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도 마사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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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레코드 대상
(日本 レコード大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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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1959년)

제2회
(1960년)

제3회
(1961년)

제4회
(1962년)

미즈하라 히로시
<黒い花びら>
마츠오 가즈코
와다 히로시
마히나스타즈
<誰よりも君を愛す>
프랭크 나가이
<君恋し>
하시 유키오
요시나가 사유리
<いつでも夢を>
제5회
(1963년)

제6회
(1964년)

제7회
(1965년)

제8회
(1966년)

아즈사 미치요
<こんにちは赤ちゃん>
아오야마 가즈코
<愛と死をみつめて>
미소라 히바리
<柔>
하시 유키오
<霧氷>
제9회
(1967년)

제10회
(1968년)

제11회
(1969년)

제12회
(1970년)

잭키 요시카와
블루 코멧
<ブルー・シャトウ>
마유즈미 준
<天使の誘惑>
사가라 나오미
<いいじゃないの幸せならば>
스기와라 요이치
<今日でお別れ>
제13회
(1971년)

제14회
(1972년)

제15회
(1973년)

제16회
(1974년)

오자키 키요히코
<また逢う日まで>
치아키 나오미
<喝采>
이츠키 히로시
<夜空>
모리 신이치
<襟裳岬>
제17회
(1975년)

제18회
(1976년)

제19회
(1977년)

제20회
(1978년)

후세 아키라
<シクラメンのかほり>
미야코 하루미
<北の宿から>
사와다 켄지
<勝手にしやがれ>
핑크 레이디
<UFO>
제21회
(1979년)

제22회
(1980년)

제23회
(1981년)

제24회
(1982년)

쥬디 옹
<魅せられて>
야시로 아키
<雨の慕情>
테라오 아키라
<ルビーの指環>
호소카와 타카시
<北酒場>
제25회
(1983년)

제26회
(1984년)

제27회
(1985년)

제28회
(1986년)

호소카와 타카시
<矢切の渡し>
이츠키 히로시
<長良川艶歌>
나카모리 아키나
<ミ・アモーレ>
나카모리 아키나
<DESIRE -情熱->
제29회
(1987년)

제30회
(1988년)

제31회
(1989년)

제32회
(1990년)

콘도 마사히코
<愚か者>
히카루GENJI
<パラダイス銀河>
Wink
<淋しい熱帯魚>
호리우치 타카오
<恋唄綴り(엔카)>
B.B.QUEENS
<おどるポンポコリン(팝)>
제33회
(1991년)

제34회
(1992년)

제35회
(1993년)

제36회
(1994년)

키타지마 사부로
<北の大地(엔카)>
KAN
<愛は勝つ(팝)>
오츠키 미야코
<白い海峡(엔카)>
코메코메 클럽
<君がいるだけで(팝)>
코자이 카오리
<無言坂>
Mr.Children
<innocent world>
제37회
(1995년)

제38회
(1996년)

제39회
(1997년)

제40회
(1998년)

TRF
<Overnight Sensation
~時代はあなたに委ねてる~>
아무로 나미에
<Don't wanna cry>
아무로 나미에
<CAN YOU CELEBRATE?>
globe
<Wanna Be A Dreammaker>
제41회
(1999년)

제42회
(2000년)

제43회
(2001년)

제44회
(2002년)

GLAY
<Winter, again>
사잔 올 스타즈
<TSUNAMI>
하마사키 아유미
<Dearest>
하마사키 아유미
<Voyage>
제45회
(2003년)

제46회
(2004년)

제47회
(2005년)

제48회
(2006년)

하마사키 아유미
<No way to say>
Mr.Children
<Sign>
코다 쿠미
<Butterfly>
히카와 키요시
<一剣>
제49회
(2007년)

제50회
(2008년)

제51회
(2009년)

제52회
(2010년)

코부쿠로
<蕾>
EXILE
<Ti Amo>
EXILE
<Someday>
EXILE
<I Wish For You>
제53회
(2011년)

제54회
(2012년)

제55회
(2013년)

제56회
(2014년)

AKB48
<フライングゲット>
AKB48
<真夏のSounds good!>
EXILE
<EXILE PRIDE 〜こんな世界を愛するため〜>
三代目 J Soul Brothers from EXILE TRIBE
<R.Y.U.S.E.I.>
제57회
(2015년)

제58회
(2016년)

제59회
(2017년)

제60회
(2018년)

三代目 J Soul Brothers from EXILE TRIBE
<Unfair World>
니시노 카나
<あなたの好きなところ>
노기자카46
<インフルエンサー>
노기자카46
<シンクロニシティ>
제61회
(2019년)

제62회
(2020년)

제63회
(2021년)

제64회
(2022년)

Foorin
<パプリカ>
LiSA
<>
Da-iCE
<CITRUS>
SEKAI NO OWARI
<Habit>
제65회
(2023년)

발표 예정
<발표 예정>
※ 1990년부터 1992년까지 잠시 엔카 장르와 팝 장르로 나누어 대상을 시상했다.
※ 우수 작품상 수상자 중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수상자가 일본레코드대상의 '대상'을 수상한다.




역대 FNS 가요제 그랑프리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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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1974년)

제2회
(1975년)

제3회
(1976년)

제4회
(1977년)

이츠키 히로시
みれん
후세 아키라
シクラメンのかほり
미야코 하루미
北の宿から
이시카와 사유리
津軽海峡・冬景色
제5회
(1978년)

제6회
(1979년)

제7회
(1980년)

제8회
(1981년)

사와다 켄지
LOVE (抱きしめたい)
사이조 히데키
YOUNG MAN (Y.M.C.A.)
이츠키 히로시
ふたりの夜明け
테라오 아키라
ルビーの指環
제9회
(1982년)

제10회
(1983년)

제11회
(1984년)

제12회
(1985년)

마츠다 세이코
들장미의 에튀드
호소카와 타카시
矢切の渡し
이츠키 히로시
長良川艶歌
나카모리 아키나
ミ・アモーレ
제13회
(1986년)

제15회
(1987년)

제15회
(1988년)

제16회
(1989년)

나카모리 아키나
DESIRE -情熱-
콘도 마사히코
愚か者
나카야마 미호
Witches
히카루GENJI
太陽がいっぱい
제20회
(1990년)

시상 종료[1]
B.B. QUEENS
おどるポンポコリン
[1] 1991년 제26회 'FNS 가요제'부터는 그랑프리 시상을 종료, 콘서트 형식으로 변경하여 무대만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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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도 마사히코
近藤(こんどう (まさ(ひこ| Masahiko Kond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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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64년 7월 19일 (59세)
카나가와현 야마토시
국적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활동 기간
1979년 ~ 현재
가족
배우자 와다 아츠코, 슬하 1남(2007년생)
애칭
맛치(マッ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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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 시절
1. 개요
2. 활동
2.1. 데뷔 초기 (1979~1986)
2.2. 일본 레코드 대상 수상 (1987)
2.3. 이후
2.4. 싱글 디스코그래피
3. 사생활
3.1. 나카모리 아키나와의 관계
3.2. 후쿠시마 팬더 발언
3.3. 쟈니즈 후배들에 대한 꼰대짓
3.4. 2020년 불륜 논란
4. 여담



1. 개요[편집]


일본의 가수이자 배우이면서 레이싱팀 감독이다. 전 쟈니스 소속이였으며, 소년대 등과 함께 일본 남성 아이돌계의 레전드로 대우받고 있었다.

그러나 음치 수준의 가창력, 본인의 막 나가는 처신 및 미디어와 소속사의 과도한 실드 문제로 인해 실제로 쟈니스 팬덤 내부와 안티들 사이에서 받는 취급은 최고선임보단 전역 직전에 사고를 치는 말년간부 급이었다. 그리고 쟈니스에서 쫓겨났다. 일본의 조영남 같은 캐릭터라지만 조영남은 적어도 가창력은 좋으니 일본의 조영남 같은 소리는 조영남에게조차 실례가 되는 소리다.

2014년 최초의 쟈니스 50대 아이돌이 되었으며, 2021년에 12월에 데뷔 41주년을 맞게 된다. 2015년에는 데뷔 35주년을 맞아 이에 맞춰 신곡 大人の流儀를 발표하였으며, 19년만에 홍백가합전 출전이 결정되었다.

레이싱이 취미이자 특기라서 직접 드라이버 겸 레이싱 팀 감독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스승은 일본에서 가장 빠른 남자인 호시노 카즈요시[1] 현재 슈퍼 GT[2]와 슈퍼 포뮬러에 참전하는 콘도 레이싱의 감독으로 재직하고 있다.

1981년(제 32회)~1988년(제 39회), 1996년(제 47회), 2015년(제 66회) NHK 홍백가합전에 출장했다.(총 10회)

2011년 기준 총 판매량 1267만장.[3]


2. 활동[편집]



2.1. 데뷔 초기 (1979~1986)[편집]


1979년 드라마 '3학년 B반 킨파치 선생'에서 대중에게 처음으로 얼굴을 비췄고, 1980년 가수로 데뷔. 같은 소속사인 타하라 토시히코, 노무라 요시오와 더불어 '타노킨 트리오'[4]로 불리우며, 특유의 거칠고 반항아적인 매력을 내세워 고 히로미, 사이조 히데키 등에 이은 최고의 남자 아이돌 스타로 등극했다.

남녀노소를 안가리는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맛치 컷이라는 헤어스타일을 전국적으로 유행시키기도 했으며 스니커, NIKE등을 일본에서 최초로 유행시킨 장본인이기도 하고 전국적으로 맛치 친위대가 조직적으로 결성될 정도로 1980년대 초반을 뒤흔든 그야말로 레전드.

그의 최대 히트곡은 단연 'ギンギラギンにさりげなく'(1981).[5] 일본 가요 청취가 거의 금지되다시피 했던 1980년대 대한민국에도 부산 인근을 시작으로 그당시 중-고등학생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암암리에 전파되어 롤러스케이트장 등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노래였다.[6]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고.


2.2. 일본 레코드 대상 수상 (1987)[편집]


1987년, 당시까지만 해도 일본의 음악상 중 최고의 권위를 자랑했던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싱글 <愚か者(어리석은 자)>가 금상을 받으며 대상 후보로 올라서게 되었다[7]. 하지만 시상식 바로 직전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엄마의 유골은 내가 가지고 있으니 레코드 대상을 사퇴하지 않으면 유골을 돌려주지 않겠다'는 협박 전화를 받았고 콘도 마사히코는 충격과 고민에 빠졌으나, '여기서 포기하고 대상을 수상하지 않는다면 하늘에서 엄마가 실망할 거다'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평소 엄마가 자신의 연예 생활에 적극 지원을 했던 점을 고려해 결국 시상식에 참석했다[8]. 콘도 마사히코 측에서는 지금까지도 어머니의 유골은 돌려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유골 사건을 제외하고 보면, 이때 수상한 싱글의 성적이 객관적으로 대상을 받을 성적은 아니었기 때문에[9] 지금까지도 여러 논란이 있다. 어쨌든 쟈니스가 지금까지도 시상식에 불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원인 중에 하나가 이 사건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쟈니스 사무소에서는 전설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시 쟈니스는 고 히로미가 연습생인 쟈니스 주니어들을 이끌고 바닝프로덕션으로 이적한 후 위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 데뷔해서 쟈니스 최초의 밀리언셀러[10]를 기록하고, 최초의 일본 레코드 대상 수상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11] 사실 데뷔 때부터, 일본 레코드 대상 최우수신인상을 타는 등 상당히 인기가 높았던 아이돌이었다. 더불어, 2010년에 동 시상식 최우수가창상까지 수상하여, '최우수신인상-최우수가창상-대상'이라는 레코드 대상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단, 이 2010년의 수상은 꽤 뜬금없는 것이라 논란이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1987년 오로카모노로 대상을 받은 것 자체부터 뜬금없는 것이기는 했지만.


2.3. 이후[편집]


레코드 대상 수상 당시에는 이미 인기가 시들해져 싱글 판매량이 15~20만장 가량에 그치는 상태였다. 수상 이후에도 3~4개월 간격으로 싱글을 발매하며 활동하지만 7년간 발매한 15개의 싱글 중 3개만이 판매량 10만장을 넘으며 소소하게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1996년 드라마 <銀狼怪奇ファイル(깅로 괴기 파일)> 의 주제곡으로 차용된 싱글 <ミッドナイト・シャッフル(미드나이트 셔플)> 이 큰 인기를 끌며 70만장 가량의 판매량을 달성해 연간 차트 34위까지 올라가는 등 잠시나마 제 2의 전성기를 누렸고 이후에는 활동이 뜸해져 평균 2~3년 주기로 싱글을 발매하며 활동하는 중.


2.4. 싱글 디스코그래피[편집]


발매일
제목
순위
판매량
1980.12.12
スニーカーぶる~す
1위
1,047,000장
1981.03.12
ヨコハマ・チーク
2위
521,000장
1981.06.12
ブルージーンズメモリー
1위
596.000장
1981.09.30
ギンギラギンにさりげなく
1위
816,000장
1982.01.07
情熱・熱風・せれなーで
1위
556,000장
1982.03.31
ふられてBANZAI
1위
530,000장
1982.06.30
ハイティーン・ブギ
1위
607,000장
1982.09.30
ホレたぜ!乾杯
1위
502,000장
1983.01.20
ミッドナイト・ステーション
1위
391,000장
1983.04.27
真夏の一秒
1위
344,000장
1983.07.15
ためいきロ・カ・ビ・リー
1위
333,000장
1983.11.01
ロイヤル・ストレート・フラッシュ
1위
295,000장
1984.03.01
一番野郎
1위
294,000장
1984.06.06
ケジメなさい
1위
327,000장
1984.09.13
永遠に秘密さ
1위
239,000장
1985.02.13
ヨイショッ!
1위
191,000장
1985.06.05
夢絆
2위
165,000장
1985.10.21
大将
6위
126,000장
1985.12.01
夢絆(12インチ)
22위
38,000장
1986.02.26
純情物語
6위
106,000장
1986.07.04
青春
7위
84,000장
1986.09.10
Baby Rose
6위
94,000장
1987.01.01
愚か者
2위
182,000장
1987.06.11
さすらい
4위
116,000장
1987.09.18
泣いてみりゃいいじゃん
1위
146,000장
1987.12.09
愚か者(12インチ)
18위
35,000장
1988.04.08
Made in Japan
3위
111,000장
1988.09.14
あぁ、グッと
4위
102,000장
1989.02.03
夕焼けの歌
7위
76,000장
1989.06.01
Just For You
11위
44,000장
1989.07.05
いいかげん
11위
62,000장
1989.11.10
アンダルシアに憧れて
9위
93,000장
1990.04.08
気ままにWALKIN'
15위
55,000장
1990.05.05
気ままにWALKIN'(Song For Children)
35위
18,000장
1990.07.12
Ho Ho Ho・・・
16위
38,000장
1990.10.24
好き
18위
28,000장
1991.07.19
デスペラード
31위
24,000장
1991.12.07
無頼派
40위
14,000장
1992.05.21
少年のこころ
40위
11,000장
1993.11.21
北街角
41위
113,000장
1995.07.21
最後のラブ・ソング
81위
4,000장
1996.02.21
ミッドナイト・シャッフル
4위
702,000장
1997.02.21
愛はひとつ
22위
108,000장
1998.05.20
KING and QUEEN
29위
18,000장
2005.12.14
挑戦者
15위
16,000장
2007.01.24
上海慕情/情熱ナミダ
28위
8,000장
2008.12.23
BANKA ~男たちの挽歌~
29위
7,000장
2009.12.13
ざんばら
28위
7,000장
2010.02.22
Let's get all!
15위
32,000장
2012.11.21
ヨイショッ!’02
~日本の皆さんホメていきまショー~
21위
13,000장



3. 사생활[편집]



3.1. 나카모리 아키나와의 관계[편집]


1980년대 전설적인 아이돌 나카모리 아키나와 연인 관계였었다. 두 사람 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톱스타였기 때문인지, 당시 TV 프로그램들[12] 에서는 대놓고 이 두 사람을 엮거나 같은 샷에 잡아주는 일이 많았다. 열애설이 의심되던 연애 초반 두 사람의 기자회견 영상을 보면 콘도가 아키나의 손을 잡으려하는 모습이 포착되는 등 그야말로 서로 죽고 못사는 분위기였다. 그가 레코드 대상을 수상했을 때에는 울고 있는 아키나까지 카메라에 잡아주기도.

연애 초반에는 콘도가 적극적으로 대시하여 사귀게 되었지만, 나중에는 아키나 혼자 일방적으로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13]

하지만 중화권에서는 1985년 후반 경 아시아의 대스타 매염방[14]과 연인관계였던 걸로 매우 유명하다. 86년 말까지 약 1년 정도 교제했다. 그녀가 2003년 사망 직전에 살면서 가장 사랑했던 남자로, 그를 언급하며 보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양다리가 의심되기는 하지만, 86년 방송 스태프들에게 매염방을 여자친구라고 소개하는 등 교제 사실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에 아키나와는 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86년 11월 콘도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는데, 그때 아키나가 콘도를 위로해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콘도는 매염방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아키나와 재결합했다는 말이 있다. 콘도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방송 중 표정관리가 안 될 정도로 콘도를 걱정했다. 더 베스트텐 1986.11.27 출연분

아키나가 난파선(1987년)을 부를 무렵부터 사이에 이상이 있었다는 소문 등이 있으나 레코드 대상 수상 장면[15]을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88년 무렵쯤, 콘도는 다른 여자로 갈아탔고, 아키나를 차버렸다. # 콘도는 아키나와 한창 사귈 때에도 배우와 모델들과 사귀면서 여자관계가 복잡했다고 한다. 콘도의 여자 편력을 비롯해 가족 문제와 갖가지 문제들로 멘탈이 끝까지 몰렸던 나카모리 아키나는 이 일로 자살을 기도했다.

다만 이 사건은 찌라시에 의해 상당 부분 과장되었는데,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콘도가 바람을 피운 대상은 마츠다 세이코라는 설은 사실이 아니다.[16] 다만 두 사람의 결별과정에서 금전문제 및 '쟈니스가 약혼발표라고 나카모리를 불러놓고 강제사과를 시켰다'는 의혹은[17]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콘도는 아키나의 여러 고민들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본인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서 방관했다고 한다.[18]

1994년에 일반인 여성과 결혼했으며, 2007년 득남에 성공했다. 아들의 이름은 코스케(轟丞).


3.2. 후쿠시마 팬더 발언[편집]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벌어진 후 쟈니즈에서 발전소 인근 지역의 구호를 위해 'Marching J'라는 이름으로 모금을 실시했는데, 모금된 돈을 중국에서 팬더를 빌리는데 쓰자는 실언을 하여 일본 네티즌들로부터 비난을 많이 받았다. 드는 비용이 5년에 수십억. 팬더를 유치해 관광객을 불러모아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거라고 의도를 밝혔는데... 정말 답이 없다.[19]


3.3. 쟈니즈 후배들에 대한 꼰대짓[편집]


쟈니즈 후배의 고정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해 대선배라는 이유만으로 거들먹한 태도 및 갑질과 험담을 하는 등 그가 게스트로 출연한다 해도 그 팬들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대상이었다.

실례로 솔로 활동이 많아서 본인들도 걱정이 많던 시절의 KinKi Kids의 고정방송에 출연해 "언제 해체할 거냐"는 등의 도가 지나친 발언을 한다거나 과거 SMAPxSMAP이나 우타방같은 곳에 출연하여 나카이 마사히로를 대상으로 군기잡기나 갑질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연말 음악방송에 나와서 다른 쟈니즈 멤버들을 자기 들러리로 세우고는 혼자 시간을 다 까먹는다거나 하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일부 쟈니즈 팬들에게서는 쟈맛치[20]라고 불리며 그가 게스트로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는 팬들은 한탄을 금치 못한다.

2014년 연말 FNS가요제로 쟈니즈 전 팀이 모이는 기적같은 특방이 잡혔지만, 정체는 콘도 데뷔 35주년 기념 스페셜 메들리로, 콘도 노래만 7곡 완창에 25분동안 줄창 콘도 노래만 부를 계획이라는게 발표되어 타 그룹 팬들을 분노케 했다. 회사 입장에서야 콘도를 밀어줄 수 있다지만, 사실상 콘도 디너쇼를 위해서 후배들을 모조리 들러리 세우는 격이니...[21]

2015년 데뷔 35주년 기념으로 신곡 발표 및 홍백가합전에도 출전하게 되면서 12월 들어 쟈니스 후배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그야말로 모두 투어 중이다. 이 기세로 새해 1월 1일 새벽 쟈니스 카운트다운 콘서트도 '또' 접수하러 올 가능성이 높다는 루머가 돌고 있어 쟈니스 팬들은 단체로 멘붕하는 중.

그리고 2020년에도 데뷔 40주년을 맞아 FNS가요제 출연이 예정되어 팬들이 멘붕했으나 아래 불륜 사건으로 인하여 소속사에서 무기한 정지처분이 내려지고 출연 자체가 취소되었다. 콘도의 40주년의 빈자리는 쟈니스 후배그룹과 방탄소년단이 채웠다.


3.4. 2020년 불륜 논란[편집]


2020년 11월 11일 기어이 사건이 터졌는데 자신보다 25살 연하인 31세 여성과 5년간 불륜 관계를 이어왔으며 10월 말에 두 사람이 오키나와 골프 여행을 다녀왔고 6월에도 도쿄 크루즈를 즐겼다는 의혹 기사가 터졌다. 심지어 대다수 미디어가 이에 대해 보도하지 않아 손타쿠 논란으로까지 번지는 중. #1 #2

이전부터 불륜이 탄로 날까 봐 두려웠던 A코 양에게 콘도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불륜 기사를 무마할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다."

콘도의 불륜 의혹이 기사화되자, 과거 업보 및 억지 푸쉬, 와타베 켄, 히가시데 마사히로에 비해 과한 미디어 쉴드 논란까지 겹쳐서 쉴드여론이 없다.[22] 쟈니스 팬들은 물론 네티즌들도 얼른 쟈니스에서 짐 싸서 꺼지라는 반응. 어쩌면 퇴물일지도

11월 17일 쟈니스 사무소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불륜을 인정하며 무기한 활동 중단을 발표했으며, 연예인 이외의 카레이싱 관련 활동[23]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1 #2 #3

게다가, 그간 든든한 방패 역할을 해왔던 후지사와 메리 야스코 명예회장[24]에게 "맛치답게 책임을 져라"라고 들은 걸 보면 사실상 이번 활동중단은 정리해고에 준하는 조치라고 봐도 된다. 실제로도 2019년 이후 오래 소속사에 있었지만 성과를 못 낸 연예인들이 퇴사하고 있다.

2021년 4월 30일 공지를 통해 쟈니스 사무소에서 나와 새로운 길로 나아간다고 발표했다. # 대중과 쟈니스 팬들은 진작에 콘도같은 월급도둑이 나갔어야 했다는 반응을 표했다.

퇴사 이후로는 정신을 차렸는지 성격이 많이 유해진 모양이라, 게스트에 대한 악담은 삼가고 있다.

음모론(?)이지만 이 사건 이후로 오리엔탈 바이오[25]가 스폰서를 맡은 팀에게 뭔가 사건 사고가 터진 사례가 속출했다.[26][27]


4. 여담[편집]


  • 호불호가 갈리는 외모이긴 해도 20대 시절은 꽤 훈남이다.

  • 가수지만 가창력이 그닥 좋은 편은 아니다. 데뷔한 지 30년이 지났어도 가창력은 발전할 기미가 없는 건지 혹평이 대부분이다.

  • 안잣슈코지마 카즈야가 쟈니스에 원서를 내게 한 명분을 만들어줬다.[28] 그런데 코지마는 2020년에 불륜 스캔들이 터진 연예인과 모두 관련이 있었다는 것. 와타베 켄은 코지마의 파트너고, 히가시데 마사히로는 코지마와 같이 광고를 찍었다. 코지마 본인도 다른 사람들의 불륜 사건 때문에 광고가 강판되었다며 "혹시 내가 불륜남들을 끌어들이는 사람인건가?"라며 어이없어했는데, 연말에 동경했던 아이돌이 또 터졌다.

  • 인성에 흠이 있는 것과 별개로 진행 능력이 나름 훌륭한 편. 더 베스트 텐에서 쿠메 히로시가 하차하고 나서 공석이 되자 임시 사회를 맡기도 했다.


  • 의외로 바이올리니스트 하카세 타로가 그의 팬인데, 2023년 샤베쿠리007에 나와서 하카세가 콘도의 밴드 세션을 선 적이 있다고 밝혔다. 둘이 서로의 헤어스타일을 따라한 적이 있다고 한다.

  • 2023년 4월 1일부로 나카지마 사토루의 후임으로 일본 레이스 프로모션[29]의 이사회 의장으로 취임했다. 선임 결의가 이뤄진 날은 2023년 2월 28일.#

  • 1984년 5월 함윤상이 발표한 '빨주노초파남보'라는 곡이 ギンギラギンにさりげなく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있다.[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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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3000 데뷔 당시 소속된 팀인 NAVI CONNECTION RACING TEAM의 감독은 배우 이시하라 프로모션의 배우인 타치 히로시였다.[2] GT500과 GT300 양 클래스에 모두 나가는 팀이다.[3] 뮤직스테이션 2011년 1월 14일 방송 '사상 최강 아이돌 BEST 50' 참고.[4] 3인의 이름 앞글자를 따서 '타노킨'이다. 콘도의 近은 원음이 '킨'이라서..[5] 읽으면 '긴기라긴니 사리게나쿠'. 대충 '화려하고 은근하게' 정도의 뜻이다. 후에 혼성 그룹 큐빅이 '기나긴'이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를 하였다.[6] 기막힌 외출 시즌 1에서 김준호가 대전롤러장 출신이라고 언급하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7] 금상 수상곡 중 대상이 결정된다[8] 대상 수상까지는 이 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았기에 대중은 이를 모르고 있었다.[9] 최종 판매량 21만장으로 연간 35위에 그쳤다.[10] 데뷔작 '스니커 블루스'[11] 그가 수상한 이듬해인 1988년에도 쟈니스의 히카루GENJI가 대상을 수상.[12] 특히 콩트 부분에서.[13] 1987년 7월 더 베스트텐에서 지금 가장 바라는 소원으로 ‘빨리 신부가 되고 싶어요’ 라고 엽서에 써, 수줍어하는 모습을 보인 반면, 뒤에 앉아있던 콘도는 정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선배 가수 니시조 히데키에게 "아키나쨩은 결혼할 여자는 아니야"라고 하는 등 애초에 아키나와 결혼할 생각은 전혀 없었던 듯.[14] 난파선을 포함한 아키나의 여러 노래를 커버했었다(...)[15] 영상은 난파선 항목에 링크되어 있다.[16] 실제로 스캔들 당시 세이코와 마사히코는 다른 스탭들과 동석한 상태였고, 아키나의 자살기도는 해당 스캔들 보도에서 약 반년 뒤에 일어나 시간차가 컸다. 아키나와 세이코의 사이도 함께 방송에 나와 서로의 노래를 부를 만큼 원만한 편.[17] 아키나는 이미 자살소동에 대한 기자회견을 한 바 있었고, 회견장에는 사과발표가 아니라 약혼식 등 경사스러운 일에 쓰는 금병풍이 설치되어 있었다.[18] 92년 콘도 마사히코의 에세이 인터뷰[19] 이게 지역 주민들 입장에선 황당한 소리일 수밖에 없는 게, 일본에서 90년대 버블경제 붕괴 이후 수많은 기초자치단체와 지역기업을 재정위기로 몰고 간 게 쓸데없는 대규모 테마파크, 박물관, 리조트의 건설이다.[20] 방해된다라는 뜻의 일본어인 '쟈마(邪魔-じゃま)'와 그의 애칭인 '맛치(マッチ)'를 합쳐 부르는 명칭이다.[21] 그래서 이 디너쇼의 말미에 히라이 켄인도인 분장을 하고 인도인 백댄서들과 함께 공연하면서 씬 스틸러스러운 모습을 보이자 시청자들이 대환영했을 정도다. 당연히 본인 띄우려고 이런 꼰대짓을 벌인 콘도의 공연은 깔끔히 묻혔다. 그야말로 죽쒀서 개 준 꼴이 된 것이다.[22] 이에 쟈니스 팬들은 본사 부사장으로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줄줄이 사고치는 소속 연예인들 때문에 고통받는 타키자와 히데아키의 멘탈을 걱정했다.[23] 사실 이게 본업이라, 카레이싱 관련 활동중단 발표가 나오기 전까지의 반응이 눈가리고 아웅한다였다.[24] 쟈니스 연예인 중 콘도를 원픽 수준으로 매우 아꼈던 인물이다. 쟈니스팬들에게 공공연히 알려져 있을 정도로 그녀의 콘도 편애는 유명했다. 심지어 그녀의 딸인 현 쟈니스의 수장 후지시마 쥬리 케이코와 결혼시키려고 했다는 말도 돌 정도였다.[25] 라피네 브랜드를 소유한 일본의 건강식품 회사[26] 음모론이라고 하기엔 좀 황당한 것이 2020년 당시 그가 감독으로 있는 콘도 레이싱의 스폰서 중 하나가 오리엔탈 바이오였고 슈퍼 포뮬러는 아예 라피네 컬러링으로 참전했었다.[27] 이후 이 불똥은 야나기다 마사타카에게 튀어서 2022년에는 슈퍼 GT에 참전하던 드라고 코르세의 타이틀 스폰서인 부소의 자금 횡령 사건, 2023년에는 슈퍼 다이큐에 타이어를 납품하던 한국타이어대전 공장에 화재 사건이 발생하면서 오피셜 타이어 브랜드가 바뀌고, 시즌 중, 팀 제로원의 드라이버가 음주운전후 음주측정을 거부하는 사건으로 인해 계약 해지를 하는 일이 벌어졌다.[28] 코지마는 콘도를 동경했다고 한다. 롤모델로 삼은 듯.[29] 슈퍼 포뮬러를 운영하는 법인이다.[30] 출처: 한국 팝의 고고학 1980 p.6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