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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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 개요[편집]


충주(忠州)에서 몽고병이 포위를 풀었다고 보고하였다. 이때, 포위를 당한 것이 무릇 70여 일이 되었으며, 병량은 거의 바닥났다. 방호별감(防護別監) 낭장(郞將) 김윤후(金允侯)가 병사와 백성들을 독려하며 말하기를, “만약 힘을 다한다면 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관작(官爵)을 제수하겠다.”라고 하였다. 관노의 부적(簿籍)을 불태워 믿음을 보이고, 또 노획한 소와 말을 나눠주었다. 백성들이 모두 죽음을 무릅쓰니, 몽고군의 기세가 차츰 꺾여 마침내 다시 남쪽으로 가지 못하였다.

고려사절요 권17 > 고종4(高宗四) > 고종(高宗) 40년 > 12월 > 충주가 몽고군의 포위에서 벗어나다


몽골의 제5차 침입 당시 1253년(고종 40년) 10월 중순부터 12월 말까지 충주를 포위한 몽골군과 충주산성을 지키던 김윤후의 고려군이 맞붙은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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