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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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머큐리†
브라이언 메이
존 디콘
로저 테일러
[ Studio Album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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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Queen II.jpg


파일:Sheer Heart Attack.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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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 Day at the Races.jpg


1973


1974


1974


1975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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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he game.jpg


파일:Queen - Flash Gordon.png


파일:Queen - Hot Space.png


1977


1978


1980


1980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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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1986


1989


1991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1e2023; font-size: .8em"
Made in Heaven
19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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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5ARYZvK4L2afx8AcWcf6kF-1.jp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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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Queen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
브라이언 메이, 프레디 머큐리, 존 디콘, 로저 테일러
입성 연도
2001년
후보자격 연도
1999년
후보선정 연도
2000년, 2001년






























Queen



▲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로저 테일러, 존 디콘, 프레디 머큐리, 브라이언 메이[1]


▼ 다른 사진 보기

국적
[[영국|

영국
display: none; display: 영국"
행정구
]]

결성
1970년 6월 27일[2][3]
[[잉글랜드|
잉글랜드
display: none; display: 잉글랜드"
행정구
]]
콘월 트루로
데뷔
1973년 7월 6일
데뷔 싱글 "Keep Yourself Alive"
데뷔 앨범
멤버
프레디 머큐리 (리드 보컬, 피아노)[4]
브라이언 메이 (기타, 보컬)
존 디콘 (베이스)[5]
로저 테일러 (드럼, 보컬)
장르
, , 하드 록, 글램 록, 프로그레시브 록, 소프트 록, 팝 록[6]
레이블
EMI, 팔로폰, 엘렉트라 레코드, 케피톨, 할리우드, 아일랜드, 버진 EMI, 스완 송 레코드[7]
링크
파일:퀸(밴드) 로고.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VEVO 로고.svg

1. 개요
2. 특징
3. 멤버
3.1. 전 멤버 및 세션 멤버
6. 인기
6.1. 미국 시장
6.2. 대한민국에서의 인기
7. 기타
8. 디스코그래피
8.1. 스튜디오 앨범
8.2. 라이브 앨범
8.3. 컴필레이션 앨범
8.4. EP
8.5. 싱글
8.5.1. UK 차트
8.5.1.1. UK 차트 1위
8.5.1.2. UK 차트 2위
8.5.1.3. UK 차트 3위~10위
8.5.1.4. UK 차트 11위~20위
8.5.2. 빌보드차트 성적
8.6. 별도 문서가 있는 퀸의 음악



1. 개요[편집]



퀸은 1970년에 결성되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영국록 밴드이다.

2. 특징[편집]


브라이언 메이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시절 만든 밴드인 ‘스마일’이 모체이며, 이후 드럼을 치던 치의대 출신 로저 테일러가 가입하고, 뒤이어 보컬인 프레디 머큐리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킹스 칼리지 런던에 다니던 존 디콘베이시스트로 참여하여 1971년 밴드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네 멤버는 학업과 음악 활동을 병행하다가 1973년 1집을 발매하면서 메인스트림에 데뷔하였고, 1975년에 4집인 A Night at the Opera를 발표하면서 전성기를 맞아 세계적인 밴드의 반열에 올랐다. 1980년대에는 잠깐 침체기를 겪기도 했지만 1985년 라이브 에이드를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보컬인 프레디 머큐리의 에이즈로 인해 라이브 투어를 중단하게 된다. 이후 1991년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로 인해 사망하고, 뒤이어 1997년 존 디콘이 밴드를 탈퇴하여 자발적인 은둔 생활을 시작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밴드의 음악 활동이 소강기에 접어들게 된다. 현재는 남은 멤버 두 명이 세션 멤버들을 모아 투어를 다니는 식으로 활동하고 있다.

퀸은 비틀즈, 롤링 스톤스, 레드 제플린처럼 특정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폭 넓은 사운드를 선보이는 밴드였다. 초반에는 레드 제플린데이비드 보위의 영향을 받은 음악과 무대 의상 때문에 하드 록메탈 음악, 그리고 글램 록으로 분류되었지만[8], 실은 레드 제플린과 데이비드 보위 외에도 비틀즈, 지미 헨드릭스, 더 후 등 아주 다양한 밴드들의 영향을 받은, 즉 음악적 자양분이 풍부한 밴드였다. 이들은 주 장르라고 할 수 있는 하드 록과 글램 록 외에도 소프트 록, 팝 록, 프로그레시브 록, 디스코 등 매우 다양한 장르들을 시도했다. 또 여러 장르를 록에 접목시키면서 넓은 폭의 중독성 있는 곡들을 발매하여 현대까지 모든 세대에서 인기있는 록 밴드 중 하나가 되었다.

여러 히트곡들의 음악성과 흥행 여부와는 별개로, 동시대에 활동했던 여러 밴드들에 비하면 음악적 영향력과 음악사적 중요성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AC/DC와 더불어 음악 평론가들이나 팬들에게는 평가가 다소 낮은 밴드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음악적인 평가와는 별개로 상업적으로는 매우 성공해 비틀즈,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에 이은 역대 록 밴드 음반 판매량 4위이며[9][10], 퀸이 다소 실패한[11] 미국을 카운팅에서 제외한다면 비틀즈레드 제플린 다음가는 결과가 나오는 등 매우 큰 인기를 누렸으며, 현재까지도 We Will Rock You, We Are the Champions 등 수많은 명곡들로 사랑받고 있다.

3. 멤버[편집]


퀸의 구성 멤버

프레디 머큐리 Freddie Mercury
생몰
1946년 9월 5일 - 1991년 11월 24일 (향년 45세)
출신지
[[잔지바르|

잔지바르
display: none; display: 잔지바르"
행정구
]]
스톤타운
활동
1970년 - 1991년
포지션
리드 보컬, 피아노

브라이언 메이 Brian May
출생
1947년 7월 19일 ~ (76세)
출신지
[[잉글랜드|
잉글랜드
display: none; display: 잉글랜드"
행정구
]]
미들섹스 햄프턴
활동
1968년 -
포지션
기타, 보컬

존 디콘 John Deacon
출생
1951년 8월 19일 ~ (72세)
출신지
[[잉글랜드|
잉글랜드
display: none; display: 잉글랜드"
행정구
]]
레스터셔 레스터
활동
1971년 - 1997년
포지션
베이스 기타, 보컬[12]

로저 테일러 Roger Taylor
출생
1949년 7월 26일 ~ (74세)
출신지
[[잉글랜드|
잉글랜드
display: none; display: 잉글랜드"
행정구
]]
노퍽 주 킹스린
활동
1968년 -
포지션
드럼, 보컬
파일:Queen logo.png

밴드 자체의 낮은 평가와는 별개로 멤버들의 역량은 매우 뛰어났다. 비록 인간 흉기들의 모임인 크림, 더 후, 레드 제플린 정도까진 아니어도, 평론가들에게 역량 갖다가 까이는 경우는 거의 없을 정도로 기본기가 튼튼했다. 이 중에서도 프레디 머큐리와 브라이언 메이는 각 분야의 최고 실력자들 중 한 명으로 꼽힌다.

  • 프레디 머큐리로버트 플랜트, 로저 달트리, 이안 길런, 로니 제임스 디오, 믹 재거 등과 함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록 보컬리스트이자 프론트맨 중 한 명으로 꼽힌다.[13] 1970년대에는 맑은 미성을 바탕으로 벨팅 창법을 사용하면서 굉장히 야누스적인 보컬을 들려주었고, 1980년대에는 70년대의 창법을 버리고 전반적으로 인골라에 빠지긴 했으나, 파워풀하고 허스키한 탁성으로 곡을 이끌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음역대 또한 매우 넓어서[14] 음원에서 매우 넓은 음역대를 보여주기도 한다. 다만 라이브에선 컨디션이 좋은 공연에서도 3옥타브 도 이상의 고음은 내기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였기에 음역대가 바리톤이라는 의견도 많다.[15] 또한 송라이팅에도 일가견이 있었는데, 퀸 하면 떠오르는 아름다운 멜로디를 가진 대다수의 히트곡들은 전부 프레디 머큐리의 작품이었다. 또한 상술했듯이 프론트맨으로서의 퍼포먼스도 굉장히 고평가를 받는데, 무대에서 관객들과 아주 적극적으로 소통하기도 하고, 관객 모두를 노래에 참여시키기도 한다. 게다가 무대에서 뛰어다니기도 하는 등, 에너제틱한 퍼포먼스를 선보여 무대의 분위기를 능숙하게 고조시키기도 하였다.

  • 브라이언 메이는 록 음악 역사상 최고의 기타리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비록 동시대에 지미 페이지, 에릭 클랩튼, 제프 벡, 피트 타운젠드, 에디 밴 헤일런 등의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기타리스트들이 활동했고 퍼포먼스 또한 저들과 비교하면 얌전했기에[16] 저평가받는 면이 있으나, 객관적으로 보면 연주력 측면에서 저들에게 절대 밀리지 않으며, 하드 록헤비 메탈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이다. 잉베이 말름스틴 등 수많은 후배 기타리스트들이 자신에게 영향을 준 기타리스트로 브라이언 메이를 뽑는 경우도 많다. 하드 록 스타일의 속주도 속주였지만 브라이언 메이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딜레이 이펙터를 이용하여 기타로 돌림노래를 하는 퍼포먼스이다. 더군다나 다른 기타리스트들과는 달리 본인이 직접 만든 수제 기타인 레드 스페셜을 사용했기에, 사운드 톤 또한 유일무이하다.[17] 그렇기에 소리만으로도 구분되는 기타리스트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한다. 또한 보컬과 작곡, 키보드에도 능했는데, 그는 여러 곡들을 작곡하고 때로는 직접 보컬 혹은 키보드도 맡는 등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 로저 테일러의 드러밍은 밴드의 기본기를 탄탄하게 해 주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존 본햄, 키스 문, 찰리 와츠 등의 드러머들과는 달리 대중음악 역사에 길이 남을 수준은 아니지만, 퀸이라는 대형 록 밴드에 걸맞는 높은 수준의 드러머라고 평가받는다. 하드 록, 헤비 메탈, 글램 록, 팝 록, 오페라 등 퀸이 시도했던 수많은 장르에서 그에 걸맞는 드러밍을 보여 주었으며, 라이브 공연들에서의 드럼 솔로를 보면 기교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탄탄한 연주력으로 레드 제플린로버트 플랜트가 1983년에 진행한 솔로 공연에서 객원 드러머로 참여한 적도 있었다. 보컬에도 꽤나 능했는데, 걸걸한 음색과 달리 3옥타브 중후반대까지 올라가는 음역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직접 보컬을 맡은 곡들도 있었고, 라이브 공연에서는 바리톤으로 추정되는 프레디 머큐리의 뒤에서 든든하게 고음 파트를 받쳐 주었다. 그의 이런 독보적인 특성을 가장 잘 계승한 드러머로는 푸 파이터스테일러 호킨스가 있었다.[18]

  • 존 디콘 또한 위의 로저 테일러처럼 밴드의 기본기를 탄탄하게 해 주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존 엔트위슬, 잭 브루스, 존 폴 존스 등의 베이시스트들과는 달리 대중음악 역사에 길이 남을 수준은 아니지만, 퀸이라는 대형 록 밴드에 걸맞는 높은 수준의 베이시스트라고 평가받는다. 퀸이 시도했던 수많은 장르에서 베이스의 표현력이 부족했던 적은 아예 없었으며, 존 엔트위슬존 폴 존스의 영향을 크게 받아 베이스 라인을 짜는 것에도 능했다. 여기에 디스코펑크(Funk)를 좋아하는 취향이 맞물려 테크니컬하면서도 보다 대중적인 스타일의 연주가 가능했다. 존 디콘 또한 밴드의 작곡가였지만, 밴드 멤버들 중 작곡한 곡은 가장 적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곡에도 능했다는 평가를 받는데, 퀸의 단 두 개 뿐인 빌보드 핫 100 1위곡 중 하나가 바로 존 디콘이 작곡한 Another One Bites the Dust이다. 이 외에도 You're My Best Friend 등 퀸의 여러 히트곡들을 작곡하였다.

이 외에도 퀸은 믹 재거,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와 더불어 당시 음악계에서 흔치 않은 중산층 출신이었다. 다만 상술한 두 밴드의 일원들은 어린 나이부터 음악을 시작한 것과 달리 퀸 멤버들은 대학에 진학하였으며, 대학에서 음악을 시작했다.[19] 여담으로 퀸 멤버들은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출신인 롤링 스톤스믹 재거와 더불어 록 음악계에서 가장 학력이 높은 사람들이었다. 로저 테일러는 런던 병원 의과대학치과대학을 다녔으며[20], 존 디콘은 킹스 칼리지 런던전기전자공학과를 나왔다.[21] 또한 브라이언 메이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천체물리학부를 다녔다.[22] 그렇기에 이들은 음악을 하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먹고 살만했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프레디 머큐리가 상대적으로 묻히기는 하지만, 그도 영국에서도 꽤 알아주는 미술대학인 일링 미술대학교 출신이다. 즉 명문대생 4명이 결합한 밴드였으며[23], 이 때문에 초기에 평론가들이 퀸을 까던 레퍼토리 중에서 “명문대생들이 똑똑한 거 티낸다”는 억지도 있었다.

3.1. 전 멤버 및 세션 멤버[편집]


퀸의 이전 멤버

파일:smiletim.jpg

팀 스타펠 Tim Staffell[24]
생몰
1948년 2월 24일 (76세)
출신지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잉글랜드 런던 아일워스
활동
1968년 - 1970년
포지션
보컬, 베이스 기타

파일:rog and mike.jpg[25]

마이크 그로즈 Mike Grose
생몰
??? - 2019년 3월 6일 (향년 ???세)
출신지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활동
1970년
포지션
베이스 기타

배리 미첼 Barry Mitchell
생몰
불명[26]
출신지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활동
1970년 - 1971년
포지션
베이스 기타

파일:doug bogie.jpg

더그 보기 Doug Bogie
생몰
1953년(추정)[27]
출신지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활동
1971년
포지션
베이스 기타

퀸의 세션 키보디스트

프레드 만델 Fred Mandel
생몰
1953년(추정) (71세)
출신지
파일:캐나다 국기.svg 캐나다 토론토 온타리오
활동
1982년 북미, 일본 투어
포지션
건반 악기[28]

파일:Morgan_fisher_2007.jpg

모건 피셔 Morgan Fisher
생몰
1950년 1월 1일 (74세)
출신지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잉글랜드 메이페어
활동
1982년 유럽 투어
포지션
건반 악기

파일:spike.jpg

스파이크 에드니 Spike Edney
생몰
1951년 12월 11일 (72세)
출신지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잉글랜드 런던 해크니
활동
1984년 -
포지션
건반 악기, 일렉트릭 기타[29]

프레디 사후의 객원 멤버들

파일:4u4P2ySF.jpg

폴 로저스 Paul Rodgers
출생
1949년 12월 19일 (74세)
출신지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잉글랜드 요크셔 미들스버러
활동
2005년 - 2008년, 퀸+폴 로저스
포지션
보컬

파일:DSC_8771-761x1030.jpg

제이미 모지스 Jamie Moses
출생
1955년 8월 30일 (68세)
출신지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잉글랜드 서포크 입스위크
활동
2005년 - 2008년, 퀸+폴 로저스
포지션
기타

대니 미란다 Danny Miranda
출생
1964년 3월 21일 (60세)
출신지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뉴욕 롱아일랜드
활동
2005년 - 2008년, 퀸+폴 로저스
포지션
베이스 기타

아담 램버트 Adam Lambert
출생
1982년 1월 29일 (42세)
출신지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인디애나 인디애나폴리스
활동
2011년 -, 퀸+아담 램버트
포지션
보컬

파일:neil fairclough.jpg

닐 페어클로우 Neil Fairclough
출생
1969년 4월 27일 (54세)
출신지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잉글랜드 맨체스터[30]
활동
2011년 - , 퀸+아담 램버트
포지션
베이스 기타

파일:fhd2qr1cw15awq1d.jpg

루퍼스 타이거 테일러 Rufus Tiger Taylor[31]
출생
1991년 3월 8일 (33세)
출신지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잉글랜드 런던
활동
2011년 - 2016년, 퀸+아담 램버트
포지션
드럼, 퍼커션

타일러 워런 Tyler Warren
출생
1986년 4월 5일 (38세)
출신지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테네시 캠든
활동
2017년 - , 퀸+아담 램버트
포지션
드럼, 퍼커션

4. 역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퀸(밴드)/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퀸 1977.jpg

1972년. 데뷔하기 1년 전의 모습이다.
1977년. News of the World 발매 당시로, 음악적 전성기를 맞은 시절이다.

파일:퀸 1981.jpg


1981년. 과도기 시절의 모습이다.
1991년. 프레디 머큐리 사망 몇 개월 전의 모습이다.
1974년 레인보우 극장에서의 "Liar" 연주.
1977년 얼스 코트에서의 "Killer Queen" 연주.
1981년 몬트리올에서의 "Bohemian Rhapsody" 연주.
1985년 라이브 에이드에서의 "We Are the Champions" 연주.

5. 평가와 영향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퀸(밴드)/평가와 영향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6. 인기[편집]


이래저래 음악성에 있어서 말이 많은 밴드이긴 하지만 흥행과 인기 만큼은 록 밴드 중에서도 비틀즈레드 제플린 바로 아래급으로[32], 레전드 록 밴드 중 하나로 꼽힌다. 인증 판매고가 1억 장이 넘고 추산 판매고는 2억 장 정도로 추산된다. 이는 역대 록 밴드 음반 판매량 순위 4위에 해당된다.[33] 국내외에서도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등과 더불어 젊은 세대들한테서도 인기가 많은 록 밴드다. 록 음악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아주 유명하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에게 "최고의 록 밴드" 투표를 시키면 무조건 5위권 이내로 꼽히며, 특히나 영화 개봉 이후 레드 제플린핑크 플로이드에 맞먹을 만큼 더더욱 인기가 높아졌다.[34]

특히나 자국인 영국에서의 인기가 어마어마하다. 영국 음악 시장은 현역 당시 기준 세계 2위 규모의 음악시장이었는데, 퀸은 영국에서만큼은 다른 록 밴드들의 인기를 능가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영국에서의 인증 판매고를 보면 알 수 있는데, 퀸은 비틀즈,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롤링 스톤스, U2 등의 타 밴드들보다 영국에서의 인증 판매량이 앞선다.[35] 참고로 퀸은 영국차트에서 싱글과 앨범을 합쳐 가장 오랫동안 차트에 머문 뮤지션 순위로 2023년 1월 기준 2,345주 동안 머물러 엘비스 프레슬리, 애드 시런에 이어 3위를 기록 중이다.

2018년 월스트리트 저널은 통계 산출에 의해 '역사상 가장 인기있는 록 밴드' 순위를 추려냈는데, 퀸은 여기서 3위를 기록했다.[36]#

다만 비틀즈, 롤링 스톤스,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등 자국의 다른 S급 록 밴드들에 비해 북미 지역에서의 성적이 유럽에서에 비해 다소 낮은 건 사실이다.[37] 그러나 세계 3위[38] 규모의 시장이자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롤링 스톤스도 100만 장을 넘기지 못한 일본에서 총 3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39]

6.1. 미국 시장[편집]


대중들, 특히 국내에서는 퀸이 미국 시장에서 처참하게 실패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성기 시절 퀸은 미국 시장에서 실패한 밴드가 절대 아니였으며, 오히려 성공했던 밴드였다. A Night at the Opera를 시작으로 퀸의 전성기 때 발매된 앨범들은 상업적으로 실패했던 Jazz를 제외하고 전부 빌보드 200에서 5위권 이내에 들었다. 심지어 이 Jazz도 빌보드 200에서 6위라는 고순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퀸의 성적은 1960년대 중후반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주도했던 밴드 중 하나인 더 후의 빌보드 200 성적과 맞먹을 정도이다. 또한 빌보드 핫 100에서도 1위 곡을 2개나 가지고 있다. 차트 뿐만 아니라 앨범 판매량만 봐도 알 수 있다. 미국에서만 300만 장 이상이 팔린 A Night at the Opera를 시작으로, News of the WorldThe Game은 미국에서만 400만 장 이상이 팔렸다. 인기가 없었다는 A Day at the RacesJazz도 미국에서만 100만 장 이상이 팔렸다. 무려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밴드들인 롤링 스톤스더 후의 최전성기에 나온 Sticky FingersWho's Next가 미국에서 각각 300만 장, 370만 장이 팔렸음을 고려하면, 이들과 비슷한 음반 판매량을 기록했던 퀸이 최전성기 당시 미국에서 실패한 밴드가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퀸의 음악성만 보더라도 퀸은 미국 시장에서 실패할 밴드가 전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대중들과 평론가들은 퀸이 주로 추구한 음악은 비틀즈레드 제플린, 그리고 데이비드 보위의 스타일이 섞인 하드 록이라고 평가하며, 퀸 본인들 또한 이 세 음악가들이 자신들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음악가들이라고 밝혔다. 이 중에서 영국 스타일이 짙은 데이비드 보위를 제외하면 비틀즈와 레드 제플린은 미국 시장에서 크게 성공했던 밴드였다.[40] 즉 퀸은 영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데이비드 보위 풍의 브리티시 하드 록글램 록을 추구함과 동시에 미국인들의 입맛에 맞는 레드 제플린 풍의 정통 하드 록도 추구하면서 미국에서도 인기를 얻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퀸이 미국 시장에서 실패했다는 이미지가 있는 이유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 퀸의 전성기 시절에는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말 그대로 넘사벽 급인 레드 제플린이 활동했으며[41], 핑크 플로이드롤링 스톤스처럼 미국에서의 인기가 어마어마했던 영국 밴드들이 대거 활동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비틀즈의 전 멤버들 또한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레드 제플린은 앨범만 냈다 하면 1,000만 장 단위의 판매량을 기록하고[42]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심지어 음악적 역량이 떨어지기 시작한 1970년대 후반에 발매한 앨범인 PresenceIn Through the Out Door마저 빌보드 1위를 달성하였고 수백 만 장 단위의 음반 판매고를 기록했다. 롤링 스톤스 또한 1971년 Sticky Fingers를 시작으로 빌보드 200에서 밥 먹듯이 1위를 차지했으며, 심지어 롤링 스톤스 3대 침체기 앨범이라고 불리는 음반들마저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롤링 스톤스는 다른 영국 밴드들은 한 번 만들기도 힘든 빌보드 핫 100 1위곡을 1970년대에만 3곡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The Dark Side of the MoonWish You Were Here, The Wall로 대표되는 핑크 플로이드는 말 할 필요도 없다.[43] 즉 동시대에 활동했던 이러한 초대형 밴드들과 퀸의 빌보드 200 성적이 비교되면서 “퀸은 전성기 때에도 미국에서만은 실패했다!”라는 낭설이 나오게 된 것이다.[44]

두 번째로 퀸의 전성기 당시 상술한 영국 밴드들 뿐만 아니라 미국 본토 출신의 밴드들 또한 미국 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일어난 당시에는 미국 아티스트들은 영국 아티스트들에게 밀려서 상대적으로 인기가 저조했으나[45], 1970년대 초반 당시 미국 음악계는 자립에 성공한 상태였다. 보통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가리킬 때 1960년대가 1차, 1970년대가 2차라고 하는 경우가 있지만, 1970년대에 빌보드 차트를 문자 그대로 씹어먹었던 영국 밴드는 상술한 세 밴드와 폴 매카트니윙스 정도밖에 없었다.[46] 1970년대의 미국 음악계에서는 이글스같은 컨트리 록 밴드들이나 레너드 스키너드, 올맨 브라더스 밴드 등의 서던 록 밴드들, 그리고 에어로스미스, 보스턴, KISS, 밴 헤일런, 포리너 등의 아메리칸 하드 록 밴드들도 위의 세 밴드 만큼의 큰 인기를 누렸다. 즉 위의 영국 밴드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미국 밴드들도 퀸과 동시기에 활동하면서 퀸은 미국에서 실패했다는 이미지가 형성된 것이다.

세 번째로 Hot Space의 대실패 이후 퀸이 미국에서의 활동을 줄여나갔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1984년부터 퀸은 미국에서 투어를 중단해 버렸다. 사실 1970년대 까지 영국과 미국 모두에서 성공을 거두어 멤버들은 이미 떼부자가 되었는데, Hot Space가 크게 실패한 이후에 굳이 미국인들의 입맛을 맞출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I Want to Break Free에서의 코믹스러운 여장 뮤비가 보수적인 미국인들의 심기를 건드려 MTV에서 이 뮤비를 방송 금지시켜버렸던 사건도 있었다. 그리고 이 시기부터 미국 대중음악은 마이클 잭슨프린스를 필두로 한 댄스 및 흑인 음악, 밴 헤일런본 조비 등을 필두로 한 글램 메탈 쪽으로 기울게 되면서 하드 록을 주로 추구하던 퀸의 입지는 더더욱 줄었다. 이러한 일들이 겹겹이 일어나면서 밴드의 리더 격인 프레디 머큐리는 "앨범이 크게 성공하지 않는 한 미국 투어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말했으며, 상술했듯이 이 이후로 정말 투어를 진행하지 않았다. 이렇듯 이 시기부터 퀸은 미국 시장 재건을 위한 의지를 보이지 않았으며, 자연스럽게 미국의 언론이나 라디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그렇기에 이때부터 퀸은 북미를 제외한 유럽이나 남미, 일본 등에서 여전히 큰 인기를 얻으며 활약했다. 11집 투어는 북미를 제외한 유럽, 남미, 남아공, 일본을 모두 돌며 투어를 진행했다.[47]

6.2. 대한민국에서의 인기[편집]


한국 한정으로는 고전 록과 팝을 통틀어서 퀸의 인기에 견줄만한 록 밴드는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그 인기가 매우 높다. 솔로 가수까지 다 합쳐도 그나마 마이클 잭슨 정도가 유일하게 비교가 가능한 수준이다.[48]

참고로 비틀즈의 경우, 국내에선 비틀즈라는 이름의 '인지도'는 높으나, 비틀즈의 음악을 찾아 듣는 실질적인 음악팬은 생각 외로 적은 편이다.[49] 한국 대중은 사실상 비틀즈를 록 밴드로 인식하지 않고 그냥 히트곡 서너곡을 내서 음악사에 족적을 남긴 올드 팝 그룹 정도로만 인식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50] 그렇기에 Yesterday, Let It Be, Hey Jude 등의 몇몇 히트곡만 유명하며, 그 외에 페퍼 상사, 화이트 앨범, 애비 로드 수록곡 같은 비틀즈가 시도한 다양한 스타일의 명곡들에 대한 인지도는 극히 낮다[51]. 물론 한국에서도 적극적으로 명반을 찾아듣는 록 음악 매니아들은 비틀즈 음악도 좋아하는 경우들이 꽤 있지만, 애초에 한국은 옛날 록 음악과 명반을 찾아들을 정도로 열성을 가진 록 음악 리스너의 숫자가 적기 때문에 그래봤자 얼마 안 된다. 즉 과거 유명인사로서 비틀즈라는 이름은 유명하지만 비틀즈가 가진 다채로운 면모 중에 너무 일부만 한정해서 알려져 있을 뿐 실질적인 인기는 생각보다 훨씬 적은게 한국에서의 실정이다.[52][53]

그나마 비틀즈는 어쨌든 이름이라도 유명하지만, 세계적으로 퀸과 비슷한 수준의 인기를 가진 롤링 스톤스, 핑크 플로이드, AC/DC, 더 후 등은 아예 모르는 경우도 많다. 롤링 스톤스는 혓바닥이 나온 입술 로고의 패션 브랜드나 심한 경우엔 잡지사 롤링 스톤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으며(…), 핑크 플로이드는 3~40년 전만해도 국내 인기가 퀸 다음가는 수준으로 높았으나 현재는 소수의 한정된 리스너들만 좋아하는 밴드일 뿐이다. AC/DC는 비록 각종 광고 및 예능 프로그램, 영화, 셔츠, 야구 선수들의 등장곡 등에서 곡이 사용되어 히트곡들은 매우 유명하지만, 밴드 자체는 모르거나 빈티지 패션 브랜드로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54] 다만 세계적으로 퀸 이상의 인기를 자랑하는 레드 제플린의 경우는 그래도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에서도 나름대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편이라서 롤링 스톤스와 핑크 플로이드 등 보다는 형편이 훨씬 나은 축에 속한다.[55] 그러나 레드 제플린도 국내 한정으로는 퀸의 폭넓은 인기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또한 너바나, 오아시스, 그린 데이, 뮤즈 등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들은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에서의 인기는 높은 편이지만, 퀸과 달리 그 윗 세대에서의 인기는 다소 낮다. 이 외에도 국내에서 내한 공연을 무려 4번이나 했을 정도로 인기가 있는 메탈리카마저도 00년대에 청춘을 보냈던 현재의 30대나 40, 50대를 제외하면 인지도가 제로에 가깝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세대를 막론한 폭넓고도 막강한 인기를 갖고 있는 록 밴드는 퀸이 유일무이할 정도로 독보적이다.

이처럼 원래도 인기가 높았던데다가, 퀸의 전기 영화인 ≪보헤미안 랩소디≫가 개봉한 이후로 신세대에서도 인기가 더더욱 높아졌다. 이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는 한국에서 거의 1,000만 명에 가까운[56] 엄청난 관객을 모으는 초대박을 쳤으며 이는 전 세계를 통틀어 미국 다음으로 높은 수치이다. 즉 퀸의 본고장인 영국에서보다 대한민국에서 더욱 큰 인기를 얻은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퀸의 절대적인 인기로 인해 2022년에는 제주도에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이 건립되기에 이른다.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이 세워진 것은 전 세계에서 스위스몽트뢰를 제외하면 한국의 제주도가 유일하다. 스위스 몽트뢰는 프레디 머큐리가 생전에 제일 사랑했던 곳이라고 말해왔고, 오랜 기간 앨범 작업과 휴양도 했던 곳이라서 프레디 머큐리에게 가장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장소이니 동상이 건립될 만도 하다. 그러나 한국의 제주도는 프레디 머큐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동상이 세워질 정도로 유별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57]

국내에서의 인기가 원래 이만큼 절대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현역 당시에도 국내에서 인기가 있긴 했지만, 당시 청춘 세대들은 퀸보다 레드 제플린딥 퍼플을 필두로 한 하드 록 및 헤비 메탈 밴드들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58] 이 두 밴드 외에도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 핑크 플로이드 또한 당대에 퀸보다 국내 인기가 더 높은 밴드들이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퀸의 인기가 여전히 유지된 까닭은 수많은 한국 기업들이 퀸의 곡을 마성의 BGM처럼 광고 음악으로 자주 사용했고 각종 예능 프로그램들에서도 많이 삽입했으며 심지어 스포츠 경기장에서도 자주 트는 등 언제나 우리의 생활 속에서 퀸의 음악이 자주 들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퀸의 음악이 귀에 익숙해지고 친근하게 정이 들게 된 점도 크다. 이 때문에 광고 BGM과 예능 프로그램, 각종 배경 음악 등에서 사용된 노래들을 퀸의 노래인 줄 모르고 있다가, 누가 퀸의 노래라며 들려주면 "아~ 이 노래?" 하며 놀라는 경우도 있다. 사실상 한국에서 퀸은 몰라도 퀸의 노래까지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록 음악의 불모지인 한국에서 퀸이 큰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은 블루스 색채가 옅고 국내 정서에 잘 맞는 대중적이고 팝적인 멜로디 라인이었다.[59] 퀸과 동시기에 활동했던 롤링 스톤스, 레드 제플린, 에어로스미스 등의 밴드들은 전부 블루스 느낌이 물씬 나는 밴드였다. 그러나 블루스 음악은 국내 정서와 맞지 않았기에[60], 이러한 밴드들은 국내에서 인기가 높을 수가 없었다.[61] 반면에 퀸은 이러한 블루스의 색채가 옅었을 뿐만 아니라 멜로디 또한 대중적이고 퍼포먼스도 화려한 만큼 국내에서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이었다.[62]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1984년 존 디콘로저 테일러내한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잘 나가던 음악잡지인 <월간팝송>[63]이 비용을 댔다. 잠실 체육관을 둘러보기도 해서 내한 공연 준비가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결과가 없어 팬들이 아쉬워 했다.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금지곡 문제가 컸다. 'Bohemian Rhapsody', 'Killer Queen', 'Another one bites the dust' 등을 부를 수 없는 콘서트가 무슨 의미일지... 존과 로저 본인들도 자기들 대표곡들이 한국에서 방송금지되어 있다는 걸 알고 충격을 받았는지 "그럼, 클럽에서도 못 듣는 건가요?" 하고 재차 질문하기도 했다.[64]

여담으로 전 세계적으로 보아도 고전 록 밴드가 특정 국가 내에서 현재까지도 이렇게 인기 있는 경우는 꽤나 드물다. 한국의 퀸 사랑과 비슷한 경우로는 미국레드 제플린 사랑, 호주AC/DC 사랑[65], 아르헨티나롤링 스톤스 사랑이[66] 있다.

7. 기타[편집]


  • 다음은 멤버들이 1970년대 중반 작성한 프로필 표이다.
-
프레디 머큐리
브라이언 메이
로저 테일러
존 디콘
키/몸무게
177cm, 53kg
186cm, 66kg
180cm, 60kg
180cm, 61kg
머리색/눈색
검은색, 갈색
갈색, 주황색
금색, 파란색
갈색, 초록색
좋아하는 색
검은색
검은색
회색
갈색
좋아하는 음악가
비틀즈
비틀즈
비틀즈, 더 후
곤잘레스[67]
좋아하는 음식
샴페인
채소, 포도 주스
일본 요리
치즈,
좋아하는 배우
라이자 미넬리
제임스 메이슨, 나탈리 우드
제인 폰다, 잭 니콜슨
없음[68]
취미 활동
화려한 옷 디자인하고 입기
친구와 좋은 시간 보내기
영화 보기, 음악 듣기
베이스 연습

  • 1970년대를 활동했던 수많은 밴드들과 달리 퀸은 핑크 플로이드, 러시, 프랭크 자파 등과 더불어 마약 논란에서 매우 자유로운 밴드이다. 막장 사생활로 아주 유명한 롤링 스톤스존 폴 존스를 제외한 레드 제플린 외에도 비틀즈 , 로저 달트리를 제외한 더 후 , 크림 , 시드 바렛 등 1960-70년대의 록 음악가들은 대다수가 마약에 쩔어 살았다[69][70]. 그러나 퀸 멤버들은 마약을 일절 하지 않았다고 한다.[71] 다만 프론트맨인 프레디 머큐리는 여러 남성 및 여성 그루피들과 성관계를 맺으며 지냈는데, 이러한 여파로 에이즈에 걸려 단명하였다.[72]

  • 현대의 록 밴드 중에서 퀸과 유사한 평가를 받는 밴드로는 그레타 반 플릿이 있다. 이 밴드는 현재 미국 및 유럽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밴드이며, 퀸과 마찬가지로 레드 제플린롤링 스톤스에게서 영향을 짙게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이러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평론가들의 평이 매우 낮다는 점이 유사하다.[73]

8. 디스코그래피[편집]



파일:퀸(밴드) 심볼.svg

프레디 머큐리†
브라이언 메이
존 디콘
로저 테일러
[ Studio Album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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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A Day at the Races.jpg


1973


1974


1974


1975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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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he game.jpg


파일:Queen - Flash Gordon.png


파일:Queen - Hot Space.png


1977


1978


1980


1980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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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1986


1989


1991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4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1e2023; font-size: .8em"
Made in Heaven
1995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 20%;"
[ Live Albums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argin: -5px 0px -10px; min-width: 20%;"
[ Compilatio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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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문서 ]



정규 앨범 15장, 라이브 앨범 10장, 컴필레이션 앨범 10장으로 총 35장이다.

8.1. 스튜디오 앨범[편집]


역대 스튜디오 앨범 15+1장의 빌보드 200, UK 차트 순위를 나타낸 자료이다.
영국에서 훨씬 많은 인기를 얻은 데다 1970~1980년대 영국 음악 시장이 미국 못지않게 컸음을 고려하여, UK 차트 순위도 같이 수록한다.
굵은 글씨는 각 차트에서 1위를 한 앨범 / 싱글이다.

발매일
제목
리드 싱글
UK차트
빌보드 200
총 판매량
1973.07.13.
Queen
Keep Yourself Alive
24위
83위
3,000,000장
1974.03.08.
Queen II
Seven Seas of Rhye
5위
49위
3,000,000장
1974.11.08.
Sheer Heart Attack
Killer Queen
2위
12위
4,500,000장
1975.11.21.
A Night at the Opera
Bohemian Rhapsody
1위
4위
10,500,000장
1976.12.10.
A Day at the Races
Somebody to Love[74]
1위
5위
4,800,000장
1977.10.28.
News of the World
We Are the Champions / We Will Rock You[75]
4위
3위
9,500,000장
1978.11.10.
Jazz
Bicycle Race / Fat Bottomed Girls
2위
6위
5,500,000장
1980.06.27.
The Game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1위
1위
9,200,000장
1980.11.08.
Flash Gordon[76]
Flash[77]
10위
23위
3,100,000장
1982.05.21.
Hot Space
Body Language
4위
22위
2,900,000장
1984.02.27.
The Works
Radio Ga Ga[78]
2위
23위
5,000,000장
1986.06.03.
A Kind of Magic
A Kind of Magic[79]
1위
46위
6,100,000장
1989.05.22.
The Miracle
I Want It All[80]
1위
24위
4,600,000장
1991.02.05.
Innuendo
Innuendo
1위
30위
5,800,000장
1995.11.06.
Made in Heaven
Heaven For Everyone[81]
1위
58위
9,600,000장

+ Paul Rodgers
발매일
제목
리드 싱글
UK차트
빌보드차트
2008.09.15.
The Cosmos Rocks
Say It's Not True
4위
47위

8.2. 라이브 앨범[편집]


연도
제목
1979
Live Killers
1986
Live Magic[82]
1992
Live at Wembley '86
1995
At the Beeb
2004
Queen on Fire – Live at the Bowl
2007
Queen Rock Montreal
2012
Hungarian Rhapsody: Queen Live in Budapest
2014
Live at the Rainbow '74
2015
A Night at the Odeon
2016
On Air

8.3. 컴필레이션 앨범[편집]


연도
제목
1981
Greatest Hits
1991
Greatest Hits II
1992
Classic Queen (미국 한정)
1992
The 12" Collection
1997
Queen Rocks
1999
Greatest Hits III
2006
Stone Cold Classics
2007
The A-Z of Queen, Volume 1
2009
Absolute Greatest[83]
2011
Deep Cuts, Volume 1 (1973-1976)
2011
Deep Cuts, Volume 2 (1977-1982)
2011
Deep Cuts, Volume 3 (1984-1995)
2013
Icon (미국/캐나다 한정)
2014
Queen Forever
2020
Greatest Hits in Japan (일본 한정)
2022
The Miracle Collector's Edition

8.4. EP[편집]


연도
제목
1977
Queen's First E.P.

8.5. 싱글[편집]


빌보드 핫 100 30위권 안쪽, UK 차트 20위 안에 든 싱글만 추렸다.

영국에서 훨씬 많은 인기를 얻은 데다 1970~1980년대 영국 음악 시장이 미국 못지않게 컸음을 고려하여, UK 차트 순위도 같이 수록한다.

보통 영국에서는 UK 싱글 차트 역사상 가장 성공한 밴드로 반드시 꼽히며, 미국에서는 영국에서 비교적 부진했던 1980년의 '더 게임' 앨범 때가 전성기로 여겨진다.

8.5.1. UK 차트[편집]



8.5.1.1. UK 차트 1위[편집]


8.5.1.2. UK 차트 2위[편집]


8.5.1.3. UK 차트 3위~10위[편집]


8.5.1.4. UK 차트 11위~20위[편집]


8.5.2. 빌보드차트 성적[편집]


Queen Billboard HOT 100 차트인 목록
년도[84]
곡명
최고 순위
수록앨범
1975년
Killer Queen
12위
Sheer Heart Attack
1976년
You're My Best Friend
16위
A Night at the Opera
1977년
Somebody To Love
16위
A Day at the Races
Tie Your Mother Down
49위
1978년
We Are The Champions
4위
News of the World
It's Late
74위
1979년
Bicycle Race/Fat Bottomed Girls
24위
Jazz
Don't Stop Me Now
86위
1980년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
4주연속 1위
The Game
Play The Game
42위
Another One Bites the Dust
3주연속 1위
Need Your Loving Tonight
44위
1981년
Flash's Theme Aka Flash
42위

1982년
Under Pressure[85]
29위
Hot Space
Body Language
11위
Calling All Girls
60위
1984년
Radio Ga Ga
16위
The Works
I Want to Break Free
45위
It's A Hard Life
72위
1986년
One Vision
61위
A Kind of Magic
A Kind Of Magic
42위
1989년
I Want It All
50위
The Miracle
1992년
Bohemian Rhapsody
2위
A Night at the Opera
1993년
Somebody To Love
30위
George Michael과 합작

8.6. 별도 문서가 있는 퀸의 음악[편집]


분류:퀸/노래 목록 참조.

9. 공연[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퀸(밴드)/공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 1980년의 퀸의 모습이다.[2] 처음으로 이라는 이름으로 공연한 날이다. 하지만 이 때 광고를 이미 스마일로 실어서 광고에는 스마일이라 나왔었다고.[3] 존 디콘이 합류한 1971년을 결성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퀸 오피셜도 결성년도를 1971년으로 본다.[4] 1970년 – 1991년, 1991년 에이즈로 인해 사망[5] 1971년 – 1997년, 1997년 은퇴. 2014년 이후로는 다른 멤버들과도 사실상 연락이 끊겨 잠적 상태다.[6] 시도했던 장르가 꽤 많아서 일일이 기재하기 힘들지만, 주로 추구하는 장르는 하드 록과 글램 록, 그리고 팝 록이었다.[7] 잘 알려지진 않았으나 A Night at the Opera 발매 이전, 즉 트라이던트를 나와 EMI와 계약하기 전까지 잠시 동안 스완 송 레코드 소속으로 활동했었다.[8] 이 중에서 글램 록은 2, 3집 한정이지만, 하드 록은 커리어 말기까지 퀸이 추구하던 음악이었다.[9] 장르 불문하고 전체로 치면 12위이다.[10] 이는 AC/DC도 마찬가지로, 퀸과 음반 판매량이 거의 비슷하다.[11] 후술하겠지만 이 실패라는 용어는 동시대의 거대 밴드였던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롤링 스톤스와 비교했을 때의 실패라는 것이다. 퀸은 영국만큼은 아니어도 미국에서도 상당히 성공했던 밴드였다.[12] 다만 극히 희귀한 확률로 노래를 불렀다.[13] 이 중에서도 가창력만 보았을 때 로버트 플랜트, 로니 제임스 디오와 함께 록 보컬계의 대명사로 꼽힌다.[14] 당장 남성 록 보컬리스트 중에서 프레디 머큐리보다 음역대가 넓다고 확인된 보컬은 액슬 로즈로버트 플랜트 정도밖에 없다.[15] 프레디 머큐리와 Barcelona 앨범을 같이 만든 오페라 가수 몽셰라 카바예 역시 이를 간파하여 “당신의 음역대는 바리톤으로 추측됩니다. 그러니 고음은 제가 할테니 당신은 편하게 저음을 불러주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프레디 머큐리는 "대중들이 내 고음 목소리에 익숙해서 낯설어할까 봐 걱정된다"라는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였다고.[16] 실제로 공연을 보면 제시된 기타리스트들은 말 그대로 날뛰거나 악기를 부수는 등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으나, 브라이언 메이는 솔로 때에도 앞으로 나와서 얌전히 연주하였다.[17] 물론 이런 레전드급 기타리스트들의 사운드 톤은 전부 개성적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브라이언 메이는 전 세계에서 딱 하나밖에 없는 기타를 사용하다보니 사운드가 매우 독특한 축에 속한다.[18] 실제로 호킨스는 퀸의 엄청난 팬이었다.[19] 이 때문에 퀸은 멤버들의 나이에 비해 꽤나 늦게 데뷔한 편이다. 프레디 머큐리와 브라이언 메이는 퀸의 선배 밴드인 레드 제플린의 멤버들인 로버트 플랜트, 존 본햄보다도 나이가 많으며, 프레디 머큐리는 레드 제플린의 존 폴 존스, 핑크 플로이드의 데이비드 길모어와 동갑이며 그보다 더 올라가면 1965년에 데뷔한 더 후의 드러머인 키스 문과 동갑이다.[20] 영국 최초의 의대이며, 그 중에서도 치과대학은 영국 2위인 동시에 세계 TOP 10 안에 든다. 개교한 이래 총 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21] 골든 트라이앵글에 속한 대학 중 하나이다. 개교한 이래 총 1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22] 킹스 칼리지 런던과 마찬가지로 골든 트라이앵글에 속하며, 유럽 최고의 이공계 대학 중 하나로 꼽힌다. 개교한 이래 총 1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23] 국내에서 명문대생 5명이 결합한 밴드로 화제가 됐던 무한궤도와 유사한 면이 있다.[24] 다만 팀 스타펠은 퀸의 정식 멤버는 아니고 그의 전신 밴드인 스마일의 멤버였다.[25] 오른쪽의 인물, 왼쪽은 로저 테일러이다.[26] 다만 현재 생존 중인 것으로 추정[27] 인터뷰에 따르면 퀸의 오디션을 보았을 당시 17살 정도였다고 기억한다.[28] I Want to Break Free의 그 유명한 신디사이저 솔로를 연주하였다.[29] 1984년 The Works 투어와 1986년 A Kind of Magic 투어에서의Hammer to Fall 공연 한정. 현재는 키보드만 전담한다.[30] 멤버 소개를 할 때 브라이언 메이가 맨체스터 출신이라고 소개한다.[31] 드러머 로저 테일러의 아들이다.[32] 비틀즈와 레드 제플린은 역사상 모든 아티스트를 통틀어도 음반 판매량이 각각 1위와 6위이며, 그만큼 전 세계적인 인지도와 위상도 높다. 그나마 핑크 플로이드가 역대 음반 판매량 8위로 퀸보다 음반 판매량이 높긴 하지만, 후술할 월스트리트 저널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적인 인기는 핑크 플로이드보다도 퀸이 더 높다.[33] 비틀즈,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다음. AC/DC이글스, 롤링 스톤스는 퀸과 마찬가지로 2억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으나, 현재는 퀸이 살짝 앞선다는 주장이 주류이며, 통계에 따라 네 밴드의 순위가 달라지기도 한다.[34] 1위는 보통 비틀즈가 차지하며 2위 경쟁이 심한데, 대체로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퀸 이 세 밴드가 경쟁하는 구조이다.[35] 이러한 영국에서의 어마어마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퀸은 미국에서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던 비틀즈레드 제플린보다 각각 4억 장, 1억 장 이상이나 적은 음반 판매량을 기록했는데, 이는 미국 시장이 얼마나 거대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36] 1위와 2위는 각각 비틀즈, 레드 제플린이 차지하였다. 참고로 4위는 핑크 플로이드, 5위는 롤링 스톤스.[37] 지역별 인기 격차가 있는 것은 비틀즈를 제외한 대부분의 밴드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롤링 스톤스는 퀸의 인기가 높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인기가 다소 떨어지는 면이 있다.[38] 당시는 3위였다. 2위는 영국. 일본 음악 시장이 2위가 된 것은 의외로 오래되지 않았다. 심지어 2010년대 초반에도 영국은 록 시장에서만큼은 일본보다 규모가 컸다.[39] 3집 이전, 퀸 초기때부터 일본에서만큼은 높은 인기를 자랑했다. 자국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1집이 일본에선 꽤나 히트했을 정도. 일본인들의 퀸 사랑은 아르헨티나인들의 롤링 스톤스 사랑, 한국인들의 오아시스 사랑과 비슷한 수준이다.[40] 역사상 딱 다섯 아티스트만이 1억 장 이상의 미국 내 인증 판매량을 기록했는데, 그 중에서 비틀즈와 레드 제플린만이 영국 출신 아티스트이다. 나머지 세 아티스트는 엘비스 프레슬리, 가스 브룩스, 이글스로, 전부 다 미국 아티스트이다.[41] 여기서 ‘넘사벽’이라는 표현은 한국을 제외한 것이며,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레드 제플린의 여전한 세계적인 인기는 그레타 반 플릿 등의 음악가들이 현재에도 인기를 끌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42] 3집을 제외한 1,2,4,5,6집 모두 인증 판매고만 1,000만 장을 훌쩍 넘긴다. 3집 또한 추정 판매고는 1,000만 장을 넘긴다.[43] 이 세 앨범의 추정 판매고만 합쳐도 약 1억 장 가까이 된다. 특히나 The Dark Side of the Moon의 경우 전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며 이 앨범들은 전부 빌보드 200에서 1위를 차지했다.[44] 다만 월스트리트 저널의 통계 산출에 의하면 대중음악사에서 인기로만 따지자면 퀸 이상인 밴드는 비틀즈레드 제플린밖에 없다. 즉 전 세계적으로가 아닌 미국에서는 핑크 플로이드와 롤링 스톤스의 인기가 퀸보다 더 높았다는 의미이다.[45] 물론 밥 딜런이나 재니스 조플린, 지미 헨드릭스, 도어즈 등의 예외는 있었다.[46] 그렇기에 ‘2차 브리티시 인베이전’이라는 사건을 주장하는 학자는 없다.[47] 여담으로 이 남아공 공연은 당대에 어마어마하게 욕먹었는데, 이유인 즉슨 당시 남아공이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백인 우월주의 정책을 마구 펼치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당시 음악가들은 다른 곳들은 전부 투어를 가도 남아공만은 가지 말자는 불문율이 있었으나, 퀸은 그냥 남아공까지 투어를 간 것. 물론 퀸이 인종차별 지지 차원에서 공연을 간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 곳에서 음악을 통한 인종 화합을 시도하고자 했다고 한다. 애초에 리더 격인 프레디 머큐리부터가 흑인 음악의 대표적인 아티스트 중 한 명인 마이클 잭슨과 친분이 있었고, 심지어 이란계 영국인이라 본국인 영국에서 소수 민족에 속했는데, 인종 차별을 지지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48] 심지어 마이클 잭슨도 최근 세대는 그의 대표적인 춤인 문워크와 이 춤이 포함된 곡인 Billie Jean, 그리고 학교 영어 시간에 자주 등장하는 곡인 Heal the World 정도만 알지, Beat ItSmooth Criminal, We Are the World, You Are Not Alone 등 다른 히트곡들을 아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퀸 같은 경우는 고전 아티스트에다 국내에서 입지가 굉장히 좁은 록 음악가임에도 히트곡들까지 아주 잘 알려져 있는 매우 드문 케이스이다.[49] 현재의 Z세대들이 ‘서태지와 아이들’이라는 그룹 이름은 알지만, 이 그룹에 누가 있었는지나 이 그룹의 곡이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50] 록 음악의 극한지라 불리는 한국 특성상 록 음악=메탈이라는 고정 관념또한 있기 때문에 비틀즈의 노래를 듣고 이게 무슨 록이냐는 반응도 많다. 심지어 한국에서도 히트한 후술할 곡들 또한 록 음악의 하위 장르인 소프트 록으로 분류되는데도 저러한 인식이 있다.[51] 물론 Ob-La-Di, Ob-La-DaYellow Submarine같이 제목을 모를뿐 들려주면 아는 노래도 몇몇 있다.[52] 거기다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하더라도 저작권 문제로 인하여 음원 사이트에서 조차 제대로 들을 수 있는 노래가 많이 없었다.[53] 다만 본격적으로 인터넷 시대가 도래한 2000년대 이후로는 해외 음악 정보가 풍부해져서 적극적인 음악 리스너들을 중심으로 이전보다는 실질적인 팬들이 오히려 좀 늘어난 면이 있다.[54] 그렇기에 록 팬들은 만약 AC/DC의 전기 영화가 나온다면, 한국에서 퀸 정도의 인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55] 이를테면 존 폴 존스의 내한 공연 당시에는 올드 팬들뿐 아니라 젊은 팬들도 매우 많이 몰렸다고 한다.[56] 994만 명으로, 1,000만 관객 이하 영화 중에선 가장 많으며 한국 개봉 역대 전기영화 흥행 1위이다[57] 참고로 퀸의 멤버인 브라이언 메이가 제주도 동상 건립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58] 이 세대에게는 현재진행형인데,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에서 나이가 지긋한 레젭 팬과 딥 퍼플 팬이 키배를 뜨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59] 아이러니하게도 평가와 영향력 문서에 서술되어 있듯이, 이러한 블루스 정서가 거의 없다는 점이 평론가들에게 대차게 까였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는데, 당시 음악계는 “블루스를 모르면 음악을 모르는 것이다”라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블루스를 탈피한 현대적인 하드 록을 완성해 낸 더 후의 초창기 음악도 기존의 블루스 음악에서 음압을 빡세게 올린 하드 록이었고, 블루스를 탈피한 하드 록은 커리어 중반에 발매된 Who's Next에서 자신들의 음악적 실험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60] 영미권과 라틴 지역은 춤추는 문화가 발달되었고, 5, 60년대부터 대중음악을 접해 블루스와 로큰롤이 익숙하지만, 한국의 5, 60년대는 6.25 전쟁으로 모든게 박살난 상태라 잊혀진 시기이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나라가 박살난 상태고 정부는 경제만을 살리기 위해 급급한데 이 상태에서 록 음악이 발달하고 로큰롤 음악과 블루스 음악을 즐기는 일은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 깊이 파고 들자면 수많은 흑인 블루스 음악가들이 활동했던 20세기 초반의 한국은 일제강점기로 인하여 나라가 망한 상태였다. 수많은 사람들은 독립운동가가 되어 국가의 독립을 위해 활동하였고,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쾌락적이고 퇴폐적인 블루스 음악은 절대 유행할 수 없었다. 물론 이렇게 아픈 역사가 아니더라도 블루스 음악의 끈적끈적한 리듬과 쾌락적이고 퇴폐적인 감성이 한국인의 성향과 맞았을지는 의문이며, 정교한 연주와 신비주의적인 이미지가 아닌 블루스의 그루브한 연주와 가벼운 이미지는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느낌은 아니다.[61] 다만 제시된 밴드들 중에서 레드 제플린은 퀸 이상의 화려한 기교와 퍼포먼스로 인해 국내에선 보컬이나 악기 좀 한다는 사람들에게는 큰 인기를 끌었다. 당장 김태원의 경우처럼 레드 제플린의 화려한 곡들을 연주하면서 여자를 꼬시려고 한 경우도 매우 많았으며(…), 현재까지도 악기 연주자들이나 록 보컬계에서 레드 제플린의 곡들은 꼭 연주해 보아야 할 목표나 과제로 많이 애용되고 있다.[62] 이를 증명하듯 1집인 Queen에는 The Night Comes Down, Son and Daughter 등 블루스의 색채가 짙게 나는 하드 록 넘버들도 꽤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 역시나 이러한 곡들의 국내 인지도는 제로에 가깝다. 심지어 로큰롤, 블루스 성향이지만 역대 퀸 라이브에서 가장 많이 연주된 곡 중 하나인 Now I'm Here의 국내 인지도도 제로에 가깝다.[63] # 이 게시물에서 1981년 2월호를 구경해볼 수 있다. 퀸 관련 내용이 있는 페이지도 업로드되어 있는데, 특이하게도 금지곡을 포함하여 어떤 곡이 히트했는지를 소개했다.[64] 비슷한 경우로 1975년 경에 레드 제플린의 내한 공연도 추진되었으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청년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서 이들이 머리를 밀고 와야 내한 공연을 허용해 주겠다고 엄포를 놓았으며, 당연히 내한 공연은 물거품이 되었다.[65] 다만 AC/DC는 호주의 록 밴드이므로 이 점은 감안해야 한다.[66] 심지어 아르헨티나에는 롤링 스톤스를 신으로서 숭배하는 ‘롤링가’라는 부족도 있다고 한다.[67] 1970년대에서 80년대까지 활동했던 영국의 Funk, R&B 밴드이다.[68] 대신 시계태엽 오렌지라는 영화를 재밌게 봤다고 답했다.[69] 특히 키스 리처즈, 지미 페이지, 에릭 클랩튼은 아직까지 살아있는게 신기하다 할 정도다.[70] 만약 경찰이 제대로 단속했다면 위에서 언급한 음악가들이 전부 잡혀가야 하는데, 그랬다간 영국 음악계는 그날로 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영국 경찰도 알았기에 대놓고 걸리는게 아니면 조용히 넘어가줬다.[71] 로저 테일러가 우리는 약 같은 거 안 빤다고 인터뷰에서 직접 말했다.[72] 마찬가지로 수많은 남성 및 여성 그루피들과 성관계를 맺었지만 여전히 정정한 믹 재거와는 대조적이다.[73] 받는 평가도 매우 유사한데, 짝퉁 레드 제플린이라거나, 듣긴 좋지만 딱히 영향력은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74] 네덜란드 차트 1위[75] 프랑스 차트 1위[76] 동명의 영화 OST 앨범으로, 한국 기준으로는 비정규앨범에 해당한다.[77] 동명의 영화 OST 메인곡[78] 19개국 1위[79] 스페인 차트 1위[80] 앨범은 차트 1위를 했지만, 싱글은 네덜란드에서 2위를 차지한 게 최고 순위이다. 영국 차트에서는 3위를 기록했다.[81] 폴란드 차트 1위[82] 미국에선 1992년에 발매[83] 브라이언 메이와 로저 테일러가 수록곡들의 코멘트를 들려준다.[84] 최고 순위 시점 기준.[85] 데이빗 보위와 합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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