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롭슈톡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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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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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롭슈톡 사건
Klopstock Incident · クロプシュトック事件


파일:클롭슈톡 사건.png

날짜
우주력 795년, 제국력 486년 표준력 3월 30일 ~ 5월 2일
장소
은하제국 클롭슈톡 후작령
교전 당사자
파일:Goldenbaum-Dynasty.png 은하제국 골덴바움 왕조 파일:Goldenbaum-Dynasty.png
클롭슈톡 후작가
지휘관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플레겔
오스카 폰 로이엔탈
볼프강 미터마이어
빌헬름 폰 클롭슈톡
병력
은하제국군
불명
클롭슈톡 후작군
불명
피해 규모
불명
궤멸
결과
은하제국군의 승리, 반란 진압
1. 개요
2. 배경
2.1. 클롭슈톡 후작가의 몰락
2.2. 후작의 와신상담
3. 반란
3.1. 폭탄테러
3.2. 토벌
4. 구명
4.1. 약탈과 학살
4.2. 미터마이어 체포
4.3. 미터마이어 석방
5. 결말
6. 여담
7. 미디어 믹스
7.1. OVA
7.2. 후지사키 류 코믹스
8. 만약 클롭슈톡 후작이 성공했다면?


<white,#191919> 은하영웅전설 외전 <별을 부수는 자>의 에피소드
제3차 티아마트 회전

클롭슈톡 사건

베네뮌데 후작부인 사건

1. 개요[편집]


  • 등장 작품
    • 은하영웅전설 외전 2권 <별을 부수는 자> 3장
    • 미치하라 카츠미 코믹스 은하영웅전설 3~4화
    • 은하영웅전설 OVA 9화
    • 은하영웅전설 Die Neue These 26화 『쌍벽』 ~ 27화 『폭풍의 밤』
  • 우주력 795년, 제국력 486년 표준력 3월 21일(테러 발생), 표준력 3월 30일 ~ 5월 2일(반란 진압)
은하영웅전설의 사건. 빌헬름 폰 클롭슈톡 후작이 일으킨 테러와 그로 인해 발생한 부차적인 사건들. 사건 자체는 이후 역사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훗날 제국의 쌍벽이라 불리며 활약하는 볼프강 미터마이어오스카 폰 로이엔탈이 라인하르트와 인연을 맺게 된다.

2. 배경[편집]



2.1. 클롭슈톡 후작가의 몰락[편집]


클롭슈톡 후작가는 은하제국의 개국과 함께 그 역사가 시작된 명문귀족이었다. 시조인 알브레히트는 루돌프 폰 골덴바움은하연방 국회의원 시절부터 도운 심복이자 국가혁신동맹 서기장으로 은하제국 건국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새로운 제국이 들어서자 그동안의 공을 인정받은 알브레히트는 내각서기관장, 재무상서를 역임했다. 이후 내무상서 에른스트 팔스트롱 백작이 공화주의자들에게 암살당하자, 그의 후임으로 임명되어 훗날 피의 롤러라 불리는 대규모 공화파 숙청을 주도했다.

클롭슈톡 가문은 루돌프 대제 이후 약 스무세대에 걸쳐[1] 무려 여섯 명의 국무상서와 한 명의 황후를 배출하고 일곱 명이 황실과 혼인을 맺는 등,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명문가로서의 명성을 순탄하게 유지해 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은하제국의 현 황제 프리드리히 4세가 아직 대공이던 선제 오토프리트 5세 시절에 벌어진, 대규모 제위계승 다툼에서 현 클롭슈톡 후작 빌헬름 폰 클롭슈톡이 '잘못된 판단'을 하면서 가세가 기울어지게 되었다.

당시의 상황은 이러했다. 선제 오토프리트 5세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순서대로 장남이자 황태자 리하르트, 차남 프리드리히, 삼남 클레멘츠였다. 그중 리하르트는 근면하고 교양이 풍부한데다 장남이기까지 해서 황태자로서 확고한 입지를 굳혔으며, 클레멘츠는 비록 막내 아들이여서 원칙적으로 계승권에서 가장 멀리 떨어졌지만 행동력이 뛰어나 많은 이들의 신망을 샀다. 그런데 훗날 프리드리히 4세로 즉위하는 차남 프리드리히는 술, 여자, 도박 등 주색잡기에 빠지고 빚쟁이에게 쫒기거나 평민에게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한심한 모습을 보인 탓에 제위 계승경쟁에서 철저하게 배제되고 있었다. 당연히 그 모습에 클롭슈톡 후작을 포함한 제국의 유력 귀족들은 프리드리히를 면전에서 대놓고 비웃었다. 특히 클롭슈톡 후작은 오토프리트 5세의 삼남 클레멘츠가 제위를 계승할 것이라 여겨 그의 편에 섰고, 클레멘츠가 제위에 오르면 자신이 국무상서직을 받는다는 구두 약속까지 얻은 상황이였다.

하지만 오토프리트 5세의 장남 리하르트와 삼남 클레멘츠가 서로 반목하며, 황위를 노리다 공멸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장남 리하르트는 무난하게 황태자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삼남 클레멘츠측 세력들이 조작한 반역죄를 뒤집어쓰고 측근들과 함께 처형당했고, 삼남 클레멘츠는 프리드리히를 제치고 황태자 자리를 차지한지 3년만에 리하르트에게 누명을 씌운게 폭로되어 그의 측근들도 모조리 처형당했다. 간신히 살아남은 클레멘츠는 황급히 자유행성동맹으로의 망명을 꾀했지만, 사고인지 자살인지 모를 우주선 폭발사고로 시신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두 아들의 골육상쟁에 큰 충격을 받은 오토프리트 5세는 그대로 쓰러졌고, 결국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심장병으로 승하했다. 이렇게 유력한 제위계승자들이 사이좋게 공멸하면서, 살아남은 사람은 누구의 기대도 받지 않은 오토프리트 5세의 차남 프리드리히였다. 이리하여 그 누구도 생각치도 못하고 예상치도 못한 프리드리히가 제국의 새로운 황제 프리드리히 4세로 즉위하게 되었다. 프리드리히를 비웃던 귀족들은 너나 할 것없이 살 길을 찾아 새로운 황제 폐하에게 충성을 다짐했다. 그러나 클롭슈톡 후작은 너무 지나치게 프리드리히 4세를 괄시한 탓에 황제 본인보다도, 황제 주변에 붙은 측근들의 표적이 되어 귀족계에서 매우 깔끔하게 제거되었다. 클롭슈톡 후작과 친분이 있던 귀족들은 즉각 태도를 바꿔 후작을 모른 척했고, 이미 맺어진 약혼이나 진행 중이던 혼담도 어떤 이유없이 파혼을 통보받아야만 했다. 물론 대역죄인 클레멘츠를 차기 황제로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전적을 생각하면, 클롭슈톡 후작은 목숨과 재산만이라도 보존한 게 다행이였다.[2]

2.2. 후작의 와신상담[편집]


갖은 수모를 받은 후작은 이후 수십 년간 영지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귀족들도 차츰 후작을 기억 밖의 인물로 인식하며 그렇게 귀족들 사이에서도 잊혀진 인물이 되었던 후작은 30년이나 시간이 흐른 시점에 기나긴 침묵을 깨고 밖으로 나와 황실에는 영지를 바치고, 정부에는 막대한 헌금을 지불하며, 유력 대귀족들에게는 귀중한 예술품 등을 선물하며 매우 살갑게 나서기 시작했다. 이는 당연히 사교계로 복귀하기 위한 후작의 피나는 노력으로 인식되었으며 특히 황실조차 가지고 있지 못한 귀중한 예술품을 선물받은 제국 필두의 대귀족,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흡족한 반응과 함께 기꺼이 후작을 자신의 저택에서 열릴 저녁 파티에 초대했다. 그렇게 후작은 30년만에 다시 은하제국의 명문귀족들과 군인들이 모이는 사교파티에 복귀할 수 있었다.[3]

하지만 후작은 무려 30년이란 시간 동안 자숙이 아닌 자신이 당한 수모와 굴욕, 설움을 곱씹으면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그리고 보복에 나서기로 결심한 시점부터 그동안 모아온 재산을 과감하게 쏟아붓기 시작했다. 게다가 다른 귀족들은 후작이 보여준 성의에 이미 입이 찢어질 정도로 넘어가 있었기 때문에 그 어떠한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사실 여기에는 30년간 버로우했던 인물이 설마 무슨 일을 저지르겠냐는 식으로 생각했던 것도 큰 원인을 제공하고 말았다.


3. 반란[편집]



3.1. 폭탄테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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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클롭슈톡 사건-2.jpg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파티
클롭슈톡 후작의 폭탄
3월 21일, 지금까지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사교계로의 대대적인 복귀를 꾀한 클롭슈톡 후작은 30년만에 은하제국 예비역 대장의 예복을 갖추고 브라운슈바이크 저택에 모습을 드러냈다. 겉으로는 파티에 참여한 노귀족처럼 위장했지만 가방에 강력한 폭탄을 위장시키고 있었다. 차가운 정치적 투쟁이 벌어지던 시절도 아니고 '귀하신 몸'들이 대거 참석하는 자리에서 몸수색이란 존재하지도 않았고 그 누구도 클롭슈톡 후작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4]

공작은 여기저기 초청장을 보냈고 그런 가운데 라인하르트도 초청장을 받았다. 이런 자리에 오고 싶었을 리가 만무하던 라인하르트였지만 그래도 황제까지 오는 자리이니만큼 얼굴만이라도 드러내야 한다는 키르히아이스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둘 다 황제 프리드리히 4세에 대하여 증오를 품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얼굴을 피하면 귀족계의 입소문에 시달리는 것은 기본이요, 자칫 안네로제에게 안 좋은 말이 오고갈 수도 있음을 둘 다 파악한 것이었다. 초청받은 귀족이거나 장군급 인사가 아니면 들어갈 수도 없었기에 키르히아이스는 바깥에서 대기하는 중이었다.

한편, 클롭슈톡 후작은 파티에 제대로 참여하지도 않고 안내받은 자리에 폭탄 가방만을 남겨둔 뒤 빠르게 파티장을 빠져나갔다. 후작의 목표는 황제와 주변 측근 귀족들. 자리가 비워져 있자 주최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아주 잠깐 후작을 찾았으나 일단 후작의 가방이 있어 크게 의심치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한 귀족부인이 갑자기 쓰러졌고, 일단 쉴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는 과정에서 비어있는 클롭슈톡 후작의 자리에 잠시 앉혀두기로 결정했다. 이에 급히 가방을 현관에 있는 소지품 보관소로 옮기는 도중에 폭탄이 터졌다.

현장에서 10여 명이 즉사, 1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는데 부상자의 3할 정도는 곧 죽은 사람들을 뒤따라갈 중상을 입었다. 그나마 이것도 폭탄을 현관으로 막 내간 참에 터져서 적게 죽은 것이지, 본래대로 후작의 좌석[5]에서 터졌다면 최고위 대귀족들을 중심으로 엄청난 참극이 터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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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당한 라인하르트와 그를 구하려 달려온 키르히아이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가벼운 상처를 입고[6] 목숨을 건졌으며 라인하르트 역시 폭탄이 터진 장소와 좀 동떨어진 곳에 있었던 덕분에 먼지를 뒤집어 쓴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상해를 입지 않았다.[7] 프리드리히 4세는 파티 참석을 위해 황궁에서 공작 저택으로 오던 중 '갑작스런 복통'으로 인해 급히 환궁하여 파티에 참석하지 못해 변을 피할 수 있었다.

저택 경비를 명령받아 임무에 충실하던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준장이 즉시 사태 수습 및 범인 색출에 나서 유력 용의자들을 추려냈고 얼마 안 가 파티 중 자리를 비운 18명의 용의자 중 폭발물 소지가 의심되고 가장 먼저 파티장을 빠져나간 클롭슈톡 후작이 범인으로 지명되었다.

은하제국 역사에서 대귀족, 황족까지 엮인 암살 시도는 딱히 새로운 것도 놀라운 것도 아니었다. 보통 '불손한 공화주의자'들의 음모로 포장되어 진범을 밝히지 않고 은폐하곤 했으나 이번에는 워낙 범인이 명백하다보니 치안당국이 즉각 출동해 클롭슈톡 후작가로 향했으나 저택에는 아무 것도 모르는 고용인들만이 당황한 채 남아있었을 뿐. 후작은 이미 폭탄이 폭발하는 시간에 맞춰 대귀족답게 누구보다 우선적으로[8] 자가용 우주선을 탄채 영지로 도망간 뒤였다.


3.2. 토벌[편집]


은하제국 정부는 도망친 클롭슈톡 후작은 반역죄 미수범으로 지목하여 작위를 박탈하고, 토벌대를 조직하여 클롭슈톡 후작의 영지로 파견하였다. 클롭슈톡 후작도 이제 자신에게 남은건 '완전한 파멸' 뿐이란 것을 잘 알고 있는 터라 돈을 아끼지 않고 용병대를 고용하여 항전 태세를 갖추었다.

또 한 번 무훈을 세울 기회를 얻은 라인하르트는 키르히아이스로부터 토벌대 파견 정보를 얻자 황궁으로 향해 스스로를 토벌대 지휘관으로 천거하였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4세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토벌대 사령관에 임명한 뒤였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사건이 터진 그날 밤 황제를 알현하여 연회장에서 죽어나간 친지들의 원수를 갚겠다며 강력한 의지를 보였고, 프리드리히 4세는 공작의 열의에 밀려 브라운슈바이크의 일시 현역 복귀 요청을 승인하고, 토벌대 사령관에 임명하였다. 더불어 여기에는 황제의 배려도 있었다. 토벌군에 플레겔 남작을 비롯한 문벌귀족들이 다수 참가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이들이 라인하르트의 지휘를 선뜻 받아들일 리가 없었던 것이다. 라인하르트도 황제의 뜻을 알자 납득한다.

이에 따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총사령관으로 한 토벌군이 결성되었다. 토벌군에는 제국 정규군과 귀족들의 사병이 뒤섞인 혼성군으로, 플레겔 남작 등 문벌귀족들이 지휘관이 되었으며 볼프강 미터마이어 소장, 오스카 폰 로이엔탈 소장 등 전문 군인 몇몇이 '전투기술고문'으로서 전술전략에 밝지 않은 귀족들을 돕게 되었다. 3월 30일 토벌군은 제도 오딘을 출발했다.

토벌군의 숫자 자체는 한 귀족의 용병대를 웃돌았다. 그런데 이 귀족나리들이 워낙 무능해서 고작해야 용병으로 구성된 경비대 밖에 없는 후작령 하나를 진압하는 데 한 달 이상이 걸려 5월 2일에야 오딘에 귀환하였다. 토벌군이 원체 오합지졸이었던데다가 지상전에서는 반란군이 지리적인 이점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전 경험이 없는 귀족 사병들을 위해서 전투기술 고문으로 참전한 볼프강 미터마이어오스카 폰 로이엔탈은 짜증이 치솟은 나머지 1주일 동안 손수건을 여러 차례 집어던졌다고. 미터마이어는 아예 "나에게 지휘권을 주면 3일 안에 끝장을 보겠다!"고 분노할 정도였다. 그나마 클롭슈톡 후작의 군재에 대한 묘사가 없기 망정이지 군재가 있었다면 반란은 더 오래 걸렸을 것이다.[9]

함대전으로 달라진 코믹스판에서도 이들의 무능은 어김없이 나온다. 한 귀족 사령관은 기함에 애인을 데리고 와서 전투를 보며 좋아라 웃어댔다. 당연히 그 광경을 보는 참모들은 다들 황당해하고 불만이 가득하면서도, 로이엔탈은 그 사령관에게 최선을 다하여 작전안을 제시하지만 죄다 무시당한다. 다만 그 애인이 로이엔탈을 보고 추파를 던지고 로이엔탈도 미소지으며 응수하는 묘사가 나온다. 아무래도 나중에 사령관이 피눈물 흘릴 듯? 미터마이어는 그냥 다짜고짜 레일 캐논을 쏴대라는 다른 사령관 곁에서 레일 캐논을 쏴대는 건 무익한 에너지 낭비일 뿐이라고 충고하며, 적에게 뒤처지기 전에 발퀴레를 발진해야 한다고 진언했지만 그 사령관이란 작자는 난데없이 "우리 가문은 황후도 배출한 명문가니 닥치고 레일 캐논을 쏴!" 라는 소리만 지껄일 뿐이었다. 제국의 흔한 레일건 덕후 미터마이어는 속으로 "이 작자들은 이기고 싶은 거냐? 나한테 지휘권이 있다면 이 토벌을 사흘 안으로 끝낼 수 있다..."라고 중얼거리며 물러서야 했다.

코믹스판에서는 오죽하면 토벌군 총사령관인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조차도 "이리도 압도적인 병력 우위를 가지고 있음에도 한달이 되어가도록 이 모양이라니! 한심한 것들!"이라고 분노하고 있었을 지경이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도 무능하고 개차반의 성격인 건 매한가지였지만, 그래도 군사적 식견은 좀 있던 터였기에 이런 전투적 상황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 공작 역시 총사령관인 자신의 명령조차 무시하고 마음대로 전투를 벌이는 문벌귀족 지휘관들에게 분통을 터뜨리다가,[10] 그래도 병력 우위로 결국 반란군이 점차 밀리면서 후작이 탄 기함이 드러나면서 전함대 적 기함을 중심으로 포격하여 반란을 마무리 지으라고 명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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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롭슈톡 후작의 자살
토벌군의 무능함은 끝이 없는 듯했지만 반란군에 비해 전력에서 우세했던 만큼, 그럭저럭 진압도 끝났고 주동자였던 클롭슈톡 후작이 독약으로 자살하면서 사태는 완전히 종결된다. 다만 코믹스에서 클롭슈톡 후작은 우주에서 함대전을 벌이다가, 전함에 탄 채 전사를 가장한 자포자기의 죽음을 맞이한다. 이젠 틀렸다고 피신을 독촉하는 부하들의 진언마저 거부하며, 프리드히리 4세에 대한 원망을 유언처럼 쏟아낸 뒤 전함에 남았으니 사실상 자살이다.

4. 구명[편집]



4.1. 약탈과 학살[편집]


후작이 사망하면서 클롭슈톡 후작의 반역행위는 종결되었다. 그런데 후작령을 점령한 토벌군은 민간인을 상대로 약탈, 폭행, 강간 등등 온갖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다녔다. 원래 제국에는 평민 출신 병사들의 욕구불만을 해소할 차원으로 다소 폭력과 약탈행위를 묵인하는 관례가 있긴 하지만, 여기서 각종 대민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평민 병사들이 아니라 청년 귀족들이었다. 이들은 전쟁터에서는 벌벌 떨면서 대민범죄는 마치 게임마냥 즐겼다.[11] 로이엔탈은 귀족들의 추태와 만행에 진저리를 치며 이들을 말리는 것조차 포기했으나 미터마이어는 이리저리 열심히 돌아다니며 귀족들의 범죄를 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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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약탈 및 살해를 자행한 귀족 장교
그리고 그 군인을 처형한 미터마이어
그러던 중 미터마이어 눈에 한 귀족 장교가 들어왔다. 코르푸트 가문 출신으로 대위 계급을 달고있던 이 장교는 친구들과 함께, 예순 살이 넘은 노부인을 강간하기 위해 그 노부인을 마구 폭행하고 있었다. 그걸로도 모자라 노부인이 손가락에 낀 사파이어 반지를 빼앗으려 했고, 이에 노부인이 빼앗기지 않으려고 반지를 삼키다가 기도에 걸리자 크게 웃으면서 노부인의 목을 군용 나이프로 갈라 반지를 꺼냈다.

처참하기 그지없는 광경을 목격하고 분노한 미터마이어가 반지를 잡은 손목을 힘껏 붙들면서 추궁하지만, 대위는 반성은 커녕 오히려 자신의 아버지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사촌동생이고 누나는 리텐하임 후작가에 시집을 갔으니, 싸구려 정의감을 내세우기 전에 족보부터 공부하고 오라고 집안 자랑을 해대며 빈정거린다. 그 말을 들은 미터마이어는 더욱 분노해 '불법으로 인민을 해하고 군의 위신을 저해하는 자는 장성 권한으로 극형에 처할 수 있다'는 제국군의 규정을 근거로 대위를 즉결처형하겠다고 선포한다.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한 대위는 덜덜 떨면서 공작님을 뵙게 해달라고 빌었지만, 미터마이어는 반격할 기회는 줄테니 총이나 뽑으라며 차갑게 대답할 뿐이였다. 대위는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고 결국 격발하여 총을 들이민다. 그러나 미터마이어는 이미 조준까지 끝낸 후였으며, 대위가 쏜 광선이 빗나가자 곧바로 발포하여 깔끔하게 대위를 사살했다.

4.2. 미터마이어 체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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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된 미터마이어와 그를 면회온 로이엔탈
대위의 말과 다르게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은 사촌형제의 자식이라는 먼 친척에게 딱히 애정이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족은 일족이고, 브라운슈바이크의 이름을 들먹였는데도 처형했다는 것은 자신의 체면을 모욕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브라운슈바이크는 토벌군 총사령관의 직권으로 미터마이어를 체포했고 직접 심문했다. 그러나 미터마이어는 귀족들의 대민범죄를 규탄하며 그들을 비호하는 공작을 탄핵했다. 분노한 브라운슈바이크는 당장 미터마이어를 처형하려고 했지만 안스바흐아르투르 폰 슈트라이트가 제국법으로 황제가 아니면 장군계급은 처형할 수 없다고 반대하여 일단 투옥했다. 그렇게 미터마이어는 수송함 한 척에 마련된 영창에 수감되었다. 원래, 골덴바움 왕조는 시조인 루돌프부터도 군인으로서 스스로 장군에 올랐던 만큼 군인에 대한 대우가 좋은 편이었기에 대역죄가 아닌한 장군은 황제가 아니면 처형할 수도 없었고 따라서, 장군용 교도소도 제법 좋게 별도로 수감될 수 있게 되었다.

미터마이어가 수감되자 로이엔탈은 즉시 미터마이어를 찾아가 면회했다. 하지만, 계급이 소장이기에 충분히 장군용 교도소에 가야할 미터마이어가 일반 영창에 수감된 걸 본 로이엔탈은 대귀족에게 밉보였고 놔두면 미터마이어가 위험할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이리저리 궁리한 끝에 라인하르트 폰 뮈젤 대장에게 의지해보자고 미터마이어에게 제안했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그 즉시 라인하르트를 찾으러가면서도 미터마이어가 제도에 돌아가기 전에 죽는다면 모살당한 것으로 간주하겠다고 큰소리치면서 이 말을 제국 군무성에 전달했다. 덕분에 미터마이어는 무사히 오딘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5월 2일 밤, 로이엔탈은 손수 라인하르트에게 찾아가서 이 모든 걸 설명하고 미터마이어를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당시 라인하르트는 제국군 대장이기에 얼마든지 고급 관사에 머물 수 있었지만 스스로 검소한 하숙집에서 키르히아이스와 같이 살고 있었다. 로이엔탈이 그 하숙집에 최대한 빨리 가서 도착하던 날만 해도 폭풍우가 부는 밤중이었다. 라인하르트는 키르히아이스와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고작 반란 하나 진압하는데 한달 넘게 걸리다니 한심하다고 브라운슈바이크나 귀족들의 지휘를 비웃고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이번 반란 진압으로 원수 진급이 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에 대하여 그런 권력이 필요하다는 걸 이야기하고, 그러자면 인재가 더 필요하다면서 그동안 숨겨온 마음을 털어놓고 있었다.

파일:클롭슈톡 사건.라인하르트.jpg
파일:클롭슈톡 사건.로이엔탈.jpg
라인하르트와 로이엔탈의 대화
헌데 바로 그때 타이밍 좋게도 하숙집 아주머니가 라인하르트를 찾아온 손님이 왔다고 전해준다. 1분 1초가 급했기에 대충 비옷만 입고 서둘러 당도한 로이엔탈은 한밤중에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하다면서 모든 걸 설명하자, 라인하르트는 미터마이어 제독의 구명은 제국 최고의 대귀족에 맞서는 가혹한 조건인데 대가로 무엇을 줄 거냐고 말한다. 로이엔탈은 즉시 저와 미터마이어, 그리고 젊은 장교들의 충성이라고 답하는데 그 눈빛은 당당했다. 마지막으로 라인하르트는 '경은 골덴바움 왕조를 어찌 여기고 있나'라는 질문하는데, 그 뜻을 정확하게 파악한 로이엔탈은 이렇게 대답했다.

"5세기에 걸쳐 골덴바움 왕조라는 노쇠해진 몸에는 고름이 찌들고 있습니다. 외과수술이 필요합니다."

라인하르트는 침묵으로 이에 대답했다. 로이엔탈의 표정과 언동에 엿보이는 날카로움이 금발 젊은이에게는 기분 좋게 느껴졌다.

"수술이 성공한다면 환자가 죽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지금은. 어차피 누구나 불로불사는 아니니까요. 루돌프 대제조차......"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외전 2권 <별을 부수는 자>, 김완, 이타카(2011), p.130~131

로이엔탈의 대답은 자칫하면 대역죄급 발언이거늘 그만큼 라인하르트를 믿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이었다. 라인하르트의 야심을 정확히 이해하고 돕겠다는 대답이었기 때문에 라인하르트는 군말없이 돕기로 한다.

이 무렵에 미터마이어는 군 장성이나 귀족 전용 독방 '귀빈실'이 아니라 일반장교용 독방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독방 안에서도 미터마이어는 기죽지 않고 꾸준히 운동을 하며 지냈다. 식사도 화려한 식사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먹을만한 식단으로[12] 꾸준히 제공되었으나, 미터마이어는 그 식사의 1/3 정도만 먹고 남겼다. 오죽하면 교도관이 "독살이라도 당할까봐 무서운 거요?"라며 이상하게 여기자, 미터마이어는 "내가 그런 걸 겁낼 사람으로 보이나? 그저 살찌면 마누라가 싫어해서 그렇지."라고 가볍게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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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겔을 제지하는 안스바흐
그러던 중 미터마이어를 사적으로 조지기 위해 플레겔이 내무성 사회질서유지국에서 일하는 고문기술자를 고용하여 미터마이어를 고문하려 했다. 하지만 미터마이어의 반격으로 고문기술자와 플레겔 모두 탈탈 털린다. 그러던 중 라인하르트, 키르히아이스, 로이엔탈이 개입하여 상황은 악화되지만 때마침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가신 안스바흐가 나타나 상황을 수습했다.

4.3. 미터마이어 석방[편집]


플레겔의 손에서 미터마이어를 구해낸 라인하르트는 적극적으로 공론화를 밀어붙였다. 플레겔은 라인하르트 일행에게 강렬한 살의까지 느낄 지경이었으나 미터마이어 수감건이 공론화가 되면, 치부가 폭로되어 불리해질 사람은 오히려 자신이었기에 라인하르트의 공격에 얻어터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고관 몇 명이 중재하자 라인하르트는 못 이기는 척 물러났다.

어느 날, 군무상서 에렌베르크는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뮈켄베르거 원수, 라인하르트를 호출했다. 에렌베르크는 가장 먼저 온 브라운슈바이크를 달래면서 그의 만행에 대해 은근히 비판했고, 브라운슈바이크도 속으로 불쾌해했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미터마이어에 대한 처벌을 물어봤다. 에렌베르크는 미터마이어의 행동은 군율에 따른 것이므로 군사재판에서 관용을 보일 수 밖에 없다고 대답했다. 이내 에렌베르크가 없던 일로 하자고 제안하자 브라운슈바이크는 격분했으나,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제국원수장을 포기할 수 없어서 결국 승낙했다. 덧붙여 에렌베르크는 죽은 대위의 유족이 복수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두 번째로 온 사람은 우주함대 사령장관 그레고르 폰 뮈켄베르거 원수였다. 형식적인 이유는 가을에 예정된 출병계획을 조정하기 위해서였지만, 진짜 이유는 미터마이어에 관한 문제였다. 에렌베르크는 이 자리에서 라인하르트에게 이번 출병의 선봉을 맡기고 휘하 제독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인사권을 주자고 제안했고, 뮈켄베르거는 그랬다가 라인하르트가 공을 세우면 승진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러자 에렌베르크는 자유행성동맹군의 손을 빌려 라인하르트를 제거하는 차도살인의 계라고 설명하자 뮈켄베르거는 납득했다.

그러나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 이 계략은 잘못되면 뮈켄베르거가 모든 책임을 지는 계략이었다. 만약 전투에서 이기면 에렌베르크 말마따나 라인하르트를 기용한 뮈켄베르거의 평가도 높아지겠지만 만약 라인하르트가 전사한다면, 그의 누이이자 황제의 가장 총애받는 애첩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이 황제에게 호소해 뮈켄베르거가 라인하르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추궁 받을지도 모른다. 그제서야 사태를 깨달은 뮈켄베르거는 나지막히 욕설을 내뱉었고 이를 제대로 못들은 차석부관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대령이 재차 묻자, 그의 비호감적인 외모에 뮈켄베르거는 더더욱 기분이 나빠져 오베르슈타인을 경질하여 통수본부 정보처리과로 보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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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하르트와 에렌베르크의 면담
마지막 방문자는 라인하르트 폰 뮈젤 대장이었다. 에렌베르크는 라인하르트에게 미터마이어를 석방하고 최전선에 보내어 공을 세워 죄를 갚게 하겠다고 설명했다. 라인하르트는 미터마이어는 죄를 짓지 않았다고 반박했지만, 에렌베르크는 미터마이어가 군의 화합과 협조를 저해했다고 지적한다. 그 말에 겉으로나마 납득한 라인하르트가 전투가 없으면 무훈을 세울 수 없다고 말하자 그동안 극비였던 출병계획을 알려주고 미터마이어는 라인하르트 함대에 소속될 거라고 설명해준다. 이에 무훈을 세울 생각에 들떠서 기분이 좋아진 라인하르트가 퇴실한 뒤 에렌베르크는 이제 내 범위에서는 사태가 평화롭게 처리되었다고 혼잣말 한다.

5. 결말[편집]


5월 9일 미터마이어는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풀려난 미터마이어는 하룻밤을 아내와 함께 보낸 뒤 다음 날 로이엔탈과 함께 하숙집을 방문해 라인하르트와 유대를 다지고 정적 베네뮌데 후작부인을 어떻게 처리할지 의논했다. 그리고 이들의 공작에 의한 나비효과로 베네뮌데 후작부인은 몰락하게 된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훗날 문벌귀족을 타도하고 로엔그람 왕조를 개국하는 공신들의 인맥이 형성되었다.[13]

이 사건으로 동생을 잃은 코르푸트 자작은 몇 달 뒤 벌어진 레그니처 상공 조우전에서 미터마이어의 통수를 쳤지만 미터마이어의 공격으로 오히려 자신이 기함과 함께 전사했다. 플레겔도 밀약대로 제4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라인하르트를 전사시키기 위해 온갖 술수를 썼으나 실패했고 뮈켄베르거의 경고로 물러나야 했다.

6. 여담[편집]


이 사건보다 60여 년 전[14]에 있었던 빌렌슈타인 공작의 반란사건 때에도, 미터마이어처럼 귀족군의 폭주를 막으려 한 개념 공무원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파견되었던 재무성 공무원은 빌렌슈타인 공작의 저택 내에 존재하는 인력으로 운반할 수 있는 모든 물품에 재무성 딱지를 붙여, 제국 정부 소유의 자산임을 분명히 하면서 수많은 귀중품들이 미쳐 돌아가는 토벌군들의 약탈 대상이 되지 않게 만들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딱지를 붙이지 않은혹은 붙일 수 없었던 세 자리수에 달하는 빌렌슈타인 공작의 애첩들은 미쳐 날뛰는 약탈 미수범들의 분풀이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이후 이 공무원은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던 공적을 인정받아 재무성 차관에게 표창과 금일봉을 상으로 받았지만, 이를 안좋게 본 토벌군 간부들의 압력으로 징병 연령을 넘겼음에도[15] 사병으로 징집되어 최전선으로 보내졌다. 하지만 전사를 바란 군부의 기대에 어긋나게도 6년의 군복무[16]를 마치고 살아서 돌아왔다고 한다. 오오!

그러나 이번 클롭슈톡 사건에서는 이런 "모범적인 공무원"이 없었기 때문에 토벌군은 마음껏 재물을 약탈했다.

배경과 전개, 결말을 보면 클롭슈톡 후작은 스스로 몰락을 자초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사실 프리드리히 4세는 암군일지언정 성품만큼은 그다지 악랄하지 않았기 때문에, 클롭슈톡 후작이 평생 본인의 영지에 칩거하기만 했다면 달리 큰 벌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클롭슈톡 후작 역시 남은 평생을 사교계에 매장당한 채로 살지언정, 반역자가 되어 자신은 자살하고 영지마저 약탈당하는 식으로 처참하게 몰락하진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이 작품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았다면, 그토록 꼴보기 싫었던 프리드리히 4세의 승하와 앞장서서 자신을 배척했던 귀족들의 몰락까지 전부 목도했을 것이다. 만약의 경우엔 라인하르트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서 브라운슈바이크와 리텐하임의 몰락에 일조했을지도 모를 일. 설령 라인하르트측과 립슈타트 귀족연합 그 누구도 지지하지 않고 중립을 선언해 권력의 중추에 두번 다시 다가가지 못하더라도, 이후 문벌귀족의 처지가 얼마나 비참해졌는지를 생각하면 적어도 클롭슈톡 후작은 재산을 몰수당하지 않고 평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은영전 팬들의 일각에서는 프리드리히 4세가 이미 클롭슈톡 후작의 음모를 다 눈치챘다는 가설도 제시한다. 이 경우, 참석하겠다고 한 황제가 갑작스레 복통을 이유로 불참하였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만일 사실이면 클롭슈톡 후작은 이미 프리드리히 4세 손바닥 안에서 있던 셈.

7. 미디어 믹스[편집]



7.1. OVA[편집]


OVA에서 등장하는 클롭슈톡 사건은 원작과 큰 차이가 있다. 우선 시점이 우주력 795년 3월이 아니라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 이후로 미루어졌고, 클롭슈톡이 위장했던 도구가 가방에서 지팡이로 바뀌었다. 클롭슈톡 후작이 테러를 계획한 동기도 제국을 망치는 프리드리히 4세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을 타도하기 위해서였다. 폭탄을 저택에 놓아두고 도주할 때도 자신의 영지가 아니라 오딘에 있는 저택으로 도주했으며, 그곳에서 테러가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성스러운 집사를 피신시킨 뒤 스스로 저택에 불을 지르고 자살한다.

한편 미터마이어가 클롭슈톡의 영지를 약탈하던 귀족 장교를 사살하고 고초를 겪었던 일은 제국 내에서도 크게 퍼졌는지 이후 소문을 통해 언급되기도 한다. 그 예시로 페잔 자치령을 점령하고 민심을 수습하던 중 페잔의 민간인 여성을 상대로 약탈과 폭행을 저지른 사병 몇 명이 도시 한복판에서 공개 처형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를 지켜보던 다른 사병 두 명이 당시 사건을 통해 미터마이어가 왜 이런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지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7.2. 후지사키 류 코믹스[편집]


후지사키 류 코믹스에서는 이 에피소드가 잘렸으며, 코르푸트 가문의 대위를 사살한 에피소드만 나온다. 중간 전개과정도 좀 달라져 미터마이어가 갇힌 곳도 군 교도소가 아니라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 영지 한구석에 마련된 고문성으로 바뀌었으며, 에렌베르크와 뮈켄베르거, 클롭슈톡 후작은 등장하지 않는다. 여기서는 로이엔탈의 부탁을 받아들인 라인하르트가 키르히아이스, 로이엔탈과 직속 병력을 대동하고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가를 찾아가며, 약간의 기싸움 끝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이 미터마이어가 수감된 곳을 알려준다. 이후 미터마이어를 석방시킨 라인하르트와 플레겔이 기싸움하고 끝.[17]


8. 만약 클롭슈톡 후작이 성공했다면?[편집]


크게 두가지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황제가 복통 없이 브라운슈바이크 저택에 도착했을 경우에는 은하제국 내 가장 강대한 3세력인 귀족의 우두머리 브라운슈바이크와 신흥 무력집단인 로엔그람 그리고 황제까지 한꺼번에 제거되었기 때문에 제국은 그야말로 극심한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크고 특히 후계 문제로 골치를 앓게 될 것이다. 브라운슈바이크와 라인하르트가 없어지고 리텐하임과 리히텐라데만이 남은 상황에서 이 둘이 타협을 하고 같은 후계자를 옹립하던가 각자의 후계자를 내세우며 대립하는 쪽으로 갈릴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브라운슈바이크가 죽더라도 그 잔존세력들이 모여서 또다른 파벌을 이룰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 경우 삼파전으로 가든가 브라운슈바이크 잔존세력+리텐하임 VS 리히텐라데로 가거나 리히텐하데가 둘 중 한 세력과 손을 잡고 다른 쪽을 누르거나[18] 아니면 리히텐라데가 교묘하게 두 세력을 이간질해 두 세력끼리 싸운 후에 이긴 쪽이 리히텐라데와 대결하는 구도로 갔을 듯하다.

그리고 키르히아이스는 은하영웅전설 5의 엔딩처럼 안네로제와 혼인하여 평범한 일생을 보냈을 것이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황제의 애첩을 일개 평민 출신에게 내줄 리가 없다는 의견도 있으나, 하급 귀족이라고 무시당하던 황제의 애첩이고 그 황제가 죽고 미망인이 되어버린 마당에 안네로제는 황궁에서 나오고 싶어할 것이다. 무엇보다 은하제국에서는 새 황제가 즉위하면 선제의 애첩에게 금전을 내리고 폐하는 것이 관례였으므로 좋든 싫든 궁을 나와야 하며 이미 끈 떨어진 여인과 평민 출신에 계급도 중령에 불과한 군인을 어느 귀족이 눈여겨 보겠는가. 때문에 문벌귀족들은 안네로제가 키르히아이스와 맺어지든 말든 신경쓰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두번째로 황제가 복통에 의해 황궁으로 환궁하고 폭탄이 예정대로 터졌을 경우에는 좀 더 예측하기가 쉬운데, 일단 귀족세력은 리텐하임 후작을 주축으로 모여들 가능성이 크다.[19] 또한 하급 귀족과 평민으로 이루어진 라인하르트 원수부는 라인하르트는 사망, 키르히아이스는 자신의 친우이자 주군이 폭사했으므로 모든 일에 의욕을 잃고 군무에서 은퇴할 가능성이 크고 로이엔탈과 미터마이어 등 훗날 원수부의 핵심인사 중 상당수는 그 당시 라인하르트와 만나지도 못했기에 등장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어느 쪽으로든 로엔그람 왕조는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므로 자유행성동맹으로서는 최고의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클롭슈톡 후작은 범인으로 밝혀지고 자살했겠지만.[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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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담으로 진짜 20세대였다면 클롭슈톡 가문은 꽤나 단명한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루돌프 출생부터 클롭슈톡 사건까지 약 530년 정도에 20세대라면 조선왕조의 태조의 출생부터부터 순종까지(1335년~1926년,) 약 590년간의 21세대보다도 더 기간이 짧다! 즉 제4천년기의 가문이 고작 14세기~20세기 정도에 존속한 가문보다도 더 단명했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약' 이라는 단서가 붙은 것과 비슷한 나이대처럼 보이는 카이저링 남작이 19대 가주라는 것을 감안하면 20세대보다는 살짝 짧은 18, 19세대로 하면 얼추 맞아떨어진다.[2] 농담이 아니고 일반적인 황제였다면 클롭슈톡 후작같은 경우, 어떤 명목으로든 처형당하고 재산도 몰수당하는 게 보통이다. 다른 귀족들이 클롭슈톡 후작과 인연을 끊어버린 이유도 단지 그와 연관되었다는 것만으로, 클롭슈톡 후작에게 원한이 있는 황제에게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으로 추정된다. 파혼 통보 역시 클레멘츠를 황제로 지지하고 프리드리히 4세를 멸시하기까지 한 클롭슈톡 후작과 혼사를 맺을 수 없었기 때문에 한 조치였을 것이다. 정말 아무런 처벌을 하지 않고 내버려 둔 프리드리히 4세의 관대함에 감사해도 모자랄 상황이다. 사실 프리드리히 4세가 이토록 귀족사회에서 괄시받았던 건 그가 젊은 시절부터 주색에 빠지고 평민에게까지 머리를 숙이는 등, 행실까지 못난 같잖은 왕족이었던 탓도 지대했다. 그러나 아무리 행실이 망나니이고 제위 계승에서 배제되었다고 해도 명색에 황제의 아들인 직계 황족을 면전에서 비웃고, 황제와 정식 책봉된 황태자가 버젓이 살아있는데 삼남인 클레멘츠를 황제로 지지한 클롭슈톡 후작의 처신도 문제가 컸다. 그나마 프리드리히 4세가 암군일지언정 폭군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아서, 클롭슈톡 후작이 영지에 칩거하는 것만으로 그의 처벌을 끝내준 걸로 보인다.[3] OVA에서는 브라운슈바이크에게 거대한 루돌프 대제의 초상화를 선물했는데 브라운슈바이크도 "있다는건 들어봤는데 본적은 없다." 라면서 그 크기에 놀랐을 정도. 하지만 브라운슈바이크도 클롭슈톡 후작을 우대해줄 생각따윈 없었다.[4] 라인하르트의 참석 때문에 밖에서 대기하던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만이 평소 기억에 없던 인물이 보여 누구인지 정도의 관심을 보였다.[5] 황제가 앉았을 자리에서 겨우 대여섯 자리 건너였다.[6] 하지만 심복인 안스바흐가 달려와 "공작님! 어디 계십니까!"라고 외칠 때, 공작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여기있다! 안스바흐... 날 도와다오..."라고 외쳤다. 부상은 가벼웠지만 정신적 충격이 컸을 듯. 더불어 자기가 주최한 파티에 테러를 가한 것에 분노를 일으키게 된다. 미치하라 카츠미판 코믹스에선 눈을 뜨고 피투성이로 죽은 귀부인 시신이 바로 옆에 딱 붙어있었으니, 제대로 트라우마를 안겨줬을 듯 하다. 결국 안스바흐가 도와줘서 일어서자 마자 버럭 소리를 지르며 범인은 클롭슈톡 후작이라고 일갈한다. 이윽고 감히 이런 짓을 저질렀다며 역성을 낸다.[7] OVA에서는 폭탄 충격으로 귀가 일시적으로 멍멍해진 것과 얼굴이 약간 그을린 수준에 그쳤지만 DNT에서는 두부 출혈이 좀 났다. 참고로 양의 경우에는 OVA에서 아스타테 회전 당시 파트로클로스가 피격 당하자 같은 부상을 입었다.[8] 아무리 정치적으로 위세를 잃었어도 대귀족은 대귀족이라, 클롭슈톡 후작의 전용 우주선은 우주공항의 허가를 기다리는 수많은 일반 서민들을 무시하고 우선적으로 이륙 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9] 심지어 이건 나은 수준이고 카스트로프 동란은 진압하는데 무려 반년이 걸렸고, 거기다가 세번이나 토벌대를 보내고서 두번이나 패퇴하는 추태를 보였다. 더군다나 이때의 토벌대는 무능한 귀족군 따위가 아니라 정규군이었다. 정규군조차 군재가 조금 있는 카스트로프를 치려다 두번이나 패퇴했는데, 무능한 귀족군 따위는 클롭슈톡 후작이 군재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탈탈 털리고도 남았을 것이다.[10] 근데 사실 이건 조금 설정오류(?)다. 립슈타트 전역을 보면 알겠지만 문벌귀족 지휘관들이 리텐하임 계열은 확실히 브라운슈바이크 말을 잘 안 들었지만 브라운슈바이크 계열은 말을 안 듣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말을 듣는 편이었다. 다만, 원작과 다르고 립슈타트 전역에는 새로운 황제 등극이라는 엄청난 일이 있기에 온갖 귀족이 몰려와 따르기라도 했지, 이건 퇴물귀족이 일으킨 반란이다. 립슈타트 전역처럼 온갖 귀족들이 몰려오던 거와 달리 참전한 귀족층도 젊은 귀족층들이 공를 탐내 서로 우르르르 몰려와 닥돌했다고 보면 꼭 오류는 아니다.[11] 그런데 정작 제2차 가이에스부르크 요새 공방전에서는 자폭이라느니 옥쇄한다느니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만약 클롭슈톡 사건이 이들의 본성을 보여주었던 것이라면 어째서 저 당시에는 되려 자폭이나 옥쇄를 명령했는지 의문으로, 클롭슈톡 사건 때처럼 행동한다 가정하면 전투에서 패배했다면 생존을 위해서라도 항복을 하는게 정상이다. 다만 클롭슈톡 사건 당시에는 상대가 같은 문벌귀족인 빌헬름 폰 클롭슈톡 후작이었지만 후자는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후작이 상대였다는 차이점이 있다. 명목상으로야 로엔그람 가문에 입적됐지만 본래 작위도 없는 하급 귀족 출신이었고 로이엔탈처럼 돈 많은 집안이라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닌, 허울만 귀족이었지 평민이나 다름 없었다. 그의 측근들도 대부분 평민 출신으로 로이엔탈과 오베르슈타인은 아니었지만 로이엔탈의 경우 신흥 하급 귀족 출신이었고 실제로는 오베르슈타인만이 설정에 따라 그런대로 제대로 된 귀족 가문이라 할 수 있을까 말까였다. 즉, 문벌귀족 VS 문벌귀족이었던 클롭슈톡 사건과는 달리 립슈타트 전역은 사실상 문벌귀족 VS 평민&하급 귀족이었기에 항복하기엔 제 딴에는 가오도 체면도 안 서고 모욕적이기까지 하니 항복 대신 죽음을 택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12] OVA에선 수프, 고기 경단채소, 소스가 나온다.[13] 라인하르트, 키르히아이스, 로이엔탈, 미터마이어. 훗날 노이에란트 전역 종결 이후 라인하르트는 미터마이어에게 그때 인물들 중에 우리 둘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탄한다.그리고 얼마 안가 미터마이어 혼자만 남는다.[14] 연대상 730년 마피아가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데뷔하고 한창 활동하던 시기다.[15] 이미 군복무를 마쳤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면제였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16] 그런데 제국군의 일반 병역은 2년이다. 강압적으로 임기제 부사관을 시켰을 가능성이 있다.[17] 아마 일이 있기는 했는데 작품에서는 안 보였거나 이 세계관에서는 클롭슈톡 후작이 프리드리히 4세를 괄시하지 않아 지위를 보전했을지도 모른다.[18] 이 경우엔 브라운슈바이크 잔존세력과 손잡는게 나을 것이다.[19] 이것에 대해 리텐하임이 같이 폭사했다면? 의견도 있으나 원작에서는 이 모임에 리텐하임이 참가했다는 묘사 자체가 나오지 않으며 앙숙인 브라운슈바이크가 주최하는 이 모임에 리텐하임이 당연히 나올 일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황제인 프리트리히 4세도 나왔다는 것을 감안해보면 황제 폐하도 참석하시는데 '감히' 후작따위가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도 말이 안되긴 한다. 물론 브라운슈바이크가 초청하지 않았다는 선택지도 고를 수 있겠지만 서로 사이는 나빠도 어찌됐든 인척 지간인데 초대장조차 안 띄운다는건 너무하다는 입소문이 날 수도 있을 일이다.[20] 오히려 브라운슈바이크 무리가 없어서 정규군이 빠르게 클롭슈톡 후작을 제압했을 가능성이 크다.