년 월드 시리즈 7차전 클로징 멘트 도중 시카고 컵스의 우승을 축하하면서 눈물을 보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본인의 친정팀이었다는 점 때문에 공공연하게 시카고 컵스의 우승을 바란다는 언급을 한 적이 있는데, 굉장히 감격에 겨웠던 모양. 본인은 아직도 시카고 컵스에 대한 애정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다만 이는 해설자로서 더욱 그가 심각하다는 걸 입증하는 증거 중 하나다.

  • 본인 의도와 관계없이 메이저리그 진출 및 성공과 성적에 있어서 자주 소환되어 비교당하는 전투력 측정기 취급을 야구 팬덤에서 받는다.

  • KBO 선수 시절 메이저 출신답게 팬서비스가 상당히 좋았다. 요즘처럼 팬서비스 논란 같은게 크지 않던 시절이라 그냥 무시하고 가는 선수도 많던 당연하게 여겨졌던(...)시절이지만 오죽하면 원정경기와서도 라커룸에 짐풀고 다시 나와 팬들에게 사인해줄 정도로 팬서비스가 좋다.


5.1. 형저메의 진실[편집]


사실 '형 저 메이저리거에요' 오리지널 기사 내용도 최희섭을 까기 위한 내용보다는 적당한 유머의 성격이 강했다. 하지만 야구 팬들 사이에서 이 일은 일파만파 커졌고 최희섭이 하는 건 없으면서 건방지다는 인식을 주게 되었다.

이 사건에 대해 훗날 최희섭 본인과 이승엽은 다음과 같이 언론에 해명했다.

최희섭에게 그 유명한 '형저메(형, 저 메이저리거예요)' 사건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형저메'란 자신에게 충고를 하는 이승엽에게 최희섭이 "형, 저 메이저리거예요"라고 했다는 데서 시작된 별명이다. '형저메'는 최희섭이 부진할 때마다 팬들에게 좋은 안주감이 됐다.

최희섭은 이에 대해 "(김)태균이 편을 들어주려다 나온 농담이었다."며 당시 상황을 자세히 털어놓았다. 2006년 3월 1회 WBC 참가 중 어느날 운동장에 나갔는데 김태균(한화)이 약간 풀이 죽어 있더란다. 이승엽이 타격 조언을 해주면서, 농담으로 자존심 상하는 말을 했던 모양이었다. 최희섭은 김태균과 나란히 서서 몸을 풀었다. 그때 둘을 지켜보고 있던 이승엽이 "왜 말이 없냐. 소리도 안내고 열심히 할 수 있냐!"라고 외쳤다. 이때 최희섭이 '형저메'의 오리지널 버전인 "승엽이형. 무슨 소리를 내요 프로가. 저 메이저리거예요."라고 웃으며 농담으로 되받았다. 메이저리그 훈련 때는 소리를 안 내는 거 알지 않냐는 설명과 함께. 그때부터 '형저메'는 최희섭과 패키지로 붙어다니게 됐다.

최희섭은 "그때 난 못하던 시절이었고, 승엽이 형은 최고의 선수이자 본받고 싶은 선수였다. 아무 생각없이 튀어나온 말"이라며 "승엽이형이 기분 나빴을 수도 있는데 이후에도 승엽이 형과는 잘 지낸다"며 팬들의 오해를 풀어주고 싶어 했다.


이승엽을 비롯한 최희섭, 그리고 김태균이 대회를 앞두고 내야 수비 훈련을 하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 미국, 일본 3국에서 뛰던 이들이 1루 베이스 앞에 모인 것이다. 수비 코치의 내야 펑고 때 최희섭과 김태균이 조용히 공만 받자 이승엽은 "애들아. 소리도 조금 내면서 파이팅 외쳐야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최희섭은 "메이저리그에서는 소리 안 내는데요"라고 말한 것이 주변에 있던 베테랑 선수들의 귀에 들어가면서 '형저메'라는 우스갯소리가 만들어졌다.


김상현과의 만남 이후 강렬한 불꽃을 태웠던 2009년에는 "형 저 홈런 쳐요"로 패러디된 적이 있었다.

비하적 목적으로 생겨난 별명이지만 최희섭 본인도 이제는 해탈했는지 본인의 메이저리그 해설 데뷔 광고 문구에서 대놓고 '형저메'가 쓰였으며, 또 다른 비하용도인 무등산 드립까지 나왔다. 자세한 건 엠스플텔레비전 7회 참고

이와는 별개로 2017 시즌 후 이승엽이 은퇴하고 방송된 SBS 스페셜에 인터뷰로 나왔는데, 이승엽의 롱런 비결에 대한 질문에 "인내심이 강했다"고 답했다.

사실 최희섭 본인도 MLB 시절에 겪은 뇌진탕을 비롯하여 온갖 질병과 교통사고를 겪긴 했지만, 그와 동시에 온갖 구설수를 만들었던지라 드라마틱했던 2009 시즌이면 몰라도 2011년 이후에는 평이 나빴다. 2009년 해태 시절을 포함한 타이거즈 10번째 우승의 주역이지만, 그 후 유리몸과 창호지 체력, 유리멘탈로 인한 여러 구설수로 팬들에게 실망감을 준 적이 많다.

이래저래 구단과 팬들을 지치게 만드는 계륵같은 존재였으나,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임팩트와 탈 아시아급의 건장한 체격에서 나오는 안정적인 1루 포구 능력으로 코칭스태프든 팬들이든 쉽사리 버릴 수 없었던 선수였다. 현역 시절 인기는 굉장히 많던 선수 중 하나.


6.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6.1. 양육비 미지급 논란[편집]


2010년 시즌을 마친 후 2006 미스코리아 미 출신 김유미와 결혼했으나, 2017년 10월에 이혼했다. 둘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 있고 양육권은 김유미가 가져갔다.

그런데 이혼 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래서 배드파더스에 등재되었다. 기사 이에 대해 최희섭은 "아이를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처와 연락도 되지 않아 양육비를 몇 차례 전달하지 않았다"라고 해명했지만, 2018년 9월 19일 후속 보도를 통해 6개월간의 미지급 내역과 최희섭과 전처 사이에 오간 카톡이 공개되었다.

7.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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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99년 2학년 수료 후 중퇴했으며, 이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2004년 12월 1일 명예학사 학위를 수여받았다.[2] KBO 공식 프로필[3] 좌타자 전담[4] 당시로서 강타자의 상징인 3-4-5의 슬래쉬 라인과 OPS 1.000 이상을 기록했으며, 33홈런(2위), 100타점(3위), 96볼넷(2위), 0.435(출루율 6위)를 기록하였고, 98득점으로 득점 부문 공동 1위를 하기도 하였다. 2차 스탯으로 봐도 해당 시즌에서 리그에서 손에 꼽는 활약을 보였다.[5] 참고로 3:22:36 을 보면 한 번 더 광고가 나온 것을 본 빵형이 또 빵 터져서 고개를 못 든다.[6] 흡사 현역 때 최희섭이 반등이 불가능하다는 걸 내심 알면서도 미련을 가져 재계약을 해오던 KIA 타이거즈 프런트를 엠스플이 따라하는 것 같다는 반응도 있다.[7] 최희섭김종국의 고대후배라서 살아남은거 같다는 썰도 있다.[8] 반면 우타자 전담 타격코치는 송지만에서 이범호로 변경되었다.[9] 다만 192cm는 평균 신장이 큰 편인 미국야구에서도 장신에 속하지만 농구에서는 저정도도 단신에 속한다. 당장 아주 유명한 농구선수인 마이클 조던의 신장도 198cm인데 이 정도면 최희섭보다도 6cm이 더 크지만 정작 리그에서 맡던 포지션은 평균키가 2번째로 작은 슈팅 가드였다. 더군다나 NBA 선수의 경우는 평균키가 200cm를 넘는다. 그리고 엄밀히 최희섭 정도의 키는 우리나라에서도 가드로는 장신, 포워드로는 단신이긴 하지만 그나마 근육량이 있어서 단신 파워 포워드는 가능한 수준인데, 취미부라면 센터에도 무리는 없다.[10] 홈 경기에서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 문구도 '빅초이'이다.[11] WBC로 병역혜택을 받고 훈련소에 입소하는 최희섭의 모습을 실은 인터넷 뉴스 기사에 한 네이버 이용자가 '동네 바보 형 같다'고 리플을 단 데서부터 비롯되었다.[12] 프로야구 선수의 계약기간은 2월부터 11월까지. 보수도 그 기간에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