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하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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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헨리 8세의 왕비
캐서린 하워드
Catherine Howard


파일:Hans_Holbein_the_Younger_-_Portrait_of_a_Lady_perhaps_Katherine_Howard_Royal_Collection.jpg

이름
캐서린 하워드
(Catherine Howard)
출생
1523년
잉글랜드 왕국 런던 램버스
사망
1542년 2월 13일 (향년 19세)
런던 런던탑
장례식
1542년 2월 13일
런던 런던탑 세인트 피터 애드 빈큘라 교회
배우자
헨리 8세 (1540년 결혼)
아버지
에드먼드 하워드 경
어머니
조이스 켈페퍼
형제
헨리, 찰스, 조지, 마거릿, 메리
종교
가톨릭성공회
서명
파일:캐서린 하워드 서명.svg

1. 개요
2. 생애
3. 매체에서
3.1. 튜더스의 캐서린 하워드



1. 개요[편집]


헨리 8세의 다섯 번째 왕비.


2. 생애[편집]


캐서린 하워드는 15세에 헨리 8세와 만나 연애 끝에 잉글랜드의 왕비가 되었다. 그녀는 헨리 8세의 둘째 왕비 앤 불린의 외가 쪽 하워드 가의 사촌이었다. 앤 불린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하워드와 캐서린 하워드의 아버지 에드먼드 하워드가 남매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촌지간인데 나이 차이는 거의 부모 자식 수준으로 크게 났다. 앤의 생년은 1501년 또는 1507년, 캐서린의 생년은 1523년으로 적게는 16살, 많게는 22살이나 차이가 났다. 남편인 헨리 8세와의 나이 차이는 무려 32살(!)이었고, 결혼 당시 헨리 8세의 딸인 메리 공주보다도 어렸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미모도 꽤 출중했고 앳되며 발랄한 성격이었고, 헨리 8세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랑을 쏟았다고 한다. 헨리 8세도 그런 캐서린을 두고 가시 없는 장미라고까지 얘기하며 매우 아꼈다.

'하워드'라는 성에서 알 수 있듯이 캐서린에게는 노퍽 공작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었으나, 그녀의 부모는 가난하고 별 볼일 없어 캐서린을 제대로 키울 수 없었다. 때문에 캐서린을 죽은 노퍽 공작의 부인[1]의 저택으로 보냈다. 애그니스 하워드의 저택에는 캐서린 같은 처지의 아이들이 굉장히 많았고, 아그네스는 그들을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캐서린은 당시 사회 분위기에 비해서 굉장히 자유롭게 자라났다. 좋게 말하면 자유로웠고, 다르게 말하면 난장판이었다. 캐서린은 사촌 언니 앤 불린과 달리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아서 간신히 글을 쓸 수 있을 정도였다. 캐서린과 다른 소녀들이 함께 자는 침실에는 남자들이 드나들며 소녀들과 성관계를 맺기도 했다.

음악 교사인 헨리 매녹스는 캐서린을 유혹했지만, 캐서린은 그가 신분이 낮다면서 잘 상대해 주지 않았다. 매녹스는 교회에서 캐서린을 더듬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 후 상당히 부유한 젊은 귀족 프랜시스 더럼(Francis Dereham)과 사랑에 빠졌다. 대귀족 하워드 가문이었지만 가난한 캐서린에게 더럼은 매력적인 상대였다. 두 사람은 아예 성관계를 맺었고, 거의 부부처럼 행동했다. 중요한 사실은 중세 유럽에서는 결혼이 성사되려면 신랑과 신부가 서로에게 "결혼한다." 라고 말하고 성관계를 맺는 것으로 충분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둘은 부부라고도 할 수 있었다. 더럼은 아일랜드에 업무를 보러 가면서 캐서린에게 자신의 돈을 맡기기도 했다. 그러나 더럼의 아일랜드 체류가 장기화되면서 캐서린은 더럼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캐서린은 곧 헨리 8세의 새 왕비클레페의 앤[2]시녀로 발탁되었다. 왕비의 시녀는 명문가의 처녀들에게만 주어지는 직책이었으므로 상당한 명예였다. 헨리 8세는 앤을 매우 싫어했고 동침조차 하지 않았는데, 자유분방하고 발랄하며 어린 캐서린 하워드에게 끌리게 되었다. 하워드 가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캐서린에게 왕을 사로잡도록 가르쳤다. 결국 헨리 8세는 클레페의 앤과 이혼하고 17세인 캐서린과 결혼했다.

하워드 가문은 가톨릭이었기 때문에, 캐서린 하워드는 가톨릭 신자들이 지지하는 왕비가 되었다.(클레페의 앤은 개신교 지역인 클레페 공국의 공녀였다.)

헨리 8세는 캐서린에게 완전히 푹 빠졌고, 가녀린 체구와 발랄하고 애교스러운 그녀가 순진한 처녀임을 철석같이 믿었다. 공개적으로 신에게

"지금까지 제 결혼사는 굴곡이 많았는데 이제 이렇게 완벽한 아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기도를 외치거나 캐서린에게서 손을 떼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헨리 8세는 젊은 캐서린에게서 후사를 볼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캐서린은 결혼 기간 내내 단 한 번의 임신도 하지 않았다. 헨리 8세의 다친 다리에서는 여전히 고름이 흐르고 허리가 50인치에 달하는 비대한 남자였다. 식탐도 워낙 심해서 말년엔 극심한 비만에 성기능도 떨어져, 캐서린은 헨리 8세를 존경했는지는 몰라도 남성으로 사랑하지는 못했다. 캐서린은 왕이 오지 않을 때는 자주 자신의 방을 걸어잠그고 시녀들조차 드나들지 못하게 했다.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대에 왕비나 왕의 방은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이어야 했는데 캐서린이 닫힌 방에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갔다. 곧 미망인의 기숙사에서 살던 시절의 친구들을 시녀로 고용하기도 했는데, 자유분방한 과거에 대해 발설하지 못하도록 입막음을 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하워드 가문의 반대파인 신교도 존 라셀이 당시 캔터베리 대주교였던 토머스 크랜머에게 캐서린이 과거에 방종한 생활을 했다는 편지를 보냈다. 라셀의 누이 메리 라셀은 캐서린과 같은 미망인의 기숙사 출신으로, 캐서린의 과거 남자관계에 대해 오빠인 존에게 이야기했던 것이다. 크랜머는 이를 두고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결국 11월 1일에 열린 미사에서 헨리 8세에게 이같은 정보를 전했다. 헨리 8세는 처음에는 왕비를 음해하려는 세력의 음모라고 여겨 믿지 않았으나, 곧 헨리 매녹스와 프랜시스 더럼이 체포되어 추궁한 끝에 사실을 털어놓자 대단히 충격을 받았다. 캐서린 또한 감금되었는데 이때 그녀는 말 그대로 멘붕을 하고 말았다. 캐서린을 등에 업고 세력을 얻었던 하워드 가문은 이번에는 그녀를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캐서린은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매녹스와 더럼과의 육체 관계에 대해 세세하게 털어놓았는데, 더럼과 결혼했냐는 말에는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다만 결혼 전 과거의 일로는 간통죄가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워드 가문의 반대파는 이제 캐서린이 토머스 컬페퍼라는 왕의 젊은 시종[3]과 간통을 저질렀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컬페퍼의 방을 뒤지자

"어떻게 지내냐, 말만 해 주면 너를 만나러 가서 네가 하자는 대로 하겠다, 사랑한다."

라고 서툰 철자법으로 작성된 캐서린의 편지가 나왔다.[4] 캐서린과 컬페퍼 모두 서로 정신적으로 연애했다고 인정은 했으나, 육체 관계는 완강히 부인했다. 하지만 캐서린 하워드의 시녀로 앤 불린의 남동생 조지 불린의 부인이었던 로치포드 부인(Lady Rochford)이 두 사람이 동침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전에 사귀던 남자를 비롯해 자신의 정분을 알고 있던 사람들을 주변 심복으로 채용하거나 뇌물을 줘 입막음을 했다는 것도 밝혀졌다.

헨리 8세는 순수하다고 믿었던 어린 아내가 사실은 적어도 두 남자와 성경험이 있었고, 자신의 심복인 총애하던 시종과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절망했다. 특히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건 남편이 그녀를 성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당대 인식에 비추어 보면, 캐서린은 일국의 왕이 자기 아내조차 다스리지 못하는 고자라고 물을 먹인 거나 다름없었다. 더구나 헨리 8세는 자신의 나이와 건강과 외모가 그 지경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자신이 매력적인 미남자라는 자부심을 가졌던 자아도취가 강한 성격이었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헨리 8세는 주변 사람들마저 그가 미치는 게 아니냐고 걱정할 정도로 분노했고, 왜 자기 팔자가 이렇냐며 울음을 터뜨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심지어 캐서린을 손수 죽이겠다며 검을 가져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헨리 8세는 이후 왕비가 될 여성이 자신의 전 남자관계를 숨기는 것은 반역이라는 법까지 만들었다.

헨리 매녹스는 무죄로 방면되었고, 캐서린의 옛 남자 프랜시스 더럼과 불륜 상대 토머스 컬페퍼는 방종한 생활의 죄를 물어 교수척장분지형으로 처형되었다. 캐서린 하워드에게도 사형이 선고되었는데, 법도대로 하면 교수척장분지형을 받아야 할 여성이라는 이유로 화형에 처해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나마 왕비였다고 해서 고통이 덜한 참수형이 집행되었다. 캐서린은 죽음을 의연하게 맞기 위해 처형을 기다리면서 처형에 쓰이는 참수대를 가져와 목을 대는 연습을 했다. 죽기 전 캐서린 하워드는 자신이 정당한 벌을 받는 것이며, 자신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짤막한 말을 남겼다.

"난 차라리 이 나라의 왕비가 아니라 토머스 컬페퍼의 아내로서 죽고 싶다."

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설은 후대의 창작이다. 처형 당시 캐서린의 나이는 19세였다.

로치포드 부인 역시 토머스 컬페퍼와 캐서린 하워드의 불륜을 도왔다는 혐의로 처형당했다. 이 로치포드 부인은 후대에 상당히 부정적인 인물로 남아 있다. 일단 로치포드 부인은 시누이였던 앤 불린이 그녀의 남동생인 자기 남편 조지 불린과 근친상간을 저질렀다고 증언하면서 불린 남매의 최후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그런데 이번엔 캐서린 하워드의 불륜도 사실이라고 증언하면서 다시금 헨리 8세의 왕비가 처형당하는데 한 몫 한 것이다. 이때 로치포드 부인은 감금되어 있는 동안 "미쳐버렸다." 혹자는 당시 법률상 광인은 사형에 처하지 않았기에 로치포드 부인이 처형을 면하려고 일부러 미친 척 연기했다고도 하지만 진실은 알 수 없다. 진상이야 어찌 됐건 헨리 8세는 로치포드 부인이 미치지 않았다고 우기며 기어이 처형했다. 여기에 보태서 광인도 처형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꾼 것은 물론이다.

한편 헨리 8세는 캐서린 하워드의 죽음 이후 매우 우울해하다가, 30대 초반의 부유한 과부캐서린 파를 적절한 왕비 후보로 낙점하여 청혼한 끝에 결혼을 성사시켰다. 캐서린 파는 캐서린 하워드와는 정반대의 여성으로 이미 두 남편을 떠나 보낸 과부였기 때문에 남자 관계로 흠을 잡을 이유도 없었고 경박한 어린 캐서린과 달리 진중한 성격이었으며, 늙고 병든 남편들과 산 경험이 있어서 노년에 접어 들며 건강이 부쩍 상하고 우울했던 헨리 8세를 잘 돌봐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여자였다.[5]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또 결혼하는 헨리 8세에게 아주 질려버렸다고 한다. 다만 헨리 8세도 결혼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후사 때문이라고 해명하기는 했다. 적통 왕자가 에드워드 6세 하나뿐이었는데 그 아들조차 건강이 안 좋아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으니 아들이 하나 더 필요하다는게 이유였다.[6] 실제로 헨리 8세는 파와 4년 남짓한 결혼 생활을 하던 중에도 파의 임신 소식이 없어서 침울해했으며, 캐서린 파 역시 헨리 8세에게 '아들을 낳아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실 헨리 8세가 사망한 직후 재혼한 파가 멀쩡히 아이를 낳은 점을 감안하면, 둘 사이에 아이가 없었던 것은 헨리 8세의 책임이었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노년의 헨리 8세는 고도 비만으로 불임이 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며 발기부전 증상까지 보였다는 학설이 있다.

3. 매체에서[편집]



3.1. 튜더스의 캐서린 하워드[편집]


파일:external/pds20.egloos.com/b0078460_4d8791c9863fa.jpg
배우 이름은 탬진 머챈트(Tamzin Merchant)이다. 영화 오만과 편견(2005)에서 다아시의 여동생 조지아나 다아시로 나왔다. 배역은 거의 바보 수준인데 정작 배우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신의 엘리트였다.[7]

시즌3, 4에 걸쳐 등장한다. 이미지 탓인지 6명의 왕비 중 출연 횟수에 비해 정사씬이 대단히 많으며 10대의 왕비답게 굉장히 순진하고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등장한다. 다만 기품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촐랑대는 모습 때문에 메리 공주를 비롯한 몇몇 이들에게는 비웃음을 사고 있으며, 공식적으로는 그녀를 보필하는 위치에 있는 시녀장 로치포드 부인 역시 그녀를 왕비로 대하고는 있지만 가끔씩 어린애를 보는 듯한 태도다.[8]

헨리가 클레페의 앤을 쫒아내고 결혼한 것이기 때문에 사촌인 앤 불린과 상황이 미묘하게 들어맞는다. 또한 그녀의 경박한 모습 때문에 의붓딸인 메리 공주가 그녀에게 차갑게 대하면서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자 어린애처럼 토라지기도 한다. 이때는 헨리가 시간을 주자고 다독거려 넘어갔다. 그러다가 메리의 방에 쳐들어가 왜 자신을 왕비로서 존중하지 않느냐고 따지고, 메리가 그녀의 태도 등을 지적하자 결국 폭발하여 "나이도 많은데 아직도 결혼을 못해서 젊은 나를 질투하는 것 아니냐. 평생 결혼 못하고 노처녀로 늙어죽을거다"라는 무개념 대사를 매리의 면전에서 시전하고, 하녀들과 키득거리기까지 했다. 덕분에 그동안 메리가 온갖 고생을 하는걸 봐온 시청자들에게 어그로를 대폭 끌어 안티가 폭증했다.[9]

다만 다른 의붓자식들인 엘리자베스 공주에드워드 왕자와는 별 충돌이 없었다. 엘리자베스는 속마음이야 어떻든간에 캐서린에게 친절하고 공손한 태도를 취했고, 에드워드는 아예 순진한 어린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캐서린도 엘리자베스에겐 자신이 걸고 있던 목걸이를 선물로 주는 호의를 베풀고, 에드워드는 보자마자 너무 귀엽다며 부채로 장난을 쳐서 에드워드를 웃기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그 와중에 자신의 옛 친구인 조안 벌머가 찾아와 시녀로 삼아달라고 한다. 캐서린은 자신의 과거를 아는 사람을 곁에 두기가 꺼림칙했지만, 그래도 그녀와의 우정을 생각해서 시녀로 고용한다. 하지만 조안은 얼마 안 가 로치포드 부인에게 캐서린이 옛날에 남자가 있었다는 걸 떠벌리고, 로치포드 부인 역시 컬페퍼에게 이야기한다.

토마스 컬페퍼가 접근하자 캐서린은 그에게 흥미를 가지고, 로치포드 부인까지 부추긴 덕에 결국 불륜을 저지른다. 컬페퍼도 그렇고 로치포드 부인도 그렇도 다들 정신줄을 놓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전개.[10] 설상가상으로 캐서린과 관계를 맺고 결혼까지 약속했던 프랜시스 더럼이 자리 하나 차지하고자 그녀를 찾아온다. 캐서린은 자신의 과거가 탄로날까봐 그를 고용해서 입막음을 시켜놓지만, 문제는 이 놈이 깐죽깐죽 나불나불거린다.[11]

결국 헨리는 프랜시스 더럼과 캐서린의 관계를 알게되고 분노한다. 그래도 처음엔 왕비 자격을 박탈하고 쫒아버리는 정도로 끝낼 생각이었던 것 같지만, 도중에 컬페퍼와의 불륜사실까지 밝혀지자 자비고 나발이고 집어치운다. 결국 자신이 죽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캐서린은 어린 나이답게 두려움에 떨지만 나중에 타워로 연행되면서 참수당한 컬페퍼의 목을 보고는 절망한 뒤, 미리 사형대에 설 연습을 하게 해달라고 요청하게 된다.

마지막에는 로치포드 부인의 처형을 지켜보고 뒤이어 사형대에 선다. 로치포드 부인이 참수당하는 모습을 보고 잠시 두려움에 떨지만[12], 곧 자신의 일을 발설해버린 친구 조안에게 초연한 미소를 짓고 구경꾼들에게 "나는 이곳에 죽으러 왔다. 하지만 잉글랜드의 왕비로서 죽기보다 컬페퍼의 아내로 죽고 싶다"라고 선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때만큼은 무척이나 강단있는 여성의 모습. 마지막에 남긴 말은 "인생은 정말 아름다워(Life is very beautiful)." 그 때 그녀가 죽을 때 안타까워한 사람들이 몇몇 있었던 것을 보면 그녀의 과거와는 별개로 그 자유분방함을 좋아한 사람들도 있었다.

캐서린이 사형당하던 때에 헨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13] 이것은 앤 불린의 죽음 때와 비슷한 모습으로[14] 드라마상에서는 캐서린 하워드와 앤 불린의 상황이 여러 가지로 비슷하게 나온다. 예컨대 캐서린이 임신했다고 헨리에게 전했는데 알고 보니 착각이어서 헨리가 화를 내자, 캐서린은 "제가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확신해요."라고 말한다. 이 말에 헨리는 앤 불린을 떠올리고 얼굴이 굳어진다.

이후 시즌 4 마지막에 죽은 부인들이 나와서 헨리를 만날 때엔 등장하지는 않지만, 앤 불린이 이를 언급하며[15] 헨리에게 일갈한다.


3.2. 식스 더 뮤지컬[편집]


헨리 8세의 아내들을 재해석한 뮤지컬 식스 더 뮤지컬에도 등장한다. 아리아나 그란데브리트니 스피어스에게서 음악적 영감을 얻었으며 테마색은 보라색에 가까운 핑크. 한국 초연 배우는 김려원, 솔지. 솔로곡인 All You Wanna Do는 어릴 때부터 만나온 남자들을 통해 사랑을 꿈꿨지만, 결국 그들 모두 자신의 몸만을 원했음을 알고 절망하는 하워드의 이야기를 그린다. 역사에서 다른 왕비들에 비해 알려진 바가 적기 때문에[16] 공연에서는 하워드가 자신의 이야기를 맘껏 펼칠 수 있는 가장 긴 솔로곡을 주었다고 한다. [17]

극중 하워드가 왕비들을 한 명씩 디스하는 씬이 있다. 아라곤의 캐서린에겐 수녀원에 거의 보내질 뻔한 이야기가 거의 슬플 뻔했다고, 앤 불린에겐 참수당한 이야기가 제일 슬펐다고 이야기하다가 자신도 참수당했으니 도긴개긴이라고 한다.[18] 제인 시모어에겐 자연사, 캐서린 파에겐 생존했다며 디스를 한다. 그리고 클레페의 앤에겐 '얼굴 때문에 까인 건 정말 슬프다, 나는 워낙 핫해서 상상도 할 수 없다'라며 인신공격을 한다.[19] 왕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쓰는 마지막 넘버인 SIX에선 음악교사이자 첫 남자였던 헨리 매녹스가 집적대자 바로 손절해버린 뒤 음악을 독학해서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며 산다.

[1] 2대 노퍽 공작 토머스 하워드의 2번째 아내 아그네스 하워드. 결혼 전에는 아그네스 틸니(Agnes Tilney).[2] 클레베스의 앤, 클레페의 안나라고도 한다.[3] 왕의 시종이었던만큼 당연히 귀족[4] 몇몇 학자들은 캐서린이 문맹이었기 때문에 편지가 조작이라고 주장한다.[5] 사실 캐서린 파는 헨리 8세의 실질적인 간병인이었으며 이 결혼은 케어가 필요한 돈 많고 변덕스런 노환자와 능숙한 간호인의 결합이라 봐도 무방했다. 헨리 8세 역시 아픈 자신을 돌봐줬던 파에게 많은 고마움을 느꼈고 그녀에게 호의적인 유언장을 작성해 주었다.[6] 에드워드 6세가 건강하지 못했다는 설은 진위가 불분명하다. 오히려 체구가 크고 좀 둔한 성격일지언정 몸은 건강했다는 얘기도 있다. 요절도 갑자기 병을 앓아 6개월여 만에 갑자기 죽어버렸다는 것이었다. 다만 에드워드가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죽을 경우 그 다음 계승 1순위는 헨리 8세가 잔인하게 버린 첫 왕비 아라곤의 카탈리나의 딸 메리 공주였다. 오히려 이 편이 더 신경쓰였을 것이다. 아들 핑계로 본처를 갈아치웠는데 결국 왕위는 원래대로 그 본처 소생의 장녀에게 간다면 여태까지의 자기 꼴은 뭐가 되며, 본인부터가 왕비를 여럿 들여놓고도 아들 하나 얻기가 힘들었는데 그 아들인 에드워드도 장성, 결혼, 아들 출산을 해낸다는 장담이 없었다.[7]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이루는 31개의 컬리지 중 하나인 호머튼 컬리지 출신이다. 전공이 교육학이라 아동용 책(The Hatmaker)도 낸적이 있다.[8] 토머스 컬페퍼와의 대화에서는 캐서린에 대해 "그저 춤추는 예쁜 인형일 뿐"이라고 평하기까지 했다.[9] 재밌는 건 드라마상으로나 역사상으로나 캐서린은 메리보다 7살이나 어리지만, 메리 공주 역의 세라 볼저는 탐진 머천트보다 4살 어린 91년생이라는 것이다.[10] 심지어 에드워드 왕자가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남편인 헨리 8세는 아들 옆에서 밤새 간호를 하고 있으나 그녀는 토마스와 정사를 나누는 충공깽한 모습을 보여준다.[11] 캐서린 하워드를 케이트라고 부르면서 알랑대는 게 꼭 한대 쳐주고 싶은 태도다. 아직 캐서린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문제는 입단속을 안 한다는 것이었다. 캐서린과 옛날에 그런 관계였다고 주변 시종에게 다 떠벌리기까지 했다! 왕에게 걸리면 캐서린은 물론이고 자신도 완전 끝장난다는 걸 이해하지 못했으며 결국 나중에 캐서린과의 사이가 드러나 고문을 받고 끔찍하게 처형당한다. 그것도 교수척장분지형으로. 무슨 방법인지는 이 문서를 참고하길.[12] 바로 눈앞에서 로치포드 부인이 목이 잘리는걸 보고 오줌을 지린다.[13] 연회에 초청된 이들은 시모어 형제, 찰스 브랜던 등 유력 신료들의 아내들이었다. 이때 참석한 여인들은 장난삼아 차례로 왕비의 어좌에 앉아 보는데, 이를 헨리 8세가 매우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자신의 왕비들이 모두 슬픈 최후를 맞이했던 것을 연상시켰을 것이니까.[14] 시즌 2 마지막 화를 보면 앤 불린이 처형당한 직후 씬이 헨리 8세가 연회에서 파이를 게걸스럽게 뜯어먹는 모습이다.[15] 대사는 다음과 같다. "불쌍한 캐서린 하워드. 그녀는 내 옆의 차가운 땅에 누워 있죠. 불쌍한 아이. 그것 또한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죠. 하지만 우리는 두 나방과 같아서 불꽃에 다가가다... 타 버렸죠." (Poor Catherine Howard. She lies in the cold ground next to me. Poor child. It was not her fault either. But we were like two moths, drawn to the flame... and burned.)[16] 극중에서도 아라곤의 캐서린앤 불린이 가장 비중없는 캐서린이라며 관심없다고 디스한다.[17] 4절까지 있는데 극중에서 제인 시모어가 제일 슬픈 노래는 아니었다고 하자, 하워드가 4절까지 불렀는데 귀 막고 있었냐고 묻는 씬이 있다.[18] 직접적으로 디스한다기보다는 슬펐다고 공감해주다가 이혼-참수-죽음-이혼-참수-생존 사이클을 다시 읊는다. 그리고 자신을 가리키며 "참... 참수...!"라고 하며 자신도 참수당했음을 암시하곤 슬픈 척 신경쓰지 말라며 이동한다.[19] 와중에 뉘앙스는 디스가 아닌 진심으로 가슴이 아프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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