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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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폴란드 출신의 작곡가이자 지휘자.
2. 생애[편집]
1933년 폴란드 뎅비차[1] 에서 태어나 크라쿠프 음악원 졸업 뒤 그곳의 교수를 지냈다. 1959년 제3회 '바르샤바의 가을' 음악제에서 연주한 <10개의 악기와 낭독 및 소프라노를 위한 스트로페>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1960년, 52개 현악기로 연주한 전위 음악인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위령곡>[2][3] 으로 음악계에 충격을 선사했으며, 1966년 <성 누가 수난곡>으로도 호평을 받았다.
이 작품들은 악기 음향이 아닌 현을 긁는 소리, 톱으로 나무를 써는 소리 등이 사용되어 음악의 경계를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기존의 선율과 화성, 리듬이라는 요소 대신 음향과 음색을 만들어내는 독자적인 작곡 기법을 선보이며 20세기 현대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펜데레츠키의 음악은 수많은 영화감독들에게 사랑받아 다양한 음악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특히 그의 48대의 현악 앙상블을 위한 <다형성>(1961)이라는 곡은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엑소시스트>(1973),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1980) 등의 걸작에 삽입되어 그 색다르면서 음산한 분위기로 관객들의 공포감을 고조시켰다. 또 <광란의 사랑>(1991), <칠드런 오브 맨>(2006), <셔터 아일랜드>(2010) 등의 영화에 그의 음악이 사용된 바 있다.
다만 현대음악의 전위성이 청중을 멀어지게 했다는 판단에 1970년대 중반부터는 전통적인 양식을 도입하고 기존의 음악 화성을 사용하는 유연함을 보였다. 펜데레츠키 역시 다른 현대음악 작곡가들과 마찬가지로 나이가 든 후에는 파격적인 실험보다는 좀더 보수적인 경향을 추구했으며 40대 이후에 쓴 작품들은 이전 작품 대비 상대적으로 무난하다.
생전 그래미상 5회, 에미상 2회, 그라베마이어상 등을 수상했으며, 한국과도 인연이 깊어 1991년 한국 정부의 위촉으로 교향곡 5번[4][5] 을 작곡하기도 했다.
이후 2005년에 서울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https://www.snu.ac.kr/snunow/press?md=v&bbsidx=76018
이외에도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인 조니 그린우드와 여러 차례 협업을 하면서 공동 앨범을 발매하기도 했다. 조니는 이전부터 펜데레츠키의 팬이었던지라 매우 흡족해하며 작업을 했다는 풍문이 전해져온다.
2020년 3월 29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영결식은 사망 2주기인 2022년 3월 29일에 크라쿠프 세인트 피터&폴 교회에서 뒤늦게 열렸다. 국장으로 진행됐으며,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장례위원장을 맡았고 절친한 사이였던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가 아베 마리아를 연주했다. 제자인 류재준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은 영결식 참석을 위해 폴란드로 출국했다.
3. 평가[편집]
젊은 시절 획기적이면서도 전위적인 종교음악과 교향곡을 선보이며 혜성같이 등장한 이후 20세기 현대음악의 거장으로 올라섰다.
비톨트 루토스와프스키, 헨리크 구레츠키와 더불어 폴란드의 현대음악 트로이카로 불린다.
4. 어록[편집]
정말 신기하게도, 어린시절 들었던 음악들이 지금 제 귀에 다시 돌아와 맴돌곤 합니다. 클레즈머 음악은 원래 알던 그 모습 그대로 제가 작곡한 두 작품 <육중주 (Sextet)>와 <콘체르토 그로소 (Concerto Grosso)>에서 다시 등장했습니다. 이 두 작품에서는 어린 시절 즐겨듣던 모티브가 잘 녹아있습니다.
폴란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모든 전통을 넘어 소리를 해방시키고자 한다.
아방가르드인지 전통인지, 열정이 묘사되는 방식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한 열정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본인의 작품 <성 누가 수난곡>에 대해 설명하며
작곡할 때마다, 그 곡을 이상적으로 지휘하는 방법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합니다. (중략) 그렇기 때문에 작곡한 곡을 지휘할 때 어떤 부분을 길고, 또 짧게 연주해야 하는지 잘 알 수 있고, 이상적인 지휘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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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시딤 유대인이 전쟁 전에 거주했던 작은 마을이다.[2] '히로시마 희생자에게 바치는 애가'라고도 한다.[3] 소비에트 집권 정부가 폴란드 사회와 문화에 대한 단속을 완화시켰던 1950년대 중반의 폴란드 정권 자유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음악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의미 있는 작품이다.[4]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KBS 교향악단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단악장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한국 민요 《새야 새야》의 선율을 주요 소재로 사용하였다. 이벤트용으로 작곡된 곡이라서 그런지 초연 이후에는 자주 연주되지는 않는다.[5] 참고로 부제가 없는 작품이다. 부제가 '한국'임을 부각시키는 건 거의 한국 언론이나 유튜버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